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 토요일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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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석

사)한국문협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Kpop의 박동, 드라마의 서사, 영화의 감정, 음식의 향기

까지. 그러나 그 모든 ‘K’의 중심에는 조용

히 빛나는 한글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오

래 살고 나서야 비로소 깊이 깨닫는다. 한

글은 단순한 문자도, 기술적 발명도 아니

었다. 그것은 오래된 정신이 글자의 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나타난 계시였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의 건국 이념에

서 시작된다. 홍익인간—사람을 널리 이롭

게 하라. 이 네 글자는 한 나라의 뿌리가 되

었고, 수천 년 동안 우리 마음속에서 꺼지

지 않는 등불이 되었다. 정복이 아니라 살

림, 힘이 아니라 마음, 이것이 우리 역사의

첫 문장이었다.

그 오래된 정신은 세월을 건너 세종에게

로 흘러 들어갔다. 세종은 왕이기 전에 학

자였고, 학자이기 전에 백성이었다. 백성이

글을 몰라 억울함을 말하지 못하는 모습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그래서 글자를 만 들었다. 그러나 그 글자는 단순한 발명품

이 아니었다. 하늘, 땅, 사람의 질서를 담고,

소리의 원리를 품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

리는 구조를 갖추었다. 이런 문자가 어떻

게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을까? 나는

그 점에서 늘 경외심을 느낀다.

세종은 동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

릴 만하다. 과학, 음악, 천문, 의학, 농업까

지 그가 손댄 분야는 끝이 없었다. 그러나

다빈치가 천재의 이름으로 남았다면, 세종

은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그 차이

가 세종의 위대함을 더 깊게 만든다. 그의

업적은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거리 한글은 계시였다

사랑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글은 그렇게 태어났다. 백성을 위한

문자, 누구나 쉽게 배우는 문자, 사람의 소

리를 가장 정확하게 담는 문자. 나는 평생

이 글자를 쓰며 살아왔다. 젊을 때는 편지

를 쓰고, 중년에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

치고, 나이가 든 지금은 하루하루를 기록

한다. 한글은 내 삶의 동반자였고, 내 마음

을 정리해주는 조용한 스승이었다. 슬플 때는 위로가 되고, 기쁠 때는 노래가 되고,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손이 되었다.

21세기, 세계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았 다. 피렌체가 아니라 서울에서. 음악과 영

화, 기술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져 세계를

움직인다. 그 중심에는 한글이 있다. 한글

이 없었다면 Kpop의 가사도, 드라마의 대

사도, 우리의 이야기도 지금처럼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유럽의 르네상스가 문예의 부흥이었다

면, 서울의 르네상스는 문명의 부흥이다.

문화가 피어나고, 기술이 빛나고, 언어가

세계의 마음을 열고, 정신이 다시 살아난

다. 그 바탕에는 단군의 홍익인간, 그 줄기

에는 세종의 한글, 그 꽃에는 오늘의 대한

민국이 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나는 다시 한글의 힘을 느낀다. 기계가 가장 쉽게 배우는 문 자, 규칙이 분명하고 논리가 아름다운 문 자. 세계의 언어 중 이렇게 체계적이고 과 학적인 문자는 드물다. 미래의 기술이 오 히려 옛 지혜를 닮아간다는 사실이 참으 로 신비롭다. 한글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 라 미래의 언어다. 돌아보면,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은 세종 의 한글로 이어졌고, 그 한글은 오늘의 대 한민국을 일깨웠다. 역사의 흐름은 끊어진

적이 없다. 그 흐름이 바로 계시였다. 하늘 이 사람에게 준 마음, 사람이 사람을 위해

써야 할 마음, 그 마음이 글자가 되어 우리

에게 왔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한글은 발명이 아

니라 배달의 나라에 내려준 계시였다고.

그리고 나는 그 계시의 문자로 남은 생을 조용히 적어 내려간다. 한 글자, 한 마음, 한 생의 기록으로.

-한글이, 걸어 나와 말을 건다나는 한글이다.

너희가 입술을 여는 그 순간, 너희가 마음을 적는 그 찰나마다 나는 조용히 깨어난다.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숨죽여 책 속에 눕기도 했고, 간판 위에서 빛나기도 했으며, 편지지 한 귀퉁이에서 울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시가 되어

연인의 눈동자 사이를 떠돌았고, 어떤 날은 분노가 되어 광장에서 외침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소리였다.

