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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AOTC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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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리즈 서문 | 6

저자 서문 | 8

약어 소개 | 11

서론 18

1. 성경 본문과 역본 | 20

1.1. 히브리어 본문과 아람어 본문 • 20

1.2. 헬라어 역본 • 20

1.3. 기타 역본 • 22

1.4. 본문 비평 지침 • 22

2. 번역 | 23

3. 다니엘 1-6장 해석하기 | 25

3.1. 문학 유형과 해석 • 25

3.2. 이야기 이해하기 • 32

3.3. 이야기에서 배우기 • 34

4. 다니엘서의 환상 해석하기 | 36

4.1. 환상과 꿈 • 36

4.2. 다니엘 7-8장과 상징적 환상 • 38

4.3. 다니엘 9장, 10-12장의 형식 • 42

5. 다니엘서의 역사적 맥락 | 44

성경 본문과 주석 53

맺음말 427

1. 연대 | 427

1.1. 역사적 오류 • 427

1.2. 언어학적 주장 • 428

1.3. 다니엘과 예고적 예언 • 429

1.4. 다니엘서, 예언인가 묵시인가? • 431

1.5. 다니엘서와 히브리 정경 • 434

1.6. 결론 • 434

2. 작성 및 저작설 | 435

3. 신학적 맺음말 | 439

부록: 다니엘서 추가 본문 441

1. 아자랴의 기도 및 세 젊은이의 노래 | 441

2. 벨 이야기와 뱀 이야기 | 446

3. 수산나 | 449

참고문헌 | 454

| 시리즈 서문 |

아볼로 구약 주석 ( AOTC ) 은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위대한 지성을 열정적

이고 강력하게 전파할 수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 기독교인의 이

름을 따른다 ( 행 18:24-25 ). 아볼로는 과거의 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의 동시대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석 시리즈는 아볼로가 했던 일과 똑같은 목적을 추구한다. 이 시리즈의 한쪽 발은 원문의 심대한

세계 속으로 언제나 굳게 내디디면서 다른 한쪽 발은 설교자와 교사와 성 경을 공부하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폭넓은 독자 집단을 향해 뻗쳐 있다. 이 시리즈의 편집자들은 학문적 탁월성과 실제적 적용의 통찰을 겸비함으로써

이 두 가지 영역 모두에서 능숙한 학자들을 선발했다. 한 언어의 모든 의미를 다른 언어로 옮기기 위해서는 번역자들이 원문과 모국어의 언어적 관습이나 의미론적으로 미묘한 차이에 통달해야 한다. 그

러나 주석가들은 단지 원문의 번역자 역할이라기보다는 해석자 역할을 한 다. 주석가들은 번역자들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다양하게 이중적 입장을 가 질 필요가 있다. 즉 한편으로는 주석가들도 번역자들처럼 직접 탁월한 번역 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언어적인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주석가들

은 문학적 관습들, 사회학적이고 문화적인 습관들, 본문의 생산자와 관계자 들의 역사적 환경과 이해와 신학적 관점들에 완전히 정통해야 한다. 또 다 른 한편으로 주석가들은 자기들의 시대와

시리즈 서문

있다.

전통적으로 주석가들은 고대의 본문에 빛을 비추고 뜻을 설명하는 데 만

족해 왔다. 그러나 더 최근에는 우리 시대 상황을 파고드는 주석의 필요성

이 더욱 분명해졌고, 이 시리즈는 본문의 역사적 의미 규명과 그 현대적 적

용을 결합한 방법론을 의식적으로 채택했다. 각 주석의 저자들은 새로운 번

역, 본문 해설, 문학적 형식 및 단락의 구조 및 배경, 본문 주해에 따른 설명

등을 통하여 원문을 철저히 분석한다. 저자들은 각 구절이 성경과 교회 안

에서 어떤 해석적 발전을 거쳤는지 연구한 뒤, 현대 독자들에게까지 그 구

절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우리는 이 주석이 단지 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탁월한 수단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목회자들의 설교를 위한 효율적인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데이비드 베이커 ( David W. Baker ) 고든 웬함 ( Gordon J. Wenham )

이 주석은 다른 누구보다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할 책임을 가진 분들, 특 히 기독교 환경 속에서 그렇게 하는 분들을 위해 쓰여졌다. 그분들의 여러

필요들을 염두에 두다 보니 나는 이 주석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하게 되 었다. 예를 들어서 나는 ‘본문 해설’에서 상세한 내용을 다 설명하지 않고, 그 대신 본문 비평이나 문법, 특히 히브리어와 아람어 본문을 확정하고 이

해함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론과 관련된 사안들만 다루려고 했다.

이 주석의 나머지 부분은 주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본문을 다룬다.

그렇게 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세한 연구를 마친 내 입장에

서 생각해 볼 때, 다니엘서의 현재 이야기들이나 환상 기사들 이면에 있는

초기 전승들의 형식을 과연 어느 정도나 합리적 확실성을 갖고 복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만약 더 이른 시기 전통들이 가졌던 본문의

모양이 일정 정도의 확실성을 갖고 복구될 수 있다면, 오직 그 전통들이 어

떻게 발전했는지 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학문적 토론이나 강연장 의 토론 의제가 되기보다는 교회나 회당에서 교육이나 설교에서 건설적으 로 활용 가능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둘째, 우리가 갖고 있는 현재 본문의 이야기들과 환상 기사들이 형식상으로 매우 치밀하게 다듬어졌고, 그 형식

의 완성도가 인정되고 연구되기에 충분할 만큼 가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히브리어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고 여기는 것은 바로 최종 형식의 본문이기 때문이다.

본서에서 이야기와 환상 기사들의 형식과 구조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서문

문학 비평 분야에서 행해지는 순수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다 ( 형식과 구조를 통해

표현된 예술성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 이 시도는 본문의 의미를 열기 위한 한 가지 수단이다. 한 본문이 자기의 중요한 관심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

정한 구조를 갖추기 마련이다. 특정한 단어나 구절을 사용하는 방식 역시

이런 견지에서 본문의 뜻을 알려 주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각 장의 ‘주석’은 ‘형식과 구조’ 연구에서 제공한 통찰들을 근거로 진행될 것이며, 본문이 제

기하는 다양한 사안들을 상세히 조사함으로써 본문의 더 깊은 곳에서 의미

를 길어 올릴 것이다. 마지막 단계로 ‘해설’에서는 연구의 초점이 본문의 세

부사항에서 벗어나 주요한 신학적 주제들로 옮겨질 것이다. 이 신학적 주제

들은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주로 논의되겠지만, 우리 시대에 유 용한 암시들도 헤아려 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니엘서를 우리 시대 환경

에 상세하게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적용은 상이한 상황들에 따

라 크게 달라질 수 있고, 결국엔 각 교사나 설교자가 자신의 청중들에게 직

접 적용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주석의 목적은 그분들이 그

렇게 하실 수 있도록 다니엘서 본문 이해에 있어서 견고한 근거를 제공하

는 것이다.

본 주석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상세한 서론과 참고문헌이 필요한 독자는 골딩게이와 콜린스의 주석서들을 적절히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 J. E. Goldingay, World Biblical Commentary, 1989; J. J. Collins, Hermeneia, 1993 ). 본 주석의 목적을 고려할 때, 상세한 다니엘서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인 이 두 주석서가 이미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 내용을 반복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부적절하다고 판

단되었다. 독자는 본 주석이 그 두 사람의 주석서들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

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본 주석이 나오기까지 몇몇 분들이 수년 동안 나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셨고, 나는 이곳 지면을 빌어 그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리버풀 대학교

에서 나의 다니엘서 박사 학위 연구를 지도했던 앨런 밀러드 ( Alan Millard ) 교

수는 나에게 아카드어를 가르쳤고 다니엘서 이해를 위해 중요한 맥락을 제

공하는 아카드어 자료들도 소개했다. 틴데일 재단은 나의 박사 학위 연구를

위해 필요한 자금의 일부로 연구 지원금을 제공했다. 물론, 아볼로 구약 성 경 주석 시리즈 편집자들이 나를 다니엘서 주석 집필자로 선정하지 않았다 면 본 주석은 세상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집필의 기회를 준 편집자들 께, 특히 본 주석의 원고를 보시고 유용한 조언을 해준 고든 웬함 ( Gordon Wenham ) 교수께 감사드린다. 본 주석의 출판을 맡아 준 영국 기독 대학생회

관계자들, 특히 편집 작업을 한 필립 듀스와 조 브람웰에게도 꼭 감사드리

고 싶다. 이 주석서를 쓰던 지난 수년 간 한결같이 내게 힘이 되어 준 아내 하젤과 우리의 두 아들 크레이그와 스튜어트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다

른 누구보다 내가 박사 과정 연구를 진행하던 시간과 이후 이 주석을 쓰던

여러 해의 기간을 포함해서 언제나 내게 사랑과 지원과 격려를 주었던 내

아내 하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어니스트 루카스 ( Ernest Lucas )

서론

히브리어 성경이나 기독교 성경의 개신교 정경에 나오는 형태의 다니엘 서는 그보다 더 광범위한 ‘다니엘 문학’의 일부분이다. 기독교 시대 이전으

로 거슬러 올라가는 다니엘서의 헬라어 형태 속에는 추가 자료들이 들어 있다. ‘아자랴의 기도’와 ‘세 청년의 노래’가 제3장에 추가되는데, 그 세 유

대인들이 풀무불 속에 있는 동안 이 기도들을 드린다. 테오도티온역에서는

다니엘 1장 앞에 ‘수산나 이야기’가 놓여 있다. ‘수산나 이야기’가 다른 헬

라어 역본들에서 12장 뒤에 놓이게 될 때는 ‘벨’( Bel ) 이야기와 ‘용’( 혹은 뱀 )

이야기로 알려진 다른 두 이야기들 앞에 나오는 경우도 있고 뒤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대인들과 개신교인들은 이런 헬라어 역본들을 외경으로 여

기지만 천주교인들은 제2정경으로 여긴다. 본 주석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발견되는 다니엘서의 형태에 우선적 관심을 기울인다. 추가적인 헬라어 본

문들에 대한 한글 번역은 부록에서 제공되기 때문에 이 주석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쿰란에서 발견된 단편적인 아람어 본문들도 이 광범위한 다니엘 문학의

일부분이다 ( Brooke & VanderKam [eds.] 1996 참조 ). 4Q243-244는 다니엘에 관한 궁정 이야기로 보이는데,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묵시적 개요를 담고 있다.

4QpsDanc는 다니엘과 어떤 책을 언급하고 이스라엘 역사를 포괄하는 제사 장들과 왕들의 목록을 전해 주는데, 종말론적 대단원으로 끝난다. 4QpsDand는 다니엘을 사실상 언급하지 않지만, ‘인자’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을 언급하면서 다니엘 7장과의 관련성을 암시한다. 4QPrNab은 나보니두스에 관한 이야기인데, 비록 다니엘이 언급되진 않지만 다니엘 4장과 모종의 유사성을 띤다.

다니엘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난해한 책이다. 다니엘서는 두 가지 다른

서론 학술지, 사전, 연속 간행물

종류의 내용, 곧 외국 왕들의 궁정에서 일하는 유대 포로들에 대한 이야기

부분 ( 1-6장 ) 과 이 포로들 중 한 사람이 경험하고 기록한 환상 부분 ( 7-12장 ) 으

로 구성된다. 그리고 다니엘서는 히브리어 ( 1:1-2:4a, 8-12장 ) 와 아람어 ( 2:4b-7:28 )

두 가지 언어로 기록되었다. 히브리어 부분과 아람어 부분이 전환되는 지점

들은 이야기 부분과 환상 부분이 나눠지는 지점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기독

교 성경에서 다니엘서는 구약 성경의 선지서 목록에 포함되는데, 이에 비하

여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다니엘서가 정경의 세 번째 부분인 ‘성문서’에 포

함된다. 이스라엘 및 바벨론의 지혜 전통들과 다니엘서의 유사성 여부를 비

롯하여, 다니엘서가 히브리 선지자들과 더 친근한지 혹은 후기 유대교 묵시

들과 더 친근한지 여부에 관하여 아직 진행 중인 논의는 바로 이 불일치 문

제들과 맞물려 있다. 이런 난해한 문제들에 관한 논의는 다니엘서의 통일

성, 저작권, 저술 시기, 역사성 문제들과 불가피하게 연결된다.

주석서들 대부분은 이런 사안들을 ‘서론’에서 어느 정도 깊게 다룬 다음, 결론부에 가서야 본문을 어떻게 읽어야 할 지 방향을 제시한다. 종종 그런 주석서들은 결론들을 합리화시키려는 시도밖에는 못하게 된다. 그런 학문

적 시도는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겠지만, 본 주석의 목적에는 잘 맞지 않는

다. 통상적으로 ‘서론’에 들어가야 할 많은 내용들을 내가 ‘맺음말’로 미루

어 둔 이유는 독자들이 다니엘서 본문에 접근할 때 좀 다른 방식으로, 즉 본

주석이 최종적으로 취하게 된 구성 방식에 따라 접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 다. 나는 이전 단락에서 약술된 현안들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에 접근했고, 그럴 때는 본문으로부터 적절한 증거들을 꼼꼼히 제공하되 독자들로 하여

금 각자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입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증거

들은 다니엘서에 관련된 난제들을 최대한 해결할 수 있도록 맺음말에서 종 합될 것이다. 너무 당연하겠지만, 내가 맺음말에서 몇몇 결론들을 만들어

감에 따라, 다니엘서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결정사항

들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결정들이 본문에 억지로 강요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해석적 결정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다니

엘서 본문 자체로부터 나오게 되기를, 그래서 독자들에게 분명히 납득되기 를 희망한다. 그러므로 이 주석을 사용하는 분들은 본문에 대한 일련의 특

정한 결론들을 정당화하기 위한 주장 전개에 수동적으로 자기를 맡기지 말

고, 오히려 나와 함께 본문의 의미를 조사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다니엘서의 이야기들과 환상들의 신학적 의미가, 전통적으로 서론에서

다뤄지던 문제들에 대한 해법들과 그리 밀접한 관련은 없다는 깨달음이야

말로 내가 이런 방식의 연구를 통해 하게 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이어지

는 ‘서론’의 나머지 부분은 본문 해석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문제들을 다루 기로 하겠다.

1. 성경 본문과 역본

1.1. 히브리어 본문과 아람어 본문

몽고메리 ( Montgomery 1927: 12 ) 의 평가에 따르면, 다니엘서의 마소라 본문에

는 기록된 분문 형태 ( 케티브 ) 와 실제로 읽혀진 본문 형태 ( 케레 ) 에 있어서 많

은 양의 불일치가 나타나고, 또 사본들 간에도 다양한 독법들이 존재한다.

