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호 Vol. 2
차례 00 01
전 세계 평화교육 MOA, MOU 현황
02
‘TeachingGoesOn’ 캠페인 - 마호메드 알-아민 (방글라데시, 샴술 호크 칸 학교 영어학부 학부장) - 자말 술레이만 압둘 라만 (수단, 과학기술 대학교 평화 연구 문화 연구소 교육부서장)
03
유네스코 이벤트 - 유네스코 평화문화 전파를 위한 비폭력 포럼 - 토마스 스미스 (미국, 마틴루터킹주니어 고등학교 교사)
04
평화교육 - 아우로라-시모나 스피레스쿠 (루마니아, 페르디난드 1세 초등학교 교사) - 마리나 카리토나시빌리 (조지아, 체르반테스 아이아게스 학교 지리학 교사) - 마리야 얀코비치 (크로아티아, 휴고 바달리치 초등학교 영어 교사)
평화와 문화 - 케테 콜비츠의 반전 미술과 평화 문화 - 세계인권선언문(UDHR)과 평화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아프리카
15
남아프리카공화국 감비아 니제르 르완다 소말리아 말리 부룬디 에티오피아 우간다 잠비아 케냐 코모로 마다가스카르 코트디부아르 남수단
유럽
7
중동 3
루마니아 조지아 북마케도니아 우크라이나 그리스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이라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 세계 평화교육 MOA, MOU 현황 2022년 6월 15일 현재 MOA 총 11개국 14개소 MOU 총 43개국 261개소 유럽 7 국가 28 MOU
3 국가 8 MOU 중동 15 국가 78 MOU 아프리카
4
오세아니아 0 국가 0 MOU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CIS
아시아
1
15
필리핀 한국 스리랑카 네팔 말레이시아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부탄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태국 파키스탄
아르메니아
오세아니아 0
1 국가 1 MOU CIS 2 국가 6 MOU 아메리카 Asia 15 국가 140 MOU
5
아메리카 2 미국 자메이카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01
평화교육
아우로라-시모나 스피레스쿠
루마니아 페르디난드 1세 초등학교 교사
루마니아 HWPL 평화 교실 친애하는 전 세계 교사님들께,
“평화는 미소로부터 시작됩니다” 마더 테레사가 남긴 이 아름다운 말처럼,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여러분들께 큰 미소와 기쁨으로 인사드립니다! 저는 페르디난드 1세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저는 제 영혼과 마음의 빛과 열정과 에너지로 25년째 교 직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저의 모든 열정과 영혼을 담아 일하며 항상 제 인생에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2021-2022년 HWPL의 평화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멋지고 독특한 기회가 저와 저희 학생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저희 반 아이들과 학교, 가정, 저의 조국과 세계의 평화의 사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HWPL평화교육팀에게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수 존 레논은 "평화는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여러분이 하는 것 이고, 여러분이 창조하는 것이고, 여러분이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실천에 옮기고자, 저는 7~8세 학생들과 함께 매력적인 활동을 펼쳐 세계평 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람들 간의 평화와 화합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희 학생들은 어리지만, 아이들은 각 수업의 메시지를 매우 잘 이해했고, 그들 이 사랑과 이해와 조화로 자란 평화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평화교육 교재는 12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수업이 끝난 후에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화교육 교재는 자연의 조화와 관련된 논쟁적인 문제, 조화를 방해하는 인간의 개입, 감사, 노인들에 대한 존경,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에 대한 감사, 효과적인 소통과 평화의 회복, 평화와 조화의 세계를 만드는 데 있어서
6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사랑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을 가르침에 있어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어린 초등1학년 아이들 에게 수업을 진행해야 하다 보니 활동은 신중히 구성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렸지만, 저는 아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인류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필요한 가치와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에게 평화교재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정확한 메시지를 가르치던 순간들을 기쁘게 회상해 봅니다. 아이들에게 진행했던 게임, 실험, 사진과 여러 사람들에 대한 예시와 예술 작품들 특히 이야기들 모두 저는 정말 즐겼습니다. 이야기는 아이들의 영혼과 마음에 엄청난 영향력 을 가지며, 추상적인 개념들을 소개하는데 효과적인 도구가 됩니다. 저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고, 어려서부터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평화에 대한 대화가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달 사이 아이들은 더 조용해졌고, 서로를 더욱 존중하며, 그들이 놀고 배우는 공간에서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고, 타인의 요구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공감하고 돕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저는 이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것은 새롭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진화 하기 위해 일어납니다. 평화교육 프로젝트의 발전 또한 우연이 아닙니다. 평화교육 12과를 끝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저희 학교는 백명, 천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수용했습니다. 저희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전쟁의 심각한 결과에 대해 이미 민감하게 자각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어려운 난민들을 돕기 위해 자원하여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음식, 쉼터, 교통수단, 위생용품, 의류, 장난감 등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 분들이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봉사했다는 것은 평화교육 수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평화교육 속 이야기들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서로가 협력하고 지지하지 않으면 어떤 활동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없기에, 학생들의 부모님 들도 진정으로 지지해 주셨습니다. 저희 학급에 시리아, 터키, 그리스와 같은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서로의 흥미로운 사실들을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줍니다. 이런 기회는 저희 학급의 시리아인 학생의 어머니가 학생들에게 시리아 전쟁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가족이 어떻게 조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전쟁이 가져온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시리아 전쟁 전 후의 사진을 아 이들에게 보여주었고, 아이들은 할 말을 잃은 채 전쟁의 폐해를 바라보았습니다. 학급에서 갈 등이 일어날 때 마다, 갈등이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결과를 알리는 아이들이 생겼고, 훨씬 빠르게 진정하기 시작했습니다.
