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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복음서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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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by Joshua W. Jipp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Reading the Gospels as Christian Scripture: A Literary, Canonical, and Theological Introduction by Baker Academic, A divi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P.O. Box 6287, Grand Rapids, MI 49516, U. S. A.

All rights reserved.

Used and translated by the permis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 2026 by The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를 통하여 Baker Publishing Group 과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복음서 개론

발행일 2026년 4월 10일

지은이 조슈아 지프

옮긴이 강대훈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6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7540-056-6 (94230)

979-11-7540-055-9 (94230) (세트)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목차

┃ 서문 6 ┃

글 8

10

나사렛

1장

3장

4장

3부 복음서 읽기 121

8장

9장

10장 마태복음과 서사 (2) 140

11장 마태복음과 제자도 157

12장 마가복음과 역사 169

13장 마가복음과 서사 (1) 177

14장 마가복음과 서사 (2) 187

15장 마가복음과 제자도 211

16장 누가복음과 역사 221

17장 누가복음과 서사 (1) 230

18장 누가복음과 서사 (2) 239

19장 누가복음과 제자도 263

20장 요한복음과 역사 277

21장 요한복음과 서사 (1) 287

22장 요한복음과 서사 (2) 297

23장 요한복음과 제자도 322

┃ 미주 331

┃ 색인 360

기독교는 예수라는 인물에 중심을 둔다. 이 주장은 매우 당연해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신실하게 달고 살아가려 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를 더 깊이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해

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필수적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계시 행위를 증언한다. 특히 복음서는 기독교 정경 안에서 독특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는

복음서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목적의 절정인 나사렛 예수에 대한 네 가지 기록을 우리에

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나머지 신약 저술의 기본이 되는 이야기들을 보여 주며, 구약에서 발견되는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으로 자리하고 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교

회가 주의 기도로 기도하며(마 6:9-13; 눅 11:2-4), 성찬을 거행하며(눅 22:14-30), 세례

를 베푸는(마 3:13-17) 전통의 기원과 이유를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

랑이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언급하는 근거를 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다(마 22:24-30).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본다. 예수의 삶과 성품은 구원하는 주와 메시아로 고

백하는 제자들뿐 아니라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제자들 모두를 위한 본이다(고전

8:11-13; 11:1; 벧전 2:21-25). 그러나 복음서는 예수를 우리가 배우기에 중요한 1세기

인물로만 제시하지 않는다. 복음서는 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으로서 살

아 계신다고 선포한다.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께서 요한이 말하는 보혜사인 성령을 통해

여전히 세상과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심을 선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서를 읽으

면서 과거, 즉 하나님이 예수라는 인물을 통해 행하신 일에 대해 배우기 위해 복음서를 읽

을 수 있다. 동시에 이 예수께서 살아 계시며 세상과 교회 안에서 강력하게 활동하고 계심

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를 찾고 복음서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를 만날 때, 우리 삶

자체,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성품이 질문을 받게 된다. 나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이 고 생명을 주는 본문들과 교감하게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기를 소망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역사적인 질문들에 초점을 맞춘다. 복음서는 어떤 종류의 본문인가? 왜 “복음서”라고 불리는가? 복음서는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복음서는

왜 네 권인가? 나는 독자들이 이런 역사적 질문들을 신중히 살펴봄으로써 예수에 대한 네 가지 생애를 읽는 기쁨과 도전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2부는 복음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복음서를 바르게 읽는 데 중

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 큰 주제 또는 탐구 영역(역사, 서사, 신학/제자도)에 초점을 맞 춘다. 복음서를 잘 읽으려면 다음 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 (1) 이 본문들은 2천 년 전의

내용이므로 고대 역사의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식이 필요하다. (2) 복음서는 문학적 서사이므로 이야기를 잘 읽는 방법(배경, 인물 묘사, 플롯, 상호본문성)을 어떻게 고려할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복음서는 독자들을 살아 계신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따르도 록 요청한다. 다시 말해, 복음서는 독자들이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 되고 특정한 삶의 방식 을 살도록 설득하는 데 깊은 관심을 보인다.

3부에서는 역사, 서사, 제자도라는 세 가지 제목 아래 네 복음서 각각을 비교적 깊이 다 룬다. 모든 단락을 다루는 식의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하지는 않지만, 각 복음서의 주요한 특징과 주제를 제시하겠다.

www.bakeracademic.com/professors에서 이 교재에 대한 학습 보조 자료와 강사 자료를 확인 바랍니다.

예수는 누구신가? 이 질문에 답하고 그리스도의 지혜와 가르침을 접하기 위해 수 천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으로 시선을 돌

렸다. 열정이 있는 복음서 독자들은 지혜와 영적 성장을 원할 때나 그리스도를 경배할 때

복음서의 풍성한 내용을 연구하고 숙고하는 데 기꺼이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인 3부에서 복음서가 어떻게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지혜와 제자도와 선지자적

증언과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로 이끄는지 살펴보기 위해 복음서의 풍부한 신학적・문학적

결을 탐구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거의 모든 독자는 잠시 멈추어 복음서 본문의

본질, 기원, 목적에 대해 질문을 던질 것이다. 왜 복음서는 하나가 아니라 네 개인가? 왜 도

마복음과 같은 다른 복음서는 제외되고 네 복음서만 선택되었는가? 왜 복음서들은 서로

매우 비슷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다른가? 복음서는 역사적으로 정확한가? 예를

들어, 내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셨다.

다른 복음서들이 예수에 대해 기록했다면 왜 그 책들은 우리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지?

왜 우리 교회 목사님은 요한복음 연속 설교를 전할 때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의 이야

기(요 7:53-8:11)를 건너뛰셨지?

누가복음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한 명만 나오는데 마태복음에는 왜 두 명이 나오지?

우리는 복음서가 역사적으로 정확함을 어떻게 알 수 있지?

더 많은 질문을 추가할 수 있고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질문을 추가하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본질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다. 복음서는 어떤 종류의 책인가? 복음서는 어디에서 왔

는가?

우리는 어떻게 복음서를 읽어야 하는가?

복음서는 무엇인가

복음서는 왜 “복음”으로 불리는가

신약의 첫 네 권의 책이 단순히 저자들의 이름(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딴 것이 아

니라, “마태(마가, 누가, 요한)에 따른 복음”으로 불린다는 사실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

니다. 이 사도들(또는 동료들)과의 관련성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이 책들이 “복음들”(Gospels)로 불리게 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1세기의

교육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역사, 극적 비극, 서신, 철학 논문과 철학 대화, 전기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 익숙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문학 본문의 장르 분류에서 “복음”이라는

장르에는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AD 처음 몇백 년이 지난 후에는 네 개의 정경

복음뿐 아니라 도마복음, 히브리인들의 복음, 마리아 복음과 같은 외경 복음서와 같이 “복

음”이라는 제목의 문헌이 급증했다. 왜 예수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를 “복음”이라고 불렀 을까?

이사야서에 나타난 복음

첫째, “복음”이라는 단어가 일차적으로 구약에서 왔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소식”(복수형)이라는 단어가 카이사르의 생일이나 제국 고관대작의 방문과 같은 로마 제 국의 중요한 사건들을 언급할 때 자주 사용된 것은 맞지만, 복음의 일차적 문맥은 정경의

이사야서다. 이사야서에서 “좋은 소식”이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하신 약속에 신실하 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셨음을 알리는 선포다. 이사야 40장 1-11절에서

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40:9). 예언의 신탁 전체에서 강조점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한 구두 선포, 즉 선언이다.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왕권이 실현되는 것은 참으로 좋

은 소식이다. 하나님의 왕권은 구원, 해방, 평화, 땅의 회복, 하나님 영의 부어짐, 압제를 받

는 자들을 위한 공의와 자유를 선사하기 때문이다(사 40:1-11; 52:7-12; 61:1-4).1 이사

야서에서 “복음”의 신탁은 40-66장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며, 백성의 죄로 인한 이스라엘

의 유배와 심판 상황을 전제로 한다(참고. 40:1-2). 따라서 이사야서에서 “복음”의 신탁들

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사람들)이 위로와 평화와 우주적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이런 복음의 신탁을 다음과 같이 유용하게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에 새로운 장이 펼쳐지려 하고 있으며, 오래전 영광스러운 왕의 임재가 다

시 온 세상에 나타나며, 하나님은 강하고도 따뜻한 왕으로서 그의 양 떼를 구원하실 것

이다.”2 1.1

선포된 복음과 메시아 예수

둘째, “복음” 또는 “좋은 소식”(명사 ‘유앙겔리온’, 동사 ‘유앙겔리조’)이라는 단어가 복

부록 1 . 1

이사야의 복음

•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

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

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 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9-11).

•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 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

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7, 10).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

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

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 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 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 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 시고”(사 61:1-3a).

음서가 기록되기 전 가장 이른 시

기의 기독교에는 이미 있었고 메시

아 예수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그를

통해 인간이 구원받게 된다는 좋은

소식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

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그의

설교를 요약할 때 “하나님의 복음”

과 “그리스도의 복음”과 같은 명칭

을 일관되게 사용한다(롬 1:1, 9; 15:16; 고전 9:12; 고후 4:4; 9:13;

갈 1:7; 빌 1:27; 살전 2:2, 8, 9; 3:2; 살후 1:8; 딤전 1:1). 바울 서

신에서 복음은 나사렛 예수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셨음을 알리는 그의 선포, 즉 구

두 선언을 일관되게 나타낸다.

일부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내

용을 짧게, 신조와 같이 요약한다.

로마서 1장 1-5절, 고린도전서 15장 1-5절, 디모데후서 2장 8-13절과 함께 빌립보서

2장 6-11절과 갈라디아서 4장 4-7절을 보면, 우리는 복음의 중심이 하나님의 메시아인

예수의 특별한 정체와 서사에 있음을 알 수 있다.3 1.2

바울은 일관되게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이스라엘 성경의 틀 안에서 서술

한다.4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나님 백성을 다스릴 메시아를 후손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하셨

으며, 이 약속은 로마서 1장 1-5절의 배경이다(삼하 7:12-14; 시 2:6-8).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대로” 이루어졌음을 명시적으로 주장한다(고전 15:3b, 4). 바울은 빌

립보서 2장 10-11절에서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받기

에 합당한 분으로 선언하는데,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배경으로

한다(참고. 사 45:23). 따라서 하나

님의 복음은 성경의 약속에 대한 하

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기쁜 소식

에 중심을 둔다. 성경은 다윗 계통

의, 메시아적 하나님의 아들을 보낼

것을 약속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성

육신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

활하셨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

셨다.

