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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 LIFE

Friday, May 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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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NEW YORK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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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9일 금요일

자랑스러운 한인…“나는 이렇게 일한다”

직원들에게 항상 고마움 표시… 월급 등 파격적 대우 가방 하나로 우뚝 솟은 박병철‘에베레스트’사장

美 최대 여성소유기업‘SHI’CEO 타이 리

美·중남미 대형체인점, 백화점, 온라인서 월 100만 개 팔려

소프트웨어 판매·서비스 회사… 자산 11억달러

8천848m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 이 휴지로 변하고, 모았던 재산과 집을 트산. 재미동포 박병철(67) 에베레스트 하루아침에 날려버렸다. 트레이딩 사장은 이 산처럼 가방 하나 제주도에 있는 친구(현 금호전기 박 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34 영구 회장) 집에 칩거하며 1년 정도 세 년을 달려왔다. 상을 등졌다. 1977년 결혼해 아이 낳고 사업 여정을 등산으로 친다면 그는 알콩달콩하던 신혼 생활도 다 깨졌다. 지금 얼마만큼 올랐을까? 도무지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을 때 박 사장은 지난달 경북 구미에서 세 한 지인이 그에게 미국 이민을 권했다. 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와 연합뉴스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빠져나갈 구멍 주최로 열린 제17차 세계대표자대회 이 없었기에 미국행을 선택하기는 수 및 수출상담회 참가차 방한했다. 월드 월했다. 1981년 그는 한 무역회사의 주 옥타 이사장인 그는“미국 시장에서 가 재원 비자를 받아 가족과 함께 태평양 방 브랜드로‘에베레스트’ 를 모르는 을 건넜다. 사람이 없을 정도면 고지에 거의 오른 “물 건너 제주도까지 쫓겨와 살았는 것 아닌가요”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데, 한 번 더 물 건너면 된다는 심정으 “우리 회사가 만든 가방은 월마트 로 일본, 하와이를 거쳐 미국 LA에 도 등 대형 유통체인점과 백화점, 미국 전 착했어요. 일본에서 사업하던 삼촌이 1 역에 1천 개가 넘는 소매점에 진열돼 천만 원을 주머니에 넣어줬어요. 700 있어요. 멕시코의 백화점과 체인점에 만 원을 들여 가방과 옷가지들을 샀어 박병철 ‘에베레스트’ 사장. 그는 에베레 도 나가고, 최근에는 아마존 등 온라인 요. 당장 할 것도 없으니 팔아서 생활비 스트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세계의 가 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 대략 월 100 라도 대겠다는 생각에서죠. 비행기표 방회사로 만드는 데 힘쓴 직원들에게 항 상 고마움을 표한다. 월급, 성과급 등 직 만 개 이상의 가방이 팔리고 있다고 보 를 사고 남은 돈 70만 원으로 이민 생 원에 대한 대우를 파격적으로 하고 있다. 면 됩니다.” 활을 시작했습니다.” 연간 매출액 공개를 꺼리는 박 사장 은“그냥 가방 장사로 미국에서 성공했 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만 써 달라” 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러 면서“수치로 성공을 말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가방을 잘 팔았는지가 중요한 면 상한가를 쳤다.“도대체 왜 이렇게 고생 모르고 이른 나이에 큰돈을 만 거 아니냐” 고 반문하면서 2시간 정도 하루가 안 갈까” 라고 기다릴 정도였다. 졌던 그에게 이민 생활은 혹독했다. 처 가방 외길 34년을 풀어놓았다.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재무부, 증권 음에는 한인이 경영하는 햄버거 가게 그는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6개월 감독원, 청와대, 중앙정보부, 경제일간 에서 일했다. 한 달 내내 일해야 600달 때부터 부산에서 자랐다. 경남고등학 지, 방송사 등에 다니는 관계자들을 끌 러를 받았다. 그 돈으로는 가족을 부양 교를 졸업하고 1967년 한국외대 무역 어들여 원금 보장을 해주겠다며 자금 하기가 어려워 일이 끝나면 가져온 가 학과에 입학했다. 3년 군 복무를 마치 을 모아 주식투자를 대행하는 일에 나 방과 옷가지들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고 복학한 박 사장은 4학년 2학기 때 섰다.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벌 정도로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뛰었지 남들보다 먼저 일본 미쓰이(三井)물산 ‘대박’행진은 이어졌다. 만 생활은 쪼들렸다. 뭔가 대책 마련이 서울지사에 입사했다. “세상이 너무 만만해 보였어요. 서 필요했다. 두 달 만에 햄버거 가게를 그 “한국의 대일(對日) 무역의존도가 울 명동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빈대떡 만두고 가방 판매에 나섰다. 한 무역회 60% 이상일 때 미쓰이와 미쓰비시(三 을 부치는 노파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사에서 가방 재고를 팔아보라는 권유 菱)가 한국 수출의 40%를 차지할 정도 생각도 했죠. 그 노파는 인근에 빌딩 두 를 받았다. 가게가 없었기에 중고품 시 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회사였겠어요. 채를 소유한 알부자라는 소문이 났습 장(스왑밋), 주유소 공터 등지를 떠돌며 한국의 청와대 경제수석도 미쓰이 지 니다.‘그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하면 편 물건을 팔았다. 사장한테는 큰소리를 못 칠 정도였으 히 살 텐데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할 “가방을 쌓아놓고 공중에 던지면서 니까요. 그래서 제 프라이드도 강했 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룩 앳 미’ (Look at me),‘세이브 머니’ 죠.” 그 할머니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미국 (Save Money)라고 손뼉을 치면서 소리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잘나가던 에 이민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쳤어요. 주위의 시선을 끌면서 박리다 그는 재직하면서 주식과 부동산 투자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총에 맞아 매로 판매했죠. 하루는 비가 쏟아졌어 에 손을 댔다. 1970년대 초반인 당시는 숨진 10·26 사건과 신군부가 실권을 요. 난감했죠. 가방을 못 팔면 끝장날 건설회사들이 중동에 진출해 붐을 일 장악한 12·12 사태가 터지면서 박 사 판이었어요. 그때 가방에 방수 표시가 으키던 때. 그가 사들인 주식은 자고 나 장은 날개도 없이 추락했다. 모든 주식 돼 있는 걸 봤어요. 순간 지혜가 떠올랐

