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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자료집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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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2015 2015.8.13. (목) 09:30 - 18:00

후원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

주최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2015 2015.8.13. (목) 09:30 - 18:00

NO WARS NO NUKES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


차례 005

프로그램

오프닝 세션

010

개회사 이부영

012

환영사 박원순

014

남경필

016

이윤배

018

축사 이희호

019

2015 동아시아 평화선언

기조연설

028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축으로 _하토야마 유키오

033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만들자 _리 자오싱

037

한반도 평화와 통일 _너지 데바

043

평화, 핵 그리고 생태 _강우일

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 : 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048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통일–동아시아 평화에서의 시사점 _문정인

057

일본 평화헌법, 세계 평화의 보루 _다카수 나오미

063

독일 경험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주는 교훈 _요하네스 플루크

069

일본 시민운동 전개와 동아시아의 평화 _후쿠야마 신고

074

카인, 아벨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 _옌렌커

세션 2.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 : 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080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_서주석

087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_스콧 스나이더

092

동아시아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지속가능 에너지를 향해 _이이다 테츠나리

105

동아시아 평화와 생태를 위한 서울시의 역할 _지영선

111

2015 동아시아 컨센서스 _정현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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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사 소개


프

로

그

램


6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프로그램

09:30–10:00

등록 및 접수

10:00–11:00

개회선언 이부영—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조직위원장

환영사 박원순—서울시장 남경필—경기도지사 이윤배—흥사단 이사장

축사 이희호—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동아시아 평화선언 발표 이홍구—전 국무총리 하토야마 유키오—일본 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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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11:00–12:00

기조연설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축으로 하토야마 유키오—일본 전 총리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만들자 리 자오싱—중국 전 외교부장 •한반도 평화와 통일 너지 데바—유럽의회 한반도 관계대표단 회장 •평화, 핵 그리고 생태 강우일—천주교 제주교구장

12:00–14:00

점심식사

Session I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 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14:00–15:30

사회 최상용—전 주일대사, 고려대 명예교수

발표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통일–동아시아 평화에서의 시사점 문정인—연세대 교수 •일본 평화헌법, 세계 평화의 보루 다카수 나오미—일본 평화헌법 노벨평화상 추천운동가 •독일 경험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주는 교훈 요하네스 플루크—전 독일연방의회 의원 •일본 시민운동 전개와 동아시아의 평화 후쿠야마 신고—일본 평화·인권·환경포럼 대표

패널 토론 옌렌커—작가, 중국 인민대 교수 이승환—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8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15:30–15:50

휴식

Session II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 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15:50–17:30

사회 이삼열—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역사 NGO 포럼 대표, 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발표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서주석—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스콧 스나이더—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동아시아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지속가능 에너지를 향해 이이다 테츠나리—일본 환경에너지정책 연구소 소장 •동아시아 평화와 생태를 위한 서울시의 역할 지영선—녹색서울시민위원회 공동위원장

패널 토론 하토리 요이치—일본 전 사민당 의원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17:30–17:50

2015 동아시아 컨센서스 발표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정현백—참여연대 공동대표, 성균관대 교수

17:50–18:00

폐회사


오

프

닝

세

션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10

개회사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동아시아, 한국에 오신 것을 환 영합니다. 한 여름 휴가철인데도 불구하고 긴장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아시아 위기의 진원지 분단 한반 도를 찾아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로 두각을 나타냈던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선언이라는 두 개 의 절벽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상공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대결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 절벽 속에 갇혀 한국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는 절벽에 갇힌 한국이 밖을 향해 내지르는 절박한 메시지입니다.

이번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반세기 넘게 적대와 갈등을 이어온 미국과 쿠바, 두 나 라가 관계정상화를 성사시키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또한 어려운 고비를 넘어 미국과 이란이 유엔과 함께 핵 협 상의 돌파구를 열고 머지않아 35년의 단절을 극복하고 관계정상화로 나아갈 것이 예상됩니다.

한반도에서도 다시 6자회담이 열려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 협상과 북핵문제 해결이 동시에 진행되는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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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세션

오기를 고대합니다. 아울러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는 협상도 한국전쟁 4개 당사국 사이에 진행되기를 기 대합니다.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시대착오적 자세가 고쳐지지 않는 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비롯한 군사대국화 도, 미일 군사동맹 강화도 일본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함께 지역 내 갈등 대립을 조절하고 협력으로 이끌 동아시아 평화협력 체제를 구상하는 데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2015 동 아시아평화국제회의가 우리의 위와 같은 전망과 소망을 제기하는 논의의 마당이 되기를 바라면서 회의 개막을 선언합니다.

2015년 8월 13일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조직위원장 이부영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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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사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에 함께해 주신 이홍구 전 국무총리님,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전 총리님, 이부영 조직위원장님, 그리고 존경하는 이희호 여사님과 세계 각국의 귀빈 여러분, 국내 전문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동안 회의 준비를 위해 애쓰신 이윤배 흥사단 이사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동아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동아시아는 갈등과 반목, 불안과 긴장의 시대를 헤치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만들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영토갈등, 민족주의, 군비경쟁 등 여러 갈등의 벽을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쳐왔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사의 벽은 아직도 넘지 못했고, 국가 간 협력도 상생의 공동체로까지 발전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뜻깊은 해를 맞아 동아시아 전역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상상력과 기획, 새 로운 전환과 혁신으로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국가 단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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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세션

초월한 시민사회, NGO, 종교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 간의 협력만으로는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열어가기 어렵습니다. 국가에서 도시로, 국민에서 시민으 로, 정치에서 경제·사회·문화로 새로운 상생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국가 간 국제외교가 울타리가 되고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가 도시정책 공공외교로 앞장을 서고 민족운동 단체 등 시민사회가 함께 한다면 우리는 새 로운 평화의 시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동아시아 평화에 각별한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가 바탕이 되어야 동아시아의 평 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이 도시외교로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힘을 더하겠습니 다. 로컬 투 로컬(local to local) 피플 투 피플(people to people)의 서울시는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평화를 위한 지 속가능한 도시 교류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인 베이징-서울-도쿄가 함께 하는 베세토 협약 을 부활시켜 ‘새로운 베세토 트라이앵글’ 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실질적 도시외교를 통해 서울을 평화의 도시, 관용의 도시, 다양성의 도시로 채우고,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넘어 인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도시로 우뚝 설 것입니다.

처음 열리는 오늘의 이 회의가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힘들이 함께 모여 동아시아 상생 공동체 시대 를 열어가는 출발점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늘 함께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2015년 8월 13일 서울시장 박원순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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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사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광복 70주년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을 맞아 경기도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교류와 화합의 장이 될 뜻깊은 회의를 공 동 주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가혹한 여건을 이겨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한반도 평화입니다.

한·일 간의 현안은 동아시아 평화협력의 지향점 속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양국 국민들은 관계 개선을 통해 동 아시아 평화협력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등 식민지 지 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는 8월 14일 발표될 아베 담화를 통해 역사 앞 에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이와 함께 분단 70년을 극복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구축해야 합니 다. 20년 이상 지속된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번영에 최대 위협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결코 포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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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세션

수 없는 문제입니다.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안정과 북한의 고립 탈피를 위해서라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과 단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번 평화국제회의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의 역사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8월 13일 경기도지사 남경필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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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사

동아시아 평화를 염원하며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불행한 과거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고, 희망을 일구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20세기 초는 폭력과 학살로 이성을 잃은 야만의 시기였습니다. 우리 인류는 역사상 가장 비참한 시대를 경험 했습니다. 올해는 야만의 시대를 마감한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많은 희 생 위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을 종식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현실을 보 면 기쁨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앞섭니다. 새로운 갈등을 잉태한 냉전이 한반도를 휩쓸었고, 결국 전쟁과 분단이라 는 뼈아픈 비극을 낳았습니다. 일본은 또다시 군국주의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패권경쟁은 점차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기차가 질주하듯이 동북아시아는 야만의 시대로 역주행하 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은 한국은 물론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의 희생을 초래하고 분단을 낳았습니다. 분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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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세션

새로운 고통을 초래했으며, 끊임없는 군사적 긴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 다. 우리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기를 희망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동아시아 평화의 실마리이고, 세 계 평화의 출발점임을 이번 국제회의와 평화선언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리기를 바랍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9조 정신을 준수해왔습니다. 이는 일본이 평화질 서에 안착하는 기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베 정권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위험한 방향으로 돌렸습니 다. 안보법제를 중의원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것입니다. 일본이 다시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겠다고 나선 것은 매우 심각한 사태입니다. 우리는 동아시아를 전쟁의 화염 속에 몰아넣을 아베 정권의 비이성적인 폭주를 규탄하 고, 안보법안 법제화의 즉각적인 폐기를 촉구해야 합니다.

동아시아는 다시 패권경쟁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동아시아에서 군비 증강과 군사적 위협은 정 당화될 수 없습니다. 특히 동북아는 인적 교류와 경제, 문화적 상호의존성이 증가하는 반면, 정치적·군사적 긴장 관계는 높아지는 ‘동북아 패러독스’에 갇혀있습니다. 이번 회의를 통해 동북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평화협력 방 안이 역사의 새로운 물결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기 모이신 여러분의 지혜와 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번 국제회의가 세계의 양심적 시 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강고한 연대를 만들어 내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1913년에 창립한 흥사단은 일본의 야만적인 식민 지배를 몸소 겪은 단체입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더 절실하게 정전 70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쟁과 폭력이 아닌 생명존중과 평화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동아시아의 상 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번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에 참석해 주신 분들과 이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도록 협력해 주 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15년 8월 13일 흥사단 이사장 이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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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축사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에 참석하신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를 비롯한 국내 외 참석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요즘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는 갈등과 긴장의 분위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의 이해가 충 돌하고 군비경쟁이 치열한 동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세안 +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지역공동체 형성을 강 조했고, 2001년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분야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각국의 저명한 민간 지식인들로 구성된 동 아시아 비전그룹을 창설했습니다.

이번 국제회의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서 이 지역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해 주시기를 기 대합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기초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김대중 평화센터도 여 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8월 13일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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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아 시 아

평 화 선 언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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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시아 평화선언

2015년은 전 세계가 독일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올해는 인류에게 끔찍한 재앙을 가져온 원자폭탄이 최초로 사용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동아시아는 지난 70년간 이어진 전쟁과 냉전, 그리고 탈냉전 이후의 격변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가장 극적인 진보와 발전을 성취해온 지역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지금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아 직 끝나지 않은 전쟁과 냉전, 그리고 새롭게 강화되는 군비경쟁이 그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북한의 핵문제는 정 전체제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킴과 동시에 역내 핵무기 및 재래식 군비경쟁을 가파르게 촉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 다. 더불어 20세기 초 이래 동아시아 침략전쟁의 주역이 되었던 패전국 일본이 과거에 대한 명확한 반성 없이 군 사대국으로 나서고 있어 동아시아의 오래된 갈등구조에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동아 시아 평화를 설계하는 근간이었던 일본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군사대국이 되는 것은 결코 환영받을 수 없다.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는 다양한 패권경쟁은 이 지역의 불행하고 복잡했던 과거사 의 상처를 다시 악화시키고 있다. 이들 민감한 갈등을 평화적이고 호혜적으로 해결할 신뢰할만한 역내 평화 메커 니즘이 미처 만들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군사적 수단과 민족주의적 정서에 호소하는 사태가 반복될 경우, 이 지역 을 공동번영의 터전이 아닌 새로운 패권경쟁의 전장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지난 세기 통제되지 않는 패권경쟁이 야기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동아시아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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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시아 평화선언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은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핵폭탄 투하, 비키니 섬 등에서의 핵실험, 그리고 후쿠시마 원 전사고에 이르기까지 핵 재앙에 의한 대규모 인도적 재앙을 직접적으로 경험해왔다. 특히, 지난 2011년의 동일 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가공할 핵 재난이 외부의 핵무기뿐만 아니라 이웃의 핵시설에 의해 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핵무기가 없는 세상, 핵 위협의 공포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동아시아인의 염원이며 또한 사명이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원자력 발전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적 에너지이므로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각국은 탈원전 사회를 지향하는 목표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는 세계 어느 다른 지역보다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조밀하게 교차하며 군비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어느 지역보다 핵무기와 핵사고가 야기할 수 있는 인도적·생태적 재 앙의 위협에 첨예하게 노출된 지역이기도 하다. 유럽이 전후 70년 동안 세계의 평화와 생태를 지키기 위한 전 지 구적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동아시아도 그 몫을 해야 할 차례이다. 이에 우리는 동아시아에 평 화를 정착시키고 이를 통해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일본 평화헌법 9조는 동아시아 평화의 근간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9조는 동아시아 평화를 떠받치는 주춧돌이며, 불행한 과거사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국제사회와 합의한 평화헌법을 지키고 모범적인 평화국가로 발전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본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여가 될 것이다. 일본의 지성인들은 오랜동안 평화헌법을 수호하 고자 노력해 왔다. 일본과 동아시아 시민사회 역시 평화헌법에 노벨평화상을 주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세계 여론은 이를 지지한다.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는 이들과 함께, 우리는 평화헌법 9조가 반드시 지켜져야 함을 천명 한다. 이 헌법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장 고결한 목표를 표현하고 있다. 핵과 생태의 위기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 하고 있는 오늘이 일본 평화헌법의 보편적 평화주의가 동아시아 나라들을 포함한 세계의 다른 나라들의 헌법에 도 반영되도록 국제적 평화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때이다.

한국전쟁을 끝내지 않고 동아시아 평화를 상상할 수 없다 한반도의 분단과 정전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과정과 냉전이 잉태한 불행한 결과물이다. 한반도의 불 안정한 정전상태는 한반도 주민들에게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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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분단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군비가 결집한 곳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사훈련이 매년 수행되는 곳으로서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되어왔다. 최근에는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한반도를 둘러싼 군비경쟁의 악순환이 야기하는 위험이 더욱 심각해졌다.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의 평화를 위해 이제 끝나야 한다. 미국, 중국, 남북한 등 4개 주요 교전 당사국은 휴전상태인 한국전쟁을 끝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협상을 즉각 개시해야 한다. 이미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미국과 쿠바의 선례가 미-북 관계 정상화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핵 안전’은 핵 없는 세계로 가는 지름길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고도화는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6자회담은 조속 히 재개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오랫동안 닫혀있는 대화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북한 측의 핵 개발 동기를 약화 시키고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비대칭적으로 우위에 선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 먼저 긴장완화의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특히 불안정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북미북일 관계의 정상화,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포괄적이고 대담하게 협상함으로 써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 남북한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 해야 한다. 먼저 미국이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보장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용이하게 하고 상호 군축을 진행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에 상응하여 북한과 남한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실현약속을 구체화해야 한다.

핵 재앙의 위협으로부터 궁극적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핵무기 외에도 ‘평화적 핵 이용’이 야기할 수 있는 위 험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대책과 대안이 필요하다. 일본, 중국과 한국의 연안에서 가동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원 자력발전소에 대한 공동안전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절박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한 나라 사이의 협력은 그 어느 분야보다도 절실하고 시급하다.

평화와 협력을 위해 시민사회와 여성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평화위협 요인들을 모두 정부들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각국의 의회와 시민 운동단체들은 여론을 형성하고 각국 정부들이 평화지향적인 정책을 수립하도록 적극 권고해나가야 한다. 국경 을 넘어서서 시민들 사이의 이해와 협력을 촉진하고,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와 정의를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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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시아 평화선언

하는 과제들에 연대하는 일이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토대이다. 특히 유엔 안보리 결의 1325호가 정 당하게 권고한 바와 같이 안보를 새롭게 정의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여성의 역할과 참여를 높이는 것의 중요 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새로운 동아시아를 향한 평화의 연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 평화의 연대가 ‘동아시아 평화국가 공동체’로 발 전하는 날까지 계속 행진해나가자.

2015년 8월 13일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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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서명자 명단 (총 98명) <가나다 순>

한국

박맹호—도서출판 민음사 그룹 대표

강대인—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

박인상—노사발전재단 이사장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박정자—연극인, 한국연극인 복지재단 이사장

강우일—주교, 천주교 제주교구장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강창일—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서주석—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고건—전 국무총리

설정—불교 조계종 수덕사 방장

고은—시인

신경림—시인

권영길—전 민주노총 위원장, 전 국회의원

신성범—새누리당 의원

김병익—문학평론가

신인령—전 이화여대 총장

김성훈—전 농림부장관

안재웅—목사, 전 YMCA 전국연맹 이사장

김영호—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염무웅—문학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김우창—문화비평가

원혜영—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원기—전 국회의장

유성엽—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자동—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이사장

윤여준—전 환경부 장관

김종철—전 연합뉴스 사장

이만섭—전 국회의장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이문열—소설가

김중배—전 MBC 사장

이부영—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조직위원회 위원장

김진현—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이삼열—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역사 NGO 포럼 대표

김철봉—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산총회장

이선종—전 원불교 서울교구장

김철수—서울대 명예교수

이성림—전 한국예술인총연합회장

김형오—전 국회의장

이세중—환경재단 이사장

김희중—대주교,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어령—초대 문화부 장관

도법—불교 조계종 화쟁위원장

이용훈—전 대법원장

문정인—연세대 교수

이윤배—흥사단 이사장

박관용—전 국회의장

이종걸—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박남수—천도교 교령

이종찬—우당장학회 이사장,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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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시아 평화선언

이주영—새누리당 의원, 전 해양수산부 장관

요시다 다다모토—사회민주당 대표

이창복—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이다 테츠나리—환경에너지정책 연구소장

이춘희—국악인, 중요무형문화재 57호

하토리 요이치—전 사민당 의원

이태진—서울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하토야마 유키오—전 내각총리

이홍구—전 국무총리

후쿠야마 신고—평화·인권·환경포럼 대표

이효재—이화여대 명예교수 이희자—태평양전쟁 피해보상 추진협의회 상임대표

중국

이희호—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리 자오싱—전 외교부장

임재경—한겨레신문 부사장

옌 렌커—작가, 중국 인민대 교수

임채정—전 국회의장 장회익—서울대 명예교수

미국

정병국—새누리당 의원

글로리아 스타이넘—여성평화운동가

정성헌—DMZ 평화생명동산 이사장

린다 루이스—친우봉사회 중국/북한 지부장

정운찬—전 국무총리

스콧 스나이더—외교협회 선임연구원

정현백—참여연대 공동대표

스테판 스미스—친우봉사회

조정래—소설가

월터 먼데일—전 부통령

진선미—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행우—미주동포전국협회 명예회장

최불암—연기인

프랭크 자누치—맨스필드재단 대표

최상용—전 주일대사, 고려대 명예교수 한승헌—전 감사원장

유럽

한양원—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너지 데바—유럽의회 한반도 관계대표단 회장,

황석영—소설가

영국 보수당 의원

황용대—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메어리드 맥과이어—노벨평화상 수상자 요하네스 플루크—전 독일연방의회 의원,

일본

전 한독 의원친선협회 부회장

곤도 쇼이치—민주당 중의원 의원, 입헌포럼 대표

에곤 바—통독 설계자

다카수 나오미—일본 평화헌법 노벨평화상 추천운동가 데루야 간토쿠—사민당, 중의원 의원

라이베리아

무라야마 도미이치—전 내각총리

리마 보위—노벨평화상 수상자

와다 하루키—도쿄대학 명예교수


기

조

연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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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축으로

하토야마 유키오—일본 전 총리

“한국은 일본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이웃으로, 우리 선조들은 귀국으로부터 갖가지 문물을 전수받아서 많은 것들 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밀접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동안,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난을 주 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깊은 슬픔을 표명하였으며, 이 마음은 지금도 변치 않았습니다.”

“일본 국민은 긴 세월 동안 이웃 나라 중국의 문화에 커다란 존경과 친근감을 느껴 왔습니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양국의 관계 도중, 일본이 중국 국민들에게 크나큰 고난을 주던 불행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저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만드는 사실입니다.”