그런 많은 변이형들은 다른 역본들에서 발견되는 변이형들과 일치한다.

여덟 개의 단편적 다니엘서 사본들이 쿰란에서 발견되었다. 그 중 가장 오래 된 4QDanc는 BC 2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 Ulrich 1987: 17 ), 가장

늦은 시기의 사본은 쿰란 거주민들이 가장 나중까지 머물렀던 시기인 AD 1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Trever 1970 ). 2장 4b절에서 히브리어가 아 람어로 전환되는 특징은 1QDana에서 확인되고 ( Barth é lemy & Milik [eds.] 1955: 150-151 ), 8장 1절에서 아람어에서 히브리어로 전환되는 특징이 4QDana와 4QDanb에서 확인된다. 1QDanb와 4QDand에 있는 다니엘서 3장의 본문은 헬라어 역본들에서 발견되는 기도문들을 담고 있지 않다 ( Ulrich 1987: 18 ).

콜린스 ( Collins 1993: 3 ) 는 쿰란에서 나온 증거들에 관하여 요약하여 평가하 기를, ‘전반적으로 쿰란의 발견물들은 마소라 본문의 사본 전통이 가진 고

대성을 강력히 입증한다’고 말했다.

1.2. 헬라어 역본

4세기 말 히에로니무스 ( Jerome ) 의 저술에 따르면, 다니엘서의 70인역 본

문이 히브리어와 아람어 본문과 크게 달랐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기존 의 70인역 본문 대신 테오도티온 ( Theodotion ) 번역본을 사용하게 되었 다 ( Collins 1993:3-4의 인용문을 보라 ). 히에로니무스가 다니엘서의 70인역 본문으로 여겼던 것은 지금은 통상적으로 고대 헬라어 번역본 ( the Old Greek ) 으로 지칭 된다. 왜냐하면 70인역의 다니엘서 본문과 70인역 다른 책들과의 관계, 특히 오경의 번역본들과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다니엘서의

서론 1. 성경 본문과 역본

70인역 본문을 너무나 완강히 거절했고, 다니엘서의 70인역 본문은 오직

세 개의 증거 사본들만 알려지게 되었다. 1 ) 코덱스 키시아누스 ( Codex Chisianus 혹은 MS 88 ) 사본은 AD 10세기경에 만들어졌다. 이 사본은 오리겐의

헥사플라 ( Hexapla ) 에 있는 고대 헬라어역의 개정본을 반영한다. 2 ) 시로-헥

사플라 ( Syro-Hexapla ) 의 문자적 번역 역시 고대 헬라어역 본문과 똑같은 형태

를 증거한다. 3 ) 현재 일부분이 더블린의 체스터 비티 도서관에 보관되고

다른 일부분이 쾰른과 바르셀로나에 분산되어 보관되어 있는 파피루스

967은 AD 3세기경에 작성된 사본이며, 오리겐의 헥사플라에 실리기 이전 의 고대 헬라어역 다니엘서 대부분을 수록하고 있다. 파피루스 967에서

7-8장은 4-5장 앞에 놓여 있는데, 아마도 이 장들을 올바른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고대 헬라어역 다니엘서는

마소라 본문 다니엘서와 특히 4-6장에서 상당히 다르다. 고대 헬라어역 다

니엘서의 자유로운 번역, 해설 첨가, 상이한 셈어 원본 사용에 관한 이유들

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고대 헬라어역의 작성 연대는 대체로 BC

100년경으로 추정된다 ( Montgomery 1927: 38 ).

테오도티온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헬라어역은 약 AD 200년경에 고대

헬라어역을 대체했다 ( Hartmann & Di Lella 1978: 78-79 ). 테오도티온역은 마소라 본 문과 유사한 본문에 대한 문자적 번역이다. 전통적으로, 테오도티온이라는

이름의 인물은 AD 2세기 말 무렵에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 나타난 다수의 다니엘서 인용구절들은 고대 헬라어역보다는 테오도

티온역을 따른다 ( Hartmann & Di Lella 1978: 80에 있는 사례들 참조 ). 따라서 기독교인들

이 사용하기 전에 이미 ‘원 테오도티온역’이 있었고, 그것이 다시 2세기에 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학자들은 ‘원 테오도티온역’과 그것의

개정본 사이의 관련성을 부인하면서, 다니엘서의 테오도티온역은 BC 1세

기에 만들어졌으며 원 마소라 본문에 더욱 근접한 고대 헬라어역을 새롭게

번역한 것이거나 혹은 상당히 개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퀼라 ( Aquila ) 역과 심마쿠스 ( Symmachus ) 역은 시로-헥사플라와 교부들의

인용문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둘은 마소라 본문과 가까운 셈어 본문을 문자적으로 옮긴 것들이다. 마소라 본문과 이 두 번역의 차이는 매우 근소 하기 때문에 마소라 본문의 형태를 확정 짓는 증거 사본 역할 이외에는 다 니엘서 본문 비평에 거의 도움이 안된다 ( Montgomery 1927: 28 ). 루키아누스의 다니엘서 헬라어역 ( The Lucianic Recension ) 은 테오도티온역 본문의 수정본이 며, 고대 헬라어역을 활용하되 아마도 아퀼라역과 심마쿠스역도 활용했던

것 같다. 이 개정본은 AD 2세기 후반 경에 만들어졌다 ( Ziegler 53-56 )

1.3. 기타 역본

고대 라틴어역 사본들, 즉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역보다 앞선 시기의 사

본들은 교부들의 인용문들과 몇 개의 단편 사본들을 통해서 알 수 있 다 ( Montgomery 1927: 29-32에 있는 목록들 참조 ). 이 사본들은 고대 헬라어역과 테오

도티온역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히에로니무스는 다니엘서를 389년과

392년 사이에 라틴어로 번역했다 ( Hartmann & Di Lella 1978: 75 ). 비록 히에로니무 스는 자신의 불가타 ( Vulgate ) 역을 자음으로 된 히브리어와 아람어 본문에 근 거하여 작성했지만, 그는 최소한 헥사플라를 통해서라도 더 이른 시기의 번

역본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그 번역본들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을 것이다. 페시타 ( Peshitta ) 혹은 고대 시리아어 번역본은 AD 3세기 기독교인들 의 번역이다. 페시타역은 자음으로 된 히브리어와 아람어 본문에서 직접 번 역되었지만, 동시에 테오도티온역에도 의존했다. 시로-헥사플라는 616/7년경 텔라의 바울이 만든 것으로서 오리겐의 헥사플라에 있는 고대 헬라어역 본문에 대한 문자적인 고대 시리아어역이다. 오리겐의 헥사플라

에는 그가 개발한 비평기호들과 변이형들에 대한 매우 다양한 표기법들이 들어 있다.

콥트어 번역본들은 헬라어 번역본들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사히

딕 ( Sahidic ) 번역본은 파편 형태로만 남아 있으며 테오도티온역 본문 형태를 따른다. 보하릭 ( Boharic ) 역본은 헥사플라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 Gehman 1927 )

그 밖의 여러 가지 역본들이 더 존재한다. 아랍어 역본은 테오도티온역 본 문 형태에 대한 번역이다 ( Gehman 1925 ). 아르메니아어역은 아마도 AD 5세기

초에 작성된 것 같다. 이 역본은 테오도티온역에 대한 루키아누스의 헬라어

역을 참조했던 페시타역을 번역한 것이 시초였으나, 나중에는 테오도티온

역의 초기 형태에 더 근접하도록 그리고 동시에 페시타역을 더욱 문자적으

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개정되었다 ( Cowe 1992: 419-453 ). 아르메이나어 역본은

조지아 역본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 Cowe 1992: 239-252, 288 ). 에티오피 아 역본은 테오도티온역을 매우 자유롭게 번역한 것이다 ( Charles 1929: lviii ).

1.4. 본문 비평 지침 본문들과 역본들에 대한 이 개요는 다니엘서의 히브리어와 아람어 원본에

2. 번역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 본문들이 마소라 본문과 쿰란 사본, 헬라어 역본들, 불가타역과 페시타역 등임을 보여 준다. 본문 비평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

준들은 몽고메리의 책에서 발췌하되 ( 1927:56-57 ) 그 이후 학자들의 연구도 고

려했다 ( 특히, Hartmann & Di Lella 1978: 72-84 )

1. 일반적으로, 역본이 더 오래될수록, 그 역본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지고

아마도 그 역본의 권위도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양한 역본들의 독

립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것은 곧 역본 집단들이 단일한 증거 본문으로

여겨져야 함을 의미하며, 또한 그런 역본 집단들 중에 발견되는 차이점들은

자세히 조사될 가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 고대 라틴어역과 테오도티온역의 동일 형태, 테오도티온역과 페시타역 의 동일 형태, 혹은 불가타역과 테오도티온역의 동일 형태는 두 본문이 서 로 의존하여 작성되었기 때문일 경우가 흔하며, 이런 책들 간의 불일치 형

태들은 중요한 가치가 있다.

3. 만약 고대 헬라어역과 테오도티온역을 조합한 것이 마소라 본문과 차 이를 보인다면 그것은 큰 의미가 없는데, 그 이유는 테오도티온역이 고대 헬라어역에 의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고대 헬라어역과 테오도티온역이 불일치하는 경우에는, 테오도티온역 이 고대 헬라어역 증거 본문들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독법들을 가끔씩

보여 준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고대 헬라어 독법들을 테오도티온역보다 언제나 더 존중해야 한다.

5. 마소라 본문과 고대 헬라어역이 조합된 형태는 매우 신중하게 다뤄져 야 한다.

6. 마소라 본문과 테오도티온역이 조합된 형태는 후대 역본들보다 더 가 치 있게 다뤄져야 한다.

7. 4QDan 사본들과 고대 헬라어역이 조합된 형태가 마소라 본문과 차이 를 보이거나, 혹은 마소라 본문과 테오도티온역이 조합된 형태와 차이를 보 인다면, 그 차이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2. 번역

한 언어로 된 본문을 다른 언어의 본문으로 번역하는 일에는 때로는 어려 운 선택이, 또 때로는 적절한 조정 작업이 수반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

들이 있다. 우선, 단어들은 사물들에 대한 단순한 표지 정도로 축소될 수 없 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단어들은 좀 더 넓거나 혹은 좀 더 좁은 의미 폭을 가진다. 달리 말해서, 비록 서로 다른 언어에 속한 두 단어가 번역자에게는

대등한 듯 보이겠지만, 번역자가 그 둘을 무심코 대등한 관계로 간주했다가

나중에는 그 단어들이 각자의 언어에서 갖는 상이한 의미의 폭 때문에 독

자들을 오해하게 만드는 결과에 빠지는 상황들이 생긴다. 내가 다니엘 5장

을 숙고할 때 논의하게 되겠지만, 그런 문제의 한 가지 사례는 영어의

‘왕’( king ) 과 아람어의 ‘멜레크’와 아카드어의 ‘샤르루’의 서로 다른 의미의

폭에서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단어들은 각자가 주는 ‘직감’이 있고, 그래서

비록 두 단어가 서로 매우 대등한 의미의 폭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들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둘 중 어느 한 단어를 직관적으로 선택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단어가 그 상황에 ‘맞

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전들은 ‘말하다’( speak ) 동사와 ‘이

야기하다’( talk ) 동사를 상호 비교하여 뜻을 정의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두 동사는 특정한 상황들에 따라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적합하다는 느낌을

주기 마련인 것이다. 번역 작업에 있어서 기타 문제들은 서로 다른 언어들

이 가진 문법 구조의 차이들 때문에 발생한다. 히브리어와 아람어 동사 구

조가 한글의 동사 구조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은 번역자에게 다양한 어려움

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의미를 더 섬세하게 전달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수사적 장치들도 언어마다 상이하다.

그런 문제들에 봉착한 번역자들은 흔히 ‘형식적 등가’와 ‘역동적 등가’라

고 부르는 양극단의 중간쯤에서 나름의 번역 원칙들을 정하게 된다. ‘형식적

등가’ 원칙에 따른 번역은, 번역되는 언어로 뜻이 합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 게 하면서 동시에 원문의 언어가 가진 형식에도 최대한 근접하려고 추구하

는 번역이다. 영어로 된 번역 성경 중에서 이런 방식의 번역을 보여 주는 한

사례가 개역성경 ( Revised Version of the Bible 1881/5 ) 과 미국 표준 번역 ( American Standard Version 1901 ) 이다. ‘역동적 등가’ 원칙에 따른 번역은, 원문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원문이 끼쳤을 영향과 똑같은 영향을 번역문 의 독자에게 끼치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현대 영어 번역 ( Today’s English Version ) 으로도 알려진 복음 성경 ( The Good News Bible ) 이 그런 번역의 한 사례다.

번역에 대한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은 각각 나름의 장점들과 단점들을 갖고 있다. 역동적 번역은 형식적 등가 번역보다 더 잘 읽히고 더 쉽게 이해되는 번역물을 생산한다. 하지만 이런 번역은 번역자가 번역 작업의 일부분으로서

서론 3. 다니엘 1-6장 해석하기

상당한 분량의 ‘해석’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수행할 수 있어야만 가능해

진다. 또한 이 번역은 원문 속에 있는 많은 문제들과 불명확한 것들을 감춘

다. 본 주석에서 제공되는 번역은 잘 읽히는 구어체 현대 영어를 지향한

다 ( 한글로 번역된 이 주석은 개역개정을 표준으로 삼되 저자의 사역 제시가 필요할 때 추가로 표기하겠

다-역자주 ). 그러나 앞으로 ‘주석’ 부분에서 논의되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들 때

문에 중요하다 싶을 때마다 비록 영어의 질이 다소 떨어지게 되더라도 원

문의 특징들이 번역문 속에서 보존될 것이다. 대체로 의미에 있어서 모호함

은 있는 그대로 남겨질 것이고 본문에 대한 주석이나 구절의 의미를 다룰

때 논의될 것이다.

