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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고난주간 묵상노트 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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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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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처럼 보입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침묵과 어둠, 배신과 고통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

주간은 모든 것이 닫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시간

한가운데서 오히려 소망을 배우라 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래를 여실 것이라는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여기서 소망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소망이라면, 이미 소유한 것이지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적 소망은 언제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고난주간은 소망의 학교가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은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보았던 것은 실패처럼 보이는 죽음, 모든 기대가 무너진

현재였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그들의 기대와 너무 달랐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이 보지 못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미래를 열고 계셨다고.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시는 새로운 시작의 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소망은 고난 이후에 덧붙여지는 위로가

아닙니다. 소망은 고난 속에서 자라납니다. 로마서 8장은

탄식하는 피조물과 신자들의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신음하고 기다리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한가운데서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소망은 고난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하나님의 미래 안에 위치시킵니다.

고난주간에 우리가 배우는 소망은 그래서 조용합니다.

이는 큰 소리로 외쳐지지 않습니다. 부활의 환호는 아직

이릅니다. 그러나 이 조용함 속에서 신앙은 중요한 진리를 배웁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언제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속도와

인내를 동반합니다. 기다림은 소망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종종 소망을 성급히 확인하려는 데 있습니다. ‘희망 고문’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언제 바꾸실지, 어떤 모습으로 응답하실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소망은 보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신뢰로 기다릴 뿐입니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토요일의 침묵 속에서,

신앙은 흔들립니다. 그러나 바로 그 침묵의 시간은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준비가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소망은 이 침묵을 견디는 힘입니다.

소망은 또한 우리를 현재로부터 도피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성경적 소망은 현실을 견디게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난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붙들게 합니다. 그래서 소망은 현실 감각이 없는

낙관이 아니라, 현실을 끝까지 살아내게 하는 믿음의 힘입니다.

고난주간의 소망은 부활절을 미리 앞당겨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여실 미래를 신뢰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오늘의 눈물, 오늘의 침묵, 오늘의 기다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나는 아직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보고 계신다고.

소망은 우리가 여는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여시는

미래를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그 미래는 십자가를 통과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고난주간의 소망은 값싸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무게 속에서, 소망은 가장 깊고

단단해집니다. 1. 고난주간에

주님,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이 여시는 미래를

신뢰하게 하소서. 서두르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기다림

속에서 소망을 배우게 하시고, 오늘의 고난을 주의 약속 안에

맡기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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