상기 두 가지 발언은 현재 일왕이신 아키히토 일왕께서 각각 한국과 중국 국민들에게 솔직한 사죄의 마음을 전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깊은 반성을 바탕으로 전쟁을 포기하는 평화국가의 길을 걷게 된 것 과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일본 국민들에게 전후 70주년인 올해 벽두부터 ‘만주 사변부터 시작된 전쟁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 지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라는 생각을 밝히셨습니다. 일본이 다시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강한 위기감 에서 시작된 말이었습니다. 현재, 아베 정권 하에서 안보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헌법 학자들이 위헌이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함께 전쟁 에 참가하는 것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기 위한 법안 정비 입니다. 저는 이 법안 정비에 반대합니다. 일본은 평화헌법 하에서 절대로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 국가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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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른바 구 위안부로서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회복되기 힘든 상 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하며 반성의 뜻을 전한다.’라는 내용의 고노 담화가 추가적으로 발표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표현은 상처 입은 나라들의 국민들께서 ‘그만두어도 좋다.’라고 하시는 시기가 올 때까지 계 속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제2차 아베 정권 발족 시,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 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그리고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검토 작업이 행해졌습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배우고, 사죄와 반성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후 50년이 되던 해, ‘무라야마 담화’라는 이름으 로 발표되었으며, 이후 일본 정부는 이 담화를 계승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 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 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이런 마음의 표현은 상처 입은 나라들의 국민들께서 ‘그만두어도 좋다’라고 하시는 시기가 올 때까지 계속해 야만 합니다. 그러나 제2차 아베 정권 발족 시,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 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일본이 경기 침체로 자신감을 상실해가던 중, 편협한 전체주의가 등장하여 위와 같은 생각을 사죄외교로 치부 하면서 ‘침략전쟁이 아니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애국자라고 착각하고 있겠지만, 역으로 자신감이 없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애국심이란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지 않 으며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자국만큼 타국을 사랑하는 마음가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순식간에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전쟁이 세상에서 사 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핵억지론은 잘못된 것으로, 핵병기의 존재는 핵을 소유하지 않는 약소 국가들을 자위력 을 높일 수 있다는 유혹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신속한 핵 군비축소, 그리고 핵병기 폐기가 이루어져야만 하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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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및 아시아, 더 나아가 전 지구에서 핵무기가 사라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4일 전, 나가사키 평화기념식 전에서 피폭자 대표 다니구치 씨께서는 ‘전쟁으로 이어지는 안보법안은 피폭자를 비롯한 평화를 기원하는 수많 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룩해 온 핵무기 폐지를 위한 노력 및 바람에 크게 반하는 것으로, 용납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셔서 큰 박수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4년 반 전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킨 전례가 있습니다. 원자력은 그것을 평화적으로 이용 하려는 것조차도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지 않는 세상을 목표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유사 이래, 우리 선조들은 모두 평화롭고 풍족하며 행복한 생활을 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대체 적으로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으며, 인류 공통인 평화에의 염원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세계 질서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전쟁에 대처하겠다고 군사력을 강화시키면, 군비 경쟁이 일어나서 세상은 한층 더 불안정하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분쟁과 전쟁의 싹을 미연에 제거해버리는 것입니다. 빈곤은 분쟁을 초래하므로 빈곤대책은 매우 긴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빈곤에서 비롯되지 않은 분쟁도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마 음의 문제로, 증오를 없애는 것, 바꿔 말해서, 우애의 마음을 전 세계 사람들이 가짐으로써 분쟁과 전쟁을 사라지 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우애가 넘치는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일본인 모친을 둔 오스트리아인 쿠덴호베-칼레르기 씨는 자유와 평등의 가교로서 우애의 중요성을 설명했습 니다. 20세기 초,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두 가지 전체주의로 물들었던 유럽에서, 전체주의에 반하는 사상으로 서 우애를 제창했습니다. 그는 우애라는 이념에 입각해서 범유럽주의를 제창하였으며,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석탄 철강공동체를 탄생시키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서로를 증오했던 독일과 프랑스 양국은, 석 탄과 철강의 공동 관리를 시작으로 하여 협력관계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한층 더 국민 상호 간의 교류를 깊게 한 결과, 사실상 부전공동체(不戦共同体)가 성립되어,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그 후에 유럽 연합(EU)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이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애는 결코 낡은 이념이 아니며, 오히려 현재 세계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 한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우애라는 것은 자기 존엄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존엄에 대해서도 존중을 하는 것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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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함과 동시에 타인의 자유에 대해서도 존중을 하여,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개성 을 살려서 서로를 돕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 간에서도 성립 가능한 이념입니다.

정치적인 글로벌리즘이 그 기능을 잃고, 전체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는 현재,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요? 편협한 전체주의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우애의 이념에 입각한 지역 기관을 창설하여, 구성 국가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장을 공유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지역 이념에 근거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사 이에는 절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분쟁은 철저하게 대화로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 합니다. 왜냐하면, 무력행사로는 결코 분쟁을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우애의 이념에 입각하여, 동아시아가 부전공동체가 되는 것을 꿈꿔왔으며,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수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 통을 끼쳤으며,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참다운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70주년이 되는 올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고통받은 사람들과 국가들에게 확실하게 사죄와 보상을 행한다면, 동아시아가 공동체의 길로 크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분쟁을 해결하고 각종 협력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대화의 장이 필요합니다. 그런 까닭으 로 ‘동아시아 의회’ 창설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공통된 과제 및 현안 사항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협력의 유대를 강화시켜서, 긴장관계가 고조되는 것을 막고 분쟁을 미연에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 면 합니다. 구성국은 아세안 정상회의 10개국에 한중일을 포함한 13개국으로 시작하여, 적당하게 늘려 나가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의원 수는 국가 당 평균 20명 정도로 하여, 각각 인구나 경제규모에 따라서 약간의 차를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오키나와를 군사적 요지에서 평화의 요지로 만들기 위해서, 의회를 오키나와에 설치할 것을 제안합니다. 우선은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 의논의 장으로 시작해서, 성숙한 공동 체로 발전해감에 따라서 구속력을 가지는 의회로 격상시켜 나가면 될 것입니다.

‘동아시아 의회’는 공통 과제로 교육, 문화, 경제, 금융, 환경, 에너지, 방재, 안보 등의 온갖 분야를 다루면서, 서 로가 다름을 인정하며 상부상조하는 정신을 가지고 협력해 나가도록 합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정부에 제안을 하 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안보에 관해서는 ‘동아시아 평화회의’라고 불리는 기구를 만들어 서 집중적으로 안전보장에 대한 토론을 행하도록 합니다. 각 나라들도 ‘동아시아 평화회의’의 의론을 받아들이 기 위한 기구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에 있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같은 조기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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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예방, 분쟁 후 재건과 같은 점들에 중점을 두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할 준비를 했으면 좋겠 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와 같은 지역적인 공동체를 몇 개이든 창설해서 편협한 전체주의를 억제하고, 세계를 수많은 부전공동체로 가득 채우는 일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유럽 연합은 이미 부전공동체입니다. 다만, 공동체들끼리 배타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 안팎으로 이해관계에 차이가 있는 것 자체가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들 간의 우애정신이 싹틀 수 있도록 유연하고 개방적인 공동체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지구 전체를 하나의 부전공동체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금년도 보아오 포럼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동아시 아 공동체를 언급하셨습니다. 아세안 회의는 올해 안에 공동체로 통합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먼 훗날의 이야기 가 아닙니다.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 리에 참석해 주신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분께서, 우애의 이념에 입각해서 하나로 뭉쳐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실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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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만들자

리 자오싱—중국 전 외교부장

존경하는 이홍구 전 총리님, 이부영 위원장님. 존경하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님, 친애하는 내빈 여러분.

한반도 광복 70주년을 즈음하여 초청을 받아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각국전 현직 요인, 정계, 학계, 언론계 등의 명사 여러분과 함께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자리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이 번 동아시아평화 국제회의 개최에 뜨거운 축하를 드립니다.

동아시아 지역은 역사적으로 찬란한 동방문명을 키웠습니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 삼국은 한자와 유교 문화 권으로 상호 우호적인 교류의 역사가 깊습니다. 일찍이 1천 년 전에 일본의 고승 엔닌(圓仁) 법사가 구법을 위해 당나라에 간 적이 있습니다. 많은 고생 끝에 신라의 장보고 장군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오대산(五臺山)과 장안 (長安)에 도착하여 불법을 배웠고, 귀국 후에 제3대 천태종 지도자가 되어 중한일의 우호 교류에 큰 공헌을 했습 니다. 이런 연유로 적산(赤山) 법화사(法華寺)는 ‘삼국을 잇는 절(一寺連三國)’이라는 칭호가 생겼으며, 동아시 아 우호 교류의 역사에 힘을 보탰습니다. 근대시대에 아시아는 서양 문명의 충격을 받았고, 중한일 삼국은 서로 다른 발전의 길을 걸었습니다. 지역 내 힘의 분배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빠르게 부상하며 오랜 기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의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1970년대는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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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의 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 강국이 되었고, 세계는 동아시아 각국의 발전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성공적인 개혁개방 정책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루며 세계 경제의 엔진이 되었 습니다. 오늘날, 중한일 삼국, 삼국과 기타 동아시아 국가는 긴밀한 협력과 왕래가 이뤄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활 력이 넘치고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동아시아 지역에 남아있는 불안과 패권주의, 강권정치를 봐야합니다. 역사문제, 영토분쟁은 가시지 않았고, 테러리즘·국제범죄·인터넷보안·기후변화·자연재해 등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여 지역의 평 화와 안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들 과제와 도전을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각국이 함께 마주한 공통의 과제입니다.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동아시아 각국과 함께 지역평화 협력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 습니다. 올해 3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보아오 포럼 개막식에서 ‘아시아의 운명 공동체’ 구축이라는 이념을 통해 평화로운 발전, 협력의 윈-윈, 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거시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 해 노력해야 합니다.

첫째, 서로 존중하고, 평등한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는 국격이 있습니다. 국 가는 크기와 빈부에 상관없이 모두 국제사회의 평등한 일원입니다. 자국의 상황에 적합한 발전의 길을 스스로 선 택할 수 있습니다. 평등하게 지역과 국제 현안에 참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요한 관 계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협력을 도모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의 평화안정이라는 큰 틀과 양호한 발전 흐름 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 협력으로 공동의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경제글로벌화와 지역화 시대에 여러 나라는 이미 공동발전, 공동 쇠퇴의 공생관계가 되었습니다. 중국은 지역협력을 지지하며,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건설에 힘쓰고 있습 니다. 한국이 제창한 ‘유라시아 협력’ 등 각국의 지역협력 구상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것입니다. 아시아 인프라 투 자은행을 설립하여 중한일과 아세안이 2020년에 아시아경제공동체를 건설하도록 지지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 제들은 모두 공동의 무역과 구축, 호혜의 원칙을 주창하며 국제관례에도 부합하는 만큼 동아시아와 세계경제의 협력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발휘할 것입니다.

셋째, 안보이념을 혁신하여 아시아 안보관을 세워야 합니다. 대화를 통한 협상으로 공통의 의견을 모으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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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로 양해하고 양보하는 정신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의 태도로 발전을 촉진하며, 미래지향적 자세로 지금의 문 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 간 상호 신뢰를 다질 수 있으며,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안보이념을 혁신하며, 종합적이고, 공통의 의견을 반영하는 협력을 추진해야 지속가능한 안보가 실현됩니다.

넷째, 다양성을 수용하고 인문교류를 강화해야 합니다.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는(潤物無聲)’문화의 힘을 십분 활용하여 다양한 문명의 교류와 대화를 촉진해야 합니다. 경쟁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 습니다. 인문 분야의 교류는 지역의 평화와 지키고, 민간의 우의를 증진시키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사숙녀여러분. 역사는 거울과 같아서 우리에게 성과와 상실, 흥망성쇠를 보여줍니다. 올해는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이자 중국 인민의 항일 전쟁 승리, 한반도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20세기 전반기에 일본의 군국주의는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대해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잔혹한 식민통치를 자행하며 엄청난 재난을 야기했습니다. 중 국과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국가는 연합하여 대항했고, 공동 전략으로 2차 대전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세 계의 평화와 정의를 지키는데 무시할 수 없는 공헌을 했습니다. 역사는 후대에 교훈을 남깁니다. 한반도 곳곳에 서 광복 70주년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경축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 9월 중국은 항일 전승 및 세계 반파시즘 승리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인류의 평화, 문명 그리고 발전을 위해 고 귀한 생명을 바친 열사의 희생에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평화는 인류가 추구하는 영원한 가치입니다. 역사를 거슬러보면, 평화는 얻기가 매우 어려운 ‘희귀재’인 듯합 니다. 우리가 어떠한 세계 질서를 원하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합니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국제 관계를 합리적으로 처리하여 항구적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까? 저는 UN헌장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1945년 발표 된 UN헌장 중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연합국 국민들은 우리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 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정의와 조 약 및 기타 국제법의 연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에 대한 존중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확립하며,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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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십시오. 70년 전 우리의 앞선 세대는 현대국제질서의 틀과 기본 행동규범을 만들면서 현대사회의 공동 가치 이념을 확인했고, 인류의 아름다운 미래를 담았습니다. 세계의 평화를 지속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유엔 헌장 의 취지를 잘 받들어 호혜, 명분, 실리를 추구하는 원칙으로 국가관계의 발전을 이끌고, 상호 신뢰와 양해, 양보의 정신으로 각종 민감한 문제를 처리해 나간다면, 평화롭고 조화롭고 번영된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한-중 관계는 그 중요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1992년 수교 이래, 양국은 상호존중, 상호이해의 자세를 견지했으 며 호혜의 협력을 지켜왔습니다. 대화와 협상으로 갈등을 해소했고, 서로를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로 대하며, 안 정되면서 빠르게 발전하는 양자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작년 양국의 무역액은 거의 3,000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 는 한-미, 한-일, 한-유럽 무역액을 합친 것보다 더 많습니다. 또한 연인원 1,000만 명이 왕래했고, 인문 분야의 교류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양국의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어 양국의 무역 협력 수준이 한층 더 올라갈 것입 니다. 중한관계는 2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실현하며, 국가 관계의 모범으로 불릴 만합니다. 그 성공의 경험은 충분히 축적하여 귀감으로 삼을 만합니다.

얼마 전 중국의 베이징과 장자커우(張家口)가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에 성공했습니다. 베이징은 세계 최초 로 하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가 됩니다. 전 중국인민을 기쁘게 만든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2008 년 베이징 올림픽을 위한 가사를 한 수 썼습니다. 제목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입니다. 이런 내용이 있습니 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전쟁의 불꽃은 여기서 시들고, 원한은 여기서 해소되며, 평화와 사랑은 여기서 이어 지고, 태양은 찬란한 빛을 내린다.” 이는 올림픽 정신의 실현이며 동아시아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와 행복, 발전을 추구하는 하나 된 마음의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번 동아시아 평화회의의 성공을 마음깊이 축원합니다. 또한 자리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 보다 더 아름다운 내일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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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한반도 평화와 통일

너지 데바—유럽의회 한반도 관계대표단 회장, 국제개발위원회 부의장 동아시아 평화회의 스리랑카 총리 수석자문

존경하는 의장님,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니 우리가 앉아있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 38선 넘어 20세기 마지막 전선인 휴전선이 존재 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의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다고 생각합 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쟁, 화해, 보상 그리고 통일은 결코 요원한 희망이 아니며, 한반도는 과거의 실 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안보는 더 이상 헛된 공약이 아닌 현실임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과 동서독이 보여준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되새겨 볼 때 입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마침내 유럽 국가들은 단순히 지리적 근접성을 넘어 공통의 문화와 역사,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서독의 경우, 150년전 비스마르크에 의해 하나가 되었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군의 편에 섰던 서독과 다른 편에 섰던 동독이라는 두 개의 강대국으로 분단 된지 25년 만에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에 있어 독일의 통일이 더 적절한 예가 될 수 있으나, 사 실 유럽연합은 힘의 공유와 무역이라는 측면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로드맵을 보다 적절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25년 동안의 대공위 기간이 끝난 후 세계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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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러, 중동의 무정부 사태, NATO,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경제 및 시장불안, 합법적인 방법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강대국 중국 그리고 북한의 끊임없는 핵 위협 등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를 위협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보유는 오래 전 우리가 놓쳐버린 기회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영국의 팔머스톤 수상은“영국에게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다만 영국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 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책적인 또는 무의식중에 전제조건을 달거나 그 자체로 협상의 영향력을 떨어뜨리고 장기적인 이해만을 위 해 부과된 조항에 기반한 평화 협상이나 여타 협상은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외교는 자존심이나 품위의 문제가 아 닙니다. 외교의 주된 목적은 그것이 합법적인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국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장기 적 이익이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경우, 그것이 비록 합법적이거나 실용적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조건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트로이 목마가 될 것입니다. 한반도의 역사와 그 안에서 발생한 갈등은 전제조건이나 이러한 트로이의 목마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상황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 니다. 북한에서 조차 아무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한반도를 괴롭혀온 트로이 목마 중 최고는 1994년 이후 북한으로 하여금 핵확산금지조약을 탈 퇴하고 핵폭탄을 구축하도록 만들었던 사건입니다. 좀 더 세련된 외교정책이 있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일 입니다. 그러나 서방세계는 잘못된 선택을 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가 가장 피하고자 했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 습니다. 의도된 것이든 사고에 의한 것이든, 지금까지도 그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북한 원심분리기의 존재가 드 러나면서, 그때까지 은밀하고 서서히 진행되어 오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어느 정도의 제동을 걸어왔던 1994년 북미 핵무기개발에 관한 특별계약이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특별계약이 파기되면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을 탈 퇴하였고 공개적으로 핵에 대한 야망을 키워왔습니다. 교묘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과연 미국과 남한 그리고 유 럽연합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해서,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과정이 그 자체의 목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강대국으로 민주주의 소위 자유세계의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자국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 해서는 능란하게 정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크로드와 1500년간 몽골제국과 중국의 서부 확장정책에 맞서 방파제 역할을 해온 페르시아 제국이 위치한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의 개발을 목표로 하 는 아시아투자은행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가열찬 노력으로 인해 미국이 이란과 맺은 협정에 대해 사우디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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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십시오.

최근 다행스럽게도 오랜 무감각에서 깨어난 오바마 대통령은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게 해온 냉전의 잔재를 해 결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현 상태 유지가 더 이상 어떠한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양국간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지난 70년 동안 국제사회의 외 톨이로 남아 있던 미얀마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도 병행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미국이 그 동안 어 긋나고 불편했던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란을 제재 대 상으로 취급해 온 미국행정부는 이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이란의 적대감과 전투 의지만 키우고 이란으로 하여금 점점 극단적인 태도만 취하게 할 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최근 윌리엄 고트니 미 사령관 겸 북미항공우주군 사령관은 "미국은 북한이 미 대륙을 사거리 내에 포함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할 탄두를 소형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 사회,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다른 국가들은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제재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재야 말로 우리의 외교노력이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며, 변두리의 지 루한 회의에서 나온 절망적인 결과로써 진정한 진전을 만들어 내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편입시키기 위한 메커니 즘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기 보다는 북한의 배신행위에 대해 응징을 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평화적으로 진행될 경우,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안보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으나, 힘의 남용 으로 인해 잘못 사용될 경우 지구촌을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에게, 화해는 국제사회에 편입하고 경제적 제재를 끝내고 무역과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남한은 현재 68만 명에 달하는 징병의 규모를 줄이고 연간 무려 300억 달러에 이르는 방대한 군비, 이 금 액은 10억 달러라는 주한미군 지원금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인데, 이를 절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비록 “만일”이라든지 “그러나” 등의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북한의 핵무기를 저지하고 북한의 강력한 군 대를 평화적으로 해체할 경우 대한민국과 미국, 일본의 안보는 분명히 더욱 굳건해 질것입니다.

그 자체로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또한 연료와 식량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김정은 정권을 지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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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정책에서 벗어나 북한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는 자본투자를 할 경우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것 입니다.

지역의 안정은 마땅히 가장 근본적인 우리의 염원이며, 그로 인한 장기적인 혜택은 상당할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은 최근 몇 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말씀하셨듯이 “경제적 대박”이 될 것입니다. 통일 한국의 7천 5백만 경 제 인구는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일본의 그것을 추월하여 세계 제8대 경제 대국으로 가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북한이 보유한 엄청난 성장 잠재력, 어마어마한 광물 매장량 그리고 젊은 인구 층은 둔화된 대한민국의 인 구증가와 제한된 자연자원의 한계를 상쇄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첨단 전자기술 분야 및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산업이 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교육을 받은 북한의 젊은 노동력과 결합하게 될 경우, 지역 이나 이념과는 관계없이,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천문학적인 경제 효과를 창출하 게 될 것입니다.

현재 북한 인구의 91퍼센트가 65세 미만이며, 여성 1명당 출산율은 2.0명입니다. 한반도가 통일 또는 연합국이 될 경우, 현재 거의 3천 6백만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의 노동자에 더하여 1천 7백만 명의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저 임금 저 숙련 노동자들을 새롭게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의 역동적이고 젊은 노동력은 인구 노령화가 급 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기대 수명이 81세에 달하는 남한에 활력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 장 낮은 수준을 보이는 여성 1명당 1.2명에 불과한 출산율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남한과 북한은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각각이 추구하는 방법론과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비록 양국이 한반도 통일에 대한 원리를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으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통일은 세 단계로 구성된 “신뢰 구축” 정책에 의한 것입니 다. 다시 말해, 공동 행사 및 이니셔티브에 기반한 양국간 화해와 협력 단계, 한반도 연방에 기초한 무역 창출, 그 리고 마지막으로 하나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지리적 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종연구소의 오경섭 연구위원은 이러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있는 건물을 그렸으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은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라고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숭고한 이상은 그 자체로는 좋 으나, 제가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듯이, 항상 세부 내용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남한이, 통일된 한반도가 동북아 지 역의 새롭게 떠오르는 강대국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20년간 5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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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2천 5백만명의 새로운 시민을 흡수하고자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민주주 의 제도를 채택한 남한의 80%가 통일을 지지하고 있으며, 만일 1989년 독일을 휘몰아쳤던 대중의 열망이 분출 된다면, 저의 이러한 우려는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여론 조사 결과를 희석시키는 또 다른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지난 3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남한의 20대 젊은 청년 중 22%가 현재의 분단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응답하였는데 이는 다른 어떤 연령층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이 세대는 현재의 분단이 고착화된 후에 태어 났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북한인구의 14%만이 “남북은 하나 다”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 문제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복잡성이나 또는 화해와 평화를 어렵 게 하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아닙니다.

저는 60년이 흐른 지금 그리고 냉전이 종식된 지 오래인 지금까지도 남북은 평화 조약을 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또한, 저는 한반도의 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1953년도에 서 명한 휴전협정 밖에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휴전협정은 양측이 잠시 한숨을 돌리고 전열을 가다 듬기 위하여 적대적인 대치 상황을 일시적으로 중지한 것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은 휴전협정에 결코 서명한 적 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대담하게도 통일을 거론하고, 치유에 대 한 희망을 표현하며, 과거의 아픔을 잊고자 합니다. 평화조약 없이 통일에 대해 논할 수 있을까요?