3. 다니엘 1-6장 해석하기

3.1. 문학 유형들과 해석

다니엘 1-6장의 이야기들은 현대 독자들이 경험하는 문화와는 크고 작은

여러 차이가 있는 문화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들이 더 이 상 존재하지 않는 문화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단순한 독자들 눈

에는 이 이야기들이 ( 1:1과 2:1의 ‘연대표기 공식 문구’에 근거하여 ) BC 6세기 유대인 포

로들의 경험을 다룬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사실이 너무 당연해 보이거나, 혹

은 ( 이 이야기들이 ‘기적적인’ 사건들을 전하기 때문에 ) 다양한 문화마다 있는 전설적인 영웅담과 같은 그런 일종의 허구적 이야기라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당연함’은 우리의 현대적 관념들에 근거해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 이야기들이 유래한 문화의 일부로서 문학

유형들 ( 혹은 장르들 ) 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유형들이 본래의 저자들과 독 자들에게 끼친 영향이 무엇이었을지 질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그런 질문들은 적당한 해답이 없음이 드러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 들을 제기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이 질문들을 제기할 가치가 있는 이유는 독자마다 각자의 문화에 존재하

는 상이한 문학 형식들에 대한 느낌이 있고, 독자들은 그 느낌을 갖고서 그

들이 직관적으로 판별하는 문학 형식으로부터 어떤 예상들을 하면서 본문

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문학 형식은 독자들의 예상뿐 아니라 저자들의 저술

원칙도 좌우한다. 어느 특정한 문화 속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려 하는 저자라 면 바로 그 문화에 속한 문학 형식들을 취하기 마련이다. 혹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저자와 독자들의 소통에 오해가 생기거나, 소통이 아예 불가

능하게 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물론 저자는 어느 기존 문학 형식에 노

예처럼 매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 형식을 수정하고 변환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장르 인식은 본문 이해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가 된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장르 인식은 직관으로 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때때로 직관이 틀

리기도 한다. 그것이 한 본문을 의식적이고 신중하게 분류하는 작업이 가치

있는 이유다. 소위 ‘장르 비평’은 분류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작업, 즉 한

본문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다. 장르 비평은 본문을 분류하되 독자가 그 본문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바

른 예상과 잘못된 예상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특히, 독자들은 자

신들의 문화와 상이한 문화로부터 유래한 글을 읽을 때 잘못된 직관에 빠

지기가 쉽다. 어떤 장르들은 특정한 문화를 배경으로 해야만 이해가 되지

만, 부주의한 독자에게는 그 특수한 장르들이 자신의 상이한 문화를 배경으

로 나온 장르와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또 어떤 장르들은 여러 문화들 속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그 장르들은 각각의

문화에 따라 약간씩은 서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실제로, 다니엘서의 이야기들과 관련된 장르들에 대한 질문들을 해결하

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첫째 이유는 이론적

인 차원의 것인데, 장르의 정의와 관련된다. 장르에 대한 간단한 정의를 내

리자면 ‘하나 이상의 공통 특징을 가진 본문 집단들’이 될 것이다 ( ‘장르’라는 용

어와 ‘형식’이라는 용어는 헷갈릴 수 있다. 여기서 ‘장르’는 본문을 일괄적으로 가리킬 때 쓰는 용어인 반

면, ‘형식’은 전체 본문을 구성하는 여러 작은 단위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 그런데 이런 장르 정의에 있어서 과연 어떤 ‘특징들’이 고려되어야 하는가? 어떤 학자들은 이 특징들이 가능한 한 일반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 문들의 외적 형식, 곧 ‘표층 구조’를 강조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보다 더 주

관적이고 직관적인 접근을 선호하기 때문에 본문의 내용을 더 강조하는 경 향이 있다. 실제로는, 우리가 만약 극단적인 일반성이나 극단적인 특수성

양자를 모두 피할 수 있다면 장르 분류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 둘 다 고려하

는 것이 바람직하고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요즘의 가루비누 광고들과 신 약 성경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 치유 이야기들에는 공통적인 표층 구조가 있다. 골치 아프게 하는 문제가 제시되고, 해결

서론

3. 다니엘 1-6장 해석하기

이한 내용을 고려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따라서 ‘가루비누 광고’

장르와 ‘치유 기적 이야기’ 장르를 구별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례는 장

르가 다양한 차원에서 분류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만약 우리가 형식을 강

조한다면 일반적인 분류를 하게 되고, 그 결과 매우 다양한 본문들을 묶어

주는 흥미로운 연결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내용을 강조한다면

특수한 분류를 하게 되고, 그 결과 대체로 유사한 본문들 간의 유용한 차이

점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본문의 특정한 의미나 목

적을 알아내는 실마리가 되곤 한다.

내가 아직 언급하진 않았지만 어떤 학자들이 장르 분류에 있어서 매우 중

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본문의 사회적 상황이나 기능이다. 이 기준과 관련된

문제는 이 기준에 근거한 분류가 위험스러울 만큼 순환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사회적 상황은 본문으로부터 추론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거꾸로

그 상황은 본문을 설명하는 틀이 된다. 사회적 상황이나 기능은 ( 이해 가능한 만

큼 최대한 ) 본문 내용의 일부분으로 취급되되, 다만 특별히 강조되지 않는 것

이 더 나아 보인다. 그러므로 예상컨대 다니엘 1-6장 이야기들에 대한 모

든 유용한 장르 분류 ( 곧 그 이야기들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 주는 분류 ) 는 형식과 내용 모

두의 특징들에 근거하여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실제적인 문제는 다니엘서의 이야기들과 동일한 문화적 상황에 속했고,

그래서 다니엘서의 이야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비슷한 본문들이 희박하다

는 것이다. 에스더서만 다니엘서와 비교할 만한 유일한 본문이다. 만약 우 리가 히브리어 성경 전체로 비교의 범위를 넓힌다면, 창세기에서 발견되는

요셉 이야기를 포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둘로는 여전히 매우 작은 본

문 집단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훨씬 더 멀리 시선을 넓혀서 성경 시대 동안

고대 근동 전체에서 발견되는 궁중 신하 이야기들을 포함시켰다. 아히

카 ( Ahikar ) 이야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알려진 유일한 사례다. 아람어 로 기록된 아히카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식민지가 있었던 이집트 남부의 엘 레판티네에서도 발견되었고, 이로 미루어 볼 때 아히카 이야기는 여러 유대 인 집단들에 유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몇 가지 이야기들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알려져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시누헤 ( Sinuhe ) 이야기와 웨나문 ( Wenamun ) 이야기다 ( Redford 1970: 87-105 ).

다니엘에 관한 이야기들은 요셉 이야기와 가장 분명한 유사점들을 보여 준다. 다니엘과 요셉은 모두 포로로 끌려가고, 둘 다 하나님이 주신 꿈 해석 능력 때문에 신분이 상승하게 되며, 둘 다 외국 군왕들의 신하가 된다.

두 이야기의 문학적 의존 관계 때문이라기보다는 두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사용한 문학적 주제 때문이겠지만, 다니엘 이야기와 요셉 이야기는 단어와 표현에 있어서 유사점들이 강하다. 이 사실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다니엘 1-6장을 ‘미드라쉬’라고 불리는 유대 주석 문학의 한 장르로 분류한다. 그

러나 이 분류는 ‘미드라쉬’라는 용어를 너무 대충 사용한 것이다. 포

톤 ( Porton 1981: 62 ) 의 정의에 따르면, 미드라쉬는 ‘구전문학이나 기록문학의

한 유형이며, 미드라쉬의 기록자와 그의 청중이 하나님의 말씀 계시로 간주

했던바 정경으로 확정된 본문에서 그 출발점을 가진다. 그래서 미드라쉬 속

에는 본래의 구절이 명백하게 인용되거나 분명하게 암시된다……무엇이든

미드라쉬로 간주되려면 그것은 계시를 담은 공인된 정경 본문과 분명한 관 계를 갖고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요셉 이야기는 다니엘 1-6장

에서 명백하게 인용되지 않으며, 다니엘 1-6장에 요셉 이야기에 대한 분명 한 암시가 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더욱이, 진정한 미드라쉬는 ‘성경

본문을 후손들에게 납득할 만하고 유용하고 적절하게 만들려고 하는 작업 이며,’ ‘미드라쉬의 출발점은 성경 본문이고, 미드라쉬는 오로지 그 성경 본

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Addison 1967: 74 ). 미드라쉬의 이런 정의는 다니엘 1-6장과 요셉 이야기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장르 명칭들이 다니엘서의 이야기들을 위해 활용되

었다 ( Collins 1993: 42의 항목들 참조 ). ‘소설’( novel ) 이라는 범주는 폭넓은 명칭이며, 한 작품이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사실을 뜻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이 명칭은 그런 작품을 역사 기록물과 확실히 구별한다. 앞에

서 언급된 다니엘 1장 1절과 2장 1절에 있는 ‘연대표기 공식 문구’는 반드

시 다니엘서의 이야기들이 역사적 기록물임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매우

비슷한 연대표기 공식 문구가 유딧 ( Judith ) 이야기의 서두에도 나타나지만, 아무도 유딧 이야기를 역사적 서사물로 분류하지는 않을 것이다. ‘로맨스’ 는 애정적 요소를 지닌 소설이다. 이 명칭은 요셉 이야기와 에스더 이야기

에는 적용될 수 있겠지만, 다니엘 1-6장의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설’을 장르로 규정하는 것에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 Wills 1990: 12-19 ). 전설

에 대한 단순한 정의는 ‘기적적인 것에 우선적 관심이 있고 교화를 목적으

로 삼는 서사물’이다 ( Collins 1984: 41 ). 다니엘서의 이야기들에는 분명히 ‘기적

적인’ 요소들 ( 꿈들, 벽에 쓰인 글자, 기적적인 구출 등 ) 이 있지만, 그런 기적적인 요소

들에 ‘우선적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다니엘서

의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교화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분명하다.

서론 3. 다니엘 1-6장 해석하기

어떤 학자들이 다니엘서의 이야기들을 고대 근동의 ‘지혜 이야기들’ 범주에

넣는 이유도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지혜자들’로 제시하는 등 이 이야기

들의 ‘교훈적’ 측면 때문이다.

다니엘 1-6장에 있는 이야기들에 대하여 가장 널리 인정받는 범주는 ‘궁

정 이야기’( court tales ) 다. 이 범주의 장점은 다니엘서 이야기들을 여러 면에 서 그와 유사한 고대 근동의 지혜로운 궁중 신하들 ( 현자들 ) 이야기들과 뚜렷

이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드포드 ( Redford 1970: 94-97 ) 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티프들을 열거했다. 1 ) 이런 현자들은 경탄을 불 러일으키는 속임수를 발휘하는 등 일차적으로는 즐거움을 주는 인물로 행

동한다. 이 과정에 그들은 때때로 왕을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2 ) 지혜로운 척하는 궁중 신하들은 갈팡질팡하거나 겁을 먹는 모습으로 등 장하기도 한다. 3 ) 현자들은 특히 임종 시에 지혜로운 말들을 남긴다. 4 ) 현

자들은 왕이나 왕의 땅을 모종의 재난으로부터 구해냄으로써 구원자 역할

을 한다. 5 ) 현자들은 수모를 겪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명예를 회복한다.

윌스 ( Wills 1990: 55-70 ) 는 궁정 이야기의 범위를 더 넓혀서 그리스 작가 헤로

도토스 ( Herodotus ) 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포함시켰다. 윌스는 다음과 같은 공

통적 특징들에 주목했다. 1 ) 외국의 궁정 신하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피정복

민들의 자존감을 높여 주기 위해서 그들의 윤리적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한

다. 2 ) 궁정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3 ) 충동적인

군왕, 죽음을 벗어나는 지혜로운 영웅 등 정형화된 특징들이 나타난다.

레드포드와 윌스의 저작이 ‘궁정 이야기’를 확실한 장르로 규정할 수 있

게 할 만큼 충분히 증거들을 제시했는지 여부는 더 많이 토론되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저작이, 시대와 지역의 견지에서 다니엘 1-6장의 이 야기들이 고대 근동에 매우 널리 유포되어 있던 문학 유형의 환경과 잘 들

어맞는다는 것을 입증한 것은 사실이다.

다소 직관에 의존한 것이긴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다니엘 1-6장의 이야 기들 중 3장과 6장을 따로 구별했다. 험프리스 ( Humphreys 1973 ) 는 ‘궁정 갈등 이야기’( 3장, 6장 ) 와 ‘궁정 경쟁 이야기’( 2장, 4-5장 ) 라는 두 가지 유형을 구별했 다. 다니엘 1장은 둘 중 어느 유형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콜린스 ( 1977: 34-54 ) 는 에스더, 요셉, 아히카 이야기들에도 적용되는 각 이야기 유형의 양 식을 제안했다. 궁정 갈등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유형을 보여 준다. 1 ) 왕 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한다. 2 ) 궁정에 상주하는 왕의 현자 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다. 3 ) 영웅이 호출되고 성공한다.

4 ) 영웅의 신분이 상승되거나 회복된다.

다니엘 1장은 궁정 경쟁 유형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왕은 자신의 계획

들이 실현되지 못하게 막으려는 문제를 모르고 있고,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

은 다른 훈련 중인 현자들과 더불어 명백하다기보다는 암시적인 경쟁을 벌 인다. 다니엘이 문제를 해결하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높은 지위로 올 라간다.

어떤 학자들은 ‘궁정 이야기’를 장르로 사용하는 것을 비판했는데, ‘궁정

이야기’가 공동의 구조 양식에 확고하게 근거해 있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 었다. 밀른 ( Milne 1988 ) 은 러시아 민담 학자 블라지미르 프로프 ( Vladimir Propp ) 가 만든 영웅 동화 분석에 기초하여 다니엘 1-6장의 이야기들에 대한

상세한 구조 분석을 시도했다. 그녀는 다니엘서의 이야기들 중 어느 것 하

나도 프로프가 상술한 도식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없음을 알아냈다. 다니엘

3장과 6장은 프로프의 도식에 가장 근접했고 서로 유사했으나, 다니엘서의

다른 이야기들과 뚜렷이 구별되었다. 그래서 밀른의 분석적 구조 연구는 궁 정 갈등 이야기와 궁정 경쟁 이야기의 차이에 대한 직관적 식별을 확정해 주었다. 비록 다니엘 4장은 다니엘 2장이나 5장과 내용 면에서는 유사하지

만, 편지 형식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2장이나 5장과는 매우 상이한 구조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장르에 대한 이러한 논의가 다니엘 1-6장 이야기들에 대한 해석에 과연

어떤 도움을 주는가? 다니엘 1-6장 이야기들이 다른 ‘궁정 이야기들’과 차

이를 보이는 방식은 중요한 요점들을 부각시킨다. 이 요점들은 각 장의 이

야기를 논의할 때 다뤄질 것이다. 다니엘 1-6장의 이야기들과 다른 궁정

이야기들의 유사점들은 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반적 요점을 암시하며, 여기서 언급할 가치가 있다. 고대 근동의 ‘궁정 이야기들’은 세 가지 주요한

이유 때문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 그 이야기들은 독자나 청중이 즐 기기 위한 오락을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곧 그 이야기들이 역사적 기 록물로서보다는, 이야기로서 더 적절히 다루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 이야기들 속에 나타나는 정형화된 특징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사실, 그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과 기타 특색들은 만화 같은 성질을 띤다. 분명히 우리는 여기서 학자다운 역사가의 관심보다는 오히려 이야기 꾼의 기술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 때문에 이 이야기들을 굳이 완전한 허구라고 할 필요는 없으며, 다만 이 이야기들은 상상력 풍부한 저작 에서 출발하여 역사적인 보도에 이르기까지의 긴 연속선상의 어느 한 지점

서론

3. 다니엘 1-6장 해석하기

위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아마 우리는 이 이야기들이 그 연속선상의 정확

히 어느 지점에 있는지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성급한 판단은 지양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판단들이 이야기들 속에서 나타날 때

특정한 역사적 관심사들을 다룰 것이다. 허구와 진실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

다. 예를 들어, 잘 연구된 역사적 소설은 어떤 사건에 관련되었을 것으로 여

겨지는 것을 그 사건에 대한 학문적 역사 연구가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진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진실을 이야기가 전

달하려고 하느냐에 관련된 문제다. 만약 다니엘 1-6장 이야기들의 장르에

관한 우리의 논의가 올바른 결론과 같아 보이는 것에 도달했다면, 이 이야

기들의 역사성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이 전달하려고

의도한 진실을 놓치게 만들 것이다.