“고생해서 벌어야 내 돈이야 비즈니스 생명은 성실·신용”

한국 출신인 타이 리(56)가 미국 최 대 여성소유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고 포브스가 28일 보도했다. 타이 리는 소프트웨어 판매 및 서비 스를 주요 사업으로 하는 비상장회사 SHI(Software House International)의 최 고경영자(CEO)이다. SHI의 작년 매출은 60억 달러로 미 국에서 여성이 소유한 기업으로는 최 대이며, 소수인종이 소유한 기업‘톱3’ 에도 속한다. 포브스는‘2015년 자수성가형 여성 부자’50인을 선정해 보도하면서 타이 리를 부각시켰다. 이 매체는 SHI의 시장 가치를 보수 적으로 잡아 18억 달러로 산정하고, 60%의 지분을 가진 타이 리의 재산을 11억 달러로 매겨 14번째 자수성가한 여성 부자로 평가했다. 특히 다른 부자 들은 짤막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 리했지만, 타이 리와 관련해서는 별도 의 기사를 길게 실었다. 이는 일반인에 게 잘 알려지지 않은 SHI가 성장하는 데 타이 리의 경영 스타일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봤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포브스는 이 기사에서 25년전 망해 가는 회사를 100만 달러에 인수해 직 원 3천명에 연매출 60억달러의 거대기 업으로 일군 스토리를 전했다. SHI 인 터내셔널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IT기업으로 직원 미국과 캐 나다, 영국과 독일, 홍콩 등에 지사 30 여 개를 두고 있으며 AT&T와 보잉, 존 슨&존슨 등 거대기업들을 포함한 1만 7500여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타이 리는 경영자와 직원 간 차별을 두지 않으며 모든 직원을 애지중지하 며 대우한다. 직접 자가용을 운전해 출 근하며, 뉴저지 주 소머셋에 있는 본사

