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과 평화
2026년 07월-08월│Vol. 161

작은 폭력을 거부하며 사는 것
세상과 타인을 비판하듯 내 안을 잘 들여다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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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2026년 07월-08월│Vol. 161

작은 폭력을 거부하며 사는 것
세상과 타인을 비판하듯 내 안을 잘 들여다보는 것


창세기 16장 1절~16절
2026년 5월 17일 청년주일
주현신 위임목사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율법과 전통을 내세우며
이방인을 멸시했지요.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출
애굽기 23장 9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
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신명기 10장 19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
라.” 레위기 19장 33절 34절, “외국 사람이 나그
네가 되어 너희의 땅에서 너희와 함께 살 때에,
너희는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
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아기예수님 가족은 정치적 이유로 국경을 넘은
난민이었습니다. 낯선 땅 이집트에서 누군가 예
수님 가족을 먹여주고 재워주며 환대했기에 예
수님을 통한 하나님 구원역사가 가능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최후심판 날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가 영접했다.”, “주 님, 우리가 언제 주님을 영접했나요?” 40절, “너
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
나그네를 선대한 이들에게 주님 말씀하십니다.
46절,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2천 년 전 초대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섬기는 다문화 신앙 공동체였습니다. 갈라디아
서 3장 28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
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하갈은 학대받는 이방 나그네를 상징하는 인물
입니다. 본문 1절,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
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
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절, “사래가 아브람에
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
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아브
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하 갈을 이용해서 자신들 욕망을 성취하려 합니다.
4절,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
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
을 멸시한지라.” ‘멸시하다’는 히브리말은 작게
비쳐지다, 가볍게 여겨지다, 그런 뜻입니다. 아
이를 가진 하갈 눈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래 가 작게 비쳐졌다. 하갈의 우쭐거리는 태도가 여
주인의 분노를 유발합니다.
6절,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
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학대당하던
하갈은 탈출을 시도합니다. 고대사회에서 노예가
도망간다는 것, 목숨을 내동댕이치는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하갈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릇된 사회구조 속에서 하갈을 핍
박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아닐까요?
7절,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는
직접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구약에
서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대면한 여인은
하갈밖에 없습니다. 버림받은 도망자 잃어버린
한 생명을 열심히 찾으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맞지만, 이스
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아브람과 사래가 하
나님의 사람인 것은 맞지만, 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낮고 천한 여종의 하나님도 되시고, 사
회 주변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조국에서 쫓겨나
방황하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8절,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고
인생 의미와 목적과 방향에 대한 질문입니다. 황
량한 광야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나님이
일러주십니다. 9절,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으시는 그 사랑, 주님 마
음이 느껴집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낮추
어 겸손히 섬기며 살아라.
이것은 하갈에게 하신 명령이지만, 아브람과 사
래를 향한 간접명령이기도 합니다. 공멸의 위기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 질문하십니다.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 가리키시는 길은 상생을
위한 화해의 길입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
랑의 길입니다. 핍절한 인생들에게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며 함께 구원받는 복음의 길입니다.
11절,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몸소 하갈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희망찬 약속을 주십니다. 이쉬마엘! 하
나님이 고통을 들으셨다. 13절, “하갈이 자기에
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
님이라 하였으니.” ‘엘 로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 님! 하갈이 하나님 만난 그 옹달샘을 ‘브엘라해
로이’라 부릅니다. 살아계셔서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우물! 우리가 돌아가야 할 삶의 자리 는 하갈인생들 품어 살리는 생명의 우물입니다.
15절,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아브람은 하갈이 낳은 아들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합니다.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 의 또 다른 후손 이스마엘이 복을 받아 큰 민족 을 이루게 됩니다.
세상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니, 유대인만 아니
라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이시다. 청년주일인데 요, 내일이 막막한 청년들에게도 하나님이시다.
믿는 자 누구나 차별 없이 하늘자녀 삼으신다.
버림받아 도망치는 나를 열심히 찾아와 가야할
길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갈의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7월입니다. 세상은 온통 뜨거운 열기로 가득합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불쾌지수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찜통 같은 날씨처럼 요즘 우 리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하반기를 시작하 는 요즈음이지만,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 기는커녕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돌아보면 올해 상반기는 ‘전쟁’으로 물든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2월의 어 느 주말, 중동에서 들려온 포성은 휴일 아침의 평온을 깨뜨렸습니다.
“미·이스라엘, 이란 전역 기습 공습…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사망”
“이란, 미군 기지·이스라엘 향해 수백 기 미사일·드론 보복 폭격”
전쟁은 한순간에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전쟁의 잔혹함 앞에서 무고 한 생명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며 깊은 무력감이 밀려오기

도 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공급망이 차단되면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
션이 발생했고,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국제 유가가 급등했습니다. 세계
를 뒤흔든 분쟁의 파편들로 뉴스를 가득 채웠던 전쟁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전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눈을 돌려보면 진짜 치열한 전장은 우
리 일상에 소리 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매일 마주하는 삶의 자리가 최
전방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자리에 불안이 밀려들면, 가장 사랑 하는 사람에게 날 선 말들을 불쑥 내뱉으며 스스로 마음의 요새를 무너
뜨리곤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이라는 전장에서 날마다 숨 가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전쟁과 같은 삶 속에서 진정한 평화란 무엇일까요? 이번 호에서는 ‘전
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학원에서도
황윤하|편집부(중등부)
나는 지금까지 학원에 다니지 않았었다. ‘입시 전쟁’이란 말을 들
어봤지만 혼자 공부하는 것에 익숙하기도 했고, 굳이 새로운 환경
으로 나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
게 ‘학원’이라는 곳은 미지의 세계이자, 어쩐지 모를 거부감이 드
는 곳이었다. 건물 안에서 아이들이 숨이 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
갇혀 오직 성적만을 위해 경쟁하는 삭막한 풍경이 내가 상상하는
학원의 전부였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학원에 등록하고 첫걸음을 떼기 직전
까지, 내 마음은 기대보다는 무거운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도 없는데 매일 외롭게 혼자 앉아 있다 오면 어
쩌지?’,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버티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부
정적인 생각들이 들었다. 낯선 환경에 홀로 남겨진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첫 수업 날,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의 고정관념
은 보기 좋게 깨졌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선생님의 수업은 지
루할 틈 없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차갑고 경쟁적
인 아이들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처음 온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고 먼저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매일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즐거워지면서, 나는 마음속으
로 감사의 고백을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두려워하던 나의
작은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내 발걸음을 가장 선한 길
로 인도해 주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
에서 기죽지 않게 하시고, 내 곁에 마음 맞는 새 친구들을 붙여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
잠언 16장 9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
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나의 짧은 생각과 시선으로는 걱정스럽고 피하고만 싶던
학원 행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곳에 내가 누릴 새로운 경험과 소중한 만남들을 미리 예비해 두고 계셨던 것이다.
이번 경험은 나에게 환경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 주었다. 앞
으로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처음’을 마주하고, 때로는 낯설고
두려운 변화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려워하기
보다 기대하는 마음을 품으려고 한다. 내가 발을 내딛는 그곳
이 어디든, 나보다 앞서가셔서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시고 동 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나에게 새로운 기쁨 과 좋은 친구들을 선물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학원에서
도, 교회에서도 언제나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빛을 발하
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축복의
김화영 집사|30+교구

스스로는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울고 싸기만 하는
작은 영혼을, 너무나 부족한
내게 맡겨주신 것은 진정으로
축복 그 자체다. 비록 매일 아
침 눈뜨는 순간부터 치열한 전
투가 시작될지라도 말이다. 그
축복의 전장으로 오늘도 기쁘
게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본다.
처음에는 그저 몸이 좀 힘들
줄 알았다. 잠을 좀 못 자고, 빨
래가 좀 많아지고, 아이들 살
림에 정리는 티도 안 나고, 청
소는 엄두도 안 나고, 먹일 식
구가 많아지니 돌아서면 밥
해야 해서 그저 지치고 피곤
한 게 전부일 줄 알았다. 하지
만 진짜 힘든 건 몸이 아니라
내 안의 ‘관성’과의 싸움이었
다. 젊은 날, 아무런 제약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해 누렸던 시
간을 자꾸만 되찾고 싶어 하는
지독한 관성 말이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침대에 길게 늘어져 있다가 천천히 눈 비비며 부스스 일
어나던 게으른 주말 아침이 정말 현실에 존재하긴 했던 걸까. 이제는 이미 일
어난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 돌진하는 소리가 들리면, 본능적으로 팔다리를
웅크려 급소부터 막아내며 아침을 맞이한다. 나만을 위한 향기로운 샤워 시
간은 무슨, 엄마의 화장실 타임은 문을 활짝 연 공중파 방송이 된 지 오래다.
화려한 화장에 향수도 뿌리고 뾰족한 구두를 또각거리며 맞이하던 평일의
아침 출근길도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다.
지금은 세 개의 등원 가방에 두 개의 이불 가방을 양어깨에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아기띠로 막내를 단단히 동여맨 채 복식호흡을 가득 실은 소몰이
창법으로 “걸을 땐 앞을 봐야지!”를 외친다. 떡진 머리에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거친 광야에서 아이들을 몰아가는 목자의 아침. 바로 지금의 내 모습
이다.
“이 소중한 아이들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
다. 과분한 이 아이들을 키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어젯밤에는 자고 있는 아
이들을 보며 감동에 휩싸여 이런 감사를 머
금은 채 잠이 들었는데, 지킬 앤 하이드처
럼 눈뜬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걷잡을 수 없
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가 그만하
라고 했지!” 내 안의 하이드가 튀어
나오기 직전, 나는 본능적으로 짧은
기도를 다급히 삼킨다.

