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명기 비평적 해석
4.1. 신명기와 요시야 개혁
이 책에서 모세를 3인칭으로 말한 부분들, 특히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사
는 모세 자신이 기록한 것 같지 않다고 고대에 이미 알려졌었다. 그러나 모
세 저작설은 현대에 와서야 조직적으로 의심되기 시작했다. 드 베테 ( W. M. L.
de Wette, 1805 ) 는 신명기가 앞선 책들 ( 그는 앞선 책들은 모세의 책들이라고 여겼다 ) 과 양
식과 내용면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모세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주
장은 이 책이 다른 책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두 번째 율법”이라는 옛 개념
을 새로운 발판 위에 놓게 만들었다. 드 베테는 요시야 왕의 개혁 ( 왕하 2223장 ) 이 신명기 저술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고 무심코 진술했다. 그 이유
는 거기 ( 22:8 ) 에 성전을 재건하는 동안 “율법책”이 발견됐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관찰은 한 세기 동안 구약학계를 지배했던 벨하우젠 ( J. Wellhausen, 1885 ) 의 오경 분석 기반의 핵심 지지대가 되었다. 그 분석은 신명
기 연구의 초점을 이스라엘의 고대 기원이 아니라 유다 왕조 존속의 마지
막 반세기에 두도록 만들었다.
신명기에 대한 고전적 비평은 입문서들과 주석서들에 잘 기록되어 있
다 ( 예를 들면, Mayes 1994: 29–55; Tigay 1996: xix–xxvi에 ).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오경 문헌은 이스라엘 역사의 몇몇 다른 시대로부터 나왔으며, 네 개의 원
자료 ( source documents ) 인 J, E, D, P로부터 작성되었다. 가장 초기의 글은 통
일 왕조 ( BC 10-8세기 ) 에서 온 J와 E에서 볼 수 있다 ( 대개 사실상 하나로, 즉 JE로 여겨진
다 ). 이 자료들에는 이스라엘 기원에 대한 가장 초기의 신학화 작업과 언약
적이고 윤리적인 사고의 발단이 포함되어 있다. 윤리적 사고는 J보다 E에서 더 발전되었다. 가장 초기의 법전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정황 속에서다 ( 출
20:22-23:19, 학자들은 “언약책”[Book of the Covenant, BC]이라고 부른다 ). 신명기는 자료 D와
대략 일치하며, 우리가 봤던 것처럼, 열왕기하 22-23장에 기록된 종교개혁 의 계기가 되었거나 또는 그 소산물이다. 그 “율법책”은 신명기의 한 형태
로 여겨졌으며, 신명기가 매우 비슷한 용어들로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과 맥
을 같이한다 ( 신 28:58, 61; 31:26. 수 1:8을 참고하라 ). ( 요시야 개혁 연대가 대하 34-35장과는 약간 다르다. 대하 34-35장은 그 개혁이 BC 628년에 시작됐으며 율법책 발견이 개혁에 신선한 자극만 주었다 고 제시한다. 벨하우젠은 역대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몇몇 후대 학자들은 율법책을 중심으로 기
사가 기록된 열왕기보다 역대기가 사실에 더 가깝다고 여겼다. Nicholson 1967: 8–11. )
이런 관점에 따르면, 신명기의 주 목적은 모든 경쟁 성소들을 파괴하고
부정하게 함으로써 여호와의 예배를 예루살렘 성전에 집중시키는 것이었
다. 즉 “중앙화”하는 것이었다. 예배 장소의 복수화는 초기에 규범이었었
다. 사무엘 ( 삼상 9:14; 10:3 ) 과 엘리야 ( 왕상 18 ) 이야기, 그리고 출애굽기 20장 24절의 예배법이 증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열왕기상 21-22장의 기록에 따
르면, 그 개혁은 다른 성소에서의 예배가 여호와께 합당하지 않았음을, 또
는 합당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합당하지 않은 이유는 공공연하게 다
른 신들에게 봉헌했든지, 아니면 그저 혼합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신
명기는 언약에 대한 새롭고 높아진 이해를 나타냈으며, 이스라엘 ( 또는 엄밀히
말하면 유다 ) 이 여호와에게 충성해야 함을 강조했다. 신명기는 다른 관심을 두
었는데, 특히 종교의 영적이고 윤리적인 개념의 향상에 관심을 두었다. 그
러나 역설적으로 종교의 제사장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지배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그 후 P ( 예배와 제사와 제사장에 대한 율법들을 상세히 설명한 포로기 자료이며 레위기에
두드러지게 나온다 ) 에서 계속되었다.
이 “중앙화”의 도구는 제단법이었으며, 이 해석에 따르면 그 제단법은 신 명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요소였다. 이 법의 완전한 공식은 신명기 12장
5절에서 볼 수 있으며, 신명기 12-26장의 법전 전체에서 다양한 형태로 반 복해서 나온다. 이 공식에서 “그곳”은 예루살렘의 암호화 이름으로 여겨졌 으며, 모세의 배경의 정통을 유지하기 위해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됐다. ( 이 공식에 대한 해석은 신 12장에 있는 “주석”에서 더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
이 재구성에서, 신명기는 7세기에 있었던 종교 대개혁과 분리될 수 없다. 이 개혁은 평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자신들의
지역 성소들에서 예배하던 것에 익숙했던 그들은 갑자기 이 모든 것을 제 거했다. 그들은 더 이상 이 성소들에서 제사를 드리거나 절기를 지킬 수 없 었다. 그들의 제사장들은 자격을 박탈당했고 그 장소들은 폐허로 남게 됐
다. 오랜 여정을 통과하면서, 예루살렘은 유일하게 인정된 예배 장소가 되 었다. 그래서 이 개혁 때문에 벌어진 한 가지 결과는 시행되던 예배 행위의 양이 실질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는 점이며,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의도 된 결과라고 여긴다 ( 고전적인 현대 해석은 Weinfeld 1972: 190이다. Tigay 1996: xvii을 참고하 라 ). 신명기는 제사장들의 영향력과, 일반적으로 “성례” 종교, 즉 예배와 제 사 의식으로 구성된 종교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신학을 촉진시킨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명기의 많은 특성이 이런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신명기 12장에 “세
속적 도축”을 허락한 것, 예를 들어 유다 전체에서 고기를 집에서 먹을 수
신명기 비평적 해석
있도록 허락한 것은 중앙화의 실질적인 결과였을 뿐 아니라 강한 이념적
추진력, 즉 고기는 제사 봉헌물로서만 도축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도전 일 수 있다. 예배자와 권속을 위한 절기 음식으로서, 그리고 3년마다 가난
한 자들을 돕는 수단으로서의 십일조 ( 14:22-29 ) 는 레위인들의 특권에서 일부
러 제거한 것처럼 보인다 ( 민 18:21-25 ). 전에는 일종의 금기였던 “안식”년은 땅을 “쉬도록” 하는 “신성” 규례였는데 ( 레 25:2-7; 26:34-35 ), 이제는 엄격한 사
회 정책이고 빚 탕감을 위한 기회가 되었다 ( 신 15:1–11; Weinfeld 1991: 27–28 ). 노
예를 풀어 주는 것도 신성한 면을 잃게 되었고 ( 출 21:6; “하나님 앞에서” ), 또 여자 를 남자와 동등하게 대우하면서 사회사상에 진전을 이루었다 ( 신 15:12, 17 ). 티
게이 ( Tigay ) 의 말에 따르면, “신명기의 목적은 제사와 제사장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던 것에서 종교를 해방시킴으로써 종교를 영성화하는 것이다” ( 1996: xvii ). 이것이 벨하우젠이 자신의 JEDP 분석에서 D문서라고 밝혔던 것의 본 질이다.
이 시점에서 신명기와 고대 근동 정치 조약 사이의 유사점을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유사점이 신명기의 모든 현
대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폰 라드 ( von Rad ) 는 그의 주석에서 고대 근동 자료에 대한 언급 없이 신명
기의 언약적 구조를 관찰했으며 ( 1966: 12 ), 그 구조가 제의 절기의 예배서로
서의 역할에서 기인했다고 보았다. 특히 20세기 히타이트 봉신 조약의 형
태의 중요성은 클라인 ( Kline, 1963 ) 과 키첸 ( Kitchen, 1966: 90-102 ) 에 의해 알려졌 다. 그 형태의 주요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서문. 조약과 조약 당사자들을
알린다. (2) 역사적 서언. 양자 사이의 이전 관계를 열거한다. (3) 규정. (4) 문서 보관. 정기적으로 공중 앞에서 낭독할 목적이다. (5) 증인들. (6) 축복
과 저주 ( Kitchen 1966: 92–93. Wenham 1971c: 206–212를 참고하라 ). 이 형태는 약간 다
르게 기술될 수 있는데, 일반 규정과 특별 규정, 그리고 문서 조항에 첨부된
덜 중요한 것들로 구분할 수 있다 ( Baltzer 1971: 10; Craigie 1976a: 22–23을 보라 ) 이 형태는 다음과 같이 신명기에 연결시킬 수 있다. (1) 서문 ( 1:1-5 ). (2)
역사적 서언 ( 1:6–4:49 ). (3) 일반적인 규정 ( 5-11 ). (4) 특별 규정 ( 12-26 ). (5) 문
서 조항 ( 27:1–10; 31:9–29 ). (6) 증인들 ( 32장. 1절을 주목하라 ). (7) 축복과 저주 ( 27:12–26; 28 ). 그러나 조약 형태를 신명기에 이렇게 연결시킬 때, 완벽한 연결을 기
대해서는 안 되며,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또 신명기 형태 는 조약뿐 아니라 법전의 영향도 받았으며 ( 신명기의 “규정들”은 조약 규정보다 법에 더 가깝다 ), 조약 형태와의 유사성은 때때로 앗수르 모델에 더 가깝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신명기 28장 15-68절의 저주 단락에서 그 사실
을 볼 수 있으며, 그 단락은 히타이트 조약들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길다.
결론적으로 신명기는 독립적이고 독특하며, 단순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잘
알려져 있고 사용 가능한 형태를 끌어온 것일 뿐이다.
그러나 조약과의 유사성의 발견이 가져다 준 첫 번째 효과는 이 책의 연
대 문제를 재개했다는 것이다. 클라인과 키첸 ( 1966: 90–102 ), 그리고 크레이
기 ( Craigie ) 는 신명기가 형태 면에서 앗수르 조약들보다 히타이트 조약들에
놀랄 만큼 더 가깝다고 믿었다. 특별히 역사적 서언은 히타이트 조약만의
독특한 특성인데, 그 역사적 서언과 일치하는 요소가 있다는 중요성 때문에
크레이기가 그렇게 믿었다. 그들은 이것이 신명기의 연대를 BC 2천년으로
보는 근거라고 보았다. 그 후 계속된 학자들의 논의는 대개 BC 7세기 앗수
르 조약들에 대한 신명기의 의존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 Frankena 1965; Weinfeld 1972; Steymans 1995a ). 이렇게 보게 된 요인은 신명기 28장에 있는 저주
들과 에사르하돈 ( Esarhaddon ) 의 봉신 조약들 사이의 긴밀한 유사성 때문이
다 ( VTE; 이 문제는 신명기 28장 주해에서 논의한다 ). 그러나 나의 견해로는 조약과의 유
사성만을 근거로 신명기 연대를 결정하거나, 히타이트나 앗수르 형태 중 하
나만 배타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사성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명기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고대 근동 조약의 전통에서 끌어온 것으로 생
각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실제로 바인펠트 ( 1991 ) 는 그의 주석에서 히타이트와
앗수르 조약들 모두에 대한 유사점을 발견했다. 조약 형태가 신명기 해석에 가장 강하게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즉 어법과 개념 수준에서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바로 이런 관점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 면, 그 조약들에서 “사랑”은 봉신이 봉주에게 충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
이었다 ( Moran 1963a; 신 7장에 있는 주해를 보라 ).
4.2. 왕의 계획으로서의 개혁
신명기가 요시야 개혁의 중심부에 있었던 자료라는 가정은 비평의 토대
가 되어 왔다 ( 예를 들면, Nicholson 1967; Clements 1989 ). 현대 학계에서, 이 가정은
여러 중요한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첫째, 신명기가 언약신학 자체 개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여겨졌다. 둘째, 현재 형태로서의 신명기는 포로
기와 포로 후기까지 계속되는 편집적이고 신학적인 발전 과정의 산물로 여 겨졌다.
펠리트 ( Perlitt ) 의 연구 ( 1969 ) 이후, 신명기의 언약신학과 특히 땅 수여는 BC
신명기 비평적 해석
7세기 앗수르의 위협 때문에 생긴 유다의 위기라는 배경 아래 형성되었다
고 널리 여겨졌다. 즉 신적 선물로서의 땅이라는 개념은 바로 땅을 잃을 수 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생겨났다. 개혁이 일어난 것도 그 지역에서의 앗
수르 권력과 앗수르 종교의 강압에 대한 반응으로 흔히 여겨진다 ( Nicholson
1967: 11; Spieckermann, 1982의 분석을 따르는 Lohfink 1987: 222–223 ). 그러나 앗수르를 배 경으로 하는 신명기에 대한 고전적 분석은 바인펠트 ( 1972, 1991 ) 의 분석이다.
일차적으로, 요시야 개혁은 되살아나는 민족주의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민족주의는 앗수르의 패권이 쇠퇴됨으로써,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 전승들을 사용함으로써 촉진되었다. 바인펠트의 주장은 정치적 사건과 함께 일어나는
신명기적 운동의 종교적 성질에 대한 강한 이론과 더불어 더 발전한다.
