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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문화적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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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2024 by Wm. B. Eerdmans Publishing Co.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Cultural Sanctification by Stephen O. Presley

Published by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06 44th Street SE Grand Rapids, MI 49546 U.S.A.

All rights reserved.

This Korean translation edition ⓒ 2026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of Wm. B. Eerdmans Publishing Co.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를 통하여 Wm. B. Eerdmans Publishing Co.와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문화적 성화

발행일 2026년 3월 1일

지은이 스티븐 프레슬리

옮긴이 신윤수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6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7540-048-1 (93230)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라테란 세례당

열정적인 택시 기사가 호텔 정문에서 우리를 맞이해 차에 태웠다.

친구와 나는 라테란 대성당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기사는 원형 진입

로를 쏜살같이 돌아 마치 노련한 경주용 자동차 운전사처럼 고대 로

마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기사에게 우리가 초기 기독교를 연구

하는 교수이며 몇몇 유적지를 방문하러 로마에 왔다고 말했다. 기사

는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중요한 건물들을 가리키며 생동감 넘치

는 설명을 덧붙였다. 고대 제국의 도시 로마에는 과거 기독교 시대

의 놀라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고대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바로 안쪽, 카에리우스 언덕에 위치한

성 요한 라테란 성당은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193~211 ) 가

193년에 세운 옛 요새 터에 세워졌다.1) 수년 후, 콘스탄티누스 황

1) Hugo Brandenburg, Ancient Churches of Rome from the Fourth to the Seventh

제가 권력을 잡으면서 요새의 수비대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콘스탄

티누스는 밀비아 다리 전투( 312 ) 에서 막센티우스를 물리친 후, 로마

주교 실베스터( 314~335 ) 에게 이 땅을 기증해 대성당, 궁전, 세례당

을 짓게 했다.2) 이 기증은 콘스탄티누스가 자금을 지원한 최초의 기

독교 건축 사업 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전략적인 의미도 있었다. 이

는 콘스탄티누스가 군사적 승리 직전에 신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는

동시에 기독교 공동체를 이교도 정치 세력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외

곽에 자리 잡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3) 이곳에서 교회는 기독교

국가 건설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목적지는 교회 자체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옆

에 있는 고대 건물인 라테란 세례당으로 향했다.4) 이곳에는 웅장한

대성당 뒤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례대 중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세례대는 식스투스 3세( 432~440 ) 에 의해 훨씬 더 오래된

유사한 구조물의 기초 위에, 어쩌면 로마 주교의 저택과 관련 있을

지도 모르는 개인 주택의 목욕탕 위에 독특한 팔각형 모양으로 지어

졌다.5) 식스투스는 410년 로마 함락 이후 주교가 되자 제국 로마의

이미지와 권력을 되살리기 위해 도시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복원 사 업을 시작했다. 기독교 국가의 태동기에 교회는 많은 새 개종자로

넘쳐났고, 이들이 원활하게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건물이 필요했다.

이 시기는 레오 대제가 중세 초기 교황청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서

Century: The Dawn of Christian Architecture in the West (Turnhout: Brepols, 2005), 20–21.

2) Brandenburg, Ancient Churches of Rome, 20.

3) Richard Krautheimer, ThreeChristianCapitals:TopographyandPolitic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3), 12.

4) 로버트 윌켄은 콘스탄티누스의 종교적 비전에서 라테란 성당 구역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 한다. 참고. Robert Louis Wilken, LibertyintheThingsofGod:TheChristianOrigins ofReligiousFreedom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9), 25–26.

5) Maureen Miller, The Bishop’s Palace:Architecture and Authority in Medieval Italy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2000).

방 기독교의 부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전의 중요한 시기였다.6)

건물에 들어서자, 한밤중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방 중앙에는 원

형 극장의 무대처럼 자리 잡은 커다란 원형 대리석 세례당이 우리를

맞이했다. 세례당의 물통은 지름이 거의 8.5미터에 달했는데, 이는

작은 뒷마당 수영장 정도 크기였고 성인 한 명이 완전히 잠길 수 있

을 만큼 깊었다.7) 허리 높이의 난간이 세례당을 둘러싸고 있었고, 양

쪽에 두 개의 입구가 있었다. 각 입구 앞에는 예비 신자들이 드나들

수 있게 물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물통 위로는 여덟 개의

짙은 자주색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진 2층짜리 팔각형 열주가 대

야 주위에 고르게 배치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대리석 엔태블러

처( entablature ) 가 얹혀 있었다. 그 기둥들 위에는 여덟 개의 더 작은

흰색 대리석 기둥이 서 있는데, 이 기둥들은 중앙에 비둘기가 있는

아치형 천장을 받치고 있으며, 비둘기는 성령의 강림을 상징한다. 교

황록( Book of Pontiffs ) 에는 콘스탄티누스가 세례당을 장식하기 위해

기증한 선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

의 조각상, 황금 어린양과 일곱 마리의 은 사슴 등이 포함된다.8)

우리는 조용히 묵상하며 세례대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모든 특징

을 살펴보았다. 나는 부활절 주일 아침 일찍 세례를 준비하는 신실

한 예비 신자들이 어떻게 이 건물로 행진해 들어왔을지 생각해 보

6) Raymond Davis, ed., The Book of Pontiffs (Liber Pontificalis), 3rd ed. (Liverpool: Liverpool University Press, 2001), 38. 오랜 전통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의 세례는 이 세 례당과 관련이 있으며, 세례당 곳곳에 걸린 그림들은 그의 생애와 정복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티누스가 죽기 직전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했다(Eusebius, Vit. Const. 4.61-62). 그럼에도 콘스탄티누스 의 그림과 그의 통치와의 연관성은 식스투스 황제가 이 유명한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례당 을 개보수하기에 충분했다.

7) David Tyler Thayer, “The Lateran Baptistery: Memory, Space, and Baptism” (master’s thesis, University of Tennessee, 2012), 26.

8) Book of Pontiffs, 38.

았다. 그들은 서쪽 회랑에 모여 천천히 물속으로 내려갔을 것이다.9)

그런 다음, 한 사람씩 모여든 공동체 앞에서 신앙을 고백했을 것

이다. 그들의 세례는 그들이 더 이상 단순히 육신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태어났음을 의미했고, 교회는 이를 확인하

며 주위에 서서 새로운 개종자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환영했을 것

이다.

시차 때문에 어지러웠거나 진한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세 잔을 마 셔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 공간의 웅장함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아마도 3세기경부터, 어둠의 왕국에서 빛의

왕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왔었다는 사실을 곰 곰이 생각했다.

식스투스는 이곳의 중요성을 이해했다. 건물을 재단장하면서 그는

자주색 열주 위의 대리석 엔태블러처에 여덟 개의 2행시로 이루어

진 일련의 비문을 새기게 했다. 이 글귀들은 기독교가 제국을 완전 히 정복한 궁극적인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여기 생명을 주는 씨앗에서 태어난 백성이 있도다.

성령께서 세례의 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 하늘 도

성에 속한 이들.

거룩하게 정화하는 물에 죄인을 빠뜨리면,

물결은 그를 옛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새것으로 내보내 도다.

다시 태어난 자는 그가 하나가 된 자들과 다르지 않으니, 한 세례, 한 성령, 한 믿음이로다.

동정녀 어머니 교회는 태어나는 자를 낳으니,

9) Brandenburg, Ancient Churches of Rome, 47.

신성한 숨결로 잉태하여 흐르는 물에서 출산하였도다.

죄에서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자는 여기에서 씻음으로 깨끗해

지니,

혈육의 부모에게 받은 죄든 자신의 죄든 상관없도다.

여기 온 세상을 적시는 생명의 샘이 있으니, 그 궁극적인 원천은 창에 찔린 그리스도의 옆구리로다.

천국을 위해 이 샘에서 다시 태어났으니,

이 복된 생명은 단 한 번 태어난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도다.

네 죄가 얼마든 어떤 것이든 두려워 말지니, 이 강에서 태어난 자는 거룩할 것임이라.10)

비문의 첫 줄은 예비 신자들이 세례당으로 들어가는 문 위에 전략

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나머지 비문은 대리석 엔태블러처를 둘러

싸고 있다. 예비 신자들은 물이 가득 찬 탕에 들어서면서 쉽게 위를

올려다보고 “여기 생명을 주는 씨앗에서 태어난 백성이 있도다. 성

령께서 세례의 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 하늘 도성에 속한

이들”이라는 첫 구절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작고 변방에 있던 유대교 종파가 어떻게 제국의 주

요 종교가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세례당 입구로 걸어가

물 없는 탕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간절히 이

곳에 왔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들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시민권,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살도록 거듭난

새로운 생명과, 그들을 본향으로 인도할 새로운 소망을 품고 나왔다.