전쟁에 관한 한, 한 쪽이 패배하거나 또는 양측이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경우에만 분쟁이 종식될 수 있습니다. 휴전협정이 서명된 후에야 자연스럽게 평화조약에 대한 요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평화조약은 화해와 배상 그리고 종국에는 통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지난 수 천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종식시켜 온 인류가 밟아온 단계입니다. 그런데 왜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73년이 흘렀습니다. 그 73년 동안 휴전상태에서 경제, 사회, 외교가 발전해 왔습니다. 신뢰나 다른 무엇이 아닌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양측의 자위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것입니다

73년 동안 남북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믿음에 의지한 채, 영구적 안보라는 국민의 근본적인 염원을 완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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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책임하게 회피해 왔습니다. 지도자들은 휴전협정에 기반하여 각각의 경제 사회적 발전을 추구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휴전협정은 미국과 미국의 납세자들이 한국의 평화를 끝까지 보장해 줄 것이라는 불안 하고 믿을 수 없으며 무책임한 기대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미국과 한국이 영구적인 이해관계가 아닌 영원한 우정을 공유한다는 가정을 근거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및 이란 외교 정책을 보면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유연성을 발휘하여 국제 전략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동맹을 만들 기 위한 미국의 이러한 노력을 대한민국 국민을 위하여 그리고 당연히 북한 주민을 위하여 안보를 강화할 수 있 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수 없이 많은 도전과제, 특히 단순비용 부담이라는 대한민국의 과제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한반도는 중국, 러 시아 및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모든 국가들과 무역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돈이 드는 일이지만 미래 특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아닌 미래 세대에게는 안정 과 안보, 그리고 평화를 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낮 몽상에 불과합니다. 통일은 자생력을 가진 유기물이 아닙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발 판을 마련하고 평화, 남북의 경우에는 평화조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이러한 것은 없으며 따 라서 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자명합니다만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평화조약 없이는 대박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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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평화, 핵 그리고 생태

강우일—천주교 제주교구장

인간은 역사 속에서 다른 인간을 제압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왔다. 칼과 창에 만족하지 못하 고, 총과 대포를 발명해내며 전쟁은 끊임없이 대규모 살상의 기록을 갱신해왔다. 수천만 명을 희생시킨 제2차 세 계대전 막바지에 이르러 인류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도시를 향한 핵폭탄 투하로 전쟁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 었다. 한 순간에 단 두 개의 핵무기로 두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17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량 파괴와 무자비 한 살상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방사능에 노출되었던 수십만 명이 추가로 서서히 죽어갔다. 그런데 지금 지구상에는 10개 나라에서 1만 7천개가 넘는 가공할 핵무기를 보유하고 또 개발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과 발전 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기술이 인류 전체의 파멸을 초래할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인간은 스스로 자멸로 가는 고 속도로를 닦고 있는 셈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인류는 핵이 에너지의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가졌다. 핵의 평화적 이 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핵재앙을 통하여 그러한 전망이 무지에서 비롯한 신기 루에 지나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재앙은 핵폭탄과 마찬가지로 인간 생명과 자연 생태 계에 치명적이고 영구적인 피해를 초래하는 것임이 현실로 드러났다. 다른 영역과는 달리 핵발전에 관한 한, 인 류는 그 치명적인 위험을 관리할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핵발전소에서 사고나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 라도, 정상적인 핵발전소 가동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방사성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과 기술을 완벽하 게 확보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 폐기를 결정하여도 아직 고준위의 방사능 덩어리인 원자 로 해체 작업을 완료할 방법과 기술도 확보되지 않았다. 핵발전은 고농도 방사선 피폭 위험이 상존하는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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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노동자들, 고압 송전선과 송전탑이 통과하는 지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도 치명적인 위해를 가져온다. 이 런 수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하는 핵발전을 무비판적으로 지속, 확대하려는 결정은 국민 모두의 생명과 생태 계 전체를 공멸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무모한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핵발전의 가장 큰 문제는 비민주적 관행이다.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필수 적인데 지금까지 핵발전 산업과 관련된 정보는 차단되고 사고는 축소 보도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아무리 국가라 해도 국민 전체의 생명과 생태계 전체를 가공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을 소수의 행정 지도자가 임의로 결정 할 권한은 없다. 핵발전이 전문영역이라는 치외법권적 보호막 뒤에서 투명한 검증과 감시의 제재도 받지 않고 몇 몇 구성원들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불공정과 비리의 온상으로 둔갑하고 있었음도 이미 밝혀졌다. 핵발전소의 가 장 큰 위험은 위험기술을 다루는 종사자들이 윤리적으로 완전한 인간일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렇게 수많은 중대 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핵발전을 오직 현재 세대가 에너지 사용을 한없이 늘려가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추진 한다는 것은 미래 세대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훼손하는 월권이고 폭력적 범죄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으로 태어난 핵발전은 ‘평화’와는 반대 방향으로 성장했다. 핵발전은 그 자체로 핵무기의 원료를 생산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들의 군사적 야심과 핵 관련 산업의 이해관계가 결합 되어 핵을 둘러싼 권력체계가 형성되고, 핵 기술은 평화적으로 이용되기보다는 핵무기 개발 경쟁을 부추기는 원 인이 되었다. 핵발전과 핵무기는 같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핵발전을 지속하는 한 핵무기 보유국이 되려는 시도 를 원천봉쇄하기가 어렵다. 각국의 지도자가 ‘국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전제하는 ‘국가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이지 국가가 국민을 부리고 이 용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지,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다. 권력을 쥔 소수의 지도자가 국민 전체를 또 다시 국가의 이름을 빌어 전장으로 몰고 가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이 막을 내린지 70년이 되는 해를 맞고 있다. 우리는 전쟁의 포화 속에 숨져간 이 수천만 명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무도 다시 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선택,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저지하고 막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동북아의 각 국가들은 자국의 안보를 위하여 해마다 엄청난 군비증강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이 나 라들은 이미 다수의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핵발전소는 핵폭탄의 양산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항시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자체가 핵폭탄과 마찬가지로 폭발할 위험을 안고 있으며, 수만 년 동안 안전이 보장 되지 않는 절대 위험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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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의 재앙을 겪은 일본은 이미 4년째 모든 원전 가동을 멈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큰 지장 없이 운영해왔다. 핵발전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은 핵산업 관련 권력체계가 만들어 낸 근거 없는 신화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고 국민의 안전을 원한다면 핵무기와 핵발전을 점진적으로 포기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것이 인류가 살 길이다. 우리는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빈대나 이를 잡으려고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를 즐겨 사용했다. 집을 지을 때면 석면을 천정과 벽에 넣고 방음재, 단열재로 썼다. 그러나 이런 물질들이 사람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용을 중단했 다. 원자력은 그런 화학물질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가장 강한 독성을 띈 물질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익과 경 제적 이익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물질을 양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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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 아 시 아 한 반 도

평 화 의

평 화 체 제 와

일 본

전 제 조 건 평 화 헌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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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통일

✽

동아시아 평화에서의 시사점

문정인—연세대 교수

1945년 8월 15일. 70년 전 바로 이날, 우리는 나라의 독립과 자유 회복의 기쁨에 휩싸였다. 그러나 한국은 이내 강대국 정치의 논리에 의해 분단되고 말았다.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된 한국전쟁은 분단의 비극을 더욱 심화시켰 고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희생과 참상을 남겼다. 휴전협정 조인으로 인해 한국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유 예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전사상(戰史上) 가장 긴 전쟁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전쟁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 분단국가의 통일된 미 래를 획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평화체제에 대한 숙의 휴전상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역사적 소명이다. “평화체제”란 무엇일 까? 먼저 평화의 개념부터 명확히 해보자. 국제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평화는 적극적 평화와 소극적 평화 이렇게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케네스 볼딩과 요한 갈퉁 같은 학자들은, “소극적 평화”란 전쟁의 발발을 억제하는 것 을 의미하고, “적극적 평화”란 전쟁의 구조적 원인을 근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적극적 평화는, 구성원들이 평

✽ 2015년 8월 3일 서울시가 개최한 국제 동아시아 평화 컨퍼런스 발표를 위해 준비된 문건으로, 2013년 가을 출간된 글로벌 아시아 제 8권 제3호 92~98페이지에 나오는, 문정인 저(著) “한국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체제’에 대한 숙고”의 내용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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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리고 만민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에서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적 극적 평화는 정말로 이루어내기 어려운 이상이다.

평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세 가지 수단이 있다. 평화 유지peace-keeping, 평화 만들기peace-making, 평화 구축 peace-building이 바로 그것이다. “평화 유지”는 군사력을 이용한 도발의 억제를 말한다. 군사적 전쟁억제와 동 맹 강화가 이를 가능케 한다.

“평화 만들기”는 조금 더 적극적이다. 평화 만들기의 핵심은 경제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신뢰 구축에 있다. 비군사적 신뢰 구축이 이루어지면 군사적 신뢰 구축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군사적 신뢰 구축은 군사훈련의 상호 통보 및 참관이라든지, 당사국 간의 직통라인 개설, 상호 정보교환이나 합동 위기 관리센터 설치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공격무기를 최전선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 재배치 하는 것도 또 다른 중요 요소이다. 군사적 신뢰 구축이 잘 이루어지면 군비 제한이나 축소 등을 할 수도 있다. 폭 넓게 말해 휴전협정과 평화 조약도 ‘평화 만들기’의 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평화 만들기’역시 불안정한 평화 혹은 소극적 평화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적 접근의 최종 목표는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는 “평화 구축”이다. 양 당사국 간의 분규가 양립할 수 없는 목표 때문이라고 가정할 때, 해당 당사국들이 선린 관계를 형성하거나 혹은 하나의 나라로 통합, 통일된 다면 문제가 구조적으로 해결될 수 있고, 따라서 상반되는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생기는 갈등을 없앨 수 있다. 독 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영구평화론 : 철학적 소묘’에서 영구평화로 가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 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적 평화론”이다. 이는 서로 교역을 하는 나라들 간에는 전쟁이 벌어지기 어렵다는 명제에 근거 를 두고 있다. 무역업자들은 자기 나라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사람들이라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심지어 전쟁의 발발을 막을 수도 있다.

둘째, “민주주의적 평화론”이다. 이 명제는 민주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왜 냐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가 위정자의 자의적 전쟁 선언을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두 나라가 모두 민주적인 국가라면, 이중의 안전밸브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실제로, OECD 회 원국 간에는 한 번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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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은 안보 커뮤니티를 쉬이 형성한다는 점이다. 칸트에 따 르면, 전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그러한 나라들은 영구적 평화를 가능케 하는 “평화 연방pacific federation”을 만들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평화의 구축은 “집단안전보장”을 기반으로 하는 안보 커뮤니티의 형성을 통해 달성 될 것이다.

집단안전보장과 집단방위가 서로 다르다는 것에 유의해야한다. 집단방위는 공동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형성되는 동맹에 기반하는 것으로, 적절한 예로는 구 소련 연방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가 있다. 이와 달리, 집단안전보장은 유엔 헌장에 규정된 바와 같이 하나의 안보 공동체 원칙에 기반 하 므로, 만일 공동체의 한 멤버가 공격을 받을 경우 다른 멤버들이 그 침략자에게 집단 응징을 가하는 것을 의미 한다. 지금까지 집단안전보장이 발효된 것은 단 한 번으로, 16개 유엔 회원국들이 참여했던 한국전쟁이 바로 그 것이다.

이제 “평화체제”라는 용어로 넘어가보자. “체제”의 어원은 라틴어 레지멘Regimen (규칙, 안내, 통치)이다. 체 제란 통치와 관련된 원칙, 규범, 규칙, 절차 등으로 구성된 거버넌스 또는 집권체제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다양 한 레짐Régimes들이 그랬듯 정권이 교체되면 체제도 바뀐다. 쉽게 말해 레짐을 헌법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과거 4, 5공화국과 1987년 체제 간의 차이점에서 증명되듯, 새 정권은 권력의 소재와 관련된 새로운 법규 들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평화체제는 평화를 지키고 만들고 형성해내는 규범, 원칙, 규칙, 절 차 등의 총합으로 정의될 수 있다.

원칙이란, 상호 합의 하에 만들어진 일련의 행동에 대한 일반적인 신념체계라 정의할 수 있다. 1975년의 ‘헬싱 키 최종 합의서(역자 註: 유럽 안보협력회의 발족 시 채택)’는 신뢰 구축 및 평화와 관련된 10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 다. 그 원칙들은 주권평등 및 주권에 내재하는 권리 존중, 위협 혹은 무력 사용의 자제, 국경 불가침, 국가 영토 보 전,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간섭 불가, 인권 및 근원적 자유(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와 믿음의 자유 등) 에 대한 존중, 평등권 및 사람들의 자기결정권, 국가 간의 협력, 국제법상 의무의 성실 이행 등이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기초한 전(前) 통일부 장관은 기본합의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헬싱키 협정을 많이 참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규범”은 평화적 공존 그리고 이해 당사자들의 권리 존중과 같은 행동의 기준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규칙” 은 휴전협정 혹은 종전 선언 등과 같은 특정 행위에 대한 지시 혹은 금지를 말한다. “절차”란 동의된 사안의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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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위한 일련의 규정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 상황 점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기존 제안들은 합의 형태, 관련 당사국의 수, 그리고 기능적 특성이라는 세 가지 독특 한 측면으로 나누어 검토할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해서는 조약, 합의, 협정, 선언, 성명서, 공동성명, 언론 보도문 등 다 양한 형태의 제안들이 있어왔다. 조약은 국가 간 협정의 최고 형태로, 북-러 우호·선린·협력 조약(2000년 2 월 9일), 북-중 우호·협력·상호 원조 조약(1961년 7월 1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년 10월 1일) 등이 그 예이다.

협정과 합의의 예로는 한국전쟁을 정전으로 이끈 한국 정전협정 및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2·13 합의 (역자 註: 2007년 6자회담) 및 1994년 제네바 합의 등이 있다. 선언의 예로는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 남북정상공동선언, 북-일 평양선언(2002년 9월 17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년 1월 20일) 등이 있 다. 성명서의 예는 제 4차 6자회담에 이어 2005년 9월 19일에 나온 공동 성명서, 1972년 7월 4일의 남북한 공동 성명, 북미 공동성명서(2000년 10월 12일) 등이 있다.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조약들은 동맹을 맺어 불안정한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음이 명백하 다. ‘평화 만들기’와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협정과 선언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평화체제 당사국 관련해서도 다양한 접근이 있다. 첫 번째는 양자 간 평화체제이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남과 북 두 주체 간에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반면, 북한은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 평화조약 체결 시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역자 註: 북한은 정전협정에 남한 대표는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남한 은 법적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해왔음)

그 다음으로는 3자형 평화체제도 가능하다. 북의 김일성 주석이 주장해온 남한·북한·미국의 3자 간 평화체제 가 있을 수 있고, 혹은 남북한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미국이 제 3자로서 증인이 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것 은 미국이 증인으로 참여했던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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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1953년 정전협정 당사자인 남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 평화협정에 서명하는 4자 협정 형식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남한의 법적 지위가 문제될 수 있다. 왜냐하면 북진(北進) 통일을 희망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정 전협정 서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직접 관련 당사국으로, 법적 지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 은 불합리한 일이다. 엄밀히 말해, 정전협정에 서명한 유일한 주권국 대표는 북한 대표뿐이었다. 미국 대표는 유 엔을 대표하여 서명했고 중국의 팽덕회(彭德懷) 장군 또한 중국 정부 당국자가 아니라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로 서 서명한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의 평화체제다. 이 제안은 김대중 대 통령이 70년대 초에 했던 것이다. 즉, 남북한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미-중-일-러 4대 강국이 이를 제 3자로 보 장해 주는 방식이다. 소위 ‘4대국 보장론’이라는 것인데, 이미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했던 9.19 공동성명에서 도 이 점이 거론되고 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 내고 이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틀 에서 확고히 하자는 구상이 그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를 연동시켜나가자는 구상이다.

몇몇 국제법 학자들은 20자 회담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한다. 남북한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유엔 소속 16개 나라, 거기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합한 숫자다. 이명박 전(前) 대통령 정부에서는 북한을 제외하는 5자 회담을 하 자고 했으나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기능적으로도 분류할 수 있다. “갈등예방” 체제는 현상 유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소극 적 평화를 다루는 변형 체제다. “갈등규제” 체제는 ‘평화 만들기’의 한 변형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이나 6·15선 언 등에 기술된 것과 같은 신뢰 구축 조치들을 통해 평화를 안정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들은 신뢰 구축이 북한의 군비축소와 비핵화 이전이냐 혹은 이후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견 충돌을 불러올 수 있다.

“갈등타결” 체제는 역시 ‘평화 만들기’의 한 유형이다. 이는 정전협정을 종료함과 동시에 종전을 선언하고 평 화협정에 서명하여 전쟁 중인 현재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갈등해소” 체제는, 합의에 기반한 점진적 평화통일 혹은 혹자가 제의하는 것과 같은 흡수통일 등 을 통해 분쟁의 원천을 구조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이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남과 북이 통일되면 서로 다툴 일이 없어진다. 그러나 통일의 궁극적인 형태(단일민족국가, 연방, 낮은 단계의 연방, 연합)와 통일 방식(흡수, 무력, 합의)에 따라 통일이 평화를 가져올 수도 있고 더 큰 갈등을 가져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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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 논쟁적 견해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달성을 명문화하고 있다. 따라서 평화통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 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두 가지 논쟁적 견해가 있어왔다. 김대중과 노무현 등 진보 리더들 은 평화와 통일은 둘 다 중요하지만, 방점은 평화에 찍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남북한 간 교류 협력을 증진 하는 동시에 신뢰구축과 평화 공존의 기반을 만들어 종국에는 ‘사실상의 통일(de facto)’, 즉 남북한 국가연합(남 북연합)으로 나아가길 희망해왔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남북기본합의서 및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공동 선언 등의 이행은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와 더불어 남북한 및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이 종전을 선언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전협정을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에 더하여 한반도 내의 냉전구조 해체와 북-미 관계 및 북-일 관계 정상화를 평화체제의 또 하나의 기둥으 로 여겨왔다. 이는 근본적으로 사람과 물자가 적대감 없는 분위기에서 자유로이 왕래하는 신 한반도의 창조를 목 표로 하는 것이다. ‘사실상의 통일’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법률상 통일을 달성함으로써 남과 북 사이의 ‘목표 불일 치’를 해소하고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평화적 수단 이외의 통일을 향한 그 어떤 움 직임에도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들의 구상은 그 뒤를 이은 이명박 대통령 시기에 거의 와해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화체제 구축의 새로운 프레임워크로 “평화 만들기”보다는 “평화 유지”에 방점을 두었으며,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한 강한 군사적 억제 력 구축을 목표로 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의 밑바닥에는 악마 같 은 북한 지도층과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흡수통일이야말로 평화를 실현하는 가장 쉬 운 방법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평화”라는 말은 물론, 전 정부에서 가상 군사 훈련의 일반 용어인 “워War 게임”에 빗 대어 사용한 “평화 게임” 같은 용어는 완전히 사라졌다. 선제적 혹은 적극적 전쟁 억제력 같은 것들이 논의의 기 본 태도로 부상했다.

더욱이 이명박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의 기본은 북한의 갑작스런 몰락과 남한으로의 흡수에 대한 시나리오였 다. 이것은 남북기본합의서 제 1조 위반이었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명시적 거부였다. 만일 실제로 북한 정권 의 몰락이 발생하더라도, 한국을 포함하여 제 3자의 개입은 국제법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오로지 유엔에 의한 인 도주의적 개입 또는 평화유지군 파견만이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한-미 연합군이 북한 영토를 안정화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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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침략과 다름이 없으며 이는 국제법적으로도 용인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 탄 안정에 실패했던 일은 그러한 군사적 개입에 대한 근본적 제약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2009년 5월 평양의 두 번째 핵실험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하여 핵우산을 포함하는 “확장된 군 사 억제력”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얻어냈다. 그러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러한 행동은 한반도 평화체제에 악영 향을 끼쳤고 오히려 북한이 핵무기 개발 야욕을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은 6자회담의 2·13 합의에 따라 핵 시설과 핵 물질을 해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나, 미국이 남한과 일본에서 핵우산을 제거하지 않으면 기 보유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해왔다. 따라서 ‘확장 억제력’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핵우 산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의 길을 가도록 하는 데에 추가적인 구실을 주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핵심적 대북 정책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의 근거 는 현실적으로 평화 구축이란 신뢰 구축 없이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 지만, 유감스럽게도 여기에는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도, 평화 프로세스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신뢰 프로세스는 평화를 향한 노정이지 평화 그 자체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남북 간 합의서들을 따를 것이라고 발표하며, 대통령 산하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나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 한 어떤 현실적인 계획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와 평화 우선’과 ‘우리 입장의 안보와 통 일 우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해야 할 일은? –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함의 박근혜 대통령이 바르게 지적한 바와 같이, 평화를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은 신뢰다. 신뢰로부터 이끌어진 “마 음의 안정”이야말로 의심할 여지없이 평화의 핵심인 것이 분명하다. 유네스코 헌장 서문은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조건 하에서 북한은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 폭로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속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군대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라고 하며 북한과 미국의 관 계 정상화가 한반도 평화의 열쇠임을 암시했다.

