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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바울 서신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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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by Constantine R. Campbell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Reading Paul as Christian Scripture: A Literary, Canonical, and Theological Introduction by Baker Academic, A divi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P.O. Box 6287, Grand Rapids, MI 49516, U. S. A.

All rights reserved.

Used and translated by the permis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 2026 by The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를 통하여 Baker Publishing Group 과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바울 서신 개론

발행일 2026년 6월 15일

지은이 콘스탄틴 캠벨

옮긴이 박장훈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6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7540-066-5 (94230)

979-11-7540-055-9 (94230) (세트)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감사의 글

바울에 대한 책이 또 한 권 더 필요할까 싶다. 사도 바울에 대한 책들은 다 읽을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출간되고 있다. 바울의 삶과 사상에 대한 엄청난 관심과 논의 및 수

많은 새로운 통찰이 나오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지만, 단지 바울을 읽고 이해하고 싶을

뿐인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위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 바울의 글을 기독교

성경으로 읽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이 속한 시리즈를

반갑게 생각한다. 이 시리즈는 독자들이 본문을 둘러싼 까다로운 문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본문 자체를 읽을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단지 학문적 연구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 정경의 관점에서 및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읽었는지, 또

신학적 공헌과 함의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며 본문을 읽도록 돕는다. 바울에 대한 책 가운데

이 모든 것을 시도하는 책은 드물므로, 나는 이 책이 비교적 드문 위치를 차지하며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신약성경 읽기』(Reading the New Testament as Christian Scripture)는 조나단 페닝턴(Jonathan Pennington)과 내가

함께 썼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번 책을 쓰면서 조나단과의 협업이 무척 그리웠다. 나는 조

나단의 지혜, 경험, 지식 및 선한 동역에 내가 얼마나 의지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앞

선 책에 대한 조나단의 귀중한 공헌을 뒤늦게 인정하는 셈이다. 조나단의 공헌은 전체 시

리즈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고, 특히 바울에 대한 이 책에도 영향을 주었다.

베이커 아카데믹의 훌륭하고 실력 있는 팀, 특히 짐 키니, 브라이언 다이어, 제임스 코르

스모, 더스틴 키퍼스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 책과 이 시리즈에 대한 그들의 비전에 감사 한다.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이 이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문서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변혁적 등대로서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게 도우려고 장르를 넘나드는 궤적을 계속 따라간다.

마지막으로, 내 사랑하는 친구이자 형제인 폴 데일에게 감사한다. 폴 데일이 이 책에 직

접 이바지하지는 않았지만, 내 삶에 대한 그의 이바지가 없었다면 이 책은 전혀 나올 수 없 었을 것이다.

바울의 글들은 2천 년 동안 그래왔듯이 오늘날에도 계속 독자들에게 도전을 주고, 영

감을 주고, 가르침을 주며, 혼란스럽게 하고, 분노하게 만든다. 실제로 바울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바울을 사랑하든 미워하든, 바울은

반응을 요구한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닌데, 바울의 설교와 가르침을 들었던 많은 사람이

바울을 따르거나 돌로 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수용사

미워할 사람은 미워하게 마련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거의 보편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지만, 안타깝게

도 바울은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람에게 미움을 받

아 왔다. 그 정도가 심해 패트릭 그레이는 학자, 영적 지도자, 저자, 철학자, 문화 아이콘을 포함

해 지난 2천 년 동안 바울을 비판한 사람들만을

전적으로 다룬 책을 저술하기까지 했다.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바울이 개신교를 완전히 지

속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작가 조지 버

나드 쇼는 바울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거나 행하

셨을 만한 것을 아무것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않

았다고 주장했다 심리학자 칼 융은 바울이 예수

님께 한마디 말씀하실 기회도 주지 않았다고 생

각했다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바울이 무자비하

게 광신적이고 독선적이었다고 말했다 나치 독

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바울의 교리가 지하 범죄

세계를 결집했다고 주장했다 작가 니코스 카잔 차키스는 바울이 예수님께 더 이상 교회는 예수 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묘사

했다 또한 성공회 주교 존 셸비 스퐁은 바울이 동

성애자였으며, 심하게 억압되어 있고, 자기혐오적

이며, 고집스럽게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1

의미에서 바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주님의 발자취

를 따르게 되어 기뻤을 것이다.

이 서론에서 우리는 오늘날 바울의 글을 기독교

성경으로 읽을 때 직면하는 몇 가지 어려움을 다

룬다. 여기에는 바울 서신을 둘러싼 끝없어 보이

는 학문 연구, 바울이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어떻 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이해 및 우리와 바울 사이

의 엄청난 역사적·문화적 거리가 포함된다. 다음

의 논의는 필연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지

만, 이와 같은 문제들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몇 가지 조언을 담고 있으며, 이어

지는 장들의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도 한다. 바울

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바울의 연대기, 자료의

성격, 바울 연구의 성격, 바울이 성경의 나머지 부

분과 어떻게 들어맞는지, 바울과 우리 사이의 역

사적 간격 및 바울의 글이 오늘날 교회의 삶과 어

떻게 관련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 끝에 제시된다.

바울의 연대기에 대해

우리는 진행하면서 바울의 연대기와 관련된 요소

들을 하나씩 맞춰 나가겠지만, 지금은 바울의 삶과

사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과 날짜들을 전체적으

로 조망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아래의 날짜들은 AD

50-52년 바울이 고린도에서 보냈던 시간에서 산출

되었는데, 총독 갈리오가(참고. 행 18:1) AD 51-

52년에 고린도에 있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바울의 연대기 나머지 부분은 이 확정된 날짜로부

터(AD 64년 로마 화재와 함께) 파악된다. 표의 관련

부분들은 책 전반에 걸쳐 필요에 따라 다시 제시될

것이다.

바울의 연대기

약 6-46년 1부: 바울의 출생과 거듭남

약 6년 출생

약 33년 “회심”과 사명 부여

약 33-35년 아라비아에서 보낸 기간

약 36년 회심 후 예루살렘 첫 방문

약 36-46년 길리기아와 시리아에서의 사역

바르톨로메오 몬타냐, <성 바울>, 1482년

약 46년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기근 구제 헌금 전달

약 46-48년 2부: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약 46년 안디옥에서 구브로로

약 46년 구브로에서 버가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약 46년 남부 갈라디아 지역의 도시들인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로

약 47년 버가로 돌아온 후 배를 타고 시리아 안디옥으로

약 48년 예루살렘 사도 회의

약 49년 이 무렵 갈라디아서 기록

약 49-52년 3부: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약 49년 시리아 안디옥에서 갈라디아를 거쳐 육로로 이동

약 49년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의 교회들

약 49년 아테네 방문

50-52년 고린도에서 18개월

50년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 기록

52년 에베소로 짧은 여행

52년 시리아 안디옥으로 귀환

약 52-57년 4부: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약 52년 시리아 안디옥에서 갈라디아를 거쳐 에베소로

약 52-55년 에베소에서 3년

약 54년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 기록

약 55년 마게도냐로 출발

약 56년 빌립보에서 고린도후서 기록

약 57년 고린도에서 3개월, 로마서 기록

약 57년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 인사

약 57년 가이사랴로 항해한 후 예루살렘으로

약 57-??년 5부: 그리스도를 위한 바울의 재판

약 57-59년 가이사랴에서 총독 벨릭스에게 투옥됨

약 59-60년 로마로 항해, 멜리데에서 3개월 체류

약 60-62년 로마에서 가택 연금

약 61년 빌립보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기록

약 63-??년 스페인 방문?

