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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에 한국 떠나, 46년만에 美장군 된 한인 주한미군 최초의 한국계 장성 제19지원사령관 진 박 준장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부 사령관 진 박 준장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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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에 미국으로 떠난 소년은 46 년 만에 미군 장군이 되어 고국으 로 돌아왔다. 지난 6월 주한미군 캠프헨리(대구) 제19지원사령관으 로 취임한 진H 박(52·한국명 박진 형) 준장이 주인공이다. 박 준장은 1957년 주한미군사령부 창설 이래 처음으로 부임한 한국계 장성급 사령관이다. 사령관 취임식에서 “같이 갑시데 이”라며 경상도 사투리로 취임사 를 마무리했던 박 준장은 조선일 보와의 인터뷰에서 “미 육군에 입 대했을 때만 해도 19지원사령부 와 같은 환상적인 부대의 사령관 이 되어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며 “나 같은 이민자가 장군이 되 어 출신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나 라는 세계 곳곳에서 한·미를 제외 하고는 흔치 않다. 자부심을 느낀 다”고 했다.
약사였던 박 준장 아버지는 1972 년 그를 낳고 1년도 안 돼 박 준장 어머니와 함께 먼저 뉴욕으로 이 민을 떠났다. 미국에서 직장을 잡 아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 그 바람에 박 준장은 1978년 까지 강원도 춘천에서 조부모 손 에 자랐다. 6살이 되고 나서야 박 준장은 나 홀로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조 부모가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해 보호자 없이 뉴욕까지 부모를 만 나러 간 것이다. “당시엔 보호자 없이도 어린아이가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모든 항공 편이 중간 급유를 위해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했다. 박 준장은 탑승객들이 앵커리지 공항 우동 가게에 들러 함께 우동을 먹던 기 억이 어렴풋이 난다고 했다. 박 준장은 “마침내 미국에 도착
했을 때 매우 흥분했지만 언어, 문 화, 관습을 익히는 것은 매우 어려 웠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극심 한 향수병을 앓았다”고 했다. 그는 이후 초중고를 마치고 미 육군사 관학교에 입학했다. 1994년 미 육 사를 졸업한 그는 미 육군 소위로 임관해 독일, 보스니아, 아프가니 스탄 등에서 근무했다. 2012년에 는 제19지원사령부 예하 부대 대대 장으로 3년간 한국에서 근무했다. 박 준장 아내 루시 여사도 9살 때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와 옷 가게와 식당 등을 운영 한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나중에 교사가 된 아내는 박 준장이 과거 대구에서 근무할 때 미군 부대 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 다. 박 준장 아들은 현재 미 육군 중위로 복무 중인데 지난 5월 동 료 장교로 복무 중인 아내를 만나 결 혼 했 다 . [A4면에 기사계속]
2024년 9월 28일 (토) S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