둘째, 많은 ‘궁정 이야기들’에는 독자들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뿐 아니라

교화하려는 목적도 들어 있었다. 창의적인 구연은 직설적인 보도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독자들이나 청중들을 이야기 속으로 더 효과적으로 끌어들임 으로써 자신들을 이야기 속 인물들과 동일시하게 만들 수 있다. 돌려서 말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가 만드는 신학적이고 도덕적인 주장이나 기

타 주장들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생활하도록 설득하는 힘은, 그 이야기와

그 이야기 바깥의 현실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사이에 있는 관련성을 그

사람들이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최소한, 만약 다니엘 1-6장 이야 기들의 최초 수신자들이, 디아스포라에 사는 신실한 유대인들이 겪었던 상

황들을 그 이야기들이 제대로 반영한다고 믿지 않았다면, 성경대로 생활하

는 것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그 이야기들을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어

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셋째로, 어떤 ‘궁정 이야기들’, 곧 외국의 군왕들을 섬기는 신하들

에 관한 이야기들은 정복당한 민족들을 격려하여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하

여 전반적으로 긍정적 태도를 갖게 하면서 동시에 민족적 자의식과 자존감

을 유지하게 하려는 추가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다니엘서의 이야 기들에 있어서 그러한 격려의 근거는 이스라엘의 태생적인 민족적 우월성 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인간 통치자들과 그들의 사생활까지도 온전히 다스 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들은 본질 적으로 신학적 이야기들이며, 그와 동시에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3.2. 이야기 이해하기

독자들 대부분은 한편의 좋은 이야기를 이해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다 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그 이야기에 빠져들고 즐겁게 독서하다가, 마지

막에는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

기들은 그 심층으로 들어가서 내용을 신중하게 분석하기 위해 독자가 더

많이 숙고하며 여러 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의 독서는 특히 교사

들과 설교자들에게 매우 중요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수동적으로

이야기를 들은 뒤 자기들에게 유익한 것만을 뽑아서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데에 그치게 되기 때문이다. 문학 연구자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분석한다면, 우리는 단순한 독서가 놓치는 통찰들을 얻어낼 수 있다. 지금

여기서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 할 수 없지만, 더 숙고할 만한 몇 가지 요인들에 대해서 간략히 제시해 보고자 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배경’이 있다. 배경은 이야기를 서사물 너머의 역사라

는 세계와 관련시킨다. 분명히, 배경은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야기가 전하

려는 의미에 유익을 준다. 다니엘 1-6장 이야기들은 모두 역사적 인물들로

알려진 고대 근동의 다양한 통치자들의 궁정에서 벌어진다. 이 배경은 그

이야기들을 히브리어 성경이 제시하는 이스라엘의 역사 흐름과 관련시켜

주고 동시에 그 이야기들의 뚜렷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이 배경은 또한 그

이야기들의 의미를 드러낸다. 이 이야기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의 통치 와 하나님의 통치라는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 누가 인간의 일들을 참으로 통치하는가? 어떻게 그 통치가 시행되는가? 그 통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릇 좋은 ‘플롯’에는 시작과 전개와 종결이 있다고 알려 준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서사물의 시작에서는 어떤 문제나 갈등이 발생한다. 그 문제나 갈등은 중반을 지나며 복잡해지고, 마침내 종결부에서는 해결된

다. 사람들이 다니엘 3장이나 6장이 다니엘서의 다른 이야기들과 차이가 있다고 직관적으로 깨닫는 이유 하나는, 그 두 가지 종류의 이야기들이 매

우 상이한 유형의 플롯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떤 관리들이 품은 시기심은

다니엘이나 그의 동료들을 생명이 위급한 상황으로 몰고 가지만, 결국 그들

이 그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다니엘 3장과 6장의 기

본 플롯이다. 다니엘서의 나머지 이야기들에서 작동하는 기본 플롯에 따르 면, 다니엘은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고 그는 그 과제를 하나님의 도움 으로 해결하고, 그 결과로 보상을 받는다. 이 모든 여섯 개 이야기들에서 중 요한 것은, 중반으로부터 종결부로 이어지는 플롯 전개 과정에서 하나님의

서론 3. 다니엘 1-6장 해석하기

개입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어떤 이야기들에는 하나 이상의 플롯이 있다. 이 플롯들은 서로 얽

히거나, 더욱 흔하게는 주요한 플롯에 보조적 플롯들이 부속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이야기들은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 들 중 대부분이 부속 배경들을 가진 것도 사실이며, 그 결과 플롯은 개별 사

건들을 거치는 동안 점차 발전해 간다. 그래서 다니엘 6장에서의 사건 흐름

은 왕 곁에서 시작되어 다니엘의 집으로 이동하며, 다시 왕 곁으로 되돌아

온 뒤 사자 굴로 이동했다가 곧 궁전으로 되돌아오고 마침내 사자 굴로 되

돌아 간 곳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넓게 바라보면, 이 모든 사건의 흐름은

왕궁에서 이뤄진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플롯은 등장인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플 롯을 구성하는 사건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등장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벌린 ( Berlin 1994: 23-24 ) 은 히브리 서사의 등장인물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 했다. ‘원숙한’ 인물들은 폭넓은 성격적 특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자들이 다. ‘전형적’ 인물들은 단 하나의 특성만 보여 준다. ‘대리적’ 인물은 단순히

서사에서 어떤 기능만 수행할 뿐이며 대개 성격적 특성을 전혀 나타내지 않

는다. 다니엘 1-6장을 만화 같은 성격으로 만드는 것은 전형적 인물들과 대

리적 인물들의 잦은 등장이다. 예를 들어, 3장에서 유일하게 원숙한 인물은

명령 내리기를 좋아하고 분통을 터뜨린 후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지는 군왕

뿐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여러 요소들을 가진 전형적 인물들로

서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을 보여 준다. 풀무 속의 네 번째 인물을 포

함하여 다른 모든 인물들은 대리적 인물들이다.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이런

방식의 인물 구성은 3장 이야기의 핵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다니엘서 이

야기들에서 대체로 대리적 인물로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며, 이 점은 각 이

야기들이 표현하는 신학을 숙고할 때 더 신중히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저자는 인물에게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몇 가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히브리 서사에서는 인물들을 자세히 묘사하는 방식으로는 인물의 성격을 거의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세부적인 정보들이 제공될 때 그

정보들은 이야기의 플롯이나 의미에 중요하다. 예를 들어, 1장 3절의 유대 인 청년들의 특징들이나 4장 3절의 느부갓네살의 독수리 같은 모습이 그렇 다. 더욱 흔하게는, 히브리 서사에서 인물은 말과 행동을 통해 표현된다. 여 기서 말은 그 인물이 직접 하는 말이거나, 다른 인물들이 그 인물에 대하여 하는 말이거나, 혹은 인물 자신이 속으로 하는 생각을 가리킨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그가 범한 일반적인 ‘죄악들’을 경고하지만 ( 4:27 ), 느부갓네

살이 직접 하는 말들은 그의 교만을 특별히 잘 드러낸다 ( 4:30 ). 벨사살의 행

동은 유대인의 신에 대한 그의 경멸을 드러낸다 ( 5:2 ).

‘관점’ 혹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시각은 그 이야기 전개 방식의 결정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게 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다. 특

별히 분명한 사례가 다니엘 4장에 있다. 거기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느부갓

네살의 눈을 통해 사물을 보게 하던 1인칭 화법이 3인칭 서술로 전환된

다 ( 4:1-18, 34-37 ). 그 결과 후반부에서 두 가지 관점이 작동한다. 우리는 1927절에서 다니엘의 관점을 갖게 되지만, 28-33절에서는 서술자의 관점에

서 사건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목소리의 전환’은 관점의 전환에 영향

을 미친다. 관점 전환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기술은 이야기의 ‘초점’ 전환이

다. 다니엘 3장은 두라 평원에 모인 거대한 군중들을 바라보는 전체적 풍경 으로 시작하지만, 8절에서 독자의 관심은 ‘어떤 갈대아인들’을 향해 집중되 고, 13절 이후로 이야기는 왕과 그의 말, 행동, 반응에 그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야기를 전개하는 관점을 결정함에 있어서 저자가 상당한 힘을 발

휘한다. 그러나 저자의 힘이 절대적인 힘은 아니다. 독자는 저자가 선택한

관점과 상관없는 관점으로부터 자유롭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며, 이 또한 잘 알려진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는 효과적 방법이 될 수 있다.

3.3. 이야기에서 배우기

우리는 다니엘서에 있는 ‘궁정 이야기들’이 독자의 품성을 함양시키고 그

들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의 생활을 하도록 격려하려고 기록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들을 성경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이 점을 매 우 심각하게 다루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매우 다른 시간과 장소와 문

화로부터 나온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현대의 독자에게 그 뜻을 전할 수 있 는가? 오늘날의 설교자나 교사는 어떻게 이 이야기들을 활용할 수 있는가?

골딩게이에 제안에 따르면 ( Goldingay 1993: 302 ), 만약 우리가 현대를 사는 우

리와 우리의 생활을 위해 다니엘서 이야기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싶다면, 우

리는 두 가지 상상적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상상적 행동은 마치

이 이야기들이 처음 저술되었을 당시에 그것의 청중이나 독자들을 사로잡

았던

서론

3. 다니엘 1-6장 해석하기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따라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 번째 상상적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관심과 질문들을 이 야기가 제시하는 관심과 질문들에 일치시키되, 이야기가 그것들을 제시하

는 방식을 발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치시킴으로써 우리가 그 방식에 반 응하는 행동이다. 실제로 이 두 가지 상상적인 행동은 흔히 뚜렷하게 구별 되지 않으며, 두 행동이 서로 겹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주관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생 각할 것이다. 사실 요즘에는 본문의 ‘최종적’ 의미 혹은 ‘규범적’ 의미가 존

재함을 부인하면서 ‘독자가 의미를 만든다’고 강변하는 영향력 강한 문학

비평 학파가 있다 ( McKnight 1985: 12 ). 그러한 경향과 나의 주장은 아무런 상관

이 없다. 우선, 상상을 통해 하는 이 행동들은 이미 내가 말했듯이 이야기의

장르 인식이 가진 중요성, 그리고 이야기의 의미가 배경과 플롯, 등장인물과

관점 등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고 하는 행동이다. 만약 독자가 이러한 행동들을 하게 되면, 뒤따라 일어날 ‘의미 만

들기’는 이야기 속에 이미 존재하는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하

지만 ‘독자가 의미를 만든다’는 격언적인 표현도 여전히 맞는 말이며, 서로

다른 독자들이 동일한 이야기로부터 다른 의미들을 만들어 낼 여지도 있다.

여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야기들은 복잡하기 때문에 저자

의 의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독자들은 각자의 관심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

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다. 그래서 험프리

스 ( 1973 ) 는 외국 군왕을 섬기며 출세했지만 동시에 신앙에 충실하기도 한

유대인 궁중 신하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의 견지에서 다니엘서 이야기들의

의미를 찾아낸다. 그러나 페웰 ( Fewell 1991 ) 은 인간의 통치 권력과 하나님의 통치 권력의 대립이라는 견지에서 이 이야기들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이

둘 중 어느 하나만 ‘올바른’ 의미라고 주장하면서 그것만 선택해야 할 필요

는 전혀 없다. 그런 두 가지 관심사도 물론이거니와 다른 관심사들도 ( 예컨대 다니엘 3장의 우상숭배 ) 그 이야기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독자 들은 각자의 관심사와 상황에 따라 이 이야기들의 다른 요소들에 집중할 것이다. 지혜로운 독자라면 본문 자체의 인도에 따라 혹은 다른 독자들의 견해에 따라 자신들의 관심을 이야기의 다양한 요소들에 집중하는 열린 자 세를 취할 것이다. 심지어 독자들이 이야기의 한 가지 ‘의미’에 동의할 때조차 그 의미가 자 신들에게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결론들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다니엘서의 이야기들에 대해서 독자들이 제각기 다르게 이해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독자들이 이야기에 묘사된 상황들과

상이한 상황 속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 그들 각자가 서로의

상황과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보자면, 이야

기에 표현된 신학적 진실이나 도덕적 원칙에 대하여 독자들의 의견이 일치

하게 될 때도, 그 진리의 적용이나 그 원칙에 근거한 실천은 상이한 삶의 정

황들 속에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가 그들에게 전하려는 의미를 알게 해

주되, 한편으로는 아무 실천적 적용도 할 수 없는 지나치게 모호한 설명을

피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이한 삶의 정황들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무시하는 지나친 고압적 태도를 지양하는 것이야말로 설

교자나 교사가 담당해야 할 도전적인 과제일 것이다.

4. 다니엘서의 환상 해석하기

4.1. 환상과 꿈

우리가 가진 형태의 다니엘서는 뚜렷한 두 부분으로 나뉜다. 1-6장의 궁

정 이야기들은 7-12장의 네 편의 환상 경험 기사들에 대한 도입부를 형성 한다. 그 중 첫 번째 기록에서 다니엘의 경험은 ‘꿈’과 ‘환상’으로 묘사된

다 ( 7:1-2 ). 여기서 그러한 환상 기사들의 형식과 고대 근동의 꿈 기사들의 형

식 간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오펜하임 ( Oppenheim 1956: 187 ) 은 꿈을 적은 기사의 형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진술한다.

