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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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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goodhands.or.kr

VOL.85 202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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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5 202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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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지구촌 이웃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2003년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한 송월주 큰스님. 시찰 당시 라오스의 아이들과 함께한 모습

(사)지구촌공생회 임원 이사장 성우스님(동국대학교 이사장) 이사 성타스님(조계종 원로의원) 설송스님(희방사 주지) 선묵스님(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 지현스님(조계사 주지) 정념스님(월정사 주지) 월우스님(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원광스님(금산사 한주) 평중스님(영화사 주지) 일원스님(금산사 주지) 돈관스님(은해사 관장) 정묵스님(수덕사 주지) 화평스님(광진노인종합복지관장) 석문스님(보광사 회주) 감사 도연스님(상주사 주지) 원묵스님(옥천암 주지) 사무처장 덕림스님(관음사 주지) 사무국장 자오스님(동국대 석림동문회 간사)

특별후원단체

서울사무국 (04990)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268 (능동), 동산빌딩 3층 전화 02-3409-0303 전북지부 지부장 원광스님 (54933) 전북 전주시 덕진구 가리내로 42-13 (금암동) 전북불교회관 2층 전화 063-277-3497 대전지부 제1지부장 도일스님 (34101) 대전 유성구 유성대로 1312 번길 190 (화암동) 태전사 전화 042-861-7681 제2지부장 광진스님 (34353) 대전 대덕구 신탄진로 36번길 177 (연축동) 죽림정사 전화 042-623-0108 대구지부 지부장 선지스님 (41562) 대구 북구 동북로50길 14 (복현동), 6동 107호 전화 053-942-1588 경남지부 지부장 김영미 (51285)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서 1길 9(서성동) 2층 전화 055-247-0108

인천지부 지부장 일지스님 (21573) 인천 남동구 성말로13번길 56(구월동) 인천불교회관 연화사 전화 032-442-9910 창원지회 지회장 정인스님 (51286)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서6길 89 (회원동) 광명암 전화 055-248-2644 충북지회 지회장 현진스님 (28204)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수곡1길 23-66(수곡리), 마야사 전화 043-297-1900 울산지회 지회장 황산스님 (44523) 울산 중구 옥교로 1 (옥교동) 황룡사 전화 052-211-1949 익산지회 지회장 양연옥 (54601) 전북 익산시 평동로9길72 (갈산동) 관음사 전화 063-854-1578

군산지회 지회장 법송스님 (540445) 전북 군산시 성산면 환동길 26 (도암리) 삼보사 전화 063-453-4742 강원·영동지회 지회장 법연성(권옥남) (25058)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화상천로 277-86 (입암리) 반야사 전화 033-671-7858 부산지회 지회장 유지호 (46288) 부산 사상구 사상로 96-13 (감전동) 2층 전화 051-912-0700 김제·정읍지회 지회장 문연희 (54343)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로 572(금산리) 전화 063-542-3993 발행인 : 성우스님(이사장) 기획 및 편집 : 홍보팀


더불어 행복한 세상

CONTENTS 04

권두언

06

태공당 월주 대종사 추모특집

28

해외사업소식 캄보디아 - 변화 그리고 도전 라오스 - 멈추지 않는 마음 미얀마 - 봄을 기다리며 몽골 - 웃음이 몽골몽골 피어나길 바라며 케냐 - 한 컵의 물을 얻기 위한 노력처럼 네팔 - 함께, 다시 서기 위해

40

후원자 소개 법송스님

42

국내동향

44

신규후원자

47

알림마당


권두언

동체대비의 보현행원을 실천하면, 우리 곁에 항상 대종사님은 계신다.

4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동국대학교 이사장

성우스님

『열반경』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날 인연을 ‘맹구부목(盲龜浮木)’에 비유 하였다. 에도시대의 고야바시 잇사(1763∼1828년)도 “이 늦가을 인간 으로 태어난 것이 가볍지 않다.”고 하였다. 인간으로 탄생할 확률은 약 489억 분의 1이고, 여기에다 곱을 곱해야 비로소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 날 수 있다고 한다. 그토록 불가사의하고 지중한 인연에 의하여 태공 월 주 큰스님을 만날 수 있었고, 한평생 짓기도 어려운 무량한 복전을 지었 으니, 지구촌공생회 회원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2003년 창립 이래, 현재까지 6개국 빈민국가에 학교 80여 개소, 우 물 2,550기, 농장과 사회적기업 15개소를 건립해 주는 무주상보시 공 덕을 지었으니 말이다. 향나무 주위에만 서 있어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향냄새를 맡듯이, 기부액의 적고 많음에 관계없이 모든 후원자들이 함 께 지은 아름다운 민간구호단체의 공동 결실이기에 감회가 한층 더 새 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 무량 보시공덕을 짓게 해주신 태공 월주 대종사님을 추모할 때면, 그때마다 『님의 침묵』을 음미하지 않고는 도저히 늦가을을 떠나보낼 수 없는 공생회 회원들과 동일한 심정이 아닐지 곰곰이 사색해 본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 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 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용운 스님(1879∼1944년)처럼 마명 보살(50∼150년) 또한 『불소 행찬』에서도 그와 같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다 하 더라도 내 가르침대로 행하면 나와 항상 가까이 있을 것이요. 나와 가 까이 있더라도 내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으면 나와 항상 멀리 떨어져 있 는 사람이다.” 그렇다! 대종사님은 떠나셨지만, 우리는 대종사님을 아직까지 떠나보내 지 않았고, 결코 떠나보내서도 안 될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일생동안 초 지일관 견지하셨던 동체대비의 보현행원을 실천한다면, 우리 곁에 항상 대종사님이 계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종사님께서는 생전 에 “보현행원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 곁에 항상 함께 있 을 것이다.”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풍요로운 결실과 아름다운 텅 빈 비움(회향)이 교차하는 늦가을, 대종 사님을 진정으로 추모하며 다시 한번 일념으로 말 없는 묵상에 끝없이 잠겨본다. www.goodhands.or.kr | 5


6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 1 9 3 5 ~ 2 0 2 1

태 공 당

)

월 주 대 종 사

이웃과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미력하지만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 『토끼뿔 거북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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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당 월주 대종사 행장 송월주 큰스님께서는 세간의 학문을 익히고 출가하여 수행정진하며, 국가 와 겨레의 고통을 해결하고, 세계 인류 의 공생을 실현하고자 한순간도 걸음 이후에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설

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립을 주도해 민간차원의 교류에 앞장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님을 강조하

섰으며, IMF 외환위기로 실업대란과 경

며 삶의 현장에서 진리를 구현하고, 모

제불황이 이어지자 실업극복국민운동

든 이의 행복을 위한 길을 걸어온 송월

위원회를 설립하여 실의에 빠진 국민

주 큰스님. 큰스님의 삶이 더욱 소중하 게 여겨지는 것은 일생동안 동체대비( 同體大悲)의 보현행원(普賢行願)을 견 지하며, 인류가 직면한 과제들의 해법 을 제시하고 이를 직접 실천한 우리 시 대의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의 사회화, 세계일화 (世界一花)로 꽃 피우다

들을 위로했습니다. 이는 불교계 사회 참여 확산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산중에 머무르지 않고 대중 속으로 들 어가 세상의 아픔을 나눠야 한다.” 제17대(1980년), 28대 (1994년) 총무원장을 두 차례 역임하고, 중앙종회 의장을 지내며 한국불교 의 초석을 놓은 것은 물론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역점 과제로 내세워 사회 복지재단을 비롯해 나눔 의집 설립 등 대사회적 활 동도 주저하지 않고 참여 해 책임을 다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나 눌 수 있는 큰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 종교 간 경 계를 넘어 보편적 인류애를 실현하고 자 제3세계 빈곤국가로 발걸음을 옮겨

8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2003년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했습니 다. 그들이 기아와 질병, 빈곤에서 벗 어날 수 없는 현실을 세계 모든 인류 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 나의 문제 로 여기며 생명과 직결되는 식수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라오스, 몽 골, 케냐, 미얀마, 네팔 6곳에 지부를 개 설하고 교육지원사업과 지역개발사업

“일심(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일체

촌의 인류를 위해 대중과 함께하는 자

등 지구촌 이웃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

중생을 이롭게 하라.”

세로 심부름하는 자세로 사는 것일 뿐” 이라며, “소임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

왔습니다. 귀일심원(歸一心源) 요익중생(饒益衆

으면 없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출

지구촌이 한 가족, 한 일터라는 ‘세계

生), 큰스님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스며

가자로서의 한결같은 소망이자 소신”

일화(世界一花)’ 정신을 바탕으로 자비

있는 이러한 행보는 종단의 원로 및 중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 손길을 내밀어온 지 18년. 그 결과

진 스님들의 국경 없는 자비행을 촉발

지금까지 2,550기의 식수시설을 만들

하는 마중물이 되었으며, 바람직한 출

인류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

어 37만 명의 식수난을 해소했으며, 80

가수행자의 표본을 세웠습니다. 이렇

고, 평생 자비행과 보살행을 실천하며

개의 학교를 건립해 20만 명의 아이들

듯 월주 큰스님의 일생은 불교 자주화

‘깨달음의 사회화’라는 꽃을 지구촌에

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와 함

뿐만 아니라 차별, 냉대, 굶주림이 없는

활짝 피운 월주 큰스님. 큰스님의 삶 그

께 각 나라의 실정에 맞는 지원으로 캄

세상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었고 거룩

자체는 무명의 세계를 밝히는 밝은 등

보디아 64개 마을, 77만 평의 지뢰 없

한 실천이었습니다.

불로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 아있을 것입니다.