약 63년?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기록

64년 로마 대화재와 그리스도인 박해

약 65년? 바울 처형됨

자료에 대해

바울을 다루는 데는 다섯 가지 유형의 자료가 있다. 첫째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바울의

일곱 서신, 즉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 레몬서로서 모든 학자가 사도 바울이 기록했다는 데 동의한다. 둘째는 바울의 저작으로 여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바울 서신 개론

겨지지만 저자가 진짜 바울인지에 대해 모든 학자가

동의하지 않는 여섯 개의 서신들, 즉 에베소서, 골로새

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

서다. 셋째는 사도행전인데, 사도행전의 후반부는 주로

바울의 선교 여행과 사역을 서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넷째는 유세비우스, 테르툴리아누스, 로마의 클

레멘스와 같이 초대 교회사의 저명한 인물들이 바울에

대해 논평한 글들이다. 다섯째는 『바울과 데클라 행전』

처럼 사도 시대 훨씬 이후에 바울에 대해 쓰인 책들 이다.

이런 자료 중에서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논란의 여

지가 없는 서신들을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여긴다. 많

은 학자는 논란이 되는 서신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를

바울과 데클라 행전 『바울과 데클라 행전』은 2세기 작품으로

데클라라는 젊은 여성의 소설 같은 이야 기를 묘사한다 데클라는 이고니온에서 바 울의 설교를 듣고 바울의 메시지를 믿었으 며, 그 결과 약혼자와의 결혼을 거부했고, 여러 차례 순교에서 구원받았으며, 셀레우 키아에서 평생 사역했다 이 작품은 내용 때문에 초대 교부들에게 거부되었지만, 교 회 초기 수 세기 동안 비교적 인기가 있었 다 바울에 대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바 울과 데클라 행전』은 바울의 외모 묘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바울은 “키가 작고, 대 머리이며, 안짱다리에, 고귀한 풍모를 지 녔고, 눈썹이 맞닿아 있으며, 약간 매부리 코에, 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2

진정한 바울 저작으로 여긴다. 하지만 모든 학자가 이들을 바울의 저작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덜 권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

찬가지로 사도행전이 바울에 대한 주요 정보원이기는 하지만, 누가의 서술은 일부 학자에

의해 누가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여긴다. 바울에 대한 교회 인물들의 논

평은 바울의 생애에 발생한 사건들로부터 시간적으로 거리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사례별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울에 대한 외경 문헌들은 일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전설로 치 부된다.

이 책은 주로 바울의 글을 읽는 것에 관심이 있고 바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

로 덜 관심이 있으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바울의 서신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서신들과 논란이 되는 서신 모두에 똑같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누가의 바울 이야기 또한 중요한 자료인데 바울의 삶 이야기를 알지 못하고서는 바

울 서신들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는 누가의 서술 에 신중하게 접근할지 모르지만, 사도행전은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바울의 삶에 대한 가장

상세하고 권위 있는 서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누가의 서술은 절실히 필요한 맥락을 알

에베소서의 마지막 페이지(6:20-24)와 바울의 갈라디아서의 첫 페이지(1:1-8)의

그리스어 사본, AD 약 150년에서 250년으로 추정됨

바울에 대한 새 관점

바울의 글이 2천 년 동

안 존재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

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학술 문헌의 양만이 아

니다. 논의의 성격도 또

한 인상적이다. 다양한

문제에 대해 바울의 글

들이 재평가되며 서로

다른 렌즈를 통해 읽히

고 있으며 바울의 사상

에 대해 오랫동안 유지

되어 온 가정들도 재검

토되는 중이다. 다양한

학파를 통해 수많은 논

쟁과 새로운 통찰들이

제시되고 있는 오늘날은

바울에 관심을 가질 만

한 흥미진진한 시기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바울에 대한 가장 유명한(또는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악명 높은)

논쟁 중 하나는 소위 “바울에 대한 새 관점”(NPP)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학파의 사상을

요약하기는 어려운데, 주요 공헌자들(예를 들어, E. P. 샌더스, 제임스 던, N. T. 라이트)

각자가 다양한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을 관

통하는 공통된 실마리는 바울의 유대성에 대한 강조와 바울의 유대성이 믿음으로 말미암

는 칭의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일반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종교개혁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한 바 울의 진술을 주로 신자들이 선행이 아니라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식 에 대한 내용으로 읽어 왔다. 따라서 칭의는 “수직적” 개념(우리와 하나님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선행을 통한 우리의 공로

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새 관점은 칭의가 주로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이며, 바울이 비판

하는 행위들은 일반적인 선행이 아니라 구체적으

로 유대인의 모세 율법 준수라고 주장한다.

칭의의 수평적 측면이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의 화해에 대한 것으로, 이는 칭의가 주로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방식에 대한 것

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과 관련해 더 이상 유대인

과 이방인을 다르게 대하지 않으시리라는 점에 대

한 것임을 뜻한다. 구원은 유대인이 되는 것이나

유대 율법을 지키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구원은

E. P. 샌더스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은 1977

년에 출판된 E. P. 샌더스의 획기적인 저작 『바 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에 나타난 유대교에 대 한 샌더스의 관점이었다 3 샌더스는 율법주의적 유대교라는 두드러진 캐리커처를 해체하고, 대신 유대교 안의 “종교 패턴”을 묘사했는데, 샌더스는 이것을 “언약적 율법주의”라고 불렀다 구원은 율 법주의적 의로움이 아니라 신적 은혜에 기초한 것 으로 이해되었으며,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과 맺 으신 언약의 범위 안에서 속죄와 용서가 이루어 졌다 바울이 제2성전 시대의 유대인이었지만, 샌 더스는 바울의 종교 패턴이 샌더스가 개괄한 유대 교 패턴과 연속성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모세 율법의 준수나 할례나 유대 민족 정

체성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

이라는 동등한 기반 위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주어지므로,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영적으로 우월하지 않음을 뜻한다.