복음과 구원

그러나 우리는 이 복음의 세 번째

명확한 측면을 주목해야 하는데, 하

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

을 구원하시는 수단이므로 그 복음

의 선포는 기쁜 소식이다. 이사야의

신탁들도 그렇게 말했다. 바울은 복

음의 의미(롬 1:1-4)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

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1. 메시아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다윗 계통의 메시 아시다(롬 1:3-4; 갈 4:4-6; 딤전 2:8).

2. 성육신 선재한 아들, 하나님의 본체이신 아들은 성육신하셨고 실제 인간의 몸을 취하셨다(롬 1:3; 갈 4:4-6; 빌 2:6-7).

3. 고난과 죽음 메시아 예수는 순종과 섬김의 생애를 사셨으며, 그의 생애는 인류의 죄를 위한 십자가의 죽음에서 절정에 이 르렀다(고전 15:3; 빌 2:8).

4. 부활과 좌정하심.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 셨고 유일하신 왕과 주의 권능을 부여하셨다 메시아의 부활 과 좌정하심은 성령을 통해 일어났으므로, 부활의 메시아는 이 제 성령을 자기 백성에게 주실 수 있다(롬 1:4; 빌 2:9-11; 고전 15:4-5).

5. 온 세상을 위한 선교와 반응의 촉구.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사 람, 유대인과 이방인 둘 다를 위한 좋은 소식이다 그래서 바 울의 선교는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는 것이 다(롬 1:5).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셨다는 선언은 온 세상이 예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빌 2:10-11). 그러므로 바울의 복음 선포는 일관되게 믿음, 고백, 회개, 변화된 삶의 반응을 촉구한다(롬 1:16-17).

이 다섯 가지 요점은 모든 본문에 나타나는 공식은 아니지만, 바울 이 복음에 대해 말할 때 강조하는 주요 특징에 해당한다 우리는 복 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신약의 서신서 전체에서 ‘복음’ 은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 계통의 왕을 의미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술 선포 를 말한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예수께 서 자신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것, 하나님의 통치 를 실현하시러 장차 다시 오신다는 약속, 반응으로서 회개와 믿음 의 촉구에 대한 구술 선포다.” a 여기서도 우리는 기록된 복음은 중 요한 전환을 보여 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데, 구술 선포를 설명 하기 위해 사용되던 “복음”에서 예수를 기록한 책을 위해 사용되는 “복음”으로 전환된다.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 부록 1 . 2 바울 서신의 복음

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이 죄를 위한 속죄를 베풂을 드러낸다(고전 15:3-4). 복음은 그리스도에게 속

한 자들이 예수와 함께 살고 다스리고 영원한 영광을 나누게 될 것을 보증한다(딤후 2:1013). 1.3

복음을 선포하고 구현하는 메시아 예수

이제 복음의 네 번째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네 번째 측면은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

이 예수의 사역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복음”이라는 용어의 중요성이다. 바울 서신과 신약

의 다른 서신들은 네 복음서보다 먼저 기록되었으나, 우리는 정경의 네 복음서가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를 서술하고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요약하기 위해 이 용어를 자주 사용함

을 볼 수 있다. 바울이 복음을 강조한 것은 나사렛 예수께서 독특하고 기억하기에 좋게 사

용하신 이 단어에 근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네 복음서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작성된 마가복음은 책의 제목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마가복음의 프롤로그는 행동으로 가득 찬 예수

이야기의 서론으로서 복음의 내용으로 시작하고(1:1) 끝맺는다(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1:14-15). 마가복음의 프롤로

그에서 우리는 이사야가 예언한 신탁의 성취(1:2-3), 믿음과 회개의 촉구(1:4-5, 15), 강

력한 성령의 임재(1:8, 12),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순종하

고 성령의 능력을 받는 장면(1:9-13)처럼 익숙한 요소들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에서 내

레이터는 “천국 복음”을 전하는 예수에 대한

부록 1 .3

『예수 왕의 복음』

스캇 맥나이트는 자신의 책 『예수 왕의 복음』에서 복

음은 단순히 죄 사함이나 이신칭의와 동일시되어서

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신약의 복음에는 네 가지 중

요한 측면이 있다 첫째, 복음은 이스라엘 이야기로

구성된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하나님 백성

의 이야기를 절정으로 이끈다 둘째, 복음은 예수의

주권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는 고난을 받고 구원하

고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예수는 메시아, 주, 다윗 계통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

의 우편으로 높여지셨다.” b 셋째, 복음은 사람들이 왕

이신 예수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초대하는 것

을 포함한다 넷째, 복음은 구원과 구속을 선사한다

중요한 두 번의 설명을 전략적으로 배열 한다(마 4:23; 9:35). (북엔드 또는 괄호 모양 의) 수미상관 구성은 마태복음 5-9장을 한 묶

음으로 묶는 역할을 하며, 따라서 복음을 예수

의 가르침 단락(5-7장)과 치유, 귀신 쫓음, 식

사 교제에 나타나는 긍휼과 동정(8-9장)과 연

결한다. “복음”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끝나

는 마가복음의 서론처럼 마태복음도 예수의

가르침(5-7장)과 행위(8-9장)를 하늘나라 복 음의 내용으로 감싸고 있으며, 이런 구조는 나

정하는 역할을 한다. 마태가 이사야의 예언 신탁, 특히 이사야 61장에 근거해 예수의 사역 을 소개하고 요약하는 점을 주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

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

는 것은 “하나님이 악을 물리치시고 의를 세우시기 위해 권능으로 오셔서 약속을 성취하시

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성품에 따라 살게 하기 위함이다.”5

누가복음에서 저자는 천사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소식을 전하고(눅 1:19), 천사가

목자들에게 소식을 전하고(2:10), 세례 요한이 백성에게 권면하고 회개를 요구할

때(3:18) “복음을 전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누가의 탄생 서사는 나사렛 예수께서 자 기 백성을 구원하고 구출하시기 위해 온 기름 부음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혈통

에서 태어나신 아들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고향 나사렛의 회당에서

전한 첫 번째 설교에 예수의 복음 선포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4:16-30). 여기서 예

수는 이사야 61장(및 사 58장의 한 문구)의 말씀을 인용하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

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 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이후 우리는 본문의 이야기가

누가복음의 계획을 미리 보여 주는 역할을 함을 보게 될 것이다. 본문은 예수의 사역에 나

타나는 주요 주제 가운데 많은 주제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누가복음

에 나타난 예수의 첫 번째 공적인 말씀이 예수를 하나님의 메시아적 대리자, 즉 구약의 약

속을 성취하기 위해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을 계시하고 실행할 대리자로 묘사하 고 있음을 주목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그다음 누가는 서사 전체에서 예수를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대리자로 요약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한다(예. 4:43; 7:22; 8:1; 9:6). 누가복음에서 “복음을 전하다”라는 단어는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시는 예 수의 사역 전체를 요약하는 역할을 하며, 예수는 자기 백성에게 해방, 자유, 긍휼을 선사하 신다.

우리는 신약 정경의 처음 네 책을 지칭하는 “복음”이라는 구체적인 단어에 대단히 중요 한 의미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네 책을 “복음”으로 부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 한다.

1. 복음의 원형은 이스라엘의 성경, 특히 이사야서에 있으며, 예수는 자기 백성을 회 복하고 치유하고 목양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시작하는 메시아로 묘사된다.

2. 신약 서신들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메시아로 예수

를 알리는 구전 선포를 설명하기 위해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성육신하시 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신실하게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해 하나님의 오른 편에 승귀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를 언급할 때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이미 “복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3. 메시아 예수(성육신, 생애, 죽음, 부활)는 인간의 구원과 동일시된다. 예수의 생애 는 인간의 유일한 소망이므로 정확히 “좋은 소식”이다.

4. 복음서에서 예수는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자주 연결되어 기억되

는 분으로 묘사된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은 복음을 그 자체로는 사실임에도 예수의 생애와 이야기를 완전히 담

아내기에는 불충분한 것으로 너무 쉽게 축소해 버린다. 예를 들어, 복음은 칭의 또는 구원

이 아니다. 복음은 “예수의 구원 이야기(그의 생애, 죽음, 부활, 높여짐, 재림)를 이스라엘

이야기의 완성으로 서술한 것”이다.6 복음은 어떤 개념, 철학, 더 나은 삶을 위한 계획이 아

니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의 생애를 통해 우주와 인류를 회복하기 위해 시공간 속에서 행

하신 이야기다. 우리는 정경 복음서를 읽을 때 복음은 바로 메시아 예수의 좋은 소식이고

우리를 구원하는 근거가

“복음”이라는 제목이 네 권의 책에 매우 중요하다면 저자들이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아

니면 후대에 이런 제목이 붙여졌는지 검토할 가치가 있다. 책 제목은 흔히 독자들이 읽을

책을 고를 때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빠르고 간결하게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제목이 책의 내용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설명하며, 때로는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얼핏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우리가 공부하는 저술의 제목은 책의 본문이 어

떤 흐름이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복음서는 각각 “X에 따른 복음”이라는 명문 또는 제목을 담고 있다. 실제 본문에서 저자

는 저자 정보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이는 서신서가 바울, 베드로, 야고보와 그 외

저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명확히 알리는 것과는 다르다. 누가복음은 프롤로그에서

데오빌로를 수신자를 언급하면서도(눅 1:1-4) 저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저자를

름을 후대에 추가했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X에 따른 복음”은 후대에, 아마도

네 복음서가 함께 순환되기 시작했거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약

해진 2세기 초엽에 붙여졌다. 요한복음에는 (명사형이든 동사형이든) “복음”이라는 용 어가 나오지 않는데, 이는 저자가 저술 제목을 “요한복음”으로 붙였을 가능성이 낮음을 의

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서의 본문에 나타나는 익명성은 주인공인 나사렛 예수에 온전

히 집중하려는 겸손한 태도를 반영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적어도 네 복음서가 순환되던 때부 터 제목들이 원래 정해져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7 복음서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술에 명칭이나 제목을 붙였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의 책”(마 1:1), 마가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막 1:1), 누가복음에는 “내

력”(눅 1:1-4)과 같은 명칭을 사용했을 것이다.8 요한은 자신의 저술을 ‘비블리온’, “책”으

로 언급한다(요 20:30).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집필된 복음서라면, 우리가 곧 보게 될 것처

럼 이렇게 생각하는 합당한 근거가 충분하다면, 마가복음의 첫 구절, “예수 그리스도의 복

음의 시작”(막 1:1)이 다른 복음서들이 저술되고 순환될 때 책들의 표제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마가가 자신의 책에 구체적으로 “복음”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더라도 첫 구절 은 자신의 책(과 다른 세 권의 정경 복음서)을 복음으로 분류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적어 도 AD 2세기 중엽에 네 책은 복음으로 언급되었다(예. 클레멘스2서, 디다케, 순교자 유스 티누스).