우리의 자료들 중 전형적인 꿈 기사는 엄격하게 정형화된 “틀” 즉, BC

3세기 수메르 시대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시기까지와 메소 포타미아 서부에서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만큼 균일한 양식을 갖

추고 나타난다……그 “틀”의 서론은 꿈을 꾸는 사람과 지역, 의미 있다

고 여겨지는 꿈이 꾸어진 상황 등으로 구성된다. 이어서 꿈 내용의 실제 기록이 뒤 따르고, 이 “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꿈의 목적에 대한 설명

이 덧붙여지는데, 이때 꿈 꾼 사람의 반응이나 혹은 꿈에 포함된 예고나

약속의 실제적 성취에 대한 반응을 다루는 부분이 포함되기도 한다.

다니엘 1:1-21

번역(개역개정 본문에 이어, 저자 사역 본문을 제공함 - 편집자 주) 1:1 유다 왕 여호야김이

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 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 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 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

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

게 될 것이더라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

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 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 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 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 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 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 시게 한 후에 13 당신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

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

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

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 왕이 그

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

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

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

년까지 있으니라

1:1 In the third year of the reign of Jehoiakim, king of Judah,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came to Jerusalem and besieged it. 2 The Lord gave Jehoiakim into his power, with some of the utensils of the house of God. These he took to the land of Shinar, to the house of his god, and had them put in his god’s treasury.

3 The king commanded Ashpenaz, his chief courtier, to take some of the Israelites, some of the royal family, and some of the nobles, 4 young men free from any fault, of good appearance, skilled in all wisdom, knowledge and insight, who would have the ability to take a position in the king’s palace. They were to be taught the literature and language of the Chaldeans. 5 The king assigned them a daily portion of his own food and of the wine he drank. They were to be trained for three years, and some of them would then serve the king. 6 Among them were some Judeans: Daniel, Hananiah, Mishael and Azariah. 7 The head courtier gave them names. He named Daniel, Belteshazzar; Hananiah, Shadrach; Mishael, Meshach; and Azariah, Abednego.

8 Now Daniel resolved that he would not defile himself with the king’s food and the wine he drank, and he made a request of the head courtier that he should not have to defile himself. 9 God gave the chief courtier favour and sympathy towards Daniel, 10 but the chief courtier said to Daniel, ‘I fear my lord the king, who has assigned your food and drink. Should he see you looking in worse condition than the young men of your group, you will endanger my head with the king.’ 11 Then Daniel said to the official whom the head of the courtiers had assigned to Daniel, Hananiah, Mishael and Azariah, 12 ‘Test your servants for ten days. Give us vegetables to eat and water to drink. 13 You will observe our appearance and the appearance of the young men who eat the king’s food. Deal with your servants in accordance with what you see.’ 14 He listened to what they said and tested them for ten days. 15 After ten days they looked healthier and better fed than all the young men who ate the king’s food. 16 So the official took away the food and wine assigned for them and gave them vegetables.

17 God gave these four young men knowledge and skill in all literature and wisdom, and Daniel had insight into every kind of vision and dream. 18 When the time came at which

the king had said they should be brought in, the head of the courtiers brought them before Nebuchadnezzar. 19 The king spoke with them and did not find among all of them any to compare with Daniel, Hananiah, Mishael and Azariah, so they remained in the king’s presence. 20 Every time the king consulted them on any matter requiring wise insight, he found them ten times better than all the magicians and enchanters in his whole kingdom. 21 Daniel remained there until the first year of Cyrus the king.

1절. ‘느부갓네살’: 이 이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다양한 철자 구성을 보 인다. 주로 나타나는 히브리어 형태는 다니엘서에서처럼 ‘느부갓네살’이며, 예레미야서나 에스겔서에서는 보통 ‘느부갓레살’로 나타난다. 아카드어 형 태는 ‘나부쿠두리-우쭈르’( nabukudurri-uṣur, 혹은 비슷한 변이형 ) 이며, 아마 ‘나부 가/나부여 장자를 보호한다/보호하라!’는 뜻일 것이다. 이 이름은 나보폴라 살의 장자인 세자에게 적합한 이름인 듯하다. 아카드어 ‘r’소리를 히브리어

나 아람어가 ‘n’으로 대체한 것에 대해서는 버거 ( Berger 1975: 227-230 ) 가 언어 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그러나 반 셀름스 ( van Selms 1974 ) 가 주장한대로, 만약 순전히 언어학적 근거들만 이 자음 교체의 원인이었다면, 왜 예레미야

서나 에스겔서에서는 ‘n’을 가진 형태가 안 나타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반 셀름스의 제안에 따르면, 바벨론 내부의 반대 그룹들이 느부갓네살과 메 대 공주의 결혼 및 그 둘의 결합으로 태어난 아들 에윌므로닥 ( Evil-Merodach ) 을 비방하려고 ‘나부쿠두리-우쭈르’를 ‘나부-쿠다누-우쭈르’( nabukudanu-u ṣur, ‘나부가/나부여 노새를 보호한다/보호하라!’ ) 로 본명의 일부분을 변조해서 불렀는데, 바로 그 이름이 히브리어와 아람어 ‘느부갓네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통혼으로 출생한 자녀들을 ‘노새들’로 불렀다는 사실은 헤로도토스 의 기록에서 증명된다. 그런 식으로 변조된 이름이 유대인 포로들 마음에도 들었을 것이다.

2절. 마소라 본문 2절의 구문은 부자연스럽고 그 내용도 3절과 약간 어색 해 보인다. 여호야김과 성전 기구들이 ‘그의 신의 집’으로 취해졌음을 암시 할 수도 있으나, 여기에는 3절에 소개될 이송 포로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몽고메리 ( Montgomery 1927: 118 ), 찰스 ( Charles 1929: 8 ), 하르트만과 디 렐 라 ( Hartmann & Di Lella 1978: 127 ) 등은 70인역에는 나타나지 않는 ‘그의 신의 집’

이라는 표현을 빼고 싶어 한다. 그런 견해는 여호야김이 시날로 끌려갔을

가능성을 없앤다. 그러나 골딩게이 ( Goldingay 1989: 10 ) 는 다니엘서 저자가 그

럴 필요가 없을 때도 구문상의 유려함을 잃으면서까지 과도한 반복을 자주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집’과 ‘그의 신의 집’을 나란히

놓으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 또한 몽고메리 ( 1927: 36-37 ) 도 말했듯이, 70인

역에는 ‘독창적 번역들’이 많이 들어 있다. 여기 ‘엔 토 에이돌리오 아우투’

는 마소라 본문에 두 번 사용된 ‘그의 신의 집’을 번역한 표현일 수 있다.

찰스는 ‘얼마와’라는 문구를 본문에 삽입하여 ‘왕족과 귀족 얼마와 하나님

의 전 그릇 얼마를’로 번역한다 ( Charles 1929: 8 ). 찰스는 주장하기를, 그래야만

3절과 잘 연결될 수 있으며 현재 형태의 본문에서 ‘얼마와’가 빠지게 된 것

은 동일 단어로 끝나는 두 행을 필사할 때 생긴 문제 ( homoioteleuton )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본문상의 이문들이 없고 또 그

것은 이야기의 구조와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설득력

이 없다.

3절. ‘아스부나스’는 ‘여관주인’ 혹은 ‘방문객 관리인’을 뜻하는 고대 페르 시아어에서 유래한 것 같다. 라코크 ( Lacocque 1979: 21 ) 는 이 단어가 개인의 이 름이 아니라 직위라고 제안했다. 70인역 MS 967은 이 단어를 음역만 했으

나, MS 88은 11절에 있는 ‘아비에드리’에서 유래한 ‘아비에스드리’를 사용 한다. 여기서 아스부나스는 ‘라브 사리심’으로 호명된다. 이 명칭은 전통적 으로 ‘환관장’이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나 ‘사리심’은 아카드어 ‘솨 레쉬’에

해당하는 말로서 ‘머리 ( 즉 왕 ) 에게 속한 남자’, 곧 왕의 ‘절친한 친구’를 뜻한

다. 나중에 이 단어는 왕궁을 맡은 신하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런 신하들은

흔히 내시들이었기 때문에 이 단어가 환관장을 뜻할 수 있기는 하지만, 진

짜 내시인 궁중 관리들에게만 사용이 제한된 호칭은 아니다 ( 창 39:1, 7 참조 )

‘이스라엘 자손’: NEB는 ‘이스라엘 자손’을 한정해 주는 단어 ‘포로들’을

삽입하여 번역함으로써 테오도티온역을 따르는 것 같다. 70인역에서는 ‘큰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한정한다. 찰스는 테오도티온역과 70인역이 마

소라 본문보다 추가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은 마소라 본문에 원래 있었을 ‘골라트’가 훼손되었음을 반증한다고 주장한다 ( 2:25 참조; Charles 1929: 12 ). 그러 나 테오도티온역 본문은 2장 25절에 근거한 주석적 설명일 것이다 ( Montgomery 1927: 125; Goldingay 1989: 5 ). 그리고 70인역 독법은 ‘귀족’을 뜻하는 번역

이 실수로 중복된 듯 보인다 ( Montgomery 1927: 125 )

4절. ‘흠’: 케티브 ‘메움’은 이곳과 욥기 31장 7절에만 쓰인다. 이 단어는

케레 ‘움’과 같은 뜻 다른 형태일 것이며, 이는 여러 히브리어 사본들에서

뒷받침된다. 이 단어는 도덕적 흠결과 신체적 결손을 모두 뜻한다.

5절. ‘왕의 음식’: 음식은 ‘파트-바그.’ 이 히브리어는 고대 페르시아어 ‘파티바가’에서 유래했는데 정부가 제공하는 정량의 음식을 가리킨다. 시리

아어로 이 단어는 RSV 번역이 그렇듯이 기름진 음식을 뜻하지만, 여기서도

꼭 그런 뜻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단어는 열왕기하 25장

30절, 예레미야 52장 34절에서도 언급되듯이 포로들을 위한 일종의 공식적

인 배식을 가리킨다. 마소라 본문에서 두 단어를 잇는 연결선 마켑은 이 단

어를 히브리어 ‘파트’( 한 입, 몫 ) 를 생각나게 하려는 의도를 암시한다.

BHS는 5절을 구성하는 두 부분의 순서의 역전을 제안한다. 하르트만과

디 렐라 ( 1978: 127 ) 가 이 제안을 따른다 ( 4절에서도 그렇다 ).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6절. ‘있었더니’: 마소라 본문 및 이를 따르는 테오도티온역은 여기서 단

수 동사를 가진다. 마소라 본문의 난외주가 밝히듯이 복수 동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히브리어에서는 복수 주어가 단수 동사를 취하는 용법

이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GKC 145o, Joüon 150b를 보라.

7절. ‘장’: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표현은 ‘싸르’이며 ‘라브’가 아니다. 이

단어가 아스부나스 말고 다른 관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11절. ‘감독하게 한 자’: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는 ‘함멜짜르’이며, 아마도

‘보호자’를 뜻하는 바벨론어를 차용하여 만든 단어일 것이다 ( Montgomery 1927: 134; Hartmann & Di Lella 1978: 130 ). 70인역 MS 967은 왜곡된 음역 ‘솔로마로’를 보

여 주지만, MS 88과 시로-헥사플라는 ‘아비에드리’로 나타난다. 몽고메리

의 설명에 따르면 ( Montgomery 1927: 134 ), 여기의 ‘아비에드리’는 콥트어의 영향 을 받은 히브리어에서 유래했고 3절의 ‘아스부나스’를 대신하려고 사용된

것인데, 이것은 두 관리를 동일인물로 잘못 식별한 결과다.

12절. ‘채식’: ‘제로임’은 ‘씨앗’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하며, ‘씨 뿌려진 것’ 즉 고기가 아닌 채소를 암시하는 것 같다. 16절에서 마소라 본문은 변 이된 철자 ‘제레오님’을 보여 주지만, 1QDana는 12절과 똑같은 철자를 가 진 ‘제로임’을 보여 준다.

15절. ‘모든’( 개역개정 ‘다른’ ) : 몇몇 히브리어 사본들과 테오도티온역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70인역은 ‘다른’으로 되어 있다. 시로-헥사플라, 불가타역 은 마소라 본문과 일치한다.

20절. ‘지혜로운 총명’( 개역개정 ‘지혜와 총명’ ) : 여기서 ‘총명의 지혜’( wisdom of insight ) 라는 연계형 사용은 다소 의외여서, BHS 등 편집 본문들은 두 단어

사이에 접속사를 삽입하여 히브리어를 수정하자고 제안한다. 어색한 번역

을 피할 수 있도록 역본들이 그런 수정을 뒷받침해 줄지는 불확실하다. 아 마도 이 연계형은 이사야 11장 2절에서 ‘지혜의 영’이 ‘지혜를 일으키는

영’을 의미하듯이, ‘효과의 생격’으로서 ‘총명을 일으키는 지혜’라는 뜻일 것이다 ( Waltke & O’Connor 9.5.2c 참조 ). ‘박수’는 이집트 어에서 기원한 ‘하르툼

밈’의 번역이며, 다니엘서 바깥에서 사용되는 용례에서도 그런 뜻으로 쓰인

다 ( 창 41:8, 24; 출 7:11, 22 ). ‘술객’을 뜻하는 ‘앗샤핌’은 아카드어 ‘아쉬푸’에서

유래했으며 ‘주문을 외는 제사장’에게 사용된 용어다.

70인역 증거본들은 이 구절의 마지막에 첨가된 부분을 보여 주는데, 그

첨가 부분은 MS 967에서는 짧은 형태로 그리고 MS 88과 시로-헥사플라에 서는 긴 형태로 각각 나타난다. 울리히 ( Ulrich 1987: 24 ) 는 4QDana에는 짧은 형 태의 첨가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여백이 있다고 제안했다. 햄 ( Hamm 1969: 134137 ) 은 MS 88의 독법이 MS 967로부터 발전된 독법임을 제시하면서, MS 967의 몇몇 조어방식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행정 자료를 기록한 파피루 스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MS 967의 독법은 마소라 사본에 대한

헬레니즘 방식의 해설적 첨가라고 제안한다.

