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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모(Matmo)가
권고하고 학생들의

1∼9월 7.84% 성장… 총리 "연간 8.3∼8.5% 목표" 강조
베트남 경제가 3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8.2% 성장하며 10년 중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Vnexpress지가 5일 보도했다.
(기사를클릭하면웹사이트에서자세히볼수있습니다)
(Vnexpress 2025.10.05)








음식을넘어문화전파의매개체로거듭나다 베트남에서 어린이날의 상징이 되어버린 월병 왜한국에서는먹지않을까?


매년

중추절이 되면 전 세계 중화권에서 271억 위안(약 38억 달러) 규모의 월병 시장이 들썩인다. 하 지만 이 둥근 과자 속에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서는 놀라운 역사가 담겨 있다. 3천년 전 제사 용 음식에서 시작해 몽골족에 저항하는 비밀 통신 수단이 되었다가, 오늘날엔 글로벌 문화 상품으로 진화 한 월병. 그 속엔 중국사의 격동과 아시아 문화의 확산, 그리고 현대 글로벌화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 월병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건 기원전 17세기 상나라 시대다. 당시엔
퍼져나갔을까?
도구가 되고 문화적 상징이 되는지를
월병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1600년 상나라에 도달한다. 강소성과 절강성 일대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증거들 은 당시 이미 원형 모양의 제빵 기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태사 문중을 기념하기 위한 '태사병'은 가장자리가 얇고 중앙이 두꺼운 독특한 형태로, 오늘날 월병의 구조적 원형이 되었다.
한나라 시대(기원전 206년-220년)에는 장건의 서역 개척로를 따라 새로운 재료들이 유입됐다.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참 깨와 호두가 기존의 단조로운 곡물 반죽에 복합적인 맛을 더했 다. 이때부터 '호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음식은 이미 이국 적 재료의 조화라는 오늘날 월병의 특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속 저항
월병 하면 가장 극적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는 원나라 말기 주 원장의 봉기설화다. 월병 속에 "8월 15일 밤에 봉기하라"는 비
밀 편지를 숨겨 전국에 유포했다는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역
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최근 학술 연구는 놀라
운 진실을 밝혀냈다.
홍콩 출신 중국사학자 진학림(陳學霖)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 설화는 실제 원나라 시대가 아니라 청나라 말기인 1900년 대에 처음 문헌에 등장했다. 실제 홍건적의 난(1351-1368년)
은 15년간 지속된 대규모 무장봉기로, 이미 공개적으로 창검
을 들고 싸우던 상황에서 비밀 통신의 필요성은 희박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당시의 경제적 현실을 고려하면 이 설화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기근과 빈곤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고가의 월병을 대량 제작할 경제력이 있었을 리 없고, 극도로 낮은 문해율을
결정적 변화는 당나라에서 일어났다. 618년 당 고조 이연이 대장 이정의 흉노 정벌 승리를 기념하며 토번 상인이 바친 원 형 떡을 신하들과 나눠 먹은 사건이 그 출발점이다. "동그란 호병이 마침 동그란 달을 만났구나" 라는 황제의 감탄사는 이 음식과 달 사이의 상징적 연결을 공식화했다. 이후 양귀비가 ' 월병'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송나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월병은 진정한 문화적 완성에 도 달한다. 소동파는 "작은 떡은 달을 씹는 듯하고, 그 속에는 바 삭함과 즐거움이 있다"며 월병의 미학적 가치를 시로 남겼다. 이 시기 중추절이 국가 공식 명절로 지정되면서 월병은 단순 한 음식을 넘어 민족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각 왕조마다 사회 계층에 따른 월병 문화도 다르게 발전했다. 청나라 건청궁에서는 높이 수십 층에 달하는 '월병산'을 제작 해 황제가 친히 자른 후 왕공대신들에게 하사했다. 반면 일반 민중들은 가정에서 단순한 재료로 월병을 만들며 마을 공동 체 단위의 제작과 나눔 문화를 이어갔다. 이런 계층별 차이는 월병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개체였음을 보여준다.