따라서 “X에 따른 복음”이라는 제목이 각 복음서가 순환되던 시기에 이미 있었을 가능성

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이른 시기의 사본들에서 네 복음서의 순서

는 다양하지만, 같은 복음서에 이중 제목 또는 여러 제목을 제시하는 후대의 설명은 없다.

저자들과 제목들을 (전적으로 일관되게) 명시적으로 명명하는 2세기 문헌은 많다.9 만약

복음서들이 일정 기간 익명으로 순환되었다면 같은 복음서가 두 개 이상의 제목으로 분류

된 증거가 적어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2세기와 3세기의 후대 증거는 제목의 일관성을 공

통으로 입증하며, 이는 복음서들이 처음부터 각자의 제목으로 순환되었음을 의미한다.10

둘째, 고대 세계에서는 책이 익명으로 순환된 경우는 대단히 드물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에게는 예수를 기록한 책을 식별하는 이름이나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셋째, 누가복음과 관련해 특정 개인(데오빌로)에게 헌정된 책이 누가의 이름을 담은 제목도 없이 순환되었 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넷째, 복음서가 익명 문헌으로 시작되었다면 왜 이후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특정 개인의 이름이 붙여졌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이들 가운 데 마태와 요한의 이름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더 명백하고 더 권위 있는 사도들을 증인으로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섯째, 마태와 누가가 복음서의 출처로 마가복음을

사용했다면 마가복음의 저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용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네 복음서는 각각 일관되게 “X에 따른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제목

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은 네 복음서가 저술되고 순환되던 시기에 이미 전통적 이름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복음서는 어떤 종류의 책인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의 분류에 따라 책을 읽을 때의 규칙과

기대가 다름을 직관적으로 인식한다. 문학적 분류 또는 장르는 내가 읽는 것을 해석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방

식으로 「시카고 트리뷴」을 읽지는 않는다. 나는

요한복음에 대한 21세기 연구 자료를 요한복음

을 읽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읽지는 않는다. 우리

는 우리 자신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우리 경 험에 근거해 현대의 본문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직관적으로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러나 이런 방식은 역사적으로 또는/그리고 문화

적으로 우리의 상황 밖에 있는 본문을 읽고 이해

할 때는 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복음서가 어

떤 종류의 본문인지 결정하는 것은 복음서를 제

대로 읽게 하는 합당한 감각을 키우도록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정경 복음서의 주요 명칭이 “복음”이라

는 사실과 의미를 이미 살펴보았다. 네 명의

저자가 저술의 제목에 관여했든 그렇지 않든, 우

리가 분석한 것처럼 이 책들이 초기부터 일관되

게 복음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이 책들에서 찾

을 수 있는 예수에 대한 서사에 대한 일종의 기

대감을 독자들에게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네 책

은 많은 점에서 서로 강조점을 달리한다. 공관복

음과

의 네 복음서로 한데 묶이게 된 것은 네 복음서를 한데 묶을 정도로 예수에 대한 네 권의 서사가 비슷한 것으로 여겨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초기 기독교 증언은 구술 형태든 기록된 형태든 예수 이야기와 어록을 예수의 어록

또는 말씀으로 언급했다(예. 폴리카르포스,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서신 7:1-2; 클레멘스

1서 13:1-4). 2세기 초엽에 파피아스는 『주님의 어록 해설』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권을 저

술했다(파피아스, 『단편들』 3.1).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복음서를 『사도들의 회상』으로 부

르기를 좋아했다(예. 『첫 번째 변증서』 66.3; 67.3; 『트리포와의 대화』 100.4; 101.3).11 다

음 장에서 우리는 복음 전승을 어록과 증언과 예수에 대한 회상으로 언급하는 자료는 복음

서의 구술 전통에 중요한 정보를 준다는 것을 살펴볼 텐데, 여기서 간단히 언급할 수 있는

사실은 후대의 이런 명칭들이 네 복음서의 문학적 장르를 분류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가장 적합한 문학적 분류에 대해 다양한 제안이 있었으나 두

가지 제안이 영향력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1) 복음서는 문학적 선례가 없으며 독특하 고 창의적인 기독교 저술의 한 형태를 나타낸다. (2) 복음서는 고대 전기(‘비오이’)와 형태

상 가장 가깝다.

양식 비평과 기록된 복음서의 문학 장르에 대한 탐구

20세기 초에 양식 비평가로 유명한 성경학자들은,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고, 복음서가 전

적으로 독특하며(sui generis) 장르 분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고 많은 사람을 설

득한 방법론과 특정 논거를 발전시켰다. 양식 비평의 일차적 목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사용된 복음 전승의 기존 구술 양식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예수

의 어록과 이야기는 다양한 양식에 따라 분류된다. 1 4

이런 양식들은 예수 전승의 정형화된 방식을 식별함으로써 분류될 수 있다. 양식 비평에 따르면 기록된 복음서의 개별 단락들(각 단락은 ‘페리코페’로 불림)은 기록되기 이전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반영하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사용되

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이야기와 기억은 기독교 공동

체의 특정 필요를 위해 다시 이야기되고 수용되고 창

의적으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기적 이야기는 예수의

초자연적 능력을 변증적으로 입증하며, 권위 있는 말

씀을 기록한 이야기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어떻게 살아

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주며, 예수의 가르침과 지혜

• 논쟁적 대화(예 막 2:1-12; 3:1-6)

• 기적 이야기(예 막 1:40-45; 4:35-41)

• 어록과 비유(예 마 5-7장; 막 4장; 눅 12장)

• 우화와 전설(예 막 5:1-20; 눅 7:11-17)

• 수난 서사(예 막 14-15장) c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을 때가 자주 있기는 하지만, 양식 비평자들은 복음 전승들이 (예수

보다는) 가장 이른 시기 교회의 신앙을 보여 주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양식 비평가들이 기록된 복음서의 최종 본문에 나타나는 문학적 또는 신

학적 통일성과 창의성과 같은 것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복음서

의 본문들은 예수에 대한 구술 전달의 저장소로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양식 비평가

들이 기록된 복음서를 “수이 제네리스”(sui generis, 즉 “전적으로 고유한” 또는 “독창적

인 창작물”)라는 문구로 설명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장르와 관련해 기록

된 복음서와 다른 저술을 비교하는 연구 작업의 중단으로 귀결된다.

양식 비평의 방법론 가운데 많은 것은 폐기되었고 타당성 있게 비판받았다. 그러나 두

가지 중요한 통찰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첫째,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이 사용한 원자료는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에 대한 이전의 구술 전달이었다. 말하자면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가장 이른 시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 대한 기억을 구술로 전수했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마가복음 1장 16절-3장 6절의 단위를 살펴보면, 본문은 독립적인 치유 이야기(예. 1:29-31; 1:32-34), 논쟁적인 대화(예. 2:1-2), 선언하는 이야기(예. 2:15-17; 2:23-28)

로 구분되는 개별 단락들로 명확하게 나뉜다. 본문의 단위 안에는 선명한 지리적 표시나

시간의 표시가 없으며, 마가는 독자 편에서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각 단락을 다른 곳에

배열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마가는 예수에 대한 기억의 개별 (및 이전의 구술) 단위들을 수

집했고 이런 단위들을 창의적인 솜씨로 배열했을 가능성이 높다.12 마가는 이런 다양한 단

위를 틀로 묶으며, 이는 많은 진주를 실로 꿰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리는 이런 관점이 복음

서의 기원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교부 증언과도 잘 맞아떨어짐을 볼 것이다.

둘째, 우리는 초기 교회가 복음 전승들을 창조적으로 만들고 마음대로 주조했다고 가정

할 필요는 없으나, 예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가장 이른 시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타당했

고 유용했으므로 이런 기억이 정확하게 보존되고 기억되었으리라는 높은 가능성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 요한복음은 이 점을 정확하게 강조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요한은 더 많은 이

야기와 정보를 줄 수 있었으나 메시아는 나사렛 예수임을 독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예

수의 이야기들과 어록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요 20:30-31). 셋째, 전적으로 “고유한”

또는 “독창적인 창작”이라는 개념은 말이 되지 않지만, 복음서의 서사들에는 그리스-로마

의 전기에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놀라운 측면들이 있다.

고대 전기/예수의 생애로서의 네 복음서

비록 네 복음서가 명시적이고 일관되게 (‘전기’가 아니라) 복음으로 언급되고 고대 전기

로서는 좀 특이한 특징을 포함하고 있지만, 네 복음서가 각각 고대 그리스-로마 전기 장르

와 가장 비슷하다는 데는 강한 합의가 있다. 우리는 유명한 사람, 때로는 악명 높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수많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전기를 알고 있다. 데이빗 오니는 고대 전기

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전기는 유명한 인물의 경력(즉 그의 성품과 업적)의 중요성을 다

루며, 필요에 따라 한편으로는 출신과 어린 시절에 대한 서사로,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과

지속적인 중요성에 대한 서사로 구성된다.”13 우리는 문학 장르는 설명적이며 저자들이 반

드시 따라야 할 경직된 공식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14 우리는 복음서를 고정되고 엄격한

장르 속으로 밀어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동시에, 어떤 저술도 다른 저술들과 일부 특

징을 공유하고 비슷한 유형을 따르고 있음을 예상해야 한다. 우리는 장르가 고정되고 관습

적인 것보다는 역동적이어서 저자는 장르의 형태를 놀랍고도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

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고대 전기에는 많은 차이가 나타나지만, 전기 장르의 두 가지 특징

은 명백하다. “첫째는 위대한 생애를 기념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며, 둘째는 그것에서 배

움을 얻으려는 도덕적 열의다.”15

전기는 고대 역사와 중첩되거나 가능성이 더 높게는 고대 역사의 하부 종류로 여겨졌으

나 전기는 전쟁과 정치 등의 쟁점이 아니라 특정 인물의 생애와 성품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기는 해당 인물의 성품에 대한 칭송이나 비난을 끌어내기 위해 (자주) 공개적이고 명백 하게 시도하는데, 이는 고대 역사 저술과 구별되는 점이다. 또한 전기는 일반적으로 중간

정도의 분량이고 생애의 기본적인 사건들에 따라 연대순으로 배열되지만, 저자가 적합

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영웅의 가르침과 행위를 포함하는 유연성을 보인다.16 따라서 일반

적으로 전기는 지혜, 업적, 사회를 위한 공헌, 인품 등을 중심으로 고대의 인물을 기념하면

서 명시적으로 칭송하는 특징을 보인다. 1.5

모든 문학 분류와 마찬가지로, 전기를 저술할 때 유연성의 여지가 있고 창의적으로 사용

할 여지도 있다. 전기는 역사와 과시적 수사법(즉 개인에 대한 칭찬/비난)과 분명한 유사 점을 공유하며, 이런 조합은 종종 독특한 유형의 저술 을 낳는다. 1 6

네 복음서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각 복음서가 많은

특징을 고대 전기와 공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17 제 목, 서문, 도입부의 특징과 관련해 마태복음은 “아브라 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마 1:1)로 시

작하며,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막 1:1)으로 시작하며, 누가복음은 길면서도 약간 전문적 인 서문으로 시작하며(눅 1:1-4), 요한도 예수에 대한

전기의 긴 프롤로그로 시작하고(요 1:1-18) 저자의 저

부록 1 5 고대 전기의 예

황제들: 수에토니우스, 『카이사르들의 생애』

철학자들: 크세노폰, 『회상록』; 루키아노스, 『니그리누스』, 『데모낙스』; 필로스트라 토스, 『아폴로니우스의 생애』

왕들: 이소크라테스, 『에바고라스』

군사 지도자들, 정치가들, 법 제정자들: 플 루타르코스, 『영웅전』

종교적 인물들: 필로, 『모세의 생애』

술 목적을 명시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맺는다(20:30-31). 마가복음이 예수의 성인 시절 과 공생애로 바로 넘어가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마 1:18-25;

눅 1:5-2:40)와 예수를 이스라엘 백성과 위대한 영웅들과 연결하는 계보를 포함한다(마

1:2-18; 눅 3:23-38). 누가복음은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기록한다(눅 2:41-52).