는 평화마을 조성, 몽골 사막화 방지를 위한 6개의 푸른마을 조성, 케냐 지역

큰스님은 회고록에서 여생의 소망을

민을 위한 6곳의 농장과 네팔 사회적

“몸담고 있는 종단, 민족과 사회, 지구

기업 ‘굿핸즈 소셜엔터프 라이즈’ 설립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습니 다. 이밖에도 재난과 재 해 현장에 발 벗고 나서 이웃들의 생명을 구하 고 치유하는데 앞장섰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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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지구촌공생회 최초의 교육시설, 라오스 던눈 공생유치원 개원

2010

미얀마 마닛야마 화엄초등학교 준공

2016

케냐 날레포 태공중고등학교 준공

10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2005

라오스 비엔티엔 던눈 보건소 개소

2011

네팔 공생청소년센터 개관

2006

캄보디아 크나이 공생초등학교 개교

2012

제16회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

2017

2018

포항 지진 피해 지역 방문 및 무료 급식 지원

미얀마 딴신째 마을 생명의 물탱크 38호기 완공


2007

생명의 우물 캄보디아 센터 개관

2013

캄보디아 생명의우물 2,000기 완공

2019

2008

몽골 145 공생유치원 개원

2014

케냐 올마피테트 만해중고등학교 준공

2009

지구촌공생회 케냐 첫번째 식수펌프 완공

2015

캄보디아 찌리우 공생유치원 준공

2020 생명의 가치는 우리 민족이나 그들 이 같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인류로 서 최소한의 삶이 유지되도록 해주어 야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너’와 ‘내’가 서로 다르지 않기에 ‘공 생’해야 합니다. 7호 2007.7+8

캄보디아 쓰락까에우 안심중고등학교 준공

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한 성금 전달

지구촌공생회는 앞으로도 여러 후원 자님들이 듬뿍 담아주신 ‘희망ㆍ행복 의 걸망’을 메고 지구촌 곳곳을 누빌 것입니다. 우리 모두 희망과 행복을 나르는 배달부가 되어 지구촌 곳곳 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행복의 싹 을 틔워 나갑시다. 23호 20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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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 걸어온 길 1935~1969

1970~1979

1980~1989

1990~1999

2000~2021

12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1935

정읍 산외 출생

1954

법주사에서 사미계 수계(계사 금오스님)

1955

정읍농업고등학교 졸업

1956

화엄사에서 비구계 수계(계사 금오스님)

1958

구례 화엄사 강원 대교과 졸업

1961-1971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주지

1970-1973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1971-1980

개운사 주지

1978-1980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1980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

1982-1985

미국 L.A 반야사 회주

1986-1994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주지

1988

10ㆍ27법난 진상규명추진위원회 대표

1989-1997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0-1995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1991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1991

공명선거불교도시민운동연합 공동대표

1992-1995

조국평화통일추진불교인협의회 회장

1992-1996

공해추방운동불교인모임 회장

1994-1997

한국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1994-1998

조계종 제28대 총무원장, 중앙승가대학발전위원회 위원장

1996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이사장

1997-1999

환경운동연합 고문

1998

실업극복국민운동 공동위원장

1998-2020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 이사장

2002-2004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 이사장

2004-2021

사단법인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2006-2021

함께일하는재단 이사장(구, 실업극복 국민재단)

2008

국가원로자문위원회 자문위원

2012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조실 추대

2017

조계종 원로의원

2018

조계종 대종사 법계 품서

2021.07.22

태공당 월주 대종사 원적


1969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수료

1996

원광대학교 대학원 명예철학박사 학위

2000

국민훈장모란장 수훈

2005

조계종 포교대상(사회포교 및 시민운동분야) 종정상 수상

2010

제1회 민세(안재홍 선생)상 사회통합부문 수상

2011

국민훈장무궁화장 수훈

2012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

2013

미얀마 사따마 조디까다자(성자) 최고 작위 수훈

2013

제11회 대원상 포교부문 대상 수상

2014

만해대상 실천부문 수상

2016

(사)한국여자의사회 여의대상(길봉사상) 수상

2017

(사)우리민족교류협회 한반도 평화의 메달 수상

2017

(사)한국지도종교지도자협의회 공로패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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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인터뷰]

내 스승 월주대종사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성우스님 인터뷰

온 힘을 다해 사시고, 온 힘을 다해 죽으셨다

14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월주스님에게 사미계를 받은 성우스님(64·동국대 이사

사정을 전혀 몰랐던 성우스님으로서는 당혹스럽기만 한

장)은 스승에 대해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진리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왜 다음 날 도망치지 않으셨습니

에 목마른 사람에게는 ‘법’을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실

까.” 궁금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천하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평생 ‘이 뭣고’ 화두를 들고 수행 정진하며, 요익중생(饒益衆生)의 자비행 또한 생활화

“그날 저녁식사 직후 스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차를 한

하셨다”고도 했다. “은사스님은 늘 당당하셨다. 그 모습이

잔 내주셨습니다. 이어 ‘이 작설차 맛과 같이 달지도 쓰지

그립다”고 떠올릴 때는 노스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도 않고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매사에 중도를 지키는 것이 중이다’ 말씀하시면서 ‘부처님의 생애’라는 책을 한 권 꺼

“잘못된 만남”인 줄 알았던 인연의 시작

내 주셨어요. ‘이걸 다 읽은 뒤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독후 감을 써오거라’ 하시더군요. ‘단 한 줄’이라는 단서가 붙은

49재 닷새 만인 9월 13일, 동국대 이사장실에서 성우스

말씀에 저도 모르게 엉겁결에 ‘예’라고 답했지요. 그 약속

님과 마주 앉았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자 성우스님은

을 어기고 도망칠 수 없어 그만 ‘영어의 신세’가 됐습니다.”

“은사스님 생전에 건강을 세심하게 챙겨드리지 못한 데 대 한 자책으로 후회와 참회의 나날을 보냈다”고 답했다. 성

옛 추억을 되짚은 성우스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소

우스님은 월주스님 입적 후 불교계 신문에 기고한 추모의

년 행자’ 시절로 돌아가 큰 배움을 베풀어 주신 은사스님

글에서 “스님을 잃은 불초 제자의 눈물은 서해바다가 되

을 자랑하는 듯 보였다.

어도 멈추지 않는다”며 애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불가에서는 보통 출가 후 일정 기간 행자 생활을 하며 성우스님을 만난 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월주스님

수련한 뒤 사미계를 받는다. 이때 비로소 승려가 된다. 행

의 또 다른 면모를 알고 싶어서였다. 성우스님은 채 스무

자 생활은 쉽지 않다. 끝없이 자신을 낮추고(하심·下心)

살이 되기 전 월주스님 문하로 출가해 45년간 모셨다. 가

욕됨을 참아야 하는(인욕·忍辱) 시간이다. 성우스님은 개

까이서 지켜본 대종사(大宗師)의 삶에 대해 듣고 싶었다.

운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던 중 한 스님께 말대답을 했다

성우스님은 “나와 은사스님의 인연은 사실 잘못된 만남으

가 크게 꾸지람을 들은 일이 있다고 한다. 이번엔 그때의

로 시작됐다”는 알쏭달쏭한 말부터 꺼냈다. 성우스님 이야

추억이다.

기를 옮겨보면 이렇다.

깊은 밤 한 제자만을 위해 연 수계식 “저는 출가를 결심한 뒤 서울 성북구에 있는 대원암 탄허 스님 문하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대원암을 거쳐 깊은 오대

“스님 다섯 분이 제게 ‘몽둥이 50대를 맞고 행자 생활을

산으로 들어가리라. 그곳에 가면 금생에 아예 태어나지 않

계속할 것이냐, 아니면 매를 맞지 않고 이대로 속세로 돌

았던 것처럼 속세로 다시는 내려오지 않겠다’ 다짐했지요.

아갈 것이냐’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매를 맞고 행

그런데 제 손을 붙잡고 가던 작은아버지께서 다짜고짜 성

자 생활을 잘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지금 같으면 뒤도 돌아

북구 개운사로 저를 데려가서는 마치 짐짝처럼 은사스님

보지 않고 속세로 나갔을 텐데(웃음), 그때는 스님이 되고

에게 맡기고 쏜살같이 나가버리시는 게 아닙니까. 그때 은

싶은 열정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가 매를 맞았다는 소

사스님을 처음 친견했는데, 눈망울이 초롱초롱하시고 손

식을 어떻게 들으셨는지, 그날 밤 은사스님이 비밀리에 저

으로 큰 나무염주를 돌리고 계셨습니다. 또 마당에서는 시

를 부르셨습니다. 녹차를 한잔 내주시며 구정선사의 일화

봉(侍奉)스님이 장대를 힘차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 자

를 들려주시더군요. ‘승려가 되고 도를 깨우치려면 인욕(忍

리에서 도망가면 두 스님 손에 있는 지물로 죽도록 맞을

辱) 수행이 제일이다.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대장

것 같아 하룻밤만 보내고 새벽녘 대원암으로 도망가겠다

부여야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연꽃처럼 청정한 수행자가

는 생각을 했습니다.”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내일 아침을 먹고 속 리산 법주사로가서 행자 생활을 하여라’ 당부하셨지요. 이

알고 보니 성우스님의 작은아버지는 월주스님과 친분이 있었고, 조카가 그 문하에서 공부하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것이 스님께 받은 초발심(初發心) 가르침입니다. 그때 말 씀은 아직도 제 등불이자 지남(指南)입니다.” www.goodhands.or.kr | 15


법주사는 월주스님이 출가한 사찰이다. 당신과 깊은 인연

을 따름입니다.”

이 있는 절로 제자를 보내신 셈이다. 성우스님은 이후 법 주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다 월주스님이 계신 금산사로 옮

살아온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

겨 사미계를 받았다. 1976년 음력 7월 15일의 일이다. 이 날 성우스님에게는 ‘스승의 사랑’을 실감한 또 한 번의 사 건이 벌어졌다.

월주스님 또한 성우스님을 존중하고 아꼈다. 성우스님 은 “은사스님은 불초 제자인 나를 단 한 번도 ‘성우야’라고 부르신 적이 없다. 늘 ‘성우스님’이라고 높여주셨다”며 “제

“그날 사시(오전 9시~오전 11시)에 금산사 대적광전은

자를 비롯해 범부 중생 모두를 부처님으로 섬긴 큰스님이

온통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여러 행자님이 사미계를 받

나의 은사셨다는 사실이 놀랍고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다.

으셨어요. 행자 가운데 저를 포함해 2명만 제외하고요.” ‘깨달음의 사회화’를 강조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 - 왜 그렇게 된 건가요.