이것은 그들이 로마인이기를 멈췄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정치

10) Everett Ferguson, Baptism in the Early Church:History,Theology,and Liturgy in the First Five Centuries (Grand Rapids: Eerdmans, 2009), 769.

적 함의를 지닌 로마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이제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더욱 근본적인 헌신을 통해 표현된다는 의 미였다.

텅 빈 라테란 세례당 입구에 서서, 나는 서방 교회가 비슷한 갈림

길에 도달했지만, 정반대 방향에서 그러했음을 깨달았다. 건물은 결

국 텅 비어 있었다. 한때 세례를 받으려는 열정적인 개종자들로 가

득했던 이곳은 이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예비 신자도, 제자도 없 었다. 텅 빈 건물 안에는 사라진 시대의 낡은 유물들만 남아 있었다.

밖에서는 분주한 이탈리아 도시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차들

이 지나가고, 경적이 울리고, 사람들의 외침이 들리고, 중요한 곳을

향해 서둘러 가는 행인들이 지나갔다. 소음이 건물 안으로 스며들어

동굴 같은 공간에 메아리쳤다. 바로 그때, 몇몇 사람이 들어와 고요 함을 깨뜨렸지만, 그들 중 누구도 세례를 받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처럼, 그들도 그저 사라진 기독교 세계의 유적을 보기 위해 박

물관에 들어온 것뿐이었다. 아무도 교회에 들어가려고 온 것이 아니 었다.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이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세상은

사라지고, 이제 새로운 세속 세계가 다시 이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섬뜩한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고대인이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서구의 미래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즉, 서구는 꾸준히 세속화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바 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11) 하지만 “세속적” 또는 “세속 11) 많은 연구가 있지만 몇 가지 예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Philip Jenkins, The Next Christendom: The Coming of Global Christianity, 3rd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Stephen Bullivant, Nonverts:The Making of Ex-Christian

주의적”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는 많은 논의의 대상이었다. 철

학자 찰스 테일러는 이 용어를 세 가지 의미로 정의한다. 첫째, 세속

성은 “공통적인 제도와 관행” 또는 공적 공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

에서, 종교가 문화의 근간이었던 전근대 사회와는 달리, 오늘날 교회

는 정치 제도 및 공공 활동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사회생활에 완

전히 참여하면서도 신에 대한 언급을 전혀 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의미는 제도뿐 아니라 사람들을 가리키며, 서구 사회가 신

으로부터 대규모로 이탈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문화는 정치적 절차

나 문화적 사건에 스며든 기독교적 과거의 흔적을 간직할 수는 있지

만, 대중의 삶 또는 공공 생활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람

들은 단순히 신을 믿는 데는 관심이 없다. 세 번째 관점은 앞의 두

관점과 연결되어 있는데,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세속성은 “우리의 도

덕적·영적 또는 종교적 경험과 탐구가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이해의

맥락”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테일러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도덕적·영적 선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기독교나 다른 어떤

전통적인 종교 공동체에서 흔히 찾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포스트모던 시대는 ‘모든 도덕적 약속 또는 책임에는 그것의 사회적

표현에 영향을 미치는 전제들이 수반되며,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세속적이며, 공공 또는 공적 영역은 같은 문화적 영

역( 자산 ) 을 놓고 경쟁하는 다양한 도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

식하고 있다. 기독교는 단지 삶에 대한 하나의 관점, 또는 테일러가

“사회적 상상력”( social imaginary ) 이라고 부르는 여러 관점 중 하나일 뿐이다. 테일러의 말에 따르면, 이 세 번째 의미의 세속주의는 “무엇

보다도 신을 믿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따라서 이것이 실제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로부터, 신을 믿는 것이 여러 선택지 중 하나

Americ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로 이해될 뿐 아니라 대다수 경우 받아들이기 가장 쉬운 선택지가

아닌 사회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테일러는 이 세 번째 의미의 세속

주의는 신에 대한 믿음이 자명한 것이 아니며, 경쟁하는 대안들 속

에서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12)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는 새롭고 극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

는 더 이상 기독교가 ‘지적으로는 의심스럽지만, 도덕적으로는 용인

되는’ 현대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기독교가 도

덕적으로 파산한 것이라고 거부당하는( 대다수 경우 여전히 지적으로 의심

받고 있는 ) 포스트모던 세계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는 더 이

상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외면받는 것이 아니라, 그 도덕적 주장이

사회 진보와 도덕적 다양성의 새로운 표현과 자주 상충하므로 외면

받고 있다. 많은 도덕적 표현이 공적 광장에서 찬사를 받는 반면, 전 통적인 기독교 도덕은 예의 바른 자리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드물다.

칼 트루먼은 테일러와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런 세속 적 시대를 “표현적 개인주의”( expressive individualism ) 의 승리라고 명

명한다. 표현적 개인주의는 외부 규범보다 “내면의 감정”을 우선시 한다.13) 트루먼은 우리의 위태로운 상황을 진단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고대 세계와 포스트모던 세계 사이의

공명을 인식하는 그의 마지막 구절이다. “우리는 지금 2세기에 살고 있다.”14) 우리는 콘스탄티누스 이전 시대로 후퇴했다. 당시 이교도 들은 정치적·사회적 권력을 장악하고 교회를 억압했으며, 특권층인

12) Charles Taylor, ASecularAge (Cambridge: Belknap, 2007), 1, 3, 171.

13) Carl R. Trueman, The Rise and Triumph of the Modern Self: Cultural Amnesia, Expressive Individualism, and the Road to Sexual Revolution (Wheaton, IL: Crossway, 2020, 『현대적 자아의 부상과 승리』,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6), 46. 트루먼은 테일러의 “표현적 개인주의”라는 용어를 기반으로 한다. 참고. Taylor, Secular Age, 474–475.

14) Trueman, RiseandTriumph, 406.

로마 시민이 원형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기독교 탄압에 환호했다.

활기찬 문화생활에 둘러싸인 텅 빈 라테란 세례당의 조용한 아이러

니처럼, 많은 사람은 테일러와 트루먼이 묘사한 세속적 전환이 고대

로마 세계의 삶의 정황( sitz im Leben ) 으로의 회귀처럼 느껴진다고 지

적했다.

트루먼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영국의 정치

평론가 페르디난드 마운트는 이렇게 선언한다. “신의 긴 장례식은 끝났고, 우리는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왔다……우리는 0년, 즉 AD

0년으로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서기 0년, 즉 CE 0년으로 돌아왔다

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서기 시대( Common Era ), 즉 우리 주

님의 해가 만료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15) 마운트는 계속해

서 말한다. “우리의 현재 습관, 열정, 관심사, 세계관은 로마가 멸망

했을 때 함께 무너진 문명의 흥미로운 흔적들을 담고 있을 뿐 아

니라, 이상하지만 정확하게 초기 황제 시대 로마의 사고방식을 종종

재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들이고 그들은 우리다.”16) 기

독교 세계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등장했지만, 마치 오랜 여정

끝에 어린 시절의 집으로 돌아온 듯한 기시감( déjà vu ) 이 느껴질 뿐 이다.

테일러와 트루먼처럼, 마운트에게 있어 로마로 돌아가는 길은 니

15) Ferdinand Mount, Full Circle: How the Classical World Came Back to Us (New York: Simon & Schuster, 2010), 1.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펼치는 책은 많다. 예를 들어 Melissa Lane, Eco-Republic:What the Ancients Can Teach Us about Ethics,Virtue, and Sustainable Living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2)을 들 수 있다. 레인은 “이렇게 정의된 현대적 프로젝트는 몇 가지 결함 있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개인의 미덕, 인격 및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재고하기 위해 고대 그리 스인들에게 주목한다. 참고. Lane, Eco-Republic, 23. 참고. Natalie Haynes, The Ancient Guide to the Modern Life (London: Profile Books, 2012), 254. 여기서 저자는 “고전은 우리가 과거에 어떠했는지, 현재 우리가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부분”이라 고 말한다.

16) Mount, Full Circle, 2–3.

체와 같은 철학자들이 수년 전에 예견했던 것으로, 그들은 세속주

의자들이 자신들의 수많은 제단 중 하나에서 숭배하지 않는 자는 누

구든 파문하는 세상을 찬양했다.17) 그러나 니체의 비전은 그가 예상

했던 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기독교 이후의 유토피아는 전혀 나타나

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과거로의 회귀를 목격한다. 마운트

는 통찰력 있는 한 단락에서 고대 세계와 포스트모던 세계 사이의

유사점을 제시한다.