새 관점이 많은 논의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많은 신약학자는 새 관점의 특정 수정

점들은 받아들이되 반드시 새 관점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는 중도적 입장을 채택

했다. 칭의에 대한 바울의 논의가 일반적으로 유대인-이방인 관계와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게 되고 화해하는지의 맥락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바울

이 “행위”를 논의할 때 일반적으로 모세 율법의 행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도 사실

이다. 그러나 칭의에 수평적 측면(그리스도 안에서의 유대인-이방인 화해)이 있음을 새 관

점이 유익하게 드러냈음에도, 많은 학자는 칭의가 여전히 수직적 측면(인간이 하나님과 올

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에 대한 것이라는 새 관점 이전의 견해를 지지한다.

전반적으로 새 관점은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16세기에 마르틴 루터가 반대했던 중세 가 톨릭교와 같지 않았다는 역사적 현실을 회복했다. 새 관점은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 의라는 바울의 교리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하나가 되었는지에 대 한 바울의 이해에 주요 요소였다는

분을 공유한다고 주장해 왔다. 묵시주의는 바울 당시 유대교 안의 한 경향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을 억압자들에게서 구원하고, 세상에 정의를 회복하며, 악을 멸하기

위해 세상을 뒤흔드는 방식으로 행동하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묵시주의는 수 세기 동안 여

러 나라와 제국들에게 유대인들이 겪은 억압과 가증스러운 대우 앞에서 하나님이 침묵하

시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목적

성취를 위한 극적인 행동을 예상하는 것이었다.

유대 묵시주의는 우리가 이제 묵시 문헌이라 부르는 글들을 생산했다. 이런 작품들에는

보통 한 인간이 비밀스러운 하늘의 실재에 대한 특별한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미래의 극적

인 역사를 미리 엿본다.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이 묵시 문학의 고전적인 예이며, 이 장르

의 특성에 맞게 기괴한 일곱 머리 짐승과 같은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존재와 이미지로 가득

하다. 그런 이미지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라 상징적 가치를 지 닌 것으로서 우리의 세계와 이해를 넘어서는 실재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묵시적 바

울 학파는 바울의 글들이 어떤 의미에서든 묵시록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바울의 글들은

수용사

묵시록이 아니라 서신이다. 이들의 주장은 바울의 서신들이 바울 신학에 미친 묵시적 사상 의 영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에 대한 증거 중 일부는 나중에 탐구될 텐데 여기서는 묵시적 영향이

알베르트 슈바이처

묵시적 바울 학파의 초기 선구자는 프랑

스계 독일인 신학자 알베르트 슈바이처였

다. 슈바이처의 1931년 획기적인 저작 『사

도 바울의 신비주의』는 유대 묵시록들과

묵시적 세계관의 렌즈를 통해 바울의 신

학을 일관되게 묘사한다. 4 슈바이처는 바

울이 “철저한 종말론”을 표현하며 세상의

임박한 종말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울의 종말론은 천사적 세력과

악마적 세력에 대한 믿음과 구원에 대한

우주적 개념을 보여 주는데, 구원이 개인

적 거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바울의

중심 주제인 그리스도 신비주의(달리 말

하면 그리스도와의 연합)는 신자들이 다

가올 시대와 그 우주적 구속을 지금 경험

할 수 있게 한다 슈바이처의 작업은 20

세기 바울 연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슈바이처는 이후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현재 가봉)에 세운 병원을 포함한 인도주

의적 활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분명히 있다는 정도만 말하면 되겠다.

묵시적 바울 학파 안의 일부 학자는 바울이 묵시적 신

학자였으므로 바울은 실제로 언약적 신학자가 아니

었다거나, 바울이 인간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점진적이

고 느린 역사하심을 나타내는 구원사를 가르치지 않

았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의 저명한 지지자는 더글러스

캠벨인데, 캠벨은 묵시 사상이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느

린 수평적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극적인 수직적 개입

을 특징으로 하므로 구원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

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예를 들어, N. T. 라이트)은

캠벨에 반박해, 적어도 바울에게는 수직적인 것과 수평

적인 것이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는데, 바울이

묵시적 개념들과 구원사적 요소들을 모두 분명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바울에 대한

바울 학자가 이 문제에 대해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묵시적 바울 학파는 바울의 사상과 신

학에 대한 묵시적 유대교의 영향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주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바울의 글들을 더 큰 통찰력으로써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울의 유대성(또는 그 반대)

바울 연구에서 항상 존재하는 요소는 그리스-로마의 지적인 영향과 비교해 유대교가 바

울의 신념과 사상을 형성한 정도를 평가하려 해 왔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바울은 유대교

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유대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이스라엘 밖 그리스-로마 지

적 활동의 중심지에서 태어났으며, 비유대적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주었다. 한 세기 전의 바울 연구는 바울이 주로 그리스-로마 지적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는 견

해가 지배적이었다. 오늘날 상황은 역전되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위에서 소개한 바울에 대

한 새 관점과 묵시적 바울 운동 덕분이다. 일부 학자는 여전히 바울에 대한 그리스-로마

영향의 우선성을 주장하지만, 오늘날 대다수 학자는 유대교가 바울의 주된 지적 유산임을 확언한다. 이것은 바울이 비유대적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

이 영향을 받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필론과 같은 바울 당대의

다른 유대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바울은 본질적인 유대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리

스-로마 사상과 교류할 수 있었다.

이 논의의 결론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연스럽게 가정하는 바를 확인해 준다. 바

울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전파하는 데 유대 성경과 전통을 활용한 유대인이었다. 히브리

성경과 제2성전 유대교가 바울의 지적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주된 정보 출처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바울이 자신의 유대적 지적 유산에 의해 제한되지 않았으며, 누가가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을 묘사하는 것처럼(행 17장) 그리스 지식인들을 그들의 말과

생각을 사용해 설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실로 바울 자신 밖에 있는 지적

이고 영적인 유산에 대한 바울의 예리한 이해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의 사역이 지닌 근

본적인 특징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그런 활발한 논의의 소용돌이는 방향 감각을 잃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며, 어쩌면 위협 적이기까지 할 수 있다. 오늘날 독자들은 바울 연구를 특징짓는 수많은 장황한 책들, 복잡 한

바울 글들의 주요 요지는 어느 정도 성경 읽기 경험이 있는 대다수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명확하다. 실로 바울 서신들은 여전히 기독교 성경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 신자들에게 깊이 탐구하라고 권면한다.