이런 의미에서, 1965년 이루어진 남한과 일본의 정상화 조약과 같이, 평화 조항을 포함하는 북한과 미국의 관 계 정상화 조약은 하나의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평양과 워싱턴 간의 적대적 양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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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계 청산이 평화 구축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제 3차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하며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그러나 북한에게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은 실용적인 대 안이 아니다. 핵에 대한 야심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서는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에 있어 남북기본합의서보다 더 나은 공식 문서는 없다. 온전히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남북기본합 의서에는 헬싱키 협정의 모든 주요 사항이 다 포함되어 있다. 기본합의서와 6·15 공동선언, 10·4 정상 선언 등의 실행은 남한과 북한 사이의 평화를 이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구조건을 만족시킬 것이다. 남북 간의 적대 적 관계 및 북-미 간의 적대적 관계들이 이런 방식으로 해소된다면, 정전협정은 사실상 종이 조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관련된 각국 지도자들에게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를 축하하는 것이다. 양측이 서로 신뢰를 가지고 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다고 느끼기만 한다면 평화체제의 형식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좀 더 넓은 견지에서 보 면, 동북아시아 다자간 안보 시스템이 설립되어야 할 것이고, 그 속에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이슈가 다루 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북한과 미국이 양자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평양에서 핵무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평화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모든 한국인이, 맞서 싸울 적이 없이 괜찮은 삶의 질을 즐길 수 있게 될 때 찾아온 다. 이와 유사하게, 북한이 스스로 안심할 수 있다고 느낄 경우에만 북한의 개혁과 개방이 가능하다. 중국도 1979 년 중국-미국 관계 정상화 이후 마침내 개방이 시작됐고, 베트남의 자국 내 경제 개혁도 대체적으로 볼 때 미국 과의 외교 관계 개선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동일한 접근 방식이 북한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천안함 피침이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 그리고 평양의 핵 무장력 등은 우리의 안 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사라져 버린 평화 논의의 불씨를 되살려야 하고 전쟁을 꿈꾸며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맞서 이겨야 한다. 우리의 평화와 번영은 결코 군사적 모험가 들의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반도의 평화가 동아시아 평화에 가져다 줄 수 있는 몇 가지 긍정적인 영향 때문에라도 더 그렇다. 가장 심대 한 영향은 이 지역의 지정학적 지형의 근본적 변화가 될 것이다. 한반도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지역의 화약고였다. 한반도의 평화가 강화되면 이러한 문제가 없어질 것이고 지역 안정성의 가능성을 향상시킬 것이다. 또한 이 지역 의 긴장의 또 다른 원인인 중국과 미국 간의 주도권 경쟁을 완화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공통의 위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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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사라지는 것이 상승 작용을 하여 한-미 동맹의 성격을 변화시킬 것이고, 동시에 중국과의 상호 관계도 개선 될 것이다. 공통의 적이라는 존재 없이 양국 동맹 유지를 정당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중국 과 미국이 한반도 이슈에 대해 서로 부딪히게 되는 일은 극히 적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에는 평화와 번영의 선순환이 자리잡을 수 있다.

한반도 평화는 또한 일본 군비 강화의 주된 논거 중 하나인 소위 ‘상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없앰으로써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완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평화로운 한반도는 결국 통일 한국을 이끌어내고, 순차적으 로 통일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 안보 공동체의 촉진자 및 지역 평화의 중재자로서 더 많은 역량과 영향력을 가지 게 할 수 있다. 즉, 한반도의 평화는 동아시아 평화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지금이 바로 그 적기이다. 개선된 남북관계 그리고 6자회담 재개 등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대한 발걸음이 될 것이며, 평양과 워싱턴 (그리고 평양과 도쿄) 간 관계 정상화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전제 조건이 다. 결국, 평화통일은 우리의 민족적 비극을 끝내고 지역의 평화를 증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형 식적 절차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며,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하며, 지금이 바로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킬 최적의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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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일본 평화헌법, 세계 평화의 보루

다카수 나오미—일본 평화헌법 노벨평화상 추천운동가

오늘 한 아이의 엄마로서, 여러분 앞에서 전쟁 방지를 위한 협력을 부탁드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진 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각각 8살과 2살배기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이들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는 만 국 공통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아이들이 정말로 사랑스러워서 제 자신의 아이 들뿐만이 아니라 이웃집 아이들과 타국의 아이들까지도 무척 사랑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발생하면 반드시 그 나라의 아이들은 거기에 휩쓸려서 공포와 슬픔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전쟁을 포기하는 헌법을 바꾸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전쟁은 실로 비참하고 잔혹하며, 각종 범죄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종전 후, 만주에서 철수한 경험이 있는 친할머니께서는 제가 어릴 적부터 작년 91세의 나이로 돌아가시던 그날까지 ‘전쟁은 비참하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일러주셨습니다.

또한 유학생 시절,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난민들을 만나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습격을 받아서 가족의 안부도 알지 못한 채 난민 캠프에서 살아온 친구,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참한 경험을 한 여성 들, 전쟁에 휩쓸리는 것의 비참함과 여러 무기가 만연해서 생기는 각종 범죄들 때문에 떨면서 살아가야 하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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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등 전쟁은 한 번 시작되어 버리면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포기한다’라 는 결단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전쟁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 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귀국 후, 20대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제대로 일본국 헌법 전문(前文)과 제9조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전 세계 사람들의 행복과 평화를 기원하면서 자기 스스로가 전쟁을 포기하겠다고 단언하 는 이 헌법은 신께서 보시기에도 인간이 보기에도 매우 훌륭한 약속임에 틀림없으며,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전쟁을 포기하겠다고 맹세했던 헌법을 뒤집어서, 다시금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되돌아가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 중에 위안부로 끌려갔었던 분들이 한국에서 열심히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시는 것을 뉴스 등을 통해서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몸과 마음뿐만 아니 라 영혼마저도 얼마나 엉망진창이 되셨을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딸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랑으 로 키운 딸이, 이러한 난폭한 일을 당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상처 입은 딸을 끌어안고 아무리 함께 울고 슬퍼한다고 한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비통하고, 분노와 억울한 마음이 끊임 없이 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이 만연하게 되는 것이 전쟁입니다. 이분들께서 어떠한 생각을 가 지고 항의를 하시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집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소망은 ‘이런 끔찍한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가들 간의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전쟁으로 상처받은 모든 이들의 생각을 받아들 여서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는다’ ‘전쟁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라고 하는 결의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무기나 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잘 해줄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우리들을 믿고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가 능해지는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잠자코 보고만 있는 것은 전 세계 어린이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그 들을 위험에 방치시켜서 못 본 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아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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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을 지키고 싶다. 전쟁을 포기한다고 맹세한 헌법 9조를 지키고 유지시켜서 널리 퍼뜨리는 것은 전쟁을 막는 일이 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연합(EU)이 2012년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실제로 이룩한 성과에 대한 평가뿐 만이 아니라, 높은 이상을 향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후원해주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헌법 9조 가 내세우는 이상은 대단히 훌륭하며, 전 세계 사람들의 소망과 일맥상통함과 동시에, 노벨 평화상을 받을 가치 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3년 1월, 전쟁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헌법 9조를 일본이 지켜내고 전 세계로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 ‘헌법 9조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메일을 홀로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 보내기 시작했 습니다. 5월부터는 인터넷 서명운동을 개시하였습니다. 5일 간 총 1,342명이 동참해 주셨는데, 그것을 노벨 위원 회에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노벨 평화상은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것으로, 헌법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추천인이 필요하며, 2013년도는 아직 추천장이 나오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대상을 ‘헌법 9조 를 유지시키려는 일본 국민’으로 변경하여 서명과 추천인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헌법 9조가 내세우는 이상과 일본 국민들의 현실은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헌법을 지 켜 마땅한 일본 정부 스스로가 헌법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들과도 전후에 제대로 된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미화시키는 교과서가 버젓하게 사용되고 있는가 하면, 전쟁을 미화시 키는 발언이 텔레비전에서도 튀어나오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헌법을 헌법으로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후부터 지금까지 70년 가까운 세월에 걸 쳐 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비참함과 어리석음을 끊임없이 회자하고 있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상태에서 조금씩 이상을 향해 전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흔히 육아 세 미나 등에서는 ‘잘하지 못하는 것을 혼내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칭찬하는 것이 아이의 발전을 위해서 좋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헌법의 이상이 너무나도 높아서 좌절할 것 같이 느껴질 때에, 전 세계의 사 람들로부터 ‘헌법 9조는 매우 훌륭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전쟁을 없앨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라고 뜨거운 응원 과 격려를 받는다면, 일본인들도 모두 힘을 내서 기운을 차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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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투표율도 낮고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고 해서, 헌법 문제를 정치가나 전문가와 같은 일부 사람들의 문제로 치부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 국민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서 행동 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선 일본 국민 모두가 노벨 평화상 후보라도 된다면, 그만큼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헌법 9조가 세계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도 무척 훌륭하며, 그 훌륭한 헌법의 주권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 행동에 나서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추천을 의뢰하는 행위 자체가 헌법 9조의 정신을 해외에 전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수상하게 되었을 때 누가 대표로 받을 것인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존재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국민 모두가 헌법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행동하기 시작할 때에, 국가와 대표자들이 평 화헌법의 근원으로서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상자를 걱정하기 보다는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이 헌법을 자신의 일처럼 여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치 먼 길을 돌아가는 것처럼 보 이지만, 사실은 국가나 대표자들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3년 8월, 제가 사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3곳의 ‘9조 의회’에 협력을 구해서 유지들로 구성된 실행위원회가 발족되어, 출판물과 인터넷을 활용한 서명활동과 추천 의회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실행위원회는 온갖 이견을 거쳐서 ‘9조를 지키고, 살려서, 세계로 전파시킨다’라는 생각 하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도와 2015년도에는 각각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로부터 추천이 유효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수리 통지를 받았습니다. ‘일본 국민’이 단체로서 인정을 받아, ‘헌법 9조를 유지시키려는 일본 국민’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노 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번에 헌법 9조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시키겠다는 생각을 실천해서 후보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실 행위원회를 비롯한 추천인들 및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수많은 분들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실행위원회는 처음부터 전쟁을 경험한 70~80대 분들을 중심으로 뭉쳤 습니다. 모두들 더위나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회의에 참석해주시면서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키게 하 지 않겠어!’라는 굳은 의지 하에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80대이신 공동 대표께서는 근처 우체국에 서명을 받으러 매주 걸어서 다녀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모님과 둘이서 정성스럽게 서명과 함께 첨부되어 온 편지들을 하나하나 모두 꼼꼼하게 확인하셨으며, 저녁에 주무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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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도중 불이 났을 때에도 서명 모음집과 편지들을 가지고 대피하셨을 정도로, 매일 저녁 머리맡에 두고 소중히 보 관해 주셨습니다.

모두들 무더운 날에도 깃발을 들고 늙은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열과 성을 다해서 젊은이들에게 호소하셨습 니다. 서명운동의 경우에는 특별히 중년 분들께서 ‘두 번 다시 전쟁은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담아서 길거리에 서 열심히 힘써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분들께서 열심히 평화에 대한 염원을 지속시켜 주신 덕분에, 지금까 지 일본은 전쟁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헌법을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의 평 화를 원하는 염원을 담아서 홀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응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작년 8월에는 말레이시아의 마라야 제2차 세계대전 역사연구회로 부터 제1회 아시아 평화상을, 12월에는 한국 강원도와 강원일보사가 주최하는 DMZ(비무장지대) 평화상 2014년 특별상을 수상함으로 인해서 격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한국 여러분들의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2015년도에는, 한국 지식인 50명으로 이루어진 ‘헌법 9조에 노벨 평화상을’ 한국 실행위원회 분들과 142명의 한국 국회의원 분들께서 헌법 9조를 평가하신 후 추천하여 주셨습니다. 또, 코스타리카 국회도 만장일치로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을 해 주셨습니다.

해외에 계신 여러분들께서 전해주시는 ‘헌법 9조는 훌륭합니다! 모두 함께 힘냅시다!’라고 하는 성원에 진심 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일본에서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 하루하루 힘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여러분의 성원은 큰 힘이 되며, 헌법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헌법 9조는 엄청난 것일지도 몰라!’라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기회 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헌법 9조의 존재에 스포트라이트 가 비춰져서 그 이상을 전 세계가 공유하는 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바람입니다.

바야흐로 일본 정부는 헌법 9조가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많은 헌법학자들 이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 머릿수로 억지로 통과시켜서 해외에서도 전쟁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 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커다란 규모의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전쟁을 포기 해 왔던 것처럼, 열심히 소리를 내어주었던 70~80대 분들을 비롯해서 각종 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행동하 고, 대학생들과 학자들, 고교생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중년층들도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도 이 법 안을 저지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죽여도 상관없는 인간, 없어져도 상관없는 인간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증오하거나 죽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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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지금 이상으로 서로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분쟁의 불씨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어느 나라든지 전쟁을 일으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부 권력자들 뿐입니다. 압도적 다수를 차 지하는 우리들 일반 시민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무력을 보유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하고 싫어하며 적대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쟁을 포기한다고 얘기하면, 어느 나라 사 람이든지 흔쾌히 친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곳곳에 수많은 친구가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만약, 다른 나라의 권력자가 전쟁을 하려고 하여도, 그 나라의 시민들이 정보를 밀고해주는 등, 전쟁을 막기 위해서 손을 써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이 한국의 평화단체나 국회의원 여러분들께서 헌법 9조를 지키려고 하는 우리들의 아군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전쟁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대화로 해결하여 주십시오. 중재에 힘써주십 시오’라고 하는 서명운동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직접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전쟁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대화로 해결했으면 좋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여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분쟁의 불씨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며, 전쟁이나 범죄를 억지시키는 진정한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것은 돌고 돌아서 자신의 행복과 안전, 그리고 평화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안전보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목소리와 힘은 볼품없을지 몰라도, 모이면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신께서 평화를 바라 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축복해 주시고 마음을 써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 되는 그 날까지, 모두 힘을 내서 끝까지 노력합시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 에게 신의 은총과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에 대한 염원과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오늘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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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독일 경험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주는 교훈

요하네스 플루크—전 독일연방의회 의원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2014년 2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의원위원회 위원으로 라스베가스 근처에 위치한 넬리스 공군 기지를 방문한 바 있습니다. 넬리스 공군 기지에서 우리는 새로 개발된 드론과 그 밖의 무기들, 미국 공군의 조직 및 군사력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이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발표를 맡 았던 장군은 유럽이 방어시스템에, 특히 신식 군비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NATO에 가입한 모든 국가 중 유럽의 방어시스템 지출 비용이 미국보다 30% 정도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만큼의 영향력에 도달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유 럽 국가들의 군사력을 아직 통합하지 않아서 필요할 때 전략적으로, 지리적으로, 기술적으로 투입하지 못하기 때 문입니다. 수 년 전부터 유럽은 ‘통합과 공유(pooling and sharing)’에 대해 말하지만, 아직까지는 충분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넬리스 공군 기지에서 개최되었던 회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014년 당시 저는 장군에게 다음과 같 이 대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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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 미국의 군사력과 방어시스템의 강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아마도 이와 같은 군사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1차 세계대전 발발 100 년, 2차 세계대전 발발 75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밖에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기념합니다. 우리 유럽인들은 서로 간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래서 전쟁 전의 긴장상태와 전쟁이 끝난 후의 우호관계 형성에 대한 경험이 많습니다. 서로 많은 경험을 공유했어도 1945년 이후 50년 동안 지속된 냉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러나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도록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냉전은 전 세계에 존재했던 것으로 유 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호주 사람들을 위협했습니다.”

저는 세계 안보를 개선하고 세계 평화질서를 구축하는 데 유럽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의견으로 발언을 마쳤습니다.

그때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 우리 모두는 그동안 세계의 안보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전쟁과 갈 등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1946년 4월에 태어난 전후 1세대의 독일인으로 오늘 여러분 앞에 서 발표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더불어 저는 나치 정권이 군사력을 동원하여 유럽, 아시아, 세계 여러 곳의 민족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제가 반드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대인 학살은 유례가 없는 것으로 모든 다른 사건들과의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후 1세대인 저는 이와 같은 인식을 독일의 젊은 세대들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보다 4개월이 지난 뒤에야 동아시아에서도 끝났습니다. 종식 시점이 다르더라도 우리 모 두는 2015년을 2차 세계대전의 종식 70년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과 한국은 분 단되었는데,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한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독일은 전쟁의 종결과 함께 끔찍 한 정권으로부터 해방되었고, 한국은 잔인한 식민세력인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두 분단국가는 유사한 경험을 하였지만, 두 분단 국가 사이에는 차이점도 많이 존재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일 회의에서 말씀드 리겠습니다.

독일은 공격자이자 2차 세계대전의 유발자입니다. 한국은 희생자였지만, 일본이 아닌 한국이 분단되었습니다. 이는 이미 1946년 동아시아 지역의 미래발전과 지정학적 역할을 예측한 미국의 영향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분단된 한반도 국가는 분단 후 2년 동안 한국전쟁을 치렀습니다. 한국전쟁은 수많은 가족을 찢어놓는 깊은 상처 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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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현재 한반도의 38선에는 중국과 미국, 두 강대국의 이해가 맞서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철의 장막을 따라 세계가 이른바 서구권과 동구권으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서구권, 동구권 모두 각각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인 군사동맹조약기구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 두 군사동맹조약기구가 서로 전쟁을 치렀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유명한 물리학자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이용하여 표현해 보겠 습니다. 3차 세계대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저도 그것은 모르지만, 4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겠습니다. 돌과 몽둥이로 싸우겠죠."

유럽의 전후 1세대의 젊은 사람들은 핵전쟁의 위협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를린 위기, 쿠바 사태, 베트남 전 쟁, 캄보디아 전쟁, 강대세력인 미국과 소련을 대신한 전쟁들, 핵무기의 개발, 미사일 기술의 발전 등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었던 또 다른 점은, 동독 주민, 동유럽 국가의 주민, 소련의 주민 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전쟁의 발발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철의 장막의 반대편에도 두려움이 존재하고 안보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여기 동아시아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나, 나의 국가, 나의 동맹 국가를 그 어느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주관적으로는 옳을 수 있겠지만, 동아시아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 신뢰를 고려한다면 이 의견이 객관적으로는 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서독과 동독, 그리고 서구권과 동구권 사이에 강력한 프로파간다 전쟁이 있었지만, 두 독일 국가 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서로의 안보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은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소유 포기, 세계기구 에 가입하는 것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서독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였고, 배상 정책을 도입하였습니다. 평화와 비폭력 지향, 이웃국가와 화해, 그리고 70년대 초 빌리 브란트 총리에 의한 영토권 주장(Gebietsforderung) 포기는 독일 외교정책의 핵심 요소들이었습니다. 70년대 독일 외교정책의 모토는, 접근을 통한 변화, 그리고 현상(現狀, Status Quo)을 바꾸려는 자는 그 스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빌리 브 란트 총리의 독일 정책과 동방 정책 및 브란트 정부는 이 모토와 원칙에 기반하였습니다. 이 정책의 결과는 서독과 동독 사이의 협정 체결, 독일과 동구권 국가들과의 조약 체결, 두 독일 국가의 국제연합(UN) 가입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이미 20년 전인 1954년에 이른바 원수로 불렸던 독일과 프랑스 가 우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서로 화해하게 된 것입니다. 독불 우호조약을 기반으로 하여 유럽의 통합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서독이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독일의 통일은 실현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1975년 이후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역할과 80년대 중반부터 고르바초프가 펼친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독일 통일에 기여한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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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발족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70년대 초 실천되었던 화해정책의 결과물입니다. 유럽안보협력 회의의 공동선언문은 국제조약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UN 조약 제8조에 의거한 참여 국가들의 지역 적, 자발적 합의에 해당했습니다. 유럽안보협력회의로부터 헬싱키 프로세스 또는 CSCE-프로세스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선언문은 세 개의 차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군사적 차원 또는 원칙조항, 경제와 환경 차 원, 인도적 차원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이 세 차원을 참여국가 간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10개의 조항으로 규정하 였습니다.

1. 모든 국가 주권의 동등함과 각 국가 영토권의 인정 2. 폭력적 위협 또는 폭력 행사 금지 3. 국경 불가침 인정 4. 각 국가의 영토 불가침 인정 5, 갈등의 평화적 해결 6. 각 국가의 내정 간섭 금지 7. 인권, 기본 자유권, 의견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신념의 자유 보장 8. 모든 민족의 동등한 권리와 자결권 인정 9. 참여국 간의 협력 10. 충실함과 신념에 따라 국제법 준수 및 국제법상 의무 이행

헬싱키의 공동선언문에 33개 국가가 동의하였는데,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들이 이에 동의하였 습니다. 알바니아는 당시 타국으로부터 스스로를 거의 완전히 고립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련과 미국, 캐나다도 헬싱키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였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이 선언문의 타당성(Richtigkeit, rightness)이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전적으로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포드 대통령과의 면 담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다음과 같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 비정규 정상회의. 마지막 정상회의는 11년 전 아스타나에서 개최되었고,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 탄 대통령이 의장이었습니다. - 매년 개최되는 각료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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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 매년 의장국의 변경 (트로이카 원칙: 전/후임 의장국 포함), 현재는 세르비아가 의장국, 2014년에는 스위 스가 의장국이었습니다. - 사무총장은 2011년부터 이탈리아의 람베르토 자니에르(5년째 사무총장 수임) - 매주 빈에서 개최되는 상임위원회 회의 - 유럽안보협력기구 의회 회의 (일년에 1-2번)

그 밖에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중요한 운영기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주제도인권사무소(ODIHR), 소수민족 문제담당특별대표와 언론자유대표 등이 있습니다.

철의 장막이 붕괴되고 공산주의권이 해체된 지 5년이 지난 1995년 1월 1일에 유럽안보협력회의는 유럽안보협 력기구(OSCE)로 개명되었습니다.