신명기와 구약 지혜 문학의 특성 사이의 유사점들을 지적하면서, 바인펠
트는 신명기를 후기 유다의 왕적 서기관파들에 위치시킨다. 그의 견해에 따
르면, 이 파들은 앗수르의 정치 조약들을 만들고 복사했던 앗수르 서기관파
들에 상응했다. 유다에서, 이 서기관들은 정치적 관료들이었을 뿐 아니라 제사장들의 성례 신학과 대조되는 종교적 견해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
종교적 견해는 잘 알려진 대로 신명기가 윤리적이고 영적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면에서 볼 수 있으며, 신명기가 제의적 세부 사항에 거의 관심이 없
다는 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개혁의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은
분리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타난 이 통합은 종교의 급진적인 개혁을 제시하게 되었는
데, 이 개혁은 “세속화”와 “비신화화”라고 불릴 수 있다. 즉 신명기는 “신성 한”, 즉 신화적이라고 고수되던 옛 종교의 요소들을 거부한다고 말할 수 있 다. 그런 종교에서, 거룩함은 접촉할 수 있는 실재를 가지는데, 그 실재는 적절한 장소들 안에서 법으로 정해진 수단과 특별히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의해 주의 깊게 다뤄져야 한다. 이것은 제사장 문헌 ( 또는 P; 즉 출애굽기
와 레위기의 주요 부분 ) 이 제사장직을 주관하는 제의적 교훈과 규정들을 강조한
다는 면을 설명한다. 신명기는 이 모든 것을 제거한다. 그리고 새로운 합리
적인 방법으로 종교에 접근한다. 이 안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조차 급격 히 변화된다. 신명기 12장 5절과 관련 구절들에 있는 이름 공식을 근거로, 그리고 성전 봉헌 때 했던 솔로몬의 기도 ( 왕상 8장, 특히 27-30절 ) 를 근거로, ( 폰
라드 1953을 따르는 ) 바인펠트는 신명기가 하나님에 대해 순전한 영적인 견해를
촉진시켰다고 주장한다. 그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에 심지어 계시지 않았고, 단지 그의 “이름”만 마치 상징적인 표시처럼 거
기에 두었다고 한다. 덧붙여 말하면, 신명기와 P 사이의 관계가 벨하우젠이
이해한 것과 상당히 다르게 이해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P는 더 이상 D에 서 발전된 게 아닌 것으로 여겼다. 대신 P는 신명기와 동시에 발생한 경쟁
적인 사상이며 신명기가 반대한 종교의 계속된 형태로 여겼다.
개혁의 신학적 중심은 이렇게 기존 종교 제도들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혁은 수립 사업 ( establishment enterprise ) 이고 예루살렘에
서의 왕과 제의의 통합의 권위를 향상시킨다 ( 마치 앗수르 서기관파들이 앗수르 정치 수
립을 지지했던 것처럼 ). 바인펠트 ( 1972: 170–171 ) 에게, 신명기에 있는 모세는 “왕 같
은” ( quasi-regal ) 인물이다. 이것은 모세가 그의 종교적 사회적 힘을 볼 때 유다
왕을 상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 뒤를 잇는다. 그래서
신명기의 신학적 급진주의는 약화되는 중앙 권력을 돕기 위해 사용됐다.
이런 동향은 할펜 ( B. Halpern ) 에 의해 더 발전되었는데, 할펜은 신명기의 사
상을 그가 히스기야 왕에게 기인한 것으로 본 개혁에 연결시킨다 ( Halpern & Hobson 1991: 21–27, 41–49 ). 할펜은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증거들을 사용하여, 끈질긴 앗수르의 공격에 직면한 히스기야가 유다의 삶을 완전히 재편했다
고 주장한다. 히스기야는 시골을 모두 없앴으며, 침략자의 파괴를 대비해 그 안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고, 대신 수도인 예루살렘과 다른 요새화된 성들에 인구를 집중시켰다. 이것이 사회적 개혁을 발생시켰고, 그 개혁을
완성시켰다. 즉 유다가 전통적이고 종족 중심의 사회에서 중앙화된 관료 정
치 국가로 전환하는 마지막 단계를 밟은 것이다. 바인펠트의 연구에서처럼, 이런 시나리오에서 신명기는 개혁의 수단으로 여겨지며, “국가통제주의자”
사상에 기여한다 ( 1991: 17 ).
이런 견해들에 대한 더 발전된 분석은 그 견해들에 대한 대답과 함께 이 주석에서 볼 수 있다 ( 예를 들면, 신 12장에서 ). 그에 대한 예비 조사는 아래에 있
는 비평 해석에 대한 이 단락의 결론 부분에서 볼 수 있다.
4.3. 구약 종교의 발전
신명기 해석은 항상 이스라엘 종교 발전의 이해라는 문맥에 따라 정해졌
는데, 이스라엘 종교 발전의 이해 자체는 바뀔 수 있다. 초기 비평 ( Wellhausen, Driver ) 에서, 신명기의 언약신학은 JE에서 막 발생된 주제들이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JE의 언약은 다윗 언약과 관련 있었는데, 사무엘하 7장이 다
윗 언약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했다. 이런 이해는 이스라엘 역사 개
념에 근거했는데, 그 이스라엘 역사의 뼈대는 근본적으로 성경 내러티브에
서 나왔다. 20세기 중엽 노트 ( Noth ) 의 근린 동맹 이론 ( Noth 1930; 1960 ) 이 잠시
우세했었는데, 그 이론은 왕정 전 어느 시기에 열두 지파가 하나의 이스라 엘로 통일되었다고 주장한다. 노트의 이론은 비평 학계에서 이 인식 체계가
마지막으로 융성했던 시기다.
현대에는 이스라엘 역사를 매우 다른 이론으로 해석한다. 즉 왕정 전 통 일 이스라엘 이론이 거부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이론이 성경적 그림에 지
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며, 또 고고학 증거들이 가능해짐에 따라 새로운 해
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 예를 들면, P. R. Davies 1993; Lemche 1988; T. L. Thompson 1992; Whitelam 1996 ). 이 이론에 따르면, 구약 성경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개념은
전적으로 순전히 이론적인 신학의 발명품이다. 그 신학은 포로기를 겪으면
서 발생했고, 포로 후기 일신교적 유대교에 대해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했 다. 실제 역사에서, 포로 전에는 통일 이스라엘이 결코 없었으며, 열두 지파
에 대한 그림은 인위적인 것이고, 유다 조상들의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신교
적인 가나안 종교와 똑같았다. 그리고 우상을 만들지 않는 유일신교가 포로
기 전의 전통적 종교 의식에 대항하여 포로기 유대교의 새로운 정체성의
일부로 생겨났다 ( Arnold 1999: 특히 395–396에 있는 설명과 비판을 보라. J. S. Holladay 1987 ) 이 견해에 따르면,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들”은 옛 전통들로 되돌아가
려는 시도가 아니었고, 오히려 여호와를 가나안 신들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중대한 첫 움직임이었다.
고고학이 해석에 공헌한 것이 바로 이 시점이다. 한때, 고고학은 유다 후
기 개혁에 대한 연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 N. Lohfink 1987:
210 ). 그 이유는 이 시기의 주요 성소 자리에 광범위한 파괴 흔적이 분명하
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아랏과 브엘세바에 있는 흔적에도 불구하고 Manor 1992; Manor & Herion 1992를 보라 ). 그러나 나중에, 7세기 후반에 있었던 여신상 숭배에
대해 갑작스럽게 초점이 맞춰졌다 ( J. S. Holladay 1987: 274–278 ). 이것들은 아마
도 거대한 성소들에서가 아니라 집 안에서 아세라 여신 숭배가 유행했음을 입증하는 것 같다. 똑같은 종류의 숭배가 예레미야 44장에 나오는 애굽의
유다 포로들 사이에 있었던 하늘의 여왕 ( the Queen of Heaven ) 의 숭배 의식 배 후에 의심할 여지없이 놓여 있다.
그러면 요시야 개혁이 이런 신앙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한 가지 대답은, 고고학적 기록에 이런 종류의 숭배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대중 종교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이는 우상을 만들지 않는 신명기적 개혁과 평행한다. 대 중 종교는 앗수르 종교의 침입에 대한 비공식적인 종교적 반작용으로 볼
수 있는 반면, 신명기적 개혁은 똑같은 위협에 대한 공식적인 제도적 반응
이라고 볼 수 있다 ( Levinson 1997: 63 ). 사실 요시야 개혁의 중앙화적인 측면은
공식 노선에 대한 대중 종교의 위협에 의해 부추겨진 것 같다. ( 만약 그렇지 않
다면, 왜 특별히 앗수르 종교의 거부가 중앙화 정책을 촉발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N. Lohfink
1987: 223을 참고하라. )
신명기의 언약신학은 오늘날 요시야 개혁의 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펠
리트 ( 1969 ) 때부터 신명기의 조건부적인 언약신학의 특징은 신명기적 운동
의 발명품으로 여겨졌으며, 이전 시대에는 뚜렷한 전례가 없었다. 호세아조
차 반대 증거로 인용될 수 없는데, 펠리트의 견해에 따르면, 호세아에 있는
“토라”와 언약 ( 호 8:1 ) 은 신명기적 첨가물들이었기 때문이다. 펠리트의 분석
은 널리 인정되었다 ( 예를 들면, Nicholson 1986; Clements 1975에 의해 ). 펠리트의 이해
에 따르면, 여호와가 통일 이스라엘에게 수여한 땅이라는 개념은 신명기적
신학에서 핵심 요소인데,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있었던 실제 헌장에 대한 기억이라기보다는 땅을 잃은 것에 대한 신학적 반응이다. 이런 종류의
신학을 말하는 구약의 모든 예들은 비록 ( 십계명처럼 ) 초기의 것처럼 보이지
만, 실제로는 후대의 것이며 신명기적이라는 것이다.
펠리트의 재구성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가장 최근의 이론들보다 앞서
지만, 분명히 그것들과 잘 조화를 이룬다. 그 이론들은 모두 합쳐서 결국 어
마어마한 분석이 되었다. 그런 분석으로 신명기는 전통적인 비평이 고수해 오던 것보다 훨씬 “포로기적”인 문서가 되었다 ( N. Lohfink 1987: 209. 벨하우젠[1889: 190–191]도 신명기 안에 있는 포로기적 요소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옛 문학 비평에서, 신명기가 전적으로
포로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들이 있었다. Hölscher 1922 ). 오늘날 신명기 해석은 자주 신명기 이해의 핵심 요인으로서 포로기나 포로 후기 청중을 물색한다. 이에 대한 결과, 이스라엘에 대한 신명기의 비전이, 비현실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잘 갖춰진 조직체 ( 정치적 사회적 정책 ) 를 가지고 있는 독립된 정치적 개체라고
여기게 되었다 ( Perlitt 1994 ) 포로기 가설은 명백한 강점이 있다. 포로기는 신명기에 있는 궤적의 종점 이다. 저주 목록의 정점 ( 신 28:63-68 ) 과 포로기 이후 여호와에게로 되돌아가
는 환상 ( 30:1-10 ) 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이 책은 이스라엘 역사의 온전한 그림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족장 들에게 준 약속 ( 1:8 ) 으로부터, 막연하지만 축복의 실현이 가득한 미래로 이 어지는 포로 후기 회복까지의 역사 말이다. 하나의 주석 틀 안에서, 구약학계에 지배적인 이 새로운 종합을 충분히
4. 신명기 비평적 해석
다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구약 연구와 역사, 문헌, 신학, 그리고 해석학의 눈에 보이는 모든 차원의 개정을 논해야 하기 때문이다 ( 프 로반[Provan 1995]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재구성의 해석학적 비평을 보라 ). 그러나 이것
들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 주석의 해석은 다소 다
른 종합에 기초한다. 이것은 아래에서 설명될 것이다.
4.4. 문학적 전승으로서의 신명기
마지막으로 여기서 신명기의 현대 연구에 대해 검토하자면, 현 형태의 신 명기 책은 성장하고 있는 전승의 결과로 대개 여겨진다. 즉 법전이 원 토대
이며, 이것이 다양하게 “신명기적” ( deuteronomic ) , “신명기사가적” ( deuteronomistic ), “후신명기사가적” ( post-deuteronomistic ) 발전을 이루게 된 것으로 여겨 진다. 이 개념은 이전 것 ( 포로기 성향 ) 과 일치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이 책을
요시야 개혁뿐 아니라 후대 발전들과도 연결시킨다. 현대에 이 개념에 가장 중요하게 자극을 준 사람은 노트 ( 1981 ) 이며, 그는 신명기의 법전이 포로기 신명기사가에 의해 신명기사가적 역사 ( DtrH ) 의 서론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 했다. 신명기사가는 처음 ( 신 1-3장 ) 과 끝 ( 신 31-34장 ) 에 역사적 단락들을 첨가 함으로써 이것을 완성했다. 이 단락들은 구별된 문학 형태이며, 역사적 내 러티브이지 율법이 아니다. 이 단락들은 또한 전형적으로 연설 대상을 단수 보다 2인칭 복수형으로 사용한다. 2인칭 단수는 율법에서 지배적이다. 이런 척도는 여러 다른 학자들 ( 예를 들면, Minette de Tillesse, Mittmann ) 에 의해 신명기적 층과 신명기사가적 층 사이의 차이를 더 세밀하게 구분할 때 사용됐다.
예를 들면, 율법과 땅에 대한 주제들에 있어서 신학적 강조점이 다르다는
점이 인지되었는데, 아마도 특별히 구원 신학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즉 땅 의 수여는 하나님 편에서의 순전한 은혜의 행위인가? 아니면 이스라엘이 먼
저 토라에 순종해야 했는가? 신명기 6장 17-19절은 후자의 성향을 예증하
는 본문의 한 예로 여겨진다 ( 그 절에 대한 “주석”을 보라 ). 그래서 신명기는 신명기 사가적인 역사 연구에도 영향력 있는 한 이론에 완전히 동화되었는데, 그 이
론에 따르면 신명기사가적인 역사는 몇몇 편집자들의 손을 거쳤으며, 그들
은 각각 이 주제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 Smend 2000; Dietrich 1972 ). 이것은 이 책의 구성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의 신학과 목적에 대한 이해와 얼
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예증한다. 잠정적으로, 방금 설명한 것의
문학적-신학적 분석들은 신명기가 신학적 동전의 이쪽저쪽을 강조하는 수
사학적 방법을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학적 해석과, 신학적 또는 사상적 해석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은 문학적
기원과 법전의 발전에 대한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신명기 12장부터 26장과
BC에 있는 율법들 ( 출 20:22-23:19 ) 사이의 유사성은 오랜 기간 연구되었으며 ( S.