실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 여러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월주스님은 봉사활동과 비정부기구(NGO) 간 교류

“저는 법주사에서, 다른 분은 불국사에서 각각 행자 생 활을 했습니다. 금산사에서 계를 받으려면 행자 생활을 더

등의 목적으로 종종 해외를 다녀오곤 했다. 성우스님은 그 길에 동행한 기억도 떠올렸다.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비극적인 소식이었지요. 성격 급 한 다른 행자님은 바로 봇짐을 싸서 석양 무렵 산문을 나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15시간, 차량으로 5시간을 더

가버렸습니다. 저는 행자실에서 한없이 울었어요. 그러다

가면, 케냐 마사이족 인키니 마을에 도착합니다. 말 그대

지쳐 저녁 공양이 끝난지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

로 오지지요. 그곳 아이들은 소똥으로 뒤덮인 황무지에서

데,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제 얼굴을 흔들더군요. 계

뒹굴며 지내요. 스님은 그곳에 농장과 최첨단 태양광 식수

받을 준비를 하라고요. 꿈인지 생시인지 어안이 벙벙한 채

시설, 그리고 학교를 짓는 데 앞장서셨습니다. 스님이 일

로 법당에 들어가자 은사스님이 함박웃음을 짓고 계셨습

흔이 넘으셨을 때 그 마을에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달

니다. 저를 보시고는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를 설

라진 모습을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시던지요. ‘건강이 다시

하기 시작하셨죠. 수계식은 한밤이 돼서야 겨우 끝났습니

좋아진 것 같다’고 환히 웃으셨어요. 돌아보면 스님은 미

다. 수계식은 보통 사시에 열립니다. 저는 한밤중에 계를

소가 정말 아름다우셨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이 가장 그

받은 유일한 승려입니다. 제가 어찌 은사스님 은혜를 잊을

립습니다.”

수가 있겠습니까?” 성우스님은 월주스님의 삶은 그 자체가 곧 수행이었다 성우스님은 또 한 번 활짝 웃었다. 이번엔 웃음 끝이 촉

고 돌아봤다. 월주스님이 2016년 펴낸 회고록 ‘토끼뿔 거

촉했다. 성우스님은 “은사스님을 떠올리면 뵙고 싶다는 생

북털’에는 “나의 수행 현장은 사회와 지구촌의 구석진 곳

각에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다. 나는 늘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라는 다짐이 담겨 있 다. 이것이 그저 선언적인 문구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성

- 제자가 상심할까 봐 월주스님이 밤늦게 따로 자리를 마

우스님 설명이다.

련하신 거군요. “참선 수행이 습관화되면서 걷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 “그러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 ‘하룻밤만 더 자고

거나(行住坐臥)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시끄럽거나 고요하

다음 날 새벽 쥐도 새도 모르게 절을 떠나겠다’고 마음먹

거나(語默動靜), 어떤 악조건에도 화두에 전념할 수 있게

은 참이었어요. 스님은 그런 저를 한 번 더 잡아주신 겁니

됩니다. 이것을 비행비좌삼매(非行非坐三昧) 또는 수자의

다. 제가 평소 은사스님 말씀을 잘 따른다고 저를 ‘효상좌

삼매(隨自薏三昧)라고 하지요. 은사스님은 시간과 장소에

(孝上佐)’라고 하는 문도(門徒)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구애하지 않고 ‘이 뭣고’ 화두를 참구(參究)하셨습니다. 그

는 절대 효상좌가 아닙니다. 제게 베풀어주신 은사스님 사

랬기에 생활 자체가 참선 수행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겁니

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지시 사항에 대부분 순종했

다.”

16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이런 경지에 이르기 전, 한때 월주스님은 밤낮을 잊은 채 수행에 전념하다 건강을 해친 일도 있다고 한다.

“은사스님은 2011년 전주혁신도시의 종교용지 608평(약 2010㎡)을 평당 180만 원에 불하받았습니다. 4년이 지나 자 땅값이 평당 600만 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제가 ‘중

“젊은 시절 밤잠을 자지 않고 금강경 독송에 매달리다

생을 구제하는 원력도 크지만 투자 능력도 대단하십니다’

오랫동안 앓던 병이 위중해지신 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기가 무섭게 은사스님께서 ‘성우

그때 스승께 받은 ‘이 뭣고’ 화두 수행을 거듭하자 모든 병

스님이 포교당을 신축하도록 하려고 산 땅’이라 하시더군

이 씻은 듯 사라졌다고 합니다. 저는 은사스님이 당시 천

요. 순간 정신이 멍해졌어요. 시주 능력이 전무한 제가 어

지가 본래 크게 비어 있다는 실상을 자각하고(천지본태

떤 재주로 그 일을 맡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여쭙자

공·天地本太空) 일시적으로 허무공에 빠졌지만, ‘이 뭣고’

‘영화사에서 5억 원을 송금할 테니 종잣돈 삼아 건물을 지

화두 수행을 통해 불퇴전의 원력보살로 환골탈태하신 거

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격려의 말씀을 듣는 순간 힘이 샘

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은사스님은 일체 중생을 부처님처

솟았고, 쇠뿔을 단김에 뽑듯 공사를 시작해 일사천리로 완

럼 존경하고 공양하며(일체역여래·一切亦如來), 동체대

공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시주금이 예상보다 많이 모여

비의 보현행원을 평생 수행하셨습니다(유아전생애 즉시임

내부 집기는 물론 버스까지 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종게ㆍ唯我全生涯 卽是臨㹣偈).”

절이 수현사입니다. 마침 부근이 공원용지라 지자체에서 절 주위로 1만5000평(약 4만9600㎡) 규모 도심공원까지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

조성했습니다. 누군가의 가피(加被)가 작용했을 것으로 생 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우스님이 언급한 “天地本太空(천지본태공)/ 一切亦 如來(일체역여래)/ 唯我全生涯(유아전생애)/ 卽是臨㹣偈

월주스님 회고록에는 ‘귀임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

(즉시임종게)”는 월주스님의 ‘임종게’ 내용이다. 임종게는

衆生)’ 즉 ‘본래 마음을 깨닫고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라’라

고승이 죽음을 앞두고 깨달음을 후세에 전하고자 남기는

는 경구를 지남(指南)으로 삼고 살았다는 대목이 있다. 성

말 또는 글을 일컫는다. 월주스님은 열반 전 “하늘과 땅

우스님은 더할 나위 없이 큰 본보기였던 스승의 뒤를 따라

이 본래 크게 비어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로다/ 오직 내

이 삶의 길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가 살아온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라는 임종 게를 남겼다. 성우스님은 이 말씀이 오랜 수행의 결과임 을 설명했다.

“은사스님은 원오극근(圓悟克勤·1063~1135) 스님 말 씀처럼 ‘살 때는 온 힘을 다해서 사시고, 죽을 때는 온 힘 을 다해서 죽으셨습니다(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 그동

월주스님은 이처럼 깊은 수행과 큰 사랑을 바탕으로 언

안 우리 스님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돕고, 추모해 주신 모

제나 제자에게 든든한 울타리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또 한

든분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스님이 남긴 보현행원

가지 성우스님이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普賢行願)을 이어가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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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날마다 새로운 날을 창조하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마침내 이별의 자리에 섰습니다. 큰 슬픔이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눈을 감고 고요한 침묵으로 떠올려 봅니다. 제 나이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정월 보름 해제날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안내를 받고 스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55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더는 함께 할 수 없는 이별의 갈림길입니다. 말 그대로 백척간두의 순간입니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스님의 본 뜻을. 제가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습니까? 스님의 삶을.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젯밤,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진솔하게 제 소견으로 보고 듣 고 생각한 것을 풀어내었습니다. 스님에 대한 제 생각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살리.” 아침 해처럼 처음 떠오르는 스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여기 구정물이 가득한 연못 현장에서도 언제나 오염되지 않고 청정한 연못처럼 삶을 가꾸 리.” 스님은 인적이 끊긴 깊고 조용하고 신성한 곳을 찾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두 발을 딛고 선 현장에 온몸으로 오롯하게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순간순간 오염되지 않은 한 걸음, 맑고 깨끗 한 한 걸음을 내디디고 또 내디뎠습니다.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온 우주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네.” 스님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기 나의 진면목인 우주도, 만물도, 모두 한몸, 한 마음, 한생명임을 참되게 알고 확고부동하게 새기며 살리. 언제 어디에서나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스님은 늘 그 자리에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갈등하고 모색하였습니다. 그리고 빗물이 냇물 되고 강