다. 3천년 전부터 시작된 달 숭배 전통이 가을 수확기의 감사 제사와 만나면서 보름달
의 완전함과 가족의 화합이라는 상징체계가 완성됐다.
창어(嫦娥) 전설은 이런 상징체계의 문학적 완성이다. 불로불사약을 훔쳐 달로 승천한
창어의 이야기는 희생정신과 영원한 분리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당시 이상 은의 시 "창어는 불로약을 훔친 것을 후회하리라, 푸른 바다 푸른 하늘 밤마다 마음 태
우며"는 이별과 그리움의 정서를 월병 문화에 투영시켰다.


월병의 원형 모양이 갖는 상징적 의미도 중요하다. 시드니 대학의 조샤환 교수는 "월병의 둥근 모양은 완전한 삶, 완벽함, 행운을 나타낸다"고 설명 한다. 가족이 함께 월병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가족의 완전성과 단결을 의미하며, 멀리 떨어진 가족과 친구들에게 월병을 선물하는 관습은 정서 적 유대감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지역별로도 독특한 월병 문화가 발전했다. 광동식은 얇은 껍질과 농후 한 소로 달콤한 맛을 자랑하고, 소주식은 1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바 삭한 층층 구조가 특징이다. 베이징식은 황실 요리법에서 유래된 정교함 을, 윈난식은 선위이 햄과 꿀의 독특한 조화를 보여준다. 이런 다양성은
월병이 획일적 문화가 아니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살아있는 문화임 을 증명한다.
바다를 건너 꽃피운 월병,
월병이 중국을 벗어나 최초로 뿌리내린 곳은 베트남이었다. 수백
년에 걸친 문화 교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파된 월병은 베트남
에서 '바인쭝투'(bánh trung thu)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하지
만 단순한 이름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월병 문화는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중국에서 가족 재 회의 축제였던 중추절이 베트남에서는 '어린이 축제'로 성격이 바
뀐 것이다. 별 모양 등불, 가면, 토헤 인형 등 어린이 중심의 독특한
문화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베트남만의 고유한 축제로 발전했다.
제조법에서도 현지화가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구운 월병('바인눙') 외에 찹쌀가루로 만든 '바인데오'가 등장했고, 연꽃씨와 코코넛 같 은 전통 재료에서 피스타치오, 커피, 초콜릿, 두리안까지 현대적 재료로 확장됐다. 2006년 약 6천500-6천800톤이 소비되고 800 억 VND(약 700만 상자)가 지출될 정도로 베트남 내에서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
동남아 적응사
동남아시아로의 확산에서 화교 공동체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10세기부터 시작된 중국인의 동남아시아 이주는 각 방언군별로 다른 월병 문화를 전파했다. 테오추(潮州) 공동체는 다층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얌 페이스트 소의 독특한 조합을, 호키엔(福建) 공동 체는 월병을 '학자 케이크'로 부르며 시험 응시자에게 행운의 상징 으로 나눠주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세계 두 번째로 큰 해외 중국인 공동체의 영향 으로 쿠알라룸푸르 티안 후 사원과 페낭 조지타운에서 대규모 축 제가 열린다. 싱가포르에서는 평균 60달러에 달하는 고급 선물용 월병이 등장했고, 리치 마티니, 베일리스, 말차 팥, 두리안 등 현대 적 스노우 스킨 월병도 개발됐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국가 특성상 할랄 재료를 사용한 적응이 이루어졌다. 돼지고기 대 신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고, 녹두 소에 초콜릿, 치즈, 두리안, 잭프 루트 등을 혼합한 독창적 변형이 나타났다.
같은 달, 다른 음식: 한국이 월병 대신 송편을 선택한 이유
흥미롭게도 같은 음력 8월 15일에 중추절을 보내면서도 월병을 먹지 않는 나라가 있 다.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추석은 중국의 중추절과 같은 시기에 열리지만, 월병 대신
송편이라는 고유한 전통 음식을 먹는다. 이는 단순한 음식의 차이를 넘어 두 문화권의 서로 다른 발전 경로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한국이 월병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배경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들이 작용했다. 먼 저 고유한 음식 문화의 존재다. 송편은 고려시대(918-1392)부터 기록이 남아 있을 정
도로 오래된 한국 고유의 전통 음식이다. 쌀가루를 반죽해 반달 모양으로 만들고 참깨, 팥, 밤 등을 소로 넣어 솔잎 위에 쪄낸다. "송(松)"이 소나무를 뜻하는 것처럼 솔잎의 향 이 밴 독특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