R. Driver 1895: iii–x; von Rad 1966: 13 ), 여전히 분석 대상으로 남아 있다. 최근 논의에
서 신명기 법전은 BC뿐 아니라 출애굽기 34장 10-26절까지 자취를 찾아갔
으며, 신명기 법전은 고대 “특권법” ( Privilege Law, 즉 이스라엘 예배에 있어서 여호와에게
유일한 권리들을 주장하는 법. N. Lohfink 1991f: 173–177; 1976: 230 ) 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런 연결들을 추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다른 이들의 반론에 부딪히게 되 었는데, 그들은 신명기 법전의 독립성을 주장한다 ( Levinson 1997: 8과 각주 13, 14 )
또 다른 측면에서, 신명기와 H ( “신성법”[Holiness Code], 레 17-26장 ) 와의 연관성
이 연구되었다. 전통적으로 H는 신명기보다 후대의 것이지만 P보다는 앞서
는 것으로 여겨졌다. H는 D와 구분되는데, 부분적으로는 H가 거룩함에 대
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에 근거한다. 예를 들면, 레위기 17장 2-7절
은 식용을 위해 짐승을 세속적으로 도축하는 것에 대한 신명기의 새 개념
을 폐기하는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 Levinson 1997: 153–154 ). P와는 대조적
으로, H는 구조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레위기 17장은 그 머리말에 자신
만의 제단법을 가지고 있어서 새 법전의 시작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위기 17장은 그 땅에 있는 백성에게 연설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포로 전
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그러나 몇몇 현대 연구는 P를 H 앞에 놓는다 ( Milgrom
1991; Knohl 1995; Joosten 1996 ). 브롤리크 ( Braulik 1996 ) 는 사상적 근거에 따라 H를
신명기 앞에 놓는다. 왜냐하면 신명기는 더 이상 가난한 자들을 위한 법이 아니라 더 이상 가난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위한 법이기 때문이다. 브롤 리크는 이자에 대한 법인 신명기 23장 20-21절을 증거로 인용한다. 다른 중요한 연구들은 H가 단순히 P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 Crüsemann 1996: 277–280; Blum 1990: 318–322 ). 바인펠트는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 1972: 190–243 ). 이 법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기반이 되는 방법론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 실체들이 절대적인 방법으로 규정될 수는 없지만, 서로 연관이 있 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여러 종교-역사적 시나리오가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될 수 있다.
신명기와 다른 법전들 사이의 관계의 특성을 확실히 단정하기는 어렵지 만, 신명기 12-26장이 고차원적인 내부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은 분명 하다 ( Otto 1994: 193–196; 1993b; 그리고 달리, Braulik 1993 ). 그래서 그 법전은 더 큰 책 과 그 신학 ( 예배, 윤리, 여호와의 본성과 관련 ) 으로 완전히 통합되었다. 이 경우에도,
신명기 비평적 해석
법전에 대한 해석은 이 책의 배경과 본질에 대한 더 넓은 해석에 속해야 한
다. 그와 같은 작업에 포함되어 있는 방법론적인 문제는 문학적 연구와 사
상적 연구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사실상 둘
중 어느 것에 우선권이 있을 수 없다. 해석자는 배경과 주제와 목적에 대해
종합적인 견해를 취해야 한다.
4.5. 결론
신명기에 대한 비평 해석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 서론에서
전체를 다 설명하거나 그에 대해 완벽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아래에서 신명기를 BC 7세기에 있었던 개혁 운동 계획으로 보는 견해에 대
해 일부 비평할 것이다. 그런 후 이 주석에서 채택하고 있는 신명기 배경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을 볼 때, 신명기는 분명히 더 이상 요시야 개혁의 계기나 산
물이라고 간단히 볼 수 없다. 둘 사이에 인지된 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존재 는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신명기 12-18장을 요시야 개혁을 배
경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그 이론 전체의 장단점의 수준에서
만 해결될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일반적으
로 법전과 개혁이 연관되어 있다는 일치된 견해가 있지만, 그 둘 사이 관계
의 본질에 대해서는 결정하기 어려운데, 실제로 티게이가 목록을 만든 것처
럼 매우 다양한 방식들로 연구되었다 ( 1996: 459–464 ). 위에서 설명된 해석 노
선들에도 불구하고, 여러 의문이 미결로 남아 있다. 중앙화 율법은 먼저 예
루살렘을 가리킨 것인가 ( 대부분의 학자들처럼. 예를 들면, Clements 1989 ) ? 아니면 또 다른 성소를 가리킨 것인가 ( von Rad 1953: 38; Rowley 1967: 106. McConville & Millar 1994: 117–118, 그리고 각주 87을 참고하라 ) ?
만약 예루살렘이라면, 그 본질은 무엇인가?
그 본질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것인가 ( 제의적 종교 행위의 테두리를 설정하는 ) ? 아
니면 정치적인 것인가 ( 민족주의의 부활 ) ? 그것이 정치적이었다면, 왕과 왕가 설
립의 조치였는가 ( Weinfeld 1972: 158–171; Halpern & Hobson 1991 ) ? 아니면 앗수르에
게 조공을 바치는 히스기야에 반대하여, 개혁파가 왕에게 대항했던 조치였
는가 ( Crüsemann 1996: 212–224를 참고하라 ) ? 그것이 종교적이었다면, 예루살렘 제
사장직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이었는가? 아니면 “세속화”하고 “비신화화”
하는 것이었는가 ( Weinfeld 1972: 190–243; von Rad 1953; Mettinger 1982 ) ? 솔직히 신명
기와 개혁을 연결시키려던 강한 충동은 광범위한 역사적 문제들을 해결하 지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본문 해석의 결정적 역할은 아마도
“이름 신학”이라는 주제로 설명될지 모른다. 바인펠트는 여호와의 “이름”
과 관련된 본문을 중심으로, 신명기에 신의 임재라는 독특한 신학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심각한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거기서 “이름”의 등장은
신의 본성과 임재의 “영적”이고 초월적인 견해보다 여호와 숭배와 다른 신
들 숭배 사이의 대조와 더 연관된다. 나의 견해로는, 신명기를 세속화하고
비신화화하는 이론 전체는 이와 같은 분명치 않은 가설들에 근거하고 있다.
( Milgrom 1973, Wilson 1995, 그리고 N. Lohfink 1995e; 1995d: 219–260의 매우 서로 다른 비평이 이 점
을 지지하기 위해 언급될 수 있다. ) “이름”에 대한 해석은 신명기 12장에 나오는 “주
석”에서 충분히 다뤄질 것이다.
방금 말한 것과 유사한 점이 개혁이라는 개념 안에 있는 긴장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 개혁은 “영적인” 종교를 위해 예루살렘을 종교적으로 설립하는 것을 증진시키는 개혁이다. 해석의 한 지류에서 ( 예를 들면, Welch 1924 ), 신명기
는 호세아와 비슷한 “북쪽의” 언약 개념들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개념은 성전 계급제에 바탕을 둔 남쪽의 제의적 개념들과 대조되며, 왕정
연합 ( monarchical associations ) 에 가깝다. 이 때문에 몇몇 학자들은 두 사상 사이
의 합의나 타협을 제안함으로써 신명기가 예루살렘에서 반포되었다는 개념
을 변호했다. 이것은 BC 722년 앗수르가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했을 때, 다
수의 “언약적” 북이스라엘인들이 피난민으로서 유다에 흘러 들어갔을 때
다 ( Nicholson 1967; 참고, Clements 1965a ). 이것은 결국 명확한 왕적 사상을 사라지 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맥락에서도, 신명기가 왕들에 대해 냉담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이고 명확한 이유를 물색할 필요가 있다. ( 위에서 지적한 ) 비공식적인 개인적 종교에 대항하는 조치로 개혁을 재해석 하는 것은, 확실한 고고학적인 증거와 신명기에 있는 어떤 본문들을 잘 설
명할지 모르지만 ( 신 18:9–14. 12:31을 참고하라 ), 우리로 하여금 신명기가 공공 중
앙화 개혁을 증진시킨다는 이론으로부터는 멀어지게 만든다.
신명기의 율법이 신명기가 중앙화 문서라는 이론을 지지한다고 흔히 주
장되었다. 여러 전승 비평 연구는 이런 가정을 근거로 법전 안에서 요시야 적 단계를 찾는데, 그런 연구는 이미 존재하는 법적 자료를 기반으로 한
다 ( 예를 들면, Horst 1930; Merendino 1969; G. Seitz 1971; Rose 1975 ). 이런 관점은 어느 정
도 제단법 ( 신 12:5 등 ) 이 중앙화하는 법이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 주장은 이 주석에서 논쟁을 벌이는 주장이다 ( 주된 이유는 아래에 제시되었다 ). 요시야판 율법 이라는 개념에 대한 더 심각한 문제점은 중앙화가 신명기 19-25장에서 발
4. 신명기 비평적 해석
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비록 이것은 설명이 필요하고, 어떤 이들은 실제로 증거를 찾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Gertz 1994; Otto 1998 ).
마지막으로 신명기는 때때로 옛 문헌들에 있는 세계보다 더 발전된 세계
를 가정한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면, ‘미쉬파하’ ( “씨족” ) 라는 용어는 민수기
에서 자주 나오지만, 신명기에서는 딱 한 번 나온다 ( 29:18[17]; Perlitt 1994: 194 ).
신명기는 이스라엘을 도시 문화로 그리고, 백성을 “이스라엘”이나 때때로
족속의 이름으로 지칭한다. 그래서 “씨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스라
엘의 옛 구조가 바뀌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다시 말하지만, 요점은 본문
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민수기에 ‘미쉬파하’가 자주 나오는 것
은 단지 몇몇 특별한 본문에만 해당된다. 그에 반해 신명기에서 백성을 단
일체로 그리는 데에는 신학적 이유가 있다. 그리고 신명기의 도시들에 대한
관심은 정복된 땅 ( “네가 세우지 않은 성들” ) 과 그 땅의 경계의 팽창 ( 12:20 등 ) 이라는
신명기의 사상에 속해 있다. 신명기는 외부자들로부터 땅을 지키는 통일 국 가에 대한 내용이다. “씨족”은 여호수아에 있는 육경 내러티브에서 다시 나 온다. 정복한 영토에 대한 목록이 나오면서 말이다 ( 수 13-21장 곳곳에 ). 어휘 패 턴에 대한 해석은 신학적이고 문맥적인 문제들과 동떨어져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요시야적 신명기라는 이론에 대한 여러 문제는 신명기와 열왕기 사이의
관계 문제를 다시 일으킨다. 물론 열왕기에서 요시야는 주요 공공 개혁을 진행했고, 신명기를 읽고 따라했을 수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방법론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요시야의 개혁 내러티브가 신명기 배경에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중요한
가정은 드 베테 ( de Wette ) 부터 현재까지 지배적이었고 많은 학자들이 현대 비평학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결과라고 여겼지만, 도전받을 여지가 있다.
그 가정은 논리적 착오에 근거한다. 그 가정은 요시야가 분명 신명기를 읽
었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로부터, 요시야가 무엇을 했는지 신명기가
정확히 말하고 있다고 추론한다. 이것에 대한 문제는 각 책의 독특한 의제
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명기의 특징들 ( 특히 신 12장
에서 명령된 조치들 ) 은 열왕기에 묘사된 개혁들의 특징과 단순히 비교되었다. 그
리고 인지된 유사점들이 해석의 핵심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신명기의 프로그램이 원래 히스기야 개혁에 속했는지 아니면 요시야 개혁
에 속했는지에 대해 의견 일치가 없는 이유다.
나는 여기서 신명기가 소위 신명기사가적 역사 ( DtrH ) 와 동떨어져서 해석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단언컨대, 그런 해석이 자주 시도되었다. 널
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명기사가적 역사의 주요 요시야판 ( major Josianic edition ) 이론은 신명기의 주요 요시야판도 있었다는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
문제는 그 이론이 양쪽 문집 중 어느 쪽에든 올바른 해석을 제공하는가이 다. 그 이론의 장단점은 여기서 논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나는 요시야 개 혁 기사가 마지막 형태의 열왕기 문맥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여러 곳
에서 ( 특히 McConville 1989 ) 주장했다 ( 이것들의 단본을 주장한 사람들과 더불어: Noth 1981; Hoffmann 1980; Hobbs 1985 ). 그런 배경 속에서, 요시야의 업적에 대한 송축은 요
시야 직후에 있었던 유다 운명의 빠른 반전과, 국가가 패전과 포로로 급격
히 쇠퇴하는 것에 의해 묻혔다. 나의 견해로는, 신명기사가적 역사는 왕의 사상을 증진시키는 것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처참한 실패로 이어졌음을 보 여 준다.
그러나 신명기사가적 역사의 요시야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신명기가 그와 똑같은 자료에서 반드시 왔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명기가 왕의
개혁의 문서라는 개념에서의 큰 문제점은 신명기 17장 14-20절에 있는 왕
의 율법에 놓여 있다. 신명기사가적 역사의 요시야판 이론을 인정하는 크노 퍼스 ( Knoppers 1996 ) 는 이것 때문에 신명기에서 완전히 다른 견해를 찾았
다 ( Levenson 1975를 참고하라 ). 그리고 레빈슨 ( Levinson ) 은 만약 어떤 사람이 요시
야 개혁을 신명기를 이해하는 핵심으로 보기를 원한다면, 이 본문이 실질적
인 어려움을 나타낸다고 옳게 지적한다 ( 1997: 153 n. ). 신명기의 왕은 요시야 왕과 전혀 다르다. 결과적으로, 열왕기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신명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두 책에서, 특히 왕적 자료에서 그 둘을 모두 아우르는 주 요 요시야 판에 대한 증거는 없다.
5. 신명기에 대한 새 접근법
위에서 언급된 내용은 신명기의 배경과 목적에 대해 포괄적인 견해를 발
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아래에서, 나는 먼저 신명기의 배경 과 사상에 대해 살펴볼 것이고, 그다음 신명기 자체의 특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신명기 1:1-46
번역(개역개정 본문에 이어, 저자 사역 본문을 제공함 - 편집자 주)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
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
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
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니 4 그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주하
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주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
5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7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방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네겝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 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8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 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9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
10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11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 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12 그런즉 나 홀 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
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 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
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
고 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령하였느니라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
른 때에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
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
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23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
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24 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
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
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 우리가 어
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
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
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 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
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34 여호와께서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7 여호와께서 너
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38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39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40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41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
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
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43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44 그 산지에 거
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
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45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
1 These are the words that Moses spoke to all Israel in the wilderness to the east of the River Jordan, in the Arabah. The place was opposite Suph, between Paran and Tophel, Laban, Hazeroth and Dizahab. 2 It takes eleven days to go from Horeb by way of Mt Seir to Kadesh-Barnea.