18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물 되고 바다로 향해 흐르고 흘렀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 한몸, 한마음, 한생명인 일심의 근원을 토대로 만나는 뭇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기꺼이 정성을 다하리. 언제 어디에서나 한순간도 망각하지 않고. 스님은 늘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앉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대화하 기도 했습니다. 때론 경전을 펼치기도 하고 때론 신문방송을 보기도 하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묻 고 또 물었습니다. 그 걸음걸음들이 모이고 모여 고풍스러운 마을의 느티나무처럼 싱그러운 삶으 로 펼쳐졌습니다. 그 세계관이, 그 정신이, 그 마음이 일상에선 차안(此岸)에서 화두 챙김으로, 마당에서 홀로 불전 을 향한 예배로, 파카 만년필이 아닌 볼펜으로, 밥상에선 꼭꼭 잘 씹어 잡숨으로, 만나는 사람들에 겐 따뜻한 인사로, 상좌들에겐 냉철함의 보살행 수행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세계관이, 그 정신이, 그 마음이 금산사에선 전북불교의 변화와 발전으로, 종단에선 정화불사 로, 개혁불사로, 깨달음의 사회화불사를 추진하는 보살행 수행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세계관이, 그 정신이, 그 마음이 한국사회에선 민주화 운동으로, 남북평화통일교류로, IMF 사태 극복으로, 종교화합과 인권•환경운동으로,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보살행 수행으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지구촌 무대에선 사단법인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하여 고통과 불행으 로 내모는 분쟁지역, 빈곤지역 기타 재난지역 등 손발이 닿을 수 있는 곳이면 그 어디도 마다하 지 않고 걷고 또 걷는 보살행 수행으로 자신의 면목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보살행 수행으로 표현되는 당신의 삶 자체가 임종에 즈음하여 남기고 싶은 최후, 최고의 한마디라고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앉는 것도 깨달음의 실천인 보살행 수행이요, 걷는 것 도, 말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깨달음의 실천인 보살행 수행이었습니다. 제가 소박하게 이해하고 설명한 내용이 스님의 뜻과 스님의 말씀을 오염시키지는 않았는지 두 렵습니다. 혹 문제가 있다면 스님께서 또는 함께하시는 대중께서 문수보살의 장군죽비로 경책해 주시길 청합니다. 다시 눈감고 살아온 이 순간까지의 세월을 떠올려 봅니다. 평소 도법은 스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 았습니다. 따뜻한 밥상 한 번, 용돈 한 번 올리지 않았습니다. 불효라고 말하면 그 첫 자리는 제 자 리입니다. 뒤늦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스님께서 보여주신 깨달음의 실천인 보살행 수행을 내 삶으 로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첫 자리가 효도라면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습니다. 스님.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히 가십시오. 거듭거듭 감사합니다. 또 다른 시절인연을 기약하며 이 별의 큰절을 올립니다. 상좌 도법 큰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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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사랑합니다 은사 스님! 소승은 도법 사형님처럼 여러 책을 저술하거나 수준 높은 문필가 이거나 명망 있는 수행승이 아닙니다. 다만 무늬만 그럴듯한 교수에 불과했고, 학위논문과 연구논문 이외에는 저술활동이 전무했기에 추모의 글을 작성할 훤 칠한 인재는 못되지만 그래도 제 눈높이에 맞게 솔직하게 몇 자 적어 보겠습니 다. 혹여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시면 개의치 마시고 그냥 흘려보내셔도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제 나이 17세, 벽두 새벽부터 눈보라가 매섭게 후려쳤던 양력 1974년 1월 1 일 생모의 영정을 끌어안고 공동묘지에 묻었습니다. 그때는 워낙 강한 심장을 가진 철부지라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한순간의 미련조차도 갖지 않았습니다. 문자 그대로 일천제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을 잃어버린 불초제자의 눈물은 서해 바다가 되어도 아직 멈추지 않는 것은 아마 생모보다는 30년이나 더 많은 삶을 스님에게 의지하였고, 생전에 스님의 건강을 잘 챙겨 드리지 못한 뒤늦은 후회와 자책의 눈물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고 말씀하셨던 스님의 교계를 망각한 제자를 장군죽비로 경책하여 주십 시오. 백 대든 천 대든 기쁜 마음으로 다 맞겠습니다. 행자 때 개운사에서 오십대의 몽둥이를 맞았고, 백상원에서 도 곧잘 몽둥이를 맞아왔기에 이력이 생겨서 스님의 장군죽비쯤은 추호도 두렵거나 무섭지 않습니다. 스님의 장 군죽비는 언제나 중생을 평등한 동일법성체로 인도하는 대자대비의 채찍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스님은 평소 말이 앞서기보다는 먼저 행동으로 실천하시는 분이라고 자칭하셨습니다. 그러나 스님이야말로 동 체대비를 실천하는 보현보살은 물론, 동시에 문수보살에 비견되는 의미심장한 명언들을 설파하셨습니다. “배고 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진리에 목마른 사람에게는 법을 주어야 한다.”고 법문집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경전 가 운데도 유사한 내용은 있지만, 그 온도차는 스님의 가르침에 더 많은 무게가 느껴집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밥과 법은 점 하나를 밖에다 찍느냐 안에 찍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획수까지 모두 동일합니 다. 이 둘은 중생에게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절대 필수입니다. 전자는 육체적 건강, 후자는 정신적 건강의 근간 이 됩니다. 밥과 법의 조화로운 양육과 수행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가장 건강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시대를 이 끌어가는 선지식이요, 보살의 화신입니다. 스님의 법체는 이 두 가지 요건을 원융무애하게 갖추셨기에 법문집에 각인시켜 놓으셨습니다. 팔만사천대장경 도 모두 밥과 법에 귀결될 뿐만 아니라, 80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법문하실 때는 항상 “49세”라고 말씀하셨던 스 님의 청정한 사자후가 오늘따라 새삼 듣고 싶고 사무칩니다. 스님께서는 문제가 있는 현장 현장마다 참 주인공이셨습니다. 시·처·인을 초월하여 백천 만억의 화신을 나 투셨습니다. 캄보디아에는 깨끗한 우물과 교육시설, 미얀마에는 교육시설과 도서관, 지진이 발생한 네팔에는 교 육기관과 식수시설, 케냐에는 농업학교와 지하수, 몽골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나눔의 집에서는 항일투사 등등 국내외 자비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나투지 않는 곳이 없으셨습니다. 오늘도 조촐한 헌공을 받으시러 우아한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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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화장으로 단장하시고, 백만 불짜리 청정한 미소를 지으시며 사자좌에 좌정하셨습니다. 2020년 11월 10일 수원 라마다에서 오찬이 스님과 최후의 오찬이었습니다. 영화사로 가서 스님을 모실 때, 법 안이 퉁퉁 부어 있으셨습니다. 그때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삭발하느라 비눗물이 눈 안으로 들어가서 좀 부은 것 같다고 변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23일간이나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 때도 당당히 조사를 받았는 데, 맛있는 오찬을 즐기고 당당하게 경찰조사에 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장 6시간의 조사를 마치고 경찰 청을 나오시면서 제 손을 꼭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채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때 스님의 손과 미소야 말로 천진난만한 천진불의 수인과 염화미소였습니다. 그 이후 입적하시기 전까지 소승은 혼자서 산해진미를 많 이 먹고 다녔지만, 스님의 건강을 챙기는 정찬 한 끼 더 챙기지 못해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스님, 땡초 성우 제발 용서해 주시고, 오늘 그때처럼 꼭꼭 맛있게 흠향하여 주십시오. 제가 스님 앞에서 제 흉 좀 보겠습니다. 재롱으로 생각하시고 애교로 귀엽게 봐주십시오. 제자는 절대 손해 보 는 일을 하지 않는 깍쟁이요, 구두쇠입니다. 그러나 “주지가 부자면 절집이 가난하고, 주지가 가난하면 절집이 부 자가 된다.”고 스님께서 하신 명언에 단박 속아 꼬박 6년 9개월 동안 금산사 머슴노릇 좀 했습니다. 인건비 절약 을 위해 혼자 재무업무를 제외한 6직의 업무를 컴퓨터 한 대로 해결했고, 개인적으로 보시를 받으면 꼬박꼬박 사 찰 통장으로 입금하여 한푼 두푼 모아 전주혁신도시에 천오백 평의 수현사를 준공하였고, 3년째 세계평화명상센 터 건축 불사를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대형 불사는 꿈꾸기조차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인플레이션 으로 건축비가 4년 전보다 무려 1.5배에서 2배까지 껑충 뛰어버렸고, 불사를 격려하고 감독하고 기뻐해 줄 은사 스님이 이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구촌공생회 회관 건립기금으로 아주 적은 8억 1천만 원밖에 입금하 지 못했습니다. 스님의 감동적인 명언에 속아 매월 박봉을 받고 금산사 주지를 살았던 추억을 회상하면 바보 같 고 후회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현재 제가 받는 보시에 비하면 금산사 주지 보시는 한낱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께서는 영화사에서 금산사로 내려오시면, 반드시 불사 현장을 손수 방문하 시고 “수고했어, 성우 스님!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피곤이 절로 풀렸고, 그날 밤은 여명 이 트는지 모른 채 단잠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소승은 월급쟁이로만 살겠습니다. 군법사 때도 그랬 고, 교수 생활도 그랬고, 은적사와 금산사 주지 때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듯 초지일관 월급쟁이로만 살겠습니다. 한 가지 예외는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29년 동안 나눔의 집과 18년 동안 지구촌공생회 이사장직을 보시 한 푼 받지 않고 무보수로 헌신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일하는재단, 경실련, 우리민족서로돕기 등 모든 단체의 이사장을 무보수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불교 역사상 NGO의 유일무이한 대부 이셨습니다. 그 불퇴전의 보현행원을 소승도 일생동안 무보수로 이어나가겠습니다. 그것이 수행자의 정체성과 진정성이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장 편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더욱이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고난의 길을 스님 께서는 직접 개척하셨고, 그 청정무구한 여정을 직접 열어 보여주셨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스님 사랑합니다. 정 말로 영원히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스님! 그렇게 생사열반이 일여할 진데 어디로 훌쩍 떠나셨습니까? 혹시 환지본처 하셨습니까? 멋진 본지풍광을 다시 한번만 더 보여주십시오! 스님께서는 떠나셨지만 제자는 아직 스님을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행원은 바로 우리들이 부단히 수행해야 할 보현행원이기 때문입니다. 스님, 그동안 중생들과 함께 동고동 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또 경배 드립니다. 불초제자 성우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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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그리운 은사스님

“오늘도 수고했네. 이제 그만 가서 푹 쉬시게나.” 미얀마, 캄보디아 등 지구촌공생회 해외 출장을 모 시고 갔을 때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다정하게 건네주시던 은사스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 하기만 합니다. 지구촌 이웃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내미신 은사스님께서는 팔순을 넘기신 연세에도 가까이는 동남아시 아, 멀리는 아프리카까지 직접 찾아가셔서 현장을 점검하셨습니다. 어려운 여건에도 묵묵히 일하는 지구 촌공생회 활동가들을 따뜻하게 격려하시고 현지 주민들이 혹시 불편한 점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셨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현장을 방문하시는 강행군은 비일비재하였습니다. 한 곳이라도 더 들려 도와줄 것이 없는지 세심하게 돌아보셨습니다. 2008년 나르기스 태풍이 미얀마를 강타하고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오지(奧地)에 있는 마을에 세운 학교 개교식에 참석하시기 위해 양곤에서 새벽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 몇 번이나 작은 배로 갈아타며 1박2일을 가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호텔은 고사하고 여관이나 게스트하우스 등 변변한 숙소가 없어 중간 기착지의 마을 이장(里長)의 허 름한 집에 묵어야 했습니다. 송구스러운 마음에 몸 둘 바 몰랐지만,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 습니다. 오히려 “미얀마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실상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면서 “이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기회로 삼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취재차 동행한 젊은 기자들은 녹초가 되었지만 “큰스님의 열정과 건강에 깜짝 놀랐다”면서 “다 음에 지구촌공생회 출장을 올 때는 미리 체력을 단련해야겠다.”고 탄식 아닌 탄식을 했던 기억이 떠오 릅니다. 현지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자 경비를 최대한 아끼셨습니다. 직원들이나 기자들이 불 편하지 않도록 살피시면서도, 당신을 위해서는 공금(公金)을 허투루 쓰지 않으셨습니다. 불가피하게 비 즈니스석을 이용할 경우에는 업그레이드 비용을 지구촌공생회 비용이 아닌 사비(私費)로 충당하게 하 셨습니다. “후원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후원금을 나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사용할 수는 없다” 는 생각이셨습니다.