12과 평화교육을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가치를 배웠습니다. 저는 자연의 조화와 이런 조화가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서로 서로가 하는 일에는 가치가 있으며, 다른 사 람들에게 감사하고 존중하는 방식 또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용 서, 연민, 나의 가족과 조상들과 그들이 남긴 유산, 감사와 타인의 유익을 위한 희생, 전통과 문화의 보존에 대해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가치들은 사랑과 친절만이 우리들을 구해 줄 수 있고 이 세상에 평화를 유지시킬 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7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사랑의 힘이 힘에 대한 사랑을 넘어설 때 세상은 평화를 알게 될 것”이라는 지미 헨드릭스의 말이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학급에 미래의 주역들을 담당하고 계신 친애하는 교사님들께 저는 여러분들이 평화교육에 용감하게 접근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 아이들이 인류의 삶에 새로운 장을 열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빛이 비춰지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랑과 진실과 연민과 인류애의 빛을 전파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평화교사라는 것이 기쁩니다! WE ARE ONE! 우리는 하나입니다.
8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마리나 카리토나시빌리
조지아 체르반테스 아이아게스 학교 지리학 교사
조지아 HWPL 평화 교실 몇 달 전, 나는 HWPL에서 주관하는 국제 프로젝트 참여를 학생들에게 제안했습니다. 프로젝 트 기간에 우리는 6주간 진행될 12개의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에 관해 토론했습니다. 논의 된 모든 주제는 우리 지역사회에 매우 유익했습니다. 우리의 6번의 만남은 저희에게 매우 교육적이었고, 이런 국제 프로젝트에 저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이 만남은 제 개인적으로도 매우 중요했으 며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많은 주제에 관해 토론했고,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됐습니다.
우리의 첫 만남은 '평화교육'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의 즐거운 노래를 시작으로 서로 평화 교육을 주제로 한 발표 자료를 보여주며, 이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 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들의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그들이 얼마나 비슷하거나 다른지 에 관해 이야기하고 토론했습니다. 우리는 평화교육이 전 세계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 만남은 '인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회의 중에는 다양한 인지 영상들을 시청했고, 주 제에 대한 전반적인 개괄을 설명했으며, 인권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 리는 모두 슬프게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 눴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의 권리를 알고 보호하는 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인권"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요약했 습니다.
세 번째 주제는 "아동권리협약"입니다. 이 회의에서는 유니세프(UNICEF)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아동 권리 법의 몇 가지 조항들을 검토 하고 토론했습니다. 발표와 토론을 마친 후, 우리가 언급한 모든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아이들 은 다른 시민 및 성인과 같은 권리를 가지며,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고, 개인의 의지 및 선택권 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네 번째 주제는 "괴롭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괴롭힘은 어느 나라 에서나 과거에도 매우 큰 문제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물론 안타깝 게도, 이 문제가 필요한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큰 논쟁거리가 될 것입니다.
9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우리는 괴롭힘의 원인과 다른 나라들의 통계 그리고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적어도 어 떻게 줄어들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고, 괴롭힘을 겪은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했으며, 언젠가 괴롭힘의 문제에 놓인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우리의 다섯 번째 주제는 자유였습니다. 자유는 아주 큰 주제이고 우리는 그에 대해 몇시간이 고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가 지루해지지 않기를 원했고, 그래서 여러 소주제로 다시 나누게 되었습니다: 인종의 자유, 일반 자유, 그리고 LGBTQ 공동체의 자유. 우 리는 이 소주제들에 대해 많이 대화를 나누었고 토론했고, 그에 따라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습 니다. 우리는 자유를 침해 받은 피해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 의 한가지 예시에 대해서는, 단순히 인종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그리 고 피부색에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 리 모두는 주제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세계유산” 이었습니다. 특히 이 주제는 우리 모두에게 즐거웠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문화와 조지아의 유산을 대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세계유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일반적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짧은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물론, 우리 는 또한 유네스코가 여러 세계문화유산을 대표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마 지막으로, 우리는 조지아의 여러 유형과 무형 문화재를 소개했습니다: 전통 춤, 교회, 장소들 과 음식들. 끝으로, 그리고 언제나처럼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나누었고 인사를 했습니다.