유럽안보협력기구는 1995년부터 이견의 증가와 국가들 간의 갈등으로 인해 영향력과 기구 역할의 의미가 축 소되었지만, 남카프카스 지역(나고르니 카라바흐 지역, 남오세티아를 포함한 그루지아)의 전쟁을 완화 및 종식 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었고, 현재 우크라이나와 같이 전쟁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국가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 이 예상되거나 심지어 전쟁이 발발하려 할 때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안전장치로서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갈등 인지, 갈등 발생 방지 및 중지, 국가 간의 협력 도모 기구로서의 역 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유럽안보협력기구를 개혁하는 것이 옳고 중요합니다.

이어서 어제 일본 대사관 앞의 집회에 참여하면서 다시 회상하게 된 8년 전의 경험에 대해 말씀드리고 발제를 마치고자 합니다.

2007년 5월에 70대 여인 네 분이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직원 두 명과 함께 베를린에 있는 제 의원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세 분은 한국, 한 분은 인도네시아 출신이었습니다. 이분들은 14세였던 1942년에 일 본 군인들에 의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연행되어 병영에 보내지고, 그 당일에만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강제 동원되기 위한 시설에 감금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분들이 원했던 것은, 일본 정부가 저지 른 중죄를 인정하고 공식적인 공개사과를 하여 영혼의 평화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끔찍한 경험을 했고, 그들의 인생을 약탈당했습니다. 이 분들은 제가 당시 유럽위원회의 위원이었기 때문에 찾아왔던 것이었는데, 후 에 저는 실제로 이분들이 원하는 바가 포함된 결의안이 유럽위원회에서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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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분들을 모두 한 분 한 분 안아드렸고, 현재까지도 저는 일본 정부가 저지른 전범죄(戰犯罪)에 대해 공식 적인 공개사과를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2001년부터 저는 북한을 11차례, 한국은 그보다 더 많이, 일본은 6-7차례, 중국은 35차례, 그 밖에 남아시아 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수차례, 또 미국은 15차례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의원, 정부 관계자, 싱크탱크 관계자, 원조기구와 인도적 활동기구 관계자 및 기타 많은 전문가와 대화를 하였고, 많은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제가 느낀 점은, 동아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각 국가들 간의 신뢰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가 추가됩니다. 이 두 국가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미사일을 계속적으로 실험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 두 강대국은 현 상황(Status Quo)의 유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일 본 헌법 제9조의 개정은 현 상황을 바꾸며,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테스트에 관한 사항 또한 바꾸어 놓습니다.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한미 군사훈련과 황해에서 중국 해군의 완고한 태세 등도 신뢰 형성에 기여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6자회담 참여 국가들인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 남한, 북한이 유럽의 헬싱키 회의처럼 동아시아평화협력회의 를 조직하고 참여조건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 안보기구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폭력 금지, 불가침 보장, 핵무기위협 포기, 경제적 문화적 교류 강화, 기타 신뢰를 형성하는 조치들 및 여행규정 완화 등이 이런 프로 세스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공상가가 아닙니다만, 미국과 쿠바가 수교를 맺고, 이란과 미국 및 핵무기 보 유국들과 독일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중지에 관한 협정을 맺은 것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불가능했던 것들이 외교, 신뢰와 컨트롤 메커니즘에 의해 갑자기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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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일본 시민운동 전개와 동아시아의 평화

후쿠야마 신고—일본 평화·인권·환경포럼 대표 전쟁을 하지 않는 1000인위원회, ‘전쟁하게 하지 마라, 9조를 부수지 마라’ 총궐기 행동실행위원회

I. 들어가며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 무랴야마 담화 20주년이라는 기념할 만한 해이다. 2015년, 이 기념할 만한 해에 일본이 어떤 역사인식 위에서 평화외교 정책을 내세울 것인가가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아 온 무라야마 담화를 기본으로 한 역사인식에 기초하여 평화헌법에 따라 평화주의 노 선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있다.

아베 정권은 현재 무라야마 담화의 재조명, 안전보장 관련 법안(필자는 전쟁법안이라고 명명함)의 성립, 오키 나와현 나고시 헤노코에 미군 신 기지 건설, 원전 재가동 강행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일본을 근본적으 로 바꾸고, 전쟁하는 나라로,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길에 들어서게 하려고 한다. 특히, 현재 일본 정치의 최대 초 점은, 9월 27일이 회기 말인 정기국회에서 이 전쟁법안을 성립시키느냐 마느냐이다. 민주당, 사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은 성립 저지를 위해, 전력을 다해 분투하고 있다. 또한 민중의 투쟁도 크게 고양되고 있다. 매스컴 여론 조사(아사히신문)에서는 전쟁법안 반대가 57%, 찬성이 29%, 아베 내각 지지율은 37%로 급락하고, ‘지지하지 않 음’ 비율도 46%가 되었고 이는 다른 매스컴 조사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이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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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권)이 참의원 단계에서도 채결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여·야당 및 국민을 둘러싼 정치적인 긴장관 계가 단숨에 고조될 것이라 예상된다.

II. 일본 평화·안전보장이라는 틀 일본은 2차 대전 후, 헌법 9조와 미국의 세계전략, 미일 안보조약·가이드라인이라는 밸런스 속에서 방향을 잡 아왔다. 헌법 9조는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 것과 전쟁포기”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냉전시대, 냉전 후, 2001년 이후와 세계정세 추이 속에서, 자신들의 군사전략에 따라 일본의 보수층과 연대하면서 헌법 9조의 공 동화(空洞化)를 꾀하여, 현재 세계에서 일본은 핵무기는 가지지 않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 는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그래도 2차 대전 후 70년간, 헌법상 제약과 과거 체제에 대한 반성, 여론 지지의 결과로 전수방위(専守防衛), 해외에서 자위대가 무력에 의한 위협·행사, 전쟁은 지금까지 실행되지 않았다. 또한 1995년에는 무라야마 담화 로 역사인식을 명확히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가면서 미국은 미군 재편성 하에 일본정부에 대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합리화, 오키나와에 미군기지 건설, 미국과 자위대의 미사일 방위나 테러대책 등의 사령부 단일화를 계속 해서 요청하였다.

2012년 12월에 탄생한 아베 정권은 2차 대전 후 체제로부터 탈피를 내걸고, 미국 정부의 영향을 받는 형태로, 또 한 스스로 군사대국화의 길을 지향하면서, 전쟁법안의 성립, 무라야마 담화의 수정, 전쟁법안의 개정에 착수하였다.

III. 아베 정권의 본질과 무라야마 담화 아베 정권은 신도(神道)정치연맹·일본회의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아베 총리를 포함하여 각료 20명 중 19명 이 신도정치연맹, 15명이 일본회의의 멤버인 우익정권이다.

신도정치연맹의 목표는 황실과 일본 문화의 존중, 신헌법 제정, 야스쿠니 신사의 국가의례 확립, 도덕·종교 교 육 추진, 국경일 국기 게양 등이다. 또한 일본회의도 비슷한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러한 정권이기 때문에 중일관 계자, 한일 관계자들이 각 나라들로부터 아베 자공정권이 위험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

1995년 2차 대전 종전 50주년에, 일본 정권은 무라야마 담화를 공표하였다. 그 기본은 “국가 정책을 그르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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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 죄의 말씀을 드립니다”이다.

2차 대전 후 70년이 경과하고 있음에도, 아직 북일 국교 정상화, 일본군 위안부, 강제노동·연행 등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또한 국가 정책을 그르치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 진심 어린 사죄를 날조하려고 하는 아베 자공정권의 움직임은 국제적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

IV. 전쟁법안이란 무엇인가 전쟁법안은 헌법학자들의 90% 이상이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법안으로 △입헌주의를 무시하는 것 △정부 설명에 일관성이 없는 것 △민주주의의 룰을 무시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것 등이 국회에서 심의하는 가운데 지속 적으로 밝혀져서, 아베 총리 자신조차도 "설명이 부족하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법안은, 새 법안인 국제평화 지원법과 평화안전법제 정비안과 하나로 묶여있는 다른 10개의 개정법으로 구 성되어 있다. 무력공격 사태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나서고, 다른 법에서는 자위대 활동 범위를 지구적 규 모로 하여, 지리적인 범위를 없애고, 무력공격과 하나가 되는 병참 등으로 활동내용을 확대, 지원하는 국가도 확 대하여 무기사용 제한의 완화, 비전투지역이라는 활동 범위도 없앤 자위대가 무력에 의한 위협· 행사· 전쟁에 발을 들여놓는 내용이다.

아베 내각 지지기반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일본의 전쟁법안에 대해 중국 정부나 한국 정부가 염려를 표명하 는 것이 당연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29일 미국 의회에서 “2차 대전 후 첫 대개혁입니다. 올 여름까지 성취하 겠습니다”라고 연설하였다. 그리고 지난 7월 16일, 이 법안은 중의원에서 강행 가결되었고, 이제 그 무대는 참의 원으로 옮겨졌다. 일본 내 전쟁법안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높아지고, 대중운동도 크게 고양 되었다.

V. 일본 시민운동의 현상과 과제 일본 시민운동은, 2011년 이후 크게 변했다. 기존 운동의 상태로는 아베 자공정권에 대항할 수 없다고 자각,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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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운동을 대대적으로 재검토하여 다시 살려보자고 움직이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큰 계기는 2011년 3월 11일 동경전력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그 후의 탈 원전운동, 오키나와 나고시 헤노코 미군 신 기지 반대운동, 전쟁법안 반대운동이 3대 과제이다.

변화하고 있는 시민운동의 전체적인 특징은 △동경전력 후쿠시마 사고가 시민층 전체에 피폭이라는 현실과 공포를 들이댐으로써 운동 참가자를 단숨에 확대시킨 것과 2014년 7월 26일 집회에서 20만 명이 모인 것, △기 존 운동단체가 재출발을 지향하여 운동의 이상적인 모습을 되묻고, 재활성화를 꾀한 것, △기존 운동을 담당했 던 단체가 연대의 고리를 크게 확장하고 있는 것, △학자·문화인·저명인사 또는 학생, 여성, 고령자, 시민 등 각 자가 자신의 독자적인 운동에 몰두함과 동시에 총궐기 행동실행위원회가 제기하는 운동에 광범위하게 참가하고 있는 것, △2만 명이 넘는 시민이 국회 주변에 결집하게 된 것, △오스프리(Osprey) 배치 반대 투쟁으로 대표되 는 것처럼 보수층도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중의원에서는 여당이 2/3를 확보)의 여 당 틈에서 가까스로 야당이 시민운동과 연계하게 되어, 존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 등이다.

또한 대중적인 시민운동이 고양되는 가운데, 시민운동이 지향할 목표인 전쟁법안 폐기, 오키나와 신 기지 이전 저지, 원전재가동 저지를 실현할 기회가 확대되었다.

전쟁법안 반대운동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중심적인 운동단체는 총궐기 행동실행위원회이며, 이는 전쟁하 게 하지 않는 1000인 위원회, 헌법 9조를 부수지 마라 실행위원회, 전쟁하는 나라 만들기 스톱! 헌법을 지켜내는 공동센터 총 3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분열을 반복해온 일본 평화운동 속에서 전쟁법안 폐기·헌법 9조를 지키라 는 전에 없던 평화운동이 조성되었다. 총궐기 행동실행위원회의 운동과 함께, 일본 변호사회, 헌법연구자회, 학 자회, 실즈(SEALDs)라는 학생 그룹, 시민단체 등의 운동도 전국적으로 크게 고양되어 있다. 특히 중의원에서, 전 쟁법안이 강행 체결된 7월 13일 주에는 전국에서 항의집회가 일어남과 동시에, 14일부터 17일까지 매일, 그리고 26일, 28일 연속해서 2만 명이 넘는 시민이 국회를 포위했다. 2013년 특정비밀 보호법 반대운동 때에도 집회가 많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노동운동 분야에서도 내셔널 센터의 연합도 조금씩 반대하는 움 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7월 27일부터 참의원에서 심의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8월은, 6일, 9일에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원자/수소폭탄 금지운동과 피폭자 지원운동이 크게 전개되고, 중순에는 15일을 중심으로 평화를 맹세하는 운동이, 또 아베 담화에 관한 대처가 전개된다.

총궐기 행동실행위원회는 이러한 경위를 거쳐 8월 30일 동경 10만, 전국적으로 100만 명 집회, 9월 중순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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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국회 포위행동 등을 중심으로, 자공정권에 대항하려고 한다. 60년 안보투쟁은 일본의 평화·민주주의 운동 중에 서 역사적인 투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데, 이 투쟁과 맞먹는 싸움을 일으키려고 한다. 또한 9월이 되면, 오키나 와 신 기지 건설 반대투쟁, 원전 재가동 반대투쟁도 전개되어, 전쟁법안 반대투쟁에 합류하여 아베 정권은 크게 흔들릴 것이 확실하다. 우리가 목표하는 것은, 무라야마 담화에 기초한 역사인식 위에서 헌법 9조에 근거한 평화 외교를 추진하고,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미일 간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총궐기 행동실행위원회는 당면한 전쟁법안 폐기·아베 내각 퇴진을 내걸고, 전력을 다해 대처할 계획이다. 특 히 8월 30일에 집중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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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아벨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

옌렌커—작가, 중국 인민대 교수

숙녀 신사 여러분, 그리고 평화를 부모님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분들, 이번 회의에 참석하게 되어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회의에 참석함에 있어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방대하고 복잡한 중국 민간을 대표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단지 제가 평화, 따스함, 평온한 삶에 대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 럼 여기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저 개인만을 대표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저라는 사람, 저라는 작가는 이미 26년 동안 군대생활을 한 바 있습니다. 비록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전쟁에 관련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35년 전인 1979년, 전 세계가 주목했던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일어난 국경 전쟁 때 저는 막 입대하여 언제든 참 전을 준비하고 있던 신병이었습니다. 이 시기 저의 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 고 저의 아버지는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저녁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 마을 어귀와 집 뒤뜰에 서 산책을 하거나 물끄러미 앉아 있거나 사방에서 총소리가 울리는 중국 남쪽 국경 지역을 멀리 바라보거나 했 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백여 일의 춥고 무더운 밤의 불면으로 지병이 도져서 끝내 자녀들 곁을 떠났고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아버지께서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수 만 명의 젊은 중국 군인들의 생명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수만 명의 베트남 사람들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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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숨은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전쟁이 저에게 준 가장 직접적인 기억입니다. 전쟁은 인류로 보자면 가장 큰 인위적 인 재난이고, 구체적인 사람과 생명의 각도에서 보자면 미치광이가 낳아 기른 야수로서 나약한 생명을 거칠게 삼 켜 버립니다. 오늘날의 중동 지역에 비하여 우리 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상대적으로 평온한 지역입니다. 역 사 속의 아시아와 세계에 비하여 우리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 중에 그 어떤 나라나 지역과 비교 해도 못하지 않은 생명과 선혈을 바쳤습니다. 여기에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가운데 희생시킨 무수히 많은 무고 한 생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무고한 생명과 선혈은 우리에게 1945년 이후 동아시아, 나아 가서는 전체 아시아에 상대적으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평화헌법 제9조 전쟁 억제에 관한 법률과 조례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사람들은 70년 동안 비 교적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인들은 거리에서 산책하거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게임하며, 젊은이들은 시골에서 연애하거나 도시의 번화한 거리에서 포옹하고 키스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소하고 세속적이며 심지어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모든 일들을 우리 선배들이 겪어온 인류의 전쟁과 함께 연관시키게 되면, 우리는 푸른 나뭇잎의 뿌리가 체험한 지진의 흔들림과 빗 방울 한 개가 만들어질 때 하늘에서 치른 먹장구름과 번개의 싸움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돌이켜 따져보면 한국과 일본, 중국에 있어, 전 아시아와 전 세계에 있어 거리에 있는 걸상이 된 나무 하나 하나가 삼림 화재 이후 다시 소생하여 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모두 조상들 의 경험과 눈물, 재난과 생명과 얽혀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적절하지 않은 비유일지 몰라도 오늘날의 립스 틱도 어제 전쟁의 선혈에서 왔다고 할 수 있으며, 오늘의 포옹과 키스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집이 파괴되 고 가족이 흩어진 데에서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날의 한 번의 약속, 한 번의 여행, 한 가닥의 맑은 공기, 생명이 있는 한 무더기의 녹색 들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삶 속의 모든 것들은 바로 위대한 평화가 가져다주는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평화는 우리에게 오늘날의 상대적으로 안 정된 삶을 만들어 주고 은혜를 베풀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단순하게 생활한다 해도 그것은 부모님이 우리에게 세상 속에서 호흡하며 살 수 있도록 숭고한 생명을 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평화 를 부모님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평화와 생명을 사랑하고 세상 속의 웃음 섞인 대화와 말다툼, 가정을 사랑하 며 여러 나라를 오가며 여행하고 쇼핑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마치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 지를 사랑하듯이.

하지만 근래에 우리 동아시아의 평온한 삶에는 전쟁의 스모그가 발생하고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섬, 바다, 변방지대, 심지어는 동아시아 각국의 내륙에 전쟁의 초연이 잉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평온한 삶은 평화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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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탱했던 바탕이 점점 유실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섬 분쟁, 바닷물 쟁탈, 지나간 전쟁의 죄악과 그리고 생명을 희생시킨 데 대한 태도와 입장에 있어 진상을 숨기고, 사실을 모호하게 하는 등등의 행위들은 모두 동아 시아 평화빌딩의 기초를 부식시키고 파괴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기억의 사슬을 부식시켜 절단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이제 새롭게 쓰여지고 있고, 기억은 도둑을 맞으며 교체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야기된 강 렬하고 가공할만한 민족주의, 나로드니키주의는 지금 막 동아시아 전쟁의 불씨로 되어, 그 불꽃을 확산시키고 있 습니다.

일본, 중국, 한국, 조선(북한), 그리고 중앙아시아 등 지역에서 오늘날 타오르고 있는 비애국적인 민족주의와 애국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민족주의는 내일 전쟁의 불씨가 되어 전체 아시아를 불태울 것이고 전 세계로 번 져나가는 도깨비불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일단의 정치가들이 민족주의 불꽃을 점화시키고 이용하고 있는데, 이는 민족주의가 약해지거나 사라지기 어려운 근원 중의 근원, 뿌리 중의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 평화헌법 제9조 에 대하여 수정하려고 하는 일본 정부의 집착과 고집은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가 과도하게 동원되고 이용된 결과 입니다.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도 대체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 다. 정치가들은 전쟁을 앞에 놓고 권력과 정치를 위하여 종종 히스테리 환자가 되는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 키는 이러한 일본 정객을 술에 취한 미치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민족주의적 대중들은 히스테리적 정치가의 몸 속에서 가장 활동적인 세포가 되고 술에 취한 정객의 알 코올과 맛있는 요리가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히스테리적 정치가들의 혈액과 세포가 되지 않고, 술에 취한 정객의 알코올과 맛있는 요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정객들로 하여금 권력과 전쟁의 모략가가 되지 않게 하고, 우리와 우리의 삶을 모략가들의 바둑판과 희생되는 병졸이 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오 늘 우리가 마주하고 깊이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카인과 아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성적이고 깨 어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이는 우리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가, 지식인과 백성들이 모두 직면한 문제입니다. 주지 하다시피 카인은 남동생을 죽일 때 그 역시 인류의 아이라는 것을 잊었고, 같은 부모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 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동생의 뒤통수에 세게 일격을 가해 동생이 죽자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버립니다. 그의 동 생 아벨은 선량하고 단순하여 형의 음모에 대해 형제 간의 사랑과 전혀 의심할 줄 모르는 순수함을 보여주었습 니다. 이런 순수함의 결말은 결국 아벨의 무고한 죽음으로 귀결된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전쟁을 회고해볼 때, 동 아시아의 칼부림과 총성을 돌이켜볼 때, 우리는 인류의 전쟁이 모두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일의 끝없는 반복과 확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권력을 위한 정치가들이 다툼 가운데 항상 성공적으로 카인의 역할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모두 우리가 자연스레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아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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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1. 동아시아 평화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체제와 일본 평화헌법