“하나님, 이 작은 영혼이 하는 행동은 성장 과
정의 당연한 요구입니다. 지금 피곤하고 지친 건 저예요. 제가 얘보다 어른이니까, 한 번만
더 좋은 말로 다독일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한 번만 더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아니, 한
번 말고 한 다섯 번 정도요.”
참으로 부족한 인간인가 싶다가도, 이 치열한
마음속 전쟁 한가운데서 한숨에 뱉어내는 기
도 한 자락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기는 것을
본다. 가만 보면 우리 마음은 잘 깨지는 유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 단단한 돌도 아
니다. 그런대로 잘 늘어나는 고무나 실리콘쯤
으로 만드신 게 아닌가 싶다. 담으려고 애쓸수
록 늘어나고, 아이들을 키울수록 자라나기 때
문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내 마음
그릇의 끝에 매달려 엄마의 그릇을 더 크게 키
워내느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군분투 중인지
도 모르겠다.
사실 엄마의 마음속은 이렇게 매일 치열한 전
쟁 중이지만, 고백하자면 우리 집 삼 남매는 오
히려 편하게 큰다. 해가 쨍쨍하게 맑은 오늘도
우리 둘째는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양말 위에
크록스를 왼발 오른발 바꾸어 짝짝이로 신은 채 신나게 등원했다. 막내
는 이유식을 반쯤 먹다 말았다. 마음과 손에 이미 짐이 가득한 엄마는
예전처럼 애걸복걸하면서 먹일 힘도 없고, 허리를 숙여 신발을 일일이
똑바로 고쳐 신겨줄 겨를도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아이들은 내가 하나를 붙잡고 안달복달할 때보다,
셋이 되어 엄마의 손길이 느슨해진 지금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하다.
잘해보려는 엄마의 욕심과 손아귀 힘을 내려놓은 그 틈 사이로, 아이
들만의 평화가 피어난 것이다. 그러니 이 전쟁의 원인은 아이들이 아니
다. 아이들은 그저 제 속도대로 잘 커가고 있을 뿐, 결국 이 전장에서 진
짜 자라나야 하는 것은 내 좁은 마음 그릇이었다. 아이들의 작은 실수
가 내 분노의 도화선이 되지 않도록 내 마음 밭에 평온의 물을 주는 것,
그것이 진짜 평화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아이들은 나를 움직이는 신앙 동력이다. 아이들이 없었다
면 나의 삶에 이렇게나 말씀이 필요하고 기도가 갈급했을까. 덕분에 나
는 오늘도 한 걸음 더 움직인다. 6년째 아이를 바꿔가며 쉼 없이 드리
고 있는 영아부 예배. 소중한 동역자들을 만나게 해준 다섯 번의 아기 학교. 아이들의 신앙을 위해 서툴게 시작한 가정 예배. 그리고 막내가
깨워준 새벽을 채우는 짧은 큐티까지. 너무나 귀한 나의 평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내 마음 그릇에 담아본다.
여전히 부족하고 좁아 보이지만, 아이들이 매일 버둥거리며 조금씩 늘
려주는 나의 마음 그릇을 믿기 때문이다. 비록 그 안에서 또 하루의 전
투가 시작될지라도, 내 삶에 허락된 가장 복된 전쟁을 누리는 축복 속
에서 오늘도 승리하기를!
영적 전장의 중추, 기도 연합군
중보기도팀 이야기
최윤정|편집부
최근 우리 교회 공동체는 재휘 학생의 사고를 놓고,
온 성도와 교역자들이 연합하여 중보기도 함으로써
놀라운 응답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편집부
에서는 우리 교회 중보기도팀의 사역을 살펴보았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양태가 조금은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모여서 기도할 수 없었기에 교구, 직
분자, 목회자가 요일별로 나눠맡아 릴레이 기도회로
진행하다가, 24년부터 다시금 주일예배 중보기도팀
기도회를 재개했다. 릴레이기도회는 평일 오후 1시~5
시에 교육관 지하 2층에서 하는데, 교구 외에도 누구
에게나 열려있는 자율적인 기도의 자리로 변모하여 기도가 누적되고 있다.
월요중보기도팀은 2024년 어느 교구 식구의 긴급하
고 절박한 기도 제목을 놓고 한두 명이 시작한 기도

게릴라전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권사회 임원을 중심
으로 두 개 기도팀을 구성
하였고, 이들이 연합해 정
예화된 한 개의 완전체 기
도팀으로 정착돼 지금에
이르렀다. 월요중보기도팀
의 총 기도 시간은 2시간
을 훌쩍 넘길 정도로 긴데,
기도제목이 매우 폭넓고
구체적이며 말미에는 기타
연주로 몰입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유인물에 따르면 회개, 나
라와 민족, 정치와 사회, 경
제와 문화, 한국교회, 북한
선교, 다음 세대, 대학/청

년 세대, 국군 장병, 시니어 세대, 이단세력, 과천교회, 직분자들, 세계선교 선교사
님들, 과천교회 사역공동체, 월별 공동기도제목, 담임목사님, 청빙목사님, 환우, 개인기도, 나눔 순서로 운영하고 있음)
주일 중보기도팀은, 주일 예배시간을 중심으로 3부는 권사회 회장, 4부는 이옥단
장로님을 주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된 기도내용은 모든 교회학교와 대예배를
위한 중보이며, 환우, 교역자, 선교사, 장로님들을 위한 공동의 기도제목을 인쇄, 공유하여 한 시간 가량 함께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특히 환우를 위한 기도제목
은 각 교구 목사님이 취합해 월별로 업데이트하며,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 기도팀
안에서만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각 중보기도팀 권사님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 도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대상의 고통을 나의 안으로 끌어들인 “σπλαγχνίζομαι”

(스플랑크니조마이)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즉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 불쌍히 여
기는 공감과 돌봄이기에 중보기도가 노동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록 당장에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고 기도에 성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
도 오랜 기도의 세월을 뒤돌아 보면 뭔가 일어
난 것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그렇기에 때때로
지치고 힘들어도, 한결같이 기도 시간, 기도 자
리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
직분자의 영적인 삶의 본질이라고.
기도사역팀 부장이신 어느 권사님께서는 “지
난날 교회에서 5년간 받은 기도훈련의 수혜자
로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사
역이며,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중보기도자에
게 위로, 회복, 감사, 사랑, 지혜, 평안을 부어주
신다”고 말씀하셨다. 권사회 월요중보기도팀
을 최초로 만드신 한 장로님께서는 기도하는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꽃과 같은 시간이라고 고백하셨다.
공식적인 중보기도회가 다시 자리 잡기를 손
꼽아 기다렸다는 어느 권사님은 “혼자 기도해
도 괜찮지만 함께 연대하면 기도할 때 더 큰
힘을 받는다”고 하시면서 여기 모인 권사들은
모두 ‘기도의 용사들’이라고 정체성을 정의해
주셨다. 어느 권사님은 한여름, 한겨울에도 기
도실 골방에서 땀, 눈물, 콧물 3종 세트를 쏟으
며 기타 연주로 기도의 불씨를 뜨겁게 지피는
이유를 기도의 직분, 기도의 사명이 권사의 정
체성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조용히 기도하
시던 어느 권사님은 “처음엔 개인 기도제목을
들고 나왔지만, 공동체 기도 속에서 어느덧 내
기도 내용이 확장되어 가고, 이제는 놀랍게도