목표와 결론: 이 프로젝트의 주요한 목표는 평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는 것이었습 니다. 우리 팀은 멘토와 평화 인도자 라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컨퍼런스와 인지적 대화 를 통해 프로젝트 과정 동안 얻은 정보들은 우리 학교의 다른 학생들에게도 공유되었습니다. 세계에서 평화라는 문제는 가장 적극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이고, 아동기때부터 학생이 스스 로 해결해보고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프로젝트동안 우리는 우리의 임무 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10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마리야 얀코비치
크로아티아 휴고 바달리치 초등학교 영어 교사
크로아티아 HWPL 평화교실 저희의 평화교육 모험은 2년전 아주 정겹고 따뜻한 한국인 선생님들과 연이 닿으며 시작되었 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은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 는 매 수업을 통해 평화를 촉진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멋진 세계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어갔 습니다. 저희는 차이점, 용서, 그리고 희생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저는 그리스, 세르비 아, 북마케도니아와 같은 다른 나라의 선생님들과 교류하면서 우리는 정말 평화 안에서 하나 가 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고, 빠르게 평화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후, 평화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 교장선생님의 지지를 받으며, 저는 6학년 학생들과 함께 평화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다섯 달 동안 진행된 12번의 평화 수업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 은 영어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깨달은 점 중 하나는, 저희의 외국어 수준도 더욱 향상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과 크로아티아 사이에 큰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를 기꺼이 돕고자 하는 한국 선생님들은 평화 교육 수업에 필요한 모든 수업 계획서와 자료들을 보내주 었습니다.
모든 수업은 매우 교육적이었고, 재미있는 오프닝 이야기와 때로는 활기 찬 내용의 영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저는 사랑, 평화, 질서, 탐욕, 관용, 조화, 존중, 공감, 그리고 자존감과 같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서 교과 내용을 통해서도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실 생활의 경험과 예시를 통해서 이 모든 것들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어떤 학생들은 자신들이 이 미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작은 일일지라도 도움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 했었고, 이것을 깨닫는 과정이 학생들의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학생들은 당시엔 작은 일을 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학생들에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 을 것입니다.
11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과 저는 평화 수업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평화와 평화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이 끝나갈 무렵, 저희는 모두 작은 평화 전문가 가 되었고, 이 교육을 통해 얻은 모든 지식들을 일상생활 속에 적용하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거의 매일 학생들이 평화교육에서 배운 것들을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시행한 사례 들을 듣곤 합니다. 봄의 햇살과 함께 저희의 자부심도 상승하였고, (한국인 선생님들의 좋은 아이디어 제안으로) 저희는 이웃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는 2022년 3월, 슬라폰스키 브로 드라는 저희 지역에 있는 문화 유산인 브로드 포트리스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화유산 을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청소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봉 사활동은 저희의 교육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과정 중의 하나였으며,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 고 도움을 주는 것을 실천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모든 사람들이 문화유산의 아름다움 을 즐길 수 있도록 주변환경을 청소했습니다. 최고의 모험은 제트기처럼 빨리 왔음을 저는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지막 줌 미팅 과 퀴즈 게임이었습니다. 한국 선생님들과 저는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 평화교육 수 료증과 한국 선생님들께서 보내어 주신 선물을 (펜, 배지, 모든 학생들을 위한 수료증과 가장 열심히 한 학생들을 위한 상장들) 준비했습니다.
학생들은 모든 수업 시간에 열정적으로 임했기 때문에 퀴즈 게임은 흥미로웠고 그다지 어려 워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평화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 고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이 세계에 함께 있음을 즐겼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협력을 기대하며, 평화와 통합의 중요성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
12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02
‘TeachingGoesOn’ 캠페인
마호메드 알-아민
방글라데시 샴술 호크 칸 학교 영어학부 조교수 겸 학부장
방글라데시 'TeachingGoesOn' 캠페인 “교육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 교육만이 진정 사람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플라톤은 말했다. 하지만 진정 사람을 만드는 도구인 교육이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괴물에 휘청거리고 있다. 이 괴물은 전 세계를 문어처럼 사로잡았다. 가장 피해가 큰 분야는 교육이었다. 거의 파멸 직전이었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의 학생들은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도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 믹으로 인해 학생들은 일찍 일어나 책가방을 메고 직접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웃으며, 학교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오후에 집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저녁에는 내일 수업 준비를 하는 등 규칙적인 생애 리듬을 잃었다. 어떤 학생들은 장시간 집에 머무르며 몸 집이 커졌고, 또 다른 어떤 학생들은 탈선하거나 학업을 중단했다. 그것이 교육의 현황 이었고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 세계 학생들을 위한 희망의 빛을 안고 HWPL의 평화교육이 등장하였다. 얽매인 상황에서 HWPL의 평화교육부의 주도로 학생과 보호자, 교사들은 전반적인 교육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온라인 교육’을 도입하여 터널 끝에서 희망의 빛을 보게 되었다. HWPL 평화교육부로부터 몇 달간 다양한 교 육을 받은 우리, 방글라데시 다카의 샴술 호크 칸 학교와 교사들은 우리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교육 추세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평화 교육을 시행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샴술 호크 칸 학교 영어학부 조교수인 내가 HWPL 평화교사 양성교육의 트레이너인 김지수와 송진실에게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샴술 호크 칸 학교는 방글라데시에서 영명이 높은 기관으로 15,000명 이상의 학생들과 500명의 교사, 직원들이 있다. 우리 기관의 이름과 명성은 국경을 넘어 모든 공공 시험에서 최고의 결과를 보장하고 있으며 교육 영역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학술 교육 외에도 스카우트 활동, 토론, 캠핑, 등산, 나무 심기, 과학 박람회,
13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문화 활동 등과 같은 재량 활동에서도 전 세계적인 평판을 듣고 있다.