마가복음을 가장 초기 복음서로 가정할 때 마태와 마가가 이런 이야기들을 추가한 것은 그

들이 자신들의 저술과 마가복음을 전기의 저술로 이해했음을 입증한다. 분명히 각 복음서

는 거의 절대적으로 예수를 주제로 다룬다. 내레이터는 예수를 언급하지 않고 독자에게 새

로운 지리적 환경을 설명하는데,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예. 막 6:14-29). 각 복음서의 대

부분은 예수의 가르침과 위대한 행위에 초점을 맞추며, 예수의 성품과 삶의 태도를 강조 한다. 저자들은 예수에 대한 서사들을 구성하기 위해 이야기, 어록, 짧은 일화, 긴 강화를

사용한다. 각 복음서는 시간 순서에서 일관되고 타당하면서도 주로 주제별로 구성하고 정 확한 시간 순서와 세부적인 지리에는 큰 관심을

부록 1 .6

고대 전기의 문학적 특징

고대 그리스-로마의 전기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문학적 특징을 대부분 공유한다. d

1. 제목. “……의 생애”

2. 서문 또는 프롤로그: 도입부는 (자주) 저술 목적이나 계획을

제시한다.

3. 출생과 계보 전기는 영웅의 출생과 이례적인 징조, 조상과 혈통, 교육을 포함한 어린 시절의 성장과 발달과 관련된 내용 을 자주 포함한다

4. 주제. 고대 전기에서는 개인의 성품이 주제에 큰 영향을 미친 다 이는 특히 동사의 주어가 균형이 맞지 않게 해당 주인공 을 주어로 삼는 예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5. 지리적 배경 일반적으로 고대 전기에서는 주제가 지리적 위 치에 영향을 준다 작가는 대체로 주요 인물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 지리적 위치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6. 인물 묘사 고대 전기는 주인공의 미덕, 악덕, 일반적인 특성 에 매료되었다. 현대의 소설이나 전기와 달리 고대 전기는 주 인공의 개성이나 심리적 동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덕과 성품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고대 전기의 중요한 특징이었으며, 플루타르코스의 『알렉산더의 생애』 중 도입부 내용을 일부 인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생애다. 가장 뛰어난 행적에는 항상 미덕이나 악덕이 드러나지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복음서 개론

들에게 맡기겠다(1.2-3). e

이 글은 매우 유익하다. 왜냐하면 플루타르코스가 역사 서 술을 전쟁, 전투, 포위전, 위대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

으로 이해하는 반면, 전기를 “사람들 안에 있는 영혼의 징후”

를 찾는 것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

루타르코스는 덕망이 있든 없든 특정 성품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는 독자들이 보는 것을 본받거나

회피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플루타르코스가 대단히 명확하게

언급하는 것처럼, 실제로 대부분의 고대 전기는 주인공의 윤

리적 성품에 초점을 맞추고 청중이 보는 것을 모방하거나 피

할 수 있게 안내한다

7. 인물의 어록, 이야기, 업적. 전기의 본론이 주인공의 주요 행

동, 업적, 가르침이나 말로 채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8. 죽음의 태도 많은 전기는 영웅의 마지막 순간과 죽음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 인물은 반대에 직면해 용기와 일관성을 보

이면서 고귀한 죽음을 죽는가? 아니면 두려움과 비겁함을 보

한마디 말이나 농담 같은 사소한 것이 수천 명이 죽는 전투나 놀 라운 군대나 도성의 포위보다 인품을 더 크게 드러낼 때 가 자주 있다……그래서 나는 사람들 안에 있는 영혼의 징후에 더 집중하며, 이를 통해 각자의 생애를 묘사하는 데 전념해야 하며, 그들의 위대한 싸움에 묘사는 다른 이

이면서 수치스럽게 죽는가?

을 강조하며, 고난 중에 보인 덕과 불굴의 정신을 강조한다. 대다수 학자는 네 복음서의 이 런 특징들에 근거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적절한 문학적 분류가 고대

전기임을 확신한다.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우리는 요한복음도

고대 전기 장르의 이런 특징을 모두 공유하고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왜 저자는 전기를 쓰려 했을까? 학자들은 다양한 저술 목적을 제시해 왔는데, 여기서 나

는 복음서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중요한 세 가지 목적을 언 급하려 한다. 첫째, 가장 자주 언급되는 목적은 과거의 위대한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청중

이 모방할 윤리나 도덕을 공유하는 목적이다(예. 루키아노스의 『데모낙스』, 플루타르코스

의 『영웅전』). 저자가 철학자나 종교 교사의 생애를 저술할 때 책은 그 사람의 성품과 가르

침을 보여 주는 문학적 회상의 역할을 한다.18 둘째, 일부 전기는 논란이 많은 인물을 정당

화하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이런 저술은 영웅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뒤

집고 영웅의 성품을 복원하려 했을 것이다(예. 크세노폰의 『회상록』, 포르피리오스의 『피

타고라스의 생애』). 영웅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전기는 독자들에 게 그 인물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일부 전기는 주로 독자들에게 정보와 흥미를 제공하기 위해 기록된 것처럼 보인다(예. 수에토니우스의

『황제들의 생애』, 타키투스의 『아그리콜라』).

복음서를 고대 전기의 예로 규정하는 것이 우리가 복음서를 읽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네 가지 함의를 제안하려 한다. 첫째, “복음서는 서사(내러티브) 형식의 기독론이다”라는

분명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19 복음서 저자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궁극적으로

한 인생에 대한 것이다.”20 복음서 저자들은 구원과 계시를 한 인물에게서 찾을 수 있음을 확신했으므로, 그들에게는 전기가 적합한 장르였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읽는 모든 내용은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과 행위를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양식 비평가들의 일부 주장과는 달 리, 복음서 저자들이 고대 전기 형식으로 복음서를 쓰기로 한 결정은 그들이 창시자의 과 거 역사를 보존하는 데 중요하고 열정적인 관심을 보였음을 의미한다.

둘째, 복음서가 고대 전기라면 우리는 이야기의 순서에서 연대의 기초적인 정확성만 기 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 가운데 주요 사건들을 적절하게 서술하는 점에서는 분명히 잘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서가 연대의 세부적인 정확성을 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이런 차이, 특히 연대와 관련된 차이는 요한복음 과 공관복음 간의 차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요한복음을 고대 전기로 이해한다

면 요한복음이 마가복음의 흐름과 배열과 다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21 복음서를 고대

전기로 이해하는 것은 이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서의 역사적 정확

성(에 대한 우리의 정의)과 관련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피하는 데 도움을 준다.

셋째, 우리는 고대 전기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도덕적인 기능으로 본받을 만하거나 존

경할 만한 인물을 내세우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복음서가 서사 형식의 기독론이라면 우리

는 복음서가 예수를 따르게 될 사람들에게 제자도를 촉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복음서

저자들의 목표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예수를 하나님께로 향하는 덕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저자들의 그런 목표를 받아들여야 하며, 이 목표를 복음서를 해석하고

잘 읽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할 때 중요한 부분으로 간직해야 한다.”22 고대 전기의

이런 특징은 예수를 따르라는 복음서의 일관된 가르침과 잘 맞아떨어진다. 예수는 제자들

에게 “나를 따라오라”(막 1:17),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막 8:34),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자신이 보여 준 희생적 사랑의 모범을 배우라(요 13:1215), 자신의 환대를 배우라고 초대하신다(눅 22:24-27). 복음서의 독자들은 예수의 가르

침과 행위를 공부하고 들음으로써 예수께서 누구셨는지 배울 수 있고 어떻게 예수를 따를

수 있는지도 배울 수 있다.23 독자들이 네 복음서 각각을 잘 읽게 되면 복음서가 예수의 성

품과 덕을 따르도록 어떻게 독자들에게 호소하는지 명확해질 것이다.

복음서를 고대 전기로 살펴보는 접근을 마무리하기 전에 우리는 복음서의 몇 가지 놀라

운 특징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특징들은 네 복음서가 얼마나 혁명적이고 창의적인지 볼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24 간단히 말해, 네 복음서에서 예수를 존귀하게 높이는 표현은

독특하다. 예수는 유일하게 역사의 중심이시며, 우주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의 성취이시며, 이스라엘의 성경을 성취하셨다(예. 마 1:2-17; 막 1:2-3; 눅 4:18-19). 예

수는 하나님과 인간이시므로 인간의 경배를 받을 만한 유일한 분이다(마 28:18-20; 눅 24:50-53). 예수는 유일하게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마 1:21; 막 2:1-12; 눅 4:18-19; 요 5:23-30). 예수는 부활하셔서 하늘에 좌정하신 왕으로 지금도 살아서 통치 하신다. 따라서 살아 계신 예수는 여전히 활동하고 계시고 기도를 받으신다(요 14:1214). 예수는 제자들에게 죽음 이후에도 그들 가운데 함께할 것을 약속하신다(예. 마 18:20; 28:20; 요 14-17장). 이런 특징들 때문에 복음서는 독특한 전기다. 복음서의 주인 공은 단순히 현명한 철학자나 용감하고 전략적인 군사 영웅이 아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을 계시하고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살아 계신 예수다.