그런데 오늘날은 인류가 1차와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뒤입니다. 우리 중국과 한국, 조선(북한), 그리고 기타 지역은 차마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또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쟁의 재앙을 경험했기에, 이제 우리는 아벨이 되어 서도 안 되고 카인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피의 죽음의 교훈을 얻고 깨어 있는 사람들입 니다. 우리는 깨어 있기에 카인의 음모와 비이성에 대항해야 하지만, 또한 카인으로 하여금 비이성 가운데 깨어 나서 더 이상 잔인한 살인을 음모하는 자가 아닌 이성적이고 깨어 있는 인류의 구성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 다. 살인자 카인, 피살자 아벨, 그리고 양자를 일깨워주면서 초월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이성적인 사람, 이는 인류 가 담당해야 하는 세 가지 역할이고, 또한 우리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가, 지식인과 일반 백성들이 오늘날 반드시 선택해야 할 역할입니다. 우리가 전자를 선택하는 것은 죄악을 선택하는 것이고, 아벨을 선택하는 것은 새로운 또 한 번의 피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지막 역할을 선택하게 되면 우리는 카인이 아니면 아 벨이라는 패러독스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감정, 사랑과 이성을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간단한 시비나 전쟁과 비전쟁이라는 단순 구도를 넘어서서 인류는 이성에 의해서 수호되는 영구적인 평화를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숙녀 신사 여러분, 일부 정치가와 정치 미치광이가 볼 때는 이러한 선택이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울 것입니다. 설령 유치하고 우스꽝스럽다고 할지라도 저는 여기에서 정중하게 입장을 밝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를 대표할 수도 없고, 또한 방대하고 복잡한 중국 민간을 대표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단지 제 자신을 대표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저에게 반드시 카인과 아벨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저는 카인이 아닌 역할을 맡 을 것입니다. 만약 과거의 카인과 아벨과 오늘날의 깨어 있는 동아시아 사람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저는 오 늘날의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동아시아에 도래할 전쟁 가능성을 놓고 만약 이 전쟁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다면 저는 물론 정의의 편에 설 것입니다. 만약 인류가 갈수록 ‘문명’해져서, 사람들이 역 으로 더욱 야만적이고 교활해져서 전쟁의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저는 모든 전쟁의 반대편에 설 것입니다. 아벨처럼 쓰러질지언정 카인처럼 살아남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오늘 동아시아의 한 작가 의 보잘것없는 노력으로 길거리 공원에 노인이 앉고자 하는 그 의자와 어린이들이 부르고 싶어 하는 동요 한 수 를 남게 할 것입니다. 들, 삼림, 강과 오늘날 우리의 자잘하고 일상적이지만 또한 따스하고 세속적인 모든 것들을 남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개미 한 마리의 힘을 믿으며, 문학, 예술, 삶 속의 모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만 약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전쟁이나 전쟁 가능성을 억제할 수 있는 개미 같은 자신의 힘, 이성을 보탠다면, 전쟁의 야만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일찍이 한 인터뷰에서 자기 나라와 영국이 포클랜드 군도 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에 대하여 두 명의 대머리가 빗 하나 때문에 싸우게 된 꼴이라고 비유한 바 있습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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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물론 작가의 유머와 풍자이기도 하지만 문화와 지혜의 초월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을 수정해서 이 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의 장정들이 불모지를 둘러싸고 싸우게 하느니 차라리 그들더러 이 불모지에 흙을 갈고 경작을 하게 하자고. 어떻게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과거의 아벨로 하여금 오늘날의 깨어 있는 사람이 되게 해서 카인이 우리 뒤통수를 치는 것을 예방하고 막아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카인 으로 하여금 ‘카인’으로부터 깨어나게 해서 카인을 넘어서는 이성적인 사람, 즉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되게 하 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깨어 있는 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기만 하다면 우리는 길가의 의자를 길을 걷는 노 인에게 영구히 남겨 줄 수 있고, 책가방을 공부하는 아이에게 영구히 남겨 줄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지도 우리로 인해 녹지대로 바뀔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번역: 박재우(한국외대 교수), 김영명(한국외대 강사)


세션 2

핵

재 앙 으 로 부 터 의

한 반 도

비 핵 화 와

동 아 시 아

자 유 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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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

서주석—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7월 15일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더 커졌다. 이란 핵합의가 순조롭게 이 행될 경우 탈냉전 이후 국제사회가 직면해온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문제 가운데 사실상 북한 핵문제만 남게 된다. 이 글은 현 시점에서 북한 핵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고찰하고, 이란 핵합의의 교훈을 통해 현재의 6자회담 교착 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6자회담 중단과 북한 핵 상황 잘 알려진 대로 북한 핵문제는 1990년대 플루토늄 재처리 문제로 1차 위기가 있었고, 2002년 10월 미국의 고 농축우라늄(HEU) 의혹 제기 이후 2차 위기로 치달았다. 당시 북한은 HEU 의혹을 부인한 채 재처리를 재개했고, 2003년 8월부터 6자회담이 개최되어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시도됐다. 2005년 2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 나온 뒤 협상이 본격화되고 그 해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어 포괄적·단계적 해결 방안이 나왔으나, 미국의 대북 금융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을 담았으며 소속 기관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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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2.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제재로 이행이 지연되어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 강행됐다.

그 뒤 북한 핵문제는 반전을 거듭한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를 통한 대북 압박과 함께 미국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으로 협상이 재개되어 2007년 초기 단계 조치에 대한 2.13 합의와 다음 단계 조치에 대한 10.3 합 의가 나왔다. 2008년 6월 북한의 핵신고와 5MWe 원자로 냉각탑 폭파가 이루어지고 그 해 10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지만, 검증 방안에 대한 이견이 불거져 12월 수석대표회담을 끝으로 6자회담이 중단됐 다. 북한은 2009년 4월 장거리로켓을 발사하고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했으며 6월에는 우라늄 농축 선언을 한 뒤 2010년 11월 농축시설을 공개했다. 또 북한은 2012년에 미국과 2.29 잠정합의를 했지만, 모라토리움을 깨고 4월 과 12월에 장거리로켓을 다시 발사한 뒤 2013년 2월에 3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협상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 노력이 중단되면서 북한 핵능력은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2008년에 일 단 가동 중단됐던 5MWe 원자로는 2013년 이후 재가동을 시도하고 있어 플루토늄 보유량이 종래의 추정치 30~40kg 내외에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 북한은 2010년 공개한 농축시설에서 매년 40kg 가량의 고농축우 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만약 별도 비밀시설이 가동된다면 그 규모도 늘어날 것이다. 이로 미 루어 추정컨대 현재 북한은 플루토늄 핵탄두 6~7개, 우라늄 핵탄두 10개 내외를 제조할 수 있는 무기급 핵물질 을 보유하고 있고, 장차 5MWe 원자로의 폐기물 재처리와 지속적 우라늄 농축을 통해 매년 3~4개 이상 더 제조 할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핵무기는 투발수단인 미사일 기술의 향상을 통해 더욱 위협적 수단이 되고 있다. 2012년 12월 인공위 성 발사 성공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가능성을 높인 사건이었다. 북한은 태평양의 괌까지 타 격 가능한 사정거리 3,000km 이상의 무수단 미사일을 수십 기 보유하고 있고, 일본의 주요 지역을 공격할 수 있 는 사정거리 1,300km의 노동미사일 200여 기와 한반도 전역을 목표로 하는 사정거리 350~500km의 스커드 B, C 미사일은 600여 기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2014년 이후 단·중거리 미사일 기술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시험 발사를 하고 있어 핵탄두의 소형화와 미사일 장착이 거의 가능한 단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또 지난 5월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까지 단행되어 향후 수년 뒤에는 전력화까지 가능할 것도 보인다. 바야 흐로 북한의 핵능력은 점차 커지고 가까워지고 위험해지고 있다.

+ 북한이 재처리를 통해 확보한 플루토늄 추정치는 대략 45~50kg이다. 그 중 6~10kg을 세 차례 핵실험에 사용한 것으로 추 정되고, 5MWe 원자로 재가동시 매년 6~7kg의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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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무용론과 회담 재개 논의의 교차 6자회담이 중단된 것은 대북 불신이 심화되고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북한 핵문제의 협상을 통한 해결이 힘 들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사실 9.19 공동성명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 각하여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자는 것이었다. 이는 북한의 현존 핵무기와 핵프로그램 폐기를 위해 한반도 비핵화 및 대북 불침공,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과 대북 경수로 지원, 북미 및 북일관계 개선, 대북 경제지원,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등 관련 이슈를 모두 포괄한 것으로,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마련되기 전에 미국 의 대북 금융제재가 강행되면서 북한이 1차 핵실험으로 반발했고 협상 무용론을 촉발했다.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를 통해 단계적 행동계획이 마련된 뒤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 재 해제가 지연되면서 후속 합의들의 이행도 지연됐고 결국 이듬해 6월에야 북한의 핵신고가 이루어졌지만, 검 증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불거졌다. 다음 달 6자회담 2차 수석대표회담을 통해 시설 방문, 문서 검토, 기술인력 인터뷰 등 검증 3원칙을 담은 7.12 합의가 채택됐지만,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시료 채취와 미신고 시설 방문 문 제에 대한 합의가 계속 미뤄졌다. 결국 그 해 말 3차 수석대표회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합의가 불발하면서 6자 회담은 기약 없는 중단의 길에 접어들었다.

2008년은 북한 핵문제뿐 아니라 남북관계까지 악화일로를 걷던 시기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 비핵· 개방·3000 공약에 대한 북한의 반발에 직면했고 그 해 7월 남북 간 기존 합의의 재검토와 이행을 제안했지만 당 일 일어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그 다음 달에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뇌졸중 으로 쓰러지고 북한체제 위기론이 부상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장기 중단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붕 괴’와 체제 압박에 치중했고, 이는 6자회담의 중단뿐 아니라 이듬해 출범한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영 향을 미쳤다. 대선 공약으로 대북 직접대화를 내세웠던 오바마 대통령은 그 해 봄 장거리로켓 발사부터 시작된 북한의 공세를 못마땅해 했고,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먼저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도록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무 대책을 의미하는 ‘전략적 인내’ 노선을 견지했다.

2010년 3월의 천안함 폭침사건과 11월의 연평도 포격사건은 최악에 이른 남북관계를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역으로 이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한반도에서 더욱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11년 1월 미중 정상은 워싱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아울러 비핵화를 위해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6자회담 재개를 촉구했다. 그 뒤 미중 주도로 남북대화 →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 →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나오고 그에 따라 수석대표 간 접촉에 이은 6자회담 재개가 논의됐지만,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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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2.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한의 진정성 있는 선조치가 거듭 강조되면서 북·중을 중심으로 한 시도는 다시 무산됐다. 또 앞서 언급한 대로 2012년 북미간 2.29 잠정합의가 있었지만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로 무효화됐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탐색적 대화 논의 2013년 2월의 3차 핵실험 이후에도 상황은 여전했다.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대해 한미연합 키리졸브 연습 기간 미국의 전략무기가 전개됐고 이에 북한이 강력 대응하는 등 한반도 군사정세가 극도로 엄중해졌다. 그 해 3월 말 북한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을 공식 채택했고 다음 달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을 채택하여 “핵무력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강화·운용한다는 방침을 구체화했다. 그런 북한이 그 해 6월 “핵보유국의 지위는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가 실현되고 외부의 핵위협이 종식될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자 정책적 과제”라며 ‘조건 없이’ 북 미 간 고위급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하자 미국은 냉담한 태도를 보였고, 그 뒤로도 회담 재개 문제는 진척이 없 었다.

2014년까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의 진정성 있는 선조치를 요구하던 상황은 최근 들어 변화한 것으로 보 인다. 지난 1월 북한은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지할 수 있다”면서 이 문제와 관련 한 미국과의 대화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이 시기 한국을 포함한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핵화 대화를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토대로 본 협상에 앞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탐색적 대화(exploratory talks)’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 려졌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중요하다고 밝혀 온 한미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촉 구해 온 중러 및 북한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반영한 타협안으로 해석된다.+

6자회담 참가국들의 탐색적 대화 노력은 올해 5월 일본에서 개최되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 계기에 북한 과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나, 북한이 이 회의에 불참하면서 무산됐다. 5개국의 6자회담 차석대표들이 모인 도쿄 회동에서는 북한의 전향적 대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실효적 압박 방안이 논의됐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 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북한 외무성은 “때가 늦었다”면서 전제조건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다 시 주장했다.

+ 「연합뉴스」, 2015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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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상 타결의 의미와 교훈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저간의 사정을 살펴볼 때 7월의 이란 핵협상 타결로 이 문제에 바로 돌파구가 열릴 것으 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접근에 도움이 되는 교훈도 찾을 수 있다. 이란 핵협상은 2002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다고 알려진 지 13년, 2013년 이란의 온건파 정부가 집권한 뒤 국제협상에 다시 들어간 지 21개월 만에 타결됐다.+ 협상에는 미국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보 유국인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과 EU까지 참여했다.

이 합의에서 이란은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추구 또는 개발하거나 확보하지 않을 것을 재확인”했다. 또 이 란은 향후 10년간 원심분리기를 2/3 가량 폐기하고 15년간 저농축우라늄도 98% 감축하며, 15년간 새로운 우라 늄 농축시설이나 중수로를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 또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군사기지 등 모든 시설을 사찰하도록 허용했고, 올해 말까지 합의 이행시 미국과 EU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체되지만 불이행시에는 스냅 백(snap back) 조항에 의해 65일 안에 제재가 복원된다. 또 유엔의 무기금수는 향후 5년, 탄도미사일 제재는 8년 간 유지된다.

이번 핵합의는 이란의 평화적 핵농축 활동을 제한적이나마 인정하면서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점 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은 7월 말 외무성 대변인 문답을 통해 “이란 핵합의는 자주적인 핵활동 권리를 인정받고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장기간의 노력으로 이란이 이룩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합의는 무엇보다 당사 자의 협상 타결 의지로 성사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이란은 로하니 정부 출범 이래 과거 강경 아흐마디네자드 정권의 핵대결 정책을 접었고, 미국도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다. 국무부의 웬디 셔먼 정무차관이 나서서 회담을 이끌었고, 막바지에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18일간 빈에 머물면서 협상 타결을 주도했 다. 여기에 다른 참가국들, 특히 이란과 특수한 관계를 맺어온 러시아가 적극 중재 역할을 해내면서 긴 협상에 종 지부를 찍었다.

이란 핵협상 결과를 북한 핵문제에 바로 연결하는 데에는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 의혹을 받던 이란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통해 세 차례 핵실험까지 한 북한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케리 국무장관 은 이란 핵 청문회에서 “핵무기를 만들고 폭발시키고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한 북한과 달리 이란은 그 어

+ 아래 서주석, “이란 핵협상 타결과 북한 핵,” 「IFES(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현안진단」, 2015년 7월 20일 (http://ifes. kyungnam.ac.kr/kor/PUB/PUB_0501V.aspx? code=FRM150720_000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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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2.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느 것도 하지 않았다”면서 차별성을 강조했다. 또 강경파인 전임 아흐마디네자드 정권에서 불거진 핵문제를 선 거 후 집권한 이란의 로하니 정부가 협상을 통해 풀었지만, 북한은 김정일 시절 시작된 핵개발 노선을 김정은 제 1위원장이 답습하고 있고 정권 교체의 가능성도 사실상 전무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노력 현재 8월에 예정돼 있는 한미연합 을지포커스가디언 연습과 10월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새롭 게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북미 간에는 벌써 한 차례 논란이 오갔다. 미국은 여러 차례 당 국자 발언을 통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협상 의지를 보일 것을 강조했고, 북한은 앞서의 외무성 대변인 문답을 통해 “일방적으로 먼저 핵을 동결하거나 포기하는 것을 논하는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으로서는 과거 리비아처럼 핵포기가 우선될 경우 체제 존립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미국의 협상 의지도 오랜 협상과 중단, 그리고 거듭된 약속 불이행으로 크 게 약화돼 있고, 중재 내지 협상 촉진자로서 중국이나 한국의 역할도 많이 약화돼 있다.

지난 7월 말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합동군사연습과 같은 적대행위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갈 결단을 내린다면 대화도 가능해지고 많은 문제들이 풀릴 수 있다”는 입장을 재천명한 바 있으며, 한미일 3국은 도쿄에서 열린 6자 회담 차석대표회담에서 “북한의 추가적 도발을 억지하고 북한의 의미 있는 비핵화 협상 복귀를 위해 강력한 압 박과 적극적인 대화 노력을 병행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 그렇지만, 이란 핵협상 타 결 과정을 통해 협상국 외교장관들의 공감대가 일정하게 형성돼 있고 평화적 핵활동이나 검증에 대한 실무적 협 의의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최근의 상황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돌파구 모색에 매우 중요한 시 점이다. 비상한 외교적 노력을 통해 9월 유엔총회 계기에 북핵 관련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

강조컨대 6자회담 무용론에 입각하여 대북 압박과 군사적 조치만 강조하는 것은 비용이 클뿐더러 문제의 실질 적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다. 대북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을 굴복시키고 나아가 체제 붕괴까지 도모하는 방안도 중러 등 배후국이 엄존한 상황에서 실효적이지 못하다. 결국 북한 핵문제에 대한 협상의 장을 다시 열어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 등 상황 악화 조치를 유예하고, 더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 모색에 나서야 한다. 곧 비핵 화 진전 대 상응조치와 더불어 단계적 이행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탐색적 대화 또는 6자회담 재개 계기에 이를 관련국 및 북한과 공유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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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공동성명 당시 협상 대표였던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은 6자회담 재개시 2.29 잠정합의에 따른 핵·미사일 모라토리움 이행과 대북 인도 지원부터 합의해 나가고, 그 뒤 2.13 합의 잔여부분으로서 대북 중유지원 잔여분 25만톤 이행과 함께 불능화된 부분과 향후 폐기될 부분을 분리하여 검증하는 방법을 제안한 바 있다.+ 아마도 그 다음 단계에 들어갈 부분은 북미 및 북일관계 개선과 포괄적 대북지원,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이 될 것이다.++ 해방 70년을 맞는 올해, 북한 핵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분단 극복과 장기적 통일까지 시야에 둔 창 의적 접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송민순, “북핵 문제 해결의 길,” 「KINU 통일+」, 2015년 봄호, 14~15쪽. ++ 한미연합 군사연습에 대한 북한의 요구는 결국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것으로 1992년 팀스피리트 연습의 일시 중단이 한 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등 성과를 가져온 역사적 경험과 더불어 남북관계의 진전 상황이 함께 고려되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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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2.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스콧 스나이더—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북한과 관련해서 과제로 떠오른 근본적인 역설(逆說) 중 하나는 평화와 비핵화 사이의 관계이다. 평화와 비핵 화 간의 관계와 그에 관련된 정책에 대한 본질적 의문은 북한의 비핵화 없이 남북 간에 영구적 평화 수립의 진전 이 가능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문제는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평화체제 추구에 있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인가? 영구적 평화체제를 향한 발걸음과 동시에, 과연 나란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남북 간의 영속 적 평화는 오로지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것인가?

이 주제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국제관계 연구들이 핵무기 획득과 국제 안정성 간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있는 반 면, 핵무기 보유와 영구적 평화 수립 사이의 관계를 고려한 연구 사례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나 두 나라 간의 관계가 주로 경쟁으로 특징지어지는 상황에서 일반적으로는, 핵무기가 없는 나라가 핵무기 획득에 대해 강 하게 자극받을 것이라든가 아니면 비 보유국에서 핵무기 획득 국가가 상대국에 대해 가지게 될 이점들을 와해할 조치를 취할 거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참고할 만한 현실 세계 사례의 희소성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핵무기 획득은 그 자체로 한반도 및 이 지역의 평화

+ 제임스 L 쇼프, 야론 아이젠버그 참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다음 단계는?” 프로젝트 중간 보고서, 외교정책 분석연구소, 2009년 5월. http://www.ifpa.org/pdf/PeaceRegimeInterimMay0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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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안정의 함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연구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 사례는 다음과 같은 학설들을 촉진시켜 왔다.

첫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심리적으로 북한 지도자를 대담하게 만들어, 자신의 핵무기가 상대국의 반격을 확 전 가능하지 않도록 제한함으로써 소규모 긴장상태를 위험부담 없이 도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가정 하에, 비대칭적이고 소규모 패턴을 가지는 도발을 계획하도록 만들어 불안정을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통 해 북한이 끊임없이 감지되는 외침의 맹공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핵 억제력을 획득할 것을 공적 담론에 서 더 활발하게 언급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북한의 도발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다.++

둘째, 핵무기 보유는 재래식 군사력의 심각한 비대칭적 열세 상황에서 북한이 외부 침공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방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주장으로, 이 견해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기 획득은 북한의 안보 불안을 완화하면서 북 한 내부 경제상황 개선 노력 등을 포함하는 여타의 국가적 목표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어줌으로써 안 정을 가져왔다고 보인다.