3 In the fortieth year, on the first day of the eleventh month, Moses spoke to the people of Israel, according to all that the LORD had given him as commandment for them.
4 This was after he had defeated Sihon, the Amorite king who ruled in Heshbon, and Og the king of Bashan, who ruled in Ashtaroth and in Edrei.
5 East of the Jordan, therefore, in the land of Moab, Moses began to explain this law, in the following way:
6 The LORD our God said to us at Horeb: ‘Now you have stayed long enough at this mountain. 7 Set out now, and travel till you come to the land of the Amorites, and to the territory of all its inhabitants in the Arabah, in the highlands and lower uplands, in the Negeb and the coastal plain, the land of the Canaanites, and Lebanon, as far as the great River, the Euphrates. 8 Look: I set the land before you; go and take possession of it. It is the land that the LORD swore to your forefathers Abraham, Isaac and Jacob to give to them and their descendants after them.’
9 At that time I said to you: ‘I cannot bear the burden of you alone. 10 The LORD your God has increased your number, and here you are today, as many as the stars of the sky.
11 May the LORD, the God of your fathers, make you yet a thousand times greater in number and bless you, just as he promised you. 12 Yet how can I bear alone your problems, your difficulties and disputes! 13 Choose for yourselves wise, intelligent and experienced men, from all your tribes, and I will make them your leaders.’ 14 And you replied to me: ‘What you propose to do is good.’ 15 So I took from among you wise and experienced men, and I made them your leaders: commanders of thousands, of hundreds, of fifties and of tens, and officers throughout your tribes. 16 And I bound your judges at that time to hear cases between brothers, and to judge rightly, whether a man has a dispute with his brother, or with a resident non-Israelite. 17 ‘Do not show bias in your judgment; hear the cases of great and small in just the same way, without fear of your fellow human beings, for the judgment is God’s. But if a case is too hard for you, bring it to me and I will hear it.’ 18 And I gave you instructions at that time about everything that you should do.
19 We travelled from Horeb and went through that vast and terrible wilderness, which you have seen, taking a route for the land of the Amorites, just as the LORD our God commanded us. And we arrived at Kadesh-Barnea. 20 I said to you: ‘You have come to the land of the Amorite which the LORD our God is giving to us. 21 See! The LORD your God has set the land before you. Go up and take possession of it, just as the LORD, the God of your forefathers, told you to. Do not be afraid or dismayed.’
22 Then all of you approached me and said: ‘Let us send men ahead of us to explore the land for us, to bring back news about the way we should go and the cities we are coming to.’ 23 This seemed good to me, so I took twelve men of you, one from each tribe. 24 So they set out to go up to the hill country, and came to the Valley of Eshcol, and explored it. 25 They took some of the fruit of the land, and brought it back to us, and also gave their report: ‘The land that the LORD our God is giving us is good.’
26 But you would not go up. You rebelled against the command of the LORD your God. 27 You complained in your tents, and said: ‘It is because the LORD hates us that he has brought us from the land of Egypt to give us over to the Amorites to destroy us! 28 Where are we to go up! Our brothers have dismayed us by saying: “The people are stronger and taller than us. The cities are huge, and fortified up to heaven. We even saw the Anakim there!” ’
29 I said to you: ‘Don’t be terrified; don’t be afraid of them! 30 The LORD your God, who goes ahead of you, will fight for you, just as he did for you in Egypt, before your very eyes; 31 and also in the wilderness, where you have seen how the LORD your God carried you, as a father carries his son, all along your route, till you arrived at this place.’
32 For all that, you do not trust the LORD your God, 33 who went ahead of you on the way to search out a place for you to camp – in the fire by night and in the cloud by day, to show you the way that you should go.
34 When the LORD heard what you said he was angry and swore this oath: 35 ‘Not a sin-
gle one of this wicked generation shall see this good land which I swore to give to their forefathers. 36 I make an exception for Caleb, the son of Jephunneh; he shall see it. I shall give him and his sons after him the land that he has walked on, because he followed the LORD wholeheartedly.’ 37 The LORD was angry even with me because of you, and said: ‘You too shall not go in there. 38 Joshua, the son of Nun, your servant, will go. Encourage him, for he will bring Israel to its inheritance. 39 And as for your little ones, who you said would become a prey, your children, who this day do not know the difference between right and wrong, they will go in there. I will give the land to them, and they will take possession of it. 40 You, however, must set out and go back towards the wilderness, the way to the Reed Sea.’
41 Then you answered me: ‘We have sinned against the LORD. Let us indeed go and fight, as the LORD our God told us to.’ And you all put on your weapons of war, and thought you would easily go up to the land. 42 But the LORD told me to say to you: ‘You must not go up and fight, for I am not among you. If you do, you will be mown down by your enemies.’ 43 I told you this, but you would not obey. Instead, you rebelled arrogantly against his command and went up to the land. 44 And the Amorites who lived in that hill country came out against you, and chased you just as bees do, and struck you down in Seir, as far as Hormah. 45 You returned and wept before the LORD. But he would not listen to your cries; he turned a deaf ear to you. 46 And so you stayed at Kadesh. Your stay was a long one.
1절. 두 개의 히브리어 사본과 70인역, 시리아역에는 MT의 ‘엘레’ ( “이것들”, 12:1을 참고하라 ) 대신 ‘베엘레’ ( “그리고 이것들” ) 라고 나온다. 이렇게 첨가한 것은 ( 민수기에 나오는 ) 이전 내러티브와의 연결을 암시하는 것 같다. ‘베에베르 하이 야르덴’은 화자 관점에서 “요단 건너”를 의미한다. 화자가 내레이터 ( 1:1, 5; 4:41, 46, 47, [49] ) 인지, 아니면 모세 ( 3:20, 25; 11:30; S. R. Driver 1895: xlii–xliii; Perlitt 1990: 10을 참고하라 ) 인지에 따라 이 관점은 바뀌며, 각 문맥을 보면 명확해진다. 이
표현은 때때로 “트란스요르단” ( Transjordan ) 이라고 번역된다 ( Craigie 1976a: 90 ).
이 번역은 3장 8절의 지지를 받는 것 같지만, 모세가 그 표현을 사용한 다 른 경우에서는 그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그럴듯한 번역인 “요단 지역에
서”라는 번역은 조금 전 말한 이견을 해결할 수 있으며, 4장 49절의 지지를 받는다. 4장 49절에서 이 용어는 전치사 “베” 없이 나오며, 형용사 “동쪽” 의 수식을 받는다. 이 해결책은 아마도 이 어구의 의미가 문맥에서 불명확
할 때 “동쪽”이나 “서쪽”을 의미하는 용어에 의해 구체화될 수 있음을 의미 한다. ( 수 5:1, 12:7; 대상 26:30을 참고하라. 민 32:19는 더 발전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본문인데, 여 기서 관점이라는 의미에서의 상술[“요단 저쪽”]은 더 엄밀한 지리적 상술[“요단 동편”]과 대조된다. ) 이
런 의미에서 이 어구는 지명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문맥에 따라 다른 것들
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3장 8절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이 구절
에서 이 용어는 다음에 나오는 어구, 즉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 산
에까지”에 의해 수식된다. ( 수 22:11에 나오는 ‘엘 에베르 베네 이스라엘’이라는 어구는 정확히
똑같은 용례는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반대쪽”[REB]이라고 이해하는 게 가장 좋다. )
3절. 몇몇 히브리어 사본과 헬라어 번역본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라 고 읽으며, 1절과 일치시킨다. 이것은 국민 통합에 대한 신명기의 신학적 강조점과 조화를 이룬다.
4절. 하나의 히브리어 사본, 70인역, 불가타역, 시리아역은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서”라고 읽으며, 여호수아 12장 4절, 13장 12절, 31절과 일치시 킨다. 두 지역은 옥이 통치했던 성들 같으며, “그리고”를 복원하는 것이 가 장 타당해 보인다.
5절. ‘호일’ ( “그가 시작했다” ) : 이 동사는 대체로 그 뒤에 부정사가 아닌 또 다
른 정동사가 온다 ( HALAT 2:365 ). 여기서는 3인칭 남성 단수 피엘 완료형 ‘베 에르’가 사용됐으며, “설명하다”, “명확히 하다” ( 또는 “세우다.” “주석”을 보라 ) 를
의미한다. 이 구조는 시작을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목적과 굳은 의도도 표현할 수 있다.
7절. ‘하르 하에모리’: “아모리인들의 땅.” “땅”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문
자적으로 “산”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명기에서 땅이나 영토라는 단순한 의 미를 나타낼 수 있다 ( 3:25; 2:1-3을 참고하라 ). “아모리인들”은 엄밀히 말해 단수 형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집합의 의미를 가진다. 이 용어는 분명 아카드어 아무루 ( Amurru ) 와 연관이 있다. 아무루는 기원전 20세기에 땅을 가리킬 때
도 사용됐고 “서쪽”, 즉 일반적으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가리킬 때도 사 용됐다. 그리고 시리아에서는 국가 이름으로도 사용됐다. 기원전 10세기 앗 수르에서는 그 이름이 대개 팔레스타인을 가리킬 때 사용됐다. 여기서 사용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의미인 것 같다 ( 1:19-20, 44를 참고하라 ). 더 자세한 것은 Gibson 1961을 보라.
8절. MT에는 단수로 “보라!”라고 되어 있지만, 다른 히브리어 사본들과 번역본들 ( 사마리아 오경[SamP], 쿰란 문서[QL], 70인역, 시리아역 포함 ) 은 복수로 만듦으로 써 근접 문맥에 일치시킨다. 그러나 이것과 비슷한 과정이 4장 5절과 11장
26절에 나온다. 이것들은 아마도 신명기에서 단수와 복수 연설 대상이 교
대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예는 아닌 것 같다. ‘레에’라는 형태는 오히려 감
탄사로 여겨야 할 것 같다 ( 그러나 21절에 있는 주[註]를 보라 )
‘나타티’는 완료형이지만, 아마도 선언의 의미로 읽어야 할 것 같다 ( “내가
주리라” ).
‘니쉬바아 야웨’ ( “여호와가
맹세했다” ) : 사마리아 오경과 70인역은 ‘니쉬바아
티’ ( “내가 맹세했다” ) 라고 읽는다. 아마도 여기서 여호와가 말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수정은 불필요한 것 같다. MT도 간소하지만 화자가 여호와
임을 매우 분명히 밝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형태는 신명기 안에 있는 모
세의 말과 여호와의 말씀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
‘라헴’: 하나의 히브리어 사본과 사마리아 오경은 생략하는데, 아마도 족
장들에게 땅을 수여했다는 개념을 생각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
나 족장들에게도 땅을 수여했다고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 “주석”을 보라 )
13절. ‘비두임’: 이 단어는 아마도 능동 분사 형태로 다시 점을 찍어야 할 것 같다 ( 전 9:11을 참고하라 ). 그래서 “경험 많은”이 되어야 할 것 같다. Weinfeld
1991: 135를 참고하라.
15절. MT의 ‘에트 라셰 쉬브테켐’ (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을 [취하고]” ) 과 ‘바에텐 오탐 라쉼 알레켐’ ( “내가 그들을 너희의 수령으로 삼되” ) 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
다. 70인역을 읽어 보라. “내가 너희들 중에서……너희 지파를 위한 지도자 들을 취했다.” 70인역은 사실 “너희 재판장들인 지도자들”이라고 나온다. ‘토이스 크리타이스 휘몬’은 아마도 16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16장 18절에서 “관리들”은 “지도자들”과 구분되는데, 거기서 둘은 모두 “너희 지파들을 따라” 임명된다.
16절. 부정사 절대형 ‘샤모아’가 명령형으로 쓰이고 있음을 주목하라. “들
으라!” ( 개역개정 “명하여.” GKC 113. 4. bb[a]; 그리고 16:1을 참고하라 ). 사마리아 오경에는 여기서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21절. “보라!” ( 개역개정에는 없음 ) 는 MT에서는 단수, 70인역과 시리아역에서
는 복수로 되어 있다. 8절을 참고하라. 그러나 주변 문맥과는 대조적으로 이 절 전체에서는 단수로 나온다. 신명기 강화의 특징 중 하나가 일시적인 수의 변화인데, 이 단수 감탄사가 그 변화 중 하나를 야기한 것 같다. 24절. MT의 “그곳”이 여성형인 것은 놀랄 만한데, 왜냐하면 그 앞에 나오 는 명사들 ( ‘나할’, 즉 “에스골 골짜기”, 그리고 ‘하르’, 즉 “산지” ) 이 모두 남성형이기 때문 이다. 아마 이 대명사는 “땅” ( ‘에레츠’, 여성형 ) 을 가리키는 것 같다. 쿰란 문서,
시리아역, 불가타역이 취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민수기 13장 21절과 일치하는데, 민수기 13장 21절은 정탐꾼들이 땅 전체를 가로질러 갔다고 기록한다. MT가 어렵더라도 ( 또는 어렵기 때문에 ) 유지되어야 할 것 같다.
25절. 70인역과 불가타역은 “그리고 또한 그들이 보고했다” ( 개역개정 “돌아와 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 를 생략했다. MT는 22절을 따르며, MT를 반대할 결정 적인 이유가 없다.
26절. 70인역, 시리아역, 불가타역에는 MT의 “너희의 하나님” 대신 “우
리의 하나님”으로 나온다. 30, 32, 33절을 참고하라. 30절, 33절에서는 MT 가 더 타당한데, 그 이유는 그 절들에서 일관성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 서 아마도 26절에서도 MT가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고대 번역본들에서
는 이 점에 대해 혼란을 겪는 경향이 있는데, 혼란을 겪는 것도 당연한 것 같다. 28절도 참고하라.
28절. 70인역에는 MT의 “우리 형제들” 대신 “너희 형제들”로 나온다. MT가 더 타당하다. 몇몇 히브리어 사본들과 70인역, 사마리아 오경에는 “더 장대하다”보다 “수효가 더 많다”라고 나온다. 7장 7절을 볼 때, 이것이 의미가 명료한 독법이다. 이스라엘이 상대적으로 수효가 적다는 것이 두려 움을 일으키는 자연스러운 원인일 것이다.
31절. 이 절 전반부에서 연설 대상이 단수로 바뀌는 것은 사람이 자기 아
들에게 하듯 하나님이 그 백성을 인도하셨다는 부드러운 이미지와 잘 어울 리는 것 같다.