오래할수록 기도가 더 간절해졌다.”며 수줍게 간증
하신다. 권사님들의 말씀을 듣고나니, 기도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긍휼을 공동체로 확장시키며
사랑의 의인화인 예수님처럼 성화되어 가는 제자도
의 훈련인 듯 싶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가진 슬픔과 기쁨을
숨김없이 내보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난공불
락의 성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타자의 아픔과 고통
과 불안에 대해 내적 일체감을 가진 공동체 언어로
서의 기도보다 그것이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
럼에도 각 중보기도팀에서 훈련된 기도의 용사들
이 각자의 교구 안에서도 기도의 리더십을 발휘해
중보기도의 불씨를 들불처럼 퍼트리기를,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기도할 결심’과 기도제목을 ‘내놓 을 결심’으로 기도 누적의 가치에 동참하게 되기를
바래본다.
“기도만을 하기 위한 특정한 장소와 시간을 따로 정해 놓지 않은 사람들은
끊임없는 생각이 끊임없는 기도가 되기를 결코 바랄 수 없다” “기도는 우리가 있는 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신다는 끊임없는 인식이다” - 헨리 나우웬
최진영|편집부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
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각신문 본
뒤….
예전에 참 유행했던 ‘네모의 꿈(노래: 화이트)’
이라는 노래 가사다. 문득 이 노래를 흥얼거리
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도 네모, 모니터도 네
모, 온종일 지내는 교실과 교무실도, 그 안에
있는 책상도 온통 네모다. 평소엔 딱히 의식하
지 않았지만, 돌아보니 내 주변은 온통 각진 네
모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네모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매일 일상이라는 ‘전쟁’과 마주
하며 살아간다. 덧붙이자면, 작년에 아이유가
이 곡을 리메이크하면서 ‘네모난 조각신문’을
‘네모난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세상이 참 빨 리, 많이 변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은 그야말로 총성 없
는 전쟁터다. 아침에 알람을 10개 정도 듣고 간
신히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출근전쟁, (지금
은 아이들이 다 컸지만 얼마 전까지는) 아이
를 먹이고 입혀서 학교와 학원으로 보내는 육
아전쟁, 꽉 막힌 도로 위나 사람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보내는 교통전쟁, 졸고 싶은 학생들과 깨워야만 하는 선생 사이
에서 치열한 잠과의 전쟁은 물론, 심지어는 최근 드라마 때문에 많이 회
자되는 민원과의 전쟁까지. 어디 그뿐인가. 저 멀리 아주 아주 먼 땅에서
발생하는 실제 전쟁도 나비효과처럼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듣게 되는 전쟁 소식은 막연한 불안감을 넘어 유가
전쟁으로 이어지고, 요동치는 주식시장과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내
지갑과 일상에 바로 연결된다. 그야말로 안팎으로 전쟁 같은 나날이다.
요즘은 조금 더 정신없이 살고 있다. 3년마다 돌아오는 학교 종합감사
기간인데, 처음으로 전체 감사 준비를 총괄하게 되면서, 많은 서류에 파
묻혀 그동안 부족했던 것을 점검하느라 시간도 많이 부족했지만, 그 이
상으로 책임감의 무게가 참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당연히, 교사로서 평
소 하는 일은 그대로였다. 학교는 매년 똑같이 반복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치열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시전쟁의 최전방
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게다가 때마침 시험기간까지 다가오니, 시험문제 출제와 수업 진도에
대한 압박이 동시에 더해졌다. 사실, 이 글도 하루 종일 시험문제를 검토 하고 밤이 되어서야 쓰고 있다.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수업의 형태도 다
양해지고 준비해야 할 것들은 배로 많아졌으며, 생활기록부 기록까지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전쟁 같은 하루를 살 수밖에 없다.
어느덧 이 학교에 온 지 5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가장 신경 쓸
일이 많다고 꼽히는 학생부장과 교무부장을 맡아서 나름 바쁜 사람으로
통하며 살아왔지만, 그런 와중에도 벌써 4년째 계속 하고 있는 일이 하
나 있다. 바로 ‘교사 밴드’다. 바쁘게 살고 있던 어느 날 20여 년간의 교
사 생활을 돌아보니, 참 열심히 살았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토록 치열
하게 살던 하루하루가 어렴풋할 뿐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
에 많이 남았던 것은 좋은 학생들, 좋은 선생님들과 부대끼며 재밌
게 지냈던 순간들이었다. 일이 좀 한가해서 편하게 지냈던 시기보다
도 바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고생했던 시간이 더 기억에 많이
남았고, 준비를 열심히 해서 술술 진행했던 수업보다도 학생들과 이
런저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더 생생했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구나 싶어서, 관심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었다.
서로 바쁜 시간을 쪼개 연습해서 학교 축제 때 학생들 몰래 깜짝 공
연을 준비하기도 했고, 정년퇴직하시는 선생님을 위해 이벤트 공연
을 준비해서 그분만을 위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올해 8월 즈음에
도, 지친 선생님들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작은 콘서트를 하려고 구상
중이기도 하다. 주변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은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이냐고, 안 힘드냐고 묻곤 하신다. 하지만 내 대답은
늘 “제가 좋아서요”다. 신기하게도 그 시간은 나에게 짐이 아니라 오
히려 힘이 되더라. 사실 연주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베이스기타
를 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베이스를 맡아 유튜브를 보면서
연습했으니 잘할 리가 없지만— 같이 연습하며 선생님들과 더 친해
졌고, 또 함께 같은 소리를 내기 위해 각자 연습했던 그 순간들은 바
쁜 일상에서 오히려 큰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결국 되짚어보면, 나를 에워싼 전쟁 같은 삶을 평화로 만드는 비결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서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내 선택’
에 달려있었다. 기획|전쟁과

내가 최근에 깊이 공감하고 좋아하게 된 문구가
있다. “There are no desperate situations, there are only desperate people.” 절망적인 상황은 없
다. 오직 절망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상황은 사람을 절망시킬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사
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게 된다. 일상에서의 전
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세상엔 나보다
훨씬 바쁘고 힘든 사람이 많겠지만, 적어도 내
게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참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만 이 바쁜 일상을 내가 기쁘
게 받아들이고 누린다면 그것은 ‘평화’일 것이
고, 이것이 그저 벅차고 괴로운 짐으로만 다가
온다면 그것은 ‘전쟁’일 것이다. 결국 나의 하
루가 폐허로 가득한 전쟁터가 될지, 평화를 누
리는 감사의 시간이 될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네모난 세상 속에서 전쟁 같은
일상이 계속되겠지만, 그 안에서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선택하기 위
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오늘도 칠
판 앞에 서기 전 조용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일
일 것이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주님이 주
시는 참된 평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 흔들리는 일상의 지표들

조성아|편집부

106일 전쟁의 끝: 미국-이란 종전 합의
지난 6월 14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란이 14개
항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에 전격 합의 함
에 따라, 극적으로 총성은 멈추었습니다. 이스라
엘과 미국의 기습 공습으로 시작된 미국-이란 전
쟁이 발발 106일 만에 막을 내린 순간이었습니
다. 비록 총성은 멈추었지만, 106일간의 전쟁이
남긴 타격은 막대합니다. 특히 세계 원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
가는 폭등했고, 전 세계 경제는 그 충격을 고스
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경제적 파급력: 지갑과 밥상의 변화
종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경제적 전쟁
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치솟은 주유비와 물류비는 쉽사리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마트에 갈 때마다
손이 떨린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장바구니에 물
건을 몇 개 담지도 않았는데 큰돈이 덜컥 나갑니
다. 이처럼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이 체감될 정도
로 오르면서 외식이나 소비를 줄이는 분위기입 니다. 게다가 전쟁으로 제조·유통업계 전반이 타 격을 입으면서 고용 불안정과 취업난마저 지속

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들었으며, 우리의 삶이 세
계의 분쟁과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감케 했습니다.
전쟁의 미래: 총성 없는 기술 패권 전쟁
모두에게 상처 뿐인 전쟁, 그렇다면 이 전
쟁은 정말 끝이 난 걸까요? 극적 합의가 이
뤄져 종전이 선언된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
정세는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될 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전쟁의 종식 여부와 상관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전쟁 전문가들은 이번 중동 사태 너머에
있는 기술 패권 전쟁을 주목하라고 경고합
니다. 이번 중동 전쟁에서 무인 드론과 인
공지능에 기반한 정밀 타격 기술이 사용된
것처럼, 전쟁의 기술은 날로 고도화될 것
입니다. 또한 과거의 전쟁이 영토를 차지하
기 위한 포격전이었다면, 미래의 전쟁은 인
공지능(AI), 시스템 반도체, 양자 컴퓨터 등
첨단 기술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의 싸움
입니다. 기술을 독점하는 국가가 자본과 정

보, 심지어 일상까지 마음대로 통제하는 시대가 점차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시대를 분별해야 할 때입니다.
심리적 잠식: ‘생존형 포모(FOMO)’의 확산
이러한 안팎의 전쟁은 우리의 내면에도 깊은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현상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최근 우리 사회에는 포모 현상, 즉 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포모 현상이 단순히 유행에 뒤처지는 공포를 넘어, 전쟁과 물가 폭등과 같
은 거대한 위기 속에서 생존의 공포로 진화했다는 사실입니다. 남들은 이미 주식, 부
동산, 자산 축적 등으로 미래를 대비해 안전한 요새를 만든 것 같은데 나만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고립감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급함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앗아가고 오직 나만 살고 보자는 극단적인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를
부추깁니다.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 진정한 평화의 가치
결국 이번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은 하나입니다. 이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
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어디론가 휩쓸려가고 마는 이 포화 속에서 우리
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더 많은
재물을 쌓아 자신만의 요새를 만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움켜쥐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세상의 무기를 쥐고 나만의 요새를 쌓아 올
리는 노력은 허무해 보입니다.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 같은지...”
“왜 이렇게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지...”

불안한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세상이 온통 나를 밀어내는 듯한 막막함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 같은 삶 속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일상에 숨겨
진 진짜 ‘평화’가 찾아옵니다.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다 나아간 예배에서 찬양 가사
가 내 마음을 울릴 때, 버거운 일상 속에서 나를 응원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집안일을 마치고 정돈된 거실의 고요함 속에서, 그
리고 하루의 끝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들을 때입니다. 간절히 병마와 싸우
고 있는 환우를 위해 기도했더니 병이 호전됐다는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올 때도 우
리는 평화를 맛봅니다.

어쩌면 평화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특별한 선물일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평화는 내 힘으로 발버둥 칠 때 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낼 때, 비로소 일상의 진짜 평화는 시작될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전쟁의 고통 속으로
이일 집사|서울교구

이번 호 하늘칼럼에서는 공익법센
터 어필(APIL)에서 난민 전문 공익
변호사로 섬기고 있는 이일 집사님
의 글을 소개합니다. 전쟁으로 신음
하는 지구촌 이웃들의 고통이 우리
의 일상 속에서 보이고 들리기까지
우리가 외면해 온 그 참을 수 없는
간극에 대해, 이일 변호사님의 이야
기를 들어봅니다. 지난 5월 주현신
목사님 주일 설교 ‘하갈의 하나님’에
서도 인용되었던 내용입니다.