바울 서신들에 대한 유익한 접근법은 정기적으로 및 전체로서 읽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서신에는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 세부 사항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런 것들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대신, 전체를 잘 파악하는 것이 까다로운 세부 사항 중 일부를 푸는 최고

방법이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서신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면 핵심 주제와 사상을 파

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제들과 개념들을 넘어, 바울 서신들이 믿음 공동체의 영적

건강을 위해 쓰였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 서신들은 오직 영적 묵상과 신학적

성찰을 위해 고안된 추상적인 신학 작품이 아니다. 예배를 불러일으키고, 마음과 생각을

형성하며, 그 결과로 적절한 행동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 서신들을 읽는 최악의 방

법은 바울의 본래 목회적이고 선교적인 의도에서부터 서신들을 분리하는 것이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

바울 서신들을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읽는 것도 중요하다. 바울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감히 말하면 매혹적이어서, 그의 서신들을 읽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성경의 나머

지 부분을 무시하기가 너무 쉽다. 실제로 역사는 단순히 바울을 너무 많이 읽어서 기독교

사상에 대한 편향된 접근법을 발전시키게 된 운동들, 신학자들, 설교자들의 사례로 가득

하다! 바울 서신들은 자기를 넘어 바깥을 가리키며, 바울의 주요 주제들과 관심사들이 더

넓은 성경적 가르침과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보여 준다. 서신들은 동시에 그리스도의 관점

에서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해석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바울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한

성경 전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요구한다. 따라서 바울 서신들에 대한 매우 유익한

접근법은 이들을 성경의 다른 책들과 함께 순환적 방식으로 읽는 것이다. 성경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바울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바울을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는 말은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좀 벅찰 수 있다. 열의 있는 독자들의 출발을 돕는 몇 가지 팁이 있다. 첫째, 대다

수 성경은 바울의 수백 개의 성경 인용, 언급, 암시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상호참고를 포 함한다. 상호참고된 구절들을 펼쳐 다양한 성경에 대한 바울의 언급의 요지를 파악하는 것

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바울을 원어인 그리스어로 읽는 사람들을 위해, 연합성서공

회(United Bible Societies)가 제작한 그리스어 신약성경(UBS5라고 불림)은 신약성경의

각 부분에 대한 성경 언급의 상세한 색인을 포함한다. 영어로 바울을 읽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도 UBS5 뒷부분의 성경 색인이 매우 유용할 수 있다.

둘째, 바울을 포함한 신약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확장적인 방식으로 인용했음을 기억하

는 것이 유익하다. 인용된 말씀만으로 저자의 완전한 의도를 전달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바울의 상호참고를 추적할 때는 맥락 속에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때때로 바울은

전체 단락이나 더 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87년 전”이라는 말이 현대 미국인들에

게 즉시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가리키는 것처럼, 더 넓은 구절을 나타내는

본문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우리는 인용문의 출처가 되는 본문의 더

넓은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상호참고의 추적과 함께,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성경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 바울은 때때로 상호참고를 통해 포착될 수 없는 방식으로 성경의 큰 주제들 과 이야기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바울의 논증을 파악하 려면 독자가 창세기에 개괄된 아브라함의 기본적인 서사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 하다. 상호참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조금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바울의 성 경 사용을 이해하는 최고 방법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읽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다.

넷째, 바울의 가르침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당히 달랐다는 제안이 자주 있어 왔다. 확

실히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르침 사이에는 많은 차

이가 있는데, 예수님과 바울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서로 다

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하는 서로 다른

교사였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런 차이들이 과장되어, 바울이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과 모

순된다거나 예수님의 그리스도교를 바울식으로 왜곡했다

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울은 심지어 기독교의 창

시자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든 주요 주장과 복음서 저자들의 예

수님에 대한 주장들이 예수님에 대한 바울의 주요 주장들

과 일치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예수

님은 성경의 성취로 오신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며, 하나

님으로부터 오셔서 우리 가운데 사셨고,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죽음을 물리치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아버지 의 오른편으로 승천하셨다. 예수님과 바울 모두 예수님의

수용사 기독교를 타락시킨 자로서의 바울

바울의 수많은 비판자 사이에서(위의 “미워할 사람은 미워하게 마련이다”를 보라) 공통적이고 일관적으로 나타나 는 비판은 바울이 기독교를 재구성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명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국 가의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은 예수님은 아마도 예수님 당대의 전형 적인 유대인이었을 테지만, 바울이 기 독교에 “반유대적 강조점”을 부여했다 고 말했다 또한 마하트마 간디는 “나 는 산상수훈과 바울의 서신들 사이에 큰 구분을

이방인이 예수님께 대한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가족에 합류함으로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이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과 바울 모두 모세의 옛 언약의 권위를 받아들이

면서도, 옛 언약이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음을 인정한다. 예수님과

바울 모두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데, 성령은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재하시는 동안 예수

님을 그의 추종자들과 연결하신다. 예수님과 바울 모두 하나님이 사람들의 은밀한 죄를 드

러내시고, 악을 멸하시며, 영원한 정의와 평화를 세우실 심판의 날을 내다본다. 예수님과

바울은 또한 죄를 용서하시고 예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아버지 하

나님을 제시한다. 예수님과 바울은 뚜렷한 목소리로 같은 합창단에서 같은 노래를 부른다.

따라서 이 둘은 경쟁적이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방식으로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과 우리 사이의 역사적 간극에 대해

2천 년 전 저자의 글을 읽는 데는 신중하게 헤쳐 나가야 할 여러 다른 어려움이 생긴다.

고대 문서의 주요 주제와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고대사의 전문 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의 주요한 역사적·문화적 간극을 인식

해야 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바울 서신 안의 일부 문제는 이 간극 때문에 도전적이고 당혹

스럽다. 바울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공유하지는 않는 여러 공유된 신념과 관점을 전제했

던 시대와 문화 속에서 글을 쓴다. 때때로 바울은 바울 당대의 공유된 신념, 관점, 문화에

도전하고, 다른 때는 기꺼이 그것들을 따라간다. 따라서 오늘날 바울 서신을 읽는 것이 우

리에게 까다로울 수 있는데, 이런 역사적 요소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어야 절실

히 필요한 맥락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바울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의 차이가 바울의 신학

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적용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또한

까다로울 수 있다.

우리와 바울 사이의 ‘간극’은 오늘날 많은 바울 연구를 일으킨다. 학자들이 바울을 역사

적·문화적 맥락 안에 위치시키고 그에 따라 바울이 의도한 의미를 밝히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바울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평균적인 독자는 (이 책과 같은 책들을 포함한) 다양한 사용하기 쉬운 자료들을 통해 바울 연구의 가장 본질적인 성

과에 접근할 수 있다. 한 권으로 충분한 유익한 자료는 크레이그 키너의 『IVP 성경 배경 주

석: 신약성경』(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New Testament)이다. 키너

는 성경 배경 분야의 존경받는 전문가이며, 이 한 권의 책은 대다수 독자가 바울과 우리 사

이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간극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좋은 스터

디 성경들도 유익한 도움을 주지만, 스터디 성경들은 어쩔 수 없이 피상적이며, 이 책의

독자들은 아마도 스터디 성경들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는 바울을 잘 읽기 위해 역사적 배경 정보가 필요하지만, 역사학 학위가 없으면 바울을 전 혀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바울 신학에 대해

신약학 연구에서 신약성경 저자들의 신학적 주장에 대한 많은 연구는 ‘학문적’이지 않다

고 여겨졌던 오랜 기간이 있었다. 신약학 연구를 역사적이고 문학적이며, 무엇보다도 학계

안에서 존경받을 만한 것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 또한 학문적 탐구를 신앙고백적(즉

교회) 의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유지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약성경 저자

들이 제기한 신학적 주장을 믿지 않는다 해도, 이들이 신학적 주장을 제기하기는 했다는

사실은 자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읽으려면 그 안에 담 긴 신학적 주장들을 이해하려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약성경 저서들은 역사적이고 문학적 인 문서일 뿐 아니라, 신학적 문서이기도 하며 그렇게 읽혀야 한다. 다행히도 신약학 연구 는 이런 신학적 텍스트의 신학적 요소들을 존중하는 더 합리적인 입장으로 이동했다(또는

이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약 신학이 상당한 재기에 성공했고 바울 신학도 그렇게 되

었다.