35절. 70인역은 “이 악한 세대”를 생략하는데, 이것도 민수기 14장 22-
23절에 대응되는 게 없다. 그래서 이 어구는 MT에서 해설처럼 해석되어 왔 다. 오직 정탐꾼들만 가리킨다는 인상을 회피할 목적으로 말이다 ( S. R. Driver 1895: 25–26 ). 만약 그렇다면, 이 어구는 역시 문맥의 의미와 잘 어울린다.
39절. 70인역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를 생략한다. 사마 리아 오경은 “당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를 생략한다.
44절. 70인역, 시리아역, 불가타역에는 “세일 ( Seir ) 로부터”가 있는데, 이것 은 의미상 필요해 보인다.
45절. 70인역, 시리아역, 사마리아 오경은 MT의 ‘바타슈부’ ( “그들이 돌아왔 다” ) 대신 ‘바테셰부’ ( “그들이 앉았다” ) 라는 독법을 내포한다. ‘바테셰부’는 46절 에 있는 똑같은 형태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 삿 20:26에 있는 “울다”와 “앉다”의 병
치와 Weinfeld 1991: 153을 보라 ).
46절. “너희가 오랫동안 머물렀다”: 문자적으로, “너희가 ( 거기에 ) 머문 날
만큼 많은 날들”이다. 후반부 문장은 히브리어 관용어에 따라 주문장을 사
실상 반복한 것이다 ( 출 3:14에 나오는 신적 이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를 참고하라 ). 그 문장은 시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남겨 둔다. “주석”을
보라.
형식과 구조
신명기는 대부분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한 권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
러티브 틀 안에 들어가 있다. 이 책의 도입어 ( 1:1 ) 는 민수기의 마지막과 분명
하게 연결된다 ( 민 36:13; 위에 있는 “본문 해설”을 보라 ). 그래서 모세의 설교가 선포되
지만, 먼저 지리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야 기라는 문맥 안에 놓이게 된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출애굽기-민수기의 주요 주제였다. 신명기 1-3장의 요지는 민수기 10-36장과 평행하게 흐른다. 즉
이스라엘이 호렙산 ( 시내 산에 대한 신명기 특유의 명칭 ) 을 출발할 때부터 백성이
모압 평지에 서서 약속의 땅을 차지할 준비를 할 때까지의 시간과 사건들
을 다룬다. 모압 평지는 사해 북쪽 끝, 요단 동편에 위치해 있다. 사실 그 땅 의 일부, 즉 트란스요르단의 일부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되
었으며, 이미 차지하게 되었다. 단언컨대 이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는 말하자면 언약의 복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려는 이 스라엘 앞에 놓인 기회 ( 그리고 의무 ) 에 대한 것인데, 이 주제는 지리적 배경 안
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광야와 가나안 사이, 약속과 성취 사이에 있다.
형식적으로, 1장은 네 단락으로 나뉜다. (1) 호렙부터 백성의 현재 위치
인 요단 동편까지의 여정 ( 1-5절 ) . (2) 약속의 땅까지 계속 가라는 권
면 ( 6-8절 ). (3) 백성의 삶의 일상 규례에 대한 가르침 ( 9-18절 ). (4) 그 땅에 가
서 취하라는 계속되는 명령 ( 19-21절 ). 그 뒤에 정탐꾼들의 정탐과 그 결과 백
성들이 첫 번째 시도 때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한 내러티브가 나온다 ( 22-46절 ).
법적 사건들을 재판하는 조치들 ( 9-18절 ) 은 내러티브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
처럼 보인다 ( 예를 들면, Plöger 1967: 13이하. Mittmann 1975: 24–33, 164를 참고하라 ). 그러나
출애굽기 18장 13-23절에 있는 평행 본문은 여기서처럼 출애굽 기사와 시
내/호렙에서의 율법 수여 기사 사이에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율법 수
여와 그 이행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 같다.
기사의 “형태”는 우리가 말한 단락으로 피상적으로 구분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여정”이라는 지배적인 주제는 이 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하나
의 도움이 될 만한 관점을 제공한다. 이 책은 장소들 목록 ( 1절 ) 과, 가데스 바
네아까지의 첫 단계 여정의 기간과 관련된 삽입구 ( 2절 ) 로 시작한다. 1절에
거론된 지명들은 출애굽 여정의 지명들을 반복한다 ( 민 11:35; 12:16; 33:17–21 ). 그
래서 1절은 얼핏 보기에 모세가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두 절 모두 모세와 이스라엘이 여정 가운데 있음을 강조한다. ( 미트만[Mittmann
1975: 8]은 1절에 있는 “장소”와 “여정” 사이에 긴장이 있다고 보고, 이 절이 혼합적이라고 여긴다. S. R.
Driver 1895: 2; Mayes 1994: 113을 참고하라. 장소를 암시하는 1절의 구문론이 여정을 암시하는 의미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석”을 보라 ). 관점은 가데스를 넘어 모압까지
예견하며 ( 3-5절 ), 그 땅 자체로 계속 이어진다 ( 7-8절 ). 여기와 신명기 전체에 서 “내레이터”의 서술 관점은 모압이며, 따라서 1-3장에서 곧 기술될 행동
을 미리 예상한다.
여정 주제는 기사의 구조에 의해 강화된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여러 동사
중에서 ( Plöger 1967: 19 ), 세 개가 두드러지게 중요한 순간에 일어난다. 즉 ‘파
나’ ( “돌아가다”, “출발하다” ), ‘나사’ ( “여행하다” ), 그리고 ‘알라’ ( “올라가다” ) 가 그것이
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첫 번째 명령은 “출발하여 여행 하라……” ( 개역개정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 이다 ( 7절 ). 즉 호렙에서부터 그 땅까지
말이다. 이 명령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19절에서 “그리고 우리가 여행했 다” ( 개역개정 “우리가……떠나” ) 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탐꾼들은 “돌이켜 산지에 올라” 갔다 ( 24절 ). 그런 후 백성들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했다 ( 26절. 28절
을 참고하라 ). 그에 대한 응답으로, 여호와는 그들에게 그들이 왔던 길로 “떠나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신다 ( 40절 ). 그리고 마침내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 새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올라”가기로 결심하며, 여호와는 다시 이것을
금지하신다 ( 41b-42절 ). 그래서 이 어휘는 신학적 문제들을 설정하는데, 이스
라엘과 여호와 사이의 관계가 지리라는 지도에 “지도처럼” ( mapped ) 그려진 다. 순종은 전진과 연결되고, 불순종은 후퇴와 실패와 연결된다.
어휘 외에도, 이 장의 형태는 또한 이스라엘의 운명의 반전을 보여 준다.
25절까지, 그 땅을 향한 전진이 있으며 ( 거기서의 삶을 위한 조항 포함, 9-18절 ), 그 땅 은 사실 좋은 땅이고 여호와의 약속이 신실하게 성취된 것이라는 정탐꾼들 의 선언에서 절정을 이룬다 ( 25절 ). 그러나 그 후 이야기는 모두 후퇴한다. 정 탐꾼들의 믿음은 이스라엘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 잠시 ) 그 땅을 잃게 된다. 더 나아가 내러티브는 “여호와의 전쟁”, 즉 “거룩한 전쟁”과 관련된
언어가 나오는데, 그 전쟁에 따라 여호와는 자신의 백성에게 그 땅을 주기
위해 자신의 원수들을 정복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순종한 백성이 아모리 사 람들에 의해 격퇴되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땅으로부터 멀어질 때 반전을
맞게 된다.
내러티브의 관점은 비관적으로 보였다 ( 1:32와 출 14:30-31을 대조 ). 즉 열왕기하
25장에서 유다가 멸망하고 그래서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예견했다 ( Plöger 1967:
3; N. Lohfink 1960: 114 이하 ). 그러나 기사는 이것보다 더 열려 있다 ( “해설”을 보라 ).
신명기 1장 9-18절은 출애굽기 18장 13-27절과 매우 비슷하다. 거기서
는 행정 조치들이 시내 산 사건들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여기서는 시간이
명확히 명시되지 않았다 ( 단지 “그때에”라고 나옴, 9절 ). 더욱이 이 본문은 민수기
11장 10-25절도 생각나게 하는데, 민수기 11장 10-25절에서는 백성을 인
도하는 모세를 돕기 위해 칠십 장로가 “[모세]에게 임한 영을” 받는
다 ( 25절 ) . 여기서 밀접한 연관성은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
다” ( 9절. 민 11:14를 참고하라 ) 라는 문장에 있다 ( 비록 모세의 인내라는 개념이 출 18:23에도 있
지만 ). 우리의 본문은 출애굽기 18장 13-27절과 내용면에서 더 가깝지만 ( 민
수기 기사가 일반적으로 영적인 감독과 더 잘 어울린다 ), 신명기는 두 개의 다른 본문 ( 하나는
시내산 단락 바로 전에 나오고, 또 다른 하나는 산에서 출발하는 것과 연결되어 그 직후에 나온다 ) 을
접어 하나로 만든 것 같다 ( 여기서는 미트만[1975: 26-30]과 대략 일치한다. 그는 독립적인 내
러티브 자료가 신명기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하는 플뢰거[Plöger]의 생각을 바르게 비판한다 ). 후자 본
문의 사용은 행정의 개념을 여정에 연결시키기에 적절하다. 여기서 취해진 조치들과 역대하 19장 5-11절에 기록된 여호사밧 왕의
사법 개혁 사이에 흥미로운 연결점들이 있다. 즉 이스라엘 전체에서 재판장
들을 임명한 것, 정의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원리에 호소한 것, 차별을 금지한 것이 그것이다. 이런 연결점들 때문에 그
법의 연대가 그 개혁 때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 16:19에 대한 플뢰거[1967: 36–39]의
설명처럼. 그는 엄밀히 말해 위기의 시기에 “옛” 법을 기억한 것이라고 여긴다 ). 어떤 면에서 여기
에 나오는 율법들은 고대 근동의 것과 평행한다 ( Weinfeld 1991: 140–141 )
정탐꾼들의 임무에 대한 기사 ( 1:19-46 ) 는 민수기 13-14장에 있는 동일한
기사와 유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전통적인 비평에서, 민수기 13-14장 은 J와 P의 혼합물이며, P는 정탐꾼들의 이름 목록과 지파별 한 명씩의 정 탐꾼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 민 13:1-16 ). 그러나 신명기는 분명 “각 지파에 서 한 사람씩” ( 23절 ) 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평범하게 읽으면, 신명기가 민수기 1-13장 ( P ) 을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Weinfeld 1991:
143을 참고하라 ). 다른 이들은 복잡한 문헌 역사를 가정함으로써 이 점에 있어 서 D가 P를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펠리트 ( 1990: 97–98 ) 는 정탐 꾼 전승이 P와 D의 흐름의 문맥에서 모두 반복적으로 사용됐으며, P와 D는
절대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주석
1:1-5
신명기의 도입절들은 민수기의 마지막 절 ( 36:13 ) 에서 말했던 내용을 다시
재개한다. 그 도입절들은 신명기 4장 44-49절, 12장 1절, 29장 1절[28:69], 34장 1-6절에서도 반복된다.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이 신명기의 주제를 강조 하는 응축된 형태를 보인다 ( Christensen 1991: 6을 참고하라 )
A 이는 모세가 선포한 말씀이니라
B 요단 저쪽
C 호렙산에서 열 하룻길이었더라
D 모세가 알렸으나
C′ 모세가 시혼을 쳐 죽인 후라
B′ 광야에서
A′ 모세가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이 형태의 효과는 두 가지다. 첫째, 말씀의 개념을 지리와 역사의 개념에 잇는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한 역사적 경험으로
선포되고, 그 경험 속으로 선포된다. 두 번째, 모세의 말과 하나님의 계명, 그리고 토라라는 중요한 개념 사이에 등가를 세운다.
이 절들에 있는 지배적인 개념은 모세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실 도입어구 “이는 말씀이니라”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신명기의 이름이 다. 여기서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선 모세가 모압에서 이스라엘에게 선포 하려는 말씀이다. 그 말씀은 세 개의 대연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명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1:6–4:40; 5:1–28:68; 29:1[28:69]–30:20 ).
모세의 말은 바로 역사적 문맥과 지리적 문맥 속에 자리 잡는다 ( 1b-3a, 4절 ). 현재 절들에 있는 자료는 하나님의 말씀이 새롭고 특별한 상황을 향해
선포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한 연설은 대략 “요단 동
편”, 즉 “모압 땅에” 위치한다 ( 1, 5절. 29:1[28:69]을 참고하라. “본문 해설”을 보라 ). 그 후
에 더 자세한 자료가 뒤따른다. “광야에서”라는 어구는 모압에서 정확히 대
응되는 곳이 없다. 그러나 “아라바”가 그것을 더 세부적으로 규정한다. 즉
저지대 요단 계곡과 사해에 놓여 있는 협곡을 가리키며, 아카바 만 ( Gulf of Aqaba ) 과 그 너머까지 남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다른 지명들에 대해서는 다
소 논쟁이 있다. 바란과 하세롯과 아마도 라반 ( =립나? ) 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정에서 중간 정박지로 나온다 ( 민 10:12; 11:35; 12:16; 33:17, 20 ). 만약 여기서 그
장소들을 실제로 의미한다면, 그 정보는 모압에 있는 한 장소를 구체화한다 고 보기 힘들다. 이 지명들과 출애굽 여정에 있었던 장소들이 비슷한 것은
단지 우연일 수 있다. 그래서 확실하진 않지만, 우리 목록에 나오는 지명들
을 모압 지역에 있는 장소들과 일치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 Noth 1981: 108–
109. Christensen 1991: 7; Perlitt 1990: 12–14를 참고하라 ). 그러나 아마도 여기에 출애굽 여정을 실제로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다. 2절의 기록에 의해서도 ( 그리고 아마
도 “광야”라는 용어에 의해서도 ) 제시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모압에서의 “현재 시
간”이 그 과정에 있었던 다양한 시간과 장소와 계속 신중하게 연결되었을
것이다 ( 더 자세한 것은 “해설”을 보라 ).