마부불 라흐만 몰라 박사는 이 유명한 기관의 교장이다. 그리고 그는 HWPL 평화 홍보 대사이 기도 하다. 그는 HWPL의 창립 이래로 HWPL과 인연을 맺어 왔으며 대한민국에서 열린 거의 모든 평화 만국회의에 참여했으며 이따금 방글라데시에서 평화 캠페인, 평화 회담, 평화 걷기 대회, 평화 세미나, 평화 교육 훈련을 주선했다. 마부불 라흐만 몰라 박사는 학문과 재량 활동 에 대한 뛰어난 공헌으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호주,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네팔 등의 나라를 방문하여 스카우트 잼버리에도 협력했다. 게다가, 그의 효과적이고 가장 순 수한 형태의 지도기준에 따라 우리는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하는 우리 기관의 모든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보장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모든 기관의 무기한 폐쇄를 선언했을 때 우리는 년 중 수많은 오디오와 비디오, 녹화 수업을 단호히 진행해왔다. 우리는 학생들이 교육을 계속 접 하고 교사와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구글 미트와 구글 폼 등을 사용한 주별, 분기별, 월별 시험 을 확보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시련기에 교육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보호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를 받았다. 학생들 또한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는 것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 우 리는 우리 기관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속에서도 교육 프로그램을 진전시켰다. 학교 정규 교 육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한 구글 미트를 활용하여 우리 교육 기관에서 평화 교육을 매우 성 공적으로 수행했다. 학교의 정규 수업과는 달리, 학생들은 평화의 사자가 되는 법, 다른 사람 들에게 동지애를 갖는 법을 배웠다. 학생들은 욕심과 파괴를 모면하고 구성을 조성하는 방법 을 배웠다. 학생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지키고 파괴적인 무기를 건설적인 도구로 바꾸는 법을 배웠다. 이제, 모든 학생들은 사랑과 평화, 연민과 희생, 박애와 공평의 성화 봉송자가 되었다. 학생은 잠시 동안 학습자이지만 교사는 영원히 학습자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팬데 믹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HWPL 평화교육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2 개월 간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코로나라는 상황에서도 배움과 가르침은 계속되었다. 좀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이런 기이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결단력, 용기가 여기 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이 기간에 배움과 가르침을 중단했다면, 우리 모두 큰 손해를 입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고 강한 의지와 결단력으로 어떻게든 우리의 교육을 되찾았다. 비단 우리가 코로나라는 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아귀에서 아직 완 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앞으 로 더 나은 날이 오기를, 떠오르는 태양이 밝게 빛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이전처럼 다시 직접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평화교육부가 교육의 영 역에서 더 오래 함께하길 기원하며, 팬데믹 시대에 그랬듯이 더욱 더 힘찬 평화교육의 행진이 이어 가기를 기도한다. HWPL이여 영원하라, 평화교육부여 영원하라, 모든 평화의 사자와 평 화 가족들이여 영원하라.
14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자말 술레이만 압둘 라만 박사
수단 과학기술 대학교 평화 연구 문화 연구소 교육부서장
수단 평화교육에 관한 제안 (필요성과 의무) 오늘날, 평화교육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새로운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이는 평화교육에 대한 기존의 개념으로는 오늘날의 국가와 사회에 노출된 내부적 위협의 통합성을 이해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지역단체, 국제기구, 정부 및 비정부기구와 같은 국제적인 행위자들이 존재함에 따라, 국제관계에서의 행동과 영향력이 더 이상 민족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국가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원인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군사적인 원인뿐만 아 니라 국가의 군사력만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다른 비전통적인 원인들이 존재합니다.
평화교육은 학생, 그리고 행동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 교육 은 학생들이 기성세대로부터 배워온 개념, 태도, 그리고 대처 방식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주요 결정권자들인 정치인들은 평화교육을 통해 보복심보다는 평정심을 갖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교육은 공동체에 대한 관점을 부족주의에서 민족주의로 바꿔줄 것이고, 한 국가나 지역에서 국가 전체에 대한 봉사정신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또한, 독재적인 통치에서 민주적 인 통치 접근으로, 종교적 광신에서 신앙적 존중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세대는 독창적이고, 다른 세대와 잘 결합될 것이며, 인접 국가들의 다른 문제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도록 준비될 것입니다. 변화의 도구로서의 평화 교육: 기고문을 작성하며 정리한 개념을 먼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평 화교육은 국가가 평화의 위기를 겪고 있고, 대부분의 국가 공동체가 평화를 만들 기회가 없을 때 평화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평화교육은 여러 가지 방법과 도구를 통해 이루 어져야 합니다. 이를테면, 공동체의 방식과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더 효과적인 평화 교육의 실행을 위해, 한 과정에서 얻게 된 성공적인 평화교육은 다른 평화교육에도 적용되어 야 합니다. 또한 분쟁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신속한 변화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며, 국제 사회의 분쟁 당사자들을 상대할 때에는 개방성과 정직함이 필 요합니다. 이제 위협은 국경 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하여 다른 나라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현대 수단 역사를 통해 군사 쿠데타가 다양하게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수단의 정치 전문가들과 관찰자들이 봤을 때 놀랍고, 흥미로운 정도이며, 그 빈번도가 아랍 국가들 중 상위권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의 패턴은 나이지리아와
15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같으며, 시리아보다는 낮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평화교육은 수많은 수단 사람들에 게 꼭 필요한 교육이 되었습니다. 이 평화교육은 수단의 현실에 긴급하게 필요합니다.