주차장에도 CEO용 주차 공간이 따로 없다. ‘50인 리스트’ 에 올랐다며 포브스 가 취재에 나서자 최선을 다해 자기 이 름을 빼라고 직원에게 당부했을 정도 로 주목받는 것도 싫어한다. 타이 리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직원 을 소중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회사에서 가치를 인정받 는 직원이 고객에게도 온 힘을 다한다 는 이유에서다.

매출이 15% 늘었으며, 2019년에는 작 년 매출보다 67% 증가한 100억 달러 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포브스의 자수성가형 여성 부 자 50위에는 의류유통업체인‘포에버 21’ 의 장진숙씨가 4위(31억 달러)에 이 름을 올렸다. 1위는 혈액테스트 업체인 테라노스의 CEO인 엘리자베스 홈즈 (45억 달러)가 차지했으며, 다이엔 헨 드릭스(ABC 서플라이)와 도리스 피셔 (갭)가 뒤를 이었다.

죠.‘방수 가방 5달러’ 라는 안내판을 만들어 세우고는 장사를 했죠. 비가 오 는데도 불티나게 팔렸어요.” 새너제이, 샌프란시스코 등지까지 장거리 판매도 강행했다. 새벽 4시 전 에는 장터에 도착해 신고해야 하기에 LA에서 물건을 팔고 졸린 눈을 비비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렇게 목숨을 건 노상 판매에 매달 린 끝에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장사꾼

들 사이에 가방을 잘 판다는 소문이 돌 면서 물건을 대 달라는 요청이 잇따랐 다. 그래서 공급자가 된 것이다.‘가장 높은 회사를 만들겠다’ 는 목표로‘에 베레스트 트레이딩사’ 라는 이름의 회 사를 차린 것도 그 즈음이다. 1983년부터 주문자 생산방식 (OEM)으로 한국에서 가방을 제조해 수입,‘에베레스트’ 라는 브랜드를 달 아 미국 시장에 팔았다. 또 스리랑카와

중국에 생산공장을 차렸다. 한때 1천 50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기도 했다. 또 1989년에는 국내의 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전대(纏帶)를‘페니백’ (허리 벨트 가방)으로 개발해 히트를 쳤다. 중 남미에서는 잔스포츠, 이스트팩보다 인기를 끌어 에베레스트 상표를 단 가 짜 상품이 시중에 유통될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C2면에 계속>

한국 출신 타이 리(56)는 미국 최대 여성 소유 기업 SHI를 경영하고 있다. 포브스 는 타이 리의 재산을 11억 달러로 매겨 14번째 자수성가한 여성 부자로 평가했 다.

실제로 SHI의 고객유지율은 99%에 이른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 가 있으면 불과 며칠 사이에 거래처를 바꾸는 IT업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수치이다. 포브스는‘개인’타이 리도 상세하 게 소개했다. 태국 방콕에서 태어났지 만 대부분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 다는 내용과 아버지가 유명한 한국의 경제학자였다는 이야기, 언니와 함께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 온 이야기, 미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MBA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서 일한 사연 등을 전 했다. 그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뒤에는 P&G,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에서 일했으며 1989년 결혼한 남편의 지원으로 라우텍(Lautek)이라는 회사 를 인수해 기업 경영에 뛰어들었다. 이 후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회사 이 름을 SHI로 바꿨다. 이 회사는 작년에

“기업 성장하려면 직원 소중하게 대우해야. 회사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직원이 고객에게도 온 힘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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