전쟁의 소식이 계속 들려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 우리들은 어떤가
요? 고통의 현장을 직시하며 계속 듣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뉴스로, 밀려드는 오늘의 일정으로 황급히 옮겨갑니다. 유한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그 모든
고통과 불의가 집적된 전쟁이라니요. 그런데,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저
서 ‘긍휼’(Compassion)에서 하나님의 시선에 대해 설명합니다. 우리는
TV 채널을 돌리듯 시선을 돌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고통으
로부터 그렇게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신비는 인간의
고통을 마법처럼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 함께 머물며 나
누시는 것에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라는 말씀은 텅 빈 격려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시고 곁에서 함께 고통하
며 세상의 짐을 책임지시는 속깊은 헌신으로 읽힙니다.
전쟁에서 스러져가는 자녀들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는 주님의 마음 한
자락을 함께 만나봅시다. 21세기 이후 전쟁 속 사상자 수를 한번 들어보
실까요? 2011년 시리아 내전 65만 명 이상, 수단 내전 수십만 명, 예멘
내전 37만 명 이상, 아프가니스탄 전쟁 20만 명 이상. 그리고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의 기간을 초과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양측을 합쳐
무려 200만 명에 달합니다. 국경을 넘은 난민 수도 시리아 500여만 명, 아프가니스탄 300여만 명, 수단 450여만 명, 우크라이나 590여만 명으 로 추산됩니다. 도무지 그 고통의 크기가 짐작되지 않는 숫자들은 어느
새 사람의 얼굴이 아닌 통계로 치환됩니다. 전쟁은 ‘내가 달리 어쩔 수
없는’ 머나먼 일로, 분석으로, 평론으로 치환되고 그 안의 고통은 납작해 집니다.
그런데, 제게는 전쟁이 평론이나 통계가 아니라 ‘친구의 얼굴’로 다가옵
니다. 고통의 무게를 지닌 얼굴들입니다. 한국에서 난민들을 매일 만나
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난민을 실제로
만나기는 쉽지 않기에, 어쩌면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전하
고, 이름과 얼굴이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알릴 책임을 느끼곤 합니다.

시리아에서 온 와합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다마스커스(성경의 다메섹)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로, 한국인들에게 매력을 느껴
혈혈단신 한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2011년
내전이 발발하며 가족들은 튀르키예로 피난하
고, 동생들은 유럽으로 흩어지고, 많은 친척들
이 사망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한국에
서 NGO를 만들어 고국의 소식을 알리고 평화
를 촉구해 왔습니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
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이러했을까요? 와합
은 초인적인 노력으로 한국에서 법학박사 학
위를 받고 국적도 얻었으며, 최근 잠정적으로
종결된 전쟁 소식에 춤추며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출
입국에서 지위를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전쟁터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한국에서도
이방인으로 사는 경계 속 삶을 살았습니다. 전
쟁은 이처럼 고향을 앗아가고 사람들을 이방
인으로 떠돌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자말(가명)도 있습니다.
2021년 탈레반이 카불을 완전히 점령하고 미
군이 철군하자, 한국 대사관에서 통역사로 일 했던 자말은 이미 보복 대상으로 올라 있었습
니다. 이른바 미라클 작전으로 군수송기가 카
불로 갔고, 자말은 모든 것을 버리고 두 자녀와
함께 빈손으로 수송기에 올랐습니다. 당시 한
국 정부는 성년 자녀의 탑승을 제한했기에, 많

은 가족들이 대학생 연령의 자녀들을 남겨두
고 비행기에 오르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
다. 자녀들이 국경을 건너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소식은 끊기고, 서로 만날 길은 요원합니
다. 전쟁은 이렇게 가족을 찢어놓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마리아(가명)는 K-pop을
좋아하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침공
전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다 전쟁을 맞 이했습니다. 전쟁 이후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
고, 어머니는 유럽으로 피난하셨습니다. 부모
님과 연락이 끊길 때마다 혹시 무슨 일이 생
긴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
란에서 온 하산(가명)은 독재 정부에 저항하
다 경찰에 붙잡히기 전 한국으로 피난했습니
다. 2026년 초 수천 명의 시위대가 군경에 의
해 학살당했고, 이후 발발한 전쟁 속에서 이란
정부는 더욱 가혹하게 민주적 요구를 탄압하 고 있습니다. 하산은 눈물을 훔치며 지금도 한
국 이란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 니다. 전쟁은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을 빼앗고, 그들에게 다른 얼굴을 부여합니다.
제가 만난 난민 친구들에게 전쟁은 멀리 있는
통계가 아니라,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뼈아픈
현실이었습니다. 이들은 누구도 전쟁을 예상
하지 못했고, 전쟁은 이들의 선택도 아니었습
니다. 한국으로 피난 온 예멘 난민 친구의 말
하늘칼럼
이 기억납니다. “에티오피아 내전 난민들이
우리 나라로 왔을 때 우리는 그들을 불쌍하다
고 생각했어.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도 전쟁이
나서 내가 한국까지 오게 될 줄은 1년 전에도
상상 못 했어.”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
공 후 직업군인만으로 인원이 부족해지자 30
만 명의 예비군 동원령을 발령했습니다. 그런
데 고관대작과 부자들의 자녀들은 명단에서
빠지고, 가난한 집 자녀들과 이주 배경 자녀
들에게만 징집영장이 날아왔습니다. 도망가
면 잡아서 끌고 가 전방으로 보냈습니다. 전
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가
난한 이들, 여성과 아동들입니다. ‘싸우자’고
주장한 정치인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 있고, 가난한 집 자녀들만 전장으로 끌려가 사라집
니다.
전할 수 있는 이야기만 일부 추려 전했는데도
더 써 내려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
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껴안는 하나님의 사
랑은 그만큼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입
니다. 존경하는 주현신 목사님께서 지난 5월
17일 설교 중 인용하신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의 한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

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늘
나는 이 말이 그분의 빛나는 영광을 보고는 살
수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말이 그의 큰 슬픔을 보고는 살 수 없
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히 주님의 큰 슬픔을 들여다볼 수 있
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의 소문 앞에서 택해야
할 것은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따라 평화를
촉구하는 것, 전쟁의 참화 속에서 탈출한 사람
들 앞에서 해야 할 것은 ‘보고 피하여’ 가지 않
고 이웃으로 환대하는 것입니다. 먼 곳의 전쟁
을 우리 가 막기는 어렵지만, 전쟁에서 탈출 한 사람들을 주께 하듯 환대할 수는 있습니다.
“…거류민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
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으니라….”(레위기 19:34) 하늘에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에 잠시
머무는 우리들에게, 우리와 같이 그러나 더 큰
고통을 안고 찾아오는 난민 이웃들에게 곁을
내어주는 것이 평화로 가는 길입니다. 주님이
그들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으시고, 내려와 곁
을 지키시며, 함께 고통을 체휼하고 계시기 때
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늘 나는 이 말이 그분의 빛나는 영광을 보고는 살 수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말이 그의 큰 슬픔을 보고는 살 수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정혜경 집사|갈현교구
4월 13일 오후 3시 43분, 휴대전화로 구급대원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재휘가 차량에 부딪혀
사고를 당해 의식이 없는데. 머리 쪽에 외상이 있
으니 아주대학교 외상센터로 오라는 긴급한 내
용이었다. 크게 부딪힌 것 같진 않으니 너무 걱정
하지 말고 오라는 구급대원의 말과 아이가 의식
이 없다는 말이 계속 뇌리를 맴돌며 불안한 마음
으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긴급 수
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고, 피가 마르는 듯한 두
시간이 흐른 뒤 수술을 마친 의사 선생님은 참담
한 소식을 전했다. “뇌출혈이 너무 심한 상태로
왔습니다. 나이가 좀 있는 환자라면 포기했을 상
태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회복력이 있으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치료해 보겠습니다. 하
지만 뇌사 상태에 빠질 확률이 50% 이상입니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풀리며 깊은 절망감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날 밤,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 눈을 떴을 때
책상 위의 성경책을 펼쳐 들었다. 마침, 시편 42
편이 눈에 들어왔고, 한 절씩 읽어 내려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 말씀을 주셨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
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
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
리로다” (시 42:5) 이 말씀은 11절에서도, 그리고
43편 5절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낙심한 나를
향해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강조하시며 들려주
시는 음성 같았다. ‘그래, 불안해하지 말자. 낙심
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자. 주님께서 도와
주신다고 약속하시잖아.’ 말씀의 약속을 붙잡자,
재휘를 살려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큰 담대
함이 생겼다.
갈급한 마음에 새벽마다 눈이 떠졌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교회를 향했다. 기도 중에 하나님
이 우리 가정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 가정
을 온전히 회복시키시려고 가장 사랑받는 자녀
인 재휘에게 이 시련을 허락하셨다는 마음을 주
셨다. 재휘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
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
게 되었다.
사고 이후, 교회는 재휘를 위한 기도의 불꽃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주일 대예배 때 재휘를 위해 간