교육 과정의 중요성: 저는 대학교에 평화교육 프로그램 과정을 만드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 과 정을 통해 수단의 관습과 전통의 관점을 기반으로 하여, 모든 민족과 인종의 평화 기초를 다 지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다원주의와 다양성뿐만 아니라, 개인, 부족 공동체, 행정 시스템, 인종, 관습, 종교, 언어 등 수단의 혁명과 변화 이후 현 사회가 직면한 많 은 어려움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쟁의 원인, 도시와 주변 지역에서의 폭력의 확산, 그리고 평화 공존에 대한 현상과 원인 및 위협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 과정의 목표: 이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평화교육의 새로운 커리큘럼을 시범적으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HWPL 커리큘럼 도입을 통해 평화교육에 대한 한국의 경험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과학과 관련된 지식을 연 결하여 교육함으로써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인류의 관심을 연계하여 알려줄 수 있습니다. 다른 민족의 문화와 세계 평화를 지지하는 수단의 문화 유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수단 내의 현실은 더 많은 배척과 폭력을 낳았습니다. 그래 서 평화교육은 수단에서 꼭 시행해야 할 필수사항이자 의무입니다.
16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03
유네스코 이벤트
유네스코 평화문화 전파를 위한 비폭력 포럼 2022년 4월 28일 오후 5시, 유엔 글로벌 공보국(DGC)와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에 특별협의지위 단체로 등록 되어있는 국제 평화 NGO HWPL은 평화 문화 확산을 위한 비폭력을 주제로 말리공화국 대표단과 유네스코에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포럼에는 약 180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였고,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여러 국 가에서 참여한 연사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나타난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의 현재 문제에 대해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유네스코 대표단 대사들이 주제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축하의 메시지 와 함께 논의들을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UNESCO 주재 말리 상임이사국 대 사이자 포럼의 주최자인 아마두 오파 티암(Amadou Opa Thiam) 대사는 다음과 같 은 말로 행사를 시작했다: "먼저 이제는 행동을 취해야 할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HWPL 프랑스지부"를 열렬히 축하하며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폭력은 멈춰져야 합 니다. 폭력이 21세기에 설 자리는 없습니다. 긍적적인 변화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가나와 모잠비크의 대사 그리고 베낭의 유네스코 국가위원회도 이 후 축사를 이어갔다. 그 후 본격적으로 발제들이 시작되었고, 주제는 두가지 측면에 초점이 맞춰졌다: 가 정 폭력과 학교 폭력. 3명의 발제자들이 가정 폭력을 주제로 발제했다. 프랑스 보 르도 바 협회(Bordeaux Bar Association)의 대표인 크리스틴 메이즈(Christine Maze)씨는 스페인 모델 이야기를 예시로 들며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와 발견되어 야 하는 해결방법들을 강조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그 후 스페인의 성폭력 반대 단체인 알마 협회(Association Alma)의 대표인 미네르바
17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카다르 아폰소(Minerva Kadar Afonso)씨가 발제 했으며, 그녀 또한 가정 폭력과 마찬가지 로 일반적인 아동 폭력 문제에 대해 제기했다: "아이들은 앞으로 올 미래 세대들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가 정말 모 든 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폭력을 재생산할 것입니다.” 그녀는 또한 폭력에 대한 인식을 가속화하기 위해 전문가 양성에 대한 정책 실행을 고무시켰다. 마지막으로 말리 ESC 학교의 교수인 모하메드 디아와라(Mohamed Diawara)씨 또한 그의 국가인 말리의 가정 폭력에 주목하며, 여성들이 겪는 이 폭력의 사라지게 하기 위하여 성차별 적인 행동들을 막아야 하며 남녀 평등을 위한 투쟁을 지속을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두 번째 주제는 학교 폭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4명의 발제자들이 이 세션 중에 발제 했다. 먼저 말리 바마코(Bamako)의 유네스코 사무실의 문화 프로그램 책임자인 알리 다우(Ali DAOU)씨는 말리에 확립된 몇 가지 협력 방안들을 공유했으며 핵심적으로는 아이들이 서로 다른 문화의 발견함으로 아이들의 상호 이해를 촉진시키는 것이 였다. 프랑스 푸토 시 CCAS의 관리자로 선출된 부슈하 시흐살란(Bouchra Sirsalane)씨는 청년들 사이의 사이버 폭력 문제를 다루었고, 이 주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자기 개발과 학교에 서 트레이너나 전문가의 더 많은 개입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 후 키프로스의 리마솔 CTL Eurocollege 수석 강사인 마리아 하지엘리아 드로타로바 (Maria Hadjielia Drotarova)씨는 평화교육의 중요한 역할과 보다 광범위한 청중에게 전달 될 수 있도록 여러 채널을 통해 평화교육의 보급 필요성을 강조하며, 고등교육기관 내에서 학 생, 동료, 교수, 학계, 강사, 교사 및 기타 학계 직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포럼의 마지막 발제자인 미국 애틀란타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고등학교 교사인 토마스 스미스(Thomas Smith)박사 또한 학교폭력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 평화 교육의 중요 성을 강조하며 이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우리는 폭력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폭력은 모든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적인 현실은 평화 교육을 통해 해결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어떤 어머니, 형제, 자매, 가족도 다시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상 대로 저지른 폭력으로 고통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청년들과 미래 세대들에 게 평화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합니다.” 이어 웨비나에서는 청중들의 소 감과 경험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논의의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이 논의들을 바탕으로, HWPL은 학교 및 가정 내 폭력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여러 학문 분야 에 걸친 요소들의 네트워크 내에서 구체적인 문제 해결과 우수사례 및 도구 공유를 목표로 정 기모임을 통해 교류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18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토마스 스미스
미국 마틴루터킹주니어 고등학교 교사