형식과 구조

다니엘서의 이야기 해석에 대한 나의 논의에서 ( 서론, 3.1 참조 ), 나는 이 이야

기들이 ‘궁정 이야기’라는 기존의 주장을 수용했다. 나는 또 거기서 1장의

이야기가 대체로 다른 장의 이야기들처럼 ‘경쟁’이나 ‘갈등’의 유형과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이 점은 1장이 수행하는 이중적 기능을 말 한다. 즉 1장은 다니엘서 전체 특히 여섯 개 궁정 이야기들의 서론이며, 동 시에 1장만의 고유의 이야기도 전달하고 있다. 주석가 대부분은 본 장의 하부 구조에 대하여 동의한다. 골딩게이 ( 1989: 8 ) 는 본 장의 교차배열 구조를 제시한다.

A 역사적 서론 ( 1-2절 )

B 훈련을 위해 잡혀간 청년들 ( 3-7절 )

C 시험 이야기 ( 8-16절 )

B’ 청년들이 훈련에서 탁월함을 나타내다 ( 17-20절 )

A’ 역사적 종결 ( 21절 )

A와 B는 다니엘서의 나머지 장들의 서론으로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17절 (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 은 앞의 6-7절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다시 시작한다. 21절과 1-2절은 또 다른 고대 근동의 왕을 언급하면서 연결된다. ‘여호와/하나님께서……주셨다’라는 표현은 신학적

으로 중요한데, 세 개 항에서 출현한다 ( 2, 9, 17절 )

C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며, ‘궁정의 경쟁 이야기’ 형식과 약간 유 사하다. 이 형식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 왕이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한다.

2. 왕이 거느린 현자들이 그 문제를 풀지 못한다.

3. 영웅이 호출되고 성공한다.

4. 영웅에게 보상이 수여된다.

이 이야기는 네 부분으로 된 같은 구성을 지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는 현자들 대신 궁정 관리들이 등장한다.

1. 왕은 ( 자기가 모르는 ) 어떤 문제에 직면한다 ( 8절 )

2. 궁정 지도자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 9-10절 )

3. 다니엘이 성공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 11-15절 )

4. 다니엘에게 보상이 수여되어 그의 요청이 수락된다 ( 16절 )

현재 형태로 볼 때 이 이야기는 문맥과 잘 조화된다. 이 이야기의 문맥은 1-7절이 묘사한 내용에 주로 의존한다. 7절과 8절은 ‘야셈’이라는 똑같은 히브리어로 시작됨으로써 8절이 묘사한 다니엘의 행동이 7절이 묘사한 바 벨론식 개명 강요에 대한 직접적 반응임을 암시한다.

다니엘 1장의 서론적 기능 교차배열 구조의 각 요소들은 다니엘서 전반에서 중요한 서론적 기능을 수행한다. A와 A’는 이야기들과 환상들을

포로기 경험이라는 환경 속에 배치시킴으로써 포괄적인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 B와 B’는 다니엘 서의 중심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바벨론 궁정에서 일하게 된 이유와

그들의 빼어난 지혜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한다. 시험 이야기를 다루는 C

가 교차배열 구조 속에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1장 이야기 자체가 뒤따르

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별도로 서론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나중에 ‘해설’에서 보겠지만, 시험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중 심 주제가 된다. ‘유대인이 외국 왕의 신하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면 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계속 충성할 수 있는가?’

통일성

코흐 ( Koch, 1980: 19 ) 는 18-20절이 17절 내용을 어느 정도 되풀이한다는 이 유 때문에 원본성을 의심한다. 그러나 내가 언급했듯이 17절은 앞에 있는

6-7절 내용과 연결되면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다음 18-20절이 이야기의 흐름을 진전시킨다. 또한 콜린스가 지적하듯이 ( Collins, 1993: 130 ), 17절은 또한 이 청년들의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 하고, 18-20절에서 왕은 이들의 재능을 인정하는데, 이는 이야기의 결말에 어울린다.

만약 다니엘이 갈대아 사람들보다 그토록 뛰어나다는 걸 알았다면, 왜 느 부갓네살은 꿈을 꾸고 나서 즉시 다니엘에게 의뢰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 을 해결하기 위해 찰스 ( 1929: 52-58 ) 는 20-21절을 2장 49a절 뒤에 배치시켜

야만 이야기의 일관성이 제대로 맞춰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찰스의 주장 을 지지해 주는 사본학적 증거들이 없으며, 최종 본문의 내용 배열에 대한

경위와 이유를 설명해야 할 문제에 당면한다. 또한 우리가 앞에서 본대로, 20절은 현재 위치에서 이야기의 절정에 어울린다. 만약 엄격한 일관성을

놓고 고려하더라도 20절은 2장의 내용을 미리 내다보는 역할을 한다고 이

해할 수 있다. 내가 제안한 교차배열 구조에서 21절은 역사적 내용을 전달 하는 1절과 정확히 호응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구조에서 뺄 수 없는 필수 부분이다.

주석

1:1-2

이 시작하는 구절들은 연대기 및 역사와 관련된 문제를 내포하는데, 이 문제는 항상 주석자들을 괴롭혀 왔다. 예레미야 25장 1절에서 여호야김 제

4년은 느부갓네살 제1년에 해당한다. 그래서 ( 예컨대 칼빈 같은 ) 몇몇 학자들은 다니엘서는 예레미야 46장 2절에서처럼 느부갓네살을 그의 즉위 이전부터 왕으로 부른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바벨론 사료에서는 느부갓네살이 왕이 되기 전에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증거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다니엘서와 예레미야서의 두 저자가 각자 왕의 통치 연수를 계산하는 상이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전제하면, 다니엘 1장 1절과 예레미야

25장 1절은 서로 연결될 수 있다 ( Baldwin 1978: 20-21; Hasel 1981 ). 이집트에서는 왕의 즉위 시기와 그 이듬해 사이에 놓인 달들은 통치 ‘제1년’으로 계수되 었다. 반면, 바벨론에서는 이 기간이 통치 기간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통치

‘제1년’은 즉위 후 이듬해부터 시작되었다. ( 여호야김은 이집트가 임명했기에 ) 예레 미야서에서는 이집트의 통치 기간 계수 방식이 사용되고, ( 바벨론에서 저술된 )

다니엘서에서는 바벨론의 계수 방식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포로 시

기 이전의 유다에서 신년이 시작된 날짜가 언제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

며, 이점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어떤 학자들은 신년이 ( 3-4월에 해당하

는 ) 니산 월 봄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 예. Clines 1974 ), 또 어떤 학자들은 신

년이 ( 9-10월에 해당하는 ) 티슈리 월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 Malamat 1975: 124와

각주 2번 ). 만약 예레미야 25장 1절과 46장 2절이 ( 느부갓네살과 여호야김에 대하여 )

가을에 신년이 시작되는 이집트의 통치 기간 계수 방식을 사용했고 파라오

느고가 BC 609년 티슈리 이후에 여호야김을 왕으로 삼았다면, ( 약 BC 605년

6월에 발발한 ) 갈그미스 전쟁을 여호야김 제4년으로 소개하는 예레미야 25장 1절, 46장 2절의 날짜 계산은 정확하다. 신년을 시작하는 날짜가 불확실하

기 때문에 생기는 추가적인 의미는 이후 더 논의될 것이다.

이 시기를 다룬 바벨론 연대기가 남아 있다 ( Wiseman 1956; Grayson 1975a ). BC 605년 여름에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군대를 명령하여 갈그미스에서 이집트 군대를 격퇴시켰다. 이 승리 후로 그는 ‘하맛 온 지역’ 혹은 북부 시리아를 정복했다 ( Wiseman 1985: 17. 와이즈만은 그레이슨이 본문을 수정하여 읽는 방식을 받아들인다 ). 그

런 다음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에 있는 부친 나보폴라살의 서거 소식을 들었

고 ‘왕좌에 앉기 위해’ BC 605년 9월 6/7일에 바벨론으로 귀환한다. 이후 그는 서부 전선에 합류하여 이듬해 봄까지 핫투/티에서 벌이던 작전을 완수 하고, 같은 시기 봄에 BC 604년 신년 축제가 시작되기 전 바벨론으로 복귀 한다. 바벨론 연대기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핫투에서 거둔 승리의 결과로 ‘핫투의 모든 왕들이 그의 앞에 나왔고 그는 그들의 막대한 조공을 받았다.’ 와이즈만 ( 1985: 23 ) 의 추정에 따르면, 비록 유다가 ( 대략 오늘날의 시리아-레바논에

해당하는 ) 핫투라고 불리던 지역에서 통상 바깥에 위치하긴 하지만 ( Wiseman

1985: 18 각주 128 ), 이 왕들 중에는 여호야김도 들어 있었다. 이 시기나 느부갓

네살 통치 첫 여섯 해 기간 동안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했다는

기록은 바벨론 연대기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여호야

김이 3년간 조공을 바쳤다는 열왕기하 24장 1절의 진술을 받아들인다면,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에게 굴복한 어떤 행위들은 바로 이 시기에 발생한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BC 601년에 느부갓네살이 이집트와 벌인 전쟁

이후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 퇴각이 유다인들로 하여금 바벨론으로부터

돌이켜 이집트와 우호적인 동맹을 맺게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여호야김

의 그런 행위들은 BC 604-601년 사이에 있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밀러드 ( Millard 1977: 69 ) 는 만약 다니엘 1장 1절이 바벨론식 통치 연도 계산

법에 근거하되 ( 유다에서 그랬을 수 있듯이 ) 신년이 가을에 시작되었다면, 여호야

김 제3년은 BC 605년 10월쯤이 된다. 이 시점은 분명히 느부갓네살이 왕위

에 오른 이후였고, 그때쯤 느부갓네살은 핫투에 있는 바벨론 군대에게 돌아

와 있었다. 어찌되었든 느부갓네살 자신은 다니엘 1장 1절의 근거가 되는

어떤 사건에도 결부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 시대처럼 고대 근동에

서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받는 것은 매우 흔했다 ( Lawrence 1985 ). 따라서 바벨론 군대가 이집트의 봉신으로서 제3년을 거의 채워가던 시기의 여호야김에게 어떤 처벌을 내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분명히, 여기에는 몇 가지 불확실한 점들이 있긴 하지만, ‘제1장의 첫 구절부터 정 확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단언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주장이다 ( Porteous 1979:

25 ). 다만, 얻을 수 있는 증거로는 여호야김 제3년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징벌을 가했을 가능성 정도만 말할 수 있다.

다니엘서와는 별도로 역대기 기자는 여호야김에 대한 바벨론의 공격에

대한 전승을 알고 있었다 ( 대하 36:6-7 ). 정확한 날짜는 제시되지 않지만 이 역

대기 구절은 다니엘 1장 1-2절과 병행관계를 만드는 것 같다. 어떤 주석가 들은 이 구절이 갈그미스 전쟁 후 BC 605/4년 어간에 여호야김이 바벨론 에게 봉신이 되기로 복종한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 Dillard 1987: 299; Myers 1965: 219; Williamson 1982: 413 ). 여러 학자들의 제안에 따르면, 다니엘서 저자는 여호 야김이 느부갓네살을 섬긴 3년의 기간이 그의 통치 첫 3년이었고 ( Collins 1993: 132와 각주 25 ) 그 후에는 반역을 하여 역대하가 진술하는 대로 징벌을 당했다 고 간주했고, 그래서 다니엘 1장 1-2절은 열왕기하 24장 1절을 사용한 역대 하 36장 6-7절만 근거로 한다. 이 제안은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다니엘 2장 1절에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에서 느부갓네살 제2년

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 아마 1:1-2을 기록했을 ) 다니엘서 최종 본문의

저자는 느부갓네살 제1년이 여호야김 제4년과 동일시되는 다니엘 1장 1절

에서 예레미야 25장을 분명히 잘 알고 있었다. 다니엘 1장 1-2절의 저자는

날짜도 포함했던바 역대기 저자가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전승을 알았을 가

능성이 높다.

다니엘 1장 1-2절의 역사성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든지 상관없이 ( 현

재 ‘증명될 수 없는’ 합의가 가장 적당해 보인다 ), 그 결론은 저자가 이 구절들을 통해 제

시하는 중심 사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저자는 이 구절들을 통하여 다

니엘서 책 전체의 배경, 특별히 1-6장에 수록된 이야기의 배경을 제공하고 싶었다. 이 배경은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이고 신학적이다. 역사적 견지에서 1장 1-2절은 이 이야기들을 바벨론 포로시기에 있었던 사건들로 소개하고, 지정학적 견지에서는 바벨론 내부에 위치시킨다. 신학적 견지에서 1장 1-2절은 바벨론 포로기가 유다의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지키지 못한 무능 함 때문에 생긴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유다의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행하신

행위가 촉발시킨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시날’은 바벨론의 옛 명칭이며 ( 예. 창 10:10, 11:2, 14:1, 9 ) 쐐기문자 기록물에서

는 ‘샨하라’에 해당한다 ( Güterbock 1964: 3 ). 이 용어는 여기서 바벨탑을 상기시

키려고 사용된 것 같다.

1:3-7

3-5절. 여기 ‘젊은이들’은 왕족과 귀족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유대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아마도 신학적

목적, 즉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 백성의 일원들임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 때 문일 것이다.

갈대아 ( ‘칼두’ ) 는 최소한 BC 9세기 이후로 기록된 앗시리아 비문들에서 나

타나는데, 몇몇 종족 집단들이나 ‘가문들’이 거주하던 남부 바벨론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갈대아 민족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한 증거가 전혀 없긴 하지만 ( Hoerth et al. 1996: 61 각주 59 ), 성경과 고전 자료들 속에서 나보폴라살이 창설한 바벨론 통치자들의 왕조는 ‘갈대아 사람들’로 불린다. ‘갈대아 사람 들’을 가리키는 성경 히브리어/아람어는 ‘카스딤’인데, 본래의 명칭을 보존 한 것으로 보인다 ( Porteous 1979: 28에 상반됨 ). BC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줄곧 구 어체 아카드어에서는 ‘치찰음 + 치음’이 ‘ㄹ + 치음’으로 음성학적 변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서기관들의 보수적 성향 때문에 문헌들에서

드문드문 나타난다 ( Millard 1977: 70-71 ).