요약

우리는 “복음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탐구했다. 이를 위해 “복음”이라는 단어의 의미, 네 복음서

저자들의 저술에 붙은 “X에 따른 복음”이라는 제목의 기원, 네 복음서의 문학적 분류로서는 최선인 고대

전기를 분석했다.

우리는 요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으며,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복음서를 읽는 방법을 위 한 이런 요점의 함의를 강조하려 한다.

1. 예수에 대한 (정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지칭하는 “복음”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이 도성들과 땅을 회복 하고 자기 영을 부어 주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구출하시기 위해 자기 백성에게 오고 계신다는 선포 에 중심을 둔 이사야의 예언 신탁을 배경으로 한다(사 40:1-11; 52:7-12; 61:1-4). 네 복음서 모두

에서, 때로는 예수의 입을 통해 이사야서의 이 본문들을 언급하는 것은 복음이 이사야가 예언한 하나

님의 구속 행위의 성취임을 확증한다(예. 마 3:3; 막 1:2-3; 눅 4:18-19; 요 1:23). 따라서 우리는 네

복음서를 읽을 때 복음의 각 저자가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어떻게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성경, 특히 이사야의 예언적 약속을 놀랍게 성취하시는지 보여 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2. 바울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세상과 인류를 회복시키기 위해 나사렛 예수의 인격을 통해 강

력히 행동하기 시작하셨음을 알리는 구술 선포를 설명하려고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복음은 하

나님의 성육신, 다윗의 아들, 메시아적 왕인 예수에 초점을 맞추고 예수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 하늘 의 좌정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기록된 복음서가 복음을 선포하신 분으로 예수를

묘사한 것과 일치한다(마 4:23; 9:35; 막 1:14-15; 눅 4:18-19). 따라서 우리는 기록된 복음서를 읽

을 때 각 복음서가 예수 이야기를 복음과 동일시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복음은 하나님이 메시아 예 수를 통해 행하신 것의 풍성하고 완전한 이야기다.

3. 이 복음은 구원을 위한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므로 기쁜 소식이다. 기록된 복음서는 십자가 처형과 부 활을 절정으로 포함해 예수의 생애 전체를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복음서를 읽을 때 우리는 예수의 생애 모든 측면이 어떻게 하나님을 계시하고 동시에 인류의 구원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지에 집중해야 한다. 4. 네 복음서는 저자의 정체를 명시하지 않으므로 엄밀히 따지면 익명이지만, “X에 따른 복음”이라는 제 목이 복음서가 처음에 순환되기 시작하던 때부터 유래했다고 볼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수행했음을 정확하게 강조했다. 기록된 복음서

에는 독특하고 놀라운 측면이 있지만, 이제 대부분은 복음서가 고대 전기로 분류될 만큼 고대 전기와

강한 유사성을 공유한다고 인정한다.

6. 우리가 복음서를 고대 전기의 예로 이해하면 초기 기독교에서 과거 역사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예수 이야기를 전하는 복음서에서 연대의 일관성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각 복음서 저자가 자신

의 자료를 배열하고 정리하는 방식에는 높은 수준의 유연성이 가능함을 이해할 것이다. 이와 함께 고

대 전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처럼 복음서는 예수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복음서는 예수를 크게 존

경받는, 더 적절한 표현으로는 경배를 받는 분으로 묘사한다.

복음서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신약의 처음 네 권의 책이 “복음”으로 불리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제목의 기원

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개인과 관련이 있음을 탐구했다. 나는 복음서가 독

특하고 놀라운 요소들을 담고 있음에도 고대 전기의 예로 가장 잘 분류됨을 주장했다. 그

러나 우리는 기록된 복음서가 어떻게 탄생하게

복음서 저자들은 어디에서 자료를 얻었을까?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는 예수의 사역을 목격 한 증인들에게서 나왔을까? 기록되기 전의 복음 전승은 어느 정도 신중하게 보존되었 을까? 이 장에서는 우리는 예수 이야기들과 어록들이 어떻게 보존되고 전달되었는지, 그리 고 다르면서도 유사한 네 권의 정경 복음서를 우리가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교사 예수

복음 전승이 어떻게 보존되고 전달되었는지 묻기 전에 우리는 나사렛 예수께서 교사이 셨다는 아주 분명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재능 있는 교사이셨으며 다양한 구술 기법을 통해 강력한 방식으로 말씀을 전달하실 수 있었다. 누가복음은 어린 소년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가르치시고 토론하시고 듣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셨던 이야기를 기록 한다. 이 이야기는 누가의 문학적 의제 중 하나, 즉 예수를 하나님 백성의 뛰어난 교사로 묘사하는 것을 예고한다(눅 2:41-52). 네 복음서는 각각 사람들이 자주 예수를 교사로 언 급하는 장면을 묘사한다(예. 마 8:19; 9:11; 막 9:17; 10:17; 눅 12:13; 요 3:2). 복음서가 보존하는 예수에 대한 기억에 따르면 예수는 무리, 회당의 사람들, 서기관들을 독특하고 권위 있게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이

7:28-29). 마가는 그의 서사에 충정의 반응과 질문을 섞어 넣어 예수의 진정한 정체에 대

국립 미술관, Rosenwald

그림 2.1. 렘브란트 판레인, <설교하는 그리스도>(백 길더 판화)

한 긴장을 고조시킨다.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막 1:27; 참고. 1:22; 6:3). 누가복음의 묘사에 따르면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예수의 해설을 듣는 사람

들은 놀라고 충격을 받고 심지어 분노한다(눅 4:16-30; 참고. 막 6:1-6). 요한복음은 일부 유대인이 서기관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탁월하게 가르치시는 예수의 능력을 보고 당황

하는 모습을 묘사한다(요 7:15).1 우리는 복음서를 잠깐만 읽어 봐도 예수께서 다양한 구

술 형식과 기법을 활용하는 뛰어난 소통자이셨음을 알 수 있다. 2 1

부록 “양식을 사용해 가르치신 예수”에 나열된 문학 양식의 목록은 양식 전부는 아니지

만 네 복음서가 예수를 효과적이고 탁월한 교사로 묘사할 때 나타난다. 사람들은 예수께

감동과 놀라움으로 반응하지만, 예수의 수수께끼, 아이러니, 모호한 표현으로 종종 당혹스

러워하고 혼란스러워한다(예. 마 19:24-26; 막 4:10-12; 요 3:1-8).2 더욱이 복음서는 예

수를 분명히 “랍비”로 묘사한다(예. 막 9:5; 14:45; 요 1:38, 49; 3:2). 선택받은 “제자들”

은 예수를 “랍비”로 따랐고 예수의 가르침을 들었다(눅 6:12-16). 복음서에서 “제자”라는

용어는 기본적으로 “학생”을 의미한다. 예수의 학생들에게 주어진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선

생의 가르침을 배우고 기억하고 전달하는 것이었다(예. 눅 10:16; 요 13:18-20).3

복음 전승의 구술 전달

우리는 나사렛 예수께서 위대한 교사로 기억되었으나 기록된 글을 남기지 않으셨다는

분명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 특히 예수의 제자들과 학생들이

자신들의 구원자에 대한 이야기와 어록을 구전으로 보존하고 선포하고 전승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전 장에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런 사실은 양식 비평의 변하지

않는 통찰 중 하나이며, 오늘날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말하자면 기록된 복음서 이전에 구

술의 역사와 전승이 있었다. 복음 전승의 구술 전달은 한 세대나 두 세대의 시간 범위 안에

서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를 (기록된 매체가 아니라) 입의 말로 전하는 과정을 말한다.4 예

수의 추종자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이 역사적인

인물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 인물이 누구인지, 무엇을 말했는지, 무엇을

행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지식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필수적이었다. 더욱이 예수 의 가르침은 그들이 논쟁을 해결하고(예. 막 7:1-23의 음식법), 제자들의 실천적인 삶(예.

6:9-13; 눅 11:5-13)에 실제적인 가치로 사용되었다.5 복음 전승의 구술 전달을 뒷받침하

는 증거는 다음과 같이 적어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신약 서신서는 복음 전승의

구술 전달을 증명한다

복음서의 기록 연대를 추정하

는 작업은 어렵지만, 복음서가

바울이 쓴 서신들보다 나중에 쓰

인 것은 매우 확실하다. 바울 서

신을 읽는 독자들은 왜 바울 서

신에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명

시적인 언급이 적은지 종종 궁금

해한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에 대한 바울의 가장

중요한 진술 가운데 많은 부분은

바울이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

활에 대한 서사들을 알고 있었음

양식을 사용해 가르치신 예수

다음은 예수께서 자신의 가르침을 전달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몇 가지

양식이다

• 산상수훈(마 5-7장), 고별 강화(요 14-17장)와 같은 긴 강화/설교

•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1-46) 와 같이 기억하기 쉬운 비유

• 이스라엘 성경(과 이 성경에 나오는 이미지, 절기, 제도)의 의미에 대 한 설명과 해석(예 마 11:2-16; 눅 4:16-21; 요 7-8장).

• 경구, 수수께끼, 간결한 한 줄 문구.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 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 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 “다윗이 그리

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막 12:37a). “무리 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 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 선교 강화(마 10:1-42), 재물에 대한 가르침(눅 16:1-31) 등의 지침과 규율

• 예수를 반대하고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질책과 논쟁 ( 마 23 장 ; 눅 11:37-54).

을 전제로 한다(롬 4:25; 고전 11:23-26; 15:3-5; 빌 2:6-11; 부록 2 1

골 2:13-15; 살전 4:14). 마이클 버드가 언급하는 것처럼 “예수 전통에 대한 서사가 없

었다면 교회는 예수의 구속적 죽음에 대한 케뤼그마[선포]를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6 비슷한 점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묘사할 때도 나타나는데, 그는 겸손, 헌

신, 환대를 구현하신 분으로 예수를 서술했다(롬 15:1-3; 고전 9:19-23; 10:24-11:1; 고

후 10:1; 빌 2:6-8). 바울은 예수의 덕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예수의 구체적인 이야기와

어록을 거의 확실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강조할 수 있었다.7 바울 서신이

예수의 가르침을 직접 언급하는 본문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바울이 참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알고 전달하며 때로는 그런 가르침을 “주의 말씀”이라고 주장한 명백한

사실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롬 12:14-21; 14:14; 고전 4:11-13; 7:10-11; 9:14; 11:23-25; 살전 4:15-17; 5:1-7).8 이 부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바울이 이혼과 재혼

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근거로 삼는 것(고전 7:10-11; 참고. 막 10:1-12), 마지막 만찬

에서 있었던 예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다(고전 11:23-26; 참고. 눅 22:15-20). 나아가

기록되기 이전의 복음 전승에 근거하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 몇 가지 주제와 문구들도 바울

서신에는 있다. 예를 들어, 바울 서신은 예수의 핵심 선포인 하나님 나라를 14회 언급

한다(롬 14:17; 고전 4:20; 6:9-10; 15:24, 50; 갈 5:21; 엡 5:5; 골 1:13; 4:11; 살전 2:12; 살후 1:5; 딤후 4:1, 18). 바울이 토라를 레위기 19장 18절을 통해 요약한 것은 가장

큰 두 계명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분명히 암시한다(롬 13:8-10; 갈 5:13-14; 참고. 마 22:35-40; 막 12:28-31). 바울이 “그리스도의 법”을 언급할 때도 예수의 가르침을 암시

할 수 있다(고전 9:21-22; 갈 6:2). 많은 사람은 바울이 로마 교회에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롬 14:14)라고 한 말을 통해 마가

복음 7장 1-23절에 있는 음식법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떠올렸을 것이다.