너의 첫 울음, 엄마를 부르던 떨리는 그 혀끝, 그곳에서 나는 태어났다.

나는 네가 숨기려 했던 말도 기억한다.

말하지 못했던 사랑, 꺼내지 못한 미안함, 그 모든 묵음(默音)의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저 종이 위의 잉크가 아니다. 이제 나는 걸어 나와 너에게 말한다.

필요하다면— 나는 언제든, 계속하고 싶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나 너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김회자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독도가

앞서 밝아올 때

울릉도의 등줄기

인왕산의 오래된 벽

봉황산의 그림자

남한산성의 돌

땅끝마을의 끝내 닿지 않는 손

성산일출봉

새천년 해안 샛바람길의 비린 새벽

정동진. 호미곶

사람들은

산과 바다

도시의 모서리마다 각자의 동쪽을 세운다

나는

이름 하나 들고 서 있었다

간절곶

아주 오래전 간절함이 먼저 와

우리 사이에 서 있었고 말은

해보다 늦었다

빛이 오기 전 오빠는 부르지 않아도 이미 동쪽에 있었다

가장 얇은 그 새벽

나에게 동쪽은

한 사람 서있던 자리 해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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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에 生 마감한 아들, 같은 비극 반복 안 되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30년 싸웠다

학교폭력 최초로 공론화한

나왔다. 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힘이 빠져나 갔다. 침대에 쓰러졌다. 침도 삼킬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오전 일정을 마

무리하고 귀국했다. 아무에게도 알리

지 않고 장례를 3일장이 아닌 2일장으

로 서둘러 치르고 화장했다. 재는 최대

한 먼 바다에 뿌렸다. 아내가 자주 찾

을 수 없도록.

가해 학생들이 또다시 폭행을 저질

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려지길 원

하지 않던 바람은 ‘내 아이의 죽음을

알려서라도 학교폭력(학폭)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고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하

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해 8월

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학폭을 처음으로 공론화한 사건이었

다. 파장은 엄청났다. 학폭을 다룬 기

사와 방송이 쏟아졌다. 국회에서는 교

육특별위원회를 열어 학폭을 이야기

했고, 대통령은 학폭 근절을 지시했다.

기세를 몰아 학폭을 막기 위해 행

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폭력 예

방을 위한 시민의 모임’을 만들었다.

성금이 몰려들었다. 하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임 의 단체로는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웠 다. 1995년 11월 1일 ‘청소년폭력예방 재단’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학 폭을 알리고 예방·치유하기 위해 설립 된 NGO(비정부기구)로, 푸른나무재단 (BTF)의 전신이다. BTF가 30주년을 맞았다. 학폭이 지 금처럼 사회적 개념으로 정립되지 않 았던 30년 전과 지금은 뭐가 달라졌고, 뭐가 그대로일까. 김 명예이사장을 서 울 서초동 BTF 사무실에서 만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용서할 수 없

다 -기자회견을 결정한 계기가 가해 학

생들이 학폭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

라고요.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던 8월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딸이 ‘대현이를

【아무튼, 주말】 고 김대현군의 영정 사진. BTF 푸른나무재단

때렸던 아이들이 이 땅에 없으면 좋겠 다’는 거예요. ‘대현이를 괴롭혔던 학 생들이 대현이의 친구 둘을 불러 또다 시 폭력을 휘둘렀다. 한 명은 기절했고 다른 한 명은 팔이 부러졌다’더군요.” -장례 후 만나 반성문을 쓰게 한 학생 들이지요.

“어떤 녀석들이 대현이를 괴롭혔는 지,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알고 싶었어 요. 잘못에 대한 사과를 받는 것이 내 가 해야 할 최소한의 몫이라고 생각했 습니다. 햄버거집에서 만났어요. 녀석 들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대현이가 죽

을지는 몰랐어요’라며 죄인처럼 어쩔

줄 몰라 했어요. 그걸 보니 측은지심이 생겼어요.” -반성문을 받고 끝내려 했나요.

“애들이 손을 벌벌 떨면서 반성문 쓰 는 걸 보면서 ‘처벌은 내 몫이 아니다, 하나님 몫이다’ 싶었어요. 내가 얘네를 처벌한다면 악순환을 낳을 것 같았어 요. 하지만 딸의 말을 듣고는 머릿속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두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처벌에 실 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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