다니엘서 이외의 구약 성경 다른 책들에서 ‘갈대아 사람들’이라는 용어는

통상적으로 바벨론 국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갈대아 사람들’이라는

용어는 다니엘 5장 30절, 9장 1절에서는 분명히 민족을 가리키는 함의가

있으며, 아마 1장 4절에서도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그 외의 다니엘서 모든

곳에서 이 용어는 ‘전문적인’ 의미를 지니며, 현자 집단 속에 있는 어떤 부

류를 가리킨다. 또 다른 곳에서 이런 제한된 의미는 BC 5세기 헤로도토스

의 저술에서 처음 발견된다 ( Hist. 1.181-183 ). 거기서 갈대아 사람들의 전문적인

임무는 상세히 소개되지는 않지만 벨 신의 제사장들로 등장한다. 헬레니즘

시대에 ‘갈대아 사람들’이라는 용어는 천문학이나 예언과 같은 뜻으로 쓰였

다. 이런 의미의 변화가 다니엘서의 기록 연대를 밝히는 증거로서 가치가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콜린스는 ‘다니엘서의 갈대아 사람들은 헬레니

즘 시대의 제사장 계층에 상응한다. 그러나 그들이 헬레니즘 시대에만 있었

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언급한다 ( 1993: 138 ). 우리는 헤로도토스의 저술 시

기보다 얼마나 더 이른 시기에 이 용어가 ‘전문적인’ 의미를 띠었는지 알지

못한다. 현존하는 BC 6세기 이후 바벨론 문헌에서 이 용어가 전혀 나타나

지 않기 때문이다. 1세기에 스트라보 ( Strabo ) 는 갈대아 민족과 제사장 계층

을 둘 다 가리키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 Geography 16.1.6 ). 그렇더

라도 다니엘서에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이 다니엘서의 저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주는 믿을 만한 표지가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된 쐐기문자 표기법은 습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으 며, 수 백 가지 상징들 및 그것들의 용법에 관계된 규정들을 익혀야만 가능 했다. 그러려면 우선 선생이 제시하는 간단한 연습 과제들을 베껴 써야 했

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중요한 문학 본문들을 베껴 썼는데 그 중 많은 본문

들은 종교적인 성격을 가졌다. 따라서 이 유대인 포로들이 이 학습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들은 바벨론의 사상 세계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셈

이었다.

6-7절.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새로운 주인의 정체를 알려 주고 새로운 충성을 요구하는 암묵적인 신호였으며, 이런 행위는 궁정에서 흔한 관례였다 ( 창 41:45, 왕하 23:34, 25:17, 에 2:7. 이 에스더서 구절은 ‘에스더’라는 이름이 그녀가 왕비가 되어 얻은 공식 호칭임을 암시한다 ). 여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미하는 이름들은 직접적이든 암시적이든 바벨론의 신들을 언급하는 이름들로 교체된다.

히브리어 이름들의 뜻은 다음과 같다. 다니엘, ‘하나님이 나의 재판관이시

다’ 혹은 ‘하나님이 재판하셨다.’ 하나냐, ‘여호와께서 은혜로우셨다.’ 미사

엘, ‘하나님인 자가 누구냐?’ 아사랴, ‘여호와께서 도우셨다.’ 바벨론식 이름

의 뜻은 명확하지 않다. ‘벨드사살’은 아카드어 [벨]-발라트슈-우추르 ( ‘벨이

여 그의 생명을 지키소서’ ) 혹은 벨레트-샤르-우추르 ( [벨의 배우자에게] ‘여인이여, 왕을 보호 하소서’ ) 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아벳느고’는 아카드어 아라드-나부 ( ‘나부

의 종’ ) 를 ( 아마도 의도적으로 ) 훼손하여 번역한 용어인 듯하다 ( 이런 여러 이름들에 대한

더 자세한 제안들을 보려면, Montgomery 1927: 128-130; Lacocque 1979: 29-30; Berger 1975: 224234를 보라 ). 마소라 본문에 나오는 모든 바벨론식 이름들은 본래 이방 신들을

찬미하는 이름들이었으나 의도적으로 형태가 훼손된 것 같다.

1:8-16

8절. 다니엘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더럽히는 것’으로 생각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주석가들은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했다. 나는 좀 더 개연성 있는 것들만을 고려하겠다. 첫째, 음식은 성전에서 나왔을 것이고, 따라서

이방 신에게 바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이 기꺼이 받아들였던 채소로

된 음식들도 마찬가지였을 수 있다. 사실, 신에게 구체적으로 바쳐진 음식

과 음료를 먹을 수 있도록 허용받는 사람은 오직 왕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

음식과 음료를 먹는 사람에게는 복이 전달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 Oppenheim

1977: 189 ). 또한 포로기나 포로 후기 성경 저자들이 우상이나 우상숭배를 언

급할 때는 거의 언제나 논쟁적 어조를 취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여기 다

니엘서 본문에서 우상과 우상숭배가 그저 암시적으로만 언급되고 있다면 그것은 놀랍다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많은 주석자들은 ‘더럽혀짐’이라는 언급에 근거하여 다니엘이 자기

를 더럽히지 않기로 했다는 결심은 모세의 음식법과 관련된 것이라고 추정 했다. 궁중의 음식 조달을 맡은 그 관리는 가축이 도살되고 섭취되어야 할 방식에 관한 율법들을 결코 준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음식

규정들이 ( 민 6:2-4의 나실인 서원에 관한 예를 제외하면 ) 포도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 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음식 규정들은 다니엘의 결심의 부분적인 근거

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다.

셋째, 다니엘이 거절한 것은 구체적으로 왕의 음식이었다 ( 5, 8절 ) ( 드물게 쓰

이는 단어 ‘파트-바그’[진미]가 또 다시 등장하는 ) 다니엘 11장 25b-26a절은 이런 음식 의 의미에 대한 한 가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거기서 ‘왕이 할당한 음식’을

먹은 자들이 왕을 해하려는 음모는 갑작스럽고 매우 비난받아 마땅한 것임

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 음식을 수용하고 섭취하는 것은 분명히 왕에 대 한 충성을 서약하는 행위였다. 이 사실에 덧붙여서, 고대 근동에서는 일반

적으로 음식이 언약 체결과 관련된 의미가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예. 창 31:44-54, 출 24:1-11 ). 이 해석에 근거하면, 다니엘이 거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왕에 대한 전적인 헌신이다. 하지만 이 해석의 문제점들도 지적되어야 한다. 우선, 이 해석 역시 ‘더럽히다’는 용어의 사용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 는다. 또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왜 궁극적으로 왕의 신하가 되었는지도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다.

위 세 가지 제안들 중 아무것도 그 자체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제안이 없

다. 그러나 다니엘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동기는 얼마든지 이 세 제안들 중

둘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용례들을 참조하면 ‘더럽히다’( 가알 ) 는 단어는

제사와 관련된 더러움을 가리킨다 ( 스 2:62, 느 7:64, 애 4:14, 말 1:7, 12 ). 이는 곧 여기

에 다니엘의 신앙적 경건이 관련되어 있음을 뜻하고, 그리고 모세의 음식

법들에 대한 다니엘의 염려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이 자주

주장하듯이, 진정한 신앙적 경건은 예식이나 제사에 대한 관심을 뛰어넘는 다. 참 경건은 사람과 사물을 막론하고 모든 것 앞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충성에 뿌리내려 있다. 느부갓네살은 얼마 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더럽혔고 그곳의 기물들을 약탈했다. 다니엘은 어떻게 자기의 온전한 충성

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는가? 다니엘은 이제 ( 바벨론의 종교를 포함하여 ) 바벨론 의 문화 속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거치야 할 입장에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뜻의 이름에서 바벨론 신을 부르는 뜻의 이름으로 변경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니엘이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다니엘의 저항은 그가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신하가 되어 동화되기보다는, 오히려 그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다른 모든 자들 위에 계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계속 충성하겠다는 다니엘의 의지를 상징한다. 9절. 2절과 17절에서처럼 여기서도 하나님은 이야기 흐름의 결정적 대목 에 개입하고 계심이 드러난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주 심으로써 역사하신다. 이런 역사들은 말씀에 대한 대중적 의미로 보면 ‘기 적적인’ 간섭은 아니다. 이 구절들에서 언급되는 것은 ‘현실의 배면에서’ 일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다.

10-16절. 다니엘의 요청에 대한 환관장의 응답은 분명한 거절이 아니다. 그는 한 가지 문제를 지적하되, 만약 그 문제를 피할 수만 있다면 다니엘의

요청을 들어 줄 수 있다는 여지를 암시적으로 남긴다. 페웰은 ‘페네켐 조아

핌’( 10절 ) 이라는 구절의 뜻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환관장의 발언을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Fewell 1991: 20 ). 첫 단어 ‘페네켐’( ‘너희의 얼

굴들’ ) 은 외양이나 태도를 가리킬 수 있다. 두 번째 단어 ‘조아핌’은 ‘언짢은’

이나 ‘화난, 분개한’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주석가들은 흔히 이 구절이 형

편없는 외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뜻과 동시에 이 단어는 왕

에 대한 거절의 태도 혹은 심지어 반항의 의미까지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

면 다니엘의 행위에는 어떤 정치적 차원이 결부되어 있다는 셈이 된다. 말

할 때 다니엘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칠 때의 외양을 가리키는 ‘모

습’( ‘마레’, 13절 ) 이라는 쉬운 용어를 쓰며, 그럼으로써 정치적 차원의 의미를

전하지 않는다.

다니엘이 다른 하급 관리에게 다가가 궁정에서 주지 않는 음식으로 일정

기간 동안 시험해 보라는 제안은 성공한다. ‘열흘’의 시험 기간은 대략적 기 간을 나타내는 숫자이지 상징적 의미를 갖지는 않는 것 같다. 열흘은 노골

적인 반항으로 의심받지 않기에 적당할 만큼 짧은 기간이지만, 동시에 가시

적 차이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기간이다. 나중에 다니엘의 일상 음식 속에 고기와 포도주가 있었음이 암시되는데 ( 10:3 ), 이는 곧 지금 여기서 채식주의

나 금주사상이 문제의 진짜 핵심은 아님을 알려 준다. 여기서 중심 관심은

‘왕이 배정한 음식’을 먹는다는 암시에 있다. 15절에서 이 시험의 긍정적

결과를 표현한 언어는 창세기 41장 2, 18절에서 가축을 묘사할 때 사용된

언어와 두드러지게 유사하다.

1:17-20

골딩게이 ( 1989: 20 ) 는 ( 6-7절의 언어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주시고’라고

진술하며 )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17절이 16절과 분리되어야 하고, 그럼으로

써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들이 신실함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되지 말아 야 한다고 주장한다. 골딩게이는 구조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지

만, 그 주장은 17절 직전의 문맥을 무시할 정도로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이야말로 이방 세계

에서조차 성공의 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강조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

러나 그 성공은 하나님의 선물로 오는 것이며, 성도가 자동적으로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다. 어쨌든, 17절이 이야기의 구조상 앞에 있는 3-7절과 갖

는 연결성은 우리로 하여금 이 네 사람이 선택받았음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하나님께 은총을 입었다는 증거를 보여 주었다. 여기서 추가

된 것은 ‘예언적 성격의’( mantic ) 지혜에 있어서 다니엘이 가진 재능, 즉 환상

이나 꿈을 이해하는 능력인데, 이것은 ‘교육적 성격의’( didactic ) 지혜와 구별

되는 지혜다.

1:21

연대에 대한 언급에 담긴 요점은 아마도 고레스의 바벨론 정복이 강압적

유형기간을 매듭짓고 2절에 언급된 성전 기구들이 회수되었다는 데 있는

듯 보인다 ( Goldingay 1989: 27에 동의하고, Porteous 1979: 33에 반대된다 ). ( Lacocque 1979: 33이

제안하듯이 ) 이것이 꼭 다니엘이 1차 귀환자들과 함께 바벨론을 떠났다거나

고레스 제1년에 죽었음을 암시한다고 봄으로써 굳이 6장 38절이나 10장

1절과 모순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해설

오직 1장 2절과 9장에서만 하나님이 ‘아도나이’( 주님 ) 로 불리신다. 다니엘 서의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에 해당하는 매우 일반적인 용어 ‘엘로힘’이 사용된다. ‘주님’이라는 용어 사용은 현재 역사하고 계시는 분, 혹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스라 엘의 하나님의 고유한 호칭 ‘야훼’( 개역개정 ‘여호와’ ) 는 사용되지 않는데, 이것

은 아마도 하나님이 오직 한 민족의 하나님이시기만 한 것이 아님을 암시 하려는 의도인 듯 하다. 1장의 처음 구절들에서 우리는 두 왕과 두 신에 대

해서 듣게 되는데 거기서 등장하는 진짜 주인공은 여호와와 느부갓네살이

다. 느부갓네살은 ‘이르러,’ ‘에워싸고,’ ‘가지고,’ ‘둔다.’ 하지만 느부갓네살 과 ‘그의 신’의 우월한 능력을 보여 주는 증거로 제시된 느부갓네살의 이 모든 행동들은 ‘주께서’ 예루살렘과 그 왕과 성전의 기구들을 느부갓네살의 권세에 ‘주셨다’는 진술이 제공하는 관점에서 음미되어야 한다. 이 관점이 다니엘서 이해의 핵심 관점이다. 이 관점은 정복당하여 포로로 끌려간 민족 에 대한 관점이기도 하다. 당시의 사상 세계 견지에서 보면, 유대인 포로들 은 자기들의 하나님이 너무 약해서 자기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하거 나,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렸다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이런 상 황은 유대인 포로들로 하여금 그들의 정복자들이 믿는 신들을 숭배하도록

유혹하는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 이사야 40-55장에서 선지자는 바로 그런

사상을 전한다. 적어도 모레셋 사람 미가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 미 3:12, 렘 26장 )

히브리 선지자들은 만약 그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계속 하찮게 여기면

장차 유다와 예루살렘과 성전에 재앙이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호와가 그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 재앙이 덮치도록 허용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

나 그 선지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재앙이 지난 후에 있을 소망에 대해서 말했다. 다니엘서는 재앙의 선포로 시작되지만, 그 재앙 속에 깃든 이스라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주장한다. 이야기가 점점 더 전개됨에 따라서 이 하나 님이 모든 민족에게 절대주권을 행사하신다는 사실과, 또한 그분은 유형의

시기에 조차 신실한 유대인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더욱더 확실해진다.