초기 기독교 서신인 베드로전서와 야고보서도 기록되기 이전의 복음 전승을 알고 있었

음을 보여 준다.9 서신들은 예수 어록과 분명히 중첩되거나 어록을 인유할 때가 종종 있으

나 어록의 정확한 어법이나 형태는 차이를 보이며, 이는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가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전승되고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야고보서에 기록된 예수 의 말씀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형태와 가장 가깝지만 어느 정도 차이점도 나타나는데, 이는 “야고보는 마태복음과 같은 고정된 문헌의 출처가 아니라 공통의 구술 전통이라는 공유자

료를 사용”했음을 의미한다.10 2.2

바울 서신, 야고보서, 베드로전서는 네 권의 정경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에 초기 그리스

도인들이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를 보존했고 구전으로 전승했다는 증거를 보여 준다.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에 있는 예수 전승

서신서 예수의 어록 서신서 예수의 어록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

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 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 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 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 게 열릴 것이니.”

야고보서 4:2c: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 이요.”

마태복음 7:7a: “구하라 그리

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야고보서 2:5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

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 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야고보서 4:9: “슬퍼하며 애통

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 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 로 바꿀지어다.”

누가복음 6:20: “예수께서 눈

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

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

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 희 것임이요.”

베드로전서 1:13: “그러므로 너 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 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 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베드로전서 2:7: “그러므로 믿

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 이 되고.”

베드로전서 2:19-20: “부당하 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

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 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 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 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 에 아름다우니라.”

누가복음 12: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마가복음 12:10: “너희가 성 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 니 함을 읽어 보지도 못 하였느냐.”

누가복음 6: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 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 하느니라.”

야고보서 4:10: “주 앞에서 낮 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5: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누가복음 6:21: “지금 주린 자

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

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

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누가복음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태복음 5:34-37: “도무지 맹

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

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

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베드로전서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

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

느니라.”

요한복음 13:15: “내가 너희에 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 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들이 같거나 적어도 매우 비슷한 출처 자료, 즉 구술 (및 아마도 일부 기록된) 복음 전승을

사용해 작업했음을 시사한다. 예수에 대한 구술 전통은 완벽한 형태의 서사가 아니라 짧고

개별적인 일화(‘크레이아’) 형태로 전달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구술 복음 전승을 다양한

상황과 특정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는 양식 비평의 기본적인 제안을 수용할 만한 충분한 이

유가 있다. 다시 말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그들의 공동생활과 정체성을 위한 지혜와 지

침을 찾을 때 기도, 재정적 관대함, 주의 만찬과 관련된 예수의 어록을 근거로 삼았을 가능

성이 크다. 다양한 공동체가 각자의 목적을 위해 예수의 가르침을 활용하고 전수하며 가르

쳤으므로, 전승 과정에 유연성과 고정성이 어느 정도 공존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말

하자면 예수께서 누구시고 무엇을 말씀하셨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정확한 어법, 지리적 위치, 연대 등을 전하는 것에 비해 더 중요했다. 내레이터는 갈릴리, 마을, 예루살렘, 산에서 활동하는 예수를 자주 설명한다. 다시 말해 내레이터는 지리적 배

경에 대해 전적으로 실제적인 정보를 주며, 간단한 세부 사항만 제시하고 심미적 감각을

자극하는 데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복음서 저자들은 줄곧 예수의 활동에 초점을 맞

추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런 특징들은 고대의 구술 서사에 나타나는 특징들과

매우 비슷하다.12

복음서의 단락들을 비교하면 우리는 같은 어록과 이야기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

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모두 잃은 양의 비유를 포함한다. 누가복

음에서는 예수의 비유가 예수의 죄인들과의 식사 교제를 비판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에게 향해 있다(눅 15:1-7).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같은 비유를 기독교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돌보는 필요성을 가르치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전하신다(마 18:10-14). 따라서 비유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은 (대체로) 고정되어 있지만, 복음서

저자들은 서사의 배열에 있어 예수의 가르침을 좀 더 유연성 있게 사용한다.

앞 장에서 나는 마가복음 1장 16절-3장 6절의 예를 간단히 언급했다. 마가복음의 이 부

분에 들어 있는 다섯 개의 단락은 시간과 지리의 세부 사항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주지는

않는다. 학자들은 다섯 단락이 “목걸이에 달린 진주들” 또는 “초콜릿 바의 낱개 사각형들”

과 같다고 말한다. 이는 다섯 단락이 목걸이와 초콜릿 바에서 떨어져 독립된 개체로 존재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마가는 (또는 아마도 마가가 알고 있던 구술 수준에서는)

다섯 개의 이야기를 논쟁의 이야기로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 이야기는 예수의 견줄

수 없는 권위뿐 아니라 예수께서 불러일으키신 적대감과 반대를 설명한다. “기록된

복음 전승

가지고 있었다.”13 2 3

이런 차이점 중 일부는 분명히 마태와 마가의 문학적・신학적 강조점에 나타난 차이점,

예수께서 분명히 순회 교사로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반복해 가르치셨을 것이라는

사실, 또는 마태와 누가가 공동의 구술 또는 기록 자료를 공유하고 현재의 형태로 다시 썼

을 가능성 때문일 수 있다.14 그러나 원수 사랑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 처음부터 기억되었 고 가장 이른 시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기 위해 구술 형태로 계

마태복음 5:43-48 누가복음 6:27-28, 32-36 로마서 12:14 베드로전서 3:9; 2:20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

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

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

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

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

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

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

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 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

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

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

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

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

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

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

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

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

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

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

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

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 도 온전하라.

아버 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 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부록 2 .3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 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 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 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 려 하심이라.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

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 다우니라

속 전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바울 서신(롬 12:14, 20a; 고전 4:12b)과 초기의

다른 기독교 자료(벧전 3:9; 디다케 1:3)에서도 원수 사랑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예수의 말씀이 다른 어법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마태와 누가가 부분적으로

가장 이른 시기 기독교 교회들에 전승된 구술 전통에 근거할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초대 교부들은 복음 전승의 구술 전달을 위한 증거를 보여 준다

우리는 다음 부분에서 좀 더 자세히 탐구할 예정인데, 여기서는 초기 기독교의 증언이

네 명의 복음서 저자가 복음서를 기록하기 이전과 이후에 복음 전승이 구두로 순환되었음

을 암시하는 사실을 언급하려 한다.15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예수의 주목할 어록

이 존재했으며, 이는 복음 전승이 적어도 일부분은 구술 전달과 기억을 통해 보존되었음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때때로 이것을 ‘아그라폰’(agraphon, “집필되지 않은” 또는 “기록되

지 않은”)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로마의 클레멘스는 자기 회중에게 “주 예수의 말씀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온유와 인내로 가르치면서 말씀하셨습니다”(클레멘스1서 13:1)라

고 말했다. 이어서 클레멘스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다. 긍휼을 보이십시오. 그러면 긍휼을 얻을 것입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면 용서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행하는 대로 당신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판단하는 대로 판단을 받을 것 입니다. 친절하게 대하는 대로 친절하게 대접받을 것입니다. 헤아리는 대로 헤아림을 받 게 될 것입니다(클레멘스1서 13:2).

우리는 집필된 복음서에서도 비슷한 어록을 볼 수 있으나 클레멘스가 명시적으로 언급

한 “주 예수의 말씀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없다(클레멘스1서 46:7-8도 참고). 사도

행전에서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설교하면서 다른 곳에는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어 록을 근거로 삼는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

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b).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부자의 구원』

40.2와 마찬가지로)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를 경고하셨다. ‘내가 너희를 발견하는 그 상태 그대로, 그 안에서 내가 너희를 심판할 것 이다”(『트리포와의 대화』 47.5)라고 말한다.

2세기 초에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는 (안타깝게도 지금은 소실된) 다섯 권으로 된 『주 예수의 로기아[어록/설명]에 대한 해설』이라는 제목의 책을 AD 2세기 이른 초엽에 저술했다. 프롤로그에 따르면 그의 방법론은 구술 복음 전승의 지정된 전달자들에게서 정 보를 수집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파피아스는 말한다. “나는 책에서 얻은 정보보다 더 생생

하고 살아 있는 목소리에서 얻는 정보가 내게 더 유익할 것으로 생각했다”(유세비우스, 『교회사』 3.39.4). 마이클 버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예수 전통의 살아 있는 목소리는

살아 있는 기억이다.”16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그의 저술에서 우리가 네 명의 복음서 저자 를 통해 잘 알고 있는 복음 전승, 이야기, 어록을 자주 인용하며, 이것들을 “사도들의 회상”

이라고 언급한다(예. 『트리포와의 대화』 100.4; 101.3; 102.5; 103.6-8). (다른 사람들 가

운데) 파피아스와 유스티누스는 네 복음서가 기억(기억되고 구술로 전승된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에서 유래했음을 확인한다.

복음 전승은 어떻게 기억되고 전달되었는가

우리는 예수께서 위대한 교사로 기억되었고 그를 초기에 따른 자들과 존경한 자들이 처

음부터 그에 대한 어록과 이야기를 구술로 전달했음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네 복음서는 예 수에 대한 기억의 기록된 유산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검토하지 않은 질문은 누가와 어떻 게다. 누가 예수의 기억을 보존했을까? 어떻게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했을까? 이런 질문들 은 대단히 복잡하며, 우리의 고대 자료들과 현대의 기억 연구를 다루는 데 따르는 복잡성 을 고려할 때 이런 질문들에 대한 신중한 대답은 다양한 관점을 보여 줄 것이다. 여기서 나

는 예수 전통을 전달한 방식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두 가지, 즉 목격자 증언과 기억의 역할을 제시하려 한다.