절히 기도해 주신 담임 목사님과 성도들, 거의 매
일 전화로 재휘의 상태를 물으시며 회복의 기도
제목을 나눠주신 강성수 목사님, 단톡방에서 마
음을 모아준 교구 식구들, 스태프로 섬기는 어머
니 기도회의 뜨거운 기도와 교회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교회 곳곳에서 재휘의 치유를 위한 공동
체의 중보기도가 이어졌다. 심지어 재휘를 전혀
알지 못하는 타교회, 타국에 계신 분들까지 사고
소식을 듣고 눈물로 기도하고 계신다는 이야기
를 전해 들었을 때, 살아계신 주님의 역사가 아니
고선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사가 밀려왔다.
재휘를 통해 우리의 기도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계획하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교회를 다
니지 않는 어떤 지인은 나에게 “나도 교회에 다
녀야 할 것 같아.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누군가
를 위해 자기 일처럼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해주는
곳은 교회밖에 없는 것 같아”라며 고백해 왔다.
지금도 신실하게 살아 계셔
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목
도하는 순간이었다.
중보기도의 힘은 정말 놀라
웠다. 재휘는 성도들의 기도
에 응답하듯 하루하루 상태
가 호전되었고, 마침내 ‘기
적’ 같은 회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두 번의 수술을 받으
며 50일간의 입원을 끝내고
퇴원하는 날, 재휘가 “엄마
집에 가자, 수고했어. 나 눈
물 날 거 같아, 너무 좋아” 하며 꼭 안아주는 데 힘
든 치료 과정을 잘 견뎌준 재휘가 너무 고맙고 기
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아직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재활의 과정이 길
게 남아 있다. 그러나 시작하신 이도 하나님이시
요, 완성하실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고, 우리 가정
을 살리시고 재휘에게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앞으로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도록 순종하며 나아가겠다.
‘있을 재(在)’, ‘빛날 휘(輝)’, 빛 가운데 거하라고
지은 재휘의 이름처럼,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한다.
기도로 함께 울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동역해
준 모든 성도와 지인들에게 고개 숙여 깊은 감사
를 드린다.

깊은
재휘의 회복을 통해 경험한 은혜
정재훈 집사|갈현교구
지난 4월 13일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보니 아
내에게서 전화가 와 있었다. 막내아들 재휘가 하
굣길 자전거 사고로 119에 실려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센터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도착해 들은 말
은 충격적이었다. 뇌출혈이 심각해 긴급히 머리
를 여는 수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 아
침 학교에 잘 다녀오겠다며 멀쩡히 나섰던 아이
였는데, 그 사실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수술 후 의사는 출혈이 많고 뇌가 심하게 부어
있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고, 뇌사 가능성이
50%를 넘는다고 했다. 집중치료실에 누워 있는
재휘는 머리를 밀고 산소호흡기를 낀 채 그저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 곁에서 짧게 기도하며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다스리기가 너
무 어려웠다. 그날 밤 아내와 서로 안고 울었다.
정확히는 울음이 아니라 신음이었다. 그러면서
도 그 깊은 신음을 들으시는 주님이 계심을 생
각하게 되었다.

인간적으로는 회복을 그려보기 어려운 시간이
었지만, 그 가운데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은 혜를 경험했다. 내가 대표로 섬기고 있는 기독
법률가회(CLF) 공동체는 재휘를 위해 매일 새
벽 줌으로 특별기도회를 이어갔고, 영국과 미국
에 목회와 선교사로 나가 있는 친척들은 시간을
나누어 24시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랫
동안 사역했던 CBMC 지체들과 회사 동료들도
매일 가족들과 함께 재휘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사무실에 잠시 들렀을 때 동료들이 나를 보자마
자 말없이 안아주었는데, 그 눈빛과 손길에서 함
께 기도하고 있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큰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과천교회 공동체의 사랑이 컸다. 교구
와 여전도회, 권사회, 모든 교역자분들이 매일
같이 재휘를 위해 중보기도를 이어가셨고, 새벽
예배 때마다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다 함께 손을
모아 재휘의 회복과 온전한 치유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새벽기도에 나갔
던 날, 기도시간에 흘러나오는 성도님들의 기도
소리에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주일 대예
배에서는 담임목사님께서 온 성도와 함께 재휘
와 우리 가정을 위한 공동기도를 제안하셔서, 교
회 전체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병원에 있을 때나 사무실에 들렀을 때도 만나는
지체마다 재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주셨고, 그 한마디 한마디가 무너지려는 마

음을 다시 붙들어 세워주었다. 이 큰 사랑과 기
도의 빚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지, 힘든 시간
속에서도 그 자체로 버겁도록 큰 은혜였다.
개인적으로 깊은 신음 가운데 기도하던 중 두
가지 말씀이 마음에 떠올랐다. 하나는 갈릴리 호
수 풍랑 가운데 성난 파도를 향해 “잠잠하라” 명
하신 예수님의 음성으로, 재휘의 부어오른 성난
뇌를 잠잠하게 하실 분도 주님이시라는 것이었
고, 다른 하나는 겟세마네에서 베드로가 베어버
린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예수님께서 친히
고쳐주신 사건이었다. 마침 최근 이 말고의 이
야기를 소재로 단편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왜 하
필 이 시기에 말고에게 마음이 끌렸는지 우연으
로 여겨지지 않았다. 수술이 아닌 예수님의 초자
연적인 능력으로 온전히 회복된 말고의 귀처럼,
재휘의 뇌세포와 조직도 그 손길로 온전히 회복
되리라는 믿음을 주신 것이라 느꼈다. 이 두 말
씀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받으며, 재휘를 온
전히 회복시키시려는 주님
의 계획을 신뢰하게 되었다.
사고 10일째, 재휘는 마침
내 의식을 되찾았다. 이름을
부르자 눈을 크게 뜨고, 아
빠를 알아보겠느냐는 물음
에 두 번 눈을 깜빡여 답하
던 그 순간, 기쁨의 눈물이
쏟아졌다. 이후 산소호흡기
를 떼고 자가호흡을 시작했
고, 음식물 섭취가 가능해지며 일반병실로 옮겼
다. 며칠간 섬망 증세로 팔다리를 묶어두어야 하
는 등 작은 고비도 있었지만, 점차 안정을 찾으
며 사고 50일 만에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지
금은 집에서 통원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으며 하
루하루 회복해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모든 과정이 기적이다. 재휘는 내
아들이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게 되었
다. 무엇보다 사고와 회복의 모든 시간 동안 함
께 울고 기도하며 마음을 모아주신 과천교회
공동체와 모든 지체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 기도의 힘이 없었다면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생명을 얻은 아들 재휘를
보며, 나 역시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주님과 함 께 걷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엄마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약속을 이루시는
오상욱 집사|30+교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
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
니라”(사도행전 3장 13절)
내 기억의 시작은 울창한 왕벚나무 빨간 굴다
리 길을 지나서- 평소에는 졸졸졸, 비가 온 뒤에
는 콸콸콸 물 흐르던 시냇가를 지나서- 다리를
건너 풀 내음이 느껴지는 푸르른 관악산 기슭을
지나면- 빨간 벽돌의 과천교회에 도착.
어린 날 어느 주일, 엄마의 손을 잡고 교회로 향 하는 발걸음은 산뜻하고 가벼웠다.
초등학생이 되니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생겼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의왕으로 이
사 간 후에도 이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라

고 여겼던 엄마는 언제나 주일 아침에는 교회에
서 나를 기다리셨다. 엄마가 절대 양보하지 않
던 주일성수 덕에 교회에 가지 않으면 큰일이라
도 나는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니 세상만사 재밌는 게 많아 교회
는 도장만 찍는 곳처럼 되었고, 직장인이 되니
뭐 그리 할 게 많은지 교회도 오는 둥 마는 둥.
친구들도 각자 살길 찾아가고 이제는 데면데면 해졌다. 그러면서도 결국 교회에서 아내를 만
나 가정을 꾸린 나는, 이제 매 주일 아침 예전
엄마의 모습처럼 가족들에게 교회 가자고 채근 한다. 많은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으며 ‘아브라
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라는 말을 많이도 들어왔으나 나는 이 말의 의
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2024년 7월 21일, 하나님과 사람에게 늘 신실하던 과천교회 박미원 권사,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갔다. 젊은 시절부터 위암 수술로 고단했던 몸은 골수섬유
증에서 시작해 백혈병으로 발전해 항암치료까지 이 땅에서 육신의 모든 어려움
을 견뎌냈으나,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더 이상의 미련 없이 떠났다. 떠나
는 바로 그날까지 직접 걸어서 병동에 들어가 누운 어머니는 과연 평생 신실하
고 정직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근무지인 싱가폴에서, 정신없이 자던 새벽에 울
린 형의 전화에 엄마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 안에서 눈물을
쏟으며 귀국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아빠는 언제나처럼 담담했다. 엄마의 영정사진 옆에는
‘부활소망’이라고 쓰인 과천교회 깃발이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주님께 ‘부활’
을 간절히 믿는다고 기도했다. 수많은 교회 분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오셨다. 엄
마를 특히 사랑했던 여러 권사님들의 위로의 말씀과 슬픔이 우리 가족의 애통
한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어린 날 내가 답답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 특
히 좋은 것 양보하고, 남의 사정 봐주느라 정작 본인의 잇속을 챙기지 못하는 모
습이 많은 분들께는 큰 울림이 있었나 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한 유산
세상에는 많은 유산이 있지만, 결국 없어져 버릴 땅의 유산이 아닌 것. 때에 따
라 가치가 달라지고, 많고 적음 또는 네것 내것에 따라 반목을 만드는 세상의 유
산이 아닌 것. 주님의 말씀에 예속된 삶, 사랑과 순종의 삶이 얼마나 귀하고 주
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나는 엄마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주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늘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공동체를 사랑하며, 투병 중에
도 손을 들고 기도하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예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
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
하라’ 하셨던 지상계명 말씀을 살아간 엄마의 삶을 옆에서 보아온 것이 진정한
유산임을 안다.
약속을 지키는 신실하신 하나님
엄마에게 기도제목이 있었다. 하나는 오래전 매입한 양평의 한 땅에 전원주택