22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현지 음식이 맞지 않으셔서 컵라면에 밥을 말아 공양을 올린 기억도 이제는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열대지방의 스콜 때문에 처마 밑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은사스님과 함께 바라보던 일도 엊 그제 같습니다. 그때 더 편안하게 모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불효(不孝)를 생각하면 마음이 천근만 근 무겁습니다. 은사스님을 가까이 모시게 된 것은 1996년 총무원장을 지내실 때 사서로 근무하면서입니다. 종단개 혁 후 첫 총무원장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 하시며 분초를 다퉈 열정적으로 종무(宗務)를 보시던 모습 이 눈에 선합니다. 종단의 대임(大任)을 두 차례나 보시고 불교 발전과 깨달음의 사회화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퇴임하 신 뒤에는 지구촌공생회를 설립하여 고통받는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자비의 손길을 내미셨습니 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신 ‘귀일심원(歸一心源) 요익중생(饒益衆生)’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중 생을 이익되게 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2012년 동아일보에 회고록 연재를 마치신 후 미처 다 싣지 못한 내용을 보완하기로 했습니다. 2016 년 10월 <토끼뿔 거북털>이 출간될 때까지 일주일이면 4일은 부르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3년을 녹음하 고 정리하였습니다. 장대한 대하소설(大河小說)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셨습니다. 은사 스님의 생애는 한국불교의 실록(實錄)이며, 근현대의 생생한 증언이었습니다. 워낙 방대하여 미처 담지 못한 내용도 상당합니다. 은사스님께서는 평생 공심(公心)과 명분(名分), 그리고 실리(實利)까지 두루 살피시면서 불교와 우리 사회, 그리고 민족과 지구촌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열반에 드시고 49재를 모실 때까지 황망하고 믿어지지 않아 눈물 한 번 제대로 흘리지 못했습니다. 생사(生死)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출가수행자의 본분(本分)이지만 49재를 지내고 보니 빈자리가 너무 나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도 “화평이” 하면서 부르실 것 같은데, 금산사에도 영화사에도 지구촌공생회 에도 그 어디에도 계시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미어집니다. 그렇다고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유훈을 잘 받들어 계승하는 것이 도리임을 마음에 새기 고자 합니다. 기회 있으실 때마다 강조하신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 體)’ ‘하늘과 땅이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온 누리는 나와 더불어 한 몸이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겠 습니다. 백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은사스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의 뒤를 따 라가겠습니다. 한 가지 원(願)이 더 있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 다시 한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시봉 하고 싶다는 것입 니다. 그때는 이 생에서 제대로 모시지 못한 불효(不孝)를 참회하며 은사스님께서 대업(大業)을 이루시 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합니다. 스님, 그동안의 번거로움과 수고로움 잠시 놓으시고 극락에서 열반락(涅槃樂) 누리시다, 사바세계로 돌아오시어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자비행과 보현행 베풀어 주소서. 미좌(迷座) 화평 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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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월주 스님

조선일보 종교전문기자 | 김한수

태공당 월주 큰스님

명했습니다. 스님의 인터뷰는 당시 조선일보에 큼지막하

과 저의 첫 만남은 ‘물

게 실렸습니다. 사실 사회적 원로들은 그동안 맺었던 인

먹은 후’입니다. 기자

연 때문에 눈치 보느라 사안별로 소신 있게 발언하지 못하

사회에서 ‘물 먹었다’

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님은 달랐습니다. ‘아니다’라고 생

는 것은 ‘낙종했다’는

각하는 것은 확실하게 ‘아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큰스님

뜻입니다.

의 이런 태도는 이후 15년간 여러 차례 뵙거나 전화로 여 쭐 때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을

큰스님은 지난 2006 년 7월 20일 선진화

여쭈면 머뭇거림 없이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시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국민회의 토론회에서 “김구 선생은 김일성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

이 첫 만남이 큰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듬해 큰스님

게 속았다. 나도 속은 느낌이다…. 이런 점을 국민들과 대

은 지구촌공생회가 캄보디아에 우물을 판 것이 1000개째

북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리고 싶다”고 일

가 된다며 동행 취재를 권하셨습니다. 그 동행취재는 지금

갈하셨습니다. 경쟁지인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렸는데 정

기억해도 고생길이었지만, 스님이 생각하는 깨달음의 사

작 조선일보에서 종교를 담당하는 저는 큰스님이 이런 자

회화의 현장학습이기도 했습니다. 몇 시간씩 덜컹거리는

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달려가 새로 만들어준 우물을 확인하고 또 몇 시간씩 달리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젊은 동행자들이

월주 큰스님은 IMF 구제금융 직후 금모으기 운동에도 앞

힘들게 느낄 정도였으니 스님은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요.

장서고, 북한을 지원하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대표

그러나 스님은 오히려 힘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진심으

도 맡으시는 등 ‘햇볕정책’에도 호의적이셨습니다. 그랬던

로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굶는 사람에겐 법

종교계 어른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쓴소리’를 하셨

보다 밥이 먼저”라고 하시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으니 기자 입장에서는 분명히 ‘기사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으셨던 모양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부끄러운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2003

그러면서 하나하나 실무자들에게 꼼꼼히 챙기는 모습이

년 말 조선일보 종교담당 기자가 되었지만 거의 3년이 되

었습니다. 스님은 캄보디아를 오가는 비행기 좌석을 비즈

도록 큰스님과 따로 대면해보지 못하던 차였습니다. 사실

니스석으로 이용했습니다. 저는 스님이 고령이시고, 사회

은 큰스님이 제 ‘담당’이라는 사실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

적 위치도 있으시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했습니다. 큰스님은 제가 종교를 맡기 전, 아니 기자가 되

데 나중에 지구촌공생회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비

기도 전부터 신문에 자주 등장하신 ‘어른’이셨지요. 또 당

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한 차액은 스님의 사비로 부담

시엔 종단 일보다는 사회적인 일과 지구촌공생회 활동에

한다고 했습니다. 공과 사의 구분은 그렇게 뚜렷했습니다.

더 열심이셨기에 뵐 기회도 갖지 못했던 차였습니다. 그렇

어떤 사업을 벌이면 구체적인 숫자는 실무자보다 더 정확

지만 모두 변명일 뿐이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저는

히 머릿속에 넣고 계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딱 한 차례

부랴부랴 연락을 드렸고, 영화사에서 뵈올 수 있었습니다.

해외출장을 동행한 후 제 머릿속에 남은 큰스님에 대한 인 상은 ‘일처리에 관한 한 뜬구름 잡는 일이 없는 분’이라는

첫 만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형형한 눈빛, 거침없는 말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치밀하고 실질적이었습니다. 이런

투로 큰스님은 왜 ‘김구 선생도 속았고, 김대중 대통령도

인상은 그 후 10여 년간 큰스님을 여러 차례 뵙게 되면서

속았고, 나(큰스님)도 속았다’고 생각하는지 조리 있게 설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24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큰스님의 회고록 ‘토끼풀 거북털’을 읽으면서 큰스님에 대

여주셨습니다.

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스님의 개인사는 곧 대한 불교조계종 종단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요 사건과 현장

회고록 제목을 ‘토끼뿔 거북털’로 붙이신 것은 큰스님다

에는 항상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비상한 기억력으로

운 일이었습니다. 큰스님은 평소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주요 사건들의 전후관계와 당시 구성원들의 역할까지 소상

구하는 것은 토끼의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육조단경

하게 적으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의 구절을 즐겨 인용하셨지요. ‘깨달음의 사회화’를 ‘토끼

개인적으로 친소관계가 있겠지만 회고록을 통해서는 장단

뿔 거북털’이란 단어에 응축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회고

점과 공과를 분명히 정리하셨습니다. 그 당시를 살지 않았

록 내용 중에는 큰스님들이 입적한 후에 제자들이 만들어

던 후대 사람들이 큰스님의 글을 보면서 그 시대를 오해하

서 발표하는 ‘임종게’를 거부한다는 뜻도 분명히 밝히셨지

지 않도록 정확히 기록하려 하신 것이겠지요.

요. “나는 임종게 없다. 살아온 생애가 훌륭하면 그것으로 족하지 임종게 없이 돌아가신 분의 상좌(제자)들이 임종

회고록을 읽으면서 큰스님이 역설하셨던 ‘깨달음의 사회

게를 (만들어) 발표하거나 어설프게 수행한 사람이 오도송

화’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후 읊는 게송)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습

큰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이라는 종단 행정 최고위직을

니다. 실제로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은 큰스님의 삶

마친 후 지구촌공생회를 비롯한 사회활동에 나서게 됐는

자체가 오도송이자 임종게였습니다.