괴롭힘 예방을 위한 평화교육의 필요성 저는 마틴루터킹주니어 고등학교의 교육자인 토마스 스미스 박사이며 현재 HWPL,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and Restoration of Light의 평화 교사입니다. 오늘 평화 교육의 필요성과 모든 형태의 폭력, 특히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 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교육자 그리고 지역 사회 지도자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는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 평화 교육 이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평화교육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을 해 결할 뿐만 아니라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교육합니다. 이 교육은 중·고등학생들이 평화의 사자가 되고 지구촌의 평화로운 시민으로서 사회를 위해 일어서도록 격려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비폭력과 평화교육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옹호자 중 한 명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름을 딴 학 교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제 생각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그는 시민권을 위한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고, 여기 미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긴 여정을 걸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 어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 비폭력의 가르침을 홍보하고 비폭력을 옹호하는 가장 역사적이고 다산적인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오늘날 미래 세대의 마음과 삶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평화교육 훈련에 필요한 단계를 제시하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비폭력적인 방법과 자신의 행동을 통해 평화의 특성과 평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HWPL 평화교육은 다른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평화를 적용할 수 있도록 더 깊은 가르침과 더 깊은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저는 제 수업에서 이러한 가치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이러한 개념들을 배우고 분쟁 중에 평화의 중요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합니다. 폭력은 일반적으로 주먹 싸움뿐만 아니 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언어적, 심지어 가정이나 언론에 등장하는 가정 폭력까 지도 여러 가지 형태에서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화 교육을 통해 학교 학생들에게 그 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갈등 해결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교실에서의 평화교육의 목표는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비폭력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공동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코호트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번 학년이 곧 끝나기 때문에, 다음 학년을 위한 야심찬 계획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 교육을 철저히 발전시키고 워크샵 자료 및 학생참여 워크샵을 통해 대상을 확대하고 앞으로 다가올
19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여러가지 상황에 대비한 수업을 준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폭력보다 평화를 선택할 필요성을 우선시하고 심지어 교실에서 평화를 전파하는 지도자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이 교육을 더욱 확대하여 교실의 문화가 학생과 교사들 사이에 평화롭고 이를 적극 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비폭력의 삶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리더십 클럽을 동원하고 발전시킬 것입니다.
제가 해외 탄자니아에서 하는 일은,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평화와 비폭력의 일과 관련이 있습 니다. 성별 기반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많은데, 저는 교육을 통해 여성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탄자니아에서 제가 함께 일하는 학교들은 여성들이 대학에 다 닐 수 있도록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돕고,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고, 폭력행위로 부터 안전하고 평화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워크샵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발하거나 연구소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입니다. 이것은 생활 기술, 리더십 개발 그리고 기관에서 정규 교육을 통한 평화 교육의 전체 개념을 위해 3~4일간의 훈련으로 구성될 수 있습니다. 이 여성들은 갈등 해결을 배우고 주변의 친구, 가족, 동료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의 일부가 평화와 비 폭력의 리더십 연구를 위한 기관이 될 수 있다고 고려할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대학의 부총장이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화 리더십의 비폭력에 대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이름을 붙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이 원칙들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프리카에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평화와 비폭력의 리더십 기관 또는 여성의 평화 비폭력 및 기업가적 기술의 리더십 기관이라는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 이 세 가지가 큰 추 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하는 일은 소녀들을 성에 기반한 폭력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의 중요성과 절실한 필요성을 보여주며, 이것 또한 폭력의 한 형태이며,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결혼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지켜져야 할 기본적 인권들이 있는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변화를 일으킨 것처럼, 이 무력한 아이들과 여성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제가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에서 우리는 모든 폭력을 인식하고 갈등, 고통, 고통의 행위를 종식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올해 성과를 촉구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새 로운 교육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목표이자 꿈은 이러한 교육을 사람 들에게 전파하고 그들이 일상 생활에서 가르침을 배우고 접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롭고 비폭력 적인 삶을 가기로 선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와 그 주변 지역에서 십대들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언어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선택하고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는데, 이것이 평화의 길이고, 이것이 우리 후손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그들은 폭력의 격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평화적 인 수단을 통해 그 격화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적절한 도구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며 조화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 편해야 하고, 괴롭힘은 지금 당장 큰 화두인데, 평화 교육 훈련을
20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통해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우 적합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왕따라는 현재의 문제를 알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서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 니다. 학교들은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평화 교육과 비폭력 교육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완전한 준비를 갖추 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평화 시민이 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보다 자세한 가 르침을 받아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왕따 문제를 최소 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왕따는 엄연한 폭력의 한 종류입니다.