을 짓는 것이었다. 엄마는 집의 모양과 텃밭이 있
는 마당 등 집의 배치를 그려두었다. 엄마가 떠난
후 책상에 붙어 있는 그 그림을 보았다. 엄마는 늘
그 그림을 보며 기도했으리라. 이래저래 집을 지
으려 노력했으나, 끝내 엄마는 그 집을 직접 짓지
못하고 주님의 품으로 갔다.
그 꿈은 아빠에게로 이어졌다. 금전과 행정적인
것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어 순탄하게
풀렸고, 2025년 여름, 감사함 속에 입주하였다.
집의 이름은 엄마가 생전에 지어두었던 이름, ‘고평(고요평안)하우스’다. 이제는 넓은 마당에
서 손자 손녀들이 즐거이 뛰노는 아름다운 장
소가 되었다. 엄마를 누구보다도 그리워하는 누
나도 고요하고 평안한 새 집이 너무 좋다고 이 야기한다.
엄마는 형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말씀을 신실
하게 지키는 사업가로서 이 땅에서의 성공과 풍
요를 위해 기도했다. 최근 형은 과천 시민을 대상
으로 풍성한 지식을 전달하는 <과천아카데미>를
1년간 위탁 운영하게 되어, 나로서는 하나님께서
엄마와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심을 징표로
알게 해 주셨다. 엄마는 또한 두 아이를 키우는 내
게 좋은 거처 마련해주시길 기도했고, 그 꿈 또한
충만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엄마가 떠나고 엄마의 소망과 꿈이 모두 이루어
져 감을 느낀다. 주님께서 우리보다 우리의 필요
를 잘 아시고,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충만하게 이
루어 주심을 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지
만,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
향으로 이끌어 주셨음을 느낀다.
엄마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
님이 되신 것 같이, 엄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내 아이의 하나님이 되시어 신실하신 약속을 이
루시며 우리 가문을 사랑으로 돌보심을 나는 진
정으로 믿게 되었다.
어릴 적 자고 있던 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던 엄마의 손길과 기도가 생각난다. 이제는 나
도 엄마의 모습을 따라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
며 손을 얹어 기도한다. 이 땅에서 내 시간이 다할
때까지 이 기도를 계속하려 한다. 우리 엄마가 그
러했듯이. 오늘도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과천교
회로 향한다. 이제 나는 진정으로 엄마의 하나님
이 우리 가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안
다. 그리고 많은 이들을 사랑한 엄마의 발자취를
따라 살고자 한다.
엄마가 손자 손녀들과 통화하거나 만날 때면 늘
마지막에 하던 축복의 말이 있다. 이 말은 이제 아
빠를 통해, 나를 통해 내 아이들의 입에서 계속되
고 있다. “God Bless you, I Love you!”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셨고,
지금도 신실하게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제게 그랬듯이 어머니의 삶이 교우분들께도
의미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은혜
유태완 목사

바쁘게 돌아가는 목회 일상 속에서도 굳게 자
리 잡은 시간 하나를 소개합니다. 바로 ‘5살 아
들과 함께하는 성경동화 읽기’ 시간입니다. 하
루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아이와 함께 앉아 책
을 읽는 짧은 시간, 설교 준비를 위해 책상에 앉
을 때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하곤 합니다. 가정
에서의 그 시간이, 어느새 예배의 자리가 되었
습니다.
우연한 시작, 성장하는 기쁨
아들이 ‘아기성경’을 시시해하던 때, 한 동료목
사님 가정이 성경동화 시리즈 전집을 선물로 주
셨습니다. 처음엔 아이가 어려 글자가 좀 많지
않나 싶었지만 예상보다 아들은 성경의 이야기
를 재미있어하며 잘 소화했습니다. “아빠, 한 권
만 더 읽어주세요” 하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책
을 읽는 모습을 보면, 책을 선물해 주신 목사님
가정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일방적으로 제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아이가 이
제는 소통하고 생각을 나누며 삶 속에서 말씀과
성경 인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리고
성 이야기를 많이 읽어주니, 여리고성을 무너뜨
릴 때 소리를 질렀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함성을
지르며 저에게 달려올 때는 과잉교육(?)인가 싶
은 생각도 듭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던 어느
날에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십자가를 들고 가
셨어?”라고 물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삶 속에 조금씩 성경 속 인물이
스며들고, 그 인물들이 보여준 용기와 믿음, 사
랑과 용서 같은 다양한 가치들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이미 우리 가정의
식구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버지로서, 목회자로서
아버지로서, 목회자로서 이 시간은 제게도 큰 축
복입니다. 지난 사순절과 고난 주간에는 집중적
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주었
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펴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불쑥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
어?”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한 번으로 끝나
지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는 죄인인데,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죽으셨어”
라고 대답해 주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
것이 으레 주고받는 질문과 답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을 내가 매일 입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
을 말입니다. 설교단에서 전했던 복음을, 다섯 살
아이의 거듭되는 물음 앞에서 다시 듣고 있으니,
마음이 찡했습니다.
유아부에서 율동까지 배워와 “십자가에서 죽으
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찬양을 하는 모
습을 볼 때면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아
이의 마음은 정말 흰 백지와 같아서, 의심하지
않고 믿으며 스펀지처럼 흡수합니다. 그 믿음
앞에서,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정말 그럴까?’ 걱
정하는 우리 어른의 모습이 많이 부끄러웠습니
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 19:14)” 하신 말씀이 단순한 환
영의 말씀이 아니라, 그 작은 믿음이야말로 천
국의 표본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자녀 마음에 하나님을 새기라
작년에 부모세미나 강사로 오신 신형섭 교수님의 저서, 『자녀 마음에 하나님을 새
기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자녀 마음에 어떻게 하나님을 새길 수 있을까요? 가장 좋
은 것은 말씀을 들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강론하다’라는 말에는 ‘거듭거듭 새
긴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
웠을 때나 일어날 때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은 자녀 마음에 하나님
이 새겨지는 통로입니다. 잠자리에서 펼치는 한 페이지의 성경동화가 어쩌면 그 강
론의 작은 실천일지 모릅니다.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성경 말씀 때문에, 또 자녀에게 어떻게 신앙을 쉽고 재
미있게 가르칠지 막막해서 고민인가요? 그렇다면 성경동화를 활용해 보시는 건 어떨 까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말씀을 새롭게 발견하고 묵상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아들에게 읽어주다가, 익숙한 본문이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가슴에 와닿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
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성경해설서가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다시 펼쳐보는 한 권의 그림 성경일지도 모릅니다.
가족과 함께 성경동화를 읽으며 서로
의 생각을 나누고, 삶 속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기쁨을 누
리시면 좋겠습니다. 이 작은
노력이 우리의 신앙 성장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소
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
님의 사랑 안에서 더욱 풍성
한 삶을 누리게 되기를 축복
합니다.


『굿나잇 바이블』
『도란도란 우리가족 나눔성경』
42가지 신구약의 생생한 이야기가 아름다
운 그림과 함께 담겨 있습니다. 자녀와 함
께 나눌 수 있는 8가지 활동 팁도 있어 책을
읽어주고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성경공부가
됩니다.
52가지 신구약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
이 있고, 잠들기 전 기도와 축복의 한 마디
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잠들기
전 하루에 하나씩 자녀에게 읽어주기 좋은 책입니다.


『함께 읽는 성경동화 전집』
구약 41권, 신약 35권, 총 76권으로 가장 양
이 많습니다. 성경 속 이야기들이 아이뿐 아
니라 어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은혜
받는 시리즈입니다. 아름다운 삽화와 깊이
있는 이야기가 사건별로 있고, 제39회 한국
기독교출판문화상 어린이 부문을 수상한
대표 성경동화입니다.
남향주 장로
취재 심소라 | 편집부


하늘행복소식지를 늘 빛내주던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을 기억하
시나요? 자연을 가득 담은 표지
사진은 다음 페이지를 기대하게 하고, 글을 읽다 만나는 포토에
세이는 잠시의 쉼을 주는 듯합니 다. 이번 하늘초대석에서는 사진 으로 가장 평화로운 순간을 전해 주시는 남향주 장로님을 모셨습 니다.