지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깔끔하고 엄격한 분이셨으니 곁에서 모시는 분 큰스님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들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큰스님은 인터뷰나 대담 중에

“어, 그거 내가 해야 지요”입니다. 큰스님은 나라와 사회

는 드물게 웃음을 보이시다가도 정식으로 사진을 촬영하

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어, 그거 내가 해야 지요”라며 먼

려면 항상 웃음기를 싹 거두곤 하셨습니다. 큰스님이 자

저 솔선수범하셨습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때

연스럽게 웃으시는 모습이 촬영된 것은 캄보디아에서 우

에 그랬고, 우리민족서로돕기,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때

물물을 떠서 여학생들 손에 뿌려주는 장면 등 극소수입니

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사가 ‘통일나

다. 제 짐작으론 젊은 시절부터 ‘어른’으로 살아오셔야 했

눔’ 운동을 벌일 때에도 스님은 “그건 내가 함께 해야 지

기 때문에 풀어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몸에

요”라며 선뜻 동참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종

밴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교 지도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레 강원용 목사, 김 수환 추기경, 월주 스님을 떠올리곤 합니다. 강 목사와 김

회고록을 출간하시고 금산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

추기경은 나이로 치면 월주 스님보다 삼촌, 큰 형뻘입니

을 때입니다. 간담회를 마치고 미륵전 앞으로 이동해 사

다. 그렇지만 큰스님은 당당히 불교 대표로 그분들과 어

진촬영을 할 때에도 스님은 엄숙한 표정을 풀지 않았습

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니다. 제가 “스님, 잠은 얼마나 주무세요?” 여쭈니 별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으시더군요. 그러면

큰스님의 “내가 해야지요”라는 말씀은 ‘노블레스 오블리

서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난

주’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큰스님이 맡으셨던 일

다. 잠은 하루 7시간은 꼬박 잔다. 잠을 잘 자야 판단력

가운데 굳이 직접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일도 있었을 것

과 체력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실질적

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사회의 어른으로서 책임감이 남달

이고 구체적인 말씀인지요. 이 말씀을 하면서 웃는 표정

랐습니다. 이름이 필요한 곳엔 이름을 내어주셨고, 시간

을 지은 덕분에 오랜만에 큰스님의 환한 표정을 촬영할

까지 내야 하는 일이라면 시간도 할애하셨습니다. 세상엔

수 있었습니다.

명예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렇지만 나라 와 사회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의식을 갖는 어른 을 점점 찾기 어려워져 가는 세상에 큰스님은 모범을 보

이승의 짐을 훌훌 벗어버린 큰스님. 이제 웃고 싶으실 땐 마음껏 파안대소하시고 극락왕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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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모든 캄보디아인의 친구이자 위대하신 분, 월주 스님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지혜로움과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신 스님, 영면하십시오. -캄보디아 지부 직원 일동지구촌공생회 각 지부와 사무국에 계신 모든 식구들과 이 슬픔을 함께 하며 애도의 말을 올 립니다. 학교와 도서관,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라오스 사람들이 똑같이 교육 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와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큰 스님께서 생전에 중요하게 생각하신 자비 정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라오스 지부 직원 모두는 앞으로도 이러한 큰 스 님의 따뜻한 자비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라오스 지부 직원 일동몽골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하셨던 월주 스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스님께서 계셨기에 수천명의 몽골 어린이들과 청년들의 미래가 더욱 반짝일 수 있었습니 다. 앞으로도 스님께서 보내주셨던 따뜻한 마음을 계속해서 대신 전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 겠습니다. -몽골 지부 현지직원 일동어릴 적 큰스님과의 인연으로 멀리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중에 큰스님의 열반하심을 들으 니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케냐에서도 인류애와 약자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 습니다. 스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큰스님의 유지를 따라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스 님, 부디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케냐 지부 프로젝트매니저 양기수미얀마를 사랑하시고, 미얀마 사람들을 위해 후원을 많이 해 주신 큰스님. 스님께서 보여주 신 자비와 사랑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얀마 지부 현지직원 일동슬픈 소식에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스님께서 베푸신 자비에 오랜 시간 네팔 사람들이 배 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늘 저희 마음에 새기며 함 께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실 겁니다. 앞으로도 스님을 생각하 면서 더 노력하겠습니다. -네팔 지부 직원 일동-

26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하늘과 땅이 나와 더불어 한 뿌리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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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소식-캄보디아

변화 그리고 도전 캄보디아 지부 부지부장 | 김민호

▶2021년 9월, 신규 학교 건립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좌측부터 학교위원회장, 면사무소장, 부군청장, 주교육청장, 김민호 부지부장, 군교육청장, 학교장)

‘2년만 하자’고 다짐했던 캄보디아 생활이 어느덧 네

해 10월 말, 드디어 건립에 들어갔습니다. 더불어 캄보

번째 연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지내는

디아 지뢰제거사업을 위해 저희와 오랜 시간 인연을 맺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밀려오는

고 있는 CSHD와 함께 올해도 약 13만 평의 면적에서

수많은 감정, 그리고 아직 완료하지 못한 업무들이 뒤섞

2,860개의 지뢰와 폭발물 잔해를 제거하였습니다. 그

여 그렇게 오늘도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습니다.

리고 코로나 시대 대응을 위해 참여한 온라인 동화 제 작 사업까지…. 올해는 매 순간이 도전과 선택이었던

올해는 유독 많은 ‘도전’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우물

것 같습니다.

건립 사업을 마무리하고, 이제 탄력을 받고 있는 생명 의 정수 물탱크 사업을 통해 2021년도에만 따께오주 4

개인적으로 이러한 ‘도전’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곳의 학교에 바이오-샌드 필터를 건립했습니다. 또 수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회사에 비해

많은 우여곡절 끝에 신규 학교 건립 양해각서를 체결

NGO 영역은 개발도상국이라는 현장의 특수성과 어려

28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1 2021년 7월 21일, 훈 센 슬라꾸 학교 생명의 정수 물탱크가 완 공됐다.

움으로 인해 자칫 발전과 변화에 소홀해질 수도 있기 때 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의 최대 소득은 정체될 수 도 있었던 지부 사업에 다시 ‘도전’이라는 단어를 추가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곧 양해각서가 체결된 신규 학교 건립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고, 제작 중인 온라인 동화 사업을 위한 준 비가 끝날 것입니다. 또한 새해에는 어떤 신규 사업이 기 다리고 있을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남은 일정 동안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고, 내년에도 좋은 모습 으로 찾아뵐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2 2021년 7월 22일, CSHD 관계자에게 지뢰제거지역의 특징에 대 해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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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소식-라오스

멈추지 않는 마음 라오스 지부 부지부장 | 서아네스

올해도 계속되는 기나긴 락다운에 라오스의 모든 학교들이 휴 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이 교육의 기회를 잃 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소외된 계층일수록 코로나 여파로 인한 타격을 더욱 크게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조금이 라도 개선하기 위해 라오스 지부는 대체사업을 계획하며 여러 노 력을 기울였습니다. 먼저, 교육 공백을 줄이기 위해 7월부터 고학년 영어 5반 교실을 대면 수업이 아닌 온라인으로 전환해 진행했으며, 한국어 교실 역 시 10월부터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교실은 페이 스북에 등록 안내를 내고 수요를 조사하였는데, 기존 계획했던 1 개 반을 2개 반으로 늘려야 할 정도로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9월에는 개학을 앞둔 깬타우사미 중고등학교에 다녀오 기도 했습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해 다행히 확진자 수가 적어 개학 은 했지만, 학교와 학생들의 형편이 어려워 기본적인 학습 물품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만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 력이 있는 곳이기에 지부는 진창길에 차를 밀며 힘든 출장길을 달 려가 교과서와 학습교구를 지원하고 돌아왔습니다. 현재 비엔티안 시내는 집단감염이 발생해 락다운이 전보다 더 강 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유치원이 없어 초등학교 교실 한 칸 에서 수업을 받던 켕카이 마을 아이들을 위해 10월부터 유치원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지부 직원들과 건립 업체 그리고 마을 관계자 모두 조심, 또 조심하며 유치원 건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부가 힘든 출장길을 달리는 것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유치 원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모두 더 나은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라오스 지부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디더라도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온라인 수업 을 진행하고, 유치원을 건립하고, 개학을 준비하는 학교들과 많 은 논의를 할 것입니다. 더불어 대체사업으로 직장을 잃어 생계 유지가 어려운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싸이타니구 내 8개 마을에 생필품과 식량 등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모두가 힘든 시 기에 끝까지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라오스 지 부가 되겠습니다. 30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1 줌을 활용한 영어 5반 온라인 수업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2021년 9월 9일, 개학을 한 깬타우사미 중고등학교에 교과서와 학습교구를 전달했다.

2 학생과 학부모가 비대면 독서교실 과제를 하기 위해 책을 빌리 러 센터에 방문했다.

3 켕카이 유치원 건립을 위해 지부 활동가와 마을 관계자가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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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소식-미얀마

봄을 기다리며 해외사업팀 간사 | 권혜리

▶코로나19 이전 파욱쉐핀 초등학교 학생들의 졸업식이 진행됐다.

32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미얀마 지부는 작년부터 크고 작은 상황의 변화들로 계획했던 대부분의 사업을 미뤄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은행 업무에 어려움이 있으며, 시내에는 많은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미얀마 지부도 다시 힘을 내 작은 일이라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 첫번째 시도는 제야아웅 마하학교 화장실 건립이었습니다. 올해 1월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2월 이후 사업비를 송금하지 못해 6개월째 중단되었던 공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로 한 것 입니다. 학생들의 위생 환경 개선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어 고민 끝에 사설 송금 업체를 수배 해 8월 말, 제야아웅 마하학교 교장스님께 화장실 건립비를 전달하고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공사가 무사히 마무리되고, 기뻐하던 교장스님의 목소리에 그동안 모든 것이 멈춰 있었던 미얀마 지부에도 희망의 조각이 생겨났습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또 다른 사업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존에 계획했던 사업은 아니지만, 미얀마에 꼭 필요한 마스크 등 방역물품 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현지에서의 구매와 은행 방문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방역물품은 한국에서 구 매하여 후원 물품과 함께 발송하였습니다. 미얀마의 학교들과 학생들, 그리고 각 가정에 희망이 전 달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어느덧 상반기를 지나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힘든 상황이지만 미얀마 지부는 어려 움 속에서 방법을 찾고, 조금 더디더라도 후원자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미얀마에 잘 전달될 수 있도 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따뜻한 봄이 오기를 바라며, 늘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께 감 사 인사를 전합니다.

1 2021년 8월 말, 제야아웅 마하학교 교장스님을 만나 학교 화장실 건립비 3차 지원금을 전달했다.

2 2021년 9월, 싼먀디따 화석죽학교, 따인떼야 화엄학교에 마스크 와 비누 등 방역물품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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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소식-몽골

웃음이 몽골몽골 피어나길 바라며 몽골 지부 PM | 히식바트

▶2021년 11월 11일, 몽골 26번학교 학생들에게 학습지와 학용품이 담긴 학습키트를 전달했다.