바울 신학은 바울의 서신들 전체에 걸친 그의 집합적 가르침을 모으는 매력적인 연구 분

야다. 많은 신약학자는 바울 신학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단권으로(N. T. 라이트는 두 권으

로) 펴내며 사도의 가르침을 일관성 있는 주제별 구성으로 담으려 했다. 다른 학자들은 바

울의 가르침 중 단일 주제를 다루는 방대한 책들을 저술했다. 바울 신학은 신약 신학 안의

하위 분야로 여겨진다. 신약 신학은 거의 같은 작업을 하지만 한 저자만이 아니라 신약성 경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바울 신학은 바울의 각 서신에 대한 상세한 주석에 의존하지만 모든 개별적인 조각을 서

로 연관시켜 바울의 신학적 사고를 표현하려 한다. 물론 그런 시도는 바울의 서신들이 특

정 상황에 대응해 쓰였으며 특정 사람들에게 특정 문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로써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바울의 이름으로 된 신약성경 서신들이 바울이 신학적으로 생각한 모 든 내용을 포착한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 바울과 같은

위의 “진화하는”이라는 언급과 일치하게, 많은 학자는 바울의 신학이 바울의 삶과 사역

의 과정에 걸쳐 변화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것은 자연스러웠을 테지만, 그런 변화의 성격

은 고려할 가치가 있다. 바울과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의 관계가 다르지만 반대되지 않다고

이해할 수 있듯이, 바울의 사상 변화는 이전에 견지했던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같

은 방향으로 진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표현된 견해는 바울이 놀랍도록 일

관된 사상가이며, 바울의 사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어지고 확장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청중의 필요에 따라 다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바울의 신학은 항상 사역과 선교의 맥

락에서 제시된다. 이것은 바울의 어떤 서신들도 서로 같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바

울이 비슷한 문제들을 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방향 수정의 증

거가 아니며(다른 저자설의 증거도 아니며) 오히려 창의적이고 적응력 있는 사고가 작동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내 생각에, 바울 안에서 모순을 보거나 또는 신속히 다른 저자 설에

의지하는 대다수 학문적 주장은 바울을 단순히 과소평가한 결과다. 바울의 명백히 탁월한

지성을 고려할 때, 지적 측면에서 바울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조금 어리석어 보인다. 위대한 지성을 가진 자는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고 생각을

재구성할 수 있다. 바울이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을 볼 때 놀라지 말아야 한다.

바울의 실천적 적용에 대해

바울은 독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보통 거리

낌 없이 말한다. 그러나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복종해

야 할 지시를 내리는 도덕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바울의 윤리적 내용은 항상 신학적

논증과 실재에 대한 바울의 신학적 이해에 근거한다. 이 특징은 다른 서신들에 비해 어떤

서신들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에베소서가 그러하다. 바울은 에베소서의

전반부를 견고한 신학적 논증을 전개하는 데 할애하는데, 이 신학적 논증은 그다음 후반부

에서 교회 삶에 적용된다. 서신의 전반부가 없으면 후반부의 지시들은 힘과 근거를 잃을 것이다. 실로 후반부의 가르침들은 바울의 신학적 논증에서 자연스럽게 넘쳐흐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낫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독교 신학에서 불가분하게 흘러나온다. 둘 중 하

나가 다른 하나 없이 존재한다면 그 자체로 타락한 캐리커처가 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오늘날 교회 삶에 바울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지 묻기

이다. 길에서 놀면 차에 칠 수 있다. “내가 가장 잘 아니까 내가 말한 대로 해”라는 부모의 주장이 정당할 수 있지만, 자녀들이 지시의 이유를 이해한다면 또한 그들도 차에 치이는

것을 피하고 싶다면, 이 지시에 더 순종하고 싶어질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떤 상황에서는, 예를 들어, 조용한 막다른 골목이거나 보행자 전용 도로라면, 그 자녀들이 길에서 노는 것

이 괜찮다고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 작은 예시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바울보다

더 잘 안다는 생각이 들면 바울의 지시를 무시해도 된다고 권고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시

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지시가 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낫다

는 요지를 전달할 뿐이다.

그럼에도 바울의 구체적인 적용이 더 이상 오늘날에 의미가 없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지시들의 경우 그 이면의 신학적 논리를 이해하면, 우리는 현대의 필요와 도전

에 응하는 방식으로 바울의 사상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

에게 자기 손으로 일하라고 말한다(살전 4:11). 여기서 중요한 요지는 신자들이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기보다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이 가르침을 오직 육체노동(손으로 하는 일)만이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다는 뜻으

로 오늘날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다른 종류의 일이 아니라 오직 육체노동에

종사해야 한다는 신학적이거나 다른 좋은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학적 의도, 즉

교회 구성원들이 가능한 한 자신의 복지를 책임져서 교회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만을 돌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바울의 지시를 오늘날에 의

미 있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인식해야 하는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바울의 비전에서 많은 부분이 그리 스도인이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신자들

이 하나님의 입양된 자녀이자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이라는 강한 정체성에 사로잡힌다면,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욱이 자

신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 부

활, 승천에 참여한다는 것을 신자들이 깊이 안다면, 이것

도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바

울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자들의 정체성이 일차적

이며 신자들의 행동은 이차적이다.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 야 하는지를 파악하려면 먼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알아

야 한다.

바울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데 있어 위의 사항들

은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점에 불과하다. 핵심만 말하

수용사

서로 문안하라……따뜻한 악수로?

로마서 16장 16절에서 바울은 독자들에 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라고 지시하는데, 이는 (성별에 상관없이)

뺨에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는 바울 당 대(및 오늘날)의 지중해 관습을 반영한 다. 더 절제된 영국 독자들에게 이 지시 에 담긴 의도를 전달하려고 J. B. 필립스 의 신약성경 번역은 이 구절을 “따뜻한 악수로 두루 서로 문안하라”라고 옮겼다

면,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삶에 항상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으며 여러 단계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용은 또한 항상 명백하지도 않다. 신중한 성찰을 요구할 것이며, 삶이

복잡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용하기가 때때로 복잡할 것이다.