사이버 왕따를 당하던 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학생들이 무기를 손에 쥐고 강도나 총격을 가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모두가 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폭력은 모든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폭력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인 현실은 평화 교육을 통해 해결될 수 있으며, 더 이상 어떤 어머니나, 형제, 자매, 가족도 학생에서 다른 학생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우 리는 우리의 젊은이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평화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21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04
평화와 문화
최의헌
HWPL 본부 국내외평화교육부 부장
케테 콜비츠의 반전 미술과 평화 문화 케테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1945)는 제 1,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대표적인 반전 미술가이자 판화가이다. 그녀의 유작인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Seed-Corn Must Not be Ground, 1941)>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녀들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이제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중략) 이 호소는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명령이다. 요구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세계적으로 반전(反戰)에 대한 목 소리가 커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케테 콜비츠의 작품과 생애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케테 콜비츠는 1867년 동프로이센 의 쾨니히스베르크(現 러시아 칼리 닌그라드)에서 태어났으며, 생애 대 부분을 베를린에서 보냈다. 사회주 의 사상을 가진 케테의 아버지 카를 슈미츠(Karl Schmidt)는 판사 생 활을 정리하고 미장이의 삶을 살았 다. 정부 관리로서의 성공적인 삶보 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더 중 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케테의 남편인 카를 콜비츠(Karl Kollwitz) 도 의사이지만 하층민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돕기 위해 무 료 진료소를 운영했다. 이런 영향을 받은 케테 콜비츠는 초창기에 가난한
22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Seed-Corn Must Not be Ground, 1941)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노동자와 불행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케테의 두 아들도 전쟁에 참전했다. 그중 둘째 아들인 페 터(Peter)가 플랑드르 전투 중에 사망했다.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아들의 갑작스러 운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케테는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듬 해인 1915년 4월 11일, 케테는 자신의 일기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아가야, 봄이 왔단 다.” 케테는 페터를 기념하는 조각 작품 <비통한 부모(The Grieving Parents)>를 무려 17년 동안 제작하여 1932년에 완성했다. 케테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반전과 평화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다.
비통한 부모(The Grieving Parents, a memorial to Kollwitz' son Peter, 1932)
케테 콜비츠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전쟁의 참상을 판화로 그려내기 시작해, 1923년 목판화 시리즈 <전쟁>을 완성했다. 그리고 <장 크리스토프(Jean-Christophe)>의 작가 로맹 롤랑(Romain Rolland)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이 그림들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모두가 겪은 이 참담한 과거를.” 또 1924년 에는 <전쟁은 이제 그만(Never Again War)>이라는 포스터를 통해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 를 내었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좌파 예술가들은 타국으로 망명하거나 작업을 중단 해야 했고, 케테 콜비츠도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Prussian Academy of Arts)에서 추방당했 다. 케테의 작품들은 1936년 나치에 의해 전시가 금지되었다. 1938년에는 남편의 의료 행위가 금지되었고, 1940년에는 사랑하고 의지하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1942년에는 제1차 세 계대전에서 죽은 아들 피터의 이름을 딴 손자 피터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했다. 케테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아들과 손자를 두 번이나 잃어버리는 슬픔을 겪었다. 1943년에는 케테 가 50년 동안 거주하던 베를린 아파트가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피난을 가야 했고, 자신 의 작품과 가족의 유품을 상당수 잃어버렸다. 피난 생활을 하던 케테는 1945년 4월 22일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망한 지 16일이 지난 후,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23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전쟁 시리즈 중 과부 2 (The Widow II, sheet 5 of the series »War«, 1922)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케테 콜비츠의 예술은 정치적 색채를 띠며, 순수한 예술이 아니라고 비 판했다. 이에 대해 케테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 쟁 반대 포스터 제작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것이 순수한 예술이 아니라고 몇 천번이나 말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일을 할 수 있는 한, 저는 제 예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평화주의는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것이 아닙 니다. 그것은 이루어야 하는 일이며, 힘든 일입니 다.”
전쟁은 이제 그만 (Never Again War, 1924)
현재 독일 내에는 케테 콜비츠의 이름을 딴 학교 가 40여 개가 있고, 대도시마다 케테 콜비츠 거 리가 있으며, 쾰른과 베를린 그리고 모리츠부르 크에는 케테 콜비츠 미술관이 있다. 하지만 이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녀가 우리에게 전해준 평 화 문화이다. 케테 콜비츠는 평화 문화라는 씨앗 을 심으면 언젠가 평화의 꽃이 만개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언젠가는 새로운 이상이 출현해 모든 전쟁이 종식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확신 하며 죽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반드 시 이뤄질 것입니다.”
24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변하은
HWPL 본부 국내외평화교육부 코디네이터
세계인권선언문(UDHR)과 평화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선언문(Declaration of Peace and Cessation of War, 이하 DPCW) 에는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두 번 언급되어 있다. 다음은 세계인권선언이 언급된 DPCW 전문과 10조의 일부이다.