AD 2세기 안토니우스 황제 시대, 즉 기번(Gibbon)이 인류 행

복의 정점으로 여겼던 그 시기에 로마는 종교적 선택의 격동기 였다. 무엇이든 믿을 수도 있었고, 아무것도 믿지 않을 수도 있

었다. 점성술사, 뱀 조련사, 예언자, 점쟁이, 마법사를 신뢰할 수

도 있었고, 여섯 가지가 넘는 창조 신화와 여러 가지 부활 신화

중에서 선택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에 속

했다면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읽고 엄격한 유물론적 우주관을 받

아들일 수도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이 시기는 무엇이든 허용되는

시대였고, 인간 정신의 가장 기괴하고 광적인 창조물들이 가장

아름다운 비전, 가장 고무적인 영적 도전 및 가장 도전적인 과학

적 탐구와 뒤섞였다.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이전이나 이후

에 이와 같은 시대를 떠올리기는 어렵다.18)

17) Mount, Full Circle, 168.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와 같은 다른 학자들도 비슷한 견해를 제 시했다. 매킨타이어의 유명한 저서 『덕 이후』는 니체를 언급하며 현대 세속 세계의 도덕적 상태가 “심각한 혼란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고, 서구의 도덕적 지침은 모든 도덕적 선택이 단순히 선호의 문제인 정서주의에 기반한다고 가정한다. 사회를 질서 있게 유지할 수 있는 일관된 도덕률이 존재하지 않고, 신학은 주변부에 머물러 있어서 온갖 형태의 영성과 도덕 률이 난립할 수 있다. 그 결과, 적절한 도덕률을 가려 낼 방법 없이 다양성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참고. Alasdair MacIntyre, After Virtue, 2nd ed.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4), 256. 18) Mount, Full Circle, 163, 241.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라는 말은 마운트의 작품 나머지 부분

위에 구름처럼 드리워져 있다. 각 페이지는 고대 세계와 오늘날 사

이의 공명과 놀라운 연결로 가득 차 있다. 인체, 성, 가정생활, 과학,

종교, 유명인, 예술, 자연에 대한 현대와 고대의 관점 사이에는 공통

된 가정이 적지 않다. 이런 연결 중 일부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시대

착오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그 유사점은 분명하다.19)

좀 더 최근에 샌디에이고 대학교 법학 교수 스티븐 스미스는 그의

저서 『도시의 이교도와 그리스도인』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관점

을 제시한다. 스미스는 우리의 문화적 변혁이 이교도 로마로의 회

귀라기보다는 경쟁하는 종교 이념 간의 고대 투쟁의 새로운 발현

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저서는 1939년 3월 케임브리지 코퍼스 크리

스티 대학에서 T. S. 엘리엇이 행한 일련의 강연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다. 엘리엇은 이 강연에서 20세기 서구 문화가 기독교 사회와

이교 사회 간의 투쟁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20) 역사는 “기독교 사

회”가 전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엘리엇은 “기독교 사

회는 대안들을 공정하게 검토한 후에야 비로소 수용될 수 있다”라고

인정했다.21) 엘리엇 시대 이후로 기독교와 이교 간의 투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스미스는 고대 세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교와 기독

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기 어려운 기본적인 실존적 지향”을 반영

한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닫고 있다고 주장한다.22) 고대 세계는 종교 적 영역과 시민적 영역이 불가분한 이교 문화였다. 콘스탄티누스 황

19) 결론적으로, 마운트는 약간 한발 물러선다. 그의 평가에 따르면, 고전 세계로의 회귀는 “고 전의 가벼운 버전”으로, “고전의 근간이었던 진중함 없이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방식” 을 강조하는 것이다. Mount, Full Circle, 374.

20) T. S. Eliot, “The Idea of a Christian Society,” in Christianity and Culture (New York: Harvest, 1948), 10.

21) Eliot, “Idea of a Christian Society,” 18.

22) Steven D. Smith, Pagans and Christians in the City: Culture Wars from the Tiber to the Potomac (Grand Rapids: Eerdmans, 2018), 14.

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교 신들은 “수 세기 동안 끊임없는 숭배”를

누렸다.23) 심지어 교회에서 불린바 “이교도”라는 용어조차도 “사탄

의 세력에 맞서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례를 통해 입대하지 않은 시

민”을 의미했다.24) 최근 들어 이런 새로운 형태의 이교는 “더 개방적

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그 결과 “현대 이교”( modern paganism, 엘리엇과 스미스는 이렇게 부른다 ) 는 고대 로마 시대를 연상시키

는 방식으로 서구 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25) 트루먼, 마운트, 스미스와 함께, 여러 학자의 목소리가 현대와 고

대 세계 사이의 공명을 알린다. 예를 들어 정통 교부 신학자이자 역

사가인 존 베어는 2세기와 우리 시대 사이에 “기묘한 유사점”이 있다고 믿는다.26) 신약 학자 마이클 크루거는 2세기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탈기독교 세계에 진입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는 이미 그 안에 있다. 이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새로

운 변증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오래된 변증론, 즉 2세기의

변증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27) 미국 역사가 존 윌시는

2세기의 변증가인 순교자 유스티누스를 기독교 시민 참여의 모델로

제시한다.28) 마이클 그린의 잘 알려진 초기 교회 복음화 요약은 우

23) Robin Lane Fox, Pagans and Christians: In the Mediterranean World from the Second Century A.D. to the Conversion of Constantine (Harmondsworth: Penguin, 1988), 27.

24) Fox, PagansandChristians, 30–31.

25) Smith, Pagans and Christians, 14. Peter Gay, The Enlightenment: The Rise of Modern Paganism (New York: Norton, 1995)과 같은 다른 학자들도 유사한 관찰을 제 시했다.

26) John Behr, Irenaeus of Lyons:Identifying Christiani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1.

27) Michael J. Kruger, Christianity at the Crossroads: How the Second Century Shaped the Future of the Church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8), 230.

28) John D. Wilsey, AmericanExceptionalismandCivilReligion:ReassessingtheHistoryofanIdea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5), 222–224.

리 문화의 포스트모던적 변화에 영감을 받아 “처음으로 돌아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런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성공했는지 살

펴보고 싶다”는 그의 열망에서 비롯되었다.29) 초기 기독교 문화 참

여에 대한 제럴드 시처의 책에서도 같은 동기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게 교회를

인도할 수 있는 “모델과 운동”을 찾기 시작했고, 기독교 세계가 등장

하기 이전의 고대 교회를 살펴볼 필요성을 인식했다.30) 마지막으로,

저자 로드 드레허는 “기독교 초기 몇 세기 동안, 교회는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성장했으며, 이후 서방 제국이 붕괴한 후에도

그와 같았다”라고 말하며 독자들을 위로한다.31) 이 모든 저술가는

같은 것을 감지하고 있다. 즉, 현재의 문화적 상황은 이교와 기독교

사이의 고대 투쟁의 부활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의심의 여

지가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은 죽었고, 신들은 영원하다( God is dead, long live the gods ).

문화적 참여: 고립인가, 대립인가

이런 증상과 진단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해결책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묻게 된다. 여기서부터 상황이 좀 복잡해진다.

고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독교와 이교 간의 갈등

이 쉽게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문제는 이교도의 신 숭배가

“기독교가 들어가 적응할 수 없는 사회 전체”에 깊숙이 자리 잡고

29) Michael Green, Evangelism in the Early Church, rev. ed. (Grand Rapids: Eerdmans, 2003), 13.

30) Gerald L. Sittser, Resilient Faith: How the Early Christian “Third Way” Changed the World (Grand Rapids: Brazos, 2019), 15.

31) Rod Dreher, The Benedict Option: A Strategy for Christians in a Post-Christian Nation (New York: Sentinel, 2017), 12.

있었다는 점이다. 이교와 기독교의 만남은 대학에서 가볍게 즐기는

오후 토론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두 종교적 비

전 간의 갈등”이었으며, 해결하는 데는 오랜 세월과 많은 희생이 필

요했다.32)

이런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 나갈 길을 찾으려는 많은 목소리가

있다. 대부분의 반응은 고립과 대립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노선으로

나뉜다. 개혁주의 신학자 존 볼트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변화된 상황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맞서

싸워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런 정서를 포착한다.33) 기독교

세계의 몰락과 문화적 영향력의 상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굳건히

버티고, 이를 악물고, 함성을 지르며 문화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손실을 최소화하고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 고립된 저항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까?