이 책에 대해

바울을 기독교 성경으로 읽으려는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나아가야 하며, 항상

이 본문들을 잘 다루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고 본문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본문들

의 신학적 깊이를 감상하며,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 유익이 되는 방식으로 본문들을 적용하

려고 애써야 한다. 이 요소들과 그 이상의 내용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이 책의 방향은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바울을 읽고, 바울의 주제들, 바울의 신학 및 오늘날

교회를 위한 바울의 의미를 다루는 것이다.

바울의 서신들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울의 삶과 사명의

맥락에서 서신들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서신들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공명하는

데, 왜냐하면 바울이 글을 쓸 때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및 바울이 말하는 대

상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교과서

의 핵심 요소는 바울의 삶과 사명의 관점에서 그의 각 서신에 접근하는 것이다. 바울을 이

런 식으로 읽기 위해, 이 책은 바울의 삶과 사명에 관련된 주요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구

성되어 있다. 이 에피소드들을 “부”(部)로 삼아 1부에서 5부까지 만들었다. 바울의 각 서

신은 이 “부”들 중 하나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 다음 6부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바울의

신학과 오늘날 기독교 성경으로서 바울의 서신들을 읽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것은 각 서신이 연관된 부의 기간에 쓰였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는 아

마도 바울이 로마에 있었던 5부 동안 쓰였지만, 여기서 빌립보서는 3부에 포함되어 있는

데 바울이 빌립보에 있었던 때가 3부이기 때문이다. 빌립보서가 빌립보의 교회를 다루고

있으므로, 바울이 서신을 썼을 당시 바울이 우연히 있었던 곳의 맥락에서 빌립보서를 읽는 것보다(물론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빌립보에서의 바울 사역의 맥락에서

빌립보서를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책에서 서신들을 다루는 순서는 성경에 나타나는 순서가 아니라 역사적(위에서 언급

했듯, 어느 정도만) 순서다. 바울의 서신들이 성경적 배열된 순서에 익숙하다면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서신들을 역사적 맥락에 따라 새롭게 읽기 위해 약간의 혼란을 헤

쳐 나가는 작업은 가치가 있다.

• 1부는 바울의 탄생, 초기 생애 및 거듭남을 다룬다.

• 2부는 바울의 1차 선교 여행과 그와 연관된 서신(갈라디아서)을 다룬다.

• 3부는 바울의 2차 선교 여행과 그와 연관된 서신들(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을 다룬다.

• 4부는 바울의 3차 선교 여행과 그와 연관된 서신들(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 서)을 다룬다.

• 5부는 바울의 로마 투옥에서부터 삶의 마지막까지의 기간과 그와 연관된 서신

들(로마서,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디도서)을 다룬다.

• 6부는 바울의 신학과 우리가 오늘날 바울의 서신들을 읽는 방법을 다룬다.

일부 독자는 똑같은 시리즈인 『기독교 성경 읽기』에 속하는 조나단 페닝턴과 나의 『기독 교 성경으로서의 신약성경 개론』을 이미

수 있다. 우리의 이 책은 그 책을 보완 하기 위한 것으로, 신약성경에 대한 바울의 공헌을 더 깊이 파고들고

을 더 자세히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은 바울과

글에 대한 독립적인 입문서이기도 하다.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신약성경 개론』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성경 본문에 대해 다른 이

들이 하는 말만 읽지 말고 성경 본문 자체를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으로 바울

의 삶과 서신들을 탐구해 나갈수록 바울이 말하는 핵심 요점이나 강조점들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짧은 구절들을 읽도록 여러 번 요청받을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것

은 진도를 나가며 각 서신 전체를 읽는 것이다. 서신들은 그리 길지 않다! 『기독교 성경으로서의 신약성경 개론』의 접근 방식과 비슷하게, 각 장에는 다양한 범주

로 조직된 보충 설명란이 있다. 역사적 배경, 문학적 특징, 신학적 이슈, 정경적 연관성 및 수용사가 그 범주들인데. 이 책은 지중해에서 온 엽서라는 범주를 하나 더 추가한다.

역사적 배경

역사적 배경이라는 제목의 보충 설명은 본문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정보를 준

다. 바울의 서신들을 구성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정보도 이에 포함되며 본문에 반영된 특정

사건들, 관습들, 장소들, 관행들을 밝히는 문화적 정치적 또는 지리적 정보도 포함될 수 있다.

문학적 특징

문학적 특징이라는 제목의 보충 설명은 바울의 서신들이 어떻게 쓰였고 저자와 청중은 누구인지

에 대한 질문과 각 서신의 문학적 구성에 관련된 그 외의 질문들에 초점을 맞춘다

신학적 이슈

신학적 이슈라는 제목의 보충 설명은 바울의 서신들이 제기하는 신학적 질문, 문제 또는 통찰 을 논의한다 특정 본문과 더 넓은 신학적 성찰 사이의 연결을 만들고 바울의 신학적 사고를 더 깊이 파고드는 데 도움을 준다

정경적 연관성

정경적 연관성이라는 제목의 보충 설명은 성경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몇 가지 방

식을 보여 준다 정경은 아름답게 다양하지만 통일된 목소리를 공유한다 이 보충 설명은 특정 바

울 본문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대화하며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수용사

수용사라는 제목의 보충 설명은 바울의 서신 가운데 일부분이 교회사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

고 , 이해되고, 적용되었는지에 대한 예들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수천 년에 걸쳐 다른

사람들이 이 본문들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이해하게 되며 새로운 눈으로 바울의 본문들을

읽는 데 도움을 얻는다.

지중해에서 온 엽서

지중해에서 온 엽서라는 제목의 보충 설명은 오늘날 방문할 수 있는 바울과 관련된 다양한 장소

들을 소개하고 실제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 장소 대부분이 바울 시대 이후 극

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바울의 삶과 사명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줄 수 있다 이

장소들은 종종 상상력과 모험심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곳들이다

교수님들께 드리는 말씀

교수님께, 저는 교수님이 하시는 일에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을 교수님의 수업에 지정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개인 독자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데도 좋겠지만, 교실 사

용을 위해 설계된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이 교수님의 티칭 사역을 조금 더 쉽게 해 드리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저는 교수님이 이 책으로 가르치는 것을 정말로 즐기시기를 바랍

니다! 이 책에 있는 장의 수는 표준 학기의 길이에 맞게 구성되어 있고, 토론 질문이 포함

되어 있으며, 핵심 내용 외에도 역사적 일화, 흥미로운 여담, 더 깊이 공부하도록 자극하는

요소들이 적절히 담겨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 책은 바울의 서신들을 정경 순서(신약성경에 제시된 순서)로 제

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서신들에 접근하는 최고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하면 각