- DPCW 전문(前文) “유엔 헌장과 세계인권선언 등 기타 국제법률문서의 목적 및 원칙들 을 상기하면서...” - 제 10조 1항 “국가들은 전세계적 운동으로서 평화를 추구하는 단체 및 기구들을 인정하 고 연대하여야 한다. 특히 세계인권선언 및 1999 년 유엔 평화문화 선언문이 규정한 바 에 따라, 그런 단체들의 인권 및 평화 연구에 대한 수업 제공과 같은, 의식 제고활동을 용이하게 해야한다.”
DPCW 작성 당시 HWPL 국제법 제정 평화위원회에게 귀감이 된 세계인권선언은 오늘날 우 리에게 익숙한 핵심적인 인권 보장 사항을 정리한 선언문이다. 이 세계인권선언은 가장 참혹 하고 암울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하였다. 평화를 가장 갈망하던 상황에서 인권을 외친 것은 그만큼 평화와 인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유엔인권최고대표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Zeid Ra'ad Al Hussei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권은 지속 가능한 발전 과 평화를 위한 근본적인 기반입니다. 인권은 강하고 성공적인 사회를 건설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권을 외친 문서는 아니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초대 왕 키루스2세(Cyrus Ⅱ)는 바빌론을 정복한 후 문서를 하나 작성하였다. ‘키루스 실린더 (Cyrus Cylinder)’로 알려진 이 문서는 길이 23㎝, 지름 10㎝의 원통형 문서로 진흙 판 겉면 에 뾰족한 갈대로 쐐기 문자를 찍어서 만들었다. 여기에 키루스 대왕은 종교의 자유, 각자 직 업을 선택할 자유, 노예제도 폐지를 명시했고, 제국의 모든 노예를 해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도록 선언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 던 유대 민족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이는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의로 그 (키루스)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 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사45:13)” 유엔은 1971년 132개 회원국을 위해 키루스 실린더 내용을 유엔 공식 언어로 번역하고, 최초 의 인권 헌장으로 인정하였다. 영국 역사학자 찰스 프리먼(Charles Freeman)이 키루스의 업 적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 키루스의 선택이 당시 제국에 안 정을 가져다줬음을 알 수 있다. “그(키루스)의 업적은 기원전 320년대에 제국을 멸망시키려
25
HWPL Peace Education Journal
했지만 안정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보다 훨씬 더 위였습니다.”
우리는 인권 문서가 어떠한 역사적 배경에서 쓰여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인권 선언문이 나온 배경을 살펴보면 정도는 다르지만 전쟁과 같은 끔찍한 시기가 지난 직후였다. 세계인권선언도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8년 12월 10일에 채택됐다. 나치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수백만 명의 유대인, 집시를 고문하고 죽이는 야만적인 행위를 자행했다. 이는 두 번 다 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국제사회는 인권을 지키는 체제를 만들지 않고선 세계평화를 유 지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이에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1946년 유엔인권위원회를 창 설했다. 초대위원장으로 선임된 영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와 법률가 르 네 카상을 주축으로 세계인권선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성별과 피부색, 신념, 종교 등의 특징에 관계없이 모든 인류의 자유, 평등, 인권을 담은 문서인 세계인권선언문이 투표와 합의의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이 세계인권선언은 전문(前文)과 30개 조항으로 구성된다. 전 문은 세상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을 강조하고, 1조는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 존중 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며, 2조는 차별 없이 모두가 선언에 나온 권리를 누려야 할 것을, 3 조~21조는 시민적•정치적 권리, 22조~27조는 사람들이 일하고 쉴 사회적 인권에 대해서 말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28조~30조는 인권에 대한 모든 사람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경제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이 탄생하였다. 또 80개 이상의 국 제 인권 조약 및 선언, 인권에 대한 국내 인권 법안 및 헌법 조항에 영향을 주었다. 엘리노어 루즈벨트가 “우리는 오늘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유엔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상 위대한 출발점 이죠. 세계인권선언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헌장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세계인권선언은 오늘날 인권의 출발점이 되었다. 세계인권선언문이 선포되었다고 세상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한 순간에 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실현되기 힘든 헛된 꿈을 꾸는 것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선언문 발표 이 후 약 70년 동안 인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다. 21세기의 시각으로 봤을 때 세계인권선언은 국제관습법으로 각국의 사회에 문화처럼 자리매김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의 이름은 전쟁 범죄 자로 기억되지만, 평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존경과 존중의 대상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둘째, 국제 안보 정세가 불안정한 지금, 우리는 또다시 참혹한 전쟁을 겪은 후 평화 체제를 재구축 할 것인지, 제3차 세계대전을 겪기 전 평화 체제를 확고히 할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DPCW는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을 금지하고자 공표된 선언문이다. DPCW에 담긴 내용 중 대 량살상무기를 점진적으로 해체 혹은 폐기되도록 하자는 내용 등은 당장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70여년간 다양한 노력을 통해 세계인권선언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 로 자리잡았듯이, DPCW도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인의 지지를 받아 조만간 전 세계가 인정하 는 평화의 규범이 될 것이라 믿는다.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