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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NEW YORK DAILY

Tuesday, April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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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2일 화요일

‘청빈의삶’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전쟁 끝내라”남기고 떠나 폐렴으로 38일 입원 뒤 활동 재개하다 뇌졸중… 유언장도“무덤에 장식 말라” 우크라·가자 전쟁속 부활절 마지막 메시지에도‘평화’ … 교회 개혁 추진 건강 악화에도“사임은 없다”끝까지 교황직 수행… 이르면 23일 일반인 조문 ▶ 관련기사 5(미국1), 8(한국2), 9(세계) 면 2013년부터 12년간 전 세계 14 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 치스코 교황이 21일(월) 88세로 선 종했다.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페렐 추기경은“프란치스코 교황이 21 일 아침 7시 35분에 아버지의 집으 로 돌아가셨다” 고 발표했다. 페렐 추기경은“그는 삶의 전 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 신했다” 고 강조했다. 이어“프란 치스코 교황이 신앙, 용기, 보편적 사랑을 갖고 복음의 가치를 살아 가라고 우리를 가르쳤다” 며“그는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 외된 이들을 지지했다” 고 밝혔다. 또“주 예수의 진정한 제자의 모범 이 된 데 깊이 감사하며 우리는 프 란치스코 교황의 영혼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맡긴다” 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흡기 질 환으로 평생 고생했으나 직접 사 인은 뇌혈관 질환이었다. 안드레 아 아르칸젤리 바티칸 보건위생국 장은 교황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 에 빠지고 회복 불가능한 심부전 을 일으켜 사망했다고 이날 저녁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흡 기 질환으로 지난 2월 14일부터 로 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 았다. 양쪽 폐에 폐렴 진단을 받은 그는 입원 후에도 호흡 곤란 증세 로 고용량 산소 치료를 받았고, 혈 소판 감소증과 빈혈로 수혈받기도 했다. 입원 중 상태가 악화하기도 했지만, 지난 3월 23일 38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고, 최 근에는 활동을 재개해왔다. 교황은 부활절을 앞두고 이탈 리아 로마 시내의 교도소를 깜짝 방문하거나 이탈리아를 방문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비공개로 면담했고 부활절 미사에도 등장하 는 등 활동을 늘려가고 있었다. 전 날 남긴 생전 마지막 부활절 강론 에서는“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 스럽다” 면서“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촉구하고 인질을 석방해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를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 는사

프란치스코 교황

21일 오후 성베드로 광장의 묵주기도

실상의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전날 부활절 대축일에 성베드 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도 만났는 데, 갑작스레 선종 소식이 전해졌 다. ◆ 프란치스코 교황, 로마성당 지하 장식없는 무덤에 안장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는 고 인의 생전 뜻에 따라 간소하게 치 러질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은 프 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의 산타 마 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지하에 특 별한 장식 없이 간소한 무덤에 묻 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유언장 을 공개했다. 전임 교황 265명 중 148명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에 안치됐다. 교황청은 교황이 무덤에 특별 한 장식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 했지만 자신의 교황명을 라틴어 (Franciscus)로 새겨주기를 원했 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장례

예식은 이날 저녁 8시 그가 거주했 던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 마 련된 관에 유해를 안치하면서 시 작된다. 바티칸은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 교황의 시신을 며칠 간 안치했다가 이르면 오는 23일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 일반 대중의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직 접 장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도 록 전례서를 개정했다. 이에따르 면 시신을 안치하는 관의 수는 기 존 3개에서 1개로 줄이고 선종 확 인은 교황이 숨을 거둔 방이 아닌 개인 예배당에서 하도록 했다. 또 시신이 관에 안치된 채로 일반의 조문을 받도록 했고, 사후에는 바 티칸 외부에 안장될 수 있도록 규 정도 개정했다. 교황의 서거에 찰스 3세 영국 국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을 비롯해 세계 주요 정상은 잇따 라 애도 메시지를 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건