Q. 어떻게 사진 촬영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사진 촬영을 시작한 지는 30년 정도 되었어요.
인쇄소를 운영하면서 광고용 사진 촬영을 전문
스튜디오에 의뢰하다가, 직접 해보자 마음먹고
카메라를 구매했죠. 저에게 좋은 카메라가 있다
는 사실을 김찬종 목사님이 아시고 교회 사진을
담당해 주면 좋겠다 하셔서 15년 이상 교회 행사
사진을 찍으러 다녔어요. 점점 사진에 재미를 느
끼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카메라로 담
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풍경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Q. 소식지를 통해 신비하고 멋진 장면을 많이 보
게 됩니다. 장로님 사진만의 특징은 뭘까요? 어떤
카메라나 장비를 쓰세요?
사진 관련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어
요.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며 어깨 너머로 노하
우를 배우거나 독학해서 터득한 것들이죠. 자연
그대로를 잘 담아내는 사진, 수채화 같은 사진을
선호해요. 야경이나 새벽 풍경, 겨울 설경, 바닷
가의 해무, 계곡의 물안개, 습지의 땅안개가 피
어오르는 몽환적인 풍경을 좋아하고요. 포토샵
은 거의 하지 않고 밝기나 채도, 농도 정도만 조
정하죠. 사진에서 구도가 70%를 차지한다고 생 각하는데, 주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구도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어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구도를 잡는 과정이 사진을 찍을 때와 비슷 하거든요. 촬영 장비는 사지 않은 지 벌써 10년
은 된 것 같네요. 카메라는 색감이 예민한 캐논
제품만 사용해 왔고 1D mark2, 5D mark3 이렇 게 2대, 렌즈는 7개를 사용하고 있어요.
Q. 전국 각지의 사진이 있었는데요, 사진 촬영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시는지요?
사진 동호회 등을 통해 정보를 얻어서 계절에
따라 촬영하기 좋은 곳을 찾아가요. 새로운 곳은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가지만 아는 곳은 거의 혼자 가죠. 4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주 출사를
나갔어요. 근데 30+ 교구 장로가 되고서는 한 달
에 1~2번, 다음세대 사역을 맡으면서는 행사나
회의가 많아서 한 달에 1번 나가기도 힘들더라 고요.
Q.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어려움과 기다
림도 많으실 거 같아요. 사진 촬영 중 특별한 에피
소드가 있을까요?
20년 전 풍경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전남 화순에 ‘세량제’라는
저수지가 있어요. 사진 한 컷을 담기 위해 밤 9
시에 출발해서 새벽 2시에 도착하고, 4시간을
기다려 사진을 찍고, 다시 6시간을 운전해서 집
에 돌아왔죠. 온도, 습도, 날씨가 딱 맞아서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는
데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구나!’ 하는 감동이 밀
려왔어요. 촬영하다 보면 위험한 경우도 있죠.
아들과 함께 양평 예빈산 양수리의 운해 오르는
장면을 찍기 위해 새벽에 절벽을 오른 적이 있
었는데, 아들이 이런 곳은 절대 혼자 다니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더라고요. 늘 조심해야죠.
Q. 상당히 몸이 고된 작업인 것 같은데요, 지금까
지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촬영하며 창조주께서 만드신 자연의 신비와 아
름다움을 항상 느껴요. 그것이 제가 사진을 찍는
의미이자 이유죠. 아침 물안개 속에 햇살이 들어
오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정화되고 새
로워지는 것 같아요. 거기에 반해서 몸이 힘들어
도 자꾸 새벽에 나가게 되네요.
Q. 장로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진이란 뭘까요?
인위적이지 않은 것이 좋은 것 같아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 보
정이 과하지 않은 사진이 좋다고 생각해요. 포토
샵과 AI로 만들어지는 사진이 많은데 정말 아쉬
운 부분이죠. 사실 자연 풍경 사진은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거든요. 여러 변수가 많아서 계획한
대로 사진을 찍을 확률은 30% 정도에 불과해
요.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더라도 원하는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은 피곤한 줄도 몰라요.
Q.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으세요?
사라져 가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요.
환경 위기와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계 파
괴가 심각해요. 과거 출사지를 다시 방
문하면 훼손되거나 아예 없어진 곳들
도 있어요. 20년 전과 비교하면 30%
정도는 없어진 것 같아요. 사라져 가는
자연 풍경들을 사진으로 남겨두면 좋
은 자료가 되겠죠. 또 하나, 올해 장로
은퇴를 하게 되는데 시간과 건강이 허
락된다면, 전국을 돌며 새벽 어스름 속
시골 종탑의 불빛을 담아보고 싶어요.
해외에 갈 수 있다면 알래스카나 크로아
티아에 가서 한 달 정도씩 머물며 아름다
운 자연 풍경을 찍고 싶고요.

Q.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팁을 알려주세요.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대상을 가운데 두지 말고 한쪽으로 빼서,
여백을 두고 찍는 게 좋아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가 나타나야 하죠. 풍경 사진을 찍을 때는 무엇보다 자연을 느끼는 감성을 키
우는 것이 중요해요. 좋은 마음을 가지고 풍경을 바라보아야 하는 거죠. 같은 장소라도 사람마다 각자가 느끼는 대로 다른 사진을
찍는데, 그건 테크닉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Q. 소중한 작품들 아낌없이 내어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늘

행복소식지에 대한 애정도 크신 것 같아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찍어둔 사진을 많이 줘서 이제 줄 게 없는데 잊을 만하면
연락이 오더라고요.(웃음) 작년부터는 1년 전에 촬영한 최신 사진
을 주고 있어요. 소식지의 사진들과 디자인은 항상 눈여겨 보고
있어요. 저희끼리 쓰는 말로 사진을 ‘한 번 깎아줘야 한다’고 표현
하는데, 인쇄 전에 사진이 어둡게 나오지는 않는지, 전체적 색감
이 너무 붉거나 누렇지는 않은지 신경 쓰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소식지가 우리 성도님들의 은혜로운 삶과 성숙한 신앙 을 나누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주길 바라는 마 음이에요.
Q. 다음세대교육위원회 사역을 하고 계셔서 여 름에는 더 바쁘시겠어요.
저희가 총 11개 부서로 이뤄져 있는데, 부서 별로 여름 사역을 진행하니 산으로 강으로 열심히 따라다녀야죠. 장로로서 마지막
해라고 하지만 특별히 다를 건 없는 것 같아요. 직분만 다를 뿐 지금까지 최
선을 다해 주님을 섬겨온 것처럼 은퇴
후에도 그럴 거예요.
2026 북중미 월드컵이 한창인데요, 인터뷰 중에 소식지에 실
린 장로님 사진 중 최애 작품을 뽑는 “사진 월드컵”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과연 장로님의 선택은?

바로 2024년 9월-10월호 포토에세이 작품인 “비밀의 숲” 계곡의 물안개와 땅안개가 합쳐지는 장면이 실재하는 풍경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사진이었는데요, 강원도 인제군 갑둔리에서 촬영하신 사진이라고 합니다. 원래 는 군사 작전 지역이라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 이었는데, 풍경 사진이 잘 나오는 걸로 유명해지면서 전망대 가 만들어지고 개발이 되었다고 하네요.
참고로

편집부


식판은 엄청나게 쌓여있는데, 권사님들의 얼굴은 땀방울과 함께 환한 미소로 가득합니다. 새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수백 개의 식판을 닦아내던 이 설거지 전쟁은, 실은 중등부 아이들을 향한 이들의 가장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1993년 7월 #중등3부여름수련회 #“증인되리라” #어느뜨거운날에 #이천동산기도원에서 치열했던 설거지전쟁 한판 #식판가득 넘치는사랑 #감사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1서 3:18)


Episode 18. 설거지 전쟁 2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5:17)
200명이 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 밥을 해먹고 자기가 먹은 것을 직접 설거지하며 ‘부흥’을 꿈꿨습니다. 설거지는 다소 서툴렀지만, 함께 하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설거지를 통해 식판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우리도 깨끗해지기를 희망합니다.
#2007년 1월 #청년부겨울수련회 #‘부흥’ #어느손시린날에 #이천동산기도원에서 #함께해서즐거웠던 설거지전쟁 한판 #함께하니 설거지도 재밌어요


김영찬|30+교구
2년 전 과천으로 이사 온 후에도
익숙했던 기존 교회를 계속 다녔
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자라나는
아이를 향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
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
모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동네 친
구들과 같이 교회를 오가며 신앙
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과천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양가 가족들이 함께 다
니는 작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
었기 때문에 아이가 과천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
었고, 처음 한 달 동안은 아이와
함께 어린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
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따뜻하고 깊이 있는 말씀 덕분에
아이는 주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 시작했고,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저희 부부도 감동과
용기를 얻어 감사한 마음으로 등
록하게 되었습니다.

새신자 등록을 마친 후에도 한동안은 예배에만 참석하며 지냈습니
다. 그러다 30+구역 모임이라는 귀한 공동체를 만나, 따뜻한 교제 속
에서 신앙생활의 기쁨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주일에 들은
말씀을 집에 돌아와 저희에게 나눠주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리는 모습, 스스로 기도하는 모습, 그리고 올해 시작한 씽씽키즈 활
동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며 저희 부부의 마음에도 은혜
와 감사가 넘쳐납니다. 저희 가정을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함께 신앙
의 길을 걸어가 주시는 구역 식구들과 교회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나는 예배자입니다’라는 찬양을 좋아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
배하는 예배자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합니
다. … 바로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라는 찬양의 고백이 다시
제 마음을 붙잡아 주곤 합니다. 과거의 저는 주일 하루,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
었지만,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
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찬양의 고백을 통해 저의 시선을 바꿔 주셨습 니다. 직장과 가정, 삶의 모든 자리가 곧 예배의 자리임을 깨닫게 하셨 고, 여전히 부족하고 흔들리지만 이 고백이 저를 다시 예배자의 마음
으로 세워줍니다. 앞으로도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말이 아닌 삶으로 신앙의 본을 보이는 부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의 가정 안에서 아이가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배우 고 자라갈 수 있도록, 그런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많 은 사 람 가 운데

이연진 | 편집부
드라마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한
달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마다 이 드라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원래 드
라마를 보지 않는 데다, 유행은 늘 짧게 스쳐 간다고 생각해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하며 흘려듣곤 했다. 여주인공이 예쁘다느니, 남주인공이 소심하다느니, 대사가
심금을 울린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마음 어딘가에 책갈피처럼 쌓여갔다. 드라
마를 보지 않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늘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같은 이야기를 덧
붙이곤 했다.