이런 후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영향력

있는 저서 『덕 이후』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토

성인의 이미지에서 중요한 영감을 받았다. 트루먼보다 앞서 이런 주

장을 펼친 매킨타이어는 20세기가 정서주의 ( emoti-vism ) 로 특징된다

고 주장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평가적 판단, 특히 모든 도

덕적 판단은 태도나 감정의 표현에 불과하며, 도덕적이거나 평가적

인 성격을 지닌 한, 도덕성은 단지 선호에 따라 좌우될 뿐”이라고 말

한다.34) 이는 “모든 도덕적 의견 불일치는 이성적으로 끝없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루먼이 지적했듯이, 논리적 수

32) Robert Louis Wilken, Christians as the Romans Saw Them, 2nd e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3), 201.

33) John Bolt, “Abraham Kuyper or Saint Benedict? The Challenge of Christian Cultural Discipleship Today: A Review Essay,” Calvin Theological Journal 54 (2019): 147–164, 149.

34) MacIntyre, After Virtue, 12; Trueman, RiseandTriumph, 85–88.

렴은 내면의 감정과 선호가 삶을 지배하는 표현적 개인주의로 이어

진다. 매킨타이어는 어느 정도 희망을 제시하며 누르시아의 베네딕

트를 문화적 참여의 모델로 제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에게 닥친 새로운 암흑시

대를 통해 예의범절과 지적·도덕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 형태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덕의 전통이 지난 암

흑시대의 공포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면, 우리에게도 소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야만인들이 국경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꽤 오랫동안 우리를 지

배해 왔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

리의 곤경의 일부다. 우리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것(사뮈엘

베케트가 쓴 유명한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빗댄 말인 듯

하다-편집자)이 아니라, 또 다른(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다른)

성 베네딕토를 기다리는 것이다.35)

그는 이것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할지, 또는 수도 생활이 문화적 정

서주의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을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독자에게 수도원 피정이라는 이미지만 한낱 희망으로 남길 뿐이다.

몇몇 학자가 매킨타이어가 제시한 베네딕트에 대한 제안을 구체

화하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조너선 윌슨의 저서 『파편화된 세상

에서 충실히 살기: <덕 이후>에서 새로운 수도주의로』를 들 수 있다.

윌슨은 현대적인 수도 생활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원을 주는

새로운 운동을 구상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사회와 교회는 모두

같은 파편화된 세력들에게 지배되므로 교회의 회복은 교회 밖의 새

35) MacIntyre, After Virtue, 12, 244–245.

로운 공동체 또는 적어도 “분열된 세상과 깊이 얽혀 있는 교회의 구

조와 활동 밖”에서 시작되어야 한다.36) 그러나 윌슨의 매킨타이어

적용은 로드 드레허의 베스트셀러 『베네딕트 옵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다. 드레허의 주장은 윌슨의 주장과 본질적으로 같은 토대

를 공유하며 유사한 비전을 제시한다. 그는 미국과 서구 사회 전

체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으며,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미국에서 평소처럼 살아갈 수 없고,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해 가는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과 가치를 지켜 나가기 위해 창의적이고 공동

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제 신자들은 “때

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문자 그대로 분리되어야” 하며, “‘제자리에

서의 유배’( exile in place ) 라는 반문화 공동체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교회는 “정치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며 더 이

상 “현 질서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도덕

적 삶이 유지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건설해 다가올 야

만과 암흑의 시대에도 도덕과 문명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 할

때다.37)

나는 수도원으로의 “제자리에서의 유배”를 권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뒤로 물러나 저

항의 공동체를 형성하라는 부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교회에 대 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 변화의 속도는 교회, 교육 기관, 기

업, 자원봉사 단체 및 기타 사회 조직을 재편했다. 이런 변화는 신앙

으로 삶을 개척하려는 일부 사람에게 항상 좋은 징조만은 아니다.

문화 변화의 속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욱 빨라지고 있으

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 줄 예언자도 나타나지 않고

36) Jonathan Wilson, Living Faithfully in a Fragmented World:From After Virtue to a New Monasticism (Eugene, OR: Cascade, 2010), x, 25.

37) Dreher, BenedictOption, 2, 7, 18.

있다.

하지만 매킨타이어가 모든 사람을 설득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

은 베네딕트를 따라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은 대립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문화의 광기에 맞

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는 1991년 저서 『문화 전쟁: 미국을 정의하려는 투

쟁』( Culture Wars: The Struggle to Define America ) 에서 “문화 전쟁”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했는데, 이 책은 이런 관점을 옹호하지 않는데도 상세

히 설명했다. 이 분야에는 교회가 국가 내 정치권력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신정론이나 통합주의를 주장하는 많은 저서가 있다.

로버트 윌켄은 정치권력 장악을 선호하는 일부 사람의 견해를 다음

과 같이 표현하며 이런 정서를 잘 포착한다. “억제되지 않은, 솔직히

말해 암울한 숙고 끝에 나는 기독교에 정작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베

네딕트라기보다는 새로운 샤를마뉴가 아닐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38) 그들은 스티븐 울프의 “기독교 군주”와 같이 정치적·사회

적 권력을 휘둘러 평화를 재건할 새로운 기독교 국가를 이끌어 갈

통치자를 갈망한다.39) 가톨릭 통합주의와 기독교 민족주의의 흐름

은 문화 참여에 대한 대안적 접근 방식을 형성해 왔다.40)

다른 여러 연구에서도 고립과 대립 사이의 이런 긴장 관계를 지적 했다. 스티븐 불리반트의 사회학적 분석은 미국 내 신앙 이탈률

증가에 대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대응에서 이런 분열을 관찰했다. 어

38) Robert Louis Wilken, “Christianity Face to Face with Islam,” First Things, January 2009, https://www.firstthings.com/article/2009/01/christianity-face-to-facewith-islam.

39) Stephen Wolfe, The Case for Christian Nationalism (Moscow, ID: Canon, 2022), 287–288.

40) Thomas Crean and Alan Fimister, Integralism: A Manual of Political Philosophy (Heusenstamm: Editiones Scholasticae, 2020); Wolfe, Case for Christian Nationalism

떤 이들은 기독교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고립된

채 조용히 지내는 것, 즉 제자리에서의 유배 정적주의( exile-in-place quietism ) 를 제안한다.41) 불리반트는 기독교 민족주의의 확산과 제자

리에서의 유배 정적주의 사이에서도 유사한 분열을 발견했다.42) 마

찬가지로 선교학 분야에서도 폴 윌리엄스는 지난 50년간 문화적 고

립과 대립 사이의 끊임없는 공방이 선교 전략을 규정해 왔다고 지적

한다. 교회는 “근대 패러다임의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들을 고수하

거나 근대성 붕괴 이후 발생한 거대한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

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43)

다른 이들은 고립과 대립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중재적 태도

를 보이려고 노력한다. 많은 이들은 보수적인 기독교적 견해를 공유

하지 않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공통점을 찾기를 희망한다.

또 다른 이들은 새로운 행동주의( activism ) 를 통해 문화를 변화시키

려고 희망한다.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의 『세상을 바꾸다』, 앤디 크라

우치의 『문화 만들기: 창조적 소명 회복』, 윌리엄 에드거의 『창조되

고 창조하다』, 그렉 포스터의 『세상을 위한 기쁨』, 데이비드 크럼프 의 『충성을 맹세하다』, 데이비드 반드루넨의 『기독교 정치학』 등이 그 예다.44) 예를 들어 헌터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거나 지나치게 낙관

41) Bullivant, Nonverts, 209–215.

42) Bullivant, Nonverts, 209–215.

43) Paul Williams, Exiles on Mission: How Christians Can Thrive in a Post-Christian World (Grand Rapids: Baker, 2020), 6, 22–23.

44) 참고. William Edgar, Created and Creating: A Biblical Theology of Culture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6); Andy Crouch, Culture Making:Recovering Our Creative Calling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8); Greg Forster, Joy for the World:How Christianity Lost Its Cultural Influence and Can Begin Rebuilding It (Wheaton, IL: Crossway, 2014); David Crump, I Pledge Allegiance: A Believer’s Guide to Kingdom Citizenship in Twenty-First-Century America (Grand Rapids: Eerdmans, 2018); David VanDrunen, Politics after Christendom:Political Theology in a Fractured World (Grand Rapids: Zondervan Academic, 2020,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0).

