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토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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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많은 도심 속 수도원

폴라이 (Monai Pollai)’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는다. 홀로 있어도 외롭

지 않고 안전하다 느끼는 공간이 필요하다. 혹은 소

수의 결이 맞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을 그린

다. 그곳에서 숨을 고르고 생각을 모으고 마음을 안

아주는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 ‘모나이 폴라이’를 처음 방문한건 지난 겨울이었

다. ‘대림절 예술 묵상 피정’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공간.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라

는 예수의 말 따라 지친 이들에게 쉼과 휴식을 주

는 공간이 되고자 시작한 곳. ‘모나이 폴라이’는 헬

라어로 ‘많은 방’이란 뜻이다. 의미를 생각하며 ‘모나

이 플라이’라고 가만히 불러보니 마음이 평온해진

다. 이곳에는 나를 위한 방이 있을 거라는 안도가 든

다. 단어가 가진 고유한 힘에 기대어본다.

공간은 소유한 사람의 궤적을 볼 수 있다. 사적 인 공간이 개인의 세계를 넘어서 타인으로 향할 때

그 의미가 깊어지고 넓어진다. 타인을 위해 공간을 나누며 넘치도록 풍성한 환대를 꿈꾸는 사람은 어 떤 사람일까. ‘모나이 폴라이’를 꾸려나가는 백지윤

작가는 번역가이다. 한국에서 미술이론과 캐나다에 서 기독교 문화학을 공부한 그는 교회와 현대미술

의 접점을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길을 모색한다.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 종말론

적 긴장, 창조와 새창조, 인간의 의미 그리고 이 모

든 주제에 대한 문화와 예술이 갖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 일을 하고 있다. 교회 중심의 신앙의 틀 을 벗어나 예술의 자유로운 창조 활동과 정신이 신

앙과 연결되고, 세상과 하나님의 신비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길 꿈꾼다.

‘환대’라는 말을 늘 품고 있어서 어디든 자리를 잡 으면 이웃을 불러 먹고 나누며 살려 하지만 내 예민 한 기질이 종종 방해가 되곤 한다. 이미 ‘친구들의

방’까지 정갈하게 꾸며 놓은 ‘모나이 폴라이’에서 백 작가님의 따뜻한 기운을 받았다. ‘모나이 폴라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친구들의 방’이 손님을 맞이한

다. 번역가, 작가, 출판 편집인들이 머물며 일도 하고

쉼도 얻을 수 있도록 마련된 게스트룸이다. 번역가

로서 고된 작업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잘 알기에 동

료들의 쉼과 재충전을 위한 번역가 레지던시를 꿈

꾸며 시작된 곳이다. 작업실과 침실이 구별되어 있

어 집중해서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다. 분주한

생활 가운데서 조용히 쉼과 묵상을 누릴 수 있는 도

심속 수도원이다.

커다란 거실에 들어서자 전시회가 펼쳐졌다. 대

림절 그림 연작을 보고 묵상을 읽을 수 있는 열두개

의 스테이션이 마련되어 있다. 내가 믿고 기다리는

예수가 누구인지 천천히 일러주는 시간, 내 예민함, 고집과 싸우기보다는 성육신하여 우리에게 자신을

보인 예수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딱딱해진 마음에

평화가 노글노글 스며들었다.

정현종 시인은 방이 많은 집 하나 짓는 일이 꿈

이라 했다.