강상의 문제로 자진 사임한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제266 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보수적이 며 전통적이었던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프란치스코 의 관계는 2019년‘두 교황’ 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하고 소탈한 행보로 즉위 직후부터 세 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허름한 구 두를 신고 순금 십자가 대신 철제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소형차에 4월 24일(목) 4월 22일(화) 몸을 싣는 겸손하고 서민적인 교 흐림 흐림 4월 23일(수) 흐림 최고 77도 최저 53도 최고 66도 최저 51도 최고 70도 최저 51도 황의 모습에 세계인들은 감동했 4월 22일 오후 12시 기준(한국시각) 다. 또한 그는 호화로운 관저를 놔 두고 일반 사제들이 묵는 공동숙 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생활 1,450.75 1,400.85 1,439.70 1,411.90 N/A N/A 하며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했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가 쇠퇴하 는 가운데 교황에 즉위해 가톨릭 난해에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 기경을 임명했다. 한국 대전교구 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일으킨 것으 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해 동성애 의 유흥식 추기경도 이러한 인사 로 평가받을 정도로 그의 파격 행 를 금기시하는 아프리카 가톨릭사 개혁의 하나로 발탁됐다. 보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회를 중심으로 강한 반발을 사기 현재 교황 선거인 콘클라베에 권위와 물욕을 버리고 몸을 낮 도 했다. 서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은 138명 추는 습관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쟁으로 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중 삶과도 연결돼 있다. 얼룩진 세계 곳곳에 평화와 공존 110명을 직접 임명했다. 베네딕토 그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 의 메시지를 보낸 종교 지도자로 16세와 요한 바오로 2세가 임명한 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출신 이 도 평가받는다. 적대적 관계에 있 추기경은 각각 23명, 5명이다. 민자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던 미국과 쿠바의 2015년 국교 정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아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때 아버지 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2017 시아 대륙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 가 회계 업무를 봐주던 양말공장 년에는 로힝야족 추방으로‘인종 할 정도로 한반도 평화 문제에 깊 에서 청소와 사무보조로 일했다. 청소’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찾 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당시 교황 공업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오전 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은 방북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소 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엔 학 2천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극적 태도로 무산됐다. 교황은 이 교에서 식품화학을 공부했다. 교 2021년 이라크 땅을 밟아 무장테 후에도 여러 차례 방북 의사를 밝 황의 소박한 삶과 검소한 정신은 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혔지만 끝내 성사되진 못했다. 이때부터 자연스레 몸에 밴 것으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로 로 전해진다. 를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한 이래 프란치스코 교황의 두 번째 방한 교황은 주교와 추기경으로 있 교황은 끊임없이 평화의 목소리를 이 기대됐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 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촌 냈고,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 면서 방한은 차기 교황의 몫이 됐 사목에 힘썼다. 마약이 유통되고 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다. 폭력이 흔한 우범지대여도 교황은 간의 전쟁을 두고도 민간인 희생 교황은 최근 몇 년간 건강 문제 개의치 않고 동행하는 사람 없이 을 막고 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 로 우려를 샀다. 교황은 2022년 봄 빈민촌을 찾았다고 한다. 했다. 이와함께 교황은 기후변화 오른쪽 무릎 상태가 악화해 휠체 1,282년 만의 비유럽권이자 최 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어나 지팡이에 의지해 일정을 소 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인 그는 역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화해왔다. 2021년 7월에는 결장 협 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 냈다. 착증 수술, 그로부터 2년 뒤인 가를 받았다. 그는 2013년 즉위 이 인사 개혁에도 적극적이었다. 2023년 6월에는 탈장 수술을 받았 후 가톨릭교회가 소수자, 사회적 ‘추기경좌’ 로 불리던 파리 대교구 다. 약자에 더 포용적으로 바뀌고 평 나 밀라노 대교구처럼 특정 교구 교황은 또한 젊은 시절 폐 일부 신도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의 교구장이 자동으로 추기경으로 를 절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특 진보적 개혁을 밀어붙여 가톨릭 임명되는 관행을 깨고 가톨릭 교 히 겨울철에는 기관지염이나 다른 내 보수진영과 마찰을 빚었다. 지 세가 강하지 않은 지역에서도 추 호흡기 질환에 자주 시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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