서신을 바울의 전기적 서사에 고정함으로 그들을 잘 읽는 데 필요한 역사적 틀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부 교수님은 다양한 이유로 정경 순서를 고수하거나 아니면 완

전히 다른 순서를 선호하실 수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이 책의 주요 장들은 어떤 순서로 읽

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서론과 결론 장은 원래 순서 그대로 읽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신(들)을 다루는 각 장에 들어갈 때 학생들이 먼저 그 장이

속한 부의 서론을 읽도록 제안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8장 “빌립보서”는 3부 “바울의

2차 선교 여행” 안에 있으므로, 학생들은 8장을 읽기 전에 3부의 서론을 읽어야 합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바울의 빌립보 방문의 배경 이야기, 빌립보에서의 바울 사역 및 로마에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기 전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울의 출생과 중생 서론

1부 연대기: 바울의 출생과 중생(약 6-46년)

약 6년 출생

약 33년 ‘회심’과 사명 부여

약 33-35년 아라비아에서 보낸 기간

약 36년 회심 후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

약 36-46년 길리기아와 수리아에서의 사역

약 46년 안디옥에서 모은 기근 구제금을 예루살렘으로 전달

출생

AD 6년경, 사울은 현대 튀르키예(구 터키)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로마 도시 다소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했으며(빌 3:5), 그의 이름은 베냐민 지파

출신 중 가장 저명한 인물인 사울왕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울의 혈통과

종교적 유산은 유대인이었지만(빌 3:5), 시민

권은 로마인이었다. 이는 로마 제국의 대다수

주민이 누릴 수 없는 특권이었다.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으로서 사울은 히브리 이름인 사울과

로마 이름인 바울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사울

은 아람어(행 21:40; 22:2)와 그리스어(21:37

및 그의 모든 서신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에 능통했다. 모세의 율법(빌 3:5)과 조상들의

다소에서의 출생

역사적 배경

다소는 로마 속주 길리기아의 수도로서 중요한 도시 였으며, 대학으로 유명했다 다소는 BC 64년에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다 다 소 출신의 또 다른 유명 인물로는 스토아 철학자 아테 노도로스가 있었는데, 아테노도로스는 로마 황제 옥 타비아누스의 교사 지위까지 올랐다 사울의 부모나

조부모가 BC 63년 폼페이우스의 예루살렘 침공 이후

유대 지역의 기스칼라(Gischala, 개역개정 “기스라”)

에서 전쟁 포로로 다소에 끌려왔을 가능성도 있다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아카이아

코린토스

테살로니키 갈라티아

아테네

지중해

바울 시대의 지중해

유대인 디아스포라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인들 또는 유대인들이 조상의

고향인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하며 흩어진 현상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BC 8세기와 6세기에 앗수르와 바벨론 에 의해 강제 추방당해 이스라엘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에게 해 제도, 그리스, 소아시아, 키레나이카, 이탈리아, 이집트 등

이스라엘 밖에 자발적으로 형성된 유대인 정착지들도 여럿 있 었다. 1세기 무렵에는 팔레스타인 밖에 약 500만 명의 유대인 이 살고 있었고, 팔레스타인 안에는 100만 명이 살고 있었다

역사적 배경

로마 시민으로 태어남

사울은 아버지나 조부에게 로마 시민권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나 조부는 아마도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거나 뛰어

난 공로를 인정받아 자유민 지위를 얻은 후 로마 시민이 되었을

것이다 시민권은 특권적인 정치적 법적 지위로서 (남성에게)

투표권과 제국 전역에서 특정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부여했다

로마 시민들은 합법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와 치안판사들의 결 정에 대해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로마 시민들은 고문 이나 채찍질을 당할

아시아

콜로사이

카파도키아

타르수스

안티오크

다마스쿠스

카이사레아

이 크다.

사울은 십대 때 다소를 떠나 예루살렘

으로 갔는데, 아마도 가족과 함께였을

것이다(행 23:16). 예루살렘으로 간 이

유는 저명한 교사 가말리엘 밑에서 공부

하기 위해서였다(22:3). 사울은 바리새

인이 되었고 또래에 비해 빠르게 성장 했다(갈 1:14). 예수님의 추종자들로 구

성된 “그 도”라고 알려진 새로운 운동과

마주했을 때, 사울은 스승과 뚜렷하게

다른 관점을 취했다. 가말리엘은 평화를

주장했지만(행 5:34-39), 사울은 새로

운 운동에 대한 열렬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8:3; 9:1; 26:11).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임당한 사

건이 사울의 폭력적인 분노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크다(7:57-8:3).

스데반이 죽은 직후, 사울은 예루살렘 교회

에 대한 극심한 박해의 선봉에 섰고, 많은

신자가 주변 지역으로 흩어지게 했다. 사울은

지체하지 않고 교회를 파괴하려 했다. 집마다

다니며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감옥으로 끌고

갔다(행 8:1-3; 11:19; 갈 1:13, 23). 사울은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폭력 사용을 승인했다.

살해를 지지했으며(행 8:1; 26:10),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위협과 살기를 내뿜었다(9:1).

하지만 사울은 대제사장의 지원을 얻는 등 다

른 방법들도 동원했다.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이미 예루살렘 너머로 흩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던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수리아 다메섹의

회당들에 보내는 공문을 요청했다. 제자들을

포로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였다(9:1-2). 교회에 대한 사울의 강렬한 박

해는 조상들의 전통에 대한 열심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행 22:3; 갈 1:14; 빌 3:6).

중생

사울은 기독교의 공공의 적 1호로 빠

르게 자리매김했다. 사울의 폭력적인 열

심은 자신이 진심으로 우상숭배적이고

악하다고 믿었던 운동을 겨냥한 것이

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다음에 일

어난 일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다메섹

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은 눈부신 빛에

둘러싸였고, 그 빛 때문에 땅에 쓰러

졌다. 한 음성이 사울에게 말했다. “사

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 하느냐?”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사울이

미카엘 다마스킨, <스데반의 돌형>, 1590년

열심과 폭력

역사적 배경

제2성전 시대의 많은 유대인은 열렬한 적대감을 존중했으며, 비느하스, 엘리야, 맛다디아 같은 인물들은 하나님과 모세의 율법에 대한 헌신으로 칭송받았다 아론의 손자 중 한 명인 비

느하스는 우상숭배자로 여겨진 미디안 여인과 전 공동체가 다

아는 가운데 간음을 저지르던 이스라엘 남자를 죽였다 비느하 스는 하나님에게 그 열심을 칭찬받았고, 그의 행동은 우상숭배 로 인한 재앙을 끝냈다(민 25:6-13). 선지자 엘리야의 열심 역 시 하나님의 영예를 회복하려고 거짓 신 바알 숭배자들에 대 한 폭력을 불러일으켰다(왕상 18-19장). BC 167년, 요하난의 아들 맛다디아는 율법에 대한 열심 때문에, 자신에게 그리스 신들을 숭배하라고 명령했던 셀레우코스 관리를 죽였다 이 행 동은 마카베오 반란을 촉발했고, 유대 지역은 셀레우코스의 지