그러다 문득,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그 한 문장에 공
감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토록 많은 이의 마음을 흔든 문장이라면, 그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고여 있을까 궁금했다. 못 이기는 척, 나도 그 드라마를 보
기로 마음먹었다. ‘모’만 쳐도 자동으로 완성되는 제목을 검색하자,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 미쳐버린 인간의 평화 찾기를 따
라가는 드라마’라는 자극적인 소개가 뜬다. 꽤나 노골적이군, 하고 혼잣말하던 사
이, 아이가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모니터 앞에서 한가롭게 떠돌던 오후의 공기는 그 순간 산산이 흩어졌다. 아이는
숨이 찬 채 초여름의 열기를 몰고 왔고, 눈이 마주치자 인사도 없이 친구들과 편
의점에 가야 하니 돈을 달라고 했다. 지갑에서 4천 원을 꺼내 건네자, 아이의 얼
굴이 금세 굳었다. 이 돈으로 뭘 살 수 있느냐는 뜻이다.
“과자 2500원, 음료수 1500원. 이거면 되지 않아?”
묻자 아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받아쳤다.
“아 됐어. 배고파 죽겠는데.”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결국 만 원을 쥐여주었다. 물론 순순히 준 건 아니었다. 컵
라면과 콜라는 사지 말란 말을 덧붙이는 순간, 아이는 다시 미간을 찌푸린다. 그
리고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냅둬, 내가 알아서 할게.”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조금 전까지 드
라마 속 ‘무가치함’에 마음을 내어주려
던 나는 전생처럼 멀어졌다. 자신의 무
가치함과 싸우는 일, 남과 비교하며 가
치를 증명하려 애쓰는 일이 어쩐지 배
부른 고민처럼 느껴졌다. 나의 무가치
함을 자학하며 내적 전쟁에 몰두하기엔
당장 눈앞의 아이와의 전쟁이 너무 크
고 치열하기 때문이다.
아이 역시 자라느라 힘든 시기를 지나
고 있었다. 반장이면 반 분위기를 제대
로 이끌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지쳐
있었고, 갑자기 엄격해진 학교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말하고 행동할 수도 없
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드라마 정보로
가득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
세계는 멀고도 낯설었다. 그 안에선 좌
절도 상처도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쌩 하니 달려나가는 아이
의 뒷모습만큼이나 그 뒤에 대고 “엄마
한테 똑바로 해!” 목소리를 높이는 내
모습이 못마땅해졌다.

나는 모니터를 끄고 휴대폰을 들어 며칠
전 우연히 보았던 그림책을 찾아 결제한
다. 나태주 시인의 시 그림책 ‘사랑한다
고 말해요’다. 다음 날 아침, 아이에게 그
안의 시를 읽어주었다.


<오직 너는>
나태주
많은 사람 아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너는 한 사람.
우주 가운데서도 빛나는
단 하나의 별.
하나뿐인 너의 꽃.
너 자신을 살아라.
너 자신을 빛내라.

허둥지둥 아침을 먹는 중2에게 긴 말은 닿지
않는다. 엄마의 말은 대부분 잔소리로 바뀌어 사라진다. 그래서 시가 필요했다. 짧은 시 위에
“오늘도 힘내”라는 한마디를 얹자, 아이가 슬
며시 웃었다. 자꾸만 늘어나는 부모와 선생님
의 기대와 잔소리 속에서 의기소침해진 아이
에게 시를 건네는 동안, 이상하게도 나 역시 반
짝 힘을 얻는다.
늦잠 잔 아이를 다짜고짜 혼내고 싶던 마음이 조
금 누그러진다. 이 마음이 아이에게 얼마나 닿을
상할 것이다. 상대를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고르는 건 어른인 내게도 어려운 일이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와, 혹은 자기 자신과 싸
우며 살아간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깨닫기 위
해, 증명하기 위해. 그러나 더러는 스스로를 용
서하고, 누군가를 더 사랑하기 위해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의 별로, 하나뿐인 꽃으로 각자의 자리에
서 빛나는 존재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여전히
지는 알 수 없다. 아이 역시 자기 마음과는 다르 게 거칠게 튀어나오는 말투를 보며 당황하고 속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어김없이 채워온 계절

봄이 시작되던 자리에서 어느새 초록이 무성한 계절로 건너왔습니다. 그 사이 부 지런히 모이고, 나누고, 웃고, 또 울었습니다. 아이들의 찬양과 웃음이 교회를 가득 채웠고, 헌신의 손길이 만나 작은 나눔들이 큰 사랑으로 번졌습니다. 멀리 호주와
제주를 다녀온 순례의 발걸음도 모두 시냇가하늘숲 공동체의 이야기가 되었습니 다. 5월과 6월, 우리가 함께 걸어온 그


















30+플리마켓, 장학금전달






뜨거운 여름, 더 뜨거운 은혜
8월, 교회학교의 일정표는 어느 때보다 뜨겁게 채워져 있습니다. 영아부부터 어린이부까지 이어지는 여름성경학교가 본관과 교육관 곳곳을 웃 음과 찬양으로 물들일 예정이고, 중고등부는 양평으로, 청년들은 가평으로 떠 나 말씀 앞에 깊이 머무는 시간을 갖습니다. 에바다부와 사랑부도 각자의 자리 에서 여름 사역을 이어갑니다. 무더위보다 더 뜨겁게, 우리 모두 은혜의 자리 로 함께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위원회 부서 일시 장소 주제
유아부 7/11(토)~12(주)
영아부 7/11(토)~12(주) 교회 본관4층 하나님 사랑 하이! 하이! (Hi! Hi!)
유치부 7/4(토)~5(주)
다음세대 교육위원회

어린이1부 7/24(금)~26(주) 교회 교육관1층
어린이2부 7/24(금)~26(주) 교회 교육관2층
어린이3부 7/24(금)~26(주) 교회 교육관3층
용서받고 사랑하고 고고 대모험
중고등부 7/31(금)~8/2(주) 숲속의 아침(경기도 양평) Send Me(나를 보내소서)
청년교구 청년 8/15(토)~17(월) 꿈에그린펜션(경기도 가평) 인생을 바꿀 질문들
장애인 사역위원회
에바다부 6/25(목)~27(토) 온양농아인교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사랑부 7/12(주) 문원복지동산 우리 모임 가운데
이미 다가온 미래, 여전히 열린 결말
지난 호 크로스퍼즐은 ‘다가오는 것들’이라
는 주제에 걸맞게, 시간의 흐름과 관련된 문
제들을 다수 제출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많
은 교우님들이 정답을 제출하신 가운데 10
명을 선정하여 피자와 커피 상품권을 드립
니다.
•가로 30번 문제의 정답은 ‘인재’였으나,
‘천재’, ‘수재’도 정답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간 문자로 선물을 보내드렸으나, 배송
사고가 계속 발생하여, 이번 호부터 다시 오
프라인으로 드립니다. 교회 사무실에서 “하
늘 크로스 퍼즐 선물 받으러 왔어요”라고 말
씀하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퀴즈 응모하실 때에, 정답 제
출 전 혹시 빈칸을 그대로 두지는 않았는지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세요. 이번에도 두 분이
나 한 문제씩 적지 않고 제출하셔서 정답자
에 포함시키지 못했습니다.
1위(5명)
도미노피자 상품권
2위(5명)
벳세다 커피 쿠폰 10장
당첨자 명단
선물은 사무실에서 수령하세요.
최윤희(11교구), 황금란(은빛교구), 남승우(은빛교구), 이주안(어린이2부), 류수지(30+교구)
남기훈(30+교구), 정상지(30+교구), 박인숙(은빛교구), 진금순(안양교구), 한상철(7·9교구)


하늘행복소식지 2026년 9월-10월호 주제는 ‘철들 무렵’ 입니다.
좌충우돌하던 내 인생을 잡아주었던, ‘철들게 했던’,
결정적 모멘트의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세요.
응모처: gcpenroom@naver.com 접수마감: 8월 7일


주일예배
1부 예배 | 오전 6시 30분 | 대예배실
2부 예배 | 오전 8시 | 대예배실
3부 예배 | 오전 10시 | 대예배실
4부 예배 | 낮 12시 | 대예배실
5부 청년예배 | 오후 2시 30분 | 교육관 지하2층 드림홀
과천교회 하늘행복
2026년 07월-08월호| Vol.161
발행 과천교회 주소 13802,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길 103 전화번호 02.502.2357 홈페이지 www.gcchurch.kr
발행인 주현신 지도 강성수 고문 이규흥 편집장 제희원 편집차장 최윤정 회계 김정희 편집위원 박혜경 백연선 변창희 오은숙 최진영 조성아 심소라 이연진 제갈임주 중등부편집위원 황윤하 사진 임문주 디자인 드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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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행복 161호>는 ① 유상수, 안혜숙 결혼기념 감사, ② 김금수, 정명희 결혼기념 감사 ③ 어명숙 이희덕 추도 ④ 권신남, 강용남 변연 명예권사 추도 ⑤ 김인구, 이애련 범사감사 ⑥ 정윤택, 최영분 새빛음악학원 4주년 감사 ⑦ 이민형, 성정화 범사감사 ⑧ 오상규, 김세나 결혼기념 감사하며 드린 헌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