여기에 거론된 여정의 경계 ( 2절 ) 는 호렙과 가데스 바네아다. 호렙은 출발
지점으로만 거론되었다. 비록 이 기록이 분명 그 장소가 이 책에서 엄청난 중요성을 가질 것을 예상하지만 말이다. 모압에서 모세와 함께 서 있는 백 성의 이전 세대와 언약을 맺은 장소로서 말이다 ( 5:2–3; 29:1[28:69] ). 가데스 바네아는 바란 광야에 있는 곳이며 ( 민 13:26 ), 시내 광야와 네게브 남쪽 유역 사이에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 사이에 숙영했던 곳이다. 호렙부터 그곳까지 열하루가 걸렸다는 언급은 아마 사실
적인 묘사인 것 같다. 비록 호렙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말이 다. 반대로 3절의 마흔째 해는 애굽에서 나온 후부터 약속의 땅 경계에 있
는 이스라엘의 현재 위치까지의 긴 시간을 가리킨다. 그 기간은 그들이 두
려워하고 믿음이 없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발생했 다 ( 민 13-14장 ). 여기서는 이 사건들을 알고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 비록 그 사 건들은 현재 장에서 모세의 권면의 일부로 다시 열거될 것이지만 말이다.
날짜에 대한 자세한 기록 (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 은 모세가 말한 날만이 아
니라 모세가 죽은 날도 가리키는 것 같다 ( 32:48 ). 이것은 이스라엘 제의 달력
에 정확히 유월절 두 달 반 전이라고 명시되었다 ( van Goudoever 1985: 145–146 )
이것은 아마도 모세의 연설을,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경축하게 될 첫 번째
유월절 ( 수 5장 ) 에 대한 준비로 봐야 함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본문에서 정
복과 유월절은 확실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도 그 개념은 현재
절들에 있는 말씀과 역사 사이의 관계를 더 긴밀히 구축시키는 것 같다.
시혼과 옥에 대한 언급 ( 2:26–3:11에 있는 주해를 보라. 그리고 민 21:21–35를 참고하라 ) 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의 정복이 트란스요르단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동시에 연설의 정확한 배경을 다시 한번 열거하는 이중 기능을 한
다. 그래서 기대와 중대성의 의미를 창출한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릴 것이
다 ( 3절 ). 이것은 1절에 있는 모세의 말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며, 모세가 말
할 내용이 모압까지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이미 있었
던 것에서 나올 것임을 보여 준다. 모세의 말은 특히 호렙에서의 언약과 그
에 수반된 율법들을 상기시킨다 ( 출 20-23장 ). 이 발전은 설교가 또한 “율법 ( 토
라 ) 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묘사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 5절 ). 신명기에서 “토
라”는 규정 ( 4:8을 보라. 여기서 토라는 개별 율법을 포괄하는 우산같은 용어다 ) 과, 가르침 또
는 권면을 모두 아우른다. 토라는 또한 언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 “규례와
법도”와 언약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에 대해 5:1-2를 보라. 그리고 언약과 십계명의 연관성에 대해 4:13을
보라. 31:9 ). 신명기에서 토라라는 용어는 도입과 결말 장들에 주도적으로 많
이 나온다 ( 4:8, 44; 27:3, 8, 26; 28:58, 61; 29:21[20], 29[28]; 31:9, 11–12, 24, 26, 30; 33:4, 10; 그러 나 17:11, 18–19도 보라 ). 이 언급들은 여기에 나오는 “토라”의 본질이 신명기 안
에 있는 모세의 설교를 주로 가리키는 것임을 보여 준다. 모세의 설교는 최
종적으로 특정한 예배 때 정기적으로 낭송하기 위한 언약 문서로 이해되는
책 안에 기록되었다 ( 28:58; 31:9 ). 그러나 모세의 설교는 단지 일반적으로 말하 는 그런 설교가 아니라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적 내러티브에 기반을 둔 설 교이고, 호렙에서의 언약을 재진술하는 설교다. 이것은 역사적 기사 안에
있는 “이는……말씀이니라”의 분명한 연속이다 ( 6절 이하 ) 5절은 지리와 하나님의 말씀의 주제를 모두 다시 함께 가져옴으로써 재 개한다. 모세가 율법을 “설명”한다는 것은 신명기의 관심이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가르치고 설득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1:6-8
이제 모세의 첫 번째 연설 ( 1:6–4:40 ) 이 시작된다. 모세의 연설은 즉시 호렙 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제를 1-5절에서 가져온
다 ( 6절 ). 그런 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하는 것으
로 이어진다 ( 7-8절 ). 그 땅의 일부가 기술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의 선조들, 즉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했던 하나님의 옛 맹세를 재확인
하는 것과 균형을 이룬다.
모세의 말이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임이 즉각 명확해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라는 어구 자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언약
적 관계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이 관계는 이제 호렙을 언급함으로써 반
복된다. 여기서 문제의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명령인데, 즉 호렙을 떠나
라는 명령이다. 그 명령은 그 백성이 거기서 지냈던 시간 다음에 나오고, 하 나님의 자기 계시를 증언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와 맺은 언약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오경의 내러티브에서, 이것은 출애굽기 19장부터 민수
기 10장의 주제가 되는 사건이다 ( 출발 자체에 대해서는 민 10:11-35를 보라 ). 그 백성
은 지금 호렙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머물렀다. 즉 “거주”했다. 그 명령 ( 2:3에서
다시 나온다 ) 은 호렙이 최종 안식처가 아님을 보여 준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언약이라는 관점에서도 그렇고, 이제 계속 전진해야 한다. 이것은 이 책에서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모세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 기를” ( 6절 ) 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엄격한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이 시점까지 호렙에서 실제로 있었던 세대 대다수가 죽었기 때문이
다 ( 2:34-40에 있는 주해를 보라 ). 새로운 세대는 종종 그들이 호렙에서 있었던 것처
럼 이야기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연대성을 나타내는 방식이며, 각 세대에
게 언약이 다시 제정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 더 자세한 것은 5:2-3에 있는 주해를 보라 ).
첫 번째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은 이제 호렙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라는 것이다 ( 7절 ). “이제 출발하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방향을 돌려”이다.
이 말은 결심의 의미를 전달하며, 있던 곳은 남겨 둔 채 새 목적지를 바라보 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 말은 호렙에서 모압까지의 여정의 이 기록 안에
여러 번 나온다 ( 1-3장 ). 위에서 본 것처럼 ( 1:1-46의 “형식과 구조”에서 ), 이 여행에는
도덕적인 측면이 있는데, 동사 ‘파나’ ( “돌아가다” ) 자체가 이 의미를 전달한
다 ( 29:18[17]; 30:17; 31:18, 20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참고하라 ). 이스라엘 앞에 놓여 있는 땅에 대한 묘사는 창세기 15장 18-21절과 신명 기 11장 24절에 있는 윤곽과 대체로 일치한다. 비록 각각 세부적으로는 다
르지만 말이다. 이것이 전체 내용이다. “아모리 족속의 산지”는 아마도 그
땅 전체를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 같다. 상대적으로 나의 번역에서는, “아
모리 족속”을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 pre-Israelite ) 을 가
리키는 명칭으로 이해한다 ( 창 15:16; 수 7:7; 10:5를 참고하라 ). 비록 이 명칭이 트란
스요르단을 포함하는 동쪽 지경에 있는 백성들에 대해서도 사용될 수 있지
만 말이다 ( 4절. 7:1을 참고하라 ). “거주자들” ( 개역개정에는 없음 ) 이라는 용어는 “아모
리 족속”과 동격처럼 사용됐지만, 그 땅의 다른 지역들에 거주하는 사람들 을 구체적으로 가리킨다. “가나안 족속”이라는 용어는 여기서 특히 해안 지
역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 비록 다른 본문에서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그 땅의
이스라엘 이전 거주자들도 의미할 수 있지만. S. R. Driver 1895: 11 ). 다음은 그 땅을 자세히 기술한다. 아라바에 대해서는 1절에 있는 주해를
보라. 다시 말하지만 “산지”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산”이지만, 여기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중앙 산맥이라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됐으며, 유다
와 사마리아가 될 곳을 포함한다. “낮은 고원” ( 개역개정 “평지” ) 인 세펠라는 유
다 산맥의 서쪽 낮은 언덕들이며, 해안 평야로 내려간다. 네겝은 유다 남쪽
에 있는 반사막 지대다. 그리고 해안 평야 자체는 지중해를 따라 남쪽 끝에
서부터 북쪽에 있는 갈멜 산맥까지 이른다. 기술된 지역은 또한 레바논과
가나안 북쪽 경계부터 유브라데까지 이르는 영토를 포함한다. 유브라데는
여기서 거론된 세 본문에 모두 나오는데, 이 정도 범위의 땅이 이상적인 땅 으로 분명히 여겨졌다. 비록 다윗 때조차도 그곳을 차지한 적은 거의 없지
만 말이다. ( 고대 이스라엘의 지리에 대해서는, Rogerson 1985; Aharoni 1979를 보라. )
그래서 기술된 지역은 이제 간단히 “그 땅”으로 불린다 ( 8절 ). 그곳은 오래
전 아브라함에게 보여 준 땅이며 ( 창 12:1 ), 약속에 의해 그와 그의 후손에게
준 땅이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이삭과 야곱에게 했던 약속이며, 족장 내러티브 전체에 걸쳐 반복해서 나온다 ( 예를 들면, 창 13:17; 15:13–16; 26:2–3; 28:13, 15; Clines 1989: 31–43을 보라 ). 여기서 그 약속에 호소하는 것은 신명기에서
매우 중요한데, 신명기는 임박한 가나안 땅으로의 입성을 약속의 성취로 본 다 ( 1:21; 6:3을 참고하라 ). 물론 그 땅에 대한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했던 후손에 대한 약속과 밀접하다 ( 창 12:2; 15:6 ). 이것을 기초로, 여호와는 그 백성들에게 그들이 바로 옛 약속의 수혜자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그 약속을 맹세라고 언급한 것은 하나님이 그 약속에 대해 철회하지 않고 지킬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그 백성은 그 땅에 “들어가서 차지”해야 한다. “차지 하다”라는 동사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이 동사는 유산처럼 받는 땅에 대한 일종의 권리를 의 미한다. 비록 분명히 그것은 하나님의 수여 여하에 달린 권리이지만 말이
다. 이 동사는 또한 현재 거주자들을 추방해야 함을 내포한다. 그러나 중요 한 점은 그 약속은 역동하는 믿음을 통해 받는다는 사실이다.
1:9-18
지파들의 편성은 광야로 계속 이동한다는 관점에서 꼭 필요하다 ( Noth 1981: 15 ). “그때에”라는 어구 ( 9절 ) 는 다소 일반적이며, 호렙에서의 전체 기간을 상
기시킨다. 모세가 백성들을 홀로 “감당”할 수 없다고 깨달은 이유는, 우리
가 본 것처럼, 출애굽기 18장과 민수기 11장에 있는 두 가지 기사 때문이 다. 모세 자신이 이 문제를 주도한 것, 즉 이스라엘 행정 체계에 대한 필요
성을 제기한 것은 출애굽기보다 민수기에 더 가깝다. 출애굽기에서는 모세
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 출 18:14 ).
어떤 주석가들은 신명기에 대한 후기 민족주의 사상, 즉 “유대” 사상의 영
향 때문에 비이스라엘 사람 이드로의 일부 기사가 여기서 고의로 삭제됐다
고 주장했다 ( Weinfeld 1991: 140 ). 그러나 오히려 삭제된 이유는 여기서 모세와
백성 사이의 관계에 날카롭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며, 존재하는 잘 알려진
전승들을 통합시키는 경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라는 문장은 민수기 11장 14절에 서 채용됐으며, 6-8절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으로부터 백성을 편성하는 주제로 급히 전환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말은 “불평”이 아
니라 ( 그래서 민 11장과 다소 다르다 ), 약속의 성취의 결과로 제시된다. 이런 함의는 10-11절에 의해 강화된다. 10절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매우 많아질 것이라
는 약속 ( 창 15:5 ) 을 명백히 상기시키며, 이미 성취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덧붙여 말하자면, 그 약속의 요소인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은 이런 식으로
서로 연결된다. 그런 후 이 사상은 11절에서 많아짐과 복이 계속되게 해 달
라는 기도로 더 발전적으로 전달된다. 현재의 성취와 미래에 대한 소원은 모두 옛 약속 ( “그가 너희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 에 달려 있다. “이미”와 “아직”이 병 치되는 것은 항상 이동 중에 있는 백성이라는 신명기의 의식에 전형적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나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열린 미래로 이동 한다.
“괴로운 일”이 실제로는 복의 역할을 한다고 확증하면서, 모세는 이제 더
구체적으로 그것을 설명한다 ( 12절 ).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 과 너희의 다투는 일”이라는 어구 중에서, 오직 하나만 민수기 11장에 나오
며 ( ‘맛사’, “힘겨운 일”, 민 11:17 ), 출애굽기 18장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 신명기는 어휘를 이렇게 늘림으로써, 관리하기 어려운 이스라
엘을 강조한다 ( 여기서 “괴로운 일”이라고 번역된 명사 “토라흐”는 사 1:14에서만 나오고 다른 곳에
서는 나오지 않는다. 사 1:14에서 이스라엘의 거짓 예배는 하나님에게 짐으로 여겨진다 ). 그러나 “다
투는 일” ( ‘리브’ ) 이라는 단어도 출애굽기의 더 넓은 내러티브에서 왔다. 즉
출애굽기 17장 7절에 나오는데, 거기서 이 단어는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로 들어간 것에 대해 불평할 때 사용됐다 ( 흥미롭게도, 명사 맛사와 밀접한 연관성
이 있으며, 여기에 있는 ‘맛사’와 비슷하다 ). 우리 본문에서 “다투는 일”은 주로 통상적
인 법적 분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본문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스
라엘의 기본적인 완고함도 교묘하게 상기시키는 것 같다. 앞으로 발전되어
나올 강조점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 9:6을 참고하라 )
모세는 이제 지도자들을 선택하기 시작하며 ( 13절 ), 백성들에게 그 일을 하
라고 촉구하고, 사실상 그 계획을 위해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 14절 ). 이 “민
주적” 절차는 출애굽기나 민수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며, 통일체로서의 백
성들이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삶을 위해 가져야 할 책무에 대해 신명기가 강조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 아래 16절에 있는 “형제애”에 대해 보라 ). 신명기의 더 특별한 점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기준이며, 강조점은 지혜에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와 대조되는 것 같은데, 출애굽기는 덕행을 먼저 기대한다 ( 출 18:21 ).