적이 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고, 대신 세상에서 “신실한 존재”로서

의 교회를 옹호한다.45)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당사자가 공통점을 찾

아 휴전을 선언하고 평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포스

터는 하나님의 나라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며, “그리스도인

의 자기 문명 참여를 통한 하나님의 기쁨”을 비그리스도인들이 접할

때 그들은 신앙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한다.46) 반드루넨은

“하나님은 정치 공동체를 제정하시고 다스리시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들의 복지를 증진해야 한다. 그러

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공동체 안에서 왕국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믿는다.47)

요컨대, 이런 저작들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 세계의 소멸에 직면하

는 다양한 선택지, 즉 고립에서 대립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사이

에 존재하는 여러 중재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남은 것은 두 가지 상

반된 전제, 즉 문화에 동화되려는 경향과 폐쇄된 공동체의 안전으로

물러나려는 경향에 기반한 분열과 갈등이다.48) 선교학은 바로 이 점

을 지적한다. 탈기독교 시대에 우리는 모두 사실상 선교사로서 우리

동네, 마을, 도시 및 주에 있는 현대 이교도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후

퇴하라는 부름과 맞서 싸우라는 부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어느

선택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며, 특정한 장소와 시대에는 교회가

어느 한쪽으로 더 기울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네딕트를 되풀

이하지도, 샤를마뉴를 칭송하지도 않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우

리가 현대 이교주의가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초기 시대로 돌아가 카이사르 시대에 번성했던 그리스도인들의 삶

45) Hunter, ToChangetheWorld, 280.

46) Forster, JoyfortheWorld.

47) VanDrunen, Politics after Christendom, 18.

48) Williams, Exiles on Mission, 45.

을 살펴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문화적 성화

초기 교회의 기독교 문헌을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문헌들에서 흔

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극단적인 양분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기독

교 정체성과 기독교 교리 및 실천의 독특성에 대한 진지한 헌신과

함께, 이교도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 시민

의식과 공공 참여에 대한 논의가 나타난다. 본질적으로 초기 기독교

의 문화 참여는 고립이나 대립이 아니라, 우리가 “문화적 성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49) 문화적 성화는 그리스도인들이 필

연적으로 자신들의 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환경의 형태와 특

징을 활용해 덕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적 및 공동체적 성화를 추구해

야 함을 인정한다.50) 이런 그리스도인의 성화 실천에는 신앙을 수호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다른 사람들

을 설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의 모든 미덕을 가시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포함된다.

유명한 선교학자 앤드루 월스는 선교학 역사에 대한 저서에서 교

회가 항상 토착화와 순례라는 두 가지 상반된 원칙 사이에서 고심해 왔다고 주장한다. 지역주의를 강조하는 토착화 원칙은 사람들이 기

독교로 개종할 때 정적이고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세계와 밀접 하게 연결된 존재로 온다는 점을 인식한다. 개종은 그들이 삶에 필 요한 일반적인 인간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멈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

49) 나는 이 표현을 빈스 반투가 최근 저서 A Multitude of All Peoples:Engaging Ancient Christianity’sGlobalIdentit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20)에서 고 대 교회의 선교학적 접근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에서 빌려 왔다. 나는 초기 기독 교에서도 이와 같은 선교적 태도와 접근 방식을 발견한다.

50) Bantu, MultitudeofAllPeoples, 229.

는다. 그들은 여전히 자동차를 운전하고, 패스트푸드를 먹고, 저녁에

숲속을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월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집단 관계와 함께, 즉 우리가 인간 사회의 한 부분에

서는 편안함을 느끼고 다른 부분에서는 덜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문

화적 조건과 함께 받아들이신다”라고 썼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도 자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도

록 노력해야 하며, 교회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집처럼 편안함을 느

끼는 곳처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51) 이런 방식으로 토착화

원칙은 지역적으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가 함께 걷고 함께 일하는 것

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토착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순

례자이며 이 세상에 완전히 정착할 수는 없다. 순례자 원칙은 “그리

스도인에게 영원히 머물 도시가 없다는 것을 속삭이며 그리스도께

신실하면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동서고금

을 막론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고통 없이 그 체계에 흡수할 수 있

는 그런 사회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52) 그리스도인의

전제는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도하는 데 언제나 도움이

되겠지만, 그 문화의 패턴과 관행에 완전히 함몰되어서는 안 될 것

이다. 로완 그리어는 “교회가 가장 건강한 상태는 긴장감이 유지될

때인 것 같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과 내세의 빛 모두 속에서 살

아가며 교회의 거룩함과 보편성을 동시에 보존하려고 노력한다”라

고 지적한다.53)

51) Andrew F. Walls,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Studies in the Transmission of Faith (Maryknoll, NY: Orbis Books, 1996), 7.

52) Walls, Missionary Movement, 8.

53) Rowan A. Greer, BrokenLightsandMendedLives:TheologyandCommonLifein the Early Church (University Park: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1), 211.

빈스 반투는 월스의 토착화 원칙과 순례자 원칙을 “문화적 성

화”라는 개념으로 통합하고, “복음은 스스로 지역 문화에 토착화하

면서도 동시에 교회에게 스스로가 이 세상의 순례자이며 예수를 따

르라는 부르심과 충돌하는 문화와는 보조를 맞추지 말아야 함을 일

깨워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54) 내 생각에 토착화 원칙과 순

례자 원칙을 포괄하는 문화적 성화라는 개념은 초기 그리스도인들

이 이교 세계에 접근했던 방식을 잘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들은 항상

“문화로부터 스스로 고립하거나 문화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메시지

의 새로움을 지키려” 노력했다.55) 초기 교회는 세상을 거부하거나

세상과 대립하는 대신, 이 두 가지 원칙을 동시에 고수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급격한 문화적 변화를 두려워할 수도 있지만, 교

회가 이미 이런 변화를 경험해 왔다는 사실에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초기 교회는 꾸준한 문화적 성화 과정을 통해 문화 참여라는

진퇴양난을 헤쳐 나갔다.

기독교 문화적 성화의 한 예

따라서 우리와 비슷한 길을 이미 걸어온 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서 지혜를 구하기 위해 고대 교회로 돌아가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교회는 문화적 기독교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고대 세계에서 살고 사

역하고 섬겼다. 그들은 문화적 성화라는 비전을 통해 교회의 정체성 과 설득력에 집중한 선교적 노력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켰다. 좋은

예는 2세기경에 쓰인 짧은 변증서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

신』( Epistle to Diognetus ) 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후퇴하지도 싸우지도 말

54) Bantu, MultitudeofAllPeoples, 229.

55) Sittser, Resilient Faith, 6.

것을 촉구하는 이 글은 “다수가 택해야 할 모호한 중도”를 제시

한다.56) 문화 참여에 대한 최근 몇몇 책은 이 짧은 글을 포스트모던

문화의 수렁을 헤쳐 나갈 잠재적인 길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 어

느 책도 이 주장을 자세히 탐구하지는 않는다.57)

이 서신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2세기경에 쓰였고 기독교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던 디오그네투스라는 이교도에게 보내졌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58) 이 서신의 논증은 학자들이 “설

득 담론”( protreptic discourse ) 이라고 부르는 장르에 속하는데, 이는

“숙고하는 방식으로 청중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59) 다시 말

해, 이 서신은 기독교 신학을 존중하고 기독교에 대한 거짓 비난을

거부하도록 독자들을 설득하려는 문화 참여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신의 논증은 그리스도인들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살고 예배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만들려 했다.

이 서신의 저자는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정체성과 대조되는 기독

교 정체성의 독특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옹호한다. 그는 교회와 세상에서 교회의 사명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몇 가지 핵심 단락으로 요약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라, 언어, 관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도 자신들만의 도시에 살지 않 고, 특이한 방언을 쓰지도 않으며, 별난 생활 방식을 따르지도 않 는다. 그들의 가르침은 천재적인 인간의 생각과 성찰로 발견된

56) Wayne A. Meeks, TheOriginsofChristianMorality:TheFirstTwoCenturie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3), 50.

57) 참고. Hunter, ToChangetheWorld, 284–285; Smith, PagansandChristians, 127.

58) 다음도 보라. Clayton N. Jefford, “Introduction,” in The Epistle to Diognetus (with the Fragments of Quadratus):Introduction,Text,and Commentar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28. Diogn. 1.1.

59) Jefford, “Introduction,” 53.

것도 아니고, 어떤 이들이 그러하듯 인간적인 교리를 전파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운명대로 그리스 도시와 이방 도시

에 살면서 옷차림과 음식과 삶의 다른 면에서 지역 관습을 따르

면서도, 동시에 그들만의 독특하고도 놀라운 시민의식을 보여

준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 살지만 나그네처럼 살아가며, 시민으

로서 모든 일에 참여하면서도 외국인으로서 모든 것을 견딘다.