현대인들에게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는 골치 아픈

문제다. 구약 성경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간단명료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

다. 다니엘 1장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패권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 사건

들 ( 2절 ), 바벨론 관리의 얘기치 못한 친절 ( 9절 ), 어느 정도는 선천적인 것이

기도 했지만 네 명의 젊은 유대인 전쟁 포로들의 능력이 빠른 속도로 성장

하는 사연 ( 17절 ) 등의 이면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행하시는 역 사다. 여기서는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달을 수 있

다. 그런 깨달음은 막연한 것이 아니며, 그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몇 가지 근거가 있기 때문에 생긴다. 선지자들은 유다의 몰락을 경고했는데, 왜냐하 면 그들은 언약을 소홀히 한 유다 사회가 도덕적이고 영적인 부패에 시달

리게 되어 급격히 쇠약해짐을 목도했고 ( 예를 들어, 렘 9:1-11이 ‘거짓’에 대해서 어떻게 선

포하는지 살펴보라 ), 결국 유다 사회가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되거나 외부의 압

력에 눌려 멸망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요구가 자칫 반역적 요

구로 보일 수 있음을 인지했고 또 그래서 자기 목이 날아갈까 두려웠던 궁

중 관리는 왜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지 이유를 제시하며 응답했다. 이 사

실은 우리로 하여금 특별한 설명을 찾게 만들 만큼 충분히 놀랍다. 다니엘

이 그 앞에서 항상 신실하려 했던 하나님이 그 관리가 그렇게 하도록 섭리 하신 것 아닐까? 네 명의 청년들의 재능이 예외적이라 할 만큼 급속히 진보 한 사실 역시 뭔가 특별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들의 특별한 재능 성장 은 그들이 의뢰한 하나님과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아마 이것이 바로 이 이 야기의 서술자와 독자들이 했을 법한 생각일 것이다.

나는 앞에서 ( 8절 ‘주석’을 보라 ) 8-18절 이야기가 충성에 대한 문제에 주요한

관심을 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의 하나님께 전적으로 충성할 것인가, 아니면 순응하라는 압력에 눌려서 바

벨론 왕의 충직한 신하들이 될 것인가? 아마 10절에서 환관장이 ‘내 주 ( 아도

나이 ) 왕’이라고 하는 말과 2절에서 여호와를 가리켜 사용된 ‘주님’( 아도나

이 ) 이라는 말이 만드는 호응관계 역시 바로 그런 질문을 부각시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당면한 압력은 상당했다. 러셀이 이 점을 다음

과 같이 잘 지적한다. ‘바벨론 왕은 유대에서 끌려 온 자들의 육신을 사로잡

은 것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포로들의 정신까지 사로잡아야 했다. 그

래서 왕은 포로들에게 조건을 제시하고 그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절차에 착

수했던 것이다’( Russell 1981: 19 ). 페웰은 이 젊은이들에게 시행된 프로그램과

인생의 전환기에 겪게 되는 고전적 형식의 ‘통과 예식’ 사이에 여러 유사점

들이 있음을 알려 준다 ( Fewell 1991: 17-18 ). 예를 들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로부

터의 분리, 특별 교육과 특별 음식, ( 흔히 개명이 동반되는 ) 정체성의 변화 및 이

후 사회에 다시 귀속되는 과정 등이 그렇다. 그래서 그녀는 ‘이 젊은이들은 바벨론식 생활을 배워야 하고, 바벨론의 직업을 얻어야 하며, 바벨론에 충

성하기로 맹세해야 했다’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문맥 속에서 바벨론 왕이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의 이름을 새로 지어

준 사건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새 이름은 그들에게 좋은 바벨론 사람이

되라는 상징적 의미를 전한다. 7절과 8절을 시작하는 동사들이 보여 주듯

이, 바로 이 대목에서 다니엘은 저항하기로 결심한다. 환관장이 유대인들의

이름을 ‘고쳤고’( 바야셈 ), 이에 응하여 다니엘 역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

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바야셈 ). 이 특정한 문제에 대해서 저항하기로 한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 앞의 ‘주석’ 참조 ), 다니엘은 이 문제에 있

어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저항해야 할 중요한 이유를 직시했다. 만약 자신

과 동료들이 이 새로운 외국의 환경에서 자기들의 하나님께 계속 신실하게 남기 위해 필요하다면, 다니엘은 바벨론 궁정의 요구들에 맞춘다는 미명하

에 그 선을 넘는 짓을 결코 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경계선을 넘지 않

기 위해 그런 ‘표지’를 세워두는 일은, 그들을 감독하던 바벨론 궁중 관리들

이 했던 발언들에서도 암시되듯이, 아마도 굳게 결심했던 그 유대인 청년들

의 유익을 위한다는 점에서 허용되었을 것이다.

그런 표지들을 세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다니엘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강경하고 대결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나름의 이유를 가진 첫 번째 거절에 직면했을 때, 다니엘은 그 궁중 관리들의 타당한 두려움을 충분히

인정해 주는 우회적인 방법을 찾는다. 이것은 다니엘이 이미 갖고 있었던

선천적인 ‘지혜’를 증명한다.

사실, 다니엘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라면 외국 문화에 순응하라

는 압력에 대해서 적어도 세 가지 방식의 반응을 취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새로운 문화의 힘에 굴복하여 동화될 수 있다. 확실히, 그런

선택은 환경이 주는 압력에서 벗어나게 한다. 둘째,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고수하는 고립된 거주 지역으로 가능한 한 깊숙이 숨어 들어갈 수도 있다. 그것도 그런 압력을 최소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마 다니

엘에게는 이런 방식의 선택을 할 여지는 없었던 것 같다. 왕의 음식과 포도

주를 먹지 않는 것은 바벨론식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니엘은 ‘그의 머리를 위태롭게 했

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두 가지 선택 모두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했다.

이 두 가지 반응은 니부어 ( Niebhur 1951 ) 가 믿음과 문화를 연결하는 다섯 가지

방식들로 분석했던 것들 중 두 가지 방식과 유사하다. 첫 번째 방식은 문화 를 ‘지배하는’ 그리스도를 강조하는데, 이 방식은 하나님이 삶의 모든 영역

에서 역사하신다고 보면서 주변의 문화에 동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방식은 문화를 ‘거슬리는’ 그리스도를 강조하는데, 이 방식은 인간의 문화는 타락했고 악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기피되어야 하고 퇴치되어야 한다. 이 이야기에서 다니엘이 취했던 입장과, 그리고 1-6장 이야기들이 주

는 전반적인 메시지는 니부어가 제시한 범주들 중에서 세 번째와 잘 어울린 다. 이 세 번째 범주는 문화의 변혁자로서 그리스도를 강조하는데, 하나님의

구속적 목표의 사회적 차원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동화되지 않는 한도에서 문화에 참여함으로써 그 목표를 실현시키려고 애쓰지만, 그와 동시에 변혁 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문화와 대결하기도 한다. 문화에 대한 학습 ( 예를

들어, 갈대아 사람들의 글과 말을 공부하는 것 ) 은 문화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문화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본질적인 기반이다. 사회 ( 예를 들어, 왕의 궁 정 ) 에서 비중 있는 직책을 갖는 것은 곧 어려운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심지어 타협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효과적인 대결을 통해 변혁을 이룰 확실한 기회를 얻는 것도 뜻한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에 대해서 하신 말씀은 이 이야기와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 ( 마 5:13-16 ). 예수의 그 말씀과 이 이야기 둘 다 구별을 동반한 개입에 대해서 말해 주는 이미지들을 활용한다. 빛은 어둠 속으로 비쳐야 하지만, 빛과 어둠은 서로 정확히 대조된다. 소금은

자기의 맛을 주거나 보존하기 위한 대상과 섞여야 하지만, 자신의 효력을

발휘하려면 자기의 짠맛을 지켜야 한다.

비록 문화에 대한 개입이나 효과적인 대결은 각각의 문화와 상황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겠지만, 하나님께 계속 신실하고 싶은 사람들은 넘지 말아야

할 곳에서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다. 다

니엘 3장의 이야기는, 경우에 따라서는 효과적인 대결이 불가능하고, 순교

에 이르는 결과가 오더라도 오직 적극적인 대결만 가능한 상황도 있음을 인 정한다. 음식에 의한 부정함이 관계된 사건은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효과적

인 대결로 밝혀졌지만, 훗날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시대에 살았던 많은 유대인들에게는 순교에 이르게 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들이 곧게 서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로 그들의 마음을 굳게 정했 다.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고 그래서 거룩한 언약을 범하기보다는 차라 리 죽음을 택했다’( 마카베오1서 1:62-63 ). 마카베오2서 7장은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거부한 이유 때문에 고문을 당하며 사형된 한 어머니와 그녀의 일

곱 아들 이야기를 전한다. 믿음을 버리게 만드는 억압을 당했던 유대인들에

게 그런 외적인 율법 준수는 신실함을 지켜서 그들의 언약 백성 된 신분을

보존하는 것과 결정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 초대 기독교인들에게는 유대

인들의 음식 규정들이 매우 다른 양상을 띠었는데, 특히 이 규정들이 이방

인 개종자들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이 되

었을 때 더욱 그러했다 ( 행 15장 ). 로마서 14장과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

사도는, 우상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부정해진’ 음식과 관련하여 성도가 해

결할 수 없는 ‘곤란한 규정들’에 당면했을 때 생긴 문제들을 다룬다.

분명히, 다니엘 1장의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바벨론으로 포로

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다니엘이 보여 준 방식, 즉 주변의 외국 문화에 관 계되는 상황을 피하지 말되 관계되면서도 동시에 뚜렷한 신앙을 지키는 방 식을 취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포로들에게 그들이 그런 입장을 취하더라도 동시대 외국인들이 보기에 성공을 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 시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신실함에 상을 주신다는 것은 히브리어 성경 과 기독교 성경 모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성경이 동일하게

강조하는 사실은, 그런 상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내려지는 것이어서 우리가

그 상이 언제 내려질지 혹은 어떤 형식일지를 짐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 그 상들은 이생에서 내려지기도 하고, 다니엘 12장이 설파해 주

듯이 내생에서만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다니엘 2:1-49

2:1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

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2 왕이 그의 꿈을 자기에게 알려 주도

록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라 말하매 그들이 들어가서 왕의 앞

에 선지라 3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 하도다 하니 4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말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께서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하는지라 5 왕이 갈대아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

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의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 것이요 6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하니

7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

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하니

8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

므로 시간을 지연하려 함이로다 9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

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

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하더라 10 갈대아인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한 사

람도 없으므로 어떤 크고 권력 있는 왕이라도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인들에게 물은 자가 없었나이다 11 왕께서 물으신 것은 어려운 일이라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12 왕이 이로 말미암아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 명 령하니라 13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14 그 때에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

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15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에게 물어 이르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 하니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알리매 16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17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

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18 하늘에 계신 하나

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

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19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

님을 찬송하니라 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24 이에 다니엘은 왕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라 명령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그에 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

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라 하니

25 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되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 이다 하니라

26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29 왕이여 왕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30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

심이니이다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

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

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

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

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36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37 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 사람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

에 넘기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39 왕을 뒤이어 왕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

스릴 것이며 40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

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 41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

라가 쇠 같은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 그 발가락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43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

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44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

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

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

46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2:1 In the second year of Nebuchadnezzar’s reign, Nebuchadnezzar had dreams; he became very anxious and his sleep left him. 2 The king summoned the magicians, the enchanters, the sorcerers and the Chaldeans to explain his dreams to the king, and they came and stood before the king. 3 The king said to them, ‘I have had a dream and I am very anxious to understand the dream.’

4 The Chaldeans said to the king in Aramaic, ‘O king, live for ever. Tell your servants the dream and we shall give its meaning.’ 5 The king replied to the Chaldeans, ‘This is my firm decision: if you do not tell me the dream and its meaning, you will be dismembered and your houses destroyed. 6 But if you make known the dream and its meaning, you shall receive gifts, rewards and much honour. Therefore, tell me the dream and its meaning.’

7 They answered a second time and said, ‘Tell your servants the dream and we will give its meaning.’

8 The king replied, ‘Now I know for sure that you are buying time because you see that I have made a firm decision 9 that if you do not tell me the dream the decree against you is inevitable. You have agreed together to speak false and corrupt words to me until the situation changes. Therefore tell me the dream and I will know that you can tell me its meaning.’

10 The Chaldeans answered the king, ‘There is no-one on the earth who could declare what the king asks, for no great king or ruler has asked something like this of any magician, enchanter or Chaldean. 11 The thing that the king asks is difficult and no-one can declare it except the gods, who do not dwell in mere mortals.’

12 At this the king was furiously angry and commanded that all the wise men in Babylon were to be killed. 13 So the decree went out that the wise men were to be killed, and they sought Daniel and his friends in order to kill them.

14 Now Daniel responded to Arioch, the chief of the king’s guards who had gone out to execute the wise men of Babylon, with prudence and discretion. 15 He said to Arioch, ‘Royal captain, why is the king’s decree so harsh?’

Then Arioch explained the matter to Daniel. 16 Then Daniel went in and asked the king to give him a set period of time and he would give the king the interpretation. 17 Daniel went to his house and told his companions Hananiah, Mishael and Azariah the situation 18 so that they would seek compassion from the God of heaven concerning this mystery in order that Daniel and his companions should not perish with the rest of the wise men of Babylon. 19 The mystery was then revealed to Daniel in a night vision. Daniel blessed the God of heaven. 20 And he declared:

다니엘

아볼로 구약 성경 주석(AOTC)의 목표는 성경 말씀의 신성함과 인격적인 면을 동등하게

다루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오늘날에도 여

전히 유효한데, 이 성경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언어,

사회,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학문적인 접근을 통해 구약 성경을 그리스도인들에

게 상세히 설명하는 이 주석 시리즈는, 구약 성경이 현대 사회를 사는 독자에게 중요하

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집필한 이 주석 시리즈는 우선적으로 구약을 설교하는 목회자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획되었다. 하지만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나 학생 누구라도 구약

지은이 어니스트 루카스(Ernest Lucas)

영국 켄트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Ph. D.) 생화학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침례교 목사가 되었 으며, 영국 리버풀 대학교에서 다니엘서를 연구했다(Ph. D.). 영국 브리스톨 침례 대학의 부학장을

역임하고, 브리스톨 대학교에서 신학·종교학 명예 연구원으로 활동한 저자는 잠언 주석(THOTC), 에스겔 및 다니엘 배경 주석(ZIBBC), 시편과 지혜 문학 교재, 과학과 신앙에 대한 논문 등 다양한 책을 저술했다.

옮긴이 김대웅

경북대학교(B. 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M. Div.) 미국 듀크 대학교를 거쳐(Th. M.)

미국 라이스 대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했다(Ph. D.).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 교수

로 섬기고 있으며, 『NIV 스터디 바이블』(부흥과개혁사)에 역자로 참여했다.

성경을 깊이 배우기 원한다면, 이 주석 시리즈를 통해 그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값 25,000원 www.rnrbook.com ISBN 978-89-6092-480-2 978-89-6092-479-6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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