더욱 의미 깊은 건 송편의 반달 모양이다. 중국의 월병이 보름 달의 완전함을 상징한다면, 한국의 송편은 반달의 성장 가능성 을 나타낸다. 백제의 의자왕 시대 전설에 따르면, "백제는 보름 달이고 신라는 반달" 이라는 거북등의 글귀가 백제의 몰락과 신 라의 성장을 예언했다고 한다. 신라 사람들은 이후 반달 모양의 떡을 만들며 번영을 기원했고, 이것이 송편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둥근 월병과 반달 송편, 이 형태의 차이는 서로 다른 철 학과 세계관을 반영한다.
문화적 초점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중국의 중추절이 가족 재회와 달 감상에 중점을 둔다면, 한국의 추석은 조상 제사 와 성묘가 핵심이다.
추석 아침에 행하는 차례(茶禮)에서 조상들에게 햇곡식과 송편을 올리고, 이후 성묘를 통해 조상의 묘 소를 정리하고 예를 표한다. 이런 제사 중심 문화에서는 월병보다 쌀로 만든 송편이 더 적합한 제물이 었다.
제조법과 재료에서도 근본적 차이가 있다. 월병이 밀가루와 기름을 주재료로 하는 구운 과자라면, 송
편은 쌀가루로 만든 찐 떡이다. 농업 문화에서 쌀은 가장 신성한 곡물이었고, 조상에게 바치는 음식으 로는 쌀로 만든 떡이 더 의미 있었다. 또한 송편은 가족이 함께 만드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의식이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속설처럼, 제작 과정에서 가족 간 소통과 전수가 이루어 진다.
지역적 다양성도 한국만의 특색이다. 충청도의 호박 송편, 강원도의 감자 송편, 전라도의 모시 송편, 제주도의 완두 송편까지, 각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송편들이 발달했다. 서울의 오색송편 \은 흰색, 갈색, 분홍, 녹색, 노란색으로 자연의 조화를 표현한다. 이런 다양성은 중앙집권적 문화보다는 지역
공동체 중심의 한국 문화 특성을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도 이런 구분은 명확하다. 한국의 재중동포나 교민들도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어 먹지, 월
병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한국 내 중국음식점에서는 중추절 시즌에 월병을 판매하지만, 이는 중국인 관광객이나 교민을 대상으로 할 뿐 일반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음식이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음식 문 화를 넘어 민족 정체성의 문제다. 같은 중추절 문화권이면서도 월병 대신 송편을 고수해온 것은, 한국 이 한자 문화권의 일원이면서도 고유한 문화적 주체성을 유지해왔음을 증명한다.
중국의 월병이 3천년 역사 속에서 세계로 확산되며 변화해온 것처럼, 한국의 송편도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에서 독특한 발전을 거쳐왔다. 결국 같은 달빛 아래서도 서로 다른 음식을 나누며 각자의


방식으로 조상을 기리고 가족을 사랑해온 것이다. 글로벌 무대에 선 월병의 현재와 미래


21세기 월병은 전통 문화에서 글로벌 상품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2023년 중국 월병 시장 규모만 271억 위안에 달하고, 2025년엔 332 억 위안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더 놀라운 건 북미 월병 시장이 6억 3 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연평균 2.83%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다.
이런 성장의 배경엔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이 있다. 스타벅스, 루이 비통 같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월병 시장에 진출했고, 상자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프리미엄 제품들이 등장했다. 제비둥지, 트러
플, 이국적 과일 등 고급 재료를 사용한 월병부터 AR 기술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패키징까지, 전통과 첨단 기술의 결합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있다.
건강 지향적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소비자의 80% 이상이 건강 지향 월병 구매 의향을 보이면서, 설탕 25% 감소, 포화지방 40% 감소, 섬