셋째,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남한과 일본 내 핵무기 보유 필요성 논란을 재점화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새로운 군사력에 대비하는 억제력 확장 약속을 보장하게 하는 새로운 압력을 가하게 되므로 주변 지역 불안정의 주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 내에서, 특히 한국 평론가들의 핵 주권 논의 혹은 한국으로의 미 전술 무기 재도입 촉구 등 자위(自衛) 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졌다. 또한 한국은 향후 한국에 대한 북한의 군사 공격 발생 시 북한에 대한 한국의 강력한 보복 결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국방정책을 수정하기도 했다.+++ 일본에 서는 북한 핵무기 획득으로 인해 북한의 위협을 이론상 선제적으로 무효화하기 위한 공격적 군사력 획득 필요성 논의가 촉발되었다.++++ 한국은 2009년과 2012년 발표된 두 번의 공동성명을 통해 확장된 억제력과 관련한 미국의 분명한 약속을 받았으며, 미국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와의 회담에서 확장된 억제력을 둘러싼 정책과 계획

+ 스콧 스나이더, 변시원, “천안함 그리고 연평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동북아시아의 대응” RUSI 저널 156, 제2호 (2011년): 74-81. http://asiafoundation.org/resources/pdfs/201104SnyderandByun.pdf ++ “NDC[북한국방위원회] 핵 억제력으로 한-미 군사훈련에 대항” 북한조선중앙통신, 2010년 7월 24일. http://www. kcna.co.jp/index-e.htm +++ 타냐 브래니건, “연평도 포격 후 한국 측에서 북한에 대해 ‘엄청난 보복’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다”, 가디언지, 2010년 11월 23일. http://www.theguardian.com/world/2010/nov/23/north-korea-condemned-south-korea. ++++ 실라 A 스미스, “일본의 전략적 사고 속 북한”, 아산 포럼, 2013년 10월 7일. http://www.theasanforum.org/ north-korea-in-japans-strategic-thinking/#29. 대니얼 A 핑크스톤 및 카즈타카 사쿠라이 참조. “일본의 북한에 대한 미 래 선제 공격 준비 논의”, 한국국방분석저널 18, no.4, 2006년: 95-121. http://cns.miis.edu/north_korea/Pinkston_ Sakurai_KIDA_Winter_200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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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 쌍무위원회(雙務委員會 혹은 양자위원회 兩者委員會)를 열었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영구적 평화 수립의 전제 조건으로 여기고 있지만 관계 정상화를 외교 정상화 및 북한 비핵화를 향한 평화 프로세스 구축과 연결하려는 의향을 보였다. 이러한 연결은 2005년 6자 회담으로 분 명하게 구현되었으며, 이 회담에서 참여 당사국들은 북한과 미국 그리고 일본 간의 외교 정상화와 동시에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어낼 프로세스의 일부로 “적절한 포럼+에서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에 대해 협의”하기로 서약했다. 6자회담 부재 동안 이 정책의 또다른 표현은 북한 비핵화를 조건으로 하는++ 미국-북한 간 관계 정상화에 대한, 그리고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의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미국 정부의 일관 된 입장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영구적 평화 달성을 위한 미국과 북한의 그 어떤 진지한 쌍무적(雙務的) 노력의 시작에 대해서도 비핵화를 본질적 전제 조건으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한국과 북한이 반 영구적 평화 공존 수립 을 향한 실질적 단계를 추구할 수 있었더라도, 그러한 프로세스는 어떤 지점에서 아마도 한-미 동맹 관계 충돌을 야기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미국의 평양에 대한 “적대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들려는 북한의 노력은 대부분의 미국 관리들 사이에서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것이며 화제의 방향을 돌려 비핵화를 피해보려는 북한의 노력으로 치부되어 왔다.+++++ 2005년 9월의 6자회담 공동성명 실행에 기반을 둔 “행동에는 행동으로”라는 공식에서 북한이 벗어난 결과, 이는 북한의 여타 도발과 합쳐져 대화 단절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북한은 “북미 관계 정상 화가 먼저고, 비핵화는 차후 논의”라는 입장으로 선회하여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 과정 혹은 결과로 수용 가능한 핵심 요점을 정면으로 부정했고, 그 결과 두 나라 간 외교 활동이 결렬되었다.++++++

미국과 북한은 2011년과 2012년에 열린 3차례의 회담에서 좀 더 많은 외교기반 회복을 시도했으나 결국 양국 간 윤일(閏日) 합의로 끝나,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제한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되었음에도

+ “제 4차 6자회담 공동 성명”, 베이징, 2005년 9월 19일. http://www.state.gov/p/eap/regional/c15455.htm. ++ 쇼프와 아이젠버그, 2009: 3-4. +++ 쇼프와 아이젠버그, 2009: 11. ++++ 스테파니 네버해이, 톰 마일스, “북한은 미국이 적대를 그만두면 핵 관련 회담을 계속하겠다고 발표”. 2013년 7월 10 일, 로이터. http://uk.reuters.com/article/2013/07/10/uk-korea-north-un-idUKBRE9690VB20130710 +++++ 글린 데이비스 특별대표가 토쿄에서 외무성 기자회견 시 언급, 2013년 11월 25일. http://iipdigital.usembassy.gov/st/english/texttrans/2013/11/20131125287875.html#axzz2pk9Ju1Fi; ++++++ 톰 도닐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아시아 소사이어티 “2013년 미국과 아시아태평양”에서 언급, 2013년 3월 11일. http://www.whitehouse.gov/the-press-office/2013/03/11/remarks-tom-donilon-national-security-advisorypresident-united-states-a +++++++ 쇼프와 아이젠버그, 2009: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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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하고 북한이 탄도 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다단계 로켓 발사를 계속 고집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결렬된 6자회 담 합의 파기 이전인 2008년 말 전 상태로 되돌리기로 했다.

북한이 국제 사찰의 감시망을 벗어나 핵 프로그램 개발을 계속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 복귀할 기반을 계속 훼 손하고 있다고 미국은 보고 있으며, 북한은 “방향 전환”도 없고 말과 행동을 통해 6자회담 하에서+ 진정한 협상 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향도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이 없으므로, 오바마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북한의 평화 회담 요청을 거부했고 이를 협상 주제 전환 및 북한 비핵화 요청을 피하려는 무의미한 시도로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 획득은 평화 회담의 본격 진행에 있어 근본적인 장애물이 되었으며, 북 한 측의 진실한 비핵화 추구 약속에 대한 증거 없이 미국이 북한과 쌍방 간 혹은 다자간 평화 협상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몇몇 개별 분석가들은 미국이 북한을 그냥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북한이 사실상 핵 무기 보유국이며 핵무기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무런 쓸모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넷 램버그와 시그 해 리슨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소수의 개별 분석가들 중 하나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평양에 대한 미국의 노력은 북 한 핵 프로그램의 총 역량을 알아내는 것에 집중되어야 한다. 해리슨은 “평양과의 긴장을 해소한 뒤에라야 단계 별 쌍방 양해를 통해 북한의 우라늄 처리능력이 알려진 바와 같은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고, 그 후에라야 정확 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을 억제하려는 외교적 노력은 이제껏 실패해왔고, 국제적인 비난 및 전면 전쟁을 포함하는 군사 행동으로 발생 가능한 결과들은 미국의 북한 대처를 제재로 일관하게 했다. 나쁜 행동에 대한 응보보다는, 북한을 핵 보유 국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현실이라고 램버그는 썼다. 이전의 노력들— 외교적 노력이든 제재 조치든—은 북한의 지속성을 과소평가했다. 미국은 이제 “그들을 제거하려는 돈키호테 같은 노력을 계속”+하기보다는, 북한 위험 을 관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실질 상태를 인정하는 것은 군축협정을 기반으로 하는 협상에 참여하기 위한 북한의 전제 조건을 수용하는 것이며, 이는 아마도 논의를 북한 비핵화를 강제하려는 강압적 조치에 수반되 는 일방적 협상이 아니라, 상호 간 이익을 다루는 것으로 규정하게 될 것이다.

+ 웨스턴 S 코니시, “북한 비핵화: 위험 감소에 대한 다자간 접근방식 탐색과 평화체제 구축”, 외교정책 분석연구소, 2011년 9월: 15-16. http://www.ifpa.org/pdf/DenuclearizingNorthKorea.pdf ++ 셀리그 S 해리슨, “북한은 거짓말을 했는가?” 외교 지(誌) 84, no.1 (2005년): 99-110. +++ 베넷 램버그, “북한 핵무기에 대처하기” 예일글로벌, 2011년 1월 10일. http://yaleglobal.yale.edu/content/ dealing-nuclear-north-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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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은 현재 협상의 최대 걸림돌을 없앨 수 있다는 장점을 갖지만, 설사 이 같은 인정이 비핵화를 달성하려 는 협상 노력을 배가시킨다 하더라도, 많은 평론가가 우려하는 바와 같이 사실상 핵 보유국 북한을 잠자코 따르 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대가를 필요로 한다. 북한의 핵 상황의 현실에 대한 인정을 북한 측에서 자신의 지위에 대한 국제적인 공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로 하여금 이러한 행동방침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 정부 내에서 이러한 주장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거나 정부 정책토론의 일부로서 진지하게 고려할 대안으로 제안하는 그 어떤 책임있는 관리도 찾기 어렵다.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는 수십 년이 걸리는 장기 과제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그 사이에 북한의 추가적인 핵 능력 개발을 막거나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이 실질적인 핵 프로그램을 가지는 위험을 막을 수 있을만한 단기적인 핵무기 확산방 지 조치들에 대부분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긴장 완화에 대해 논의하거나 평화 공존을 달성하기 위한 여 타 조치들을 한반도 안정화를 위해 유용한 단기적 조치로 간주하여 핵 개발에 계속 방점을 찍는 것을 막거나 늦 출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도 가능하며,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면 결국에는 북한이 군사력의 주력으로 핵무기를 강 조하는 것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방책들은, 북한이 그간 한반도 평화 조치들을 핵무기 획득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왔다고 인식하는 한, 수 상쩍은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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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지속가능 에너지를 향해

이이다 테츠나리—일본 환경에너지정책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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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평화와 생태를 위한 서울시의 역할

지영선—녹색서울시민위원회 공동위원장

서울은 면적상으로는 대한민국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1/5인 1천만 명이 모여 사는 초거 대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총생산의 22%, 은행예금의 무려 51%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서울의 역할과 비중은 무겁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가 최근 중앙정부에 앞서서 탈핵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 적 환경생태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2012년부터 서울시가 역점을 두며 추진하고 있는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과 지난 4월 ICLEI(세계 지속가능도시 네트워크) 총회에서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서울의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에너지와 전력을 어떻게 생산 공급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본래 중앙정부의 소관사항이다. 지난 해 확정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지난달 확정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은 중앙정부의 업무이지, 지방정 부인 서울시가 간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5대 원전대국인 대한민국은 산업발전에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공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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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차원에서 1978년 처음 원전의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원전의 비중을 높여왔다. 7차 전력수급기본 계획(2015~2029년)에 따르면, 2029년까지 전력 중 원전 비중을 28.2%로 끌어 올리고,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4 기, 건설·계획 중인 원전 10기 외에 2기를 추가로 신규 건설할 계획이다. 산업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원전을 증설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일관된 에너지 정책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2012년 수요 감축과 함께 원전을 점차 줄여나간다는 독자적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다. “에너 지 위기와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수요 감축과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한 종합대책을 시 민과 함께 수립 추진”하며 “2014년까지 최소한 원전 1기(1GW급)에서 생산되는 전력량을 절감하고, 장기적으로 2020년까지 전력자급률 2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대부분의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서울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지 생산하는 곳은 아니다. 2011년 당 시 서울의 전력 자급률은 2.8%였다. 9년 사이에 그 비율을 7배로 끌어올리기로 한 것이다. 앞당겨 결과를 말 하자면 서울시는 ‘원전 하나 줄이기’ 목표시점인 2014년 말보다 6개월 앞당겨 에너지 200만TOE(석유환산 톤)을 절감해,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이 정책은 지자체의 단순한 ‘에너지 절약운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서울 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탈원전-탈핵이라는 에너지정책의 커다란 방향 을 명확히 한 것이다.

수도 서울의 이러한 행보는 1차적으로 다른 지자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아가서는 국민의 에너지 소비행태 를 바꾸고, 중앙정부의 에너지정책을 바꾸는 데도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원전 하나 줄이기’는 그것 자체로도 주목할 만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종합적인 환경생태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울시가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ICLEI(세계 지속가능도시 네트워크) 총회에서 세계 1,200여 도시 지도자들 앞에서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서울의 11가지 약속’에 그러한 환경생태정책이 잘 표현되어 있다.

11가지 서울의 약속은 다음과 같다.

① 서울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020년까지 25%, 2030년까지 40%를 줄여 저탄소 에너지고효율 도시를 실현한다. ② 기후변화 취약계층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에너지 나눔을 실천하여 에너지 복지도시를 구현한다. ③ 온실가스 배출원과 대기오염 배출원의 통합관리를 실천하여 서울시를 기후변화 대응 모범도시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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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기후변화에 강한 회복력 있는 도시를 만든다. ⑤ 재사용, 재활용을 늘리고 음식물쓰레기를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한다. ⑥ 물 낭비를 줄이고, 빗물을 가두고 활용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한다. ⑦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사는 생태도시를 만들어 기후변화 적응성을 높인다. ⑧ 생활 속 도시농업을 활성화한다. ⑨ 폭염, 감염병 등 건강 위험요인을 예방하고 기후변화 적응역량을 키워 건강한 도시를 만든다. ⑩ 기상재해에 대한 예방과 대응역량을 키워 안전한 도시를 만든다. ⑪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국내외 공동협력과 이행체계 구축에 앞장선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당면한, 어쩌면 가장 심각하고 복잡한 위험이다. 기후변화의 위기 극복 또한 국가적 과제이 지만, 구체적인 실천영역에서는 도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현재 ECLEI(지속가능도시 네트워 크)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데, 서울이 추진하고 있는 종합적인 환경생태정책은 국내 다른 지자체들 뿐 아니라 외 국의 다른 도시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탈핵을 위한 한걸음-원전 하나 줄이기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은 서울이 엄청난 전기를 소비하면서, 그 거의 전부를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타 지방에서 생산된 전기를 끌어다 쓴다는 자성에서 출발한다. 서울의 연간 전력소비량은 49.565GWh(2011년) 로 국가 전체 소비량의 10.9%를 차지하는데, 전력 자급률은 2.8%에 불과하다. 반면 당진화력 등이 위치한 충남 은 304%, 한빛(영광)원전 등이 위치한 전남은 272%, 월성원전 등이 위치한 경북은 170%(2011년 추정) 등 지역 에서 사용하는 것의 몇 배에 해당하는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듯 먼 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장거리 송전하는 것은 효율도 떨어지거니와 밀양 사태에서 보듯 송전선로를 둘러싼 심각한 갈등도 초래하고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전력의 소비증가로 수급불안 등 위기에 대한 대응 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2010년 5.5%였던 전력예비율은 2011년 1%로 떨어졌으며, 2011년 9월 15일엔 늦더 위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전력대란’에 대비 하기 위해서도 수도 서울의 ‘에너지 자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석에너지 고갈에 따른 고 유가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에너지 수요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고, 또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적인 탈 원전 분위기 속에서 전력소비 절감을 통해 원전을 줄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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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서울은 2014년까지 전력자급률 8%, 2020년까지 20%를 달성해 에너지 자립기반을 구축한다는 비 전을 세웠다.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 목표로 에너지 소비절감과 신재생에너지 생산 확대를 통해 2014년 까지 원전 하나만큼의 전력소비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생산 확대를 통해 전력 2392GWh, 열에너 지 20만TOE를 대체하고, 소비절감으로 전력 6750GWh 석유도시가스 101만TOE를 줄여, 전체적으로 영광5호기 의 생산량에 해당하는 전력 9142GWh를 절약하고, 석유도시가스 121만TOE를 절약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6개 분야 78개 사업을 계획했는데, 그 중에서도 10대 핵심사업은 지속가능한 환경생태도 시를 향한 서울시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① 도시 전체가 태양광발전소인 햇빛도시 건설 : 시민이 참여하는 햇빛발전소를 통한 전력생산을 2012년 48MW에서 2014년 290MW로 확대 ②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해 ‘주요시설 에너지자립’확보 : 철도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에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건설해 비상시 전력 생산기반 구축 ③ 건물 에너지효율 개선사업 확대 :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대한 효율 개선사업 2012년 50개소에서 2014년 164개소(전체의 44%)로 확대. 단독주택 2500호(‘12년)에서 10000호(’14년)로 확대 ④ 스마트 조명 및 LED 보급의 획기적 확대 : IT를 접목한 옥외조명 일괄제어시스템을 구축해 조명에너지 소비 량을 획기적으로 저감하는 기반 마련. 지하철 역사, 지하상가, 지하주차장, 대형마트 등 우선적으로 LED조명으 로 교체(공공시설 815,000개, 민간시설 7,000,000개) ⑤ 에너지 저소비형 도시공간을 위한 컴팩트시티 구축 : 에너지 효율적 도시공간구조로 바꾸기 위한 ‘2030 도 시기본계획’ 수립. 신재생에너지 10% 이상 설치 시 용적률 완화제도 도입. ⑥ 신축건물 에너지총량제 등 설계기준 강화 : 단위면적 당 에너지 소비량 기준을 200~300KWh/평방m·년에 서 190~280KWh/평방m·년으로 강화하고, 적용 대상도 공동주택과 업무용에만 적용하던 것을 판매 숙박 의 료시설 등으로 확대 ⑦ 카 셰어링 활성화 : 승용차에 대한 개념을 ‘소유’에서 ‘공동이용’으로 전환. ‘12년 2만 5천명(500대)에서 ’14 년 15만 명(3,000대)로 확대 ⑧ 에너지 분야 녹색 일자리 창출 : 일자리 창출 ‘12년 1만 명→’14년 4만 명. 중견녹색기업 지원(녹색산업지원 센터) ‘14년 460건 ⑨ 시민 주도 에너지절약 실천운동 전개 : 그린리더(5천명) 에너지수호천사(1만명) 등 에너지절약 선도시민 양성. 에코하우스 지역환경교육관 등 시민이 운영하는 원전하나줄이기 체험시설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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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2.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⑩ 서울시 ‘에너지재단’ 설립 : 에너지 복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 설립

기후변화 대응-지속가능한 생태환경 도시로 ‘원전 하나 줄이기’가 에너지를 절약하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 궁극적으로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정책이라면, 기후변화 대응은 온실가스 감축으로 기후변화를 늦추는 한편, 이미 현실화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종합적인 환경생태정책이다. 원전확대정책을 계속하고 있는 중앙정부와 달리 서울시가 원전 축소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도 서울은 중앙정부보다 한발 앞선 적극적 대응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금년 말 파리에서 열릴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지난달 2030년까지 온 실가스 예상배출량(BAU) 대비 37%를 감축하겠다는 자발적감축목표(INDCs)를 유엔에 제출했다. 어느 시점의 절대배출량을 기준으로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배출량의 일정 비율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국내 감축노력으로 25.7%를 줄이고 나머지 11.3%는 해외배출권시장을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 더구나 예상 배출량의 증가폭을 크게 잡아, 실제로 배출온실가스의 절대량이 줄기 시작하는 것은 2015년 이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서울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서울의 약속’에서 2020년까지 2005년 배출량 대비 25%를 줄이고, 2030 년까지 40%를 줄여 ‘저탄소 에너지 고효율 도시’를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기후변화로 인 한 지구적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지구의 대기가 산업화 이전 대기온도보다 2℃ 이상 높아지지 않아야 된다는 것 이 전문가들의 정설이다. 2℃를 넘지 않으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이 2.9조 톤을 넘어서는 안 되는 데, 이미 인류는 1.9조 톤을 배출한 상태다. 따라서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누적배출 총량이 1조 톤을 넘어서는 안 되는 급박한 상황이다.

참고로 현재 각국이 내놓은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INDC)는 스위스 1990년 대비 -50%, EU 1990년 대비 -40%, 미국 2005년 대비 -26~28%, 러시아 1990년 대비 -25~30%, 캐나다 2005년 대비 -30% 등이다.

사실 이런 약속들도 기후변화를 저지하기에 충분하다고 낙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서울이 중앙정부보다도 앞 장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서울은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해 배출가스를 줄이는 계획과 함께, 폭염 폭우 가뭄 등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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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시민의 삶을 보다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목표연도는 2030년)

△ 맑은 대기를 위해 전기자동차 260만 대, 하이브리드 자동차 10만 대 보급, 경유차 저공해화 사업 6만대. 대중교통 분담율 68%로 확대. △ 자원순환 확대 : 음식물쓰레기 2천톤/일 으로 절감, 쓰레기재활용률 75%로 제고. 나눔장터 개최 2천 회, 참 여자 350만 명으로 확대. △ 물 절약 : 연간 급수량을 현재보다 1200만 톤 절감, 빗물 이용량을 100만 톤 까지 늘린다. 중수 이용량 2천만 톤으로, 하수처리한 물의 이용량 2억 톤으로 확대. △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위해 시민 1인당 생활권 공원면적 7평방m로 확대, 건강한 숲길 1043km 조성. △ 도시농업 활성화 : 도시텃밭 10평방km, 도시농부 수 100만 명으로 확대. △ 폭염 등으로부터 취약계층 보호 : 무더위 대피 공간 6천개소로 확대.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군비확장과 원전확대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생태환경도시를 지향하 는 서울의 노력이 부디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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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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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평화국제회의 컨센서스

