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토요일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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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면서 점점 공감이 되어 간다

젊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할아

버지 세 분 중 한 분이 낚시 도구를 챙기고

계셨다. 그를 본 다른 할아버지가 “낚시 가

나?” “아니, 낚시가.” 그 대화를 듣던 다른

한 분이 “나는 낚시 가는 줄 알았지.” 그때

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어떤 학부모에게 할아버지들의 대화에 대

한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선생님, 너무 슬

퍼요.” ‘그런데, 이 뜻밖에 반응은 뭐지?’

얼마 전에도 한인 슈퍼 앞 벤치에서 할

아버지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서

로 다른 말을 하면서 대화를 하고 계셨다.

어떤 분이 이 광경을 보고 “대화가 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

었다. 하지만 어르신과 이야기를 하다 보 면 나의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하실 때가 있

다. 그럼 나도 무안하지 않으시게 슬그머

니 넘어간다.

얼마 전에는 옷을 수선하러 갔는데 연

세드신 분들이 옆에 있는 지퍼를 앞으로

옮겨달라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 ‘왜 멋지

게 만든 지퍼 위치를 바꾸어 달라고 하실

까?’ 그런데 얼마 전 내 팔이 아팠을 때 이

해가 되었다. 또한,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

는 도구가 왜 효자손인지도 단순히 이름

이 아닌 의미로도 알게 되었다.

동문회 회장을 할 때 동문들을 위해 수

고하신 분들께 공로패를 수여하기로 했

다. 그 중 나이 드신 선배가 상패 대신 슈

퍼마켓의 기프트카드로 달라고 하셨다. ‘

상패가 길이길이 남아서 좋은데 왜 한 번

사용하면 없어지는 것으로 달라고 하실

까?’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가 받으신 상패들은 종이가 아니라 태울

수도 없고 처치가 곤란했다. 후손들이 보

관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버려야 하는데,

결국은 무거운 쓰레기로 변해버려 쓰레기

통에 넣기도 버겁게 된다. 그래서 짐스러

운 상패보다는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

는 카드가 더 좋으셨던 것 같았다. 안타까

운 일이지만, 내게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물건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간직하고 있던

것들이 자식들에게는 의미가 없어서 결국

은 버려지고 소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마음은 좋지 않다.

아직은 하루가 바쁘고 여전히 일이 많

지만, 젊었을 때는 일이 너무 많아서 손오

공처럼 머리카락을 뽑아 변신술을 써서 ‘

내가 여러 명이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또한, 희망적인 미래가 있는 청소

년들이 잘 되어서 캐나다 사회를 이끌고

가는 한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

라는 마음에 오지랖도 많이 떨었다. 하지 만 이제는 너무 바쁘지 않게 살려고 노력 하고 오지랖도 조금만 부리려고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결국에는 늙어지고 외로워지겠

지만, 그런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

이지 않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나이들어

서는 젊어서 만들어 놓은 넓적다리 근육

으로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조 금이라도 젊었을 때 운동을 해야한다. 요 즘에는 휴대폰이나 휴대폰과 연결된 시계 에서 목표한 걸음 수가 넘으면 폭죽이 터

지고 난리이다. 그래서 시계나 휴대폰에 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도 목표한 걸음 수를 넘기려고 더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된 다.

이제부터는 이루어야 하는 큰 꿈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려 한다. 요즘

줄임말로 많이 사용하는 ‘소확행’(소소하 고 확실한 행복). 일상의 작은 기쁨들이 얼 마나 소중한지 실감한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친구와 나누는 진심 어

린 대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런 순 간들이 나에게 큰 행복을 안겨준다. 더 이

상 거창한 꿈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 히 여기며, 그 안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

나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에 대 해 공감하게 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변화 속에서 내가 무엇 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 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나이가 듦 에 따른 지혜와 여유를 가지고 일을 처리 하고 사람도 대한다면 유행가 가사처럼 ‘ 우린 늙어가는 것이

한낯의 햇살 아래 풀꽃 하나 피어 있다

눈길 한 번 받지 못해도 그 존재는 찬란하다

바람에 흔들리며 잠시 피었다 지는 운명 인생도 그러하더라

무상함 속에 피는 의미

늙음은 시드는게 아니라

익어가는 열매임을 풀꽃은 말없이 가르친다

빛바랜 잎에도 향기가 남는다

지나간 세월을 탓하지 말고

다가올 햇살을 기다리자

풀꽃은 오늘을 살며 내일의 빛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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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랑한 안동의 사위, 南北을 시원하게 달렸죠”

지난해 보수당에서 노동 당으로 14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는데, 새 내각은 크룩스 대사를 유임시키고

임기를 연장했다. 한국의 정치 격변과

불안정한 국제 정세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룩스 대사는 부인이 한국

인이고, 한국어 실력도 뛰어난 영국 최

고의 지한파다.

한일·한미 정상회담 등 ‘외교 수퍼

위크’를 맞아 핵심 우방국 대사이자 한

반도 전문가인 크룩스 대사를 만났다.

그는 “외교의 기본은 내 나라의 정체

성과 국익을 깊이 이해하는 애국심”

이라며 “어떤 상대를 만나든 그 토대

위에서 상호 이익과 협력을 꾀해야 한

다”고 말했다.

◇北 마지막 서방 대사, 세계의 평

양 특파원

-북한에 얼마나 있었습니까?

“대사 임기는 3년이었지만 실제 주

재한 건 1년 반이었습니다. 2020년 1월 부터 북한이

출신 아내와 30년 “한국은 제2의 고향” 을 봉쇄, 우리도 그해 5월 대사관을 임 시 폐쇄하고 철수해야 했거든요.” -대사관을 닫는다니, 외교관으로서 기 묘한 경험이었겠군요. “제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영국이 북한과 수교

한 지 20년밖에 안 된 때인데, 대사관 을 닫으면 자칫 또 단교(斷交)로 이어 질 수 있으니까요. 코로나가 터지자 북 한은 외국인들을 평양 외교관 지구에 묶어두고 본국에서 사람은 물론 생필 품과 편지조차 들여오지 못하게 했어

요. 우리는 5개월간 버티다 서방국 중 가장 늦게 철수했죠. 남겨질 비밀 문 서와 물품을 직원들과 함께 파기하느 라 몇 주가 걸렸고요. 비행기도 못 뜨 니 북쪽 국경까지 자동차로 흙길을 달 렸습니다.” -대사관은 다시 못 열었죠? “그렇습니다. 제 후임은 런던에서 근무 중이에요. 현재로선 제가 북한 땅 을 밟은 서방의 마지막 외교관일 겁니 다.” 크룩스 대사는 철수 직전까지 북한 전역을 다니며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

어에 공개해 화제가 됐다. 직접 평양

마라톤을 뛰고, 감금설이 돌던 ‘김정

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스시집

을 찾고, 김정은이 철거를 지시한 금강 산 해금강 호텔, 시골 학생들이 맨손으 로 밭 매는 풍경까지 가감 없이 올렸 다. 각국 언론이 그의 사진을 받아 보 도했다. -‘세계 언론의 평양 특파원’이란 별명 도 얻었지요. 혹시 북한이 문제 삼진 않았나요? “아뇨. 이례적이긴 해도 그 정도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북한을 궁금해하지요?

가장 많은 질문이 ‘한국과 어떻게 다르냐’는 겁니다.” -어떻게 답합니까. “남북의 차이는 극명해 설명할 것 도 없습니다. 오히려 미묘한 공통점을 포착하기 힘들죠. 속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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