유질 67% 증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건, 글루텐프리, 당뇨 환 자용 월병은 물론 치아시드, 검은쌀, 검은깨 등 슈퍼푸드를 활용한 제품들도 인기다.
팬데믹은 월병 문화에 또 다른 전환점을 가져왔다. 2020-2021년 전 통적 가족 모임이 제약받으면서 판매량이 급감했지만, 온라인 판매 채널로의 전환이 가속화됐다. JD.com에서는 전년 대비 135% 성장 을 기록했고, 라이브 스트리밍과 소셜 커머스 플랫폼을 활용한 새로 운 판매 방식들이 정착했다. Z세대의 등장은 월병 문화에 또 다른 혁신을 불러왔다.
고정불변의 화석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에 따 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기원전
17세기 제사용 태사병에서 시작해 오늘날 글로벌 브랜드들 이 경쟁하는 40억 달러 시장에 이르기까지, 월병은 변화를 두
려워하지 않고 적응하며 성장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월병이 각 지역과 시대의 도전에 창조적으
로 대응해왔다는 것이다. 원나라의 억압에는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비록 후세의 창작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어린이 축제 로 변모했으며, 현대에는 건강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수용했다. 이런 적응력과 포용성이야말로 월병이 3천 년을 살아남은 비결이다.
오늘날 글로벌화 시대에 월병이 보여주는 모습은 더욱 의미 깊다. 단순한 서구화나 획일화가 아니라, 각 문화권의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공통된 가치(가족, 화합, 재회)를 전파하는 문 화적 세계화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할랄 재료를 사용한 인 도네시아의 월병, 스노우 스킨으로 현대화된 싱가포르의 월
병, 건강 지향적으로 진화한 서구의 월병들은 모두 이런 창조 적 적응의 결과다.
앞으로도 월병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AI를 활용한 맞춤형 레 시피, 3D 프린팅 디자인, 친환경 패키징, 글로벌 공정무역까 지, 전통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 운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다. 3천년 전 달을 올려다보며 풍요 를 기원했던 고대인들의 마음이,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가족 과 안부를 나누는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듯이 말이다.
결국 월병이 전해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진정한 문화 의 힘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지혜를 현 재의 창조력으로 계승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라는 점이 다. 달빛 아래서 월병을 나누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그 순간이, 3천년 전과 똑같이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부 꽝응아이 (Quang Ngai)성과 고원지대 지아
라이(Gia Lai)성에서 6일 새벽 연속 지진이 발생해 주민들이 물건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Vnexpress
지가 6일 보도했다. 지
진해일정보센터(Earthquake Information and Tsunami Warning Center·지구과학연구소 산 하)에 따르면 망리(Mang Ri) 지역에서 새벽 0시 40 분부터 1시 46분 사이 규 모 2.6∼4.9의 지진이 4차
례 발생했으며, 진원 깊이 는 약 8km였다. 가장 강한 지진은 1시 28분에 발생 한 규모 4.9로, 많은 주민
이 진동을 명확히 느낀 시
각이다. 소셜미디어에는
꽝응아이와 지아라이 주
민들이 집안 물건이 약간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이
미지와 영상이 다수 공유 됐다. 쁠레이꾸(Pleiku) 동
(坊)에 거주하는 반안(Van Anh) 씨는 "컴퓨터 작업 을 하고 있었는데 화면과 책장이 약 10초간 흔들리 는 것을 봤다"며 "카메라를 켜서 다시 확인했더니 정 말 지진이었다"고 말했다. 진앙지인 망리 지역 팜쑤
언꽝(Pham Xuan Quang)
인민위원회 위원장은 "진
앙 지역 주민들이 물건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지만
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2021년부터 현재까지 콘
플롱(Kon Plong) 지역(구
콘툼<Kon Tum>성)에서
는 규모 3.0∼5.0의 지진
이 1천 회 이상 기록됐으
며, 일부는 광범위한 진동
을 일으켰다. 가장 강한 지
진은 2024년 7월 28일 정
오에 발생한 규모 5.0이었
고, 그 이전인 2022년 8월
23일에도 규모 4.7의 지진
이 기록됐다. 지난 한 달간
콘툼 지역(구)에서 수십 차
례 지진이 발생했으며, 9월
29일에만 4차례 연속 지진
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콘툼은 리히터 규