배에서부터 일시적인 자유를 얻었다 비느하스, 엘리야, 맛다 디아는 종교적 열심과 폭력 사이의 연결을 보여 주었으며, 이 는 교회에 대한 사울의 분노에 영감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카라바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의 회심>, 1600년

물었을 때, 그 음성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라고 대

답했다. 예수님은 사울을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으

로 임명했다고 말씀하셨다. 예

수님은 반대자들한테서 사울을

구하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게 보내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

아서고, 죄 사함을 받으며, 예수

님을 믿어 구별된 자들과 합류

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러나 당장은 사울이 일어나 도

시로 들어가야 했다. 무엇을 해

야 할지에 대해 그곳에서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빛의 환상

을 본 후, 사울은 자신이 눈이

멀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사

울과 함께 여행하던 사람들이 사울의 손을 잡고 다메섹으로 인도했고, 사울은 그곳에서 사

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행 9:3-8; 22:6-11; 26:13-18).

그 사이 다메섹에 있던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환상을 보았는데,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가

서 사울을 찾으라고 지시하셨다. 사울의 교회 박해를 잘 알고 있었던 아나니아는 거부했지

만, 주님이 사울이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 한 나의 그릇”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가서 사울을 찾았고 사울에게 손을

얹고 “사울 형제”라고 불렀다. 주님이 아나니아를 보내신 것은 사울이 시력을 회복하고 성

령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이 사울을 임명하셔서 의인이신 예

수님을 보고 듣게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고 말했다. 그 순간,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 았고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9:10-19; 22:12-16).

사울은 다메섹에 “얼마 동안” 머물렀다(얼마나 오래인지는 알 수 없다). 사울은 즉시 회

당들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전하기 시작했다. 사울은 원래 예수님의 추 종자들을 사냥하고 투옥하기 위해 다메섹의 회당들에 갈 계획이었지만 그 대신 이제 예수

님의 추종자로서 회당들을 방문했다. 이런 반전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울 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이 놀랐는데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 그의 능력이 점점 더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울은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의 표적이 되었지만, 성벽의 구

멍을 통해 다메섹을 탈출했다(9:19b-25; 고후 11:33).

준비

역사 기록은 항상 선택적이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사도행전의 누가의 기록에서 생략

되었는데, 사도행전은 다메섹에서 바로 예루살렘으로 건너뛴다(행 9:26; 22:17; 26:20).

그러나 바울 자신은 그 둘 사이에 끼어 있는 한 에피소드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1장 17-

18절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신 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

로 돌아갔고 그 후 삼 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라고 보고한다. 이것이 바울이 아라비 아로 갔다는 첫 번째 증거다. 두 번째 증거는 고린도후서 11장 32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아레다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성을

지켰”다고 언급한다. 아레다왕은 아라비아라고

도 알려진 나바테아 왕국의 통치자였다. 따라서

아라비아에 머무는 동안 사울이 어떻게든 (아마

도 설교를 통해) 왕의 비위를 거슬렀고 그래서

왕이 사울을 붙잡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3년 동안 사울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몇 가지 단서는 남아 있다. 첫째,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울은 나바테아 왕과 문

제가 있었는데, 사울의 나머지 이야기를 볼 때

이는 아마도 설교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둘째, 우리가 알다시피 사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회복되자마자 즉시 다메섹에서 설교를 시작 했다. 이런 즉시성을 고려하면, 사울이 아라비아

에 머무는 동안에도 계속 설교했다는 결론을 내

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두 가지 단서를 종합 할 때, 사울이 아라비아에서

나바테아인들은 누구였는가?

나바테아인들은 북부 아라비아와 남부 레반트 지역 에 거주했던 고대 아랍 민족이었다 이들은 아라비 아 사막 전역을 여행하던 유목 베두인 부족들이었 다 나바테아 왕국은 BC 4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등장했으며, 페트라를 수도로 삼았다 나바테아 왕 국은 AD 106년에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고, 사울이 나바테아인들 가운데서 설교한 지 수 세기 후에 기 독교로 개종했다 지중해에서 온 엽서 페트라 페트라는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현재는 요르 단의 일부로, 시리아 다메섹에서 바로 남쪽에 있다 페트라는 도시 전체가 돌에 새겨져 있어 정말 장관

이라 방문할 만하다 가장 유명한 장소는 보물창고 (Treasury)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 나오는 곳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덤 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곳에 묻혀 있을까? 바로 다름 아닌 아레다 4세다 바울을 추격했던 바로 그 왕이다

아라비아를 다녀온 후 사울은 수리아의 다메섹으로 돌아왔지만, 사울을 체포하려는 아

레다왕(고후 11:32-33)과 사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행 9:23-25)을 피해 도망쳐야

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지 3년 후, 사울은 마침내 완전

히 변화된 사람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신자들은 사울이 진정한 예

수님의 추종자인지 회의적이었고 사울을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바나바가 사울을 사도들에

게 데려가 사울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사도들은 사울을 받아들였고, 함께 시간을 보

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설교했는데, 이는 다메섹에서

와 마찬가지로 다시 유대인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메섹에서처럼 사울

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 사울이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주님이 환상 중에 사울에 게 말씀하시며, 위협을 피해 예루살렘을 빨리 떠나라고 하셨고, 그를 멀리 이방인들에게

보내실 것이라고 하셨다. 일부 신자가 사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게 되자, 사울을 해안가

의 가이사랴로 데려갔고, 그는 그곳에서 고향 다소로 배를 타고 떠났다(9:26-30; 22:1721).

10년이 흘렀다. 수리아 안디옥의 교회가 크게 성장한 후,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그

곳에 보내 돕게 했다. 도움이 필요했던 바나바는 다소로 가서 사울을 찾아 안디옥으로 데

려왔다. 1년 동안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에서 함께 섬겼고, 안디옥 교회는 계속 확장되

Baker Publishing Group

었다(11:19-26).

사도행전은 이 시기에 대해 비교적 적은 지면을 할애하지만, 사울이 그리스도를 만난 때

부터 안디옥에서의 사역까지의 기간은 약 14년에 달한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거의 즉시

설교를 시작한 것을 보면, 그가 그 시간의 대부분을 설교로 보냈을 것이라 알 수 있다. 그

리고 그 시간의 거의 전부는 예루살렘 밖에서 보낸 것이었다. 따라서 사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상당히 광범위한 ‘부화’ 기간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진리에 담긴 함의를 이

해하는 데는 분명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잘 훈련된 바리새인으로서 사울의 광범위한 성경

지식은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었다. 사울은 자신의 종말론적 틀을 재고하 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워야 했다. 이들 중 어느 것도 자동

으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 부화 기간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바울의 신학적·사역적 준비에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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