신명기는 때때로 “지혜”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다 ( 신 4:6을 참고하라 ). 그러나
“지적인” 자질과 종교-윤리적인 자질을 대조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볼
수 있다. 신명기에서 요구된 지혜는 하나님의 율법과 가르침과 밀접하게 연
관되어 있다 ( 4:5, 8 ). 더욱이 그 지혜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간
의 응답 전체에 대한 강조가 있다 ( 6:4-5 ). 마지막으로 지혜 문헌도 지혜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매우 밀접히 연결시킨다 ( 잠 9:10 ). 지도자에게 요 구되는 자질은 무엇보다도 인격에 대한 것이다 ( 따라서 “경험이 있는.” “본문 해설”을
보라 ).
15절의 번역은 70인역을 따른다. 그 이유는 MT (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을 취했 다” ) 가 여기서 선택된 사람들이 지도자들로 세워지고 있다는 것과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시작 단계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있을 수 없기 때문이
다 ( “본문 해설”을 보라 ). 지도자들의 권한이 이제 더 발전적으로 설명된다. “천”, “백”, “오십”, “십”이라는 용어를 정확한 숫자로 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단위의 상대적인 크기로 봐야 한다. 사실 “천”은 “씨족”과 대략 일치할 수 있다 ( 삿 6:15; 삼상 23:23. de Vaux 1961: 216–217을 보라 ).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 사법 기능과 군사 기능이 통합되었다는 점이다 ( 출 18:21, 25에서도 ). 이것은 고대 세계
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 Weinfeld 1991: 140–141을 보라. 또 현재 단락과 히타이트와의 유
사성에 대한 1977년의 논문을 보라 ). ‘사르’ ( “지도자” ) 라는 용어는 열왕기상 4장 2절에 서 넓은 의미로 “관료”를 가리킬 때 사용됐다. ( 사법 기능과 군사 기능과의 관계에 대
한 다른 견해들은, Bartlett 1969; Knierim 1961을 보라. )
재판장들은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들의 역할은 분명 백성들
과 소통하며 그들 안에서 결정된 것들을 시행하는 것이었다 ( 신 20:5, 8–9; 수
1:10; 3:2를 참고하라 ). 그들이 지파에 따라 구성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이것을 효
과적으로 행할 수 있게 했다.
15절에서 계급에 따라 소개된 관료들은 이제 일반적으로 “재판장”이라고
지칭된다 ( 16절 ). 사사기에서 사용된 것처럼, 이 용어는 주로 위기 때 발탁된
군사적 구원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통상적인 사법 기능을 한다.
( 사무엘서에서는 두 가지 역할이 혼합된 것 같다. 삼상 7:15-17. ) 모세는 재판장들에게 자신들
의 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의무를 부과하는데, 아마도 맹세를 동반한 공식
적인 의식이 행해졌을 것이다 ( Weinfeld 1991: 138 ). 그들의 소관은 “너희의 형
제”, 즉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재판하는 것이다 ( 16절 ). 우리는 이미 신명
기가 하나님 앞에서의 국민 통합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 이해는 이제 백성의 모든 일원이 형제라는 개념으로 더 완전하게 특징
지어진다. 이 개념은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며, 이 책의 많은 사상 배후에 놓
여 있고, 계층이 있는 위압적인 사회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방편으로
여겨진다 ( 15:7-18을 참고하라 ). 그러나 세워진 조항은 비이스라엘인 거주자를 위 한 정의를 배제시키지 않는다. 이 책의 여기와 또 다른 곳에서 특히 가난한
비이스라엘인 거주자의 필요가 채워진다 ( 14:29를 참고하라 ). 재판장들의 책무의 핵심은 사건을 듣고 “공정하게” 또는 “의롭게” 재판 하는 것이다. 16장 18-20절에 있는 관련 본문도 강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이 개념은 관계 안에서의 공정한 조치와 충성을 모두 함축한 다. 그래서 재판은 사건의 진실과 인간의 정상적인 동정심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재판장들이 진실 이외의 다른 고려 사항에 의해 결정하지 않 아야 함을 의미한다. 귀족이나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 어떤 편애도 주어져서 는 안 된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힘 있는 자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두려움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편견을 보여 주는 것은 이스라엘과 사회
의 비전에 절대적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그 비전은 신명기에서 제공하는 비
전인데, 신명기에서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이것이 심판이 하나
님에게 속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정의는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손안에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원리상 하나님의 것이다. 모세가 일종의 대
법관이라는 개념 ( 17c절 ) 은 이런 근본적인 원리와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사법권을 상징하고 보호하는데, 결국 하나님의 궁극적인 사법권이 정의로운 사회의 유일한 보증이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
행은 모두 여호사밧 왕이 취한 개혁 조치들에도 반영되어 있다 ( 대하 19:6, 8-11.
잠 16:33을 참고하라 )
마지막으로 모세는 재판장들에서 전체 백성으로 초점을 바꾸며, “그때
에” 그들에게 부과한 의무들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특히 사법 행정을 위한
가르침이라기보다 일반적으로 호렙에서 받은 명령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 마무리의 의도는 방금 개관한 행정 조치들이 이스라엘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들을 시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다.
1:19-46
19-25절. 새 단락은 6-8절의 그 땅을 향해 계속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어간다 ( 19절 ). 그 땅은 여기서 다시 “아모리 족속의 땅 ( 문자적으로 산지 ) ”으로 지칭된다. 여기에 기록된 실제 과정은 2절에서 준비되었던 것이다. 즉 호렙
에서부터 가데스 바네아라는 광야 정박지까지다. 그 사이에 있는 광야는 크 고 두려운 곳으로 묘사되었는데, 아마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권면함
으로써 하나님의 신실함을 강조하기 위함 같다. 그러나 가데스는 중간 정박
지에 불과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으며 ( “아모리 족속 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0절 ) ,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땅을 “주고” 계신다.
20절의 현재 시제 “주다”는 그 수여가 성취된 사실이라고 선언하는 과거
시제 ( 21절 ) 에 의해 강조된다. 또 다른 의미에서 그들은 단지 문턱에 와 있고, 그 땅은 “너희 앞에” ( 21b절 ) 놓여 있으며, 여전히 그 땅을 차지하라는 명령이 남아 있다 ( 8절을 참고하라 ). 차지하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올라가는 것”은 그 땅에 실제 접근하여 들어가는 것이며, 그 자체가 믿음 의 행동이다. “올라가다”라는 동사는 이 장에서 여러 번 사용됐으며, 특히 21-28절에서, 즉 결정 시점에서 사용됐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조들에게 하셨던 말씀에 따라 그 땅을 차지해야 한 다 ( 8절을 참고하라 ). 그래서 그 말씀은 약속일 뿐 아니라 명령이기도 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은 지금 이스라엘 앞에 있는 정신적이 고 종교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오
지 않으며, 그들의 믿음을 필요로 하며, 그 믿음은 두려움 없는 행동으로 증
명된다 ( 같은 점이 민수기에 현저하다. 민 14:9 ).
후속 절들 ( 22-25절 ) 은 이제 바로 이 문제를 이어간다. 백성들은 정탐꾼을 앞서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하고 그들 앞에 있는 여정과 그 땅 자체의 정보를
가져오고자 앞장서서 계획을 세운다 ( 22절, 이 계획은 민 13:17-20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 백성 전체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음이 강조되어 있고, 이런 움직임이 모세가 아니라 백성들에게서 나오고 있음이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민수기
13장 1-3절에 나오는 기사와 다른 점이다. 민수기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주
도권을 가지고 모세를 통하여 정탐꾼들에게 임무를 준다. 백성들이 그 계획
을 세웠으며, 하나님께 묻고 승인을 받은 모세에게 그 계획을 가져왔다고
가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 Craigie 1976: 101; Merrill 1994: 73처럼 ). 그러나 신명기가
그 사건을 이와 같이 기술한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두 가지 특성 때문에
그 백성들은 그 계획을 채택한 것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라는 말 안에 역설적인
면이 있다. 하나님 자신이 그 백성보다 “먼저” 가서 그들의 길을 예비한다
는 것을 강조하는 기사 안에 그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29-33절에
서 발전되는데, 거기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 ( 29절 ) 이 재개되지만, 백성들
의 거부에 부딪히고 ( 32절 ),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기도 하시고 그들을 위해
싸우기도 하시기 위해 그들보다 먼저 그 땅으로 들어가셨다는 믿음을 갖지
못한 것에 초점이 맞춰 있다 ( 30, 33절을 참고하라 ). 둘째, 모세 자신이 그 땅에 들
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을 때, 여기서 이의 없이 그 계획을 수용하는 그
의 역할 ( 23절 ) 은 비난받을 만하다고 마땅히 생각할 수 있다 ( 더 자세한 것은 3:26에
서 보라 ). 따라서 신명기의 정탐꾼에 대한 내러티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지 못한 그 백성들의 만성적인 실패를 일부 보여 준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한 대답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 23절 ) 는 재판장들을
임명할 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했던 대답의 반복이다 ( 1:14 ). 두 문장은 함께
모세와 백성 사이의 일종의 연대를 제시한다. 더 나아가 각각의 제안 후에 지파별 대표 선출이 뒤따른다 ( 15절을 참고하라. 언어가 매우 비슷하다. 특히 70인역에서는
15절에 “너희에게서”가 뒤따른다 ) . 지파별로 정탐꾼 한 명을 선출한 것은 민수기
13장 2절을 따른 것이다 ( 이 점에 있어서 신명기와 P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에 있는 “형식과 구 조”를 보라 ). 이스라엘의 지파 구분을 언급하는 것은 신명기에서 보기 드문 일 이다. 신명기는 백성의 통일성이라는 더 강한 개념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중요한 순간에 백성들의 실제 모습을 나타내고자 사용됐 다 ( 수 3:12에서도 그러는 것처럼 ). 내린 결정들이 좋든 안 좋든 말이다.
정탐꾼들은 그 땅 ( 문자적으로 산지 ) 을 정탐하기 위해 헤브론 근처 비옥한 계
곡인 에스골 골짜기 ( Wadi Eshcol ) 까지 갔는데, 그곳은 유대 남부가 될 곳이
다 ( 24절 ). 에스골이라는 이름의 뜻은 “송이”이며, 민수기 13장 23-24절에
따르면, 정탐꾼들이 가져온 거대한 포도송이에서 취한 이름이다. 민수기 기
사는 정탐꾼들이 그 땅 전체를 어떻게 여행했는지를 설명하는 반면 ( 민 13:21 ), 우리의 본문은 에스골 골짜기만 갔다 온 것으로 제한한다. 그러나 대명사
“그곳”은 그 땅을 은근히 암시한다 ( 위에 있는 “본문 해설”을 보라 ). 그래서 에스골 골짜기는 그 땅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러나 정탐꾼들이 한 일을 생략하여
줄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의 노력이 부득이하게 제한되었다. ) 정탐꾼들의 보고는 전체적으 로 긍정적이다. 신명기는 민수기 13장 28-29절에 있는, 정탐꾼들이 가져온
두려워 떨 만한 정보를 무시하고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음을 이 시점에서 강조하기를 명백히 원한다. “그 땅이 좋더라”라는 보고
는 일종의 절정이며, 백성들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다.
26-28절. 민수기 13장 25절-14장 10절에 있는 전체 내러티브에서, 우리
는 정탐꾼들이 그 땅의 강함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그들 중 대다
수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믿는지 ( 13:31 ), 그 백성들 자신이 아낙 자손
이 보기에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 13:33 ), 그리고 갈렙과 여호수아의 총
명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 백성들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 계
획을 세우는 내용 ( 14:6-9 ) 을 읽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여기서 그 백성이 올라
가기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는 간단한 고발로 압축되어 있 다. 그 거부는 반역으로 묘사된다 ( 26절. 민 14:9를 참고하라. 신명기에 있는 동사는 ‘마라’이
며, 민수기에서는 ‘마라드’이다 ).
애굽으로 되돌아가려는 반역적인 계획은 중얼거림 ( 개역개정 “원망” ) 이라는 주제로 전달된다 ( 27절. 민 14:2를 참고하라. 다시 신명기는 자신만의 동사를 사용한다 ). 그러나
여기에 그 백성들의 입에는 두려워하면서도 반역적인 발언이 담겨 있다. 하 나님이 그들을 미워하신다는 선언은 하나님이 그들을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셨다는 신명기의 주장과 직접적으로 반대된다 ( 신 4:37; 7:8 )
그것은 조심스럽게 토로된 불평인데, 이는 “사랑”과 “미움”이 언약의 언어 에 속하기 때문이다 ( Moran 1963a ).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 어 냈을 때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안으로 그들을 들어오게 할 의도가 하
나님에게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들을 멸망시킬 의도였다고 단언하고 있 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불신앙의 진술이다. 그 진술은 “원수에게 넘겨주다”
라는 의미에서의 “주다” ( give ) 라는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더 날카롭게 진술
되는데, 이는 반대로 약속된 땅의 “선물” ( gift ) 이 그 약속에서 핵심 항목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우리가 어디로 가랴!” ( 28절 ) 라고 외치는 것은, 그들이 결정해야
할 사항을 말하는 핵심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들 자신의 입으로 21절의 권
면에 대한 대답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외침은 약속에 역행하는 절망과 무
능의 울부짖음이다. 그 땅 거주민들을 직면하면서 갖게 될 두려움도 그 백
성을 통해 전달된다 ( 28절 ). 그들이 말하는 것은 정탐꾼들이 실제로 말했던
것과 거의 일치한다 ( 가나안 사람들은 힘이 세고 그들의 성들은 견고하게 요새화되어 있으며, 거
기에는 거인들이 산다. 민 13:27-29 ). 그러나 신명기는 그들의 불신앙을 강조하기 위
해, 그 말들이 그 백성들 자신들로부터 나오도록 허용했다.
29-33절. 모세는 두려움에 대한 새롭고 강렬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다시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 용어는 백성들이 느끼고 있는 두
려움의 부적절한 특성을 암시한다 ( 29절. 21절을 참고하라 ). 그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보다 앞서 가신다” ( 30절 ) 는 것이다.
이것은 백성들의 이전 요구인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
어” ( 22절 ) 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처럼 보인다. 그 정탐의 원래 목적은 그 땅
과 접근로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바로 그 일들을 행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확실히 보게 된다 ( 31-33절 ). 그러
나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내용 앞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는 단언이 먼저 나온다 ( 30절 ). 이것은 이 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전 쟁을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진술하는 곳이다 ( 비록 4절에서 삽입구적으로 나오지만 ).