모 5.5를 넘지 않는 약진 범 위에 속한다. 이 지역의 지 진 현상은 수력발전 저수 지 운영과 관련된 유발 지 진으로 판단된다. 발전소 가 발전을 위해 물을 저장 할 때 수압이 지반 압력을 증가시켜 변위를 일으키고 진동을 발생시킨다는 것이 다. 2021년 3월 투옹콘툼 (Thuong Kon Tum) 수력 발전소가 저수를 시작한 이후 이 지역의 지진 빈도 가 급격히 증가했다. (Vnexpress 2025.10.06)

에코홈·안카인
태풍 맛모(Matmo)를 앞두
고 하노이 주민들이 재침
수를 우려해 모래주머니
로 댐을 쌓고 집 앞에 장벽
을 설치하는 등 자구책 마
련에 나섰다고 Vnexpress
지가 6일 보도했다. 5일 저
녁 에코홈(Ecohome) 도시
지구(동응억<Dong Ngac>
동)와 안카인(An Khanh)
지역 등 침수가 잦은 곳에
서 주민들이 돌과 흙, 모래
주머니를 사서 '댐'을 만들
며 태풍 맛모로 인한 폭우
에 대비했다. 에코홈 1 도
시지구 1층 로비에는 출입
구를 따라 많은 모래주머
니가 쌓여 주민들이 다닐
수 있는 작은 통로만 남겨
뒀다. 앞서 9월 30일에는
여러 건물의 지하가 침수
됐다. 내일 아침 하노이에
70∼150mm의 폭우가 예
상되자 에코홈 1 지역 주
민들은 40∼50kg의 모래
주머니와 돌을 나일론 밧
줄로 단단히 묶어 건물 로
비와 출입문으로 운반하
고 있다. 9월 30일 태풍
부알로이(Bualoi) 영향으
로 내린 폭우로 이 지역은
일부 1.5m 깊이까지 침수
됐다. 많은 차량이 지붕까
지 물에 잠겼다. 응우옌바
남(Nguyen Ba Nam·50)
씨는 "침수된 차량 수리비
로 450만 동을 썼다"며 "오
늘은 밤에 5만 동을 내고
밖에 주차하기로 했는데
훨씬 안전하다"고 말했다.
침수를 제한하기 위해 도
시관리위원회는 건물 주
변 수막이 높이를 20cm에
서 60cm로 높였다. 도시
지구 외곽에는 물 유입을
막기 위해 60cm 높이의
울타리가 새로 설치됐으
며, 상단의 철제 프레임은
쓰레기 유입을 막는 데 도
움이 된다. 약 20km 떨어
진 남안카인 도시지구도
침수가 잦다. 주민들은 폭
우 시 지하로 물이 들어오
는 것을 막기 위해 칸막이
를 설치하고 방수포를 깔
았다. 훙도안(Hung Doanh·38) 씨는 특별히 설
계된 칸막이 시스템을 점
검했다. 앞서 기계와 차
량 같은 귀중한 자산은 안
여객기가 엔진 이상으로 중국으 로 긴급 회항했다고 연합뉴스가 5일
보도했다. 5일 에어로케이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 55분(현지 시간) 베트 남 다낭 공항에서 이륙해 청주공항 으로 향하던 에어로케이 RF535편 항공기가 비행 중 엔진 이상으로 약 2시간 40분 만에 중국 광저우 공항 에 긴급 착륙했다. 이 항공기 엔진 은 비행 도중 큰 소음과
전한 곳으로 옮겨뒀다. 그
는 "이곳에서 침수에 익숙
해졌지만 칸막이를 단단
히 해도 물은 여전히 들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많
은 가구가 탁자, 의자, 나
무판자와 무거운 물건을
벽에 바짝 붙여 수막이를
보강하고 깊은 침수 시 떠
내려가는 것을 방지했다.
펌프에 연결된 파이프는
집에 침수될 때 배수하기
위해 높게 설치됐다. 안
카인 도시지구 레쯩딴(Le Trong Tan) 거리의 한 주
택은 폭우 때마다 수년간
침수됐다. 주인은 방수포 와 모래주머니로 지하를
덮어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젤렉심코(Geleximco) 도시지구의 한 은행
영업점은
현재 항공사
바닥에
있으며 필요시 화면을 작
동하면 자동으로



