모든 외국이 그들의 조국이고, 모든 조국이 그들의 외국이다. 그

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만 자녀를 버리지 않

으며, 음식은 나누지만 아내는 나누지 않는다. 그들은 “육신 안

에” 있지만 “육신대로” 살지 않는다. 그들은 땅에 살지만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들은 정해진 법을 준수하지만, 사실 그

들의 사생활에서는 그 법을 초월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다. 그들은 이름 없는 존재들

이지만 정죄를 받고,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난다. 그들은 가

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며,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모

든 것에 풍족하다. 그들은 모욕을 당하지만 그 모욕 속에서 영광

을 얻으며, 비방을 받지만 무죄를 입증받는다. 그들은 저주를 받

지만 축복하며, 모욕을 당하지만 존경을 표한다. 그들이 선을 행

하면 악인처럼 벌을 받고, 벌을 받을 때는 마치 살아난 것처럼 기 뻐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외국인처럼 공격받고 그리스인들에게는

박해를 받지만,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은 그들의 적대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60)

한마디로, 그리스도인들과 세상의 관계는 영혼과 육체의 관계와 같다. 영혼이 몸의 모든 지체에 흩어져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전

60) Diogn. 5.1–17.

세계 도시에 흩어져 있다. 영혼이 몸 안에 거하지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보이는 몸 안에 갇혀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보이는 세상 안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들의 신앙은 보이지 않

는 것으로 남아 있다. 육체는 영혼이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

는데도 영혼을 미워하고 공격한다. 육체는 자신의 쾌락을 누리는 것

을 방해받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상도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쾌락

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자신을 미워하는 육체와 그 지체들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영혼은 몸 안에 갇혀 있지만 몸을 하나로 묶어 준다. 마찬가지로 그

리스도인들은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세상에 갇혀 있지만, 사실 그들은 세상을 하나로 묶어 준다. 불멸의 영혼은 필멸의 집에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썩어 없어질 것들 가운데 나그네

처럼 살면서 하늘의 영원한 것을 기다린다. 영혼은 음식과 음료에

대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 오히려 더 나아진다. 그러므로 그

리스도인들은 날마다 고난을 받을수록 더욱 강해진다. 이것이 하나

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중요한 위치이며, 그들이 이 위치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61)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은 단 몇 줄로, 이 주제에 대한 많은

기존 저서보다 더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문화 참여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성경적 용어와 개념이 거의 모든 문장에 스며들어, 이교도

청중에게 세상 속 교회의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이 서신은 교

회의 독특성과 세상 속 교회 삶의 중요성을 담대하게 제시한다.

먼저 저자가 교회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분명하고 확신에 차게 이

61) Diogn. 6.1–10.

해하는지 생각해 보라. 위 발췌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교회가

신실하게 사명을 수행하고 있으며 세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섭리로 세상에 뿌리내린 신성한 사명

을 위해 특별히 임명되었으며, 하나님 백성은 “각자의 몫이 주어진

곳” 어디에서든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신실하게 임명되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들은 “나라, 언어, 관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으며, 알려진 모든 지리적 지역에 퍼져 있다. 교회의 본질과 일치

는 “보이지 않는” 것이며, 특정 문화의 외적인 가시적 표징으로 드러

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의 연합과 교제를 통해 식별된다. 하나님

백성은 세상에 사로잡히고 박해받지만, 역설적으로 실제로는 “세상

을 붙들고 있는” 존재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교회를 단순한 자발

적 조직이나 사회적 모임으로 보지 않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이루어지는 중심지로 여겼다.

저자는 또한 교회의 두 가지 특징, 즉 교리와 도덕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인간적인 교리도 옹호하지 않는다”라

고 주장하며, 그들의 가르침과 믿음은 신적인 기원을 지닌다고 말 한다. 이런 가르침과 믿음은 그리스-로마 철학자나 수사학자와 같은 “천재적인 인간의 생각과 숙고를 통해 발견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전해 주셨고, 그 후 교회에 전해졌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윤리는 인류 번영을 위한 최선의 길을

제시한다. 그들은 성 윤리, 영아 살해, 부와 가난, 권력과 응징, 시민 권, 궁극적으로 사랑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영

적인 삶은 “육신으로 살지만 육신을 따라 살지는 않는다”( 롬 8:9에 나

오는 바울의 말을 암시한다 ) 는 긴장감으로 특징된다. 그들의 거룩함은 비

록 그들 자신이 배척당할지라도 시민법을 초월한다. 한마디로 그들

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은 참된 기독교 신앙과 실천이 무엇

이며, 그 실천이 정치 및 공공 영역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형성했는

지 명확히 정의하기 전에 문화 참여를 위한 올바른 방법이나 선택지

를 찾는 데 관심이 없다. 기독교의 문화 참여는 정체성과 사명에 대

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회 안에서 시작되어야 했다. 교회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속 활동의 중심이며,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

시는 수단이다. 교회는 세상의 영혼이다. 몸과는 구별되지만,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 비유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거나 서신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몸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

할 수 있다. 기독교를 거부하고 박해하고 근절하려는 적대적인 제국

안에 있던 저자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이미지는 인류학에 대한 교리

적 설명이라기보다는 논쟁적이고 예시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기초적인 작업과 함께, 이 서신은 교회의 사명이

갖는 정치적·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은 교회

의 암묵적인 교리와 함께 정치 신학 및 공공 신학을 기본적으로 요

약해 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신학은 그들이 “자신들의 시

민권의 놀랍고도 독특한 성격을 보여 주는 방식”에서 분명히 드러

난다. 그들에게 “모든 외국은 그들의 조국이며, 모든 조국은 외국”이

었다. 그들은 거주하는 나라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왕으

로 모시고 정체성을 확립한 외국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시

민권을 포기하거나 부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 나라

에 살면서” “시민으로서 모든 일에 참여했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공동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었다. 그들은 지상의 시

민권과 천상의 시민권을 혼동하거나 세상을 거부하고 고립된 삶을

살지 않았으며, 도시의 안녕을 추구했다. 초기 교회는 특정한 “기독

교 국가”를 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과 함께 정치 권위를 하나님

이 세우신 것이라 받아들이고 “정해진 법에 순종했다.” 그러나 이런

시민권은 기독교 교리와 실천에 대한 헌신 및 모든 지상의 정치 통

치자들이 임시적이고 일시적이라는 이해로써 제한되었다.

이 서신은 정치 신학을 넘어, 그리스도인들이 “나라, 언어, 관습으

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더 폭넓은 공공 신

학( public theology ) 을 제시한다. 거의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다

른 모든 사람과 같았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기독교 방언, 기독교 복

장, 기독교 직업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사회적 영역을 만들어

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시민처럼 모든 것에 참여”하

고 “외국인처럼 모든 것을 용인”했다. 초기 교회는 참여( metechousi )

와 용인( hypomenousin ) 사이의 이런 긴장을 통해 사회 참여와 문화

적 성화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정립했다. 서신에

따르면 그들은 같은 집에 살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일하고, 먹고

마시며, 일반적으로 동료 시민과 함께 삶의 좋은 것들을 누린다. 그

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공적인 삶은 제한적이었다. 그 문화 안에 살면

서도 그들은 “그 문화의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 제약을 받았기” 때문

이다. 그들은 이방인으로서 이교도 문화와 부도덕한 관습을 견뎌야

했다. 그들이 거룩함을 강조한 것은 그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 안에 살면서도 특별한 훈련을 통해 그 문화를

초월하려는 방식이었다. 이 서신의 상당 부분은 박해와 그리스도인

들이 어떻게 미움받고, 멸시받고, 그들의 완고함 때문에 배척당했는

지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은 “그들의 적대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조차 없었다.”

마지막으로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의 저자는 기독교 이야 기에는 궁극적인 목표, 즉 문화적 참여에 대한 모든 논의를 관통하

는 최종 목적이 있음을 이해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은 썩어 없어 질

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고난을 받을수록 더욱

많아진다”라고 했다. 이교주의와의 투쟁과 사회의 소외 속에서도 그

들은 황제와 제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겠지만, 하나님 백성은 아들

의 재림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이야기의 끝은 박해와 고난과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

도께서 영광중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었다. 신약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강 조한다. 그리스도께서 지금 통치하시고,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서신은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정치 및 공

공 영역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방식을 모두 다루지는 않는다. 이 서

신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제공되는 풍성한 만찬을 위한 전채

요리와 같다.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교리 교육을 통해 문화

참여를 준비하고, 모인 군중, 시민 지도자, 지식인 앞에서 신앙을 변

호하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섬기며 사회에서 신앙을 증언

하는 등 다양한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이런 문화 참여의 형태들은

점점 더 초기 교회가 이교도 세계에 대응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문화적 성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은 모든 문

화적 맥락 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하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라는 부르

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후퇴하거나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 과 신학적·도덕적 신념에 굳건히 서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

리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고대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통찰력을 주지만, 과 거와 현재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고대 로

마에 사는 것이 아니라 민주 공화국과 현대 경제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의료 및 기술 분야

의 모든 발전된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런 명백한 차이점 외에도, 고

대와 현대 세계 사이의 더욱더 근본적이고 영향력 있는 차이점들이

우리의 문화적 성화를 위한 노력의 효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현대 교회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는 과거가 있고, 그 과거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기독교 시대

에 교회는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그 영향력을 항상 올바르게

사용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손에 의해

자행된 비극적인 학대 사례는 적지 않다. 우리는 과거에 저지른 죄

를 외면할 수 없으며, 죄가 드러날 때 정직해야 한다. 동시에, 이런 오점투성이의 과거가 전부는 아니다. 이런 만행들이 교회가 하나님

의 구원의 중심지라는 사실이나, 교회의 문화적 참여 방식과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앞으로 이 부

분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든, 초기

교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

인의 삶의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독특한 신학적 신념을 굳게

지켜야 한다.

