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날 최전방 백암산 중턱에서 만 난 불에 탄 주목과 구상나무의 그루터 기들, 살아 천년 죽어서 천 년을 버텨오 며 옹골찬 기개로, 선 굵은 삶을 살았던 주목과 구상나무에게서 늘 푸름과 꼿꼿 함을 배운다.
전쟁의 포연 속에 육신을 불태웠어 도, 꿈틀거리며 밀려오는 혹독한 칼바 람에도, 자신을 이겨내고 그루터기로 살아남은 홀연한 기개, 세상의 어느 누 구도 뿌리로 이어지는 강인한 삶의 의 지를 꺾지는 못하였으리라. 다시 덕유산 향적봉에서 젊은 날 바 라보았던 그대의 의연한 모습을, 불에
탄 그루터기가 아닌 서서 우는 주목과
구상나무로 마주하게 되었다. 결코 마
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력, 하얗게 상고 대를 둘러쓴 그대는 유구한 세월을 이
겨낸 지상의 승리자로 해돋이와 해넘이 를 꿈꾸는 이들에게 외로움 이긴 기백
을 보여주었다.
보아라!
백암에서 덕유의 향적봉까지 주목과
구상나무는 결코 외롭지 않다. 생을 다
하여 고사목이 되었어도 철 따라 반겨
주는 이들의 길잡이로, 불 밝힌 가지마
다 하얀 희망의 봄을 잉태한다. 늘 푸
른 나무의 푸름은 수액이 다하여도 푸
르다. 그대 멀리 있어 손에 닿을 수 없기
에 더 아름답듯 세한의 이 아침 달려가
는 덕유산 향적봉 하늘카페에서 마시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의 고독이, 늘 푸른 나
무가 되어 행복해지는 아침, 주목과 구
상나무에게서 듣는다, 새로워지기 위하 여 푸르러지기 위하여.


반가부좌를 틀고 바다와 마주 앉으면 마음 안쪽에도 수평선이 그어진다. 수
평 구도가 주는 안도감 덕분인가. 흐린 하늘에 부유하는 각다귀 떼 같은 상념 들이 수면 아래 잠잠히 내려앉는다. 바 다빛깔이 순간순간 바뀐다. 이 바닷가
어디쯤에 창 넓은 집 하나 지어 살고 싶 다는 내 말에 섬에서 태어난 토박이 지 인이 웃었다. 바다를 노상 보라볼 필요 는 없어요. 생각날 때 고개를 넘어 달려
가 안겨야 애인이지 같이 살면 마누라 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다. 돛을 달고 왔다가 닻을 내리면 덫이 되어버리는 게 인생 아닌가.
한낮의 바다는 유순하다. 울부짖지 도, 보채지도 않고 잡혀온 짐승처럼 가
만가만 뒤친다. 저녁때가 되면 바다는
더 크게 뒤척이고 더 높이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질척한 늪에 결박 된 채 들숨 날숨으로 소일하고 있는 푸 르고 거대한 대왕 해파리 한 마리. 바다 란 태평양 한가운데에 말뚝이 박혀 있 는 목줄 달린 짐승 같은 것이다. 헐떡 거리고 씨근덕거리며 발정 난 짐승처럼 달려들어 보지만, 심술궂은 목부(牧夫) 처럼 쥐락펴락 당겨가는 정체불명의 인 력(引力)에 저항하지는 못한다.
‘그래, 여기, 여기까지만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