34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여전한 집합금지로 몽골 공생청소년센터는 온기와 웃음소리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원 래라면 체스나 컴퓨터 교실 등 방과 후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방문한 학생들로 북적거렸을 테지만 말입니다. 다행히 지난 9월, 약 2년 만에 드디어 몽골의 초, 중, 고등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휴교 기간 동안 아이들이 정부에서 실시한 원격 수업을 받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도시 외곽에 위치한 학교일수록 인터넷과 전자기기 보급률이 낮아 TV 방송으로만 수업을 받을 수 있어 학생들의 교육 공백과 학습 결손은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몽골 지부는 학습키트를 제작하여 몽골 26번학교 아이들에게 배움 의 기회를 되찾아 주기로 하였습니다. 학습키트에 들어갈 학습지는 공생청소년센터 인 근에 위치한 26번학교 선생님들과 협력하여 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총 430권의 책을 제작하여 1학년부터 5학년까지 학년별로 약 80명의 학생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잠시 중단되었던 몽골의 교육지원사업이 이제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 직은 센터에서 직접 아이들을 맞이할 순 없지만, 몽골 지부는 많은 학생들이 조금 더 자 신의 꿈을 알아가고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내년 을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다사다난했던 2021년도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비록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즐 거운 소식보다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았습니다. 내년에는 모두가 소중한 일상을 되찾 고 행복과 웃음이 넘실대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몽골 지부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몽골과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달려가 보겠습니다.

1 2021년 5월, 동사무소 직원 및 지역 주민들과 함 께 차차르간 묘목 식재 행사를 진행했다.

2 2021년 9월, 몽골 26번학교 교사들이 학습지 제 작을 위해 컨텐츠 최종 점검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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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소식-케냐

한 컵의 물을 얻기 위한 노력처럼 케냐 지부 PM | 양기수

케냐에서 깨끗한 물 ‘한 컵’을 구하기란 매우 어렵습니 다. 또 배고픔과 교육 이수 등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 른 국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케냐의 많은 가정은 소득 감소로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습 니다. 그리고 정부의 이동통제 및 통행금지 시행으로 현지 의 활동가 입장에서는 활동 시간과 범위에 상당히 많은 제 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케냐 지부는 작지만 몇 가 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후원 아동에게는 학비와 생 필품 지원으로 지속적인 교육의 기회를, 각 가정에는 식료 품 전달로 실질적인 생계 지원을, 그리고 지붕 개량으로 빗 물이 새던 곳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편히 잠들 수 있는 공간 으로의 변화도 만들었습니다. 또한, 후원 아동 중 5명은 올해 날레포 태공중고등학교 와 올마피테트 만해중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으며, 다 니엘 티나요는 엔요뇨르 영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키 토 만오중고등학교로 진학해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가 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케냐 지부는 많은 후원자분의 관심과 지원으로 아 동 후원과 농장 운영 그리고 5개의 교육시설과 21기의 식 수시설을 건립해 주민들의 생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습 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부 식수펌프의 경우 지속되는 가뭄으로 지하수면이 내려가거나 지하수에 섞여 있는 돌과 진흙 등으로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매일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주하며, 더 좋 은 대안을 찾기 위해 오늘도 케냐 지부는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한 컵’의 물을 얻기 위해 7~8km를 걷는 케냐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더 많은 도 움의 손길을 주지 못함에 미안함과 더 나은 내일을 만들 기 위해 맡은 업무에 절실하게 임하겠다 스스로 다짐을 해 봅니다. 36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2021년 날레포 태공중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후원 아동들과 양기수PM의 기념촬영

1 2021년 8월, 올마피테트 만해중고등학교 농장에 유해동물퇴치 기를 설치했다.

2 2021년 10월, 펌프 업체에 방문해 날레포 식수펌프 건립을 위한 회의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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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소식-네팔

함께, 다시 서기 위해 네팔 지부 부지부장 | 이명화

위기를 겪으며 모두가 혼란스러웠던 지난 해와 올해,

프로그램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이어가며 지내온 지난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계속되

최근에는 위기 속 오아시스 같았던 상반기 취업교실 이

는 락다운에 기존에 계획했던 사업을 온전히 진행하지

후 나누어 주지 못했던 수료증을 수강생들에게 전달했습

는 못했지만, 지부 직원들과 함께 현재 가능한 사업을

니다. 수료증을 받으며 심화반을 만들어 달라고 열의를

더욱 세부적으로 기획하고 다듬어 나가는 한 해를 보

불태우는 수강생들도 많았습니다. 다시 프로그램을 진행

냈습니다.

함에 있어 어려움도 있겠지만, 배움의 시간을 기다리는 네팔의 많은 여성과 청년들을 위해 11월부터는 하반기

센터에 방문하는 아동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습니다.

방향을 고민하며 발달에 맞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다 시 학교에 등교했을 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온라인 수업

학교지원사업도 수많은 어려움 끝에 드디어 스리산

커리큘럼을 짜 지도했습니다. 또 도서관 사업을 대신해

데스와르 부천소림사초등학교 건립을 기념하는 준공식

센터 아동들을 대상으로 독서 수업을 진행하며, 기존의

을 진행했습니다. 전교생에게 교복과 가방 등 후원물품

▶2021년 9월 27일, 네팔 스리산데스와르 부천소림사초등학교 준공식이 진행됐다.

38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을 나눠주며 작게나마 준공의 기쁨을 함께 나눴습니다. 앞으로 학교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는 선생님들 과 학생 그리고 학교운영위원회의 몫이 가장 크지만, 어 려움을 이겨내고 지어진 학교인만큼 지부에서도 아이

1 상반기 취업교실 이후 보류되었던 컴퓨터, 한국어, 재봉 교실 수 료식을 진행했다.

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이어 갈 계획입니다. 코로나19라는 제약에 안전한 수위 안에서 가능한 사 업들을 진행하기 위해 수없이 계획을 수정해야 했습니 다. 내년에도 어려움은 있겠지요.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 서 최선을 다해 방안을 찾아내는 네팔 지부가, 활동가가 되도록 조금 더 노력하겠습니다. ‘함께, 다시 서기’가 가 능한 2022년도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2 공생청소년센터 데이케어센터에 등원한 아동의 온라인 수업을 지도하고 있다.

3 2021년 9월 27일, 스리산데스와르 부천소림사초등학교 전교생에 게 교복과 가방, 구두 등 후원물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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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소개

큰스님의 뜻이 이어져 나가길 바라나는 마음으로 지구촌공생회 군산지회장, 군산 삼보사 주지 | 법송스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10월의 어느 날, 군산의 명산 오성산에 위치해 있는 지구촌공생회 군산 지회 삼보사에 방문해 2012년부터 지금까지 몸소 자비행 을 실천하고 있는 법송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어릴 적 초등학교 선생님을 꿈꿨던 법송스님은 ‘배움이 희 망’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해 제법 성적도 좋았다. 하지 만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교대 진학을 포기하고 출가해 어린 이 포교활동을 하며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원장이 되 었다. 이후 원장을 지내며, 많은 아이를 마주하던 스님은 본 인의 어린 시절 꿈이 떠올라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 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은사스님의 캄보디아 우물 건립 동참을 권유로 지구촌공생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 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원력으로 10년의 준비 끝에 라 오스에 학교를 건립하게 되었다. 학교명은 이곳을 졸업한 아 ▶2012년부터 몸소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는 군산 삼보사 주지 법송스님

40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법송스님의 후원으로 2014년 라오스에 건립된 던룸 지환초등학교

▶법송스님의 지원으로 새 책가방을 받게 된 던룸 지환초등학교 아이들

이들이 나아가 또 다른 자비행을 실현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 에서 출가자의 길에 등불이 되어준 은사스님의 법명을 따 던 룸 지환초등학교로 지었다.

니로부터 온 감사 편지를 보며, 후원 아동의 성장을 보며, 그 리고 가옥 지원을 통해 희망을 얻게 된 이들의 모습을 보며 ‘지구촌 구성원 모두와 함께 공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수행 하리라’ 다짐하게 됐다고 한다.

과거 법송스님은 큰스님과 함께 라오스 시찰을 다녀온 적 이 있는데, 직접 학교 지을 부지를 면밀히 검토하시며 “후원 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고 말씀하 시던 모습에 지구촌공생회 활동에 대한 신뢰는 물론 다시 한 번 큰스님을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또 어느 날은 큰스님께서 “법송스님의 학교 건립이 마중물이 되어 주변 동참으로 이어 져 고맙다.”는 말을 건네셨다고 한다. 돌이켜보건대, 학교와 도서관 건립, 아동 후원, 가옥 지원 등 10년째 후원을 이어오며 법송스님은 개인적인 삶과 일상 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주변을 먼저 챙기 고 그것으로 기쁨을 삼고 수행을 해왔으나 후원 아동의 어머

마지막으로 법송스님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큰스님의 뜻을 계승해 후원자들의 지지와 격려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지구 촌공생회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 10년, 나아가 100년이 지나 도 지구촌 곳곳 자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 온기를 전해 주기를 바란다.”며 지구촌공생회에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큰스님!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무심하신 듯 세 심하게 냉정하신 듯 따뜻하게 건네신 말씀들을 가슴에 새기 며, 온 우주가 한 공동체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지 구촌 구석구석 살피시는 눈길, 그곳을 향하신 한 걸음 한 걸 음이 저희에게는 좋은 가르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켕카이 금화초등학교 운동회에서 학생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있는 법송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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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동향

1

지구촌공생회 제31차 임시이사회

9월 14일, 광진구 능동에 위치한 지구촌공생회 서울 사무국에서 제 31차 임시이사회가 개최됐다. 이 번 임시이사회에서는 지구촌공생 회 대표 이사 선임 심의가 이뤄졌 으며, 이와 함께 이사 정묵스님(수 덕사 주지)의 법인 회관 건립 기금 전달식이 진행됐다.

