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 Daily 2024년 6월 21일 금요일 A
1년 만에 100만 명 증가 加인구 4,100만 명 돌파 캐나다의 인구가 역 사상 처음으로 4,100 만 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동안 인구가 24만 2,673명 증가해 4,132만 6,050명에 도달했다. 이는 2023년 6월 16일에 4,000만 명 을 넘긴 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통계청은 2024년 1분기 인 구 증가율이 0.6%로, 이는 2023년 1 분기와 4분기와 동일하다고 밝혔다. 이 민이 주요 원인으로, 2024년 1분기 캐 나다 인구 증가의 99.3%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 동안 캐나다는 이민, 난민 및 시민권부(IRCC)의 목표에 따라 12 만 1,758명의 영주권자를 받아들였다. IRCC는 2024년에 48만 5,000명의 새로운 영주권자를 맞이하고, 2025년 과 2026년에는 각각 5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바스코샤와 뉴브런즈윅,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는 1971년 3 분기 이후 가장 높은 이민 증가율을 기록했다. 노바스코샤와 뉴브런즈윅은 각각 3,999명,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는 1,330명의 이민자가 유입되었다. 이 는 해당 지역의 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 증가를 반영한다. 또한, 캐나다는 2024년 1분기에 13 만 1,810명의 비영주권자를 추가했다. 그러나 이 증가율은 2023년 2분기와 3 분기의 기록적인 수치와 비교하면 둔 화되었다.통계청의 인구 시계는 캐나 다의 인구 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하 며 출생, 사망, 이민, 이주, 비영주권자, 주간 이동 등을 고려해 변화를 측정한 다. 통계청은 연방 정부가 올해 초 비 영주권자에 대한 제한을 발표했기 때 문에 임시 거주자의 증가세가 앞으로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경
1분기 인구 24만 명 증가 이민, 인구 증가 주요 원인 1분기 영주권자 12만 명 수용 2024년 목표 48만 명 노바스코샤, 이민 증가 최고 1분기 비영주권자 13만 명
제학자들은 정부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난 3월, 연방 정부는 새로운 임시 거주자에 대 한 목표를 설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마크 밀러 이민부 장관은 2023년 캐 나다의 임시 거주자 수가 4월 1일 기준 으로 28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6.2% 에 달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향후 3년 동안 임시 거주자 수를 5% 감소시킬 계획이다. 올해 첫 분기에 추가된 임시 거주자는 13만 1,810명으로 이는 2022 년 2분기 이후 가장 낮은 분기 증가 율 중 하나다. 통계청의 분석가 스테이시 할만 씨 는 "앞으로 몇 분기 동안 둔화의 징후 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캐나다는 매년 약 50만 명의 영주권자를 받아 들이고 있으며 이는 2026년까지 계속 될 예정이다. 정부는 올해 말에 매년 유입될 임시 거주자 수를 발표할 예정 이다. 경제적으로 임시 거주자는 중요 한 역할을 한다. 캐나다의 인구 증가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철저한 관리와 정책이 필 요하다. 정부와 경제학자들은 앞으로 의 인구 증가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 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인 구 증가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주 목된다.
제5406호
친생부모님을 찾기 위한 이애솔 씨의 여정 캐나다로 이민 간 부모님과 재회를 꿈꿔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이애솔 씨는 최근 친생부모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이애솔 씨는 자신의 출생과 입양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친생부 모님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를 통해 이 애솔 씨는 자신이 행복하게 성장했 음을 알리고 친가족에 대한 궁금증 을 풀고자 한다. 특히, 친생모가 출 산 후 겪었을 어려움을 이해하고 친 생부모님께 용서와 감사를 전하기 위해 이 여정을 시작했다. 친생부모 님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는 사실 은 이애솔 씨에게 큰 충격이자 기대 감으로 다가왔다. 이애솔 씨의 진심 어린 편지를 독 자 여러분께 전한다.(편집자주: 이해 를 돕기위해 일부 추가ㆍ수정) 나는 1987년 11월 26일 서울 소재 청 화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 끝에 장 녀로 태어났다. 입양 서류에 따르면 친생부의 이름은 이OO, 친생모의 이름은 권OO이다. 두 분은 결혼한 상태로 모두 1960 년생이며 친생모의 생일은 1960년 2 월 5일이다. 내 이름은 이애솔이다. 나는 태어날 때 왼쪽 귓구멍이 막힌 '선천적 외이도 폐쇄증'이라는 장애 를 가지고 태어났고, 친생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내가 입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입양 서류에는 친생부모님이 의사들 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으며, 결 국 친생모가 병원을 퇴원하면서 나 를 포기하고 병원에 두고 갔고, 병원 에서 나를 입양기관에 맡겼다고 적
혀 있다. 몇 개월이 지나고 1988년 3 월에 나는 미국의 사랑스러운 가족 에게 입양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내 귀 문제로 인해 입양이 되었다는 사 실이다. 나의 입양 가족은 내가 영구 청각 장애가 있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들였는데, 우리 엄마가 수 화 통역사였기 때문에 입양을 한 것 이었다. 결국 나는 오른쪽 귀의 청력 은 완벽하고, 왼쪽 귀는 수술이 필요 하지 않았다. 왼쪽 귀는 모든 기관은 다 있지만 귓구멍이 없어 원한다면 외이도 재건술로 완치가 가능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현재 음악가이 자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나는 친 생부모님께 전혀 적대적인 감정이 없 다.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 장애가 있는 아기를 키운다는 것에 대한 사
회적, 문화적 압박을 감안할 때 친 생부모님의 입장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수술이 필요할지, 어떻게 비 용을 감당할지 몰랐을 것이다. 게다 가 아기를 갖는 것은 엄청나게 감정 적인 경험이며, 출산 직후 중요한 결 정을 내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것이다. 나는 내 입양 가족에게 매우 감사 하며,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너 무나도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입양아들처럼 친가족을 찾고자 하 는 강한 욕구가 전혀 없었다. 나는 바쁘고 충만한 삶을 살았고, 가끔씩 친가족을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만 그것이 내 인생의 '부족한 부분' 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친가족사 와 친생부모님과의 공통점이나 형제 가 있는지에 대해 약간의 호기심이 있을 정도였다. 두 해 전 남편과 나 는 첫 아들인 남자아기를 맞이했다. 출산을 하면서 친생모가 겪었을 일 을 생각하게 되었다. 친생모는 나를 낳자마자 병원을 떠났으니 며칠 후에 젖이 돌았을 친 생모의 감정과 불편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출산 후 회복하는 동 안, 제왕절개로 인한 치유 과정을 생 각했다. 9개월 동안의 기대감 끝에 아기 없이 집으로 돌아간 친생부모 님의 감정과 친구와 가족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친생 부모님이 당시 올바른 결정을 했든 아니든, 그것이 그들에게 감정적이고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는 어른이 되고 친생부모님 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A3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