둘째, 오늘날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시대의 상실에 대한

슬픔을 서로 나누도록 도와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

상은 빠르게 변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속화의 물결이 하룻밤 사

이에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이들이

소중히 여겼던 기관과 단체들이 변모해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생 각한다. 예를 들어, 『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스

티븐 불리반트의 최근 저서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기독교 세계의 상

실을 포착하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는지 설명한다.62)

단기적으로 우리는 이런 상실을 인정하고 애도하며 기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부닥친 목회자, 사역자, 평신도 지도자들은 기독교 세계 의 상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배워야 한다. 이런 상실을 슬퍼하

62) Bullivant, Nonverts

는 동시에, 기독교 이후 문화는 기독교 이전 문화와는 달리 기독교

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인식해야 한다. 서구 교회는 과거 또

는 세계 교회 안에서 기독교가 이룩한 긍정적인 성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63) 서구 교회가 훌륭한 학문 기관, 중요한 사회 서비스, 안정

적인 정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우리가 이

런 제도들의 본질을 항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는 초기 교

회가 결코 누리지 못했던 방식으로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교주의의 부활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며, 기독교 세계의 종말은 또한 새로운 기회를 준다. 어쨌든 서

구 교회는 앞으로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그

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라는 고귀한 소명의 기쁨에서 물러설 때가

아니다.

셋째이자 마지막으로, 여러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고대와 현대의

정치 구조 및 사회 규범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초기 교회는

문화의 변두리에서 활동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정치 및 사회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자유와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우

리는 문화에 긍정적인 이바지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점이 있지

만, 이를 위해서는 고대 문화적 성화의 지혜를 창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목적을 위한 첫 시도이며, 기독교적 문화 참여에

대한 논의를 더욱 발전시키려 한다. 우리가 처한 문화적 배경과 이

교도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따르는 좌절감 때문에 낙심할 때면, 멀

리 떨어진 오지로 파송될 선교사들과 함께 훈련받던 순간들이 떠오

른다. 그들이 앞으로 닥칠 심각한 어려움을 알면서도 기뻐하는 모습

에 늘 감탄하곤 한다. 주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이 시대

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으며, 우리의 모든 삶을 걸고 문화적 성화의

63) Jenkins, Next Christendom

도전을 받아들이라는 부르심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각 장 요약

이 책은 초기 기독교의 문화 참여를 문화적 성화의 자세로 해석 한다. 즉, 사도 시대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교회

는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며 성화를 추구하는

느리고 꾸준한 과정을 통해 문화를 변화시켰다. 이런 공동의 노력은

로마 문화와 구별되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함양하고, 정치적·사회적

영역 모두에서 독특한 기독교적 활동을 펼칠 수 있게 세상에 뿌리내

리는 것을 포함했다. 복음의 근본 원리와 교리 및 도덕에 대한 엄격 한 교리 교육에 집중하면서, 교회는 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그 존재

를 통해 문화를 변화시키려 했다.

1장에서는 우선 세상과 뚜렷한 신학적·도덕적 대조를 이루는 공

동체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문화 참여에 앞서, 문화 참여의 기반으로서 정기적

인 교리 교육과 예배를 통해 이런 정체성을 형성했다. 초기 그리스

도인들은 유대인이나 로마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끌었던 많은 전제

를 해체하고, 꾸준한 제자 훈련을 통해 성경에서 비롯된 신학적·도

덕적 전제들을 구축해 새로운 기독교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야 했다.

초기 교회는 자발적인 결사가 즉각적인 사회적 혜택을 가져다주는

시민 클럽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 가르침의 믿음과 실천에 따라 형성되고 또 형성되어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문화 참여에 대한

현대의 많은 논의가 바로 이 지점에서 부족함을 보인다. 많은 논

의가 건강한 상호작용에 필요한 신학적·도덕적 토대를 마련하는 정

체성 형성의 깊은 뿌리를 간과한 채 방법론과 행동 전략에서 시작 한다.

그런 다음 이 책은 내부에서 외부로 시선을 돌려 문화 참여의 정

치적·공공적 차원을 고찰한다. 2장에서는 교회가 어떻게 당시의 문

화적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정치 신학을 발전시켰는지 설명한다.

적대적인 제국 안에 살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약자 처지에서 정

치권력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 세계

를 다스리시는 초월적이고 섭리적인 분이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정

부를 세우셨다고 가르쳤다. 교회는 문화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받

아들이고, 지상의 시민으로서 그 안에서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살

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정치적 행동이 자

신들을 구원해 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 승리에 대한

희망이 거의 없더라도 정치 참여의 필요성을 이해했다. 오늘날 교회

는 긍정적인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음에도, 이

런 성경적 틀에서 배울 점이 많다.

교회는 정치 신학 외에도 이웃과의 상호작용을 성찰하며 풍부한

공공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런 교류에는 지적인 반응과 사회적인 반

응, 즉 정신과 육체가 모두 포함되었다. 3장에서는 이중 첫 번째, 즉

교회가 당시의 지적 분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고 당대의 주요 사상

과 사상가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논의한다. 여기에는 시민 당국뿐

아니라 공공 지식인들과의 교류도 포함되었다. 교회의 증언은 교회

자체의 공공 지식인들의 출현을 보여 주는데, 이들은 대부분 목회자

나 교회 지도자들이었으며, 당대의 사고방식을 활용해 자신만의 반

응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지적 참여

속에서 행동주의와 변증은 균형을 이루었다.

4장에서는 교회의 공적 증거의 사회적 측면을 살펴본다. 교회는

여기서도 문화적 분별력을 통해 행동주의와 거룩함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이는 그들의 전반적인 도덕적 비전에 부합하는

공공 봉사, 일상적인 노동 및 사회적 행동을 포함했다. 그리스도인들

은 이웃 가운데서 덕스러운 삶을 살고, 공적 증거와 봉사를 통해 거

룩함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런 대화는 오늘날

신자들이 우리 시대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공적 신학과 증거에

대해 신중하게 성찰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5장에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든 행동과 성찰에 스며든 하

나님 나라가 임하리라는 소망을 강조한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고

한 확신은 그들의 삶뿐 아니라 논쟁에도 울려 퍼졌다. 교회는 그리 스도의 재림에 대한 변함없는 소망 아래 예배하고, 살고, 공부하고, 일하고, 봉사하고, 안식했다. 소망은 좋은 것이지만, 정치적·문화적 격변의 시대에는 너무 자주 잃어버리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문화

참여에서 우리가 다른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해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변함없는 소망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스며들어야 함을 배워 야 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 모든 흐름을 하나로 엮어 현대 교회가 고대 교회의 문화적 성화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성찰한다. 고

대 교회의 사례는 우리가 새로운 포스트모던 이교 세계를 헤쳐 나가

는 더 나은 길을 모색하기 시작할 때 신자들에게 도전과 격려를 줄 것이다. 고대 교회가 문화적 성화를 완벽하게 해낸 것은 아니다. 오

히려 정반대다. C. S. 루이스가 상기시켜 주듯이, 고대 교회도 교회 역사의 다른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만큼이나 많은 실수를 저

질렀다.” 그러나 그는 덧붙여 말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실수를 저

지르지 않았으며, “우리가 이미 저지르고 있는 오류를 그들이 부추 기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 자신의 오류는 이제 명백하고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지도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어느 한쪽이 무오류라서가 아니라, 같은 방

향으로 잘못 갈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64) 고대인들의 지혜가 오

늘날 교회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문화적 폭풍에 맞설 수 있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에

서 말하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중

요한 위치”를 깨달아야 하며, 그 위치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64) C. S. Lewis, introduction to On the Incarnation: Saint Athanasius, Popular Patristics Series (Yonkers: St. Vladimir’s Seminary Press, 2012), 13.