즉 하나님 자신은 용사로 나타나시며, 그의 백성들의 원수들을 무찌르는 진
정한 승리자로 나타나신다. 그 원수들은 동시에 하나님 자신의 원수들이다. 하나님의 전쟁 수행 능력은 신명기에 있는 핵심 약속을 강화하며, 주요 주
제로서 여호수아까지 이어진다 ( Longman & Reid 1995와 Merrill 1994: 78–79 각주에 있는 더 자세한 참고문헌을 참조하라 ). 여기서 약속의 땅에서의 하나님의 전쟁은 애굽에 서 시작되었던 군사 행동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 그 백성들은 거기서 하나
님의 승리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다시 승리하실 수 있다는 사
실을 믿어야 한다.
이제 인도하심이라는 주제가 자세히 설명되며, 22절에서 소극적으로 말
했던 요구에 응하게 된다. 하나님이 여정을 따라 그의 백성을 돌보시는 것
이 사람이 그의 자녀를 데리고 가는 친근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 31절. “본문 해 설”을 보라 ).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의 위험을 통과하면서도 “이곳까지 이를 때
까지” 그 백성을 참으셨다. 논의의 장소는 모압에서의 그들의 현 위치다.
물론 이것이 그들의 여정의 끝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능력은 그가 다시 반복해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주는 전형이다. ( 자녀의 은유는 “선출” 문맥 안에 있는 8:5와 14:1에서 다시 나온다. 민 21:29에는 더
광범위한 고대 근동 용례가 있다. 렘 3:4; 호 11:1도 참고하라. )
이 주제는 33절에서 더 자세히 발전된다. 33절에서 하나님은 그 길을 따
라 미리 가서 쉴 곳을 찾는 분으로 그려진다. 동사 ‘투르’ ( “찾으시고” ) 가 사용
된 것은 놀랍다. 이 단어가 구약에 나오는 곳은 대개 민수기의 내러티브에
집중되어 있다. 민수기에서 10장 33절에 처음 나오는데, 거기서 여호와의
궤가 백성들보다 앞서 가서 그들의 쉴 곳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후에는 민수기 13장-14장에 있는 정탐꾼 내러티브에서 거의 배타적으
로 나온다 ( 12회 ). 거기서 그 단어가 핵심 단어이며, 정탐꾼 자신들의 활동을
가리킨다. 신명기는 정탐꾼들의 활동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며, 오직 그 단
어를 하나님의 활동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그래서 민수기 10장 33절과 유 사하다 ( 같은 문맥에 있는 “구름”을 주목하라, 34절 ). 그러나 민수기 13-14장과 관련하
여, 여기서의 그 단어는 약간의 풍자로 하나님이 홀로 그 백성보다 앞서 가 셨음을 강조하며, 그들은 이것으로 부족함이 없어야 했다고 강조한다. “구
름과 불”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끄셨다는 출애굽기 기사를 회상시킨다 ( 출
13:21-22를 참고하라 ). 여기서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한 기억은 출애굽기에서보다
백성들에게 믿으라고 설득하는 것에 더 명백히 집중되어 있다. 똑같은 이유 때문에, 언약궤 ( 비록 민 10:33에서는 중요할지라도 ) 와 사실상 이드로/르우엘과의 관
계 ( 민 10:29-32 ) 에 대한 언급도 부재하다. 이드로/르우엘과의 관계는 출애굽 기 18장의 회상에는 있었지만, 여기서는 제외됐다 ( 신 1:9-18, 위를 보라 )
그러나 31절과 33절에 있는 이끄심의 그림이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강한 진술에 의해 중단된다 ( 32절 ). 그것은 강경한 분사 ( 현재 ) 형으로 되어 있 으며, 모압에 서 있는 현 세대와 그들의 불신앙을 대면시킨다. 그래서 불신 앙의 책임을 이전 세대에게만 돌리는 것을 거부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에게 지금 믿음을 가지라고 계속 도전하신다.
34-40절. 다음 단락은 “누가 그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되었는가?”라는 질 문을 다룬다. 하나님은 먼저 그 백성들의 불신앙의 말에 진노로 대답하시
며 ( 34절. 27-28절을 참고하라 ), “이 악한 세대”는 그 땅을 볼 수 없다고 맹세하신
다 ( 이 맹세는 족장들과 했던 옛 맹세와 역설적으로 대조된다, 34-35절 ). 그래서 여기서 민수기 내러티브의 논리가 유지된다. 즉 호렙 세대는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약속을
물려받지 못할 것이지만, 다음 세대는 물려받을 것이다. ( “본문 해설”도 보라. ) 그
개념은 신명기의 취지와 다소 대조를 이룬다. 즉 그 세대들이 특성상 하나 라는 점 말이다 (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와 대조, 34절 ) ( 덧붙여 말하자면, 그 땅 의 수여는 족장들에게 주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35절. 이것은 이스라엘의 통일성을 말해 주는 또 다른
면이다. 1:8을 참고하라. 그리고 1:8과 위에 있는 “본문 해설”을 참고하라. ) 갈렙이 배제된 것이 이제 설명된다. 이에 대한 특별한 이유는 여기서 주
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신명기가 앞에서 정탐꾼들의 상세한 보고를 삭제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데, 정탐꾼에 대한 이야기 ( 민수기에 있는 기사 ) 에서는 갈렙의
믿음이 부각됐었다. 여기서는 갈렙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다는 일반적
인 의미로만 부각된다. 이런 식으로 민수기 기사의 주요 흐름이 다시 한번 고수되지만, 그 흐름은 이스라엘이 불신앙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 주는 지배적인 관심에 종속된다. ( 민 14:24는 갈렙과 그의 자녀들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 한다. 신명기는 이것도 제외했다. 아마도 모압에 있는 전체 백성이 그 땅을 차지하려는 모습을 해칠 수 있 기 때문인 것 같다. ) 반대로 모세는 그 땅을 보지 못한다. “너희 때문에”라고 감질나게 말하는 것 외에는 이에 대한 뚜렷한 이유가 신명기에는 주어지지 않았다. 민수기는
정탐꾼들의 임무에 대한 기사에서 모세가 제외됐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 민 13-14장 ). 민수기는 나중에 광야에서 억지로 기다리는 기간이 지난 후 이스라
엘이 그 땅에 접근하는 문맥에서 그것을 말한다 ( 민 20:10-13 ). 거기서 언급된
이유 ( 12절 ) 는 대개 모세가 교만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 Wenham 1981: 150–151 ). 신
명기는 자료를 개성 있게 보여 준다. 첫째, 신명기는 사건들을 압축했다 ( 신명
기가 사건들을 압축했다고 보는 것은, 연대적 난제 때문에, 민 20장에 있는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고 가정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럽게 본문을 보는 방법이다. S. R. Driver 1895: 26–27; Craigie 1976a: 105 ). 민수기 20장 12절이 개인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에스겔의 교리에 기반
을 둔 후기 개념이라고 가정할 필요도 없는데 ( Mayes 1979: 147; Weinfeld 1991: 150 ), 이는 다음에 나오는 이유 때문이다. 즉 민수기 14장 30절이 오직 갈렙과 여 호수아만 그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를 단서로, 모세가 들어가
지 못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논리적 결과에 즉시 이르게 된다. ( 민 20:12에서
모세와 함께 아론이 제외된 것이 여기서는 간과되었는데, 아마도 신명기가 모세에게 특히 관심을 두고 있 기 때문인 것 같다. ) 둘째, 신명기는 계속 모세를 하나님의 대변자로 그리며, 모 세에게 붙어 있는 특별한 죄를 묵인한다 ( 1:9-18에 있는 위의 내용을 참고하라. 그 구절에 서 모세는 “원망”죄에 대해 면제된다, 9절. 반대 의견으로 Merrill 1994: 82–83 ). 이것은 모세가 배제된 것에 대해, 배제되어 마땅한 백성과의 일종의 연대라는 것 외에는
달리 매우 특별한 이유를 남기지 않는다.
모세의 배제로 인하여 여호수아가 그의 후계자로 지명된다 ( 38절 ). 여기서
모세의 종으로 소개된 여호수아에 대한 갑작스러운 언급은, 민수기 이야기
를 모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갈렙처럼 여호수아의 입성은
뜻밖이다. 그는 정탐꾼 중 하나였다고 언급되지 않는다 ( 민 13:16을 참고하라 ). 여
호수아가 선택된 것은 여기서 단순히 하나님의 선택으로 그려지며, 모세가
배제됨으로써 생긴 결과로 그려진다. 민수기에서는 여호수아의 임명이 광
야 시기 처음이 아니라 끝에 오는데 ( 민 27:15-18 ), 그런 면에서 민수기의 연대 가 여기서 다시 한번 압축됐다.
배제와 입성을 주관하는 논리는 호렙 세대의 자녀들이 들어갈 것이라는
단언과 함께 계속된다 ( 39절 ). 이 절은 민수기 14장 31-35절의 내용을 간단
명료하게 전달한다.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이라는 어 구는 민수기 14장 31절을 정확히 따른다. 우리 본문에는 ( 민수기에서 민 14:3에서
제공된 ) 선행어가 없다. 따라서 이 어구는 나중에 나오는 민수기 14장 31절에
서 이입된 것 같다 ( 이것과 70인역에 삭제된 것에 대해서는 “본문 해설”을 보라 ). 그러나 신
명기가 정탐꾼 이야기를 다루는 다른 곳에서는 민수기에 있는 전체 기사를
내포하는 자세한 내용을 포함시킨다. 그래서 이 어구는 이스라엘에게 믿음
이 없다는 신명기의 혹평의 원래 부분인 것 같다.
다음 세대는 이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즉 결정
의 이 순간에 ( “오늘” ), 그들은 아직 도덕적으로 책임이 없다 ( 사 7:15를 참고하라 )
이것은 보통 말하는 무죄 선언과는 다르다. 사실 첫 번째 명령 때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죄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땅이라는 약속된 선물의 수혜자가 되었고, 그 땅을 “산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 나 그들 자신이 받아야 할 믿음의 시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단락은 호렙 세대가 실격된 것에 대한 논리적 결과로 마무리하는데, 즉 갈대 바다 ( Reed Sea, 개역개정 “홍해” ) 를 따라 광야로 “방향을 돌려” 가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그들이 왔던 길이다. 이 명령어는 7절에 있는 것과 매우 비슷하지만, 강조점은 7절을 단호하게 풍자한 것에 있다. 7절에서는 그 땅 이 그들 앞에 열려 있었다. 그들의 길은 더 이상 전진이 아니라 후퇴다. 그
들에게 기회의 문은 이제 닫혔다.
41-46절. 비꼼과 풍자의 의미는 이제 백성들이 그 땅에 뒤늦게 들어가려
는 것을 통해 강조된다 ( 이 기사는 민 14:39-45와 평행한다 ). 형식적으로, 41절에 표 현된 계획은 완전히 옳아 보인다. 거기에는 죄 고백이 있고 ( 신명기에서 유일함 ),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올라가서” 싸우겠다는 결의가 있다. 그러나 이
고백에는 효력이 없으며 ( 렘 3:22b–24 ), 새 결의가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서 오 지 않았음이 명백히 밝혀진다. ( 이 점은 민수기에서보다 더 강하게 강조된다. 왜냐하면 다음
에 나오는 금지는 원래 명령을 뒤집는 것인데[42절], 그 금지는 모세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
터 직접 온 것이기 때문이다[민 14:41–42를 참고하라]. ) 중대한 발전은 모세가 그들 “중 에”, 문자적으로 말하면 그들 한가운데 있지 아니하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출애굽기-민수기에서 흔하며 중요한데, 특히 출애굽기 32-34장과 민수기 14장에서 그렇다. 각 경우 쟁점은 여호와가 그의 백성 가운데 계신지, 그래 서 그들이 그 땅을 향해 계속 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것이다 ( 출 33:3, 5; 34:9–10. 출 17:7; 민 14:14, 42[44]를 참고하라. 그리고 Moberly 1983을 보라 ). 신명기는 특히 민 수기 14장 42절과 44절에서 이 개념을 취한다. 비록 이전 내러티브에서 우 세하게 나오는 진영과 성막, 언약궤의 이미지가 없지만 말이다. ( 신 6:15; 7:21; 23:14[15]; 31:17도 보라. ) 그래서 하나님 없이 “올라” 가고자 하는 시도는 큰 반역 행위로 간주되는
데 ( 43절 ), 동사들의 축적으로 그것을 나타낸다. 즉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 고 ( 문자적으로, “듣지 아니하고”, 6:4를 참고하라 ), 거역하고 ( 26절을 참고하라 ), 교만하게 행 했다. 전에는 올라가지 않는 것이 거역이었지만, 지금은 올라가는 것이 거 역이다. 거룩한 전쟁의 논리도 뒤집혔으며, 그 땅의 거주민들 ( 아모리 족속이 다
시 이 거주민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한다. 민 14:45와 대조된다 ) 은 이스라엘에게 굴욕감과 값
비싼 패배를 안겨 준다 ( 44절 ). 호르마는 네겝에 있는 가나안 도시였다. 그러
나 그 이름은 “헤렘”이라는 개념을 흥미롭고 풍자적으로 상기시킨다. 즉 이
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진멸시켜야 했던 것이 금지된다 ( 2:34; 3:6; 7:2를 참고하
라 ). 반전의 주제는 백성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계속되며,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듣지” 아니하셨다는 두 번 반복된 단언으로 계속
된다 ( 45절 ). 이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음을 반영한
다 ( 43절 ) 그 땅을 차지하고자 했던 것이 무산된 후, 가데스에서 보낸, 길지만 구체
적인 명시가 없는 기간이 뒤따른다 ( 46절 ). 이 언급은 애굽과 가나안 사이 정
박지로 이미 명시되었던 것 ( 2절 ) 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연대는 다소 열려
있다 ( 문자적으로, “여러 날”이다. 비록 이 어구는 동일하게 “여러 해”를 의미할 수 있지만 ). 때때로
가데스와 관련된 신명기의 연대는 민수기의 자료와 긴장을 이룬다. 민수기
는 거기에서 오직 한 번 머물렀던 것으로 분명히 말한다 ( 그리고 JE는 40년 중에서
이른 시기로, P는 늦은 시기로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민 13:26-27 JE; S. R. Driver 1895: 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