그래 이 세상의 떠돌이와 건달들을 먹이고 재우

고,/이쁜 일탈자들과 이쁜 죄수들,/거꾸로 걸어다니 는 사람과 서서 자는 사람,/눈감고 보는 사람과 온몸 으로 듣는 사람,/끌어안을 때는 팔이 엿가락처럼 늘

어나는 사람,/발에 지평선을 감고 다니는 사람,/자 동차 운전 못 하는 사람,/원시주의자들,/말더듬이,/ 굼벵이,/우두커니,/하여간 그런 그악스럽지 못한 사 람들을 먹이고 재우게 방이 많은 집 하나 짓는 일이 야./아냐, 호텔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며 /병원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야./ (정현종, ‘한그루 나무와도 같은 꿈이’ 중에서) 지난 여름 방문한 청파교회

곳’인 ‘모나이 폴라 이’의 따뜻한 환대는 누군가의 우울과 낙심을 이겨 낼 묘약이 될것이다. 통창 밖 녹음과 집안 곳곳에서 새어

은 천장까지 닿았다 우리 주위를 돌며 반짝인다. 벽 난로 앞에 모여 앉아 이방인의 외로운 삶에서 ‘모나 이 폴라이’가 주는 다정한 의미를 세어본다. 서로를 환대하고 환대받은 경험은 우리를 소망으로 이끈 다. 그 소망은 깊고 온전하고

산 (10)

대로 색채를 내 뺏는다

산은 인간의 세상에서 통제할 수 없는 시계의 마술상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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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 상판 50여m가 갑자기 내려앉으 면서 다리를 지나던 서울5사8909 한

성운수 16번 시내버스 등 차량 6대가

20여m 아래로 추락했다.”(조선일보

1994년 10월 22일 자 1면)

스무 살이던 이승영씨는 그 16번 시

내버스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서

울교대 국어교육과 3학년. 강북의 초

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간 지 닷새 만

에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참척(慘

慽)의 슬픔 속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어머니 김영순(74·당시 44세)씨는 승

영씨가 남긴 일기장을 발견했다. ‘내가

일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라며 14가지

소원을 적어 놓았다.

“100명 이상에게 전도한다. 장학금

제도를 만든다. 강원도에 이동 도서관

을 만든다. 한 명 이상 입양한다. 단기

선교사로 떠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1994년 10월 21일 출근 중 버스에서 사망한 승영씨가 남긴 소원 14개 유족이 30년간 실천

“애미가 모두 이뤄주마”

시신은 고려대 의대 기증

보상금 2.5억원 전액 기부 장학회 출범, 200명 지원

동생은 아이 둘 입양 “10년간 기저귀 갈았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바로바로 사랑을 실천

뭔가를 한다….” 군인이던 남편과 사 별한 지 11개월 만에 딸마저 황망하

게 잃었지만, 승영씨의 일기장을 본

김씨는 단박에 그 시련을 받아들였 다. 지난 14일 성수대교 남단에서 만 난 아들 이상엽(48)씨는 “누나는 사

랑 자체가 삶의 목적이 돼야 한다는 걸 일찍이 실천한 사람이었다”고 술 회했다. 어머니는 딸의 시신을 고려대 의대 에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죽으 면 장기(臟器)를 남에게 주겠다”는 딸 의 약속을 절반만큼이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모자(母子) 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승영씨 대신 일기장에 적힌 소원을 하나씩 이 뤄 나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상엽씨는 결혼 후 누나의 뜻을 이어 두 아이를 입양했다. 오는 21일은 성수대교 붕괴 30주기. 승영씨의 소원은 대부분 현실 이 돼 있었다.

◇보상금 전액 기부, 승영장학회 출범 1994년은 한국 방문의 해였다. 김

일성이 사망하고 기록적 폭염을 겪 고 ‘지존파’가 검거된 그해에 한국 사 회는 성수대교 붕괴를 목격했다. 우 리가 믿던 세계가 무너졌다. 균열 등 여러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상판만 땜질했다가 벌어진 이 참담한 사고 를 계기로 한강의 모든 다리 정밀 안 전 검사를 했다. -사고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저는 고3이었습니다. 카이스트 입시를 이틀 앞둔 날 아침에 그런 사 고가 났다길래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합격했지만, 입학 후 방황이 시작됐 다. “주변의 관심이 너무 부담스러웠 습니다. 누나와 사이가 좋았거든요. 그 렇게 착하고 의욕이 넘치던 사람을 한 순간에 앗아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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