1장 정체성

세례 고백

3세기경 소아시아 어딘가에서 한 무리의 기독교 신자가 부활절

전날인 성 토요일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은 새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날이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작은

모임에는 기대감과 간절함이 가득했다. 예비 신자들, 즉 교회의 일원

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약 3년 동안 제자 훈련 과정을 거치며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교회와 함께 예배를 드려 왔다.1)

그들 모두는 금요일부터 금식해 왔다. 교회 안의 많은 사람도 그들 과 함께 금식했으므로, 이제 그들은 모두 음식과 세례를 간절히 원 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도와 교제가 이어졌고, 기대감은 점점 커져

1) Hippolytus, Trad.ap. 17. Hippolytus, On the Apostolic Tradition의 번역, 개관 및 주 석은 Alistair Stewart-Sykes (Crestwood, NY: St. Vladimir’s Seminary Press, 2001)의 것이다.

갔다. 새벽녘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밤의 그림자를 뚫고 해가 돋기

시작하자, 공동체 사람들은 시원하고 흐르는 물이 있는 특별한 장소

로 이동했다.2) 흐르는 물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가 씻

겨 나가는 방식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하기 위해 사람들이 겉옷을 벗는 동안, 한 집사가 세례를 받으

려는 각 예비 신자를 맞이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갔고, 차가운 물

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자 약간 몸을 떨었다.

마침내 그 순간이 찾아왔다. 자연 세계에 둘러싸여 우상과 우상숭

배로 가득 찬 이교도 제국 한가운데 살던 첫 번째 예비 신자가 부

제( deacon ) 와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다. 집사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

며 물었다.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이 질문

은 신앙의 규칙의 첫 번째 요점이자, 교회의 기본 고백이며, 기독교

와 이교를 가르는 신학적 경계선이었다. 예비 신자는 확신에 차서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제는 그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물이 그에게 쏟아졌고 그는 다시 일어

섰다.

부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예비 신자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

습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한마디 한마디가 이교도 세계에 울

려 퍼지며, 한 분 아버지께 한 분 아들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더 했다. 이런 신학적 주장은 제국의 근본적인 종교적 신념에 도전했다.

예비 신자는 다시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부제는 다시 그 새 신자

를 물속으로 밀어넣었다.

2) Hippolytus, Trad.ap. 21.

마침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질문이 이어졌다. 부제는 예비 신자에 게 “당신은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육체의 부활을 믿습니까?”라고 물 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예비 신자는 “믿습니다”라고 대답 했다. 그리고 다시 세례를 받았다. 공동체는 그 주위에 서서 확인과

동의를 표하며, 한 사람 한 사람씩 새 신자를 교회 가족의 일원으로

맞이했다.

세례 후, 새 신자들은 몸을 말리고 옷을 입었다. 한 장로가 그들의

이마에 기름을 부드럽게 바르며,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녀이자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임을 상기해 주었다. 예식이 끝

나자 모두 교회에 모여 성찬 예배를 드렸다. 새 신자들은 처음으로

온 교회와 함께 성찬에 참여했다. 때가 되자 그들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음식과 음료가 그들의 입술에

닿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복음과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찾을 수 있

는 세상의 선함을 다시금 일깨웠다. 이제부터 예비 신자들은 성령으

로 인치심을 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어, 새로운 정체성에 따

른 모든 복을 누릴 수 있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초기 기독교 문헌인 『사도 전통에 대하여』( On the Apostolic Tradition )

에 나오는 세례에 대한 이 설명은 초기 교회가 문화의 변두리에서

활동하던 당시 세상에서 세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 준다. 세

례 의식은 부차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

의 예배와 정체성에 근본적인 것이었다. 세례는 이교도적 종교적 관

점에서 새로운 현실 이해로 넘어가는 것을 상징했다. 또한 고전 문 화의 토대 자체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 즉 “첫 번째 원칙 의 근본적인 수정”을 수반했다.3) 이런 새로운 정체성을 바탕으로 교

3) Charles Norris Cochrane, Christianity and Classical Culture: A Study of Thought and Action from Augustus to Augustin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7), vi.

회는 고대 로마에서 종교와 국가 간의 공생 관계를 서서히 불안정하

게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적 성화와 그리스도인 정체성

초기 교회는 신자들의 공적 생활을 뒷받침할 기독교 세계가 없었

으므로, 특히 처음 몇 세기 동안의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와 같은 전

례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교 문화의 소

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런

이유로 교리 교육과 전례는 문화적 성화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교리 교육과 전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입구를 이루는 두

개의 문과 같았다. 새 신자들이 이 문을 통과할 때, 그들은 그리스도

교 교리와 덕성에 헌신하는 신실한 공동체의 환영을 받았다.

우리에게도 문화적 성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교리 교

육( 또는 제자 훈련 ) 과 전례( 또는 예배 ) 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 교리

와 도덕의 기본 윤곽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이교 세계에

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문

화 참여에 대한 많은 기존 문헌은 형성( formation ) 보다는 방법론에 대 한 논의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종종 문화에 어떻게 대응해

야 하는지에 관심을 둔다. 그런 대응의 출발점이 되는 근본적인 토

대 자체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방법은 필수적이지만, 올바른 기독교적 전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리저리 휘둘

리다 결국 무력해질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교리 교육과 전례라는 두 가지 핵심

적인 실천에서 비롯되었다. 교리 교육은 새 신자들을 교회의 교리와

도덕의 틀 안에서 형성하기 위한 오랜 기간의 시험 과정이었다. 이

런 정기적이고 장기간의 제자 훈련은 올바른 가르침이 전달되게 했

고, 올바른 예배 순서는 이런 신념이 유지되게 했다. 교회는 성도들

을 독특한 신학적 신념과 고유한 리듬을 가진 다른 예배 생활로 이

끌었고, 이는 국가의 활동이 종교와 항상 뒤섞여 있던 주변 세상과

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삶을 형성했다. 교리 교육과 전례는 마치 두 가닥의 실처럼 함께 엮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함양하고 새로운

개종자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준비를 갖추게 했다.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종교 공동체에 대한 분석에

서 종교의 세 가지 특징, 즉 신념, 의례( 또는 상징적 행위 ), 윤리( 에토

스 ) 가 어떻게 항상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 확증하는지를 설명한다. 기어츠는 “종교적 신념과 의례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 확증한다. 윤리는 세계관이 묘사하는 실제 상황에 내포된 삶의 방식

을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지적으로 타당성을 갖게 되고, 세계관은 그런 삶의 방식이 진정성 있게 표현되는 실제 상황의 이미

지로 제시됨으로써 감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된다”라고 썼다. 기

어츠에 따르면, 이는 “종교는 결코 단순히 형이상학이 아니다. 모든

민족에게 있어 예배의 형식, 수단, 대상은 깊은 도덕적 진지함의 아

우라로 가득 차 있다……종교는 또한 단순히 윤리학도 아니다. 그

도덕적 활력의 원천은 현실의 근본적인 본질을 표현하는 충실함에

있다고 여겨진다.”4) 따라서 형이상학, 윤리학 및 의례는 상호 작용

적인 방식으로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초기 교회에 어

떻게 적용되었는지에 주목하며 로버트 윌켄은 다음과 같이 썼다.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의례적이며( 세례식에서 물로 엄숙하게 씻음을 통해

4) Clifford Geertz, “Ethos, World-View, and the Analysis of Sacred Symbols,” Antioch Review 17 (1957): 622–623.

교회에 입교한다 ), 타협 없는 도덕적 성격을 띠고(‘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또한 거리낌 없

이 지적인 성격을 띤다(‘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설명할 준비를 하라’는

베드로전서의 말씀처럼 ).”5)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세례 이야기에서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볼 수 있다. 예비 신자들과 신앙 공

동체는 회심과 신앙고백이라는 공통된 패턴으로 하나 되어, 그 시대

사회에서 뚜렷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적 기독교가 쇠퇴하는

이 시대에, 신앙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증언할 제자도와 정기적인 공

동 예배라는 기본적인 사명을 되살려야 할 때임은 분명하다. 세속적

인 세상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그

들이 따르는 특정한 교회론적 구조를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초기 교회의 개종

초기 교회의 문화적 성화에 대한 논의는 처음부터, 즉 개종에서부

터 시작해야 한다. 기독교가 외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

는 무엇일까? 그들이 교회에 합류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루

이스 람보는 그의 저서 『종교적 개종 이해』에서 개종은 항상 “개인

적·문화적·사회적·종교적 차원을 포함하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즉, 개종은 다양한 환경적 요인을 포함한 일

곱 “단계”, 즉 맥락, 위기, 탐구, 만남, 상호작용, 헌신 및 결과의 “단

계”를 거쳐 진행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인 “맥락”에서는 “관계

의 네트워크와 교육, 훈련, 제도적 구조의 누적 효과가 모두 잠재적

5) Robert Louis Wilken, The Spirit of Early Christian Thought: Seeking the Face of Go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3), x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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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문화적 성화 by 부흥과개혁사 - Iss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