정현백—참여연대 공동대표, 성균관대 교수

해방 70주년을 맞이한 한국은 지금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시도라는 두 개의 절벽사이 에 갇혀 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대결과 영토와 영유권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날로 첨예 화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았지만, 세계대전의 연장에서 분단된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지속 되고 있다. 여기에 책임이 있는 일본은 무라야마 담화의 재검토,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 안전보장 관련 법안(전 쟁법안)의 처리시도 등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핵무기와 핵우산에 의 한 군비경쟁이 가져오는 위험 외에도, 밀집한 핵시설들로부터의 위험에도 직면해 있다. 후쿠시마 재앙은 그 사 례다.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동아시아 현실 속에서 일본, 중국, 독일, EU에서 온 참가자 일동은 동아시아 위기 상 황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동아시아의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유지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보다 희망적인 미 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토론 속에서 평화의 유지와 실행을 위한 여러 원칙과 협력방안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들게 되었다.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향해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참가자들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비전은 동아시아에서 군사력 강화와 군비경쟁의 악순환 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쟁과 전쟁의 싹을 미연에 제거해야 한다 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편협한 전체주의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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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에 기초한 개방적인 부전공동체(不戰共同體)가 생겨나야 한다. 동아시아의 가장 큰 문제는 각 국가들 간의 신뢰가 매우 부족한 점이다. 이에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실현을 위해 개최한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는 새로운 미 래를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구체적인 사안을 토의하고 합의에 도달하였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라야마 담화에서 지적한 대로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 로 아시아 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주었음을 인정하고, 이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반성과 사 죄를 할 것을 촉구하였다. 우리는 사죄와 보상을 행하는 것을 통해서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실현으로 가는 전 제조건이 갖추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지키자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저지하고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질 군비경쟁과 군사적 각축전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 것과 전쟁포기’를 명시한 일본의 평화헌법 9조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소극적 인 평화를 지키기 위한 평화유지의 기본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아베가 추구하고 있는 전쟁법안 에 대해 일본의 헌법학자 90%이상이 위법이라 주장하고 있고,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또한 중국정부나 한국정부도 크게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민주주의 룰을 무시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법안을 저지하는 것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꿈꾸는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임을 서로간에 확인하고, 함께 행동에 나설 것을 약속하였다. 특히 2011년 이후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시민운동과 연대하여, 우리는 함께 전 쟁법안 폐기에 나서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현 한반도 정전체제는 동아시아 전후체제의 가장 어두운 일면이다. 우리는 정전상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노 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였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동아시아 평화체제 형성의 가장 중요한 초석이 될 것 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휴전상태를 종식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다자협력도 그 틀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그리고 10. 4 공동선언을 통해서 남북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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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존을 위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전쟁종식을 선언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통해서 북한이 핵 무기를 가져야할 이유를 없애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결코 군사적 모험가들의 희생물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럽과 독일의 경험에서 배우자 동아시아에서 다자협력틀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유럽 헬싱키프로세스와 독일통일의 역사적 경 험은 큰 교훈이 될 수 있다. 33개국 참여국 간의 협력을 통해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시도한 헬싱키 프로세스와 1975년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발족은 평화체제의 실현이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유럽의 헬싱키회의처럼 동아시아평화협력회의가 시작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에 오늘 우리 회의가 그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아시아의 비핵화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 동아시아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비핵화가 현실화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협상은 중단되어 있고, 거듭된 서로간의 약속 불이행으로 북미관계 는 많이 악화되어 있다. 중재 내지 협상촉진자로서의 한국이나 중국의 역할도 많이 약화되었다. 북한의 핵 능력 은 계속 확대되고 있고, 최근에는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의 긴장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한반 도 분단과 갈등에 역사적 책임이 있는 미국과 일본이 문제해결의 이니시아티브를 쥘 것을 요구한다. 또한 북한 핵문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위한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동아시아의 핵문제가 다자간 대화 를 통해 포괄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6자회담 무용론에 입각하여 대북 압박이나 군사적 대응만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실질적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확인하였고, 북한 핵문제에 대한 협상의 장을 다시 열어, 북한이 추가적인 핵실험에 이를 정도로 악화된 상황을 멈추게 할 조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 더불어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이행방안을 검토하고, 이를 위한 탐색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북미 및 북일 관계 개 선과 포괄적인 대북지원,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와 구축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노력은 닫힌 대 화의 물꼬를 열고, 북핵 문제해결을 향한 단계별 이행계획이 가능토록 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한국과 일본의 정부, 그리고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정부 등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안타 깝게도 2015년 7월 현재 세계 113개 국가들이 서명한 핵무기 사용이 미치는 비인도적인 결과에 대한 ‘인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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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약속(Humanitarian pledge)’ 성명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자 한다. 북핵문제를 비롯한 동아시아 핵 문제는 핵 억지력에 의존하는 군사정책에 집착하는 모든 나라들의 공동책임이다. 그 평화적 해법을 마련하는 데도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탈원전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자 우리는 또한 핵발전을 점진적으로 포기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핵발전의 가장 큰 문 제는 비민주적인 관행에서 나온다. 핵발전은 항시 하향식으로 그 설치가 결정되고, 편향된 기술중심적 시각을 가 진 소수의 권력엘리트들로 구성된 배타적 집단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들은 물량적 성장을 찬미하고, 혁신과 사회 변화에 부정적이다. 핵발전 산업과 관련된 정보는 모두 차단되고, 발생하는 사고들은 은폐되거나 축소해서 보도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원전이 국민 전체의 생명과 생태계 전체를 가공 할 위험에 빠뜨리는 ‘무서운 미래’임을 확인시켰다. 또한 핵발전을 지속하는 한 핵무기 보유국이 되려는 시도를 원천봉쇄하기 어렵다. 핵발전 전문가나 정치가들이 ‘경제성장’을 미끼로 시민들을 현혹하는 것에 제동을 걸어 야 한다. 우리는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군비확장과 원전확대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에 시민이 나서서, 때로는 정부와의 거버넌스를 통해서, 원전을 줄여나가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지속가능한 생 태환경도시로 만드는 일에 앞장설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정부와 시민이 함께 평화공동체에 실현을 위해 협력하자 종전과 해방이후 지난 70년 사이에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시민사회의 성장이 꾸준히 일어났고, 시민의 목소리 는 더욱 커지고 있다.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는 동아시아를 우애에 기초한 사회, 새로운 평화공동체,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보다 공고한 연대와 집요한 노력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동아시아의 성찰적 인 시민들이 함께 나설 것을 결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새로운 연대의 모습은, 하토야마 전 총리께서 제안한 대로 ‘동아시아 평화회의’ 혹은 ‘동아시아의회’와 같은 그 어떤 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의 만남과 토론을 출발점으로 해서, 앞으로 공고한 ‘동북아평화연대’를 구축해나가자. 이 과정에서 시민과 정치사회가 함께 공동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연

사

소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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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 1986. 2. 14 주교 수품 • 1995. 2. 27 ~ 1999. 2. 28 통합가톨릭대학교 초대총장 역임 • 2002. 10. 8 ~ 현재 천주교 제주교구장 착좌 • 2008. 10. 16 ~ 2014. 10. 30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곤도 쇼이치 곤도 쇼이치는 1958년 아이치 현(県) 나고야 시(示)에서 태어나 조치대학교(上智大學 敎, 역자 註: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 구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 법학부에서 법학 학사를 취득 하고, 학교의 중국유학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베이징 언어문화 아카데미에서 수학(修學) 했다. 주니치신문(中日新聞) 퇴사 뒤, 1993년에 정치 활동을 처음 시작하였으며 처음에는 무 소속으로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사키가케(역자 註: 선구자라는 뜻의 일본어) 신당에 합류 했고1996년 9월, 최종적으로 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1996년 10월 41대 총선에서 중의원(衆議員)에 처음 당선된 후 7번을 내리 당선되 었으며, 민주당의 환경부 그림자 내각 장관, 아동청소년 특별위원회 의장, 나고야 민주당 수, 외무위원회 수석 이사, 총회의장, 민주당 상임의장 등 다양한 직위를 맡아 왔다. 2010 년 9월 ~ 2011년 9월까지는 환경부 차관으로 재직하며 중국-일본 간 환경 협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를 회복하고 재건하는 데에도 큰 노력을 했 다. 특히 재해로 발생한 대량 폐기물의 처리 및 방사성 폐기물 처리 가이드라인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 일본 민주당 사무총장 대행, 초당적 중-일 우호 의원연합 사무총장 및 점진적 핵 폐기 연대 공동대표, 일본 의회 다당(多黨)연합 공동대표, 진보포럼협의회 대표 등을 맡고 있다.

남경필 • 2014. 7 ~ 현재 제34대 경기도 도지사(민선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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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2.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 2013. 7 ~ 2014. 5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 2012. 2 ~ 2014. 5 한독 의원친선협회 • 2010. 9 ~ 2011. 11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 2001. 12 ~ 2002. 한나라당 대변인 • 1998. 7 ~ 2014. 5 제 15, 16, 17, 18, 19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너지 데바 유럽의회의원인 너지 데바는 스리랑카(실론)의 사업가 겸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 부는 초대 독립의회 상원의원이자 통일국민당의 설립자였다. 영국 시민인 너지 데바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항공공학 학위를 받았으며 경제학 석사 연구원이기도 했다. 너지 데바는 영국 의회 및 유럽 의회 양쪽에서 일했으며 20년 이상을 공익사업, 특히 국 제 개발 및 인도적 개발에 헌신했다. 1985년 그는 여왕이 공식행사 및 왕실행사에서 여 왕을 대리하는 부지사로 임명한 최초의 아시아인이라는 영예를 얻었고, 1992년에는 영 국 의회에서 브렌트포드와 아이즐워스 보수당 의원으로 선출되었다(1992~1997). 1999 년 선출된 이후 지난 12년간 유럽의회 의원으로 있었다. 그는 2009년 유럽의회 개발위원회 부대표로 선출되었고, 지금은 모든 유럽연합의 아시 아 관련 예산을 관리 감독하는 개발위원회 B그룹의 의장이며, 한반도 관계대표단장이다.

다카수 나오미 <헌법 9조에 노벨 평화상을> 실행위원회 발기인. 두 아이의 엄마.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전쟁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한 마음으로 ‘전쟁하지 않는 헌법 9 조’를 보호하고, 활성화하 고 세계로 넓히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 1924 오이타(大分)시의 어부 집안에서 출생 • 1946 메이지(明治)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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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 오이타현의원 당선(사회당) • 1972 중의원 당선(사회당), 이후 8선 • 1993 사회당 위원장 • 1994 일본 총리 • 1996 사민당 당수 • 2000 정계 은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이사장

문정인 문정인 교수는 1951년에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 오현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철학사)를 졸업한 후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윌리 엄스대학교 조교수, 켄터키대학교 부교수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로 재직 중이며 듀크대학교와 제네바대학교 International Organization MBA 과정의 겸임 교수직을 맡고 있다.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아대위원회 위원장(장관급) 및 외교통상부의 국제안보 대사직, 연 세대 국제학대학원장과 통일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1, 2차 남북정상회담에 특 별수행원으로 참석한 유일한 학자이기도 하다. 현재 외교부, 국방부, 공군, 제주도, UN 대 학 등 다수 공공기관의 정책자문위원 및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과 연세대 국제화자 문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faculty이자 영문계간 지 Global Asia의 편집인이다. 연구 업적으로 World Politics,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World Development, Journal of Asian Studies, Security Dialogue 등을 포함한 국내외 저명 학술지와 각종 논문 집에 250여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으며 40여 권의 국/영문 편저서를 출간하였다. 문 교수는 현재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EMD SSCI에 등재된 12개 국제 저명 학술지 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과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 임한 바 있다. 주된 학문적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정치, 남북한 관계, 중동정 치, 국가정보론 등이며 현재 연세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에서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동아시아 지역주의’, 학부에서는 ‘중동정치’와 ‘국가안보와 정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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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2. 핵 재앙으로부터의 자유: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평화

박원순 • 1956년 3월 26일 경남 창녕 生 • 경기고 졸, 단국대 사학과 졸 • 1980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 1995 ~ 2002 참여연대 사무처장 • 2001 ~ 2010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총괄상임이사 • 2002 ~ 2009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 2006. 3 ~ 2011. 9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2014. 7~ 서울특별시장(민선5기, 6기)

서주석 •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정치학박사 • 전 청와대 안보정책수석비서관 •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장

스콧 스나이더 스콧 스나이더는 미국 외교협회(CFR) 한미 정책 프로그램의 한국학 선임연구원 겸 이사 이며, 2008년~2011년에는 객원 연구원으로 일했다. CFR 합류 이전 아시아재단의 국제 관계 프로그램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한미 정책 센터를 설립하고 총괄했으며 2000 년~2004년에는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태평양포럼 전략· 국제문제 연구소(CSIS) 차장으로 일했다. 스나이더는 미국 평화연구소의 연구조사 프로 그램에서 아시아 전문가로 일했으며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현대문제 프로그램 감독 대 행으로도 일했다. 2005년~2006년에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쇼렌스타인 아시아 태평양 연 구센터에서 팬텍(역자 註: Pantech, 스탠포드의 아시아 태평양 연구기관) 객원 연구원이었으 며, 1998년~1999년에는 사회과학연구협회가 주관하는 아베 펠로우십(역자 註: 미국 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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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사회과학분야 장학프로그램)을 받았다.

스나이더는 ‘일본과 한국의 정체성 충돌: 동아시아 안보와 미국(브래드 글로써먼 공저, 2015)’, ‘중국의 부상과 두 개의 한국: 정치, 경제, 안보 (2009)’, ‘선의의 포장(역자 註: 지옥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영어 속담의 은유, 의도가 좋아도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의미): 북한

에서의 NGO경험(공동편집, 2003)’, ‘벼랑 끝 협상: 북한의 협상 행태(1999)’ 등 한국 정 치와 외교정책 그리고 아시아 지역주의 양상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스콧 스나이더는 북한에서 활동하는 NGO들과 인도주의 단체들의 자문을 도왔으며 미국 북한위원회의 자문위원회 공동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나이더는 ‘과도기의 북한: 정치, 경제, 사회(로우맨 & 리틀필드 출판사, 2012)’의 공동편 집자이며 ‘중견국 한국: 글로벌 어젠더에 대한 기여(미국 외교협회 발간, 2015년 6월)’ 및 ‘글로벌 코리아: 국제 안보에 대한 한국의 기여(미국 외교협회 발간, 2012년 10월)’의 편집 자이자 ‘한-미 동맹: 새로운 안보문제에 대한 대처(린 리에너 출판사, 2012년 3월)’의 편 집자이다. 그는 미국 외교협회의 한반도 정책 독립 태스크포스의 프로젝트 디렉터를 역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시아 언바운드”라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글을 쓰고 있다. 스나이더는 텍사스 주 휴스턴 시에 있는 라이스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 에서 지역 연구 과제인 동아시아 프로그램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 연세대학교 에서 토마스 G. 왓슨 펠로우로 재직했다.

옌렌커 옌렌커는 1958년 중국 허난성 뤄양시 쑹현에서 태어났다. 1978년 중국인민해방군에 입 대했고, 1985년 허난대학교 정치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중국인민해방군예술대학 교 문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글을 쓰기 시작했고 주요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여름해 가 지다夏日落』, 『일광유년日光流年』,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冰』, 『즐거움受活』, 『인민 을 위하여 복무하라為人民服務』, 『딩씨마을의 꿈丁莊夢』, 『풍아송風雅頌』, 『사서四書』, 『작열지炸裂志』 등 10여 편이 있고 중, 단편소설집으로는 『연월일年月日』, 『황금동黃金 洞』, 『파루천가耙耬天歌』 등 15편, 산문, 논설집 12부가 있다. 이 밖에 『옌렌커문집閻連科 文集』 17권이 있다. 제1회, 제2회 루쉰문학상을 수상했고, 제3회 라오서 문학상과 말레이 시아세계화문문학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02년에는 프랑스 페미나상 후보와 영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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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커상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체코카프카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일 본, 한국, 베트남,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이스라엘,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 덴, 체코, 세르비아 등 20여 종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20여 개의 나라와 지역에서 출판되 었다. 2004년에 군대에서 제대하고 현재 중국인민대학교 문과대학에서 교수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와다 하루키 와다 하루키는 한국학과 러시아 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동경대학교 명예교수다. 그는 1938년 1월 13일에 태어났다. 하루키는 동경대학교 사회과학부 학과장이었으며 1998년 3월 은퇴했다. 그는 또한 1995년부터 2007년까지는 위안부들을 위한 아시아 여 성 기금에서 활동했다. 2000년부터 하루키는 북한과의 외교적 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일본인 협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또한 2014년, “한국전쟁: 국제적 역사”라는 제 목의 영문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요하네스 플루크 요하네스 플루크는 독일 정치인으로 1998년부터 2013년까지 독일 연방하원의원이었으 며 2009년부터 2013년에는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동시에 독일 연방하원의원 내 사 민당 외교위원회 부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사민당 의원 그룹 내 “아프가니스탄/파키스 탄 프로젝트 팀” 대표로도 활동했다. 요하네스 플루크는 1965년에 사민당에 입당했다. 또한 뒤스부르그 시의원이자 함본 지 역 의회 의원(1975년~1979년), 북라인/웨스트팔리아 땅 의회 (1980년~1998년), 사민당 지역 의장(1990년~2006년), 그리고 니더하인 사민당 지역 사무소 부의장(1994년~1998 년)으로 활동했다. 나아가 플루크는 1996년부터 정당 연방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2003년부터는 국제 정책에 대한 정당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플루크는 오랜 기간 동안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독-중 의원연맹 회장, 한-독 의원연맹 부회장, 독-인도 의원연맹 회원 그리고 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위 한 의원 연맹의 회원이다. 플루크는 또한 유럽평의회 의회 회원이자 공동 외교 안보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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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공동 안보국방 정책 의원 연맹의 독일 대표단 회장이며 나토 의원 연맹의 회원이다.

이부영 • 1942년 생, 서울대 정치학과 • 동북아평화연대 명예이사장 • 민주당 상임고문 • 전 열린우리당 의장 • 전 한나라당 원내총무 • 전 국회의원 • 전 전민련 상임의장 • 동아일보 기자, 자유언론운동 해직

이삼열 • 1982 ~ 2005 숭실대 철학과 교수 • 2000 ~ 2004 유네스코 아태국제이해교육원장 • 2004 ~ 2008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 2009 ~ 2012 에코 피스 아시아 이사장 • 2012 ~ 2015 유네스코 아태 무형유산 센터 사무총장 • 2012 ~ 현재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역사 NGO 포럼 상임 대표

이승환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80년대 말부터 남북관계와 통일평화운동에 몸담아왔으며,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 외에도 민화협 공동의장, 6.15 공동선언실 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겸 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 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를 비롯하여 남북관계와 관련한 많은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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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배 • 2014 ~현재 흥사단 이사장 •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충남지역연합회 회장 • 2007 ~ 2011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상임대표

이이다 테츠나리 이이다 테츠나리는 재생 에너지의 최고 권위자이자 사회혁신가로, 비영리-독립연구기 관인 지속가능에너지정책연구소(ISEP)의 상임이사로서 생태보전 프로그램들을 도입 했다. 그는 북유럽의 에너지 환경정책에 정통하며 ‘북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민주주의’ 라는 책 그리고 창조적인 네트워킹 활동으로 유명하다.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그 는 REN21(21세기 재생에너지 정책 네트워크 Renewable Energy Policy Network for the 21st Century)과 WWEA(세계풍력에너지협회 World Wind Energy Association) 위원회에 서 일하고 있다. 그는 1983년 교토대학에서 원자력과학연구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원자력 엔지니어로 일 하기 시작했다. 퇴사 후에는 1992년 ~ 2006년까지 일본종합연구소에서 에너지 및 환경 연구부문 리더로 일했으며, 1996년 ~ 1998년에는 스웨덴 룬트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냈고, 1998년에는 도쿄대학에서 첨단과학기술 연구 박사학위 코스를 밟았다. 1998년 그는 전체 의원 중 1/3로 구성된 재생 에너지를 위한 초당적 의원연합(MPs)을 조 직하여 재생에너지 촉진법안을 신규 입법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2000년에는 지속가능 한 에너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가능에너지정책연구소(ISEP)를 설립했다. 이들은 일본에 발전차액 지원제도 정책을 도입하기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이 법안은 통과되었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 위원회 위원이자 환경성(MOE) 위원회 위원으로서 비핵(非核) 에너지 정책을 제안했으며, 일본에 커뮤니티 기반의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 제도를 도입 했다. 또한 일본 지역 발전시설 연합의 사무총장으로서 일본에서 이러한 제도들을 장려 하고 있다.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이홍구 • 2009. 7 ~ 2010. 6 사법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 2005. 2 중앙일보 이사회 의장 • 2000 제2기 통일고문회의 의장 • 1998. 5 ~ 2000.8 제17대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대사 • 1998 아시아유럽비전그룹 회장 • 1997 ~ 1998 국회 통일외무위원회 위원 • 1994 ~ 1995 제28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1994 ~ 1994 제20대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 • 1993 ~ 1994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 1991. 3 ~ 1993. 4 제15대 주영국 대한민국 대사관 대사 • 1990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이희호 • 현재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 명예이사장, 한국사랑의집짓기 운동연합회 명예이사장 • 1998. 2 ~ 2003. 2 제15대 대통령 영부인 • 2000 ~ 2002 한국여성재단 명예추진위원장 • 1968 ~ 1972 범태평양 동남아시아 여성연합회 한국지회 부회장 • 1961 ~ 1970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 원대학교에서 군사 안보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 구원을 지냈다. 1990년 후반, 북한의 대기근과 남한의 IMF 경제위기를 목도하면서 평화 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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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참여연대 공동대표. 여성과 사회(창작과 비평사) 편집장 (1987-2001).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2001-2007). 서울대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대학원 서양사학과 졸업. 독일 복흠대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 저서로는 노동운동과 노동자문화(한길사), 민족과 페미니즘(당대), The Kunst dem Volke oder dem Proletariat: Das Beispiel der Freien Volksbühnenbewegung in Berlin 1890-1914(Peter Lang Publishing Company, Frankfurt/M) 외 다수가 있음.

지영선 •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공동위원장 • (사)생명의숲 공동대표 • 2009 ~ 2014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 2006 ~ 2008 대한민국 주 보스턴 총영사 • 2001 ~ 2005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 • 1988 ~ 2005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국제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최상용 최상용 교수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옌칭 연구소 객원교수,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장, 아세아문제연구소장, 한국정치학회장, 한국평화학회창립회장, 주일본국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는 ‘미군정과 한국민족주의’, ‘평화의 정치사상’, ‘중용의 정치’, ‘A Political Philosophy of Peace’ 등이 있다.

하토리 요이치 하토리 요이치(服部良一 Hattori Ryoichi, 1950년 2월 24일생)는 일본 사회민주당 소속 정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

치가로, 후쿠오카 현 야메 시 출신이다. 1969년 교토대학에 입학했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오사카로 가서 취업을 하고, 그곳에서 노조 활동에 참여하였다. 노조 위원장으로서 평화 에 관련한 여러 시민운동은 물론 오키나와 해군기지 이슈에 관여했다. 2007년 참의원 선 거에서 오사카 참의원에 입후보했으나 선거에서 졌고, 사회민주당 참의원인 토쿠신 야 마우치의 개인비서로 들어갔다가 2009년 총선에서 긴키 지역을 대표하는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2009년 9월 16일 제 93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였다. 1986년 처음으로 중의원의원 으로 당선되고, 1999년 9월 처음으로 일본 민주당 대표로 취임하였다. 홋카이도 9구 중 의원의원으로 8기째 당선된 바 있다. 1969년 도쿄대학교 공학 학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76년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후쿠야마 신고 후쿠야마 신고는 오사카 시청 근무 후 자치노(自治労) 중앙 본부 조직 국장, 부위원장, 서 기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평화포럼 원수금(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 原水禁) 사무 국장을 맡은 바 있다. 현재 일본 평화·인권·환경 포럼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원수폭 금지일본국민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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