목격자 증언과 예수 전통의 전승

양식 비평가들은 예수의 기억이 익명으로 전달되고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창의적으로

재구성되었다는 확신하고 작업했으나, 복음의 구술 전통 중 상당 부분을 목격자들이 신중 하게 보존한 유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여러 이유가 있다. 리처드 보컴의 중요한 (및 논쟁

적인) 저술인 『예수와 목격자들』은 네 복음서 모두를 사도들의 목격자 증언을 보존한 책으

로 이해하는 관점을 가장 강력하고 창의적으로 주장한다.17 이런 견해를 주장한다고 복음 서에 있는 모든 내용이 목격자 증언에서 왔다는 의미는 아니며, 복음서의 이야기가 “해석 되지 않은 객관적 사실들”로 (마치 이런 것이 가능한 것처럼) 설정하는 것도 아니다.18 네 복음서를, 목격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질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책으로 이해하는 것 은 너무 단순한 시각이다. 우리가 다음 절에서 살펴볼 것처럼, 예수 전통은 기억되었으며, 전달되었으며,

누가복음은 기록된 복음서 가운데 유일하게 서문을 포함하며, 서문에서 저술 방법과 목 적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

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

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1-4).

여기서 누가는 고대 역사가들이 ‘아우톱시아’(autopsia)라고 부르는 관행을 언급한다.20

‘아우톱시아’는 역사가가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는 방식이나 해당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을

접촉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아우톱시아’는 “특정

대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시각적 수단, 탐구의 방법, 따라서 그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

식”을 의미한다.21 고대 역사가인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폴리비우스, 요세푸스 등은 자신

들의 역사 기록이 목격자 증언의 수집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하여 준”(παραδίδωμι

‘파라디도미’)이라는 단어는 전달받고 공유하는 전통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문 용

어다(예. 고전 11:23-26; 15:3-5). 서문에 따르면 “말씀의 일꾼 된 자들”, 즉 사도적 목

격자들이 누가복음이 의존하는 예수 전통을 전달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자신이 저술한 복음서가 “처음부터 목격자”였던 사람들에 근거한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직접 사건들에 참여하고 그 사건들을 목격한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했음을 명백하게

주장하는 내용이다. “처음부터”와 “말씀의 일꾼”이라는 표현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

를 위한 자격 가운데 하나가 다음과 같아야 함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하므로 요

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

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1-22). 다시 말해, 열두 사도의 임무 중

하나는 “말씀의 일꾼”(눅 1:2), 즉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를 전달하도록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가의 서문은 역사 서술의 두 가지 주요 단계를 거

치는 그의 의도를 보여 준다. (1) 목격자 증언을 수집하며, (2) 그다음에는 일관된, 미적으

로 아름다운 서사로 저술한다.22 보컴은 다음가 같이 요약한다. “누가는 ‘처음부터’ 있었던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처음부터’ 목격자들이었던 사람들의 전승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3

요한복음도 비슷한 저술 과정을 거쳤다. 저자는 자신이 기록한 사건의 목격자임을 강조 하기 위해 자주 증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24 저자는 요한복음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

한다. “이 일을 증언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4-25).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기록된 요 한복음의 내용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간단히 말하면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요한복음과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고 단지 출처일 가능성도 있으나, 가장 간단히 말하면 그

는 요한복음의 실제 저자였을 것이다. 어느 견해가 맞든 요한복음이 사랑받는 제자의 목

격자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당연히 이상적인

인물이고 요한복음의 중요한 신학 주제인 “증언”의 일부로서 “복음의 역사적 의미를 입증

하는 실제 인물”이다.25 이는 사랑받는 그 제자가 예수의 특별한 동료로 자주 묘사되는 이

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는 예수의 다락방 강화, 십자가 처형, 빈 무덤 사건의 목격자로

서 증언할 수 있다(예. 요 13:21-38; 19:26-27, 35; 20:1-10; 21:24). 2.4

학자들이 종종 요한복음을 다른 공관복

음서보다 더 “신학적”이고 “영적”이며,

따라서 “실제 역사”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요한복음은 수많은 역사적・연대기적・지

리적 세부 사항을 포함한다. 이런 세부 사

항은 실제로 역사적 정보를 보존하려는 시

도가 아니라면 본문의 이야기와 무관한 것

이 되고 만다.26 2.5

복음 전승의 구술 전달에 대한 초기 기

독교의 일부 증거는 구술 전달이 목격자들

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27 파피아

스는 『주의 말씀에 대한 해설』의 서문에서

저술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내가 장로들에게서 신중하게 배우

고 신중하게 기억한 모든 것을 내 해석과

함께 여러분을 위해 주저하지 않고 기록 하며 진리를 증명할 것입니다. 대다수 사

그 제자”는 누구인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사랑하시는 그 제자”의 정체에 대해 서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가능 성을 제안해 왔다

• 세베대의 아들 요한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유대인 제자(1:35-39)

• 나사로(11:1-44)

• 막달라 마리아(20:11-18)

• 도마(20:24-28)

• 상징적 인물(저자가 이상적 독자를 설정하기 위해 사용 한 문학적 장치). 어떤 요한복음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한복음의 요점은 예수를 따르려는 독자는 누구나 예 수의 인도에 따름으로써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될 수 있 다 이야기의 본문마다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독자에게 손짓을 보낸다. ‘내가 예수를 따랐던 것처럼 당신도 예 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a

부록 2 5

요한복음에 나타난 시기와 지리의 표시

• 시기: 유월절(2:13; 6:4; 11:55), 초막절(7:2), 수전절(10:22)

• 위치: 가나(2:1), 사마리아에 있는 야곱의 우물(4:1-15), 예루살렘의 양의 문 옆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5:1-2), 베 다니(11:1),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 행각(10:23)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믿음을 위해 주신 계명들과 진리 자체에서 나오는

계명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우연히 장로들의 제자를 만날 기회가 생길 때

면 나는 장로들, 즉 안드레, 베드로, 빌립, 도마, 야고보, 요한, 마태 또는 주의 다른 제자들

이 전한 말씀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티온과 장로 요한, 주의 제자들이 말씀하

는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책에서 얻은 정보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목소리

에서 얻은 정보보다 더 유익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파피아스, 단편 3-4).28

파피아스는 정경 복음서가 기록된 후에도 예수 전승의 구술 전달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파피아스가 예수 전승을 확보하는 방법은 “장로들의 말씀”을 듣는 것을 포함한다. 이 부분

에서 그는 두 부류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쪽은 주의 제자들과 장로들이

며, 다른 한쪽은 장로들을 따른 사람들이다. 파피아스가 예수 전승을 확보한 출처는 장로

들을 따른 사람들이다. 그는 장로들을 따른 사람들과 주의 제자들의 관계를 통해 예수 전

승을 확보한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그는 예수 전승이 전달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

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 → 제자들/장로들 → 장로들을 따른 사람들 → 파피아스. 파피

아스가 예수 전승을 확보하는 방식은 ‘아우톱시아’라는 관행을 떠오르게 한다. 즉 파피아

스는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에 대한 목격자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예수에 대

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좋은 역사 기술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마이클 버드는 이를 잘 설명

한다. “파피아스는 예수 전승이 그것을 처음 전달한 목격자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전승의 진정성이 생존해 살아 있는 증인들에게 정확하게 근거한다고 전제한다. 이

증인들은 그들을 따르는 자들에게 자신들의 증언을 먼저 전했다.”29

목격자들을 통해 예수 전승이 구술로 전달되었음을 주장하는 비슷한 증언은 2세기 말에

저술 활동을 한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의 글에도 발견된다. 이레네오는 서머나의 폴리카르 포스에게서 배우고 성장할 때의 기억을 명확하고 생생하게 설명한다. 특히 이레네오에 따

르면 폴리카르포스는

사도 요한과 나눈 대화, 주를 본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전해 주었다. 폴리카르포스

는 이들의 말을 기억으로 재현했다. 폴리카르포스는 그들이 주에 대해, 주의 기적과 가르

침에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생명의 주를 직접 목격한 증인들에게서 들었는데, 폴리카르 포스가 듣고 전하는 이런 내용은 성경과 완전히 일치했다. 나는 그것들을 그때 열심히 경

청했으며, 내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긍휼로 나는 그것들을 글로 기록하지 않고 마음에 새 겼다. (이레네오, 『플로리누스에게 보낸 편지』, 유세비우스, 『교회사』 5.20.6-7).30

이레네오는 복음 전승의 구술 전달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되었음을 설명한다. 예 수 → 사도 요한과 다른 목격자들 → 폴리카르포스 → 이레네오.31 사실 파피아스와 이레네

오는 둘 다 변증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 전승의 구체적인 내용이 진실하고

믿을 수 있음을 입증하려 했다. 그럼에도 복음서 연구자들은 복음 전승이 교사인 예수에게

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로 전달되었다는 파피아스와 이레네오의 기본적인 주장을 진지

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파피아스, 이레네오가 목격자들에게서 정보를 얻는 방법을 언

급했으며, 이는 그들이 표준적인 역사 서술 방법을 따랐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신약과 초기 기독교 문헌들은 예수의 제자들과 목격자들이 복음 전승을 전

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우리는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를 탁월한 교사로 기억하고 열두 제자(와 다른 제자들)를 예수의 말씀과 모범을 듣고 배우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로 기억했음을 살펴보았다(눅 10:16; 요 13:20).32 예수께서 명확하게 가르치 신 것처럼, 열두 제자가 “보고 들은 것을 가르치고

일은 그들이 맡은 지도자의 역 할에서 필수적이며, 이는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해 내도록 그들

에게 요구한다.”33 초기 기독교의 특징은 많은 교사가 초기에 세워진 것이었다(예. 행 13:1; 고전 12:28-29; 엡 4:11; 디다케 13:2). 제임스 던은 이렇게 질문한다. “왜 교사들

인가? 회중을 위한 구술 전승의 저장소 역할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34 우 리가 살펴보았듯이 바울은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를 전달했을 뿐 아니라 한 번은 주의 만찬

을 설명하기 위해 공동체 전승의 전달을 가리키는 공식적인 용어를 사용한다(고전 11:2326). 복음서는 열두 사도 외에도 목격자 증언의 출처로 기능할 수 있는 많은 사람을 언급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여자들(눅 8:1-3), 예수의 형제 야고보(행 12:17; 15:13-21),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행 1:14) 등이다.35 신약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

수의 가르침과 행동을 증언하거나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본문도 있다(예. 막 14:9; 눅 22:19; 요 4:39; 12:17; 15:26-27; 행 1:22; 10:37-39).36

예수에 대한 기억과 복음서 저술

양식 비평가들과 보수적인 학자들 가운데 나타나는 문제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목격자

증언과 공동체 전통을 서로 대립 관계로 두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이분법이다. 우리가 앞

에서 살펴보았듯이 목격자 증언은 복음 전승의 구술 전달에서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 되어야 한다. 목격자들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견해로) 어느 정도 통제하는 역할을 계속했다고 해도,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 어느 시점에서

따르는 자들에게 미친 그의 영향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영향이 있었으므로 전승이

만들어졌는데, 전승은 예수의 영향이 나타나는 흔적과 제자들의 기억을 담고 있다.”37

어떤 학자들은 “사회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공유하는 과거에 대한 믿음의 내용”

을 설명하기 위해 “집단 기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38 그러나 우리는 예수에 대한 기억

을 처음부터 기억하고 말하고 전한 개인들과 공동체들이 있었으므로, 예수에 대한 목격자

증언이 계속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39 예수에 대한 구술 전승이 전달된 상

황은 “초기 교회의 설교, 변증, 논쟁, 예배, 훈육”이었다.40 목격자 증언과의 연관성을 공정

하게 다루려는 관심이 자칫 예수 전승이 보존되고 기억되었다는 중요한 통찰을 평가절하

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는 예수 전승이 예수의 말씀과 이야기들을 형성하고 전승한 그리

스도인들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로 과거, 즉 역사적 사건

과 어록에 접근할 수 있으나 오직 예수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해석하고 전승한 개인들과

공동체들의 회상과 기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41 ‘아우톱시아’의 과정, 즉 목격자들의 이야 기와 기억을 수집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 목격자들뿐 아니라 예수의 기

억을 계속 듣고 전달한 사람들은 수동적인 관찰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묘사하는 사건의

참여자들이었다.