▶지구촌공생회 발전을 위한 후원금 전달식이 진행됐다. (우측 지구촌공생회 이사장 성우스님, 좌측 이사 정묵스님)

2

‘굿핸즈 굿스쿨’ BBS불교방송 라디오 광고 녹음

10월 27일, 마포구에 위치한 BBS 불교방송국을 방문해 ‘굿핸즈 굿 스쿨 학교 리모델링 프로젝트’ 라 디오 광고 녹음을 진행했다. 해당 광고는 BBS불교방송 라디오에서 청취 가능하다.

42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국내동향

3

익산지회 관음사 제4회 공양미 콘서트

11월 7일, 지구촌공생회 익산지회(지회장 양연옥) 관음사(주지ㆍ지구촌공생회 사무처장 덕림스님)가 경내 특설무대에서 ‘제4회 공양미 콘서트’를 개최했다. 행사는 비대면으로 진행됐으며 SNS를 통해 생중계됐다. 올해로 4번째 열리는 공양미 콘서트는 코로나19로 어려워 진 이웃들을 위해 자비나눔을 실천하고자 마련됐으며, 이날 모인 공양미 2,630kg은 전량 익산시청에 기증했다.

▶지구촌공생회 익산지회 관음사 주지 덕림스님이 콘서트 시작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4

▶제4회 공양미 콘서트에서 관음사 어린이 풍물단이 공연 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 기원 성금 전달식

11월 10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기원하는 성금 전달식이 진행됐다. 이날 진행된 전달식을 통해 지구촌공생회는 (재)아름다운동행(이사장ㆍ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으로부터 2,600만원을 지원받았으며, 쿠데타와 코로나19 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을 위한 방역물품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지구촌공생회 사무처장 덕림스님(우측 두번째)이 (재)아름다운동행(이사장ㆍ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으로부터 기금을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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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후원자

2021년 7월 ~ 2021년 9월

후원자 名

강영희

김윤창

박상민

오문석

이상진

정모아

조성자

차성복

금아인

김은령

박세정

우대석

이완희

정연희

조영일

최명순

김관규

김은수

박영주

유옥선

이자랑

정영란

조정우

최양석

김구영

김정열

박용자

유지창

이지유

정영식

조준희

최예리

김도연

김제성

박윤경

윤민자

이지희

정왕근

조혜연

한태수

김동숙

김종민

박진수

윤승헌

이창배

정웅채

지정학

황영철

김미연

김창현

반야수

은경순

이창제

정해근

지창석

황치연

김미혜

김초량

배정숙

이강만

이창한

정해준

기흥고 2학년 1반(대표 문성현)

김미화

김형호

성유정

이강자

이철

조경례

몽골문화경제원

김민정

남현주

소정임

이동근

이혜진

조봉관

(주)창원마을버스

김연수

노영수

신양숙

이봉숙

정규덕

조성인

주식회사파츠팜

특별 후원금

2021년 7월~2021년 9월

후원자 名

캄보디아 생명의 정수 물탱크 금아인, 심민주, 전무송, 홍정욱(각 100만원), 건립 후원금 한순영(60만원), 박정순,서원경(각 50만원) 국내 취약계층지원 후원금

영화사(1,000만원), 하진기(240만원), 정모아(50만원) 아름다운동행(300만원), 김용호(150만원), 이병철(120만원), 김현숙,이선욱(각 100만원), 임남환(75만원), 김원훈(70만원), 법융사, 김서윤(각 60만원), 이회환(59만원)

일반 후원금

회보거치대 및 저금통

왜관정형외과(136,340원)

온라인 캠페인

네이버 해피빈(5,469,500원)

총 7,270명의 후원자가 343,378,848원을 후원해주셨습니다. 2021년 7월~ 9월 수지보고 수입 일반후원금 지정기탁후원금 보조금 기타수입 잡수입 수입합계

2021년 7월

2021년 8월

96,367,300

지출

2021년 9월

94,754,640

98,353,300

2021년 7월

2021년 8월

2021년 9월

관리운영비

42,317,896

39,025,845

49,364,989

재산조성비

198,000

330,000

869,000

13,403,810

13,346,599

27,153,199

해외사업비

78,264,873

65,408,692

136,396,937

6,300,000

6,039,000

2,504

국내사업비

2,550,000

3,270,000

11,900,000

홍보사업비

3,230,830

8,871,521

2,462,704

후원사업비

6,502,347

10,235,677

6,923,900

-

-

-

133,063,946

127,141,735

207,917,530

-

-

-

616,782

623,902

814,670

116,687,892

114,764,141

126,323,673

44 | 세계를 껴안는 자비 실천

잡지출 지출합계


절취선

절취선

‘월주 큰스님’ 익산 심곡사 공양주 샘골 천은환 보살 作

우편엽서 보내는 사람

우편요금

수취인 후납 부담

발송유효기간

2019.12.18~2021.12.17

서울광진우체국 승인 제 40302호

(우) 04990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68 동산빌딩 301호 TEL 02.3409.0303 FAX 02.455.9353 HOMEPAGE www.goodhands.or.kr


절취선

절취선

지구촌공생회 정기 후원 신청서 후원자 정보 성명(회사명)

생년월일(사업자등록번호)

(남/여)

기부금영수증 발급을 원하실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모두 기재해 주세요.

연락처(휴대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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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후원 방법 후원분야

 일반후원

 교육지원

 식수지원

후원분야

 월1만원

자동이체

은행명

 월3만원

 월5만원

 국내후원

 기타(

)원

계좌번호 휴대전화계좌(평생계좌) 불가

예금주 생년월일

예금주명 신용카드

 지역개발

일반후원은 지구촌공생회의 모든 사업과 활동에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지원이 가능합니다.

(주민등록번호 앞 6자리)

카드사명

카드번호

카드주명

유효기간(월/년)

•정기 출금일은 매월 5일 입니다.(후원금 출금 실패시 10일, 15일, 20일, 25일, 말일에 재출금이 시도됩니다.) •후원 첫 달은 5, 10, 15, 20, 25, 말일 중 가까운 일자에 후원금이 출금됩니다.

 후원자와 예금주(카드주)가 다를 경우 예금주(카드주) 성명 (서명) 예금주(카드주) 연락처 :

후원자와의 관계 : 접는선

 만 14세 미만 후원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 동의함 법정대리인 성명 : (서명) 후원자와의 관계 : 법정대리인 연락처 :

 동의하지 않음

[필수]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 수집 항목

후원 신청에 따른 후원관리 및 행정 처리

성명, 생년월일, 휴대전화, 이메일, 주소, 서명정보 14세 미만의 후원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의 정보 (후원자와의 관계, 성명, 연락처, 서명정보)

보유 기간

후원금 결제, 납부 확인 관리 등 행정 처리

공 통 : 후원 방법, 후원 금액, 이체 일자, 서명 정보 계좌이체 : 예금주, 예금주 생년월일, 계좌번호 카드이체 : 카드주, 카드번호, 유효기간

후원 중단시 까지

신청자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거부시 후원신청이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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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정보 수집 및 이용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선택 정보는 동의하지 않으셔도 후원신청이 가능합니다.

지구촌공생회는 [개인정보보호법] 제 15조 및 제 22조 의거하여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따른 동의 절차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구촌공생회 홈페이지의 [개인정보취급처리방침]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인은 위 내용에 동의 하며, 지구촌공생회의 정기 후원을 신청합니다. 20

년

월

일

신청인

이 곳에 풀칠하여 붙인 후 우체통에 넣어 주세요

(인)

 우편

이 곳에 풀칠하여 붙인 후 우체통에 넣어 주세요

이 곳에 풀칠하여 붙인 후 우체통에 넣어 주세요

수집 목적


알림마당 STEP 1

2021 연말정산 기부금영수증 발급 안내 후원자님께서 올 한 해 동안 후원해 주신 후원금을 세액공제 받으실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STEP 2

개인정보 확인

▶기부금영수증은 등록된 후원자 명의로 발급이 가능하니,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이용

등록된 후원자 명을 확인해 주세요.

당해 연도 12월 31일까지 주민등록번호 13자리가 등록되어

▶지구촌공생회 회원정보에 후원자님의 주민등록번호

있는 후원자에 한 해, 2022년 1월 중순부터 ‘국세청 연말정산

13자리가 입력되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 기부금 신고가 완료되는 2022년 1월 이후에는 정보 변경이 되지 않으니 이 점 꼭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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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신청 지구촌공생회 대표전화(02-3409-0303)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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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member@goodhands.or.kr), 카카오톡 신청을 통해

지구촌공생회 대표전화(02-3409-0303)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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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핸즈 굿스쿨 학교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2004년부터 캄보디아, 라오스, 몽골, 케냐, 미얀마, 네팔에 80개의 교육시설을 건립해 20만 명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 회를 제공하고 꿈을 키워 준 지구촌공생회.

Good Hands Good School

이제는 ‘굿핸즈 굿스쿨 학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통해 노 후화된 학교들을 더 좋은 학교, 더 안전한 학교로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새롭게 단장된 안전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도록 지구촌공생회와 발걸음을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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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캄보디아 학교를 위한 플랜

● 우기에 대처하기 : 배수 시설 확보, 토사 유실 방지 및 토지 매립 ● 안전 교실 만들기 : 지붕 및 벽 균열 수리, 방범창 설치, 바닥, 계단 등 보수 ● 시설물 교체하기 : 놀이 시설 교체, 화장실 재건축, 운동장 보수, 문(창문) 교체 ● 학교 단장하기 : 페인트칠하기, 화단 가꾸기, 기자재 교체 ● 미래 준비하기 : 시설관리 노력, 시설물 아껴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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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핸즈 굿스쿨 학교 리모델링 프로젝트’ 동참하기

당신이 지킬 수 있습니다 지구촌 모든 어린이의 꿈 녹이 슬어 벌어진 도서관 지붕 틈새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매년 이어지는 폭우로 토사가 유실돼 학교 바닥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등교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돌아갈 곳은 [위태로운 학교] 입니다. 지금 아이들에겐 마음껏 배우고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한 학교] 가 필요합니다. 반짝이는 꿈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한 배움터 조성에 함께해주세요.

후원 안내 ‘굿핸즈 굿스쿨 학교 리모델링 프로젝트’ 동참하기 KEB하나 246-890018-72004 (사단)지구촌공생회 | 후원문의

02 340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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