우리는 검색을 위한 저장소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기억을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집단 기

억이라는 개념은 “공동체가 의례, 기념, 구술 전승, 본문, 허용되는 행동 방식 등을 통해 공

동체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과거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리킨다.42 우리는 현재의 구조,

틀, 사회적 필요성을 통해서만 과거에 접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기억은 사회에 내

재해 있으며, 따라서 사회는 개인과 집단이 기억할 수 있게 구조, 본문, 틀을 제공한다. 기

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량이며, 기억을 통해 과거는 현재 여기서 기억하는 사람들의

필요, 도전, 교화를 위해 참으로 의미 있게 역동하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예수의 죽음이라는 단순한 역사적 사

실만 전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해석함으로써 예수의

죽음과 그 의미를 기억했다. 이는 “연계”(keying)로 불리기도 한다. “연계”는 성스러운 옛

사건의 틀을 통해 최근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43 복음서에서 예수

는 자주 구약이라는 기억 보조 장치를 통해 기억된다. 이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지만, 특

히 예수의 수난 이야기에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마가복음 11장 1-11절에 있는 예수의

이른바 승리의 입성은 전사와 같은 왕이 와서 성전으로 말이나 나귀를 타고 갈 것이라는

성경의 장면과 예언을 떠올린다(예. 삼하 16:2; 왕상 1:32-40; 왕하 9:13; 슥 9:9-15; 마

카베오1서 13:51).44 마찬가지로, 복음서 저자들은 시편에서 다윗 계통의 의로운 왕이 겪

는 고난을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고 해석하기 위한 기억 보조 장치로 사용한다(예. 막

14:18b의 시 41:9; 막 14:35의 시 42:6, 11; 43:5; 막 15:23-24의 시 69:21; 22:18; 막 15:34의 시 22:1).45 따라서 복음 전승의 전달자들은 구약의 성스러운 본문과 에피소드를

통해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이라는 과거 사건을 기억하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 의 사실과 해석은 예수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게 된다.

요한복음은 과거와 현재의 관계 및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어 공동체의 역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다.46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낼 시간을 말한다. “내가 아

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26-27). 성령은 부활 후 예수를 증언하시며, 이는 제자들도 예수를 증언할 수 있게 하 신다. 예수는 또한 부활 이후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

아나시고 성령을 보내신 후 요한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핵심 사건에서 말

씀하신 것을 기억했다고 묘사한다. 예수께서 성전 정화(2:17, 22)와 승리의 입성(12:16)

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집단 기억 행위이며, 이런 집단 기억 행위는 단지 정

보를 회상하는 정도가 아니다. 제자들은 집단 기억 행위를 통해 예수께서 말씀하고 실현하

신 것의 진리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과거와 현재의 관계, 역사적

자료와 해석의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말하면, 여기서 집단 기억은 (목격자 들을 비롯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요한의 청중에게 유의미한 본문과 틀을 가지고 예수

의 과거 말씀과 사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재현하고 표현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만약 집단 기억이 복음 전승의 전달에 필수적인 요소라면 우리는 그런 기억이 역사적으 로 정확한지 질문할 수도 있다. 이는 어려운 질문이며, 어느 정도까지는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다. 사실 복음서에 대한 기억 접근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안 된 것이 아니다. 기억 접근은 공동체가 새로운 상황에서 기억을 유지하고 기억을 전달한

방법과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47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는 있다. 복음 전승

에 있는 구체적인 어록과 세부 사항의 역사성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일부 복음서

학자들은 예수 나사렛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구체적인 주제, 모티프, 어록의 유형, 이미지가 분명히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기억이라는 방법을 사 용한다. 다시 말해 복음 전승의 전반적인 흐름에 따르면 예수는 귀신을 쫓는 자, 탁월한 교 사, 열두 사도를 세우신 분, 메시아로 주장했다는 이유로 로마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당하 신 분 등으로 일관되게 기억되었다. 예수에 대한 이런 기억은 대단히 자주 입증되고 잘 입 증되므로 이런 기억이 실제로 예수에 대한 역사적으로 정확한 기억과 연결된 것이 거의 확 실하다.48

사회적 및 집단적 기억의 연구자들은 양식 비평에 나타나는 지나친 현실주의에 반대하

며 현재는 실제로 일어난 과거 역사의 사건들에 통상 상응한다고 주장한다.49 현재(이야

기)와 과거(역사)는 연결된다. 더욱이 복음서의 역사적 오류를 주장하기 위해 인간 기억에

대한 현대 연구를 근거로 삼는 사람들은 잘못된 비교를 하고 있다. 네 복음서 저자는 목

격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단지 30-4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회상하고 기억하라고 요

구하지 않았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목격자들과 가장 이른 시기의 기독교 공동체들은 맨

처음부터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를 전달했다. 복음 전승이 사회적 기억이 되면서 목격자들

과 열두 사도는 복음 전승과 관련해 권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남기신 강한 인상은 그들이 어록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 처음부터 포함

되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워하지만, 고대 사회와 교육 체계에서 암기, 때

로는 상당히 긴 암기는 대단히 중요하고 일반적인 방법이었다.50 이는 예수의 어록 가운데

일부가 복음서 본문, 바울 서신, 그 외의 초기 기독교 문헌들에 매우 유사하게 등장하는 이

유를 어느 정도 설명한다. 이는 예수의 어록이 같은 본문에 문학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

아니라 구술 복음 전승이 상당히 견고했고 전승의 많은 부분이 암기되었기 때문일 가능성

이 있다. 만약 우리가 실제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기 위해 해석되지 않은 기초 자료를 구

하기 위한 출처로 복음서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잘못된 탐구의 길에 빠지게 된다.51

이제 대다수 사람은 역사적 사실과 해석이 분리될 수 없으며, 모든 역사 서술은 필연적으로

해석을 수반함을 인정한다. 복음서는 증언이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 증언은 역사적이

면서도 신학적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교량이다.52 두 극단 중 어느 하나라도 회피할

방법은 전혀 없다.

요약

이 장에서는 우리는 네 복음서가 어디서 왔고 역사적 예수 나사렛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하기 시

작했다. 네 복음서는 예수를 위대한 교사로 묘사한다. 예수는 그를 따르는 자들과 그의 말씀을 들은 사람

들에게 영원한 인상을 남기셨다. 예수의 가르침과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은 즉시 기록되지는 않았다. 우

리는 복음서, 바울 서신과 같은 초기 기독교 문헌, (다른 이들 가운데) 파피아스의 초기 기독교 증언을 통

해 복음 전승이 구술로 전달되었음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복음의 구술 전승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설명하려면 목격자 증언이 어떤 역할을 했고 이 증언이 기독교 공동체에서 사회적 기억으로 계속 구술로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위에서 다룬 핵심 사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런 핵심 사항이 앞으로 복음서를 읽

는 방법을 위해 어떤 함의가 있는지 강조하려 한다.

1. 네 복음서 모두에서 예수를 기억하는 가장 분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예수께서 탁월하신 교

사이셨다는 것이다. 예수는 비유, 격언, 강화와 설교, 성경 해석과 같이 다양하고 기억하기 쉬운 구술 기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실 수 있었다. 복음서를 읽을 때 우리는 청중(과 우리!)의 주의를 끌 수 있 는 예수의 능력을 주목해야 한다. 복음서 저자들은 또한 예수의 이런 능력을 그의 놀라운 권위를 강조

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2.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의 역할은, 예수의 제자들(즉 학생들)을 부르는 것과 함께, 복음 전승의 전달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배우고, 연구하고, 아마도 암기 하는 데 헌신해야 했다. 제자들은 교사인 예수의 대리자와 사절이었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역할 중 하

나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3. 네 복음서가 쓰이기 전에 예수의 어록과 이야기는 예수의 추종자들과 숭배자들을 통해 구술로 전달되

었다. 바울 서신, 베드로전서, 야고보서, 디다케, 그 외 초기 기독교 문헌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처음 부터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의 가르침을 활용했음을 보여 준다.

4. 복음서에는 구술 전승의 표시와 특징이 일부 들어 있다. 이런 표시와 특징은 주로 짧고 많은 단위로 구 성되는데,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에 대한 같은 (정해지고 고정된) 이야기를 공유했다는 증거이지만,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하게 (유동적으로) 실행했던 증거가 된다. 예수의 어록과 이야 기가 구술로 전달되었다는 주장은 파피아스, 유스티누스, 이레네오와 같은 초기 교회 교사들이 뒷받침 한다.

5. 네 복음서가 수십 년 후에 기록되었음에도 목격자 증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입증하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이는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명시적인 증언과 일치한다. 두 복음서는 사건에 참 여하거나 사건을 관찰한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는 ‘아우톱시아’라는 고대의 관행에 대한 증거를 보여 준다(눅 1:1-4; 요 21:24-25). 우리는 또한 파피아스가 기록된 말씀보다 “살아 있는 목소리”를 더 선호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았다. 이는 파피아스의 저술 정보가 예수의 목격자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6. 목격자 증언 외에도 복음서는 공동체 전승도 근거로 삼는다. 예수 전승은 공동체의 사회적 기억에 속 한다. 공동체는 현재 상황을 다루기 위해 과거를 기억한다. 다시 말해 복음 전승은 기독교 공동체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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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복음서 개론 